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11화
“무슨… 큰일이라도 터진 건가? 갑자기 없던 가디언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고 말이야.”
“우선은 가까이 가봐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을 빨리 했다. 가디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자 세르네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셨죠?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니까, 제가 각자 흩어질 곳을 정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 일 앞 열에 계신…..”
이미 본론은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세르네오는 모인 가디언들을 몇 명씩 묶어 각자 흩어질 곳을 지정해 주고 있었다. 세르네오를 잠시 바라보던 이드는 주위에 있는 가디언들을 쭉 돌아보다 그 중 식사 때 식당에서 몇 인가 마주친 덕분에 안면이 있는 가디언을 보고는 그에게 상황 설명을 부탁했다.
“아, 자네 왔나? 요즘 매일 공원으로 나가서 논다지? 역시 짝이 있는 사람은 여유 있어 좋구만.”
“헛, 그게 짝이 있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데… 무슨 일 이예요? 아침에 나갈 때만 해도 한산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모이다니, 무슨 큰 일이라도 터졌나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이렇게 모인 걸 보면 무슨 일이 곧 터지긴 터질 것 같기도 하거든.”
그의 말에 라미아가 답답하다는 듯 대답을 재촉했다.
“무슨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모여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신단 말이에요?”
조금은 날카로운 라미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조금은 능청스런 모습의 가디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앞에서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않는 여유 만만한 사람이었다.
“난, 또 무슨 소린가 했네. 너희들이 뭘 잘 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갑자기 가디언들이 모여든 것하고, 지금 여기 세르네오가 가디언들을 불러모은 건 전혀 다른 일 때문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란 말이지.”
이드는 그의 말에 라미아와 슬쩍 눈을 마주쳤다. 아마 그와 자신들이 한 말의 핀트가 약간 어긋났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지금은 무슨 일 때문에 모여 있는 거예요? 언뜻 보기에도 세르네오는 상당히 급해 보이는데….”
“뭐, 급하게도 생겼지.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잃어 버렸으니까. 쯧, 그러게 애는 또 왜 데리고 와서는….”
“애… 애요?!?!?!”
이드와 라미아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성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짓눌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애라니… 애라니…. 설마, 세르네오에게 애가 있었단 말인가? 두 사람은 이어지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누, 누구 아인 데요?”
“누구는 누구야? 당연히 본부장님 애지.”
“하… 하지만 나이 차를 생각해 봐도… 도대체…”
이드는 언뜻 놀랑 본부장을 생각해 봤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세르네오와의 나이 차는 열다섯에서 열여덟. 더구나 지금 세르네오의 나이와 아이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열여섯에 애 엄마가 됐다는 말이 아닌가. 라미아도 이드와 같은 계산을 했는지 두 사람은 똑같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 정도 나이 차가 어때서? 가까이 서 찾아도 더 나이 차가 많은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드는 그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정도 나이 차이야 찾으면 많기는 하다. 이드가 살던 시절엔, 또 그레센에선 그보다 나이 차가 더욱 더 심한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열여섯에 애를 낳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이다. 헌데 이 앞의 이 사람은 그게 어때서 하는 표정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이드보다 라미아는 더욱 충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세르네오가 애 엄마였다? 이드는 꽤나 정신적 충격이 심한 듯 한 라미아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저희도 돕기로 하죠. 그런데 아…. 이는 어떻게 잃어 버렸는데요? 그리고 생김세는요?”
“잃어버리긴 여자들끼리 정신없이 수다 떨다 그랬다더군, 참나, 얼마나 할 말이 많으면 애가 없어지는데도 모를 수 있는 건지…. 좌우간 가디언 본부 주위에 있을 것 같다고 하니까 찾아 봐야지. 내가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녀석 빨간 머리에다가 빨간 눈을 하고 있지. 얼굴도 꽤나 예쁘장하게 생겨서는 크면 여자 꽤나 울리게 생겼더군. 옷은 아래위로 하얀색과 자주색 옷을 입었다고 했었어. 그런데…. 자네 등 뒤에 업고 있는 건 뭔가?”
이드는 그 말에 그제서야 등에 업고 있는 디엔이 생각났다.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순간적으로 등 뒤에 업고 있던 디엔이란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드는 슬쩍 몸을 비틀어 디엔을 보여 주면 말을 이었다.
