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93화
그리고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이드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안도감도 담겨 있었는데, 그 안도감의 방향은 이드가 아니라 일리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드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드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일리나가 황궁의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건강도 많이 상한 것 같아 일행들이 여간 걱정했던 게 아니란다. 드워프인 라인델프가 걱정되어 음식을 들고 그녀의 방을 찾아갔을 정도라면 설명이 되려나?
그러던 차에 이드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으니… 일리나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으니 안도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역시… 니가 다치거나 잘못될 리가 없지. 근데 잘 있으면 잘 있다고 연락이라도 해야 걱정하지 않을 것 아니냐.”
어느새 이드의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그래이가 웃는 얼굴로 이드의 어깨를 툭툭 치며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래이의 옆에서는 하엘이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듯이 방긋이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엘의 옆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쉬하일즈였다.
이쉬하일즈도 일리나만큼은 아니었지만, 타로스의 홀에서의 일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꽤나 시달렸었다.
때문에 이드 때문에 누워버린 일리나를 제일 열심히 간호한 것도 그녀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여전히 자신의 가슴에서 울고 있는 일리나의 등을 쓸어주던 이드는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주었다.
그리고 하엘과 세레니아들의 조금 뒤에 서서 흐뭇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드워프를 향해서도 조금 어색하게 웃어 주었다.
“걱정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자신에 대한 걱정이 역력히 드러나는 일행들과 우프르의 모습에 상당한 미안함을 느낀 이드의 말이었지만, 이어지는 우프르와 일란의 말에 이드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폐하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네. 그것 때문에 국무(國務)까지 늦어지고… 하여간 자네 때문에 피해 본 것이 많아…”
“이렇게 멀쩡하면서 연락이라도 해주지 그랬나… 자네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일리나 양만 봐도 알겠지?”
긁적긁적…. 저렇게 말하니…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미처 생각을 못해서… 죄송해요.”
“쳇, 그게 죄송하다면 다인 줄 아냐?”
이드는 그래이의 툭 쏘는 듯한 말에 피식 웃어 주고는 등을 쓸어 내려 준 덕인지 이제는 거의 울음소리가 잦아든 일리나를 다독이며 자신과 일리나 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뒤에서는 카리오스와 샤벤더 백작을 비롯한 인물들이 이드와 여전히 이드의 품에 안겨 있는 일리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자신들의 마이페이스를 지키는 두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 이드가 자신들을 돌아본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지아의 입가로 장난스런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입술에 매달려 있던 미소와 아주 많이 닮은 녀석이었다.
“호~~ 이드, 너 능력 좋은데… 자존심 쎄다는 엘프를… 거기다 너는 보크로 씨하고는 달리 잡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하하… 글쎄 말이야… 보크로 씨가 보면 어떻게 한 건인지 배우려 하겠구먼…”
칸이 지아의 말에 맞장구 치듯이 말하는 말을 들으며, 이드는 그들을 불러 세레니아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몇몇 일행들의 소개를 끝낼 즈음 일리나가 완전히 울음을 그치고 이드를 놓아주어 카리오스들에게 일리나를 소개할 수 있었지만 일리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일리나가 이드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자마자 이드의 등 뒤로 숨어 버린 덕이었다. 한참 울었기 때문에 얼굴을 보이기가 그렇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말에 뭐하고 한 사람은 없었다. 이드의 어깨 너머로 말하는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양측의 소개가 대충 끝나가자 우프르 후작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샤벤더 백작이 일행들을 이끌었다.
“자,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시지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식사 전이신 것 같은데…”
일행들을 정원의 입구 쪽으로 안내하며 말하는 백작의 말에 우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허기사 여기 이드 백작의 소식으로 급히 달려 오는 통에 식사 전이니 백작의 말대로 해야겠오이다. 거기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 하는 사람도 있으니…”
우프르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자신의 옆에서 그 짧은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라인델프와 그래이를 바라보았으나 밥이란 말에 정신이 팔려 해죽거리는 한 사람과 한 드워프는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주위의 몇몇 인물들을 그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을 튼 것에 대해 말이다.
