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4권 – 14화 : 높이 솟는 동작대 [4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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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4권 – 14화 : 높이 솟는 동작대


높이 솟는 동작대

조조가 어렵게 군량 옮기는 길을 열고 남피에 이르니 원담이 군 사들과 함께 성을 나와 맞섰다. 양군이 둥그렇게 마주 진(陣)을 친 뒤 조조가 진 앞으로 말을 몰고 나왔다.

“나는 너를 후하게 대했거늘 너는 어찌하여 마음을 품었느냐?” 

조조가 채찍을 들어 원담을 가리키며 꾸짖었다. 원담도 지지 않고 맞섰다.

“너는 내 땅을 침범하여 내 성들을 뺏고 처자를 잡아갔다. 그래 놓고도 오히려 나보고 딴마음을 품었다고 나무라느냐?”

그 말에 조조는 왈칵 성이 났다. 곁에 있던 서황을 불러 원담을 사로잡으라 명하니 원담은 자기 장수 팽안彭)을 내보내 서황을 맞 게 했다.

팽안은 용맹을 뽐내며 서황과 싸웠으나 맞수로는 원래가 어림없었다. 두 말이 몇 번 엇갈리기도 전에 서황의 도끼에 찍히어 말 아래 로 굴러떨어졌다. 조조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내모니 이미 기가 꺾인 원담의 군사들은 그대로 쫓겨 성안으로 달아났다.

뒤따라간 조조는 대군을 풀어 남피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성안에 갇혀 조조의 군세를 살핀 원담은 겁이 났다. 다시 모사 신평(辛)을 불러 조조에게 항복할 일을 의논했다.

“원담 그 어린 것은 이랬다 저랬다 해서 믿을 수 없는 놈이다. 이 번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아야겠다. 그대는 이곳에 머물도록 하라. 그대의 아우 신비를 내가 중용하고 있으니 차마 그대를 죽을 곳으로 되돌려 보낼 수 없어 이르는 말이다.”

조조는 항복을 빌러 온 신평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원담의 처리에 대한 냉정한 결심 못지않게 신평에게 보이는 호의였다. 그러나 신평 은 의연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승상의 말씀은 옳지 않으십니다. 제가 듣기로는 주군이 귀해지면 신하도 영화롭지만 주군이 근심이 있으면 신하는 욕된다 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랫동안 원씨(袁氏)를 섬겨왔는데 이제 와서 어찌 저버 리겠습니까?”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였다. 조조는 그를 잡아둘 수 없음을 알자 그대로 원담에게 돌려보냈다.

성안으로 들어간 신평은 원담에게 조조가 항복을 허락하지 않음 을 알렸다. 원담이 버럭 소리를 질러 꾸짖었다.

“네 아우가 조조를 섬기는 걸 보고 너도 두 마음을 품는 것이냐?”

자기가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신평을 의심해서 내지른 소리였다. 신평은 기가 막혔다. 조조가 붙잡는 것도 뿌리치고 함께 죽으러 왔건만 원담이 그렇게 나오니 억울함과 분함이 불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러 그대로 혼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원담이 좌우에게 신 평을 부축하여 내보내게 하였지만 신평은 오래잖아 죽고 말았다. 원 담은 그제서야 후회했으나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려낼 길은 없었다. 일을 지켜보고 있던 곽도가 원담에게 결연히 권했다.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습니다. 내일 성안의 백성들을 모두 몰아 앞장세우고 그 뒤에 군사들을 딸려 한꺼번에 밀고 나가도록 하십시 다. 죽기로 싸워 조조와 결판을 내는 것입니다.”

원담도 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남피성 안에 있는 백성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각기 창을 나눠주며 명에 따르도록 했다. 그리고 군사들도 갑주와 병장기를 매 만져 그 같은 결전에 대비하게 했다.

다음 날이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원담은 네 성문을 크게 열어젖 히고 가진 힘을 다 끌어모아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백성들을 방 패막이로 앞장세우고 군사들을 그 뒤에 숨겨 함성과 함께 조조의 진 채로 덮쳐간 것이었다. 쥐도 급하면 고양이를 문다는 격으로, 원담 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하는 공격이라 싸움은 곧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혼전이 되었다. 아침부터 한낮까지 싸웠으나 이기고 짐이 분 명하지 않은 채 양군의 시체만 들판을 덮어갔다.

조조는 싸움이 쉽게 이기지 못함을 보자 마음이 급했다. 말을 산 위로 몰아 북 치는 군사에게서 북채를 뺏은 뒤 손수 북을 쳐서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었다. 그걸 보고 힘을 낸 조조의 군사들이 몸을 돌 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으니 이내 팽팽하던 싸움은 균형이 허물어졌 다. 원담의 군사들이 알아보게 몰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죄 없이 끌 려나와 앞장섰던 백성들의 죽음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승세를 탄 조홍은 위세를 떨치며 원담의 진중으로 뛰어들었 다가 바로 원담과 마주쳤다.

“원담은 닫지 말라!”

