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35화
1370화
탑주가 죽었다.
세상을 들었다 놓은 초인 마법의 창시자가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 버렸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 탑주의 죽음을 실시간을 파악한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영혼의 관을 배경으로 두고 무서운 전투를 이어 가고 있는 이드와 존 워스다.
두 사람은 탑주의 고개가 떨어지는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혼의 관을 눈에 담았다.
물론 두 사람이 가지는 마음과 생각은 각각 달랐다.
대신 같은 것이 있었으니, 탑주의 죽음에 대한 무게였다.
0.03초.
그의 죽음이 두 사람의 뇌리에 머물다 사라진 시간이었다.
참으로 먼지와 같은 존재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무슨 친분이 있어 마음을 쓸 것인가.
존 워스에게 탑주는 더 이상의 쓸모가 없었다.
이드로서도 탑주는 재활용 불가능한 존재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탑주가 할 수 있는 것은 라미아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니 탑주가 죽는다고 해서 딱히 아쉬울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었다.
하여 이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투를 이어 나갔다.
은빛 검신으로부터 현묘한 검식들이 줄줄이 엮여 나왔다.
쉬쉬쉬쉿!
오감이 인식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공격에 존 워스를 중심으로 화려한 그림이 그려졌고, 존 워스는 그러한 그림을 전력으로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서로의 검식이 얼마나 치밀한가를 겨루던 이드의 눈이 허공의 한 지점을 꿰뚫었다.
‘검력이 무뎌지는 자리? 기회다!’
이드와 존 워스가 공방을 위해 사용하는 공간은 실로 광범위하다.
그곳을 자신의 색으로만 채우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상대의 색을 걷어 내는 동시에 진행하는 건 더더욱.
그렇기에 탄탄하고 구성이 치밀한 검식이 꼭 필요했다. 마치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도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검식에 허점이 없을수록 공간에 채워지는 색은 균일해진다.
만약 색이 균일하지 못하고 얼룩덜룩하다면? 그건 곧 검식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검식의 시전자가 힘의 분배에 미숙하다는 증거였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드가 찾아낸 파탄은 검식의 불완전성이 그 원인이었다.
아무렴, 혼돈의 파편이 힘의 배분에 실패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에 빠져 죽는 것만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는가.
바로 역사다.
혼돈의 파편은 그 거짓말 같은 존재만큼이나 엄청난 능력으로 한순간에 무공을 통달해 재구성은 물론이고, 자신에 맞게 변형하고 발전시키기까지 했다.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당장 이드와 막상막하의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
그러나 그럼에도 채우지 못한 부분이 존재했으니, 바로 시간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역사다. 긴 시간 수많은 사람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세공되어 완성되는 과정.
그것의 부족이 지금과 같은 허점을 만들어 낸다.
인식과 동시에 이드의 검이 움직였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검식의 일부가 형태를 바꿔 검력이 약해진 부분을 두드렸다.
쿠와와와!
채찍처럼 휘어지는 검강의 모습은 무자비한 야수의 발톱 같았다.
야수는 약해진 사냥감의 목덜미를 거침없이 물어뜯었다.
그리고 검식을 박살 낸 야수는 그대로 존 워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릉!
존 워스가 급히 방어에 나섰고, 폭발이 발생했다.
이드는 즉시 추가 공격을 준비했다.
야수의 발톱은 날카로웠지만, 상대는 그 정도로 쓰러트릴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제법 아플 것이다.
구우우-
단전에서 퍼 올린 내공이 중단전에서 맹렬히 가속하자 검강이 맑은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자. 방어냐, 반격이냐.
그에 따라 최적의 카운터를 먹여 줄 생각이었던 이드였지만.
“이런…….”
이런 준비는 허사가 되었다.
이쪽의 꿍꿍이를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존 워스는 ‘흘리기’라는 제삼의 선택을 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저, 저 음흉한 새끼가!’
폭발의 충격파를 역이용하는 그를 보며 이드는 이를 갈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충격파에 올라탄 존 워스가 이동한 자리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어깨 너머 보이는 영혼의 관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존 워스와 영혼의 관이 일직선 상에 같이 놓이게 된다는 말이다.
이대로 직진성이 높고 출력이 큰 무공을 사용한다면 높은 확률로 영혼의 관까지 그 피해가 미칠 것이었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현재 저 영혼의 관 안에서는 라미아에 의한 바이트 타블렛 해체 작업이 한창일 테니까. 그걸 자신이 방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중에 무슨 잔소리를 들으려고.
즉, 그는 지금 영혼의 탑에 큰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존 워스는 이런 사실을 이용해 자신의 공격을 예방했다는 말이다.
물론 존 워스에게도 바이트 타블렛은 중요했다. 그저 상황을 교활하게 이용해 먹고 있을 뿐.
“그 두꺼운 낯짝, 언제까지 가나 보자!”
이드는 박박 이를 갈며 존 워스를 베었다.