“아, 길을 잃었다고 하길래 데려왔어요. 엄마하고 같이 왔다가 길을 ….. 잃…….. 어…..”
쭈욱 말을 이어가던 이드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 곱슬머리에 붉은 루비 빛 눈동자와 귀여운 얼굴. 거기다 남자 옷인지 여자 옷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하얀색 상의와 자주색 하의.
“어이! 부본부장. 여기 애 찾았어!!”
잠자는 아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식하게 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덕분에 주위의 시선이 순식간에 이드들에게로 모여들었다. 그 시선 속엔 라미아의 시선도 섞여 있었다. 그냥 볼 땐 마냥 귀엽기만 했지만 세르네오의 아이라고 생각하니 그 느낌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들을 뒤쫓아 높고 날카로운 평소 같지 않은 세르네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정말이예요? 정말 디엔을 찾은 거예요?”
그렇게 소리친 세르네오는 날 듯 이 이드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 사이 두 번에 걸친 커다란 목소리에 이드의 등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디엔이 옹알거리며 슬그머니 눈을 떴고, 그 순간 그 앞으로 세르네오가 다가와 있었다.
“디엔…. 디엔, 너 어디 갔었니.”
“우웅…. 누…. 나?”
“그래, 누나야. 네가 없어지는 바람에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걱정을 했다구.”
이드는 자신의 등에서 세르네오에게로 건너가는 디엔을 바라보며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누나라니? 또 엄마라니? 분명히 세르네오가 디엔의 엄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의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되는 양 껴안고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에게 당장 뭐라고 물을 수가 없어 이드와 라미아는 한 쪽에서 두 사람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찾던 아이가 돌아 온 것을 안 가디언들은 하나 둘 다시 가디언 본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쯤 충분히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었는지 그제서야 떨어진 세르네오가 디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드와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이 녀석을 찾았다며? 이 개구장이 녀석이 어디까지 갔었던 거야?”
“내가 이드님과 항상 나가는 공원. 거기까지 개를 쫓아 왔다고 하던걸?”
세르네오는 라미아의 말에 쓰다듬고 있던 디엔의 머리를 꾹 누르며 헝크러 뜨렸다.
“이 녀석. 거기에 있으니까 찾지 못했지….. 쯧, 아무튼 고마워. 언니가 이 녀석을 잊어 버려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거든.”
라미아는 그 대답에 방금 전 자신들의 말에 대답해 주던 남자를 힐끔 바라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그럼 네가 이 애 엄마는 아니란 말이네?”
순간, 디엔의 머리를 쓰다듬던 세르네오의 손이 정지 필름처럼 그대로 멈추어 져 버렸다. 그런 세르네오의 얼굴에선 그게 무슨 소리냐는 강한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라미아는 그녀의 표정에 어떻게 된 사정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이 한 남자에게 몇 일 동안 병석에 드러눕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게 된다는 사실도 모른 체 말이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이 내가 애 엄마라고?”
왠지 으스스하게 흘러나오는 세르네오의 목소리에 그녀 옆에 있던 디엔이 슬그머니 이드와 라미아 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르네오의 손엔 어느새 뽑히지 않은 연검이 풀어져 들려 있었다. 다음 순간.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남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은색 환영에 자지러드는 듯한 비명을 내 질러야만 했다. 기절할 때까지 두드려 맞은 그는 병실에서 정신을 차리고서 그의 친구에게 자신이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시집도 가지 않은 꽃다운 소녀에게 치명적이고, 변태적인 소문을 냈다는 퍼트렸다 이유 때문이라고. 물론, 전혀 알 수 없는 그 내용에 그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기절시키고서야 채찍처럼 휘두르던 연검을 거두어들인 세르네오는 연검을 허리를 따라 휘둘러 한 번 만에 허리에 다시 매달았다. 그 모습에 아이의 정서를 생각해 디엔의 눈을 가리고 있던 이드는 이유 모를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디엔을 데리고 부본부장실로 돌아간 이드와 라미아는 그곳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디엔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디엔을 보자 눈물을 주루륵 흘리며 아이를 꼭 껴안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디엔과 붕어빵이라고 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 눈에 모자지간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뭐….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인 놀랑 본부장이라면 같이 서 있더라도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누구나 했을 일인 걸요. 그러니 이제 그만하세요. 너무 그러시면 저희들이 부담되거든요.”
