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92화
그렇게 커다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식당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덕분에 엄청난 궁금증을 담은 바이카라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드에게 모여졌다.
그러나 이드 역시 의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 아나크렌의 전장, 아마 아는 얼굴을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눈앞에 있는 바이카라니, 화염의 기사단장의 얼굴을 보게 될 줄은 이드 역시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리둥절해 하는 식당 안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한 샤벤더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보시오 바이카라니 단장, 여기 이드 군이 단장이 찾던 사람이 맞소? 그리고 교관님 이라는 말은 또 뭐요.”
단 두 가지의 간단하다면 간다나고 긴 설명이 붙어야 한다면 긴 설명이 붙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 두 가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의 대답을 듣기 위해 이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바이카라니에게로 옮겨졌고, 그런 모두의 기대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바이카라니의 입이 열려졌다.
“하하… 아는 얼굴이고 말고요… 백작께서도 들어 보셨을 텐데요. 저희 기사들과 기사단장들의 교육을 맡았었던 교관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 훈련을 생각하면… 교관님의 얼굴을 잊는 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는 달리 이드를 향해 있는 그의 얼굴에는 상당히 반가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반가운 미소를 띄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이카라니에 한정될 뿐 다른 사람들에 한해서는 전혀 아니었다. 토레스와 지아등 이드와 같이 왔었던 일행들은 무슨 말인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다는 얼굴이었고 샤벤더백작등 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접한 몇몇 인물은 믿어지지 않는 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들의 종착지에 있는 이드는 자신에게 모여드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그… 그럼 여기 소녀..ㄴ… 아니 여기 이분이 그래이드론 백작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분은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샤벤더백작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 마음에 물은 말이었으나 그 말은 다시 한번 식당 내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배…. 백작?”
“무, 무슨… 기사단장의 교관에 이번에는 백작? 어떻게 된 거야?”
바로 샤벤더의 백작이라는 말, 자작도 남작도 아닌 백작이라는 말이 이드일행들을 다시 한번 공격한 것이었다.
“네, 맞습니다. 실종되셨던 것도…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계신지는 저도…”
바이카라니가 그렇게 말하며 이드를 보는 것이 꼭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하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 그것은 주위의 모든 눈빛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이드는 주위의 그런 눈빛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별로 숨길 일도 아니니.. 설명해줄께요..”
이드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보이자 샤벤더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몇몇 사람들과 이드에게 자리를 권했는데, 이드에게 대하는 모습에 식당 안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상당히 정중해져 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드가 백작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타국의 백작이 아닌 자신의 조국 아나크렌의 백작 말이다.
더구나 비록 샤벤더 백작 자신과 같은 백작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현 황제와 아나크렌 권력의 핵심인물이라는 두 사람 이스트로 라 판타로스 공작과 궁정 대마법사인 아프르 콘 비스탄트 후작이 내비친 이드에 대한 거의 절대적이랄 수 있는 신뢰 덕에 주위의 귀족들은 이드의 권력을 거의 후작이나 공작과 같이 보고 있었다.
거기다 어떤 귀족의 앞에서도 항상 뻗뻗하기만한 기사단장들을 하급병사 다루듯 뺑뺑이 돌려버린 실력까지 말이다.
“자, 자… 우선은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기사단장도 앉으시고 이드 백작도 자리에 앉으시지요.”
샤벤더 백작은 바이카라니와 이드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식탁에 앉아있는 젊은 부관 한 명을 불러서는 즉시 본국으로 이드의 행방을 알리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 역시 식탁의 한자리에 앉았다.
이드는 샤벤더 백작이 사람을 보내고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는 주위에서 빨리 이야기하라는 듯이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씩 둘러보고는 아프르의 말에 따라 타로서의 옛 레어에 갔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점만을 간추려 이야기해주었다.