절반의 공력을 회수해 출력을 줄인 대신, 감정은 두 배로 담긴 공격.
쩌엉!
그러나 역시 존 워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위력은 되지 못했다.
“하하하. 화가 나는 모양이지?”
마치 놀리는 것 같은 존 워스의 말에 발끈한 이드는 화를 참지 않았다.
분뢰보로 일순간에 거리를 좁혀 초접근전에 들어갔다.
존 워스도 이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드 만큼이나 적극적으로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
이런 둘의 거리는 약 일 미터, 검신 하나의 길이보다 짧은 간격임에도 두 사람의 검은 그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웠다.
검신이 옷 위를 스치고, 피부를 스치는 검강이 소름을 돋게 하며, 검풍에 머리카락이 날린다.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이드는 내심 혀를 차고 있었다.
‘쉽지 않네, 쉽지 않아.’
영혼의 관에서 뛰쳐나올 때까지만 해도 분명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 버릴 요량이었다. 공간이 넓어지면 12대식으로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막상 닥친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이유는 물론 아까와 마찬가지로 온통 금이 간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영혼의 관과, 철저할 정도로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 먹고 있는 존 워스 때문이었다. 동시에 또 하나의 의문이 솟는다.
‘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
어째서 존 워스는 아직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물론 딱히 힘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존 워스가 보이는 모습은 이드가 기억하는 혼돈의 파편급 그 자체니까.
실제로 당장 존 워스의 일 검, 일 검만 봐도 메르시오의 공격과 비교해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본래 타고 태어난 재능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각자가 가진 장기 말이다.
그리고 이드가 알기로, 혼돈의 파편들이 가진 능력은 어느 하나 무공보다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 상황에서까지 굳이 무공을 고집하는가. 그로 인해 방금과 같은 허점이 드러나기까지 했는데.
어쩌면 진짜 존 워스의 주장처럼 90년이라는 시간이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기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이드는 스스로 떠올린 생각을 곧 떨쳐 버렸다.
아무리 봉인되어 있던 시간이 길었다 해도, 고작 90년 만에 바뀌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그렇기에 존 워스의 꿍꿍이가 더욱 의심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이 목적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친절하게 들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드는 답답한 마음을 담아 존 워스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서로의 사선 상에서 영혼의 관이 사라지는 순간.
이드의 검로가 표변했다.
짜자작!
쉬쉬쉭!
그리고 그것은 존 워스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의 가슴 앞에서 두 검로가 충돌하는 찰나, 눈 부신 백색의 빛과 함께 날카로운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출력의 폭등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이드는 마치 족쇄가 풀린 듯 단전에서 퍼 올린 내력으로 대출력의 검강을 무섭게 뿌려 댔고, 존 워스 역시 그에 지지 않는 검의 요새를 높이 세워 올렸다.
쿠콰콰쾅!
그 모습은 마치 참았던 숨을 토해 내는 듯했다. 앞선 그것보다 더욱 격렬하고 거칠었다.
덕분에 그로 인한 주변의 피해 역시 늘어났다.
사실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된 직후 그 주변의 모든 물건이 부서지고 날아가, 남아 있는 건 진작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언제나 말 없는 땅이 찢기고, 파헤쳐질 따름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오직 영혼의 관 하나뿐.
그랬기에 이드도 온 힘을 다해 최대 출력의 검강을 뿜었다.
“그만 죽으라고!”
다만, 그에 담긴 감정이 조금 과했던 탓일까.
쩌엉!
공격과 공격이 상쇄되며 발생하는 충격파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로 튕겨 나갔다.
그 방향은 그야말로 제각각.
다행히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일행들을 향한 충격파는 없었지만.
콰르릉!
그중 일부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영혼의 관 하부를 두드려 파괴하고 말았다.
-이 바보!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동시에 들려오는 라미아의 목소리에 이드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사고는 일어난 뒤였다.
주춤하기는 존 워스 역시 마찬가지. 그의 입장에서도 아직 영혼의 관은 붕괴되어서는 곤란할 테지.
하지만 1층에서 3층까지, 건물의 좌측 벽면이 뻥 뚫려 버린 영혼의 관은 이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울고 있었다.
이드는 즉시 라미아를 향해 말했다.
-거기 무너지기 전에 당장 탈출해! 바이트 타블렛 같은 건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까 그냥 버려!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이 되든 아니든, 거기에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초인들이다. 결코 라미아의 안전보다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급히 외치던 이드의 눈에, 막 영혼의 관을 향해 몸을 날리는 존 워스가 들어왔다.
“어딜!”
그의 목적이 바이트 타블렛인 것은 뻔한 일이지만, 자칫 그 과정에서 라미아가 다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해서 이드는 단숨에 존 워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대치한 그 순간.
콰콰콰쾅!
힘없이 기울던 영혼의 관이 결국에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파아아악!
무너진 영혼의 관에서, 녹색의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