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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58화


토레스는 이미 이드의 신경을 상당히 긁어 놓은 관계로 별 말없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꺙!”

“응”

토레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이드는 위에서 들리는 들어본 듯한 울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꺙!”

다시 한 번의 울음소리와 함께 공중으로부터 무언가 떨어지듯 작은 그리자가 잡혔다.

“뭐…. 뭐야..”

이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우선은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떨어지는 문제의 물체를 손잡았…. 아니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그 물체가 이드의 머리쯤에서 몸을 틀더니 곧바로 이드의 머리께로 내려 앉는 것이었다. 그거시도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꺙!”

그렇게 내려 앉은 녀석은 뭐가 좋은지 이드의 머리에 머리로 짐작되는 부분을 비볐다. 이드는 그 물체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머리에 떠오르는 한 마리를 생각해내고는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설마….레티?”

이드의 말에 이드의 머리를 점령하고 있던 녀석이 대답이라도 하듯이 울었다.

“꺙! 꺙!”

그리고는 여전히 펼쳐져 있는 이드의 손에 그 하얀색의 몸을 얹어 놓았다.

“꺙!”

“헤, 너도 일찍 일어났냐?”

이드는 자신의 손에 내려와 ‘갸를를’ 거리는 레티의 목을 쓰다듬어 주고는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음? 그녀석 혹시 메이라 아가씨가 키우는 트라칸트 아닌가?”

토레스는 이드의 어깨 위에서 매달리듯 앉아 있는 레티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맞는데 왜요?”

“그 녀석 왠만해선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너, 메이라 아가씨를 아니?”

이드는 토레스가 얼굴을 조금 굳히며 물어오자 이 녀석이 왜 이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당연히….. 같은 일행인데 모른다면 그게 말이 않되지…”

“아니 내 말은 메이라 아가씨와 잘 아느냐는 말이다. 그 녀석이 그렇게 따르는 거 보니까 니가 메이라 아가씨와도 상당히 친할 것 같은데…”

‘저 녀석…. 메이라라는 이름에 꽤 민감한 것 같은데….’

“그렇게 친한 건 아니고 몇 번 말을 해본 정도? 그리고 이 녀석은 지가 날 찾아 온 거니까 메이라 아가씨와는 별 상관이 없는 거지… 그런데 당신 왜 그렇게 정색을 하고 난리지?”

이드의 말에 토레스는 자못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어영부영 답했다.

“뭐….. 별건 아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렇게 어색하게 답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며 이드는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큭… 그렇군….. 놀려줄 꺼리가 생긴 건가?’

그렇게 어떻게 놀릴까 생각하며 레티를 쓰다듬는 이드를 이끌고 토레스가 걸어간 곳은 성의 뒤뜰이었다. 오십여 명의 인원이 기합에 맞추어 쇠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어때?”

토레스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드에게 한 말이었다. 그 모습에 이드는 기가 막히다는 투로 토레스를 바라보았다.

“이것 봐, 토레스였던가? 하여튼…… 설마 재밌는 볼거리란 게…… 이 훈련하는 장면을 말한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지금 시간에 뭘 찾아야? 게다가 이건 예고고 정말 볼만한 건 조금 있다 이어질 대무거든…. 그거야 말로 볼만한 볼거리지…”

“대무란 말이지…..”

이드는 토레스의 말에 한참 쇠몽둥이(쇠몽둥이기는 하지만 기본형은 검을 따르고 있는 모양)를 들고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을 잠시 보다가 토레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이드 역시 그를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토레스가 간 곳은 오십여 명의 기사들 앞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세 명의 중년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앉아 있었는데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음? 누구냐… 토레스님”

앉아 있던 인물 중 갈색의 중년 기사가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블.”

토레스의 목소리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역시 일어나 토레스에게 인사를 건넸고, 토레스 역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런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신지….”

“일찍 일어난 김에 기사들이 대무를 하는 것을 이 소….. 년에게 보여 주려고 왔습니다.”

토레스는 소녀라는 말이 나올 뻔했으나 간신히 사과해 놓은 것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았기에 중간에 소녀를 소년으로 바꾼 것이다. 토레스의 말에 세 사람은 토레스의 옆에 서 있는 이드를 보고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했다.

‘그냥 봐서는 소녀인데……’

레이블은 속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토레스를 보며 이드를 눈짓했다. 한 마디로 누구냐고 묻는 것이다.

