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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05화


1340화

파팡!

음공을 무위로 돌린 이드가 허공을 차며 속도를 높였다.

이런 모습 때문일까. 노랫소리가 찢어질 듯 커졌다. 너무나 멀쩡한 이드의 모습에 출력을 최대로 높인 것. 이드는 그 반응을 통해 부관주가 상당히 놀라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에게 이 음공은 나름 비장의 수법이었을 텐데, 그것이 통하지 않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라고 어디 꿈엔들 예상이나 했을까. 자신이 싸우게 될 상대가 음공에 대한 경험과 조예가 있을 뿐 아니라, 아예 면역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절망 중일까?

높아진 노랫소리 말고는 다른 반격기나 방어기가 발동될 기미가 없다. 하긴, 이런 근접전은 그녀의 전문이 아닐 테니까.

불쌍했다. 물론 미안한 건 아니고!

“원래 세상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나름 적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위로를 담은 이드는 한층 더 독하게 일라이져를 휘둘렀다. 먼저 발출된 수라섬관단에 수라참마인이 더해졌다. 쩌저저정!

펑펑 쏟아지는 검강 줄기에, 앞길을 막고 있던 날개들이 무참하게 찢겨 나갔다. 그러자 그 뒤에 숨어 있던 부관주의 얼굴이 드러난다. 문득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

눈, 코, 입이라고는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은, 가면을 쓴 것 같은 맨들맨들한 얼굴인데 말이다.

구우웅!

그런데, 착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숨어 있다 발각되어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두 개의 뿔이 격렬히 진동한다. 지금까지 보여 준 바에 따르면 진동은 곧 공격이었지만. 

“거기까지!”

부관주의 수법이라면 충분히 보았다.

관심이 떨어진 이드의 벼락 같은 고함과 함께, 수라검공의 세 초식이 단숨에 폭발했다. 연계된 수라검공은 무섭게 날뛰었다.

무쌍한 변화가 사자의 갈기처럼 꿈틀거리는 검로.

분명 하나의 직선을 그린 검로였음에도.

투둑툭!

이마와 관자놀이의 뿔 두 개가 동시에 잘려 떨어지고.

치지지지지ᅳ

맨들맨들한 부관주의 얼굴이 정수리부터 목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절반으로 쪼개지며, 그 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피와 살이 검강의 열기에 타들어 갔다.

상대가 생명체라면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는 부상이다.

머리가 쪼개지고 살아 있을 수 있는 생명이 어디 있을까. 만에 숨을 쉰다 해도 그게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관주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쪼개진 직후, 상승 중이던 부관주의 거체가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했다.

쿠콰쾅!

뿌연 먼지가 다시 피어오르고, 그 밑으로 흐른 피가 땅을 적시기 시작한다.

부관주가 죽었으니 전투의 끝일까. 적어도 플레타는 그렇게 생각했는지, 휘파람을 불며 다가오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어진 이드의 말이 그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땅에 쓰러진 거체의 가슴 위에 내려선 그가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혹시나 기대하고 있을까 싶어서 말하는 건데, 죽은 척 기회를 보는 건 내게 통하지 않아요.”

투항을 권하는 협상가와 같은 말투.

그와 반대로, 딱딱한 외골격 아래를 향한 이드의 눈은 여전히 냉정하다. 극과 극의 온도 차. 마치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는 납치범 같다. 그런 이런 이드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부관주.

진짜 죽은 것일까. 아니면 사탕에 홀리는 어린아이보다는 생각이 깊다는 것일까. 이런 알 수 없는 침묵에 이드가 혀를 찬다.

“거, 통하지 않는다니까. 꼭 좋게 말하면 듣지를 않아요.”

꾸욱.

반보 앞으로 내민 발끝이 외골격을 누른다.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서 경력이 요동친다. 철황권의 유일한 각법인 마각철황격.

이 각법은 실로 간결한, 그러나 철황권의 근간에 위치한 수법이다. 준비만 된다면 마각철황격을 토대로 철황권의 다른 초식들을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마각철황격.

철관심인.

엄지발가락에서 시작된 경력이 외골격을 격하고 거체의 내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피와 근육, 지방과 신경 그리고 뼈를 타고 전해지는 경력.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앞서 부관주가 사용한 음공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래서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는 것인지도.

다만 이러한 의미를 이 대지진 같은 충격 속에서 부관주가 이해할 여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이래도 버틸 수 있는지 보겠다. 그런 의미가 담겼기 때문일까.

몇 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불쑥!

이드가 선 가슴 부근이 아니라 거체의 복부가 갑자기 불쑥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찢어지고 그 속에서 온통 피칠갑을 한 작은 인형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튀어나온 속도 그대로 허공을 향해 솟아오르려 했다.

그 모습은 실로 다급해 보였다.

