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1화
528화
‘소드 팰러스의 인간이 검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이 무슨 수치!’
슈슈를 비롯해 과격한 생각을 가진 몇몇 여검사의 머리에서 맴돈 생각이었다.
그리고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 말로 하는 인간도 있었다.
“네가 그러고도 소드 팰러스의 인간이냐. 차라리 두 미녀를 살리고 죽어라! 그게 소드 팰러스를 위한 길이다.”
직전까지 적나라한 실력 비교에 충격을 받아 찌그러져 있던 록의 외침이었다.
에단이 들었다면 당장 없는 검을 만들어서라도 ‘소드 팰러스를 위해서 네가 죽어’ 하면서 달려들었을 말이었다.
그러나 록에게는 다행히도 에단은 그 말을 전혀 듣고 있지 못했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번뜩이는 칼날을 향해 날아가는 상황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정말 록의 외침대로 고기방패가 되게 생겼다.
에단의 눈에는 자신을 보고 퉁방울만 하게 변하고 있는 케마란의 눈만 보였다.
동시에 이드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을 가지고 나올 것을, 고향집으로 돌아온 편안함에 검은커녕 비상용으로 숨겨 다니던 단검도 풀어 두고 나온 스스로가 미웠다.
그때 이드의 목소리가 에단에게 들려왔다.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두드린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수건 터는 방법을 써! 칼 밥 하루 이틀 먹은 애송이도 아니고, 뭘 그렇게 허둥대!”
‘지금 제 상황이면 당황하지 않을 놈이 없다고요, 마스터!’
에단은 속으로 이드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칼이 코앞이다. 그의 마음과 다르게 머리는 이드의 말을 생각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수건 터는 방법이라면 오늘 자신이 록에게 선보였던 방법이다. 이드는 여러 가지 응용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록의 말대로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우지 못한 에단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반등의 기회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것.
에단은 전심전력으로 마음과 머리를 풀가동했다.
그에 따라 그의 초인기 ‘간파의 눈’’이 발동되며 네리베르와 케마란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는 힘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에서 뻗고, 잘리고, 뭉치는 힘이 정신없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본능이 먼저 알았다. 저 흐름이 수건을 털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에단은 생각했다.
‘신관을 믿자!’
실패해도 신관이 충분히 고쳐 줄 것이다.
검에 미친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를 향해 흉흉한 칼질만 해 대는 소드 팰러스다. 사제의 상시 대기는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 칼질을 하고 실려 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단은 만약 자신의 시도가 실패한다면 그분들의 신세를 지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면 이 두 아가씨도 그렇게 처리를 했으면 될 일이었다. 막상 자신의 몸으로 칼이 날아오자, 아가씨들이 다치는 일은 자업자득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에단이었다.
에단은 소드 팰러스에 상주 중인 사제들을 굳게 믿고 케마란의 링스피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부우웅-
신기한 감각이었다. 위기 앞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에단의 손끝은 부드럽고, 느긋하게 링스피어의 칼날에 가 닿았다. 분명 차갑고 딱딱한 쇠의 감촉이 느껴져야 할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에단은 자신의 손가락과 칼날 사이에 구름같이 푹신하고 끈끈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 내공이다!’
에단은 내공의 힘이 뭉툭하고, 날카로우며, 강맹하고, 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내공이 이렇게 끈끈하고, 푹신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잠시 새로운 감촉을 즐긴 손가락이 바로 떨어져 나갈 테니 말이다.
그것은 귀족가 아가씨의 손을 만지고 손목이 잘리는 것보다 더 억울할 것 같았다.
‘수건을 털 때 여기서 어떻게 했더라!’
에단은 생각했다. 몸은 그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 에단이 자신의 몸이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이, 그의 몸은 내공을 통해 링스피어의 힘을 끊이지 않고 끈끈하게 받아내어, 균일하게 퍼트리고 휘몰아 떨쳐 내며 뻗어냈다.
떠러렁!
에단의 세 손가락이 링스피어를 두드리며 맑은 쇳소리를 냈다.
동시에 케마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마치 거인이 링스피어를 잡아당긴 듯 뒤로 튕겨 날아간 케마란은 손끝을 시작으로 팔꿈치까지 저릿저릿 전해 오는 진동에 링스피어를 놓치고 연무장에 떨어졌다.
퉁!
중간에 나가떨어진 케마란과 다르게 에단의 전력이랄 수 있는 힘에 튕겨진 링스피어는 연무장을 앞뒤로 가리고 있는 건물의 벽에 깊게 박혀 들었다.
‘이게…………… 뭐지?”
일단 문제가 해결되자 허공에서 균형을 잡고 연무장에 내려선 에단은 연무장에 쓰러져 끙끙대는 두 아가씨에게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링스피어를 튕겨 낸 자신의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예상과 다른 연무장 위의 결과에 나머지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홀로 서 있는 에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연무장 위로 뛰어 올라갔다.
여검사들은 가장 먼저 네리베르와 케마란을 살폈다. 네리베르는 큰 상처가 없었지만 케마란은 달랐다. 슈슈는 당장 신관을 불렀다. 동시에 여자라고는 하지만 동기들 중 최강에 속하는 두 사람을 손가락 하나로 날려 버린 에단을 열심히 힐끔거렸다.
