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94화
1329화
이드는 걸쭉하게 쏟아지는 초인들의 악다구니에 혀를 찼다.
“쯧쯧, 초인 친구들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인데. 이걸 어쩌나. 당신이 그 원인이란 걸 알면…….”
알면? 알면 어떻게 되는 건데!
알고 싶지 않지만, 알고 싶다. 그러나 질문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따닥. 따다다닥・・
이빨이 격렬하게 아래위로 부딪히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엘로자는 현재 두려움에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검후와 명예 후작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두려움.
지금까지는 그걸 공간 중첩 소환진이라는 벽이 막아 주고 있었다. 그에 대한 믿음이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너무 쉽게 깨져 버렸다. 내심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악을 써 봐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대신 벽에 막혀 있던 두려움이라는 강물이 모여 있던 수량까지 더해서 한꺼번에 밀려왔다.
공간 중첩 소환진이 없다면 자신은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가. 아니, 도망치긴 이미 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코앞에 명예 후작이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할까? 문득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솟구쳤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초인들의 악다구니는 그의 간담을 지옥까지 떨어트리기 충분한 것이었다.
이런 엘로자의 모습에 이드의 고개가 갸웃했다.
‘6층을 지키고 있는 놈이 왜 이렇게 정신이 약해?’
겁을 먹어도 너무 먹었다.
이건 어딜 어떻게 봐도 처음 전장에 나온 애송이 꼴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놈이 6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이런 마탑은 물론이고, 던전이나 각 문파의 경우 상층 또는 심처일수록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지키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당연히 6층을 지키는 마법사가 1층과 2층에서 만난 마법사보다 실력이 뛰어날 줄 알았는데.
혹시 영혼의 관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것일까?
‘아니면 설마 이 허접 하나 남겨 두고 다 도망간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엘로자는 눈물과 콧물을 짜고 있었다.
-그 정도의 대규모 공간 간섭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걱정에 대한 라미아의 답에 이드는 깔끔하게 걱정을 접었다. 마법에 관련한 일에 있어서는 라미아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니까. 어떻게 봐도 만만해 보이는 엘로자의 모습에 이드는 초인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무지막지한 분노로 보아 상태가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인들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다.
그중 가장 앞에선 초인들의 몰골이 특히 최악이었다.
옷과 몸에 그을음이 생긴 건 차라리 애교였다.
하나같이 입고 있던 옷이 불타서 상거지 꼴에, 머리카락을 홀라당 태워 먹은 대머리가 수두룩했고.
팔이나 다리, 혹은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이도 한둘이 아니었다.
“저런.”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모습에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와 동시에 발아래서 꿈틀거리는 기척.
자신의 시선이 초인들을 향한 틈에 기어서라도 도망가려는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걸까?
순간 손이 허전해지며 느껴지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패럴라이즈.”
직후 들려온 라미아의 목소리에 꿈틀거리던 엘로자의 기척이 사라진다.
쉭쉭 거리며 코로 들락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없다면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당연히 죽은 건 아니다.
패럴라이즈.
아마 폐를 제외한 모든 신체 움직임을 마비시켜 버린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자신도 그렇지만, 라미아도 적을 상대로는 대충 하지 않는 것 같다.
부부라서 닮아 가는 걸까.
그렇게 잡념이 차오르려 할 때였다.
때마침 그런 잡념을 멈춰 주는 상대가 구멍 속에서 뛰쳐나왔다.
“푸후. 빌어먹을.”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쓴 플레타는 사방을 살피더니, 곧바로 이드를 향해 다가왔다.
“급히 따라온다고 따라왔는데, 활약할 사이도 없이 명예 후작께서 다 정리해 버리신 모양입니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용암은 흔적도 없고, 사방이 깨끗하군요.”
“마침 1층에서 눈에 익혀 둔 무차원 공간이 나온 덕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마법사도 상대하기 쉬웠고 말이죠.”
“……명예 후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헛소리라고 했을 겁니다.”
담담한 이드의 표정과 목소리에 괜한 겸양이 아님을 알았는지, 플레타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다만 그건 아쉽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상대가 사라진 것에 대한 짜증에 가까웠다.
지금도 봐라.
뒤에 있는 엘로자를 향한 시선이 실로 흉흉하다.
“그나저나 명예 후작 부인도 계셨군요. 저보다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이드의 뒤를 누구보다 빠르게 쫓았기에 그런 의문이 드는 모양이다.
이드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저희 부부가 원래 일심동체라서요. 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녀가 함께 있지요. 그보다, 부대원들의 피해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하아~ 용암이 그렇게 쏟아질 줄은 몰랐습니다.”
자세한 대답을 피하는 이드였지만, 플레타도 굳이 깊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권한도 능력도 없으니까.
대신 깊은 한숨과 함께 당장이라도 욕설을 씹어 뱉고 싶은 듯 씨근덕거렸다.
지금도 그의 눈에는 구멍을 가득 메우며 쏟아지던 용암의 폭포가 선했다.
