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37화
1372화
난데없는 급발진에 모두가 그를 돌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올라의 눈은 저 멀리 하늘까지 뻗어 올라간 바이트 타블렛만을 향할 뿐이다.
그냥 두었다간 이드의 전장을 가로질러 달려갈 기세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 거야! 저 미친놈 빨리 잡지 않고!”
“넷!”
버럭 소리치는 스폴에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비올라가 먼저 움직이긴 했지만, 그를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순식간에 두 팔을 잡혀 허공에 매달린 비올라.
반사적으로 몸부림을 치지만, 소용없다.
마법사가 기사를 육체적인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건 성별 이전의 문제다.
“놔! 놔! 빨리 놔!!”
“아, 가만 좀 있어!”
“일단 진정 좀 해봐!”
“너희하고 이야기할 시간 없어. 급하니까 빨리 놔!!”
움직임을 제압당한 비올라는 기사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온몸을 흔들었다. 그를 잡은 기사들도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막말을 들었으나, 이미 상대가 눈이 돌아간 것을 알기에 딱히 무어라 하지 쓰지 않았다. 조금 마음에 담아 두기는 했지만.
그리고 이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검후가 조용히 혀를 찼다.
“마법사답게 평소 행실이 정상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이번엔 완전히 눈이 뒤집혔군. 뒤집혔어.”
“……죄송합니다.”
“어머? 네가 왜?”
본인을 대신한 쉴라의 뜬금없는 사과에 검후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다.
입을 꼭 다문 쉴라.
검후의 질문에 침묵하다니. 평소의 그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쉴라의 귓가가 살짝 붉은 것 같다.
“우후후.”
검후는 묘한 웃음을 흘릴 뿐, 아끼는 아이를 추궁하지 않았다.
배려는 아니다. 그저 나중에 좀 더 철저히 파헤쳐 주려는 것일 뿐.
“힘내요.”
그리고 이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일리나는 조용히 쉴라를 응원했다.
그렇다고 그녀를 도울 생각은 없다. 그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가족인 이드와 라미아뿐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쉴라의 지원군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점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면 냉큼 검후 편에 붙었을 스폴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아주 그냥 지랄 발광을 하는구나, 조용히 하지 못해!”
“너희가 날 잡고 있는 게 문제잖아!”
“그건 네가 달려 나가니까 그런 거지! 저기가 어디라고 뛰어가? 명예 후작님의 싸움에 방해가 되면 어쩌려고!”
“싸움엔 관심도 없다고!”
버럭버럭.
서로를 향해 핏대를 있는 대로 세우고서 소리친다.
마법사와 기사의 모습으로는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으으,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냐고.
때문일까. 어쩌다 그 중간에 놓이게 된 두 기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유를 말하라는 스폴의 채근과 우선 놓으라는 비올라의 고함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이래서야 끝이 나지 않겠구나. 스폴 대신 네가 한번 물어보렴.”
“제, 제가요? 하지만 저래서야 누구 말도 들을 것 같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냥 기절시켜 버리는 것이………….”
검후에 등을 떠밀린 쉴라가 주춤하며 의견을 내 본다.
과격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괜찮지만, 갑자기 필요해질지도 모르잖니. 자, 자. 어서.”
이젠 별로 쓸 만한 정보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초인 마법과 미완의 마탑에 대해선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비올라였으니 검후의 말도 틀리지 않다.
그렇게 등을 떠밀린 쉴라가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존재는 확실히 대단해서 큰 소란 중에도 그녀를 향한 시선들이 있다.
그 때문일까. 이런 상황을 만든 비올라를 향한 쉴라의 목소리는 높고 엄격했다.
“비올라 마법사! 마법사라면 마법사답게 이성적으로 설명하라! 그대의 고함에 겁먹을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끄덕끄덕.
그녀의 말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인다.
비올라의 실력이 좋은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보다 약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기사와 초인을 막론하고 아무도 없다.
이런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아니면 쉴라의 목소리가 꽉 막힌 귀를 때린 것일까.
비올라가 바이트 타블렛을 바라보더니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쉴라는 그 모습이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명예 후작의 싸움을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소. 제정신이라면 저 싸움터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지.”
“아니기는! 아까 눈 돌아가서 달려 나간 사람이 누군데.”
“스폴.”
스폴을 조용히 시킨 쉴라가 비올라에게 계속하라는 듯 눈짓했다.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하나뿐이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하게 된 최고 등급의 마나 고물질화 현상을 직접 기록, 관측하고 싶다는 거요.”
“마나…… 뭐요?”
“마나 고물질화 현상! 그것도 최고등급! 이건 마법사라면 누구라도 참을 수 없는 일이오. 내가 빠르긴 했지만, 다른 마법사들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거요.”
진짜 그런가?
세상 당당한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플레타 부대 소속의 마법사들을 향했다.
갑자기 자신들을 향한 시선이었지만 마법사들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열망이 가득했다. 허락만 해 준다면 당장이라도 비올라와 함께 달려 나가고 싶은 얼굴들.