거듭되는 감사 인사에 라미아가 정중히 말을 이었다. 다시 잠든 디엔까지 합해 다섯 사람은 부본부장실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디엔의 어머니는 처음 이드와 라미아 두 사람이 디엔을 찾아 왔다는 소리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렇게 중간중간 감사 인사를 해 오는 것이었다. 뭐, 충분히 이해는 갔다. 아이를 잃어 버렸던 어미가 다시 아이를 찾았으니 그 마음이 어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계속되는 인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었다. 이드는 그런 디엔의 어머니를 바라보다 화제를 바꾸려 세르네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가디언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든 거야? 우리가 아침에 나설 때만 해도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무슨 일이야?”
“그게 말이야…. 우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조사는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요즘 정부와의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해.”
이드는 그녀의 말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부와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조사에 착수하는 그 순간부터로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이제 와서 왜 갑자기…. 더구나 그것과 지금 이곳에 모인 가디언들은 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세르네오의 말은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제 여기 언니가 있던 리옹 쪽에서 우리가 조사하던 일에 대한 단서가 잡혔거든.”
순간 이드와 라미아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단서라면?”
“리옹 도심 한 복판에 세워진 용도를 알 수 없는 지하 연구실과 그 연구실 한 구석에서 발견된 디스켓이지. 특히 그 디스켓에는 한 사람에 대한 모든 제반 사항들이 기재되어 있었어. 가디언이 아닌 보통의 자료에서는 들어 있을 이유가 없는 그 사람이 가진 특수 능력에 대한 자료까지 아주 자세하게 말이야.”
“와우~ 그럼 그건 그냥 단서(端緖)가 아니잖아. 그건 증거(證據) 아닌가? 그 정도 자료가 있다면 정부 측에서도 아무런 말을 못 할 텐데….”
이드는 세르네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확실히 그 디스켓의 내용만 있다면 상황은 끝난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로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인지 세르네오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내 저을 뿐이었다.
“그게 그렇지가 못해. 그 디스켓에는 결정적인 부분이 빠져 있어. 바로 정부와의 연관성이지. 그 디스켓의 내용과 연구실의 은밀한 위치상 제로가 주장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런 일을 정부 측에서 했다고 할 만한 증거가 없거든. 막말로 누군가 한 사람의 가디언에 대해 스토커에 가까운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조사해서 그 내용을 거기 담아 가지고 있다가 잊어 버렸다고 해도 할 말 없는 거거든.”
“그럼 그건 별 무 소용인 거잖아. 그리고 그렇게 되면 여기 모여 있는 가디언들은?”
세르네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라미아가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르네오의 얼굴이 좀 더 심각해 졌다.
“그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지. 내가 지금까지 말한 건 표면적인 내용일 뿐이야. 그 속을 보면 상황이 조금 좋지 않게 돌아가는 걸 알 수 있지.”
이드는 그 말에 뭔가 대충 감이 잡히는 듯 했다.
“사실 그 디스켓이 정부와의 연관성만 없다 뿐이지….”
“…. 이미 정부측에서 제로에서 주장했던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이드가 세르네오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 들어왔다. 그러나 세르네오는 화는커녕 오히려 생긋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이드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이랬다. 심증은 완벽한데, 물증이 불충분한 상황. 바로 지금의 상황이 이렇다. 재판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사뭇 다른 것이 지금 서로 충돌하고 있는 세력이 국가와 가디언이라는 사상초유의 거대 세력의 충돌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한 개인이나 작은 회사의 충돌이라면, 양측 모두 쉽게 움직일 수 없을 테지만, 이 국가와 가디언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정확한 증거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거의 증거나 다름없는 단서를 손에 쥐고 있는 가디언인 만큼 정부측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인지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은근히 긴장감을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조사를 중단하라는 압력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는 가디언으로서는 자연히 그 긴장감에 맞서 가디언들을 각 본부에 모아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이곳에 가디언들이 대거 모여들어 있는 이유였던 것이다.