조홍이 그렇게 소리치며 원담에게 덮쳤다. 원담도 피하지 않고 창 을 휘둘러 조홍을 맞섰다. 그러나 원담은 끝내 조홍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오래잖아 조홍의 칼빛이 어지러운 곳에 원담의 죽은 몸이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원담의 모사 곽도는 자기편의 진세가 어지러워지는 걸 보자 일이 글렀음을 알았다. 다시 성에 의지하고자 급히 성안으로 말을 모는데 조조의 장수 악진이 멀리서 그를 보았다. 말로 뒤쫓기는 어렵다 여 긴 악진은 가만히 화살을 뽑아 곽도를 향해 쏘았다. 시위 소리와 함 께 날아간 화살은 어김없이 곽도의 등판에 박히고 곽도는 말과 함께 성가에 둘러 판 개울로 떨어졌다.

원담과 곽도가 차례로 죽자 그 군사들은 모조리 항복하거나 달아 났다. 조조는 군사를 이끌고 남피성 안으로 들어가 남은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한편 군마를 정돈케 했다.

그때 갑자기 한 떼의 군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왔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원희의 부장 초촉과 장남이었다. 형 원담의 위급을 듣고 구원군을 보낸 것 같았다.

조조는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 그들을 맞았다. 두려운 싸 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한바탕의 소동은 각오한 채였다. 그러나 뜻 밖의 일이 일어났다. 적장 초촉과 장남이 창칼을 거꾸로 잡고 갑옷 을 벗은 채 항복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이미 성이 떨어지고 원담과 곽 도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변한 것이었다. 조조는 크게 기 뻐하며 그 둘을 또한 열후(列侯)에 봉했다.

기뻐할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 무렵 흑산적을 이끌고 있던 장 연이 다시 무리 십만과 더불어 조조에게 항복해 왔다. 흑산에 자리 잡고 조조와 원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제 원씨가 가망 없게 되자 드디어 태도를 결정한 것 같았다. 조조는 장연 또한 반가 이 맞아들이며 평북장군이란 큼지막한 벼슬을 내렸다.

이윽고 원담의 목이 성안으로 옮겨왔다. 조조는 원담의 목을 북문 밖에 내걸게 하고 덧붙여 영을 내렸다.

“누구든지 원담을 위해 곡하는 자는 목을 베리라!”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어떤 사람이 상복에 두건까지 갖추 고 원담의목 아래로 와서 곡을 했다. 지키고 있던 군사가 그를 끌고 조조에게로 갔다.

“너는 누구냐?”

조조가 노여운 얼굴로 물었다.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청주의 별가를 지낸 왕수(修)올시다.”

전에 원담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가 쫓겨난 왕수가 이제 원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곡을 한 것이었다. 조조가 더욱 노여 운 기색으로 물었다.

“너는 내가 내린 영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이냐?”

그래도 왕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껏 원씨의 녹을 받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죽음 을 듣고도 곡하지 않는다면 의를 저버린 게 됩니다. 장부가 죽음이 두려워 의를 저버리고 어찌 세상에 머리를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원담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례만이라도 치러줄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조조는 노여움을 풀고 오히려 탄식처럼 말했다. 

“하북에 의로운 이가 어찌 이리도 많단 말이냐! 원씨들이 이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게 실로 애석하구나. 만약 이들을 제대로 썼다면, 내가 오늘 어찌 이런 자리에서 이 땅을 내려다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고는 원담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지내게 한 뒤 왕수를 상 빈으로 대접했다. 왕수도 조조에게 감사하고 그가 내리는 사금중랑 장의 벼슬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조는 그걸 보고 왕수가 자기 사람 이 되었다 여겨 물었다.

“이제 원상은 원희에게로 의지해 갔소. 어떻게 하면 그들을 사로 잡을 수 있겠소?”

그러나 왕수는 굳게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조조는 그런 왕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감탄했다.

“과연 충신이로구나!”

그리고 두 번 다시 그에게는 원씨를 칠 계책을 묻지 않았다. 대신 곽가를 불러 묻자 곽가가 대답했다.

“원씨 밑에 있다가 항복해 온 장수들을 쓰면 될 것입니다. 그들을 시켜 원상과 원희를 공격하게 하십시오.”

조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그날로 초촉, 장남, 여광, 여상, 마연, 장 의 여섯 사람을 불렀다. 모두가 원상 밑에 있다가 항복해 온 장수들 이었다.

“그대들은 각기 거느린 군사들로 나누어 세 길로 유주(幽州)의 원 희와 원상을 치도록 하라. 이 싸움이야말로 그대들의 충성을 드러 내 보일 좋은 기회인 만큼 만의 하나라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따로 이전과 악진을 불러서는 역시 항복한 흑산의 우두머 리 장연과 함께 병주의 고간幹)을 치게 했다.

그 소식은 먼저 유주로 전해졌다. 원상과 원희는 자신들의 힘으로 는 조조의 군사를 당할 수 없다고 여겨 밤을 틈타 성을 버리고 요서 로 달아났다. 그곳의 오환에 의지해보려 함이었다.