“제가 가장 앞에 있었던 덕분에 제법 막아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상자가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그냥 화염이었으면 쉽게 막아 낼 수 있었을 텐데….”
용암을 뒤집어쓰고 타들어 가던 부하의 모습이라도 떠올린 것일까. 플레타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드는 그 심정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실히 용암의 위험성은 단순한 화염과는 차원이 다른 면이 있었다.
잠깐 그렇게 감정을 삭이던 플레타는 곧 연이어 올라오는 부하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라미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 부대원 중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명예 후작 부인께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도와 드리죠.”
“감사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단번에 승낙한 라미아에 플레타가 재차 고개를 숙인다.
그와 이드를 뒤로하고, 라미아가 부상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곧 치유 능력을 가진 초인과 마법사들이 뒤따라 도착할 테니 추가 사망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습에 플레타가 한숨 돌렸다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이드를 거쳐 엘로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놈입니까?”
이드는 생각했다.
저 짧은 말속에 참 여러 가지 의미가 들었구나, 하고.
그가 말하는 ‘이놈’에는.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 6층의 플로어 마스터, 구멍 속으로 용암을 쏟아부어 부하들을 죽인 적,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심문하고 싶은 상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플레타 대장이 심문을 하셔도 됩니다.”
“제가 바라던 일입니다. 저놈의 몸을 통해 아까운 부하들 목숨값을 철저히 받아 내 보겠습니다.”
목숨값이 먼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문이 먼저이지만.
이드는 굳이 그 부분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렴 그런 사실을 잊을 정도로 눈이 돌아갔을까.
‘・・・・・・돌아갔을지도? 에이, 정말 그런 거면 라울이 알아서 나서겠지.’
우드득. 우드득.
요란하게 손가락을 꺾어 대며 살벌한 미소를 지은 채 엘로자에게 다가가는 플레타. 그 모습 어디에도 쉽게 엘로자를 죽이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로, 가능한 오랫동안 엘로자를 괴롭힐 작정인 것 같다.
엘로자 역시 그러한 사실을 눈치챘을까.
하얗게 질려 있던 그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갔다. 하지만 라미아의 패럴라이즈에 당한 그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주르르륵.
그저 부릅뜬 두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말이다.
물론 그 눈물조차 눈을 감을 수 없어 괴로움 때문에 흐르는 것인지, 두려움에 흘러나온 것인지 불명이지만.
이드는 개인적으로 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앞서 보여 준 엘로자의 겁쟁이 같은 모습이 퍽이나 인상 깊었으니까 말이다.
한걸음 물러서는 이드.
그 자리로 플레타가 들어섰다.
그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엘로자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불쑥 손을 내밀어 뜯겨 나간 어깨 부위를 움켜쥐었다.
꽈아아악.
그러자 물에 젖은 걸레를 움켜쥔 것처럼 플레타의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왈칵 솟아 나왔다. 보기만 해도 아픈 모습. 하물며 실제 당하는 엘로자는 어떨까.
패럴라이즈에 당해 꼼짝도 못 하는 그의 고통의 정도는 정확히 알기 힘들었다.
대신 숨소리가 한층 격렬해지다 못해 콧물까지 뿜어내는 콧구멍과 실핏줄이 한꺼번에 터져 버려 붉게 변한 두 눈이 그의 고통에 찬 비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로자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건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플레타가 햐안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우리 나눌 이야기가 많은데. 피가 모자라 죽으면 곤란하지 않겠어? 그런 의미에서 이 피는 내가 확실히 멈춰 주지. 조금 아플 거야~”
으드드득!
‘아플 거야’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플레타의 손아귀 안에서 뼈가 으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엘로자의 어깨에 남은 뼈와 살이 한데 뭉개졌다.
그 모습은 마치 잘 섞인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 같았다. 뼈와 살이 함께 뭉개지는 과정에서 혈관이 막히며 출혈이 멈췄다.
“좋았어, 보라고, 피가 멈췄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히 벌었어. 이런・・・・・・ 기절했나?”
그에 실실거리던 플레타가 혀를 찼다.
실핏줄이 몽땅 터져 버린 엘로자의 눈에서 빛이 꺼져 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극심한 고통에 정신줄을 놓은 것.
“약해 빠진 놈. 벌써 정신을 놔? 이딴 놈에게 내 부하들이 당했다니. 일어나, 이 자식아!”
이런 모습이 오히려 플레타를 자극한 모양이다.
이를 악문 플레타가 손에 쥔 어깻죽지를 다시 한번 쥐어짰다. 그러자 빛이 꺼졌던 엘로자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좋아. 잠자면 곤란하지. 우리, 할 이야기가………….. 누구냐!”
그 모습에 만족한 듯 살벌하게 웃어 보이던 플레타.
그러나 곧 무언가를 감지한 듯 급히 엘로자에게서 떨어졌다.
치지지직-
직후.
플레타가 있던 곳이 붉게 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