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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92화


1327화

해결 방법이 눈앞에 있다.

그건 곧 탑주가 내려 준 해결 방법이 부관주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요크 장로는 쉬이 납득하지 못했다.

평소 탑주가 부관주를 얼마나 아꼈던가.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탑주가 부관주에게 이런 위험한 일을 맡겼다니………………

“진정으로 탑주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는 말입니까?”

“지금 탑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관주의 말에 요크 장로는 황급히 부인했다.

마탑 소속 마법사에 있어 탑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다른 마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미완의 마탑은 이런 부분이 특히 도드라진다.

마법이란 것이 원래 클래스와 써클이라는 확고부동한 기준점에 따라 확실한 우열이 가려진다.

그리고 그에 따른 서열은 자연스러운 권위를 만들어 냈다.

이는 미완의 마탑 역시 마찬가지.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추가된다. 바로 초인 마법이 그것이다.

초인 마법을 연구하는 미완의 마탑에 있어 탑주는 선지자인 동시에 개척자였다. 미지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인 것이다.

배 위에서 선장은 황제이고 신이다. 마탑의 탑주 또한 그러했다. 다만 그래도 마법사라고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잠깐 허둥댄 요크 장로는 곧바로 신색을 바로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부관주께서 직접 나서시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히려 위험하기 때문에 더욱 제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플로어 마스터들을 보세요.”

1층과 2층의 플로어 마스터들의 경우 적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6층의 플로어 마스터 엘로자는 침입자의 정체를 알고서도 망설임 없이 6층으로 달려갔다.

그가 겁이 없어서 그랬겠는가.

“플로어 마스터와 부관주는 다릅니다. 부관주께서는 저희를, 영혼의 관을 이끌어 주실 분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이끄는 것은 제가 아니라 탑주께서 하실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때 나서지 않는다면 부관주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이 바로 책임자가 아닌가. 반박할 수 없는 정론에 요크 장로도 더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더욱이 탑주께서 이유 없이 절 지목하셨겠습니까?”

“하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포기한 듯 돌아서는 요크 장로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무래도 부관주를 끝까지 막지 못한 게 아쉬운 것이다.

그의 반대는 온전히 부관주를 위하는 마음에서였다. 영혼의 관에 있어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탑주 못지않게 부관주를 아끼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해서일까.

요크 장로를 향한 부관주의 눈길이 부드럽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영혼의 관 부관주입니다.”

“알지요. 제가 부관주의 대단함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탑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더비히지만, 그녀가 부관주의 자리에 오른 것은 순전히 실력에 의한 것.

탑주의 편애와는 일절 관련이 없었다.

그것은 영혼의 관 소속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로, 그녀의 능력은 그 아래 마법사들에게조차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초인 마법에 관련되면 영혼의 관에서 부관주보다 뛰어난 사람은 오로지 탑주 뿐이다.

그런 부관주이기에 그녀의 실력에 대한 의심이란 있을 수 없다.

문제라면 그녀의 실력에 대한 믿음보다 무거운 침입자의 무게감이 문제였다.

“다만 제 걱정은, 부관주가 상대해야 할 검후와 명예 후작의 존재입니다. 부관주도 보셨다시피, 그들의 힘은 진짜입니다. 극도로 위험한 자들임을 알았기에 염려가 됩니다.”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잘 받아 두겠습니다. 그런데, 좀 너무하시네요.”

“예? 무엇이 말입니까?”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삼촌의 모습이 이런 것일까. 걱정이 태산이던 요크 장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장로님의 말씀을 보면 마치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의 패배를 확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가 알면 섭섭해할 겁니다.”

사실 그렇다.

장로와 부관주가 나눈 대화는 전부 엘로자 마법사가 패하고, 부관주가 나서게 될 것을 상정한 경우였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열심히 달려간 엘로자에 대해서는 일말의 기대도 없는 모습이랄까.

하지만 그에 대한 요크 장로의 반응은 냉정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섭섭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와 침입자들 간의 전력 차는 너무나도 극명합니다. 아마도 확실하게 엘로자가 패하게 될 겁니다. 적에게 사로잡히거나 죽지 않고 잘 도망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하신 것 아닌가요?”

