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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49화


그것도 정확히 보크로를 향해서 말이다.

모두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어서 그런지, 어떻게 해볼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사이에 단검은 보크로의 얼굴과 가슴 쪽으로 날아들었다.

“쳇, 아무리 늦었기로서리 너무하네….”

보크로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날아오는 네 개의 단검을 낚아채 손에 잡았다.

그 모습은 그의 옆과 뒤에 있던 일행들의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이드의 눈에도 말이다.

“저 아저씨, 역시 대단해. 검이 아니라 손으로 다 잡아 버리다니.”

차노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오는 했죠? 집에는 아무 말도 없이 며칠이나 연락도 없이……. 이번엔 그냥 안 넘어 가요~!”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서 말의 내용과 같은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너무 그러지 마…… 여기 손님들도 있는데…”

“응?”

보크로의 말과 함께 집안에서 한 엘프가 걸어 나왔다.

문 앞으로 나선 엘프는 모든 엘프가 그렇듯 상당한 미인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의 엘프처럼 하얀 살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까만 피부도 아니고 보기 좋게 태운 정도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같이 그렇게 좋지 않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키는 보크로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보통의 인간 여성들의 키보다는 컸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초록색 옷이었는데,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상의와 편하고 넓어 보이는 치마였다.

그런 그녀의 허리 부근까지 검은색의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찰랑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에는 아까 날아왔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는 단검이 두 개 들려 있었다.

그녀는 보크로를 보던 시선을 돌려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녀는 일행들을 대충 둘러보고 다시 보크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뭐예요.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사람들을 데려오다니.”

그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일행들도 어색해졌다. 애초에 환영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런 반응이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그럴 것이 이들이 언제 다크엘프가 사는 집에 들를 일이 있었겠는가.

“그거야 사정이 좀 있어서…… 어쨌든 이해해줘….. 채이나……”

30대의 나이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저러는 모습은……. 일행 중 몇몇 곳에서 꼭 다문 입에서 새어나온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당신…. 내가…….. 음?”

거기까지 말을 이어가던 채이나는 말을 멈추고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채이나가 고개를 돌린 쪽은 이드와 메이라, 타키난 등이 서 있던 곳이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이나는 다시 서서히 이드 등을 돌아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보, 무슨…….”

보크로 역시 무슨 일인가 해서 말을 붙여보려 했지만, 채이나가 조용히 하라는 듯 입을 막아 버렸다.

그런 후 그녀는 가이스 등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처음에 그녀가 걸어갈 때 누구를 향하는지는 몰랐으나, 가까워질수록 그 목표가 드러났다.

채이나는 라일에게 업혀 있는 이드의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그렇게 멈춰서서는 양쪽으로만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보크로에게 물었다.

“여보, 앤 누구죠? 인간 같은데……”

이상해하는 듯한 그녀의 물음에 보크로는 멀뚱히 답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맞을 거야. 인간…… 참, 그 녀석 환자야. 대충 치료는 했는데 쉬어야 할 거야.”

“그래요? 특이한 아이네요…….. 애, 너 이름이 뭐지?”

“이드라고 하는데요…”

“그래, 그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니데, 너 인간이니?”

“…….. 예, 인간인데요. 혼혈도 아니고요.”

“그래? 신기하네……. 어떻게 인간한테서 그렇게 정령의 기운과 향이 강하게 나는 거지? 엘프보다도 더 강한 것 같은데.”

이드는 연신 신기하다며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녀를 보며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양손으로 라일의 등에 업혀 있는 이드를 안아 들더니 집 쪽으로 걸어갔다.

“넌, 내가 좀 살펴봐야겠어….. 당신 따지는 건 나중에 해요. 그리고 저 사람들은 당신이 알아서 하구요.”

채이나는 그렇게 말한 후 멍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안겨 있는 이드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은 그대로 열어 둔 채 말이다.

일행들은 황당한 눈길로 열려진 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안 됐다는 듯한 눈길로 보크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보크로는 그런 그녀의 괴팍한 성격에 적응이 된 건지 전혀 개의치 않고 일행들을 향해 되쳤다.

“그럼 이 주위에 노숙할 준비를 하십시오, 다른 곳에 자리 잡지 말고…….. 그리고 아가씨들은 날 따라와요.”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말한 보크로는 발걸음도 당당하지 못하게 오두막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보크로의 뒤를 따라 가이스와 메이라 등의 여성들이 오두막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벨레포 역시 나머지 일행들에게 야영 준비를 명령한 다음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한편, 채이나에게 안긴 채 오두막 안으로 옮겨진 이드는 작은 방의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그리고는 이드의 몸을 여기저기 눌러보기 시작했다.