“여기 이드는 이번에 벨레포 숙부와 같은 일행으로 온 거죠.”

“예? 그럼 벨레포님의 기사…….”

레이블은 심히 놀랍다는 듯이 이드를 바라보았으나 토레스가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숙부님의 기사가 아니라 일행입니다.”

토레스는 일행이라는 말에 유난히 강조했다.

“…아! 용병이구나. 그런데 이런 어린 나이에 용병이라…. 이드라고 했지…. 군(君)은 용병이라면서 뭘 하는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 손으로 어깨에 올려져 있는 레티를 쓰다듬던 이드는 레이블의 물음에 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 정령술과 검을 좀 다룰 줄 압니다.”

“호~ 정령술과 검이라…. 대단하군 그 나이에…. 그럼 정령술은 어디까지인가?”

“중급 정령까지는 소환할 수 있죠.”

이드의 말에 그냥 인사 정도로 묻던 레이블이 눈을 빛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하구만 자네….. 중급 정령이라 그 나이에 그 정도인 걸 보면 자네는 타고난 정령술사인 모양이군.”

“뭘요.”

“그래, 정령술도 그 정도니 있다가 대무할 때 자네도 해보겠나?”

“그래도 될까요?”

“그럼, 어차피 대무인 것을…. 그러지 말고 토레스님 저리로 앉으시지요.”

레이블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들이 앉아 있던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언제 가져다 두었는지 두 개의 의자가 더 놓여 있었다.

레이블은 모두 자리에 앉자 앞에서 한참 무거운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외쳤다.

“자~ 모두 후련을 그치고 대무로 들어간다. 준비하도록.”

“옛!!”

그의 말에 훈련하던 기사들은 검 휘두르던 것을 즉시 멈추고 즉각 대답하고는 연습 중이던 연습장의 양옆으로 물러났다.

“그럼 탄과 이얀부터 시작해라.”

레이블은 기사들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두 명의 기사에게 명했다. 그러자 호명된 두 명은 손에 쥔 쇠 몽둥이 검을 내려놓고 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연습용 검을 각자 하나씩 들고 연습장의 중앙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레이블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서로 예의상의 인사를 주고 받은 후 각자의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서로 검을 한 번 마주치고 뒤로 물러나 각자 자세를 잡았다.

“재밌겠어. 잘 봐, 저 둘은 여기 기사들 중에서도 꽤 상급에 속하는 자들이거든.”

“그래요?”

그렇게 대답한 이드 역시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려 했다. 그때 들려오는 급한 말발굽 소리만 아니라면 말이다.

두두두두두두…….

대지와 부딪히며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대무를 관람하려던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말을 탄 기사가 말을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기사의 팔에는 붉은색의 천이 묶여 있었다.

“이거…. 대무를 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는데…..”

“모두들 오늘 훈련은 여기서 마친다. 각자 몸을 풀고 대기하라.”

레이블 역시 기사들에게 그렇게 명한 후 앞서가는 토레스와 같이 발길을 돌렸다. 이드는 자신의 옆에서 걷는 토레스와 뒤따라오는 세 사람의 조금 굳은 표정에 무슨 일인가 하여 토레스에게 슬쩍 물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었어?”

“…. 넌 모르는 모양인데 방금 온 기사는 수도에서 긴급한 일로 보내는 전령 기사다.
그의 팔에 매어져 있던 붉은 천 봤지? 그게 긴급을 요한다는 표시이지…… 무슨 일인지.”

“긴급한 일이라…… 아나크렌처럼 이 나라도 조용하진 못하군…”

이드 등이 도착했을 때 한 하인이 급히 온 기사를 안내하고 있었고, 집사는 급히 위로 뛰어
가고 있었다. 아마 성주에게 알리기 위해서인 듯 했다.

토레스는 집사가 빠르게 2층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인에게 접대실로 안내되고 있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토레스님….”

토레스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린 하인이 먼저 고개를 돌려 토레스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걷고 있던 기사가 그 하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를 향해 토레스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저는 토레스 파운 레크널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토레스가 자기소개를 하며 본론부터 꺼내 말했다.

“아! 레크널 백작님의 자제 분이셨군요. 저는 황실 기사단 소속의 기사인 크라멜이라고
합니다. 음? 레이블님? 타르님 아니십니까?”

