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84화
이드는 자신의 뒤로 날아오르는 프로카스와 차레브 공작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던 속도를 늦추어 두 사람과 몸을 나란히 했다.
그리고 시선을 여전히 앞으로 둔 채 두 사람에게 말했다.
“세 사람이 한 곳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나눠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드의 말에 이드의 양옆으로부터 가볍게 날아가던 이드를 굳혀 떨어 트려 버릴 듯한 묵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양군의 접전 지는 내가 맞지.”
“나는 주목표 뒤쪽의 마법사들을 맞지.”
차레브와 프로카스의 말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병사들과 기사들의 한가운데 서있는 소녀에게 시선을 두었다.
“… 그럼 나는 정해진 거네요.”
이드들은 그렇게 대충 자신들의 영역을 나누고는 나아가는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세 사람이 넓게 벌려선 아나크렌의 병사와 기사들의 머리 위를 뛰어(아랫사람은 기분 나쁘겠다. 머리 위로 발바닥이 보이면…) 갈 때였다.
세 사람을 향해 붉은 빛의 불꽃이 넘실거리는 공과 화살, 그리고 빛의 막대가 날아왔다.
카논 측에서도 눈이 있으니 병사들과 기사들의 머리 위를 날듯이 달려오는 세 사람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태니까 말이다.
그 모습에 이드의 오른쪽에서 달리던 차레브가 몸을 옆으로 뺐다.
“난 여기서 하지. 저건 자네들이 맞게.”
이드는 그 말과 함께 허리에 매달려 있던 검을 뽑아 들고 아군의 병사들의 선두 측으로 낙하하는 그를 보고는 자신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부드러운 황혼을 닮은 듯한 붉은 색을 머금은 검신, 라미아를 뽑아 들었다.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하려면 일라이져 보다는 라미아가 더 강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프로카스를 향해 말했다.
“저건 제가 처리할게요. 그럼 오랜만에 잘 부탁한다. 라미아.”
[걱정 마세요. 이드님 ^.^]
이드는 요즘 들어 꽤나 친해진(짬짬이 시간 내서 이야기를 나눈 이드였다.)
라미아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며 검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앞의 화이어 볼과 매직 미사일을 향해 검기를 흩뿌렸다. 순간 휘둘러지는 라미아의 검신을 따라 무형검강결(無形劍剛訣)에 의해 형성된 은은한 달빛을 닮은 라미아의 검신 모양을 한 검기가 화이어 볼과 매직 미사일을 맞았다.
펑… 콰쾅… 콰쾅…..
십여 개에 달하는 화이어 볼과 매직 미사일들을 한순간에 처리한 이드는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화이어 볼과 매직 미사일들을 보며 프로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가 맞은 곳은 이곳이니까. 저건 프로카스가 맡으세요.”
그 말과 함께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으로 수직으로 떨어져 몸을 떨어트리던 이드의 눈에 프로카스의 손에 회색의 안개와 같은 것이 검의 형태를 띄우는 모습이 들어왔다.
“저렇게 검이 소환되는 거…. 신기하단 말이야.”
이드의 옅은 중얼거림에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로카스의 검이 좋다니까 샘이 나는 모양이었다.
[저게 뭐가 좋다구요. 말도 못하고 마법도 못 쓰고 또 주인도 못 알아보고,
또… 음… 하여간 별로인데…]
계집아이처럼 웅얼대는 라미아의 목소리에 이드는 피식 웃어주고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이드가 수직 낙하하고 있는 목표 지점에는 수십 여 명의 병사와 기사들이 손에, 손에 창과 검을 들어 위로 뻗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검기를 날리려는 듯 검에 색색의 검기를 집중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헤… 이대로 떨어졌다간 완전히 고슴도치 되겠군… 그럼 오늘 하루 잘해보자 라미아. 난화십이식(亂花十二式) 제 삼식 낙화(落花)!!”
이드의 외침과 함께 라미아의 검신으로부터 발그스름은 수십 여 장의 강기화(剛氣花)가 방출되어 지상의 병사들과 기사들에게로 떨어졌다.
“뭐, 뭐야?… 컥!”
한 병사가 자신에게 떨어지는 강기화를 멍히 바라보다 그대로 머리를 관통당해 했다.
“피, 피해라, 마법사… 으악! 내 팔…”
한 기사가 주위로 쓰러지는 몇몇의 병사들을 보며 주위에 소리치다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하늘거리는 강기화에 어깨를 관통당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어서 여기저기 경악성과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니 순식간에 이드가 낙하할 자리가 불그스름한 혈흔만을 남긴 채 깨끗이 비워져 버렸다.
착….. 사사삭…
이드는 그런 땅에서 선혈이 흘려져 있지 않은 깨끗한 땅에 사뿐히 내려서면서 잠시의 멈춤도 없이 곳 바로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런 이드의 주위로 수백의 병사와 기사들이 포위하고 있지만 방금 전 보았던 이상한 꽃잎에 함부로 대들지 못하는 듯 멈칫거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이드는 자신의 뒤쪽과 앞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이는 것을 느끼며 라미아에 내력을 주입해 휘둘렀다.