유주자사인 오환촉(烏丸觸)은 원상과 원희가 달아나자 주(州)의 여러 벼슬아치를 모아 들인 뒤 원씨를 버리고 조조를 따를 것을 의 논했다.

“나는 조승상이 당세의 으뜸가는 영웅임을 알고 있소. 이제 그리 로 가 투항하려 하거니와 만약 이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그 목을 어깨 위에 남겨두지 않겠소.”

먼저 오환이 입에 피를 찍어 바른 뒤 맹세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차례로 피를 찍어 입에 바르며 같은 뜻을 보였다. 그런데 차례가 별가 한형(韓)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형이 칼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나는 원공(公) 부자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이제 주인 이 패망한 마당에도 그를 구할 만한 지혜도 그를 위해 죽을 만한 용 기도 없다. 이 얼마나 의롭지 못한 일이냐! 거기다가 지금은 또 북쪽 으로 꿇어앉아 조조에게 항복해야 한다니 어찌 차마 할 짓이랴. 다 른 사람은 무어라 하든 나는 그럴 수 없다!”

그 말에 모였던 사람들은 혹은 부끄러움에서 혹은 노여움으로 한 결같이 낯빛이 변했다. 오환촉이 술렁이는 좌중을 진정시키며 조용 히 말했다.

“무릇 큰일을 하는 데는 마땅히 대의를 앞세워야 하외다. 모두의 뜻이 똑같지 않다 해도 한 사람이 마다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 는 일이오. 그러나 이왕 한형이 그 같은 자기의 뜻을 밝혔으니 그는 그대로 자기의 뜻에 따르도록 보내줍시다.”

그리고 한형을 내보낸 뒤 모두를 이끌고 성을 나가 세 길로 쏟아 져오는 조조의 군사들을 맞아들였다. 조조는 힘들이지 않고 유주까 지 손에 넣자 크게 기뻤다. 모든 게 오환의 공이라 하여 그에게 다 시 진북장군의 벼슬을 더했다.

그럴 즈음 탐마가 달려와 급히 알렸다.

“이전과 악진, 장연은 병주를 치려 했으나 고간이 호구관(壺口關) 을 굳게 지켜 아직도 그 아래로는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조조는 이번에도 스스로 군사를 몰고 앞장서 호구 관으로 달려갔다. 이전, 장합, 악진의 군사들과 만나자 세 장수는 입을 모아 조조에게 말했다.

“고간이 높고 험한 관에 의지하여 항거하고 있어 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에 조조는 여럿을 불러놓고 호구관을 깨뜨릴 계책을 물었다. 순

유가 일어나 말했다.

“고간을 깨뜨리려면 반드시 거짓으로 항복하여 적을 속이는 계책 [詐降]을 써야 할 것입니다.”

순유는 거기까지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조조는 이내 알아들었다. 그에게는 원씨로부터 항복해 온 장수가 여럿 있어 고간을 속이기는 어렵지 않은 때문이었다. 조조는 곧 여광과 여상을 불러 귀엣말로 자세한 계책을 일러준 뒤 내보냈다.

조조로부터 은밀하게 영을 받은 여광과 여상은 군사 수십 명만 이끌고 고간이 지키는 관문 밑으로 달려갔다.

“저희들은 원래 원씨의 장수들이었으나 어쩔 수 없어 조조에게 항복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조조는 처음 저희 편으로 끌어들이려 고 달랠 때와는 달리 저희들을 박대하므로 이제 다시 옛 주인을 찾 아 돌아온 것입니다. 빨리 문을 열고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러나 고간은 잘 믿으려 들지 않았다. 한동안 여광과 여상을 미심쩍은 듯 내려보다가 엄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 둘만 관 위로 올라와 자세히 말하라!”

그러자 여광과 여상은 스스로 갑주를 벗고 관 안으로 들어가 고 간에게 말했다.

“조조의 군사는 방금 도착했기 때문에 아직 그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음을 틈탈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진채를 급습하여 쳐부수도록 하십시오. 저희들이 마땅히 앞장서겠습니다.”

고간은 그 말을 그럴듯하게 여겼다. 거기다가 두 사람의 행동거지 도 천연덕스럽기 그지없어 거짓으로 항복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이에 그 계책을 따르기로 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이슥할 무렵 고간은 여광과 여상을 앞세우고 군사 만여 명과 함께 관을 나왔다. 조조의 진채 가까이 이를 때까지만 해도 일 은 제대로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 군사를 몰아 조조의 진채 로 뛰어들려는데 홀연 등 뒤에서 크게 함성이 일더니 복병이 사방에 서 일어났다.

고간은 거기서 자신이 속은 걸 알았다. 성난 목소리로 여광과 여 상을 찾았으나 그들이 그때껏 머물러 있을 리 만무였다.

“하는 수 없다. 어서 관으로 돌아가자!”

