이드 2부 – 883화
1318화
스폴이 나섰다. 검후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단장님,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플레타 부대와 은색 기사단의 중간 지점.
거기엔 작은 의자와 탁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걸 확인한 쉴라가 말했다.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시죠.”
“굳이 쉴 필요는 없습니다만.”
정말 휴식은 필요치 않았다.
이드에게 있어 네트나와의 전투는 식후의 가벼운 산책 정도다. 땀 한 방울 흘린 적 없고, 소모된 내공조차 벌써 완전히 회복된 상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그렇다는 이야기.
앞서 삼백의 적과 전투를 치른 은색 기사단의 기사 중에는 아직 회복하고 있는 이들이 몇 있다.
라미아의 마법과 포션으로 부상은 깨끗하게 나았지만, 컨디션까지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닌 상태.
“잠깐 쉬었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마침 지름길도 찾았고.”
“지름길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입니다. 조금 이따 직접 보면 알 겁니다.”
의아해하는 쉴라를 뒤로하고 의자로 가서 앉는 이드.
의자는 작지만 단단했다. 또 부분 부분에서 장인의 손길이 묻어났다. 야전에서 쓰기엔 비싸 보이는 물건.
검후가 야영을 할 때를 위해 준비한 물건이리라.
중간에는 검후가 앉았다. 그리고 라미아와 일리나가 각각 이드 옆에 앉기 위해 다가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두 사람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서는 이드 옆자리 중 하나를 차지했다.
라울이었다.
이드 옆자리는 언제는 라미아와 일리나의 것이었다. 한데 생각지 않은 인물이 나타나 그 자리를 빼앗자 라미아와 일리나가 라울을 쏘아본다. 라울은 이런 눈빛을 못 본 척 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라미아와 일리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남은 빈자리에 가 앉았다. 그러자 라울이 슬그머니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 냈다.
“휴~ 두 분의 자리를 잠시 빌렸을 뿐인데, 무시무시하군요. 영원히 빌리려고 했다가는 살아남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영원히 빌릴 생각이시면 제 아내들 이전에 제가 먼저 죽일 겁니다.”
무섭게 뜬 이드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칼이 튀어나올 것 같다.
당연하다. 영원히 빌린다니. 그것도 라울이? 그게 말이나 될 소린가. 그의 말을 그대로 해석한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아…… 하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농담 싫어합니다!”
“……”
그런 두 사람 사이로 접시 하나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시원한 꿀물과 짭짤한 과자 몇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격렬한 신체 활동 후 에너지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 이드와 라울이 동시에 손을 뻗었다.
바사삭,
혓바닥에 퍼지는 단짠의 자극.
이드의 눈매가 단번에 부드럽게 풀어진다.
“맛있네요.”
“검후께서도 좋아하시는 디저트입니다.”
검후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서 그런가. 접시를 든 기사가 방긋 웃는다.
그녀 말고도 컨디션이 좋은 기사들이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꿀물과 과자는 쉬고 있는 기사들과 플레타 부대에도 똑같이 나누어지고 있었다. 제법 많은 양을 준비한 것 같다. 아마도 평소 검후가 먹는 것에서 차별을 두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시 은색 기사단.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준비가 철저하군요. 저희 부대는 이런 준비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젠장. 전투 준비로 바쁜데, 이런 걸 챙길 정신이 어딨어?”
라울의 말에 플레타가 괜한 트집이라는 듯 툴툴거렸다.
플레타 부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전투. 이런 디저트 준비는 그들의 역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투덜거리는 입으로는 쉬지 않고 과자가 들어갔다.
바사삭.
“이 정도면 되었다. 너희도 가서 쉬거라.”
“충분히 쉬었습니다. 시중을 들겠습니다.”
“괜찮다고 해도 그러는구나. 어서 가서 쉬렴.”
아무렴 검후가 재차 권하는 말에까지 사양할 수는 없었던 기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검후는 그런 기사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다 플레타 부대를 살피고는 말했다.
“플레타 부대원들의 상태는 어떤가?”
“음흠. 전투는 은색 기사단이 다 하고, 제 부대원들은 뒤에서 구경만 하지 않았습니까. 따로 상태가 나빠질 일이 없습니다.”
입안에 가득 채운 과자를 꿀물과 함께 단숨에 넘겨 버린 플레타가 답했다.
그에 검후는 그런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군. 하지만 내가 묻는 건 그쪽이 아니라, 저들의 마법에 의해 막힌 초인기 말이네.”
“아, 그것도 괜찮습니다. 적 마법사가 도망치는 것과 동시에 그 베이몬의 침묵이라는 마법도 풀렸습니다.”