상황 설명을 모두 들은 이드와 라미아는 마지막으로 제로의 움직임에 대해 새로 들어온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부본부장실을 나섰다.
“이번 조사는 그렇다 치고…. 제로는 정말 조용하네요.”
“뭐, 그렇겠지. 저번에 이야기했었었잖아. 아마 이번 조사가 완결되고 각국과 가디언 간에 이상이 생기면 그때서나 행동하겠지. 뭐, 제로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 우리가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니까.”
확실히 저번 세르네오와 함께 이야기해 봤었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깊게 생각해야 할 내용 또한 아니었다. 라미아는 이드의 옆에서 걸음을 옮기며 흘끗 등 뒤쪽 부본부장실을 바라보았다. 디엔이라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 꽤나 기억에 남았다. 나오기 전에 자는 녀석을 한 번 더 안아주고 나온 그녀였다. 라미아는 잠시 디엔의 귀여운 얼굴과 함께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묘한 시선으로 이드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이드니~ 임~”
움찔!!!
이드는 애교스럽게 자신을 불러대는 라미아의 목소리에 순간 온몸 가득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이유 모를 불안감마저 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부르기에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일까. 이드는 불안감 가득한 눈으로 슬그머니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드는 다시 한번 움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이 묘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 두렵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야~~!’
“왜… 왜?”
은근히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디엔 말이예요. 정말 귀엽지 않아요?”
“그, 그래. 귀엽지.”
“껴안으면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데다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걷는 모습이 너무 귀여운 거 있죠. 그 녀석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어땠을까요? 또 조금 더 크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드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불안하게 말 돌리지 말고 빨리 하고자 하는 말을 해 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라미아는 그런 이드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동안 디엔에 대한 이야기를 빙빙 돌려서 해 대고 나서야 뭔가를 말하려는 듯 이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드님.”
“그래, 빨리 말해 봐. 뭐?”
“우리도 디엔 같은 아이 낳아서 키워요. 네?”
“……. 뭐?”
순간 이드는 자신의 귓가를 맴돈 라미아의 말을 듣지 못했다고, 잘 못 들었다고 부정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귓가에 들려오는 라미아의 목소리가 그것이 잘못 들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디엔은 엄마만 닮았는데도 저렇게 귀엽잖아요. 아마 이드님과 절 닮고 태어나면 디엔보다 더 이쁠 거 아니겠어요? 네? 네? 이드니~임. 저 이드님 닮은 디엔같이 귀여운 아기 키워 보고 싶어요.”
이드는 핑 도는 머리에 한 쪽 손을 가져다 대며 가만히 타이르듯 라미아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이드의 목소리는 은은하게 떨려 나오고 있었다.
“라미아, 라미아…. 너, 넌 아이 키우는 방법도 모르잖아. 게다가, 언제 어디로 갈지 또 어느 차원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아이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지금?”
“그러니까 말하는 거죠. 만약 다시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그곳에선 다시 검이 돼야 할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으로 있는 지금 아기를 가져 보고 싶다는 거죠. 네? 네? 이드니~임.”
오, 신이여. 검이 인간으로 있는 지금 아기를 가지겠답니다. 이드는 이젠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억지로 들어 라미아를 바라보던 이드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가디언 본부 저쪽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으아~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몰~ 라!!!”
“아앙. 이드니~ 임. 네? 네~~?”
라미아는 앞서 달려가는 이드의 모습에 입가로 방긋 미소를 뛰어 올린 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꽤나 큰 껀수를 잡아낸 라미아였다.
“아앙, 이드님. 저희 아기요.”
“야, 너 그만 좀 하지 못….. 응?”
상당히 당혹스런 요구를 해 대는 라미아를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쓰던 이드는 어느 순간 눈앞의 건물 안에서 감도는 강한 기운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콰아앙!!
순간 이드와 미리 맞추기라도 한 것인지 강렬한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뭔가 시커먼 덩어리가 건물의 커다란 문짝과 함께 튕겨져 나와 이드와 라미아의 옆으로 나뒹굴었다. 꽤나 두꺼웠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 조각 사이로 누워 있는 검은 덩어리는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가슴을 부여잡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는 덩치 큰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뒤를 이어 날카로운 목소리가 건물 안에서 튀어나왔다.