“저기…..”

“가만히 있어봐…… 내가 보기에도 몸이 별로 안 좋다며…..”

채이나는 한마디로 이드의 입을 막아 버린 후 여전히 이드의 몸을 주물렀다.

그렇게 그녀가 진찰 중일 때, 방으로 보크로와 그를 따라서 몇 명의 여성들이 들어왔다.

“음~ 상처는 다 나았네……. 포션에 마법까지 사용해서 그런지 깨끗해, 그런데……. 이상하게 몸속에 마나가 불규칙한 게…… 뭐지?”

그렇게 말하는 채이나의 말에 이드는 약간 의외라는 듯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지금 채이나가 하는 말은 기혈의 이상이었다.

그것은 중원에서라도 꽤 높은 의술을 가진 이가 아니면 찾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중원도 아닌 이곳에서 이드의 기혈에 있는 이상을 집어내는 사람이 있다니, 이드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애, 너 혹시 무슨 큰 충격 같은 거 받은 적 있니?”

“이드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그런 적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내상이 남아 있고요.”

“역시 내가 진찰한 게 맞네….. 그런데 의외네, 너도 알고 있고…..”

“예, 제 몸 상태니까요. 그리고 얼마 있으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니까 별로 걱정은 없어요….”

“엉? 자연치유? 그런 특이 체질도 있니?”

그때 뒤에서 가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나 흐름의 불규칙이라니요? 무슨 말이죠? 분명히 상처는 다 치료됐는데…”

꽤 걱정스러운 듯한 물음이었다.

“별거 아니야.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보다 당신, 애들 데려왔으면 빨리 방이나 안내하고 부엌에서 저녁 준비나 해요!”

한참 채이나와 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보크로는 채이나의 따끔한 외침에 적잖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알았어….. 아가씨들도 따라와요.”

그리고는 급히 뒤돌아 나갔다.

그런 그를 가이스, 메이라, 이드 등이 안됐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럼 이드야, 좀 있다가 올게….”

가이스의 말에 이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채이나 역시 가이스가 나가는 것을 보며 이드에게 물어왔다.

“그래도 치료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으면 지금 네가 누워 있는 것도 그 치료가 안 돼서 그런 것 같은데………..”

“정확하네요, 그렇지만 치료 방법이 없어서요.”

그러나 그런 이드의 말에 채이나는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엘프는 말이야…… 사람들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물론 이것은 우리 다크엘프에게도 적용되는 일이고.”

“헤, 그럼 정정하죠. 치료 방법이 있긴 한데 엄청 어려워요. 이것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제가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거든요.”

이드의 밀대로였다.

이드의 내상을 완전히 완치시키진 못해도 완치를 엄청나게 당길 수 있는 방법들…..

그것은 바로 단약이었다.

그것도 보통 단약이 아니라 소림의 대환단(大丸丹), 자부금단(紫府金丹), 청령내심단(淸靈內心丹) 등의 영약으로 말이다.

그러나 현재 그런 약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야…… 별수 없이 만들어야 하는데, 이 세계에 단약의 제조에 드는 약제가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거기다 들어가는 것들이라는 게 중원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 거의 포기 상태인 것이다.

“뭔데, 치료 방법이…… 있으면 알려줘….. 나도 좀 알게. 이런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은 나도 모르거든.”

그녀의 말에 이드는 말해도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구자지란(九紫枝蘭)이라는 건데 자색의 풀로 아홉 개의 가는 가지가 뻗어 있어요. 혹시 그런 거 본 적 있어요?”

이드는 별 기대 없이 물었다.

지금 이드가 물은 약초는 자부금단의 핵심이 되는 약초로서, 이것만 해도 중원에서는 엄청난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탈취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드의 말에 채이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있어, 그런데 그걸 그렇게 불렀던가? 내가 알기로는 ‘나인 풀프레’라고 부르는데, 하여튼 있긴 있어. 나도 조금 가지고 있지.”

채이나의 말에 이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니지….. 아직 속단은 일러…’

“그럼, 금황칠엽화라는 건데…… 좀 습하고 더운 곳에 있는 거거든요. 금색에 일곱 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는 꽃인데……”

이드의 말에 채이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 채이나를 보며 이드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벨레포는 채이나에게 인사나 하려고 들어왔다가 두 사람이 열심히 대화하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거실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가이스와 메이라 등이 앉아 부엌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보크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벨레포는 그런 보크로를 보며 자신은 상당히 상냥한 아내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벨레포님, 여기 앉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가이스양.”

그리곤 그도 별말 없이 그녀들과 함께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보크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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