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04화
1339화
독살스럽게 담장을 기어오르는 독사가 이럴까.
슈루룩!
슈리릭!
열 개의 칼날이 음흉하게 꿈틀대며 이드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데, 그 기세가 실로 사납다.
특히 끝이 뭉툭해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진동하는 칼날은 그것이 노리는 곳이 어디인지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
음험한 뱀 떼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중인 이드의 눈을 속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눈은 현란하다 못해 기묘하기까지 한 열 개의 검로를 단숨에 꿰뚫고 있었던 것.
똑똑히 보았으니, 이어지는 움직임에도 거침이 없다.
손에 든 일라이져에서 수라만마무가 펼쳐졌다.
길지 않은 검신에서 빛살처럼 터져 나간 붉은 그물이 열 마리 뱀의 목덜미를 단박에 휘감았다.
촤앙~!
그 순간, 수백 명이 동시에 철판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오르게 만드는 소음이 수십 킬로 밖으로 퍼져 나갔다. 수라만마무가 만들어 낸 강사는 날카로웠지만, 강렬하게 진동하는 칼날은 쉽사리 목덜미를 내어 주지 않았다.
쉼 없는 파도처럼 이어진 소음은 점점 강력해지더니, 이내 충격파가 되어 사방을 때렸다.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 저 멀리 떠밀려 갔다.
실로 의외다.
이드는 쉽게 꺾이지 않는 칼날에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본 부관주는 마법사다. 다양한 초인기를 사용하고, 변신을 하기도 하지만 분명 그녀의 근본은 마법에 있었다. 그런데, 마법사가 수라만마무를 막아낸다고?
아무리 외형이 변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 일인가?
‘분명 따로 무공을 익힌 흔적은 없고. 혹시 이것도 초인기를 이용한 걸까?’
그러고 보면 칼날의 움직임은 동물적이고, 자극에 반응하는 원초적인 부분이 많다. 그러면서도 이성적이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무공을 모르면서도 뛰어난 신체 능력을 이용해 공격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그 후에 어찌 움직일지 결정하고 있다고
할까?
아마도 저 형태를 한 부관주는 신안이나 레이더 같은 초인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말 그렇다면, 부관주는 그 작은 몸에 도대체 몇 개의 초인기를 심어 넣은 걸까.
과연 저렇게 많은 초인기를 한 몸에 담아도 괜찮은 것일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모습을 자신이 아니라 라울이 봤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아마 미완의 마탑에 대한 바벨의 대응이 최소 몇 배는 강력해질 것이다.
어쩌면 바벨이 총동원되는 꼴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개 이상의 초인기를 각성한 초인의 숫자는 극소수. 한데 지금 부관주가 사용하고 있는 초인기는 대체 몇 개인가!
이만큼 많은 초인기를 한 몸에 보유한 초인?
모르긴 몰라도 세상 대부분의 초인이 가입된 바벨에도 없을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바벨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알고자 할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아무도 알 수 없도록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하나 확실한 점은, 바벨이 미쳐 날뛸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오늘 여기, 영혼의 관 습격이 목적을 충분히 이루고 끝이 난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밀어붙여 볼까!’
이건 결코 바벨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렇게 속으로 말한 이드가 수라만마무의 그물을 단단히 조이기 시작했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아아~ 아~!
라~~!!
칼날들이 노랫소리를 높이며 그물을 뚫고자 애를 쓰기 시작했다. 그물 안에서 수십 번 뒤집은 몸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점점 더 강해지는 몸짓에 그물이 찢어질 듯 부풀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아!!
라라!!
고음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퍼지던 노랫소리가 한곳으로 모여 그물을 때렸고.
퍽!
집중된 힘에 결국 그물이 견디지 못하고 구멍이 나고 말았다. 교활한 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슈가가가가각!
작은 구멍을 넓히며 음파의 칼날이 폭풍처럼 뿜어졌다. 동시에 그 사이로 숨어서 독아를 번뜩이며 달려드는 칼날들.
그건 열 개의 칼날이 더 작게 나뉘어 만들어진 칼날이었다. 그 수는 무려 천에 다다랐다. 그야말로 칼날의 폭풍.
일순간 천지 사방이 섬뜩한 칼날로 가득 찼다. 막지 못한다면 갈기갈기 찢기다 못해 옷자락 하나 남기지 못할 것 같은 흉흉함. 그러나 그 속에 선 이드는 태연했다. 또한 여유로웠다.
비록 기세는 흉흉하나, 그뿐. 이드의 눈에 저 칼날의 폭풍은 속 빈 강정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병사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절대 고수 하나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이드는 화령화의 검막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불길이 피어나듯 이드를 중심으로 붉은 꽃잎이 불타올랐다. 음파의 칼날은 불길에 타 사그라지고, 천 마리로 늘어난 뱀은 열기에 어쩔 줄을 몰랐다. 공격이 멈춘 순간은 곧 허점이 된다.
