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72화
가지고 듣고 있었던지라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지자 저절로 공력이 귀에 집중돼 천시지청술(千視祗聽術)이 발동되어 버린 것이었다.
‘딴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일같이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이드의 눈에도 그의 얼굴은 상당히 어두워 보였다.
그렇다고 지금 왜 그런 표정이냐고 물어보기도 뭐했기에 별말은 하지 못한 이드였다.
쿵… 투투투투툭.
회색 머리의 남자를 보고 있던 이드는 갑자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과 함께 앞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에 급히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 곳에는 푸라하라는 이름의 청년이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그가 들고 있던 보호대로 보이는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뒤쪽에서는 푸라하의 뒤에서 걷고 있던 여섯 명이 킬킬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큭… 바보 자식, 앞을 제대로 보고 걸어야 할 거 아니야.”
뒤에 서 있던 갈색 머리에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가 쓰러진 푸라하를 향해 그렇게 외치자 그의 옆에 있는 화려한 검을 차고 있던 녀석이 맞장구치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이야….. 무겁지도 않은 걸 들고 가면서 쓰러지기나 하고 말이야….”
그러나 이드가 보기에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그들뿐이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그 여섯에 대한 역겨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 모습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이드가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카리오스를 향해 물어볼 생각으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바보 같은 자식,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 있을 생각이냐…. 우리 가일라 기사학교 망신시키지 말고 빨리 일어나……”
으드드드득…….
마치 이빨에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이빨을 갈아대는 소리와 동시에 무언가 작은 인형이 앞으로 나서는 것이 이드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인형의 것으로 짐작되는 앙칼진 목소리가 대로변에 울려 나갔다.
“무슨 말이야, 가일라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건 너희들이잖아. 일부러 앞서가는 사람의 발을 걸어놓고는….. 너희들은 기사가 될 자격도 없어!!”
“카리오스??”
이드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카리오스란 것을 알고는 급히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과연, 쓰러져 있는 푸라하와 나머지 여섯 명이 서 있는 앞에서 한 손에 목검을 들고 당당히 서 있는 카리오스가 보였다.
‘저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겁도 없이 나서는 카리오스의 행동에 잠시 당황한 이드가 시선을 돌려 카리오스의 말의 대상이 된 여섯 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런 놈들이 저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과연 이드의 생각대로 여섯 명이 각자 카리오스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디 콩알만 한 놈이 입을 함부로 놀리다니…”
이건 제일 오른쪽의 진한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녀석의 말이었다.
이어서 화려한 검을 가진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것 없어. 저런 겁이 없는 녀석들은 주먹이 약이지….”
그리고 덩치가 크고 성질이 급해 보이는 녀석은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는 겁을 주기까지 했다.
그때, 카리오스가 한 마디를 더함으로써 그의 칼을 완전히 뽑히게 만들어 버렸다.
“너희 같은 기사 자격 미달의 인간들에게 맞을 정도면 내가 먼저 검을 놓고 만다, 이 잘라스 같은 놈들아….”
그러자 카리오스의 외침에 목표가 된 여섯의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졌고, 그 외에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카리오스에 대한 걱정스러움이 묻어 있긴 했지만, 그의 말이 매우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의 표정에 동참하지 못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드였다.
“저기…. 잘라스라는 게 뭐죠?”
조금 어색한 듯한 질문을 아까의 가공할 만한 이빨 가는 소리의 주인공으로 짐작되는 회색 머리의 사내에게 던졌다.
그러자 이드의 질문을 받은 그는 고개를 돌려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진짜 그걸 모르냐’는 듯한 물음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자 이드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 잘라스는 간사한 동물이지. 약한 동물에겐 강하고 강한 동물에겐 약하고….
또한 강한 동물에 붙어 다니며 자신이 건들 수 없는 녀석을 사냥하기라도 하면 옆에서 찌꺼기를 얻어먹지…. 한마디로 인간 중에서는 약삭빠른 자기 잇속밖에 모르는 상종하지 못할 놈들이란 말이지….”
그러자 설명을 들은 이드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저놈들과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드와 사람들의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 새끼가….”
갈색 머리의 녀석이 그렇게 소리치자, 아까 소리쳤던 푸른 머리 녀석이 검으로 손을 옮기며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칼을 못 잡게 해주지….”