이럴 때 잘 어울리는 말이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서두르다 보면 주변이 보이지 않고, 여유가 사라지며, 실수가 생기는 법.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밖에서 이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날 그렇게 만만히 봤다면, 고맙지!”

분뢰보인가.

마치 블링크 마법을 연상케 하는 모양으로 이드가 허공에서 불쑥 나타났다. 정확히 도망 중인 부관주로 추정되는 무언가의 머리 위. 그에 움찔 놀란 부관주가 급히 방향을 돌리지만, 그보다 이드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분뢰보의 기운이 남아 있기라도 한 걸까. 부관주를 가격하는 마각철황격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검은 번개 같았다.

콰릉!

“끼아아악!”

부관주가 죽지 않았다는 이드의 말이 옳았던 걸까. 피칠갑을 한 정체불명의 무언가에서 여성의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체불명, 아니, 부관주는 비명과 함께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마각철황격에 적중되고도 몸이 터지거나 절단 나지 않다니. 거체를 벗어던졌음에도 아직 그녀의 몸을 보호하는 무언가가 더 있는 모양이다. 이드는 추락한 부관주를 향해 허공을 미끄러져 갔다. 마침 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부관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각철황격의 파괴력에도 바로 움직일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구성이다. 한데 그때, 충격에 피와 살이 떨어져 나간 모습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풀 플레이트?’

그렇게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숨구멍과 눈구멍이 뚫려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온몸을 감싸고 있는 백색의 갑옷. 잘 보면 저기 쓰러진 거체의 외골격의 변형이다. 크기는 성체의 그레이트 오크 정도.

거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그럼에도 부관주의 두 배는 되는 크기.

거체가 그 크기와 힘을 중시한 형태라면, 지금의 모습은 속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닐까 싶다. 마각철황격을 견딘 내구성도 그렇다.

하지만 느긋하게 확인할 기분은 들지 않는다.

“아아, 일어날 필요 없습니다. 누워 있어요, 누워 있어.”

콰콱!

“카학!”

막 몸을 일으키려는 부관주의 가슴을 밟아 눌렀다. 진각에 더한 철관심인의 발자국이다. 아무리 내구성이 좋아도 그 내구성을 격하는 충격까지는 온전히 막아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폐를 토해 낼 것 같은 격렬한 기침과 함께, 숨구멍 사이로 붉은 피거품이 흘러나왔다. 거체가 흘리던 것과는 다른, 선명한 붉은색의 피.

내상을 입었다는 증거다. 그와 동시에, 상태가 꽤 심각하다는 의미.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이대로 내상이 심해지면 죽는다.

그래서야 곤란하지 않은가.

부관주의 입을 통해 듣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는 이드는 아직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즉시 철관심인의 경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드의 다리를 향해 두 주먹을 휘두르는 부관주. 주먹에 담긴 힘도 힘이지만, 단검을 떠오르게 만들 정도의 날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정말…… 마법사 주제에 근성이 대단하네.’

이드는 내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초인기를 통해 타이밍을 잡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상을 당한 중에 반격이라니. 마법사라는 이미지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터프함이 아닌가.

다만 이드가 높게 사는 것은 딱 그 정도의 근성일 뿐이다.

근성도 좋지만, 그 전에 상황에 대한 인식을 먼저 할 필요가 있다. 철저하게 적과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경력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발을 뗀 것은 아니지 않나. 부관주의 주먹이 아무리 빨라봤자 마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드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내공이 철관심인의 경력을 형성했고.

“크하하!”

또다시 뿜어지는 피거품과 함께 부관주의 주먹은 힘을 잃고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쉽게 포기하면 애초에 공격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

짜자자작!

무언가 타들어 가는 듯한 냄새와 함께 이드의 손끝이 번쩍였다. 뜨거운 황금빛과 함께 부관주를 휘감은 외골격에 구멍이 났다.

콰드드득!

양쪽 어깨와 무릎에 새끼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뚫리고, 그곳에서 피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발 늦게 터져 나온, 억눌린 비명.

“끄으으으윽!”

눈구멍을 통해 번득이는 안광이 일그러진 것이 보인다. 이드는 그런 부관주의 눈을 내려다보며 충고했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좀 참아요. 혹시 모를 추가적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니까. 이쪽이 부관주에게도 좋지 않겠어요? 쓸데없는 희망을 품지 않아도 되고.”

실로 위로인지 협박인지 애매하다.

“…..”

기가 막혀서일까. 입을 꾹 닫은 부관주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이드는 그런 부관주를 내려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좋게 좋게 갑시다. 졌으면 패배자답게 승자에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서로 흉한 꼴 더 보지 말자는 겁니다.”

“…..”

하지만 이어진 말에도 대답이 없는 부관주.

그때였다.

플레타가 성큼성큼 다가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명예 후작. 결국에는 생포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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