고간은 그렇게 영을 내린 뒤 간신히 길을 열어 호구관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조의 깃발이 높이 걸려 있는 관 위에 서는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고간이 대부분의 군사를 이끌 고 관을 나간 사이 이전과 악진이 어느새 관을 빼앗아 들어앉은 것 이었다.

그사이 뒤따라오던 조조의 군사가 이르고 또 관 안에서도 악진과 이전의 군사가 쏟아져 나오니 고간은 다시 사방으로 에워싸이고 말 았다. 죽을힘을 다해 간신히 길을 뚫고 도망했으나 이미 따르는 군 사는 몇 안 되었다. 고간은 하는 수 없이 오랑캐 선우(單于)에게로 의지하러 갔다.

조조는 이긴 군사들과 함께 관으로 들었으나 고간이 몸을 빼내 달아난 걸 알았다. 곧 군사를 풀어 고간을 쫓게 했다.

한편 달아난 고간은 선우의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의 북번(北 蕃)을 다스리는 좌현왕(左賢)을 만났다. 고간은 말에서 뛰어내리고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조조는 내 땅을 힘으로 빼앗고 이제는 대왕의 땅까지 침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우리를 도와 빼앗긴 땅을 되찾게 해주십시오. 이는 다만 이웃을 구원함일 뿐만 아니라 이 북방을 보 존하는 방책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좌현왕의 대답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조조하고 원수진 일이 없거늘 조조가 어찌 내 땅을 침범 하겠느냐? 너는 내가 조씨와 원수지기를 바라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러고는 좌우를 꾸짖어 고간을 내쫓게 했다. 한때는 원씨와 가까 웠던 선우라 믿고 찾아갔다가 그렇게 쫓겨나고 보니 고간은 달리 구 원을 청할 만한 데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형주 유표에게로 의지하 러 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뜻 같지 못했다. 고간은 상로에 이르러 도위 왕 염(王)이란 자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왕염이 고간의 목을 조 조에게 바치니 조조는 그 또한 열후에 봉하며 공을 치하했다.

병주가 평정되자 조조는 다시 서쪽으로 군사를 돌려 오환을 치려 했다. 조홍을 비롯한 몇몇 장수가 말렸다.

“원희와 원상은 몇 안 되는 장수와 군졸을 이끌고 지칠 대로 지쳐 멀리 사막으로 달아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들을 쫓아 서쪽으로 군사를 낸다면 유비와 유표가 그 빈틈을 노려 허도로 닥칠 것입니다.

그때는 구하고 싶어도 길이 멀어 마침내 미치지 못할 것이니 그 피 해가 결코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더 나아가지 말고 허도 로 군사를 돌리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곽가는 달랐다.

“제공의 말씀은 맞지 않소이다. 비록 주공의 위세가 천하를 떨쳐 울린다 하나, 사막에 사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들이 변방에 멀리 떨 어져 있음만 믿고 대비를 않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대비 않 는 틈을 타 지금 갑작스레 들이친다면 힘들이지 않고 그들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오환은 원소 때부터 입은 은혜가 있어 원상과 원희가 그들에게 간 이상 없애지 않으면 안 될 것들입니다. 유표는 자리에 앉아 말만 늘어놓기 좋아하는 자로 스스로 유비를 다스릴 만 한 재주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겁게 쓰면 나중에 유비 를 억누를 길 없을까 두려워 가볍게 쓸 것이니 이는 곧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설령 승상께서 나라를 비우고 멀리 가 싸 움을 하시더라도 끝내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유표는 걱 정 않으셔도 됩니다.”

곽가는 거의 확신하듯 말했다. 듣고 있던 조조도 곽가의 주장 쪽 으로 마음이 쏠렸다.

“봉효의 말이 옳다. 사막을 채로 치는 일이 있더라도 이 기회에 북방의 일을 온전히 해두도록 하자.”

그리고는 모든 군사들과 수레 수천 대를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누런 모래만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들어서자 미친 듯한 바람은 사방에서 불고 길은 거칠고 험해 인마가 아울러 나가기 어려웠다. 어지간한 조조도 며칠이 안 돼 군사를 돌릴 마음이 들어 곽가를 찾 아가 뜻을 물어보려 했다. 이때 곽가는 그곳의 물과 흙이 다 몸에 맞 지 않아 병이 나 있었다. 조조는 곽가가 몸져 누운 수레를 찾아보고 울며 말했다.

“사막을 평정하려는 내 욕심 때문에 그대가 이토록 먼 길에 어려 움을 겪는구나. 더구나 이제는 병까지 들어 이리 누웠으니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네.”

“저는 이미 승상의 큰 은혜를 입은지라 비록 승상을 위해 죽는다 해도 그 은혜의 만분의 일에 미치지 못합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 시오.”

곽가가 수척한 얼굴에 두 눈만 번쩍이며 대답했다. 조조가 더욱 마음 아파하며 물었다.

“이 북쪽 땅은 너무 거칠고 험하구나. 차라리 군사를 돌렸으면 싶은데 어떤가?”

“아니 됩니다.”

곽가가 번쩍 고개를 들어 가로저었다.

