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78화
이드는 프로카스에게 약간 고개를 숙이며 엄청 딱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번에 볼 때도 그랬지만 목소리에는 전혀 높낮이가 없고, 자신은 고개까지 약간 숙여 보였건만 마치 텅 빈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반응이라니.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벨레포와 같이 걸음을 옮겨 타키난과 가이스 등이 있는 곳에 같이 섰다.
이드는 타키난의 옆에 서서는 그의 품에 잠들어 있는 소녀를 한 번 보고는 소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타키난을 바라보았다.
“형. 그 칼 치워요.”
그 말에 마침 이드를 보고 있던 타키난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돌려 프로카스를 가리켰다.
“무슨 소리야? 넌 저 앞에 서 있는 괴물이 보이지도 않나? 이 칼 치운 사이에 갑자기 달려들면 어쩔 건데? 저번에 너도 당할 뻔했잖냐.”
이드는 꽤나 열을 올리며 말하는 타키난을 바라보며 프로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말고 치워요. 게다가 이번엔 싸우려는 게 아닌데 인질을 잡아서 뭐 하게요? 거기다 수도에 오면 아이를 돌려주겠다고 했잖아요.”
“하, 하지만….”
“빨리요. 저 프로카스라는 사람하고 할 이야기도 있는데, 그렇게 아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으면 이야기가 안 된단 말이에요.”
이드가 확고한 투로 나오자, 타키난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아이의 목에 겨누고 있던 단검을 내려놓았다.
“칫, 어떻게 되든 나도 몰라. 네가 알아서 해.”
“물론이죠.”
이드는 씩 웃으며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들의 앞으로 나서며 프로카스와 마주섰다.
그리고는 싱긋이 웃으며 건넨 말.
“찾아오시는데 어렵진 않으셨죠?”
마치 자신의 집을 찾은 귀한 손님을 대하는 이드의 말에 타키난과 가이스들의 얼굴이 상당히 험악해져 버렸다.
하지만 프로카스는 여전히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공격 대상에 대한 정보는 충분했으니까. 그것보다 이제 그만 아라엘을 돌려받아야겠다.”
“물론이죠. 그런데 이름이 아라엘이었나 보죠? 몇 번 물어봤는데 대답도 하지 않더라고요.”
이드의 말대로였다. 타키난의 품에 안긴 아라엘이라는 여자아이는 일행들에게 인질로 잡힌 후 몇몇 질문에는 답을 했지만 이름을 물을 때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프로카스가 자신의 아빠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름을 모르더라도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지금까지 이드가 먹이고 있는 약 덕분에 하루 중 깨어 움직이는 시간이 삼분의 일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돌려드리겠는데요. 그전에 몇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그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가 뒤에 수족을 달자, 프로카스의 포커페이스가 약간이지만 일그러졌다.
“… 뭐지?”
이드는 프로카스의 반응에 싱긋이 웃으며 타키난으로부터 아라엘을 받아 안았다.
10살이나 되는 소녀였으나 지금까지 알아온 육음응혈절맥 덕분에 몸이 작아 이드처럼 타키난보다 체격이 작은 이가 안았는데도 전혀 커 보이지 않았다.
“제가 듣기로 프로카스 씨는 용병 일을 의뢰받을 때 귀한 포션이나 회복 마법 같은 걸 대가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맞죠?”
이드의 물음에 프로카스는 시선을 이드의 품에 안긴 아라엘에게 두고서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이 아이, 아라엘의 병 때문이고요.”
이번 말에는 프로카스가 반응을 보였다. 얼굴이 약간이지만 상기되었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이드는 그런 프로카스의 반응에 품에 안겨 있는 아라엘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 의뢰를 하려고 하는데요.”
이드는 뒤쪽에서 꽤나 웅성대는 것을 들으며 프로카스를 바라보았다.
프로카스 역시 아라엘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이드의 눈을 직시했다.
“보수는? 아까 말했듯이 희귀한 포션이나 회복 마법이 아니면 의뢰는 받지 않는다.”
이드는 프로카스의 말에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하실 거예요. 아라엘의 완쾌라면.”
