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48화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메이라의 엄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물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때 파크스가 다시 시선을 가이스에게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이 녀석 도대체 뭐야? 어이! 당신 동료잖아. 이 녀석 어떤 놈이야? 아까 정말 황당했다구… 세상에 정령을 직접 운용한다고? 기가 막혀서… 야~ 말 좀 해봐…”
그러나 가이스도 뭐라고 설명할 것이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그녀가 묻고 싶은 부분이었다.
“오히려 내가 이 녀석에게 묻고 싶은 거야.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덕분에 살았는데.”
“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넌 명색이 마법사란 녀석이 궁금하지도 않냐?”
“물론, 나도 마법사인데, 그렇지만 급할 건 없잖아? 이 녀석이 일어난 다음에 물어도 되고 어차피 수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구.”
그녀의 말에 파크스는 대꾸하려다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그 시선의 주인은 메이라였다.
그녀는 눈빛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완전히 잠재운 후, 이드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저기 저 앞에 보이는 숲이다… 얼마 안 남았어.”
보크로가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일행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꽤 큰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깁니까? 아저씨가 산다는 숲이요?”
“맞아. 그 괴물 녀석 때문에 좀 늦어졌지만… 어서 가자구. 배도 고픈데 점심시간도 지났잖아.”
보크로의 말대로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 있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 숲을 보며 벨레포의 옆에서 말을 몰고 있던 라일이 벨레포를 바라보았다.
“벨레포 씨, 오늘은 저기서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투도 있었는데… 게다가 지금 움직이기도 어정쩡한 시간이구요.”
“그렇잖아도 그럴 생각이었소. 미안하긴 하지만 보크로 씨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보크로 씨께는 제가 말하지요.”
그렇게 말을 마친 라일은 말을 몰아 일행의 앞에서 타키난, 지아, 모리라스 등과 수다를 떨고 있는 보크로에게 다가갔다.
“저… 보크로 씨.”
라일의 부름에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던 보크로와 그 외 인물들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보크로의 얼굴에는 왜 그러냐는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오늘 보크로 씨 댁에서 신세를 좀 졌으면 하는데요.”
“엉? 그거 우리 집에서 자겠다는 말 같은데… 야! 우리 집 그렇게 넓은 줄 아냐?”
“아니… 그게 아니고 환자들만요. 나머진 노숙하면 되니까요.”
“그럼 뭐… 괜찮지. 마침 빈방도 두 개 정도 있으니까…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뭘~ 생사를 같이 넘긴 사람들끼리… 하하하.”
이드는 메이라가 만들어놓은 조용한 분위기 덕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을 수 있었다.
‘내상이 도졌다. 이대로라면 진기를 운용하지 못 하는 기간이 2개월 정도 더 추가되는데… 제길… 그 괴물 녀석만 아니어도…’
이드는 상당히 억울했다. 자신의 능력을 전부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져버린 것이다.
‘윽! 젠장… 본신 공력의 반이라도 운기할 수 있다면 그 녀석 날려버릴 수 있는 건데… 억울해… 약빈 누이… 나 졌어요…’
그렇게 한참을 투덜거리던 이드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프로카스를 다시 만났을 때 대항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누워서 머리 싸매고 낑낑거리는 동안 마차는 숲속에 들어와 있었다.
“벨레포 씨, 여기서부터는 마차가 못 들어갈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할 겁니다.”
보크로가 벨레포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마차가 가야 할 앞쪽에는 낮게 드리워진 나뭇가지와 꽤 많이 들어선 나무들 때문에 큰 마차가 지나가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보크로의 생각에 동의한 벨레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말에서 내려 도보로 걸어간다. 마차는 이곳에 숨겨두고 각자 말을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시에 따라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려섰다. 메이라와 류나가 마차에서 내렸고, 뒤이어 파크스와 가이스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타키난이 꼬마 여자애를 업었고 라일이 괜찮다는 이드의 팔을 잡고 내렸다. 그러자 몇몇 병사들이 근처의 나뭇가지를 가져와 대충 위장했고, 가이스가 마차에 락(Lock)의 마법으로 문을 잠궈 버렸다.
“이것 봐 라일, 그 녀석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구만. 웬만하면 업고 가라고… 그래도 명색이 생명의 은인 비스무리한 건데.”
“야! 콜, 은인이면 은인이고 아니면 아니지 비스무리한 건 뭐냐?”
라일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콜의 말에 따라 이드를 등에 업었다. 이드도 괜히 미안해서 괜찮다고 말해보았지만 아예 듣지도 않는 듯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앞장설 테니 날 따라오라고.”
보크로는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일행들이 각자의 말을 끌고 뒤따랐다. 숲속은 상당히 조용했다. 이 정도 숲이면 새소리가 시끄러워야 하지만 조용하고 아름답게 들려오는 소리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일행들은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보크로를 따라 거의 길 같지도 않은 숲길을 걷던 일행들은 숲 사이로 보이는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집은 둥그런 공터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주위로는 별로 제구실을 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돌로 된 높이 50s(50cm) 정도의 담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꽃과 야채 등으로 보이는 것들이 심겨져 있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숲속의 집이군.”
모리라스의 말에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반면 일행 중 여성들인 메이라, 가이스 등은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에 상당히 감명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 모든 분위기를 부셔버리는 외침이 있었다.
“채이나, 나왔어!”
꽤 우렁찬 보크로의 음성이 숲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일행들은 집의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두 보크로의 아내인 다크엘프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집의 문이 소리 없이 조용히 열렸다. 그 모습에 일행들은 기대의 눈초리를 더했다. 그러나 이어진 사건에 얼굴이 황당함으로 굳어졌다. 열려진 문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날카롭게 날이 선 단검이 날아든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보크로를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