“군사를 움직이는 데는 은밀하고도 빠름이 중합니다. 이제 천리를 가서 적을 치고자 하시는데 무거운 치중이 함께한다면 이익을 얻기 가 어려울 것이니 가벼운 군사로 지름길을 얻어 나가시도록 하십시 오. 그래야만 저들이 방비하고 있지 않을 때에 들이칠 수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지름길을 잘 아는 자를 찾아 군사들을 안내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와서 그대로 군사를 돌리셔서는 결코 안 됩니다.”

약해졌던 조조의 마음을 한순간에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곽가의 말이었다. 이에 조조는 곽가를 역주에 남겨 병을 다스리게 하고, 한 편으로는 널리 길을 인도할 사람을 찾았다. 어떤 이가 와서 알렸다.

“전에 원소의 장수로 있었던 전주(田)란 사람이 이 부근 사막의 지리를 깊이 알고 있습니다.”

조조는 곧 전주를 불러 사막으로 군사를 낼 길을 물었다.

“지금 승상의 군사들이 가고 있는 길에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물 이 흐르는데 얕아도 수레와 마차가 지날 수는 없고 깊어도 배가 뜨 기는 어려울 정도입니다. 군사를 움직이기에 가장 어려운 길이라 차 라리 돌아가 딴 길을 찾는 편이 낫겠습니다.”

“딴 길이라면 어떤 길이 있는가?”

“노룡구를 따라 백단의 험한 땅을 넘으면 아무것도 없는 벌판으 로 나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유성(柳城)까지는 멀지 않으니 군사를 급히 몰면 적이 미처 방비하지 못한 틈을 타 들이치실 수 있을 것이 요, 묵돌(冒頓, 한나라 초기의 유명한 흉노 우두머리 이름으로 여기서는 그냥 흉노의 우두머리[單于]를 가리킴)쯤은 한 싸움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 니다.”

조조가 자세히 살펴보니 전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에 조조는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전주에게 정북장군의 벼슬을 내린 뒤 향도관(鄕導官)으로 삼아 삼군의 길을 인도하게 했 다. 그리고 장요로 하여금 전주의 뒤를 받치게 하고 자신은 뒤를 맡 았다.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가벼운 차림으로 말을 타고 속도를 배로 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앞장선 전주가 장요를 인도하여 백랑산(白狼

山)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흉노의 우두머리를 만나 수만 기를 빈 원희와 원상이 마주쳐왔다. 장요는 급히 진군을 멈추고 뒤따라오는 조조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조조는 스스로 말을 몰아 높은 곳에 이른 뒤 적진을 바라보았다. 흉노의 군사들은 대오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진세를 벌임도 어지럽 기 짝이 없었다.

“적병의 대오가 흐트러진 걸 보니 두려워할 게 없다. 어서 내려가 치도록 하라.”

조조가 장요를 불러 그렇게 일렀다. 상대가 낯선 오랑캐 군사들이 라 까닭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장수들은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장요 를 비롯해 서황, 허저, 우금 네 장수가 각기 군사를 이끌고 길을 나 누어 밀고 내려갔다. 범 같은 네 장수가 힘을 다해 치고 들어가자 흉 노의 군사들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 미련한 오랑캐놈, 어디로 도망치느냐.”

갈팡질팡하는 졸개들 사이에서 흉노의 우두머리 묵돌을 본 장요 가 그렇게 소리치며 덮쳐갔다. 묵돌이 힘을 다해 맞섰으나 장요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몇 번 창칼이 부딪기도 전에 장요의 칼을 맞고 말에서 굴러떨어지니 졸개들은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믿고 있던 묵돌과 졸개들이 그 꼴로 부서지자 원상과 원희는 일 이 글러버린 줄 알았다. 겨우 수천 군사만 이끌고 이번에는 요동을 바라 달아났다.

한 싸움에 크게 이긴 조조는 군사를 수습해 유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싸움에 공이 많은 전주를 유정후(柳侯)에 봉한 뒤 유성을 주어 지키게 했다. 전주가 감회에 젖어 울며 말했다.

“저는 의를 저버리고 도망쳐 온 놈이니 승상의 두터운 은혜를 입 어 목숨을 건진 것만도 여간 큰 다행이 아닙니다. 어찌 옛 주인의 땅 인이 노룡의 성채를 판 값으로 벼슬과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받을지언정 차마 벼슬은 받지 못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어 길은 안내했지만, 그래도 옛 주인을 저버린 부끄러 움은 잊지 않은 말이었다. 조조는 그 같은 전주를 의로운 사람이라 여겼다. 유성의 수장으로 삼는 대신 의랑 벼슬을 내려 자신의 곁에 머물게 했다.

조조는 그곳의 백성들과 흉노를 아울러 어르고 달랜 뒤 좋은 말 만 필을 얻고 곧 군사를 돌렸다. 이때 날씨가 매우 찬 데다 가뭄이 심했다. 또 군량마저 떨어져 군사들은 말을 잡아 양식으로 삼고 네 길을 파서야 물을 얻는 고생을 했다.