불타는 화령화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번득이며 쏘아지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칼의 벽이 쩍 하고 갈라졌다.
열을 천으로 나눈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내려간 방어력으로는 비혼화의 검강을 막을 수 없었던 것. 그렇게 갈라진 칼날의 벽 너머로 나타나는 부관주. 그녀는 어느새 빠르게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스스슷!
보법을 밟은 이드는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칼날의 폭풍 속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부관주의 머리를 향해 검강을 쏟아 냈다.
쩌엉!
빗살처럼 뻗어 나간 검강이 폭발했다. 그러나 목표한 부관주의 머리를 부수지는 못했다. 고장 난 팔을 대신하듯 등에서 다시 솟아난 날개가 검강을 막아 냈기 때문.
직후다.
아아아!
하나가 잘려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부관주의 뿔이 진동하며 뿌연 음파의 포탄을 쏘아 냈지만, 이드는 표표한 움직임으로 이 포탄을 피했다. 포탄에 담긴 힘이 클지언정 피하는 건 쉽다.
그와 함께 다시 검초를 펼쳐 낼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로 커다란 무언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드는 그 사실을 기감을 통해 먼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아아~ 라라~!!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비처럼 쏟아졌다.
이드에 베인 천 개의 칼날이, 우산처럼 반구형의 몸을 엮어 이드가 피해 낸 음파의 포탄을 반사하고 있었던 것. 거기에 칼날 각각의 진동을 실어 천 개의 변화를 가미하고 있던 것이다.
과연 이드도 비처럼 쏟아지는 이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막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 공기의 흐름까지 끊어 내는 백화난무면 음파를 막아 내는 건 어렵지 않아.’
직후 이드의 모습이 수많은 꽃잎에 가렸다. 백화난무의 초식이 만들어 낸 의형강기. 그로 인한 검막.
그 위로 음파가 쏟아져 내렸지만,
살랑살랑,
꽃잎은 바람에 흔들리듯 조용히 흔들리기만 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그러나 그 아래.
이드는 미간을 모으고 있었다.
분명 음파가 만들어 낸 충격파는 완벽히 상쇄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자신의 내부를 자극하는 힘이 분명 존재했다. 그 힘은 자신의 뇌를 대신해 자율 신경계를 통해 내장을 뒤집으려는 중이다.
이드는 지구에서 배우고 익힌 새로운 단어 중 하나가 떠올랐다.
‘휴먼 해킹.’
지금 상황에 정말 딱인 단어이지 않나. 외부에서 이드라는 시스템을 가로채려고 시도하고 있으니까.
물론 휴먼 해킹의 정확한 의미는 이와 다르다. 해당 조직에 속한 사람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포섭하고 그를 이용해 정보를 빼내거나, 허위 정보를 흘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단순하게 이해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더 어울리는 듯하기도 하다.
좌우간, 이런 이드의 상태를 아는 것일까.
쏴쏴쏴쏴!
노랫소리를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칼날 수백 개가 음파에 섞여서 이드를 노렸다. 그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또한 빨랐다. 마치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하지만 이런 공격은 고고하게 버티고 선 백화난무의 벽에 모조리 막히고 말았다.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탓일까.
백화난무를 넘은 칼날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백화난무와 칼날의 충돌을 반발력으로 삼아 이드가 급격히 거리를 좁혔다.
빠르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을 맞으며 이드는 야릇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이드도 휴먼 해킹에는 좀 놀랐다.
설마 충격파가 아니라 아무런 파괴력을 가지지 않은 노랫소리로 신경망에 간섭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이러한 공격 방법은 그 많고 많은 마법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물론 찾아보면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흑마법에 의한 저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로지 노랫소리를 통해 신경에 간섭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방법을 모르고 처음 당하는 입장이라면 굉장히 당황할 것이 분명하고, 또한 열에 아홉은 크든 작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 아홉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경험이 없지도 않았다.
이드는 자신이 당한 공격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신공절학급의 음공이야. 어지간한 사람은 피를 한 사발 토했겠어.’
부관주에는 안타깝게도, 이드는 이러한 음공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뿐인가. 번뇌마염후와 천령활심곡이라는 훌륭한 음공도 익히고 있다. 그런만큼 음공에 대한 대응 방법에는 빠삭했다.
아니, 따로 대응 방법이 필요치도 않았다.
휴먼 해킹따위! 현경을 넘어 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낸 이드에 있어 의미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무극신기가 있다.
무극신기는 외부의 자극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이 신기를 넘어 신체의 통제권을 가져갈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