“무극검강(無極劍剛)!!”
라미아의 검신으로부터 은백색의 강기가 뿌려져 이드의 정방을 향해 날았다.
순간 전장이 보이는 지휘실 앞에 모여 있던 샤벤더 백작 등은 접전 지역의 세 곳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콰 콰 콰 쾅………우웅~~
“모두 비켜. 무형일절(無形一切), 무형기류(無形氣類)!!”
라미아의 검신에서 발해진 무형일절의 반달형 검강이 마치 거대한 산허리를 끊어버릴 듯이 이드의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고, 그것이 전방의 병사들에게 닫기도 전에 시전된 은백색의 강기무(剛氣霧)가 퍼져 병사들과 기사들의 사이사이로 찢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강기무에 닿은 병사들은 모두 작은 단도에 베이기라도 한 듯 몸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급조된 소드 마스터들 역시 갑작스런 힘의 사용 방법을 몰라 병사들과 같이 은백색의 강기무에 별 대응도 하지 못하고 선혈을 뿜으며 쓰러졌다.
이드는 강기무에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고 뒤로 물러서는 병사와 기사들을 보고는 소녀가 서 있는 앞쪽을 향해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이미 앞쪽은 무형일절의 검강에 의해 거의 일백 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몸이 두 동강 난 시체들만이 있을 뿐, 이드의 앞을 막아서는 기사나 병사는 없었다. 물론 부운귀령보를 사용해서 시체를 밝거나 하진 않았다.
“으~ 내가 한 거긴 하지만 보기에 영~ 안 좋아…”
여기저기 쓰러져 흩어져 있는 살점과 내장들의 모습에 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광경을 보고 편하지만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짓도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드가 다시 검을 들었으나 이번에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지 않았다.
은백색으로 물든 라미아를 휘두르려는 듯한 이드의 모습에 이드의 전방에 있던 병사와 기사들이 지래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져 피해 버린 것이었다.
[겁먹은 모양인데, 저것들도 기사라고… 하지만 편하긴 하네요.]
라미아의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에 이드도 고개는 끄덕였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어느 누가 눈앞에서 동료들 백 여 명이 두 동강 나는 모습을 보고 몸을 사리지 않으리요. 게다가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스스로 주제를 파악한 거니까. 그렇게 비꼴 건 없지. 자, 그럼 문제의 소녀를 만나 보실까…”
막지도 않고 스스로 알아서 길을 터주는 병사들과 기사들 덕분에 이드는 별다른 힘을 드리지 않고서 기사들의 중앙에 서 있는 소녀와 마주할 수 있었다. 뭐, 빙둘러 소녀를 보호하고 있는 한 겹의 기사라는 보호막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소녀를 본 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볼 때는 단순히 행동이 장난스러운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행동뿐 아니라 분위기 또한 그 또래 소녀가 곰인형을 가지고 노는 듯한 분위기다. 정말 저 소녀가 아나크렌군을 밀어붙인 마법을 사용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모르는 사람 데려와서 저 소녀가 마법을 써서 군대를 밀어붙였다고 하면 미친X 소리들을 정도였다.
“라미아….. 넌 저 애가 방금 전 마법을 사용한 아이 같아?”
이드가 라미아에게 물었다. 다행히 검도 인간과 사고 체계가 비슷한지 이드와 같은 생각을 내놓았다.
[아뇨, 저건 누가 봐도 그냥 노는 것 같은데요. 혹시 저 애…. 자신이 마법을 쓸 줄 아는 것도 모르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내가 봐도 전혀 아닌데…”
그렇게 잠시 이드와 라미아가 전장이라는 것도 잊고 수다를 떨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이드의 앞뒤에서 강력한 폭음이 일었고 이드의 전방에서 소녀를 보호하던 기사들이 이드에게로 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생김새야 뭐 어때. 처음 본 메르시오라는 놈도 늑대였는데 말 할 거 다 하고 웃을 거 다 웃었으니까.”
그렇게 궁시렁댄 이드가 검을 들어올리자 이드를 향해 검을 겨누던 기사들이 흠칫해하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들도 방금 전 이드가 연출해낸 광경을 봤었던 것이다.
“음…. 기사 분들도 저쪽 분들처럼 그냥 조용히 물러서 주셨으면 고맙겠는데요.”
이드가 검을 들어 자신이 지나온 길을 다시 막고 있는 기사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이드의 검끝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본 기사들과 병사들이 황급히 그 자리에서 물러섰다. 이드는 그 모습에 피식 웃어주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들을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당황과 불안의 표정을 띄우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칫, 정신 교육이 확실히 된 건가? 비켜주면 서로 좋은 것을… 그럼 한번 막아 보시죠. 수라만마무(壽羅萬魔舞)!!”
이드의 말과 함께 너울거리는 이드의 신형을 따라 라미아에서 뿜어진 붉은 검기가 너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