간신히 역주로 돌아간 조조는 전에 그 싸움을 말렸던 조홍 등에 게 무거운 상을 내리며 말했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까지 나아가 요행 싸움에는 이겼다. 하지만 비록 싸움에는 이겼다 해도 이것은 하늘이 도와준 덕분이지 이치에 맞아 그리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싸움을 앞서 말린 그 대들이야말로 내게 옳은 계책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이 상은 그 때 문에 내리는 것이니 뒷날에도 내게 좋은 말로 이르는 걸 어렵게 여 기지 말라.”

실로 밝은 포상이었다.

그때 곽가는 이미 죽어 며칠이 지난 뒤였다. 조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 영구는 공청(公廳)에 놓여 있었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마자 곽가의 영구가 안치된 공청으로 달려가 크게 울며 말했다. 

“봉효가 죽다니 이는 하늘이 나를 상케 하려 하심이로구나!”

그러고는 곁에 있는 여러 벼슬아치들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그대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나 오직 곽가만이 나보다 많 이 어렸소. 나는 그에게 나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하려 했더니 오히려 젊은 나이에 이렇게 죽고 말았구려. 실로 내 마음이 부서지고 쪼개 지는 듯하다.”

그때 곽가를 시중 들던 군사가 글 한 통을 조조에게 올렸다. 곽가 가 죽기 전에 써서 남긴 글이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하여 몸소 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승상께서 만약 여기 쓰인 대로만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절 로 해결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 같은 말과 함께 글을 전해 받은 조조는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고 읽었다.

“실로 봉효는 하늘이 낸 재주였구나!”

읽기를 마친 조조는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곽가가 남긴 글에 담긴 뜻을 알지 못 했다.

다음 날이었다. 하후돈이 여럿과 함께 들어와 조조에게 말했다. 

“요동 태수 공손강(公孫康)은 이미 오래전부터 승상께 복종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제 원희와 원상이 그리로 투항해 갔으니 반드시 머지않아 큰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차라리 그것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손을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급히 군사를 보내 치면 요동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들의 범 같은 위엄을 빌지 않아도 며칠 안으로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목을 보내올 것이네.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보 게나.”

하후돈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로서는 도무지 믿지 못할 조조의 말이었다.

한편 그 무렵 원희와 원상은 겨우 수천 기를 이끌고 요동에 이르 렀다. 요동 태수 공손강은 원래 양평 사람으로 무위장군을 지낸 공 손탁)의 아들이었다. 원희와 원상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여러 관원들을 불러놓고 어찌해야 좋을지를 의논했다.

“지난날 원소가 살아 있을 때도 늘상 우리 요동을 삼키려는 마음 이 있었습니다. 이제 원희와 원상이 싸움에 지고 의지해 살 땅이 없 어 투항해 온다고는 하나, 이는 비둘기가 까치집을 뺏으러 듦과 다 르지 않습니다. 만약 받아들인다면 뒷날 반드시 우리 땅을 삼키려 들 것이니 차라리 성안에 불러들여 죽여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 하면 뒷날의 근심거리를 미리 없애두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원희와 원상의 목을 조공께 바치면 조공은 또 조공대로 우리를 두터이 대접 할 것입니다.”

공손공(公恭)이 일어나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와 우리 요동을 엿보면 어찌하겠느냐? 그때는 차라리 원희와 원상을 살려두어 우리를 돕게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공손강이 미덥잖은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공손공이 다시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거야 사람을 시켜 알아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조조가 군 사를 이끌고 이리로 오고 있다면 두 원씨를 살려 우리를 돕게 하고, 오지 않는다면 그 둘을 죽여 조공에게 보내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공손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사람을 보내 조조의 움직임을 살펴보게 했다.

한편 원희와 원상은 요동에 이르자 가만히 의논했다.

“요동의 군사는 수만에 이르니 넉넉히 조조와 겨루어볼 만하다. 지금 잠시 투항하는 체하다가 공손강을 죽이고 그 땅을 뺏어 힘을 기르도록 하자. 그 뒤에 다시 중원으로 나아가면 하북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상이몽이란 바로 그런 양쪽을 보고 이르는 말 같았다. 원희와 원상이 그렇게 계책을 정하고 성안에 들어가자 공손강도 속마음을 숨긴 채 그들을 역관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공손강 자신은 병을 핑계로 바로 만나주지 않고 조조의 움직임을 살피러 보낸 세작들이 소식을 보내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며칠 안 돼 세작이 돌아와 알렸다.

“조조는 여주에 군사를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동으 로 내려올 뜻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에 공손강은 드디어 뜻을 정했다. 그날로 칼과 도끼를 든 군사들을 벽에 둘러친 휘장 뒤에 숨기고 원희와 원상을 불러들였다.

내막을 알 리 없는 원희와 원상은 공손강이 부른단 말을 듣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제 요동은 우리 땅이다!’

아마도 서로 처음 만나는 예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원씨 형제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동상이몽도 곧 깨질 때가 왔다. 날이 몹시 찬데도 자기들이 앉을 자리에 깔개가 놓여 있지 않 은 걸 보고 원상이 공손강에게 말했다.