이드는 자신의 말에 프로카스의 얼굴에 격동의 표정이 떠오르고, 눈에서 광휘가 이는 모습에 그가 얼마나 동요하고 놀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이드와의 거리를 좁히는 프로카스의 모습에 뒤에서 들려오는 웅성임은 더 심해지며, 쨍그랑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레 달려드는 프로카스의 모습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프로카스가 이드의 앞에 서면서 다시 조용해졌다.
“아라엘, 아라엘의 병이 뭔지 아나?”
흥분한 듯이 물어오는 프로카스의 음성엔 아까와는 달리 확실한 높낮이가 들어 있어 그의 흥분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평소의 차갑던 모습과는 다른 훈훈한 감정이 느껴졌다. 덕분에 이드의 얼굴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육음응혈절맥. 이곳의 말로는 아이스 플랜. 선천적인 병으로 몸이 차츰 약해지고,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은은한 냉기를 발하죠. 그리고 성인이 되는 20살 정도가 되면 내뿜는 냉기가 절정에 달하고, 그 냉기로 인해 인체의 중요한 여섯 곳에 흐르는 피와 마나가 서서히 굳어 수명을 다하게 되지요.”
이드의 말에 평소와 달리 프로카스의 고개가 급하게 끄덕여졌다.
“마, 맞아. 아이스 플랜… 정말, 정말 그 치료 방법을 알고 있나? 응? 응?”
아마 이드가 아라엘을 안고 있지 않았다면 이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을 것 같은 프로카스의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프로카스는 몇 번인가 유명한 의사들과 회복술사들을 찾았었다. 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하며 엉터리 치료를 한 자들도 있었다.
결국에는 프로카스의 검에 죽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백여 명에 이르는 자들 중에서도 아라엘이 걸린 병명을 알아보는 극소수로 손에 꼽을 정도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프로카스 앞의 이드는 정확하게 병명을 알고 있었고, 그 병의 변증까지 확실히 말했던 것이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회복술사들이나 의사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프로카스였다.
“물론 치료할 수 있죠. 그리고 이미 반은 치료됐고요. 한 번 안아 보시겠어요?”
이드의 말에 아라엘을 안아 든 프로카스의 눈에 언뜻 눈물이 비쳤다.
프로카스는 자신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아라엘의 체온에 눈물을 보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품에 품고 다녔던 아라엘의 몸은 항상 싸늘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가지는 체온이 아닌, 마치 죽은 시체와도 같은 그런 서늘함. 어떤 때는 서늘함을 넘어 싸늘한 냉기를 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10년 만에… 그녀가 태어난 지 10년이라는 시간 만에 딸의 온기를 느껴 본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행했던 살인, 파괴, 그 모든 것의 목적인 딸의 체온…
“말해라. 어떠한, 그 어떠한 의뢰라도 받아들이겠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제국을 상대하는 일이라도 받아들이겠다. 이 아이, 아라엘의 병만 완쾌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이드는 자신에게 아라엘을 건네며 말하는 프로카스를 바라보며 생각해 두었던 말을 했다.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하며 같이 싸우는 것. 그것이 프로카스 씨께 원하는 의뢰 내용입니다.”
이드의 말에 프로카스는 따로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 내용을 접수한다. 지금부터 너와 함께하겠다.”
이드는 프로카스의 말에 품에 안고 있던 아라엘을 뒤에 있는 타키난에게 다시 건네고는 프로카스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아마 아라엘의 아이스 플랜도 두 달 안에 완치될 거예요.”
“아라엘을 잘 부탁한다.”
프로카스는 그렇게 말하며 이드의 손을 마주 잡았다. 평소 꽤나 냉담한 성격이지만 아라엘과 관련된 일에는 전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자네 이름이 프로카스라고? 이 사람들에게 듣자니 그래이트 실버급의 실력이라고 하던데.”
“예.”
크레비츠의 물음에 프로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이미 평소 때와 같은 포커 페이스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 이드들은 저녁때 돌아온 크레비츠들과 함께 이드가 처음 케이사 공작을 만났던 서재에 자리하고 있었다.
원래 크레비츠는 궁에서 지내야겠지만, 호탕하고 털털한 그의 성격상 답답한 궁은 별로 맞지 않았고, 벨레포로부터 일이 잘 풀려 프로카스를 포섭했다는 말에 그를 만나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회의에서 결정한 일도 있기에 직접 전할까 해서였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네. 아무래도 힘든 전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