“… 대충 그렇게 된 거죠. 더구나 몸도 좋은 상태가 아닌 이상 돌아간다고 해도 별다른 도움은 안 될 것 같아서요.”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내며 뒷붙인 이드의 말에 바이카라니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하셨습니다. 가까운 마법사 길드라든가 용병 길드를 통해 소식을 전해 주시면 좋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드는 그 말을 들으며 머리를 긁적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실 이드는 아나크렌에 연락하는 일을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라일론에 도착하고 깨어난 순간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통에 솔직히 아나크렌에 소식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난 또 일리나와 이쉬하일즈가 돌아가면 대충의 상황이 알려질 테고…
누가 눈치 챌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우리 일행들도 아무 말도 없던가요?”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세레니아를 떠올렸다. 자신이 떠난 지 얼마 되지않아 돌아왔을 세레니아… 아마 드래곤인 그녀라면 일리나의 설명과 그 공간에 남아있는 마나의 흔적 등으로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 이드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도 이드의 팔목에 자리하고 있는 그 깨부숴버리고 싶은 팔찌였다. 사실 그때 이드가 텔레포트 되고 얼마 지나지않아 타로스를 끌고 돌아온 세레니아가 망연히 홀에 서 있는 일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것은 거대한 공간이 뒤틀렸었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더구나 팔찌가 마나를 흡수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세레니아는 자신이 떠나기 전 느꼈었던 마나의 용량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설래 설래 내저어 버렸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텔레포트나 아니면 그 비슷한 공간 이동을 한 듯 했지만 그 많은 마나의 양으로 어디로 날아갔을 지는 그녀 자신도 짐작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세레니아가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세레니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일리나는 잔뜩 풀이 죽어서는 황궁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드도 바이카라니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 상당히 미안해했다. 일리나가 그렇게까지 상심하리라고 생각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자신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바이카라니를 보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나 하고 생각하고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잘못은 자신에게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대충 이드의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져 갈 때였다. 찰칵하는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 나갔었던 샤벤더의 부관이 들어섰다.
“그래, 황궁에 소식을 전했나?”
샤벤더가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보며 물었다.
“예, 마법사를 통해 전했습니다. 그런데…”
“음?”
뒤에 작게 단서를 다는 그의 말에 식당 내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을 받은 부관은 아직 자신과 마법사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했다.
“제가 통신을 끝내고 돌아서려는데 황궁으로부터 다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우프르 후작님과 몇몇 분께서 직접 이곳에 오신다고…”
“뭐, 뭐라고?”
샤벤더 백작이 부관의 말에 놀란 듯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던 이드 역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내로 마나가 크게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자신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벌써 온 것 같은데요. 마중을 나가야죠. 절 보러 온 사람들인데…”
이드가 그 말과 함께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샤벤더 백작과 바이카라니 등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드의 뒤를 따랐다.
그들도 아나크렌의 귀족들이니 자신들보다 높은 작위의 인물이 왔다는 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이드의 일행, 그러니까 프로카스와 카리오스, 지아 등이 뒤따랐다.
장내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빠져나가는데 자신들만 앉아 있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는 목적이 다른 그들에게 같이 떠올라 있는 표정이 있었으니, 바로 아무도 그들의 도착을 알린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어제 그런 무위를 보여준, 거기다 기사단을 훈련시킨 이드의 실력을 생각해 본다면 허풍이라고 말하기도 뭐했다.
물론 이런 표정에서 제외되는 두 사람, 모든 일행들의 뒤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얼굴을 굳힌 채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차레브와 프로카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일행들을 이끌고서 방금 전 느꼈었던 익숙한 기운, 이드가 이곳저곳을 다닐 때 직접 느꼈었던 세레니아의 기운이 느껴졌던 곳으로 발길을 옮기던 이드는 세레니아 말고 또 누가 왔나 하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 했다.
덕분에 얼마 가지 않아 성 안에 딸려 있는 정원, 그러니까 저번 이드들이 도착한 그 정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드들이 들어선 정원은 처음 이드들이 도착할 때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그 무성한 수십 수백 장의 잎으로 태양빛을 방어하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내는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
그리고 정원을 따라 싸여진 50s를 조금 넘는 듯한 낮은 담장 아래로 심어진 화려한 꽃들, 처음 온 날은 바빠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지만 상당히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정원이라고 생각하는 이드였다.
그렇게 잠시 정원을 돌던 이드의 시선이 정원의 중앙에 서 있는 몇몇의 인형에게 멈추었다.
그리고 이어 이드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아프르와 세레니아를 위시한 그래이와 일란, 라인델프, 그리고 일리나를 붙들고 있는 하엘과 이쉬하일즈였다.
그리고 세레니아 등도 이드를 발견했는지 이드의 이름을 부르며 이드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이드의 눈에 이상한 모습이 보였다.
몸이 좋지 않은 듯 하엘과 이쉬하일즈에게 부축을 받듯이 힘없이 서 있던 일리나가 갑자기 어디서 힘이 났는지 자신을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을 떨쳐내고는 거의 날듯이(정말로 날듯이) 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갑작스런 일리나의 모습에
“어… 어…”
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드는 그대로 일리나에게 안겨 버렸다.
“이… 일리나.. 갑…”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이드는 당황하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곧바로 포기해버렸다.
아니, 이드의 말이 곧바로 터져 버린 일리나의 울음소리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흐… 흑… 이… 이드… 흑, 크큭… 이드… 엉… 엉…….”
이드는 주위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로 가는 팔로 자신을 꽉 끌어안고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어대는 일리나의 모습에 한편으론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신 때문에 걱정했을 그녀의 모습에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흥분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이드가 당황해하는 사이 세레니아 등이 이드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