“자리에 방석이 놓이지 않았구려.”

공손강의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그런 줄 안 모양이었다.

공손강은 그 말을 듣자 기다렸다는 듯 두 눈을 부라리며 꾸짖었다. 

“너희 둘의 머리는 이제 만 리를 가게 될 것인데 자리는 챙겨 무 엇 하려느냐?”

그 말에 비로소 공손강의 뜻을 짐작한 원상은 크게 놀랐다. 그러 나 무어라고 말을 붙여보기도 전에 공손강이 좌우를 둘러보며 소리 쳤다.

“무엇들 하느냐? 어찌하여 아직도 손을 쓰지 않느냐?”

숨어 기다리던 무사들이 그 같은 공손강의 명에 우르르 달려 나 와 원상과 원희를 목 베어버렸다. 너무도 허망한 원가의 최후였다. 공손강은 원상과 원희의 머리를 목합에 담아 역주의 조조에게 보냈 다. 그때 조조는 여전히 이주에 군사를 머무르게 한 채 움직이지 않 았다. 보다 못한 하후돈과 장요가 조조를 찾아보고 말했다.

“요동으로 군사를 내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허도로 돌아가는 게 낫겠습니다. 혹시라도 유표가 딴 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조조의 대답이 엉뚱했다.

“원희와 원상의 머리가 이곳에 이르는 대로 곧 군사를 돌리겠네. 잠시만 더 기다리게.”

마치 맡겨둔 물건 보내오기라도 기다리는 듯한 말투였다. 조조의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들 속으로 의아하게 여겼다. 그 때 홀연 사람이 와서 알렸다.

“공손강이 원상과 원희의 목을 베어 보내왔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거기다가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 전갈을 받으면서 조조가 하는 말이었다.

“과연 봉효가 헤아린 바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조조가 갑자기 벌써 죽은 지 오래인 곽가를 들먹이자 사람들은 이상했다. 공손강에게서 온 사자들이 큰 상을 받고 물러간 뒤 조조 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이 곽가가 헤아린 바에서 벗어나지 않는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조조는 비로소 곽가가 죽기 전에 써서 남긴 글을 여럿에 게 보여주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제가 듣기로 이번에 원희와 원상이 요동으로 투항해 갔다고 하는 바, 명공께서는 절대로 군사를 움직여 뒤쫓지 않도록 하십시오. 공 손강은 원씨가 자기 땅을 삼키려 듦을 오래전부터 두려워해온 터라 원희나 원상이 가면 반드시 그들을 의심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승상 께서 군사를 들어 요동을 치면 공손강은 그들과 힘을 합쳐 항거할것이니 급히 몰아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오히려 군사를 묶어놓고 천천히 때를 기다리시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공손강과 원씨는 틀 림없이 서로 다투게 될 것이니 승상께서 바라시는 바는 절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 헤아림이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발 을 구르며 곽가의 죽음을 아깝게 여기고 그 재주를 칭찬해 마지않 았다.

죽을 때 곽가의 나이 겨우 서른여덟, 조조를 만나 따르기 열한 해 되던 해였다. 조조도 새삼 곽가의 죽음이 애석한지 크게 제사를 차 려 곽가의 혼을 위로함과 아울러 그동안 곽가가 세운 크고 작은 공 을 기렸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곽가를 노래했다.

하늘이 곽봉효를 내니 天生郭奉孝

무리진 영웅 중에 으뜸일세. 豪傑冠群英

뱃속에는 경사를 품고 腹內臧經史

가슴에는 갑병을 감춘 듯하네. 胸中隱甲兵

꾀를 씀에는 범여와 같고 運謀如范蠡

계책을 정함은 진평을 닮았네. 決策似陳

애석하다 몸이 먼저 죽으니 可惜身先喪

중원의 대들보와 기둥이 기우는구나. 中原樑棟傾

범여는 전국시대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사람이요, 진평은 한고조를 받들어 한나라 사백 년의 기틀을 다진 사람으로 곽가는 바로 그런 그들의 지모에 비교되고 있다. 설 혹 과장이 있다 해도 그것은 젊어 죽은 그에 대한 뒷사람의 애석함 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리라.

조조는 원희와 원상의 목까지 얻은 뒤에야 군사를 돌려 기주로 돌아갔다. 그리고 먼저 곽가의 영구를 허도로 돌려보내 후하게 장사 지내게 했다.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장졸들과 함께 기주에 머물러 있자 정욱(昱)을 비롯한 몇 사람이 조조에게 권했다.

“북방은 이미 평정되었으니 이제는 눈길을 강남으로 돌릴 때입니 다. 허도로 돌아가 강남을 도모할 계책을 세우도록 하십시오.” 

“나도 그리 뜻을 품은 지 이미 오래요. 그대들의 말이 바로 내 마음과 같소.”