“자, 다음은 누구지?”
꽤나 익숙한 목소리. 바로 오엘이었다. 이드와 라미아가 서로 밀고 당기며 도착한 이곳은 가디언 본부에 딸려 있는 수련실 건물 앞이었다. 이곳은 영국과는 달리 본부 건물과 수련실 건물을 따로 두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수련실은 단층으로 그 목표가 수련인 만큼 넓이로만 따진다면 가디언 본부 그 이상이었다. 또 이 수련실 역시도 영국의 수련실과 마찬가지로 방음, 방충 기능이 확실히 되어 있는지 한 번도 시끄러운 소리가 가디언 본부 건물까지 들려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오엘이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헌데 오늘은 그냥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지금 땅을 뒹굴고 있는 남자나, 그 남자를 뒤따라 나온 오엘의 목소리를 생각해 볼 때 말이다. 이드와 라미아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수련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두 사람에게선 방금 전까지 아이를 낳자고 장난을 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수련실 내부는 길다란 복도와 같은 형식의 휴게실을 전방에 놓고 마법 수련실과 검 수련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양 수련실 모두 그 입구의 크기가 영국의 수련실보다 세, 네 배는 넓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 넓은 수련실 앞에는 평소 마법 수련실에서 가만히 책만 파고 있을 마법사들이 대거 몰려들어 있었다. 몰려든 마법사들은 한결같이 검 수련실 안쪽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싸움 구경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때에 맞추어 다시 한번 검 수련실 안쪽에서부터 오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소호(所湖)의 주인 될 실력을 입에 올린 건가? 웃기지도 않는군.”
아무래도 소호검 때문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곳 가디언 본부에서는 소호검을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오늘처럼 직접적으로 그것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갑자기 모여든 가디언들 중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실례합니다. 실례. 잠시만 비켜 주세요.”
이드와 라미아는 문 앞을 가로막고 선 마법사들을 헤치며 검 수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가 힘이 없는 마법사들인 데다, 연신 ‘실례합니다.’를 연발하는 라미아의 모습에 스스로 물러나 주는 마법사들 덕분에 쉽게 검 수련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검 수련실 안에는 꽤나 많은 수의 가디언들이 들어서 있었다. 조금 전 본부 앞에 모였었던 가디언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수련실이란 말답게 넓기만 한 이곳은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음에도 전혀 비좁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수련실의 중앙에는 오늘 아침에도 보았었던 오엘이 소호검을 들고서 처음 보는 세 사람과 대치하고 서 있었다. 그 세 사람은 모두 남자였는데, 제일 오른쪽에 서 있는 우락부락한 모습의 한 남자를 제외한다면 그런대로 인상이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은은히 느껴지는 세 사람의 실력도 오엘이 가볍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제일 왼쪽에 서 있는 선한 눈매에 갈색 머리를 가진 남자의 실력은 절대 오엘의 아래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오엘,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움찔.
가만히 서 있던 오엘은 갑작스런 이드의 전음에 놀란 눈길로 조용히 주위를 돌아보다 이드와 라미아의 모습을 잡아내고는 다시 전음을 보냈다.
‘죄송해요, 사숙. 미처 오신 줄 몰랐어요.’
‘괜찮아. 그런데 무슨 일이야? 들어오면서 언뜻 듣기로 소호검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게… 저도 오늘 처음 보는 가디언들이에요. 그런데 조금 전에 들어와서는 제가 수련하는 걸 잠시 바라보더라고요. 사숙의 말대로 기초 수련을 하던 중이라 크게 숨길 것도 없고 해서 그냥 두었더니, 잠시 후에 저희들끼리 모여서 저런 실력에 소호와 같은 명검을 가지고 있는 건 돼지 목에 진주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해 대더라고요. 저도 웬만하면 저도 참으려고 했지만, 모두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통에….’
그래서 못 참고 먼저 검을 들었다는 이야기군. 대충 어찌 된 상황인지 이해는 되었다.
‘됐어, 됐어. 그런데 저 세 사람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건 알고서 검을 뽑은 거냐? 특히 저 왼쪽의 사내는….’
터어엉!
순간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은은한 땅울림이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