그 둘이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가려 했으나,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는 인형을 보고는 나아가던 몸을 멈추고 얼굴에 씨익 하는 득의한 웃음을 지었다.
“골고르, 죽이진 말아….”
그러자 덩치 큰 카리오스의 말에 처음부터 검에 손을 대고 있던 골고르라 불린 녀석이 한쪽 손을 슬쩍 들어 보이며 답하고는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카리오스를 향해 다가갔다.
상대를 상당히 위축시키게 하는 그런 걸음거리였으니….. 그보다 한참 체구가 작은 카리오스는 어떠하랴….
이드는 카리오스의 얼굴에 떠오르는 초조함을 보고는 앞으로 나서려는 듯 발걸음을 내디디려 했다.
“녀석…… 뒷감당도 안 되면서 나서기는….. 음?”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그렇게 말하던 이드는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잡는 손길에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의 주인인 회색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그러자 이드를 잠시 바라본 회색 머리의 남자가 시선을 다시 앞으로 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저 녀석이 나설 거야….. 자신의 일에 남이 다치는 건 못 보는 성격이니까…..”
처음과 다름없는 그의 목소리에는 믿음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드는 그의 그런 말에 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아직 쓰러져 있는 회색 머리의 남자가 말한 푸라하를 잠시 주목한 후 카리오스와 카리오스에게 다가가는 골고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리오스와 골고르의 거리가 팔 하나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않던 골고르 녀석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카리오스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앞으로 나가다 말고 중간에 다른 손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중간에 주먹이 제지당한 골고르가 잠시 당황해 하더니, 자신의 주먹을 제지한 남자가 푸라하라는 것을 알고는 저절로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 뒤에 있던 파란 머리가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푸라하! 당장 비켜…..”
그러자 푸라하가 그의 말에 순순히 골고르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골고르가 그를 향해 잠시 으르렁거리다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려 카리오스를 향해 주먹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 역시 그의 주먹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잡혀 버렸다.
“너, 이 자식. 같이 죽고 싶어?”
뒤쪽에서 푸라하가 다시 골고르의 팔을 잡아채는 모습에 파란 머리가 약이 올랐는지 소리 지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푸라하가 여전히 골고르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뒤에 있는 카리오스를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꼬마야, 여기는 위험하니까 저쪽으로 물러서…..”
그 말에 한쪽에서 듣고 있던 이드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강단 좋게 나선 카리오스 녀석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거기다가 녀석의 고집은 이드가 당해봤으므로 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성격으로 볼 때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드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드가 확신하고 있을 때, 카리오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응! 알았어….
어?….
이드는 자신의 예상과 반대되는 대답에 카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리오스의 대답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던 듯 계속 이어졌다.
좀 있다가 갈께…. 그리고 나는 꼬마가 아니라 카리오스야…
그 말에 상대의 팔을 잡고 있던 푸라하고 허탈한 미소를 은 반면 이드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씨익 미소지었다.
그때 이드의 옆에서 다시 회색머리카락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큭……재미있는 꼬마군…..
그때 어느세 골고르의 곁으로 까지 다가온 파란머리가 여전히 골고르의 팔을 잡고 있는 푸라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병신같은 새끼가….. 어디 대들어…. 빨리 그 팔 않놔?
그러자 그의 말에 푸라하는 잡고 있던 골고르의 팔을 놓아 버리고는 카리오스를 잡고 뒤로 몇 발작 물러섰다.
그 꼬맹이 녀석은 이리로 넘겨.
이번에도 역시 파란머리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푸라하가 고개를 뒤로 돌려
카리오스를 한번 바라본 뒤 파란머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파란머리가 허! 하는 헛웃음을 짓고는 뒤에 서있는 골고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골고르 역시 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파란머리를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푸라하가 카리오스를 살짝 뒤로 물리고 자신은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골고르가 마치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리오스를 치려 할 때와는 달리 가득힘을 담은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푸라하는 그 주먹에 몸을 뒤로 빼며 골고르의 주먹의 사정권에서 벋어 나 피해 버렸다.
그러자 이격으로 팔보다 긴 발을 사용해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오는 발을 보자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골고르의 품으로 파고들며 비어버린 한쪽 다리를 차버렸다.
쿠당…..
음…. 상당히 좋은 공격인데……
이드는 푸라하가 골고르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평하자 회색머리 역시 한마디를 거들었다.
내가 말했잖아…. 저 녀석 머리쓰는 걸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