이 정도면 굳이 입으로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저 친구들도 혹시 미쳐 날뛰는 거 아닙니까? 미리 잡아 둘까요?”
“……일단 기다려 봐.”
비올라의 폭주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던 오탄은 난감해졌다.
남의 집 불구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도 옮겨 붙어 큰불이 나기 직전이었던 것이 아닌가.
‘난감한데.’
일단 비올라의 말을 좀 더 들어 볼 생각이긴 하지만, 어쩌면 부대 소속의 마법사들에 대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마법사들의 지적 호기심은 하지 말란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마침 비올라의 입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참이었다.
“그 마나 고물질화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이 중요한 때에 난리를 피울 정도로?”
“흐흐. 나 정도면 점잖은 편에 속하는 거요. 만약 전쟁터 한가운데, 신이 강림했다고 생각해 보시오. 신관들의 반응이 어떨 것 같소?”
“……”
순간 떠오른 난장판에 쉴라는 답을 포기했다.
신의 강림이라니.
서로를 죽이기 위해 눈이 돌아가 있는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둘째치고, 신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미쳐 날뛸 것이 분명했다.
다른 건 몰라도 비올라의 반응보다 더 극적일 것은 확실하다.
“마법사에게 저것이 신과 같다는 거로군요.”
“흐흐흐, 틀렸습니다. 최고 등급의 마나 고물질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신의 강림입니다. 신의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순수하고, 또 고도로 압축된 마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저기 있는 에메랄드 기둥은 신의 강림과 같은 등급이라는 말입니다.”
“……저 에메랄드 기둥이 신이라는 말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닙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건, 현상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겁니다. 동시에 저것과 관련된 고차원의 마법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으음.”
쉴라는 순간 혼란이 왔다.
비올라의 폭주를 마법사가 가지는 평범한 지적 호기심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정답이었다.
그런데,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신의 강림과 동급이란다. 이건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마법사들은 신관이 아니지만, 신의 강림을 목격한다면 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과연 비올라의 폭주도 납득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가만히 참고 있던 플레타 부대 소속의 마법사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은 본능과 같은 지적 호기심을 어떻게 참았을까. 바벨 소속으로서 훈련이 잘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폭주 중인 비올라는.
과연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을까?
쉴라는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참을 수 있는 종류의 호기심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비올라의 설명을 들은 오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되겠다. 우리 마법사들도 일단 묶어라. 여기서 혹시 저 에메랄드 기둥에 관심이 1도 없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
손을 드는 마법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다 묶어라.”
쉴라는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비올라를 살폈다.
자신의 요구에 차분히 설명을 했으니, 그 사이 혹시 흥분기 가셨을까 기대했지만.
그러긴 개뿔.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꼭 지금 관측해야겠습니까?”
“지금이 아니면 평생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겁니다. 신이 강림하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습니다.”
당연하다.
신의 강림은 각 교단의 성서에도 겨우 한 번 언급될까 말까다. 작은 교단의 경우는 계시는 있어도 신이 강림한 기록도 없다.
“그래서, 비올라 마법사 말대로 저 전장을 뚫고 접근할 수 있겠어요? 운이 좋아 접근을 해도, 전투의 여파를 견딜 수 있겠어요? 호기심보다 목숨이 먼저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쿠콰콰쾅!
동시에 쉴라의 말에 힘을 싣듯 산 아래서 폭발이 일어나며 대기를 타고 충격파가 전달되어왔다.
위험하진 않지만, 옷자락이 힘차게 날린다. 이만큼 떨어져 있는데도 이 정도인데, 바로 옆에 있는 바이트 타블렛이라면 어떨까.
굳이 확인할 필요 없이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그에 비올라도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쉴라는 나름 기대했다.
과연 자신의 말을 이해해 준 것일까.
하지만 아니었다.
“당연히 목숨보다는 마법입니다. 이 하찮은 목숨으로 진리의 파편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
“단장. 점혈할까요?”
안 된다. 도저히 말을 들어 먹을 태도가 아니다.
질끈 눈을 감은 귓가로 스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필요하면 그때 깨우면 될 것 아닌가.
쉴라의 마음이 그렇게 기울 때였다.
“너는 아직 사람을 다룰 줄을 모르는구나. 비켜 보렴.”
이쪽과 전장을 번갈아 보던 검후가 일리나를 통해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비올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만 들리도록 몇 마디를 속삭였다.
그녀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비올라의 표정이 확연히 변하기 시작했다. 입이 헤벌레 벌어지는 것이.
“어때. 이제 좀 진정할 마음이 드나?”
“이미 아까부터 소란을 벌였던 것에 대해 반성 중이었습니다. 소란을 떨어 죄송합니다. 얌전히 있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꾸벅 허리를 숙이는 비올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검후가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쉴라는 그 모습에 궁금해 물었다.
“도대체 어떤 말로 저 고집을 꺾으신 건가요?”
“별거 아니야. 돌아가면 우리 단장과 2박 3일 데이트를 보내 준다고 했지.”
“……”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