록은 멍하니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에단을 잡고 흔들었다.
“이런 신기한 새끼. 언제 그런 신기술을 익힌 거냐?”
“어…… 어?”
“어어는 임마. 손가락으로 저 무식한 칼을 쳐낸 거 말이야. 정말 잘 만들어진 기술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나한테는 알려 주는 거지? 설마 손가락에 때를 쌓아서 쳐냈다는 이상한 말은 하지 마라.”
・미쳤냐?”
“크크크.”
멍한 중에도 록의 말도 되지 않는 농담에 에단이 심드렁하니 받아쳤다.
목소리와는 다르게 에단의 눈은 흥분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확실히 신기술 맞지?”
“나도 어떻게 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록은 자신도 잘 모른다고 했지만 내심 확신하는 에단의 모습에 침을 삼켰다.
대륙에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이 전해진 후 그것을 기준으로 수많은 응용 방법이 만들어졌다. 네리베르가 보인 것처럼 신발에 내공을 불어넣는 것에서 시작해서 콧구멍에 내력을 집중해서 냄새를 더 잘 맡는 방법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쓸모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러는 중에 정말 엉뚱하게 죽어 나간 사람도 많았다.
기괴한 기술이 태어나기도 하고, 제법 쓸 만한 기술이 태어나기도 했다.
네리베르가 사용하는 발차기도 그러는 중에 태어난 기술이다.
하지만 쓸 만하다 싶은 것들은 모두 비전으로 남았다. 모두 개발한 사람 개인이나, 가문, 세력의 비전으로 남은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생해서 만들어 놓고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그것을 세상에 내보낼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발이 넓은 록도 들어 알고 있는 기술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 본 에단의 기술은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기술이었다.
그러니 신기술이 맞다.
하지만 에단이 만든 것은 아니야. 만약 그런 생각이나 가능성이 있었다면 날 처음 본 날 첫 마디가 신기술에 대한 것이었겠지. 그렇다면 역시 저 남자가…………
록은 에단의 어깨 너머로 검은 미녀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드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드가 소드 팰러스에 입성한 지 오 일.
록은 마인드 마스터의 이름에 울고 우는 것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X벌. 한두 번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정보부 소속 스미스 클라인 직속의 정보원은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내심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다.
보고를 받았으면 재깍 보내 줄 것이지, 보고를 받으면서 정보를 분석하더니 보고 후에도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거기다 차라리 시선이라도 따로 돌려 주면 좋은데 자신을 향한 시선도 거둘 생각을 않는다. 감히 까마득한 상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해서 허공을 바라보지만, 그것도 잠깐이지 쉴 곳을 찾지 못한 눈동자가 어지럽기만 하다.
더 골 때리는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상관은 보고자를 눈앞에 새워놓고 머리를 굴리는 것으로 정보부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지옥의 허수아비 형(刑).
스미스 클라인 직속의 정보원들 사이에서는 징벌과 같은 보고 시간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휘청.
어지러움에 정보원의 몸이 순간 기웃했지만, 검은 여우 스미스 클라인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에이, 썅.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내가 이래서 중요 임무는 피하고 싶었다고.
정보원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에 대한 작전이란 말에 혹한 자신의 과거가 심히 원망스러웠다.
사실 클라인 백작으로서는 정보원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보고자를 눈앞에 두고 생각을 이어가면 생각이 끊이지 않고 잡생각이 들지 않아 애용하는 방법일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정보원들이 부르는 ‘지옥의 허수아비’는 제대로 된 이름이었다. 그들이 허수아비가 되어 잡념을 쫓고 있으니까.
스미스 클라인은 정보원의 위로이드의 모습을 투영하며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신기술이란 말이지?’
클라인 백작은 오랜만에 검사로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마인드 마스터의 숨겨진 비전에 대한 것은 그가 이드의 정보를 접하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첫 만남에서 무례를 넘어 도발에 가깝게 이드의 무공 시연을 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드 팰러스가 게일의 존재를 알고, 이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를 내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노골적으로 이드를 경계하고 도발하기로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에게 마인드 마스터의 숨겨둔 비결이 있다면, 과연 관계가 틀어진 상태에서도 자신들이 그 비전을 익힐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은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다.
시간을 믿기로 말이다.
당장은 그의 반발을 사겠지만, 검후의 소드 팰러스라면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그가 가진 비결이 전수될 것이라고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래서 철저하게 이드에 대한 대응은 긴급 대책위만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드가 소드 팰러스 전체에 대한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지만 이렇게 빨리 뭔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지. 에단이라고 했던가? 그자가 그만큼 마음에 들었나? 아니면, 그가 그만큼 친화력이 좋은 건가? 아니지. 의외로 이드, 그자가 노린 것일 수도 있다.’
클라인 백작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어느 쪽이든 쉽게 넘길 일이 아니야’
클라인 백작의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클라인 백장의 방에서는 기어이 정보원 하나가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클라인과 같은 보고를 받고 있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