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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94화


그렇게 밀로이나를 한 번에 들이켜 버린 이드는 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향해 사악하게 미소 짓는 시르피의 모습을 생각해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옆에서 그래이의 속닥거리는 복장 긁는 소리가 계속되었지만, 시르피에 대한 일을 생각 중인 이드에게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하엘과 이쉬하일즈가 정말 안됐다는 듯이 바라보자, 토레스 옆에 앉아 있던 카리오스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드 형, 너무 심각한 거 아니에요? 설마… 진짜 그 시르피라는 공주님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어느새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으로 변한 시르피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이드에게는 전혀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였다.

더구나 귓가에서 앵앵대는 그래이의 목소리까지 카리오스의 목소리를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습에 카리오스가 다시 이드를 불렀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 모습에 카리오스와 가까이 앉아 있던 일란이 싱긋이 웃으며 카리오스에게 말했다.

“카리오스라고 했던가?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이드가 황궁에 머물 때 공주님을 얼마간 돌보아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이드가 공주님께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네.

게다가 공주님의 고집을 꺾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나을 정도지.

하여간 말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야.

그리고 난 후라면 자네도 저러면 저랬지 이드보다 침착하진 못할 거야… 하하.”

카리오스는 그 말에 며칠 전 이드와 시장에서 보았던 레토렛, 푸라하 등의 페거리들을 생각해 보았다.

‘설마 그 놈들보다 더하려고…’

그렇게 설마라는 말로 단순히 일란의 말을 넘겨버린 카리오스는 다시 이드를 보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하기야 사람은 누구나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리고 한참 속으로 끙끙거리던 이드는 곧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시르피의 생각을 털어버렸다.

‘괜히 그런 거 지금 생각해서 뭐 하겠어… 해결될 것도 아니고… 정 귀찮을 것 같으면 황궁에 가지 않으면 간단한 일이잖아.’

이드는 시르피에 대한 대책을 간단하게 일축해버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쯤 식당의 문에서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작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들여가도 될 런지요?”

“아, 어서 들여오게. 후작님, 이제야 식사가 준비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열심히 이드의 귀에다 대고 떠들어대던 그래이의 중얼거림이 뚝 끊어지더니, 거의 본능에 가까운 동작으로 식당의 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라인델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두 사람의 열렬한 눈빛 속에 식당의 문이 열리며 집사를 선두로 여러 명의 시녀들이 작은 손수레를 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우프르를 시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져온 요리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요리들이 이드와 일리나에게 이르자, 한 시녀가 방긋 웃으며 일리나 앞에 파릇파릇한 색이 비치는 유백색의 스프와 싱싱한 야채와 작게 썰어진 과일이 적절히 섞여 깨끗하게 드레싱된 미키앙이라는 요리를 내려놓았다.

“엘프 분을 위해 주방장님께서 요리하신 것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일리나는 그 말에 마주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네, 잘 먹을게요.”

그리고 이쉬하일즈를 끝으로 모든 사람 앞에 요리들이 놓이자 우프르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제일 작위가 높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음식을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자, 상당히 늦은 아침이지만 식사들 하세나. 나머지 이야기는 식후에 하기로 하고 말이야.”

“예.”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잠시 후 걱정거리가 모두 해소된 덕에 편안한 식사를 끝마친 우프르와 이드들은 자리를 옮겨 커다란 창문이 달려 햇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넓은 잡대실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행들의 앞으로 한잔씩의 찻잔이 내려져 있었다.

“그럼, 이번 그리프 베어 돌이라는 소녀도 이드가 처리했다는 말인데… 하하, 이거 아나크렌에서의 큰일은 자네가 다 처리하는군.”

우프르의 말에 샤벤더 백작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밀린 것은 많은 소드 마스터들 때문도 있었지만, 거의가 그 소녀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밀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제 그 소녀가 도망치고 나서부터는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하하하하하…”

그런 백작의 말에 그래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완전히 해결사 구만.”

하지만 이드는 그런 그래이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는 우프르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쩌실 생각이세요? 라일론은 아직이지만 아나크렌은 이미 카논과 전쟁 중이잖아요.”

그 말에 우프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굴 가득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걱정 말게, 다 방법이 있다네…”

“에? 하지만 며칠 전만 해도 방법이 없다고… 이곳에 오기 전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는데요.”

이드가 의아한 듯한 물음에 우프르는 샤벤더 백작과 차레브 공작을 한번 쓱윽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려운 상황이었지. 하지만 그 어려운 상황을 어제 자네가 해결했지 않은가.”

이드는 우프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제 자신이 한 일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르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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