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98화
1433화
검후에 이어 이드의 시선도 코랄을 향했다.
짧은 침묵.
그 무언의 압박에 코랄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 들었고, 미리 준비한 답안들을 잊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중에 검후의 입술이 움직였다.
온다.
“잘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내가 아는 마르텔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기는 해도 근본이 솔직한 인간이다. 이런 지경에 와서 꿍꿍이를 숨길 성격은 아니지. 하지만 어쩐지 명예 후작의 말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사실이다.”
“…….”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많은 답안을 준비한 코랄도 차마 동의를 구하는 듯한 말에는 답하지 못하고 눈길을 피하고 만다.
검후가 그럴 줄 알았다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너는 이런 내 의심을 풀어 줄 답을 가지고 왔느냐?”
“우선…… 크흠..
꼴깍.
즉답을 내어놓으려던 코랄이 혀가 꼬인 듯 헛기침을 했다.
나름 말재주가 있다고 자신하는 그였지만, 막상 검후를 상대로 재주를 부리려니, 혓바닥이 굳어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긴장으로 인해 식은땀이 흘렀다.
이 순간 자신이 내놓는 이 대답이 임무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대목임을 감지한 것이다.
굳이 애써 태연해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긴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부자연스러운 일.
“우선 두 분의 그와 같은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며, 오히려 그에 대해 부정할 수 없음에 먼저 황공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러나 검과 하늘에 맹세코 마르텔 경이 바라는 것은 명예로운 마지막일 뿐, 결코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기사들을 끌어모으고, 탈출을 준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검왕과 빈 기사단의 계획. 마르텔의 의도는 아니었다.
정확히 따지면 그는 어디까지나 이용당하는 입장이다.
특이점이라면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런데도 협조 중이라는 정도일까.
“물론 마르텔 경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제가 비록 마르텔 경의 전언을 가지고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르텔 경의 측근은 아닙니다. 저 또한 참혹한 죄인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저 한 명의 기사일 뿐입니다. 이틀 전까지는 아무런 직책도 없었습니다. 모종의 계획이 있어도 그걸 알 위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디 검후께선 이 어리석은 놈의 입장을 살펴 주시옵소서.”
코랄은 한껏 우울한 목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심을 다해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
그러나 당사자는 입이 바짝 말랐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었는데, 과연 자신의 말이 먹혔을까.
사실 생각 같아서는 전부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 마르텔의 전령으로 왔다.
마르텔의 전언은 용감한 죽음. 그 속에는 당사자인 마르텔뿐 아니라 전령인 자신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연 그런 전언을 아무나 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살고자 발버둥 치고 있는 쭉정이들이라면 온몸으로 거부할 것이 확실했다. 다시 말해, 이 전언은 아무나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인간이 마르텔은 결백하다고 주장해 봐야 먹힐 리가 없다.
그리해 30% 정도의 진실로 거짓을 가린 것이다.
과연 자신의 이런 노력이 통했을까.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코랄의 고막을 가장 먼저 때린 것은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비웃음의 주인은 이드였다.
“하하. 지가 죄인임을 안다는 놈이 스스로의 입장을 살펴 달라니. 검후님, 굉장히 웃긴 놈이지 않습니까?”
“하아. 고개를 들어라.”
뒤이어 짧은 한숨을 동반한 검후의 명령.
그에 고개를 들던 코랄은 자신을 향한 검후의 눈빛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 잘못됐구나.’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났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였다. 검후의 심기를 거스를 일은 오로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말에 실수는 없었다. 허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허점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차피 검후도 당장 확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스스로의 생각이 틀린 것이 확실해 보이지 않는가.
“……”
“네 주장은 잘 들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기사가 아니라 정치꾼 같구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공허한 말만 뱉어 내는, 밥버러지 같은 정치꾼 말이다.”
“부, 부디 살펴 주시옵소서. 진실로 제 말엔 거짓이 없습니다.”
재빨리 고개를 숙인 코랄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기사가 아니라 정치꾼이란다. 밥버러지란다.