텅!
말과 함께 플레타가 작은 과자 한 조각을 떨어트리자 마치 무거운 금속을 떨어트린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플레타의 초인기로 과자의 무게를 늘린 것.
하지만 플레타와 라울은 다른 초인들과 달리 베이몬의 침묵 속에서도 어느 정도 초인기를 사용할 수 있지 않았던가?
뭐, 그 자체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초인기를 쓸 수 없는 상태인데 쓸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할 상황은 아니니까.
“정말이지, 은색 기사단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라울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감사를 표했다.
검후는 당연하다는 듯 감사를 받으며 말했다.
“그래도 공을 따지면 남작의 공도 무시할 수 없겠지. 이런 경우를 대비하고 협력을 요청한 것이잖나.”
“글쎄요. 솔직히 말해 의외인 부분이 많습니다.”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이곳, 영혼의 관에 준비된 모든 게 제 예측보다 최소 한 단계 이상 뛰어납니다.”
조금 분한 걸까. 라울이 씁쓸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하긴, 그럴 만하다.
그 대단한 바벨의 정보력을 동원해 영혼의 관에 대해 조사하고 이번 습격을 준비했다. 현재 전력이라면 충분히 영혼의 관을 파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드나 검후의 존재는 사실 보험이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나 특별한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보험.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플레타 부대만으로도 충분히 영혼의 관을 파괴하고 연구 자료와 함께 바이트 타블렛을 탈취할 수 있다. 라울은 그렇게 계산했었다.
은색 기사단의 존재는 이드나 검후와 마찬가지로 안전장치의 일환이었다. 초인 마법에 의해 부대원들의 초인기가 제약당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라울은 은색 기사단이 직접 전투에 나설 일도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이유는 플레타 부대의 능력에 있었다.
부대에 속한 초인들은 그 하나하나의 능력이 일반 기사를 수배 상회했다. 그런 초인들의 숫자가 일백이다.
어지간한 마법이 아니고서는 이들의 초인기를 모두 봉인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무언가를 제약하기 위한 마법은 그에 대한 반발력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누가 이 정도 초인 일백의 초인력을 내리누를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설사 가능하다 해도 긴 시간 초인기를 봉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생각들이 모두 빗나갔다. 부대원들은 모두 전투 불능이 되었으며, 심지어 라울 자신이나 플레타 역시 발휘할 수 있는 초인력의 출력에 제약을 받았다.
더욱 큰 문제는, 그 제약이 짧은 시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적 마법사가 나타나 전투가 시작되고, 그가 도망칠 때까지 제약은 이어졌다.
그건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은색 기사단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은 위험했을 것이다. 아니, 솔직하자. 위험한 정도가 아니었다.
‘나나 플레타라면 몰라도 부대원들은・・・・・・’
높은 확률로 전멸.
운이 좋아 탈출하더라도 그 숫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아군의 전력을 너무 적게 잡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라울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바벨의 전력이 지금의 두 배가 되었어도 패배가 예상된다. 영혼의 관의 마법은 그만큼 강력했다.
심지어 마법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삼백의 인공 초인. 삼백이나 되는 인공 초인을 만들었다면 이 안에 얼마나 더 많은 인공 초인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인공 초인을 개량한 것으로 보이는 네트나라는 괴물까지. 생각할수록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초인 마법의 정수가 영혼의 관에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것의 위험성이 이 정도일 줄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드와 검후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솔직히 말해 은색 기사단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훗, 과연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는 남작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도록 하지. 그보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선 지 얼마가 지났지?”
“대략 4시간 정도입니다.”
쉴라가 답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진 전투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녀의 체내 시계는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4시간이라. 이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 남작.”
“그렇습니다. 앞으로 올라가야 할 층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 수 없고, 어떤 적과 함정을 넘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더욱이 떠났던 마스의 전력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으니………….”
일행이 영혼의 관에 진입하고 4시간.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 있다. 하나의 층을 넘는 데 두 시간 정도를 소비했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남은 층에서도 두 시간을 예상하면, 세 개의 층을 넘은 것만으로 날이 밝는다.
과연 그전에 영혼의 관을 모두 오를 수 있을까.
“어쩌면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올라갈지, 돌아갈지를 말이지?”
라울의 말에 검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만약 날이 밝기 전까지 영혼의 관을 정리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저희가 위험해질 수가 있습니다.”
단지 빠졌던 마스의 전력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의 침입을 확인하는 순간 마스라는 국가 자체가 움직일 것이다. 현재 마스에 있어 영혼의 관은 그 정도로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