정원으로 올 때와는 달리 샤벤더 백작이 일행들을 이끌고 성안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백작은 성안으로 들어서며 문 앞에 서 갑자기 늘어나 버린 일행들을 의아한 듯이 바라보고 있는 집사에게 아직 식탁에 놓여 손 대지 않은 음식들을 다시 덥혀 줄 것과 새로운 일행들의 식사 준비와 일행의 수에 맞는 술잔을 부탁하고는 일행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원래는 접대실로 안내한 후 식당으로 옮겨야겠지만, 우프르 등 이 곧바로 식당으로 가겠다고 하는 말에 식당으로 안내한 것이었다.
식당으로 들어선 샤벤더는 식탁의 상석을 우프르에게 권하고는 이드의 옆자리, 즉 일리나의 자리를 비워둔 채 일행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리나는 얼굴을 아껴야겠다고 하며 성에 있는 하녀를 따라 갔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의 자리를 비워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드의 옆자리를 그녀의 자리로 비워둔 것은 정원에서의 그녀의 반응이 상당히 작용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말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 백작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이드의 옆자리에 앉으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이드의 다른 한쪽의 자리는 그래이가 차지하고 앉았지만 말이다.
잠시 후 얼굴을 깨끗이 정리한 일리나가 얼굴을 발그스름하게 붉히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원에서 자신이 했던 반응이 조금 격했다고 생각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집사가 세 명의 하녀들이 들어섰는데, 두 명의 하녀는 각각 은색의 쟁반에 크리스탈인지 유리인지 투명한 컵을 받치고 들어섰고, 뒤에 따르는 하녀는 얼음을 채운 작은 통에 술병을 담고서 들어섰다.
백작은 그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처음 이드와 함께 들어설 때 가져와 얼음 통 안에 넣어 놓았던 부오데오카를 들어 집사에게 건네었다.
“어제 전투 때문에 준비한 녀석인데… 준비 잘한 것 같군요. 집사.”
“네.”
샤벤더 백작의 말에 집사와 시녀가 식탁 주위를 돌며 우프르와 일란 등에게 부오데오카를 한잔씩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쭉 돌리던 순번이 이쉬하일즈에게 이르자 집사는 손에 들고 있던 부오데오카를 얼음 통을 들고 있는 시녀에게 맞기고 얼음 통에 들어있는 꽤나 아름답게 장식된 병을 들어 잔에 부어 이쉬하일즈에게 건네었다.
그 잔에는 발그스름한, 마치 사랑을 하는 여자아이의 발그스름한 볼과 같은 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아주 향긋한 과일향이 흘러 나왔다.
이쉬하일즈는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는 술병을 바꾸는 것을 보고 얼굴을 조금 찡그렸으나, 곧 자신의 앞에 놓이는 액체의 빛깔과 향긋한 향기에 금세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집사가 인상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깊은 산에서 나는 밀로라는 과일로 담은 순한 술로 밀로이나 라고 합니다. 색깔과 향이 아주 뛰어나죠. 저 부오데오카는 아가씨께서 마시기에는 너무 독한 술이거든요.”
집사의 말에 이쉬하일즈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서도 빛깔과 향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네, 아주 향이 좋아요. 이름도 이쁘고…”
이쉬하일즈의 말에 자신의 생각대로 밀로이나를 가지고 왔던 집사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그녀의 옆에 있는 일리나와 이드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부오데오카를 빼들려 하자 이드와 일리나 둘 다 고개를 내저으며 밀로이나를 청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집사가 왜 그러냐는 듯이 바라보자 둘 다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는 강한 술은 별로… 술이 약하거든요…”
“저도 강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게… 더구나 밀로의 향이 너무 달콤한 것 같아서요.”
이드와 일리나의 말에 집사의 입가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들고 있던 술병을 시녀에게 건네며 밀로이나 술병을 들어 올렸다.
“그럴 겁니다. 3년 전에 최고 품질의 밀로만을 골라 담은 것입니다. 더구나 삼 년간 알맞게 숙성된 것이라 더욱 그렇죠.”
집사는 3년 전 자신이 담근 술을 칭찬하는 둘에게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이어 아직 강한 술을 마시기에는 어린 나이인 카리오스와 하엘, 그리고 세레니아에게도 밀로이나를 한잔씩 건넨 후 두 가지 술병을 둔 채 하녀들과 함께 식당 밖으로 나섰다.