“반대입니다. 엘로자에 대판 평가가 박한 게 아니라, 검후와 명예 후작이 너무 강한 것이지요.”

담담하게 미래를 확신하는 요크 장로. 그러나 곧 그 표정을 바꿔서는 부관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하니 부관주께서도 꼭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을 조금도 떨치지 못하는 그 모습에 부관주는 장로의 손을 마주 잡으며 내심 사과의 말을 했다.

‘저에 대한 장로의 걱정은 감사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어떤 위험이 오더라도 저는 탑주님을 위해서 싸울 겁니다. 그것이 그분이 제게 베푸신 은혜에 보답하는 일일 테니까요.’

부모를 잃은 자신을 거둬 애정을 쏟고, 마법을 가르쳐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 준 은인.

지금도 목표를 위해 영혼을 불태우고 있는 존경하는 스승.

부관주는 탑주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목숨을 걸 수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탑주의 허락 없이 그의 ‘명령’을 거짓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전투에 나서는 것은 탑주의 명령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있어도 후회는 없었다. 이렇게라도 탑주를 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며 부관주는 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6층을 비추는 영상 속에는 어느새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가 도착해 있었다. 마법을 준비 중인 듯 그의 주변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형성된 상태였다. 

‘부디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가 오랜 시간 적들을 붙들어 줘야 할 텐데……………’

저 자리에 용감히 나선 엘로자에겐 미안하지만, 부관주의 판단도 요크 장로와 같았다. 지금의 그로는 검후와 명예 후작을 선두로 한 침입자들을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부관주는 부디 그가 조금이라도 더 침입자들의 발목을 잡아 주길 바랐다. 자신 역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지금, 탑주를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이트 타블렛을 완성하기 위해서든, 탑주가 말한 ‘해결 방법’을 준비하기 위해서든 말이다.

이런 부관주의 바람 가운데, 엘로자를 중심으로 6층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천장과 사방의 벽이 사라지고 하얀 하늘이 나타났다.

하늘 가운데는 붉은 커다란 불덩이가 떠올랐으며, 바닥에는 불타는 용암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암에서 뿜어지는 증기와 유독 가스가 순식간에 6층을 채워 나갔다.

“공간 중첩 소환진으로 화산 지형을 만들어 냈군요. 그가 좋아하는 환경이지요.”

“개인적으로는 화산보다는 심해를 소환하는 쪽이 적들에게 더 치명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에게도 다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켜보도록 하죠.”

엘로자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부관주의 말에 요크 장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또한 책임자의 중요한 덕목.

부관주가 괜히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영상 속에서는 드디어 땅에 뚫린 구멍 속에서 침입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명예 후작.

검강의 고리를 만들고 천장을 뚫어 자신들을 난감하게 만든, 바로 그 문제의 장본인. 그 모습을 본 마법사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그런 인물인 만큼, 화산 지형 하나로 막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움직임을 제안하기에는 충분하지. 애 좀 먹을 거다, 이놈.’

마법사들은 한뜻으로 엘로자를 응원했다.

그에 대한 보답일까.

콰콰콰쾅!

영상 속 화산이 시원하게 폭발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한꺼번에.

무엇보다 마법으로 형성된 공간이기 때문일까. 돌덩이를 포함한 붉은 용암과 분진 등이 한꺼번에 명예 후작을 향해 쏘아졌다. 뿐인가. 땅에 흐르던 용암은 명예 후작이 튀어 나온 구멍 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명예 후작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면 용암을 뒤집어쓰게 되리라.

“그래, 그래야지!”

“적지 않은 수의 적을 죽일 수 있겠군.”

끔찍한 결과를 상상한 마법사들이 크게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진작 이렇게 되어야 했다고 생각 중이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라면 저 명예 후작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가질 때였다.

쿠구구구구ᅳ

분명 용암과 분진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할 명예 후작의 모습이 너무 멀쩡하다. 그를 향해 뿜어졌던 용암과 분진은 무엇엔가 막힌 듯 그의 발아래 뭉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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