토레스에게 인사를 하던 크라멜이라는 기사는 토레스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제서야 크라멜의 얼굴을 본 두 사람 역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니 자네. 오랜만이군.”

“반갑네. 그런데 무슨 일인가?”

두 사람 역시 인사를 건넸으나 그가 가지고 온 소식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 말에 크라멜을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저도 정확한 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 나머지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지… 이분은 내가 안내할 테니 다른 일은
보도록…”

토레스는 그렇게 말하며 하인을 돌려 보내고 앞장서서 그를 접대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이드는 어떨결에 같이 딸려 가게 되었다.

폭이 3m나 되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한쪽 문이 열리며 접대실의 광경이
들어왔다.
접대실 제일 안쪽에 놓여진 책상과 그 앞에 배치되어 있는 일인용의 큰 소파와
그 양옆으로 놓여 있는 긴 길이의 소파. 그리고 그런 접대실의 바닥에 깔린
기하학적인 무늬의 카페트와 한쪽에 놓여진 책장……. 그리고 소파 사이에 놓여
있는 긴 탁자.
그 외에 접대실의 여지 곳곳에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이쪽으로…”

토레스가 크라멜에게 우측에 놓인 긴 소파를 가리키며 앉길 권하고 자신은
좌측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이드와 나머지 한 명의 기사가 앉고 반대편에 크라멜과
같이 레이블과 타르가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예, 아까 제가 말했듯이 제가 아는 것도 적은 것입니다. 저도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하지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 이 문서에 있습니다.”

크라멜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붉은색의 종이 봉투를 끄집어 내었다.
그 봉투에는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단 라일론 왕가의 문장이
찍혀 있는 봉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내용은?”

“아마….. 전쟁이 있을 듯합니다.”

말은 간단했으나 뒤이어 오는 충격은 상당했다.
크라멜의 옆과 앞에 앉은 이들은 잠시 그가 말한 내용이 주는 충격을
음미하는 듯이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 그들의 놀람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토레스의
옆에 앉아 있는 이드였다.

‘전쟁이라….. 카논이라는 나라 놈들 미친 건가? 두 개의 대국(大國)을
상대로, 아니면 맞는 구석이 있는 건지.’

“그게 무슨 말인가 크라멜, 도대체 전쟁이라니….. 어느 나라가 현재 우리에게
싸움을 걸 정도 여력을 보유한 나라는 대치 중인데…”

“그게… 카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카….카논? 놈들이 미쳤단 말인가?”

네 사람이 기막혀 할 때, 닫혀 있던 접대실의 문이 열리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 카논 놈들이 미치다니…”

“글쎄 말일세.”

이어서 들리는 중년인의 목소리와 함께 실내로 레크널과 벨레포가 접대실 내로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실내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실 기사단 기사 크라멜 도 라무 레크널 백작님과 라크토 백작님을 뵙습니다.”

“아버님, 숙부님.”

“음, 자리에 앉아라.”

그들의 인사에 대충 답해준 후 두 사람은 접대실의 중앙의 소파와 우측 소파의
제일 앞에 앉았다.

“자네가 네게 가져온 문서가 있다고.”

“엣, 여기 있습니다.”

크라멜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붉은색의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종이 봉투를 받아든 레크널은 종이 봉투의 봉인을 떼어내고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어 읽어 내려갔다. 그런 그의 얼굴은 상당히 진지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졌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려간 그는 편지를 옆에 있는 벨레포에게
넘기며 한마디 했다.

“토레스 말대로 녀석들이 진짜 미친 것일지도 모르겠군….”

이어서 편지의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려간 벨레포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어제 이야기했던 대로 뭔가 밑는 구석이 있던지….. 이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그쪽이 맞는 것 같지만 말이야….”

“음.”

레크널은 다시 한 번 편지로 시선을 준 후에 토레스와 레이블 등에게 시선을 보냈다.

“우리 역시 수도로 가야겠다. 토레스, 너도 준비하거라…… 벨레포의 대열에 함유해
가능한 한 빠르게 움직여야겠어…”

“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준비는 필요 없다. 너도 갈 준비를 하고 몇 명의 기사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싸울 사람들은 많이 있으니…”

그의 말을 끝으로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또 전쟁이려나….”

그렇게 말하며 이드 역시 접대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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