설마 검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런 평가를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겨우 욕설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는 검후 하나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명예 후작 또한 그러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심증이 아니라는 뜻.
“마르텔 경의 전언에는 한 점 거짓이 없습니다. 이미 소드 팰러스의 죄인들에는 그러한 여력이 없음을, 감히 두 분을 막아 낼 힘이 없음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재차 목소리를 높이는 코랄.
하지만 고개를 숙인 그는 보지 못했다.
그를 향한 검후의 눈빛이 단순히 호의적이지 않음을 넘어,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눈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그런 변화를 처음부터 보았다면 숨이 막혀 질식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무튼, 검후는 이런 코랄과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에 따라 상황을 지켜보던 스폴의 손이 자연스럽게 검으로 향했다.
감히 주군께 거짓을 고하고 심기를 어지럽혔으니, 그 죄를 물어 목을 잘라 버리려던 것.
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 전에 이드가 먼저 마차 밖으로 나섰다.
“나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일어서라.”
경고를 담은 이드의 말에 스폴은 검에서 손을 뗐고, 코랄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드는 코랄을 다시 살폈다.
차분한 인상에 믿음이 가는 얼굴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피면 보인다. 단순히 이성적임을 넘어 뱀처럼 번들거리는 차가운 눈이.
이드는 이런 눈을 한 인간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적의를 보인다면 인간적인 호감이라도 가질 수 있는데,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 유형은 혐오밖에 생기지 않는다.
“진심을 믿어 달라 했는데, 믿음이란 신뢰에서 나오는 것. 어떤 이유가 있어 내가 너를 신뢰해야 하는가? 답할 수 있나?”
“……”
당연히 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그런 거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네 말을 믿어 달라면 나와 검후가 믿어 주어야 하나? 배신자의 말을? 그것도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거짓을 입에 달고 있는 쓰레기의 헛소리를?”
“거짓이…….”
“맞아. 우리에겐 네 거짓을 가려낼 방법이 있다.”
“……!!”
‘어쩌면’ 하던 의심이 확인되는 순간, 코랄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떠졌다. 이번에는 감정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놀라 버린 것이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역시 이런 유형은 진실 앞에서는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하기야 저놈이 무슨 수로 짐작이나 했을까. 마차에 하이엘프가 함께 타고 있음을 말이다.
그의 말에 거짓이 담기는 순간, 일리나가 그 사실을 알려 왔다. 다시 말해 코랄이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펼쳤으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얼마나 가증스럽게 보였겠는가. 검후가 그에게서 눈을 돌려 버린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소드 팰러스에서 배신자가 나온 것에 더해서, 이런 뱀 같은 물건이 나왔으니…………….’
아무렴 그녀라고 소드 팰러스의 기사들이 하나같이 기사도에 충실한 올곧은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력 투쟁을 위한 투기장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 황궁에서 자란 황녀이니.
인간이 어디까지 추악할 수 있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믿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하, 하지만 제 말은 사실……..
“그래.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었지. 어쩌면 속을 뻔도 했다. 네겐 불운이겠지만.”
진실을 가려내는 방법은 복잡하다. 사전에 준비해야 할 과정도 많다.
이를 간편하게 줄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는 코랄과 같이 진실과 거짓을 섞어 놓은 주장에 대해서는 구별이 어렵다.
하지만 하이엘프에게는 이런 복잡한 과정이 필요가 없다.
그들에 있어 거짓이란 순리를 거스르는 잡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분 나쁜 소음은 듣고 싶지 않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계속해도 좋다. 좀 더 자세한 사실은 새로운 손님들의 말을 들어 보면 자연히 밝혀지지 않겠나.”
그렇게 이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은색 기사단이 열어 준 길을 따라 나타난 인물은 전부 네 명이었다.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인물은 이드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니, 이드뿐만이 아니었다.
소드 팰러스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다. 그가 있기에 자신들이 먹고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코랄 역시 마찬가지.
“거, 검은 여우…….”
“호? 그리운 별명이로군. 너희들에겐 여전히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지?”
코랄을 향해 별명 그대로 여유처럼 교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남자는 바로 클라인 백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