“그럼, 식사가 준비되는데로 가져 오도록 하겠습니다.”
“음, 부탁하네.”
샤벤더 백작은 고개를 숙이며 나가는 집사를 한번 바라봐 주고는 상석에 앉아 있는 우프르에게 잔을 들기를 권했다.
“드시지요, 후작님. 제가 보관 중인 최고의 세 병의 보물 중에 하나입니다.”
“호~ 자네가 보물이라 칭할 정도라면 굉장한 모양이군.”
우프르의 말에 샤벤더 백작이 자신있다는 듯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부오데오카… 120년의 굉장한 녀석이지요.”
“호~~~ 120년이라… 과연, 백작이 보물이랄 만하군. 이런 건 궁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어디…”
그렇게 우프르를 시작으로 일행들은 각자의 앞에 놓여진 잔을 들어 맞을 보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거의 이드의 이야기였기에 우프르와 세레니아 등의 아나크렌에서 지금 막 달려온 일행들만이 귀를 기울일 뿐,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흘려 들으며 자신의 잔만을 홀짝일 뿐이었다.
특히, 지아와 모리라스, 그리고 칸 등의 용병들은 자신들이 몇 차례에 걸친 일을 처리하고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술에 무아지경에 들어서 거의 황송하다는 듯이 아끼고 아껴가며 입술과 혓바닥을 촉촉히 적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끼고 아껴가며 먹던 부오데오카가 바닥을 들어낼 즈음, 이드의 그간의 사정 이야기도 끝을 맺고 있었다.
“….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죠. 하여간 연락하지 못한 건 정말 죄송해요.”
그러자 이드의 말을 들은 우프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네 생각도 맞는 것 같고… 그리고 솔직히 연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네가 사과해야 되는 쪽은 여기 일리나양과 이쉬하일즈 양이지. 자네 때문에 제일 걱정한 사람이 저 두 아가씨니까 말일세…”
이드는 우프르의 말에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이드가 입을 열어 우프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참, 황궁에는 별일 없죠? 크… 아니, 황제폐하는 잘 지내시는지요.”
“허~ 아까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네 덕분에 국무까지 밀어 놓으셨다고… 아, 그리고 폐하보다 더 난리를 피우신 분이 게시네….”
“네? 난리…… 라니요?”
이드는 우프르의 말에 퍼뜩 황실에서 난리를 피울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되물은 말이었다.
“쯧, 쯧… 시르피 공주님 말일세… 자네가 사라지고 나서 폐하께 찾아와 찾아내라고 떼를 쓰시는 바람에… 후~~ 그거 고생할 것 생각하니, 지금도 한숨이 나오는 구만. 다행히도 이쉬하일즈양의 일행이 마침 궁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찮았으면… 공주님 등살에 병사들을 푸는 일이 생겼을 지도 모르지.”
“하하하….^^;;”
우프르의 말에 이드가 조금 난처한 듯이 웃어 버렸다. 그 모습에 우프르가 쯧, 쯧 거리며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허, 자네 잘도 웃음이 나오겠구먼… 나중에 궁에 돌아가서 공주님 심술을 어찌 감당하려고…. 사뭇 기대되는 구만.”
우프르의 말에 밀로이나를 마시려던 이드의 몸이 순식간에 뻗뻗하게 굳어 버렸다. 아나크렌에서 소일거리로 그녀를 돌보며 그녀의 고집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이드로서는 순간 굳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번이긴 하지만 시르피의 장난에 알몸에 강기만을 걸치고 식당을 찾아가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 이드의 모습에 옆에 있던 그래이가 이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오데오카의 강한 술향이 남아 있는 입을 열었다.
“쯧, 쯧…. 잘~~~ 해봐라… 공주님이 벼르고 계시던데…”
이드는 그래이의 말을 들으며 손에 들고 있는 밀로이나를 확 뿌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고는 하~~ 하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여 버렸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하게 연락이라도 하는 건데… 나도 속타 한 적이 있으면서… 하~~~ 진짜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더니…’
이드는 그렇게 때늦은 후회를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밀로이나를 한번에 쭉 들이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