조조도 기꺼이 그 말을 따랐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조조는 성 동쪽에 있는 누각에서 난간에 기댄 채 천문을 보았다. 그때 순유가 곁에 있었는데, 문득 조조가 남 쪽 하늘을 가리키며 근심스레 순유에게 말했다.

“남쪽에 왕성한 기운이 저토록 찬연하니 마침내 도모하지 못할까 두렵네.”

순유가 바라보니 과연 그러했지만 짐짓 별것 아니라는 듯 조조를 위로했다.

“승상의 하늘 같은 위엄에 어찌 복종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조 금도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다시 하늘을 살피고 있는데 문득 한 줄기 금빛 기운이 땅에서부터 뻗쳐 오르는 게 보였다. 순유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빛이 뻗어 오르는 곳에는 반드시 보배로운 물건이 묻혀 있을 것입니다.”

조조의 눈에도 범상찮은 빛이었다. 조조는 곧 군사들을 보내 그 금빛 기운이 뻗어 오르는 곳을 파보게 했다. 거기서 나온 것은 뜻밖 에도 한 마리 구리로 빚은 참새였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조조가 순유에게 물었다. 순유는 한동안 그 구리로 된 참새를 살 핀 뒤에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했다.

“지난날 순(舜)임금의 어머니는 꿈에 옥으로 된 참새가 품 안으로 날아드는 걸 보고 순 임금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제 승상께서는 비 록 구리로 된 참새를 얻으셨으나 역시 길조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말에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 구리 참새를 얻은 일을 경축하 기 위해 높은 대를 쌓도록 했다. 명을 받은 군사들이 그날로 땅을 깎 고 나무를 베어 터를 닦은 뒤 기와와 벽돌을 구워 대를 쌓으니 이름 하여 동작대雀臺)였다. 자리 잡은 곳은 장하) 가로, 일 년을 기한 삼아 공사를 해나가는데 셋째 아들 조식이 조조를 찾아보고 말 했다.

“대를 쌓으시려면 반드시 셋을 쌓도록 하십시오. 가운데의 높은 것을 동작雀)이라 이름하고 왼쪽 것은 옥룡(玉龍), 오른쪽은 금봉 (金鳳)이라 이름하되 대와 대 사이에는 구름다리를 놓도록 하심이 좋겠습니다. 공중을 가로질러 두 다리가 떠 있으면 자못 볼만할 것 입니다.”

땅에서부터 뻗쳐 오르는 게 보였다. 순유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빛이 뻗어 오르는 곳에는 반드시 보배로운 물건이 묻혀 있을 것입니다.”

조조의 눈에도 범상찮은 빛이었다. 조조는 곧 군사들을 보내 그 금빛 기운이 뻗어 오르는 곳을 파보게 했다. 거기서 나온 것은 뜻밖 에도 한 마리 구리로 빚은 참새였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조조가 순유에게 물었다. 순유는 한동안 그 구리로 된 참새를 살 핀 뒤에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했다.

“지난날 순(舜)임금의 어머니는 꿈에 옥으로 된 참새가 품 안으로 날아드는 걸 보고 순 임금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제 승상께서는 비 록 구리로 된 참새를 얻으셨으나 역시 길조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말에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 구리 참새를 얻은 일을 경축하 기 위해 높은 대를 쌓도록 했다. 명을 받은 군사들이 그날로 땅을 깎 고 나무를 베어 터를 닦은 뒤 기와와 벽돌을 구워 대를 쌓으니 이름 하여 동작대雀臺)였다. 자리 잡은 곳은 장하) 가로, 일 년을 기한 삼아 공사를 해나가는데 셋째 아들 조식이 조조를 찾아보고 말 했다.

“대를 쌓으시려면 반드시 셋을 쌓도록 하십시오. 가운데의 높은 것을 동작雀)이라 이름하고 왼쪽 것은 옥룡(玉龍), 오른쪽은 금봉 (金鳳)이라 이름하되 대와 대 사이에는 구름다리를 놓도록 하심이 좋겠습니다. 공중을 가로질러 두 다리가 떠 있으면 자못 볼만할 것 입니다.”

“네 말이 아주 그럴듯하다. 뒷날 이 대가 다 이루어지면 이곳에 와서 늙음을 즐겨야겠구나.”

원래 조조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조식이 밝고 지혜로운 데다 글을 잘 지어 조조는 그를 가장 아꼈다. 그 조식이 하 는 말이니, 그러잖아도 북방을 평정해 기분이 한껏 흥겨운 조조는 두말없이 따랐다. 어떤 의미에서 동작대는 조조의 북방평정(平 定)을 기념하는 개선문이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작대가 아무리 뜻 깊은 것이라 해도 다 지어질 때까지 허도를 비워둔 채 그곳에 앉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조조는 아들 조비와 조식을 업성에 남겨 동작대 짓는 일을 맡아 보 살피게 하고 장연은 북쪽을 지키게 한 뒤 자신은 군사를 허도로 돌 렸다.

이때 조조를 따라 돌아간 군사는 원씨의 군사들을 아울러 오륙십 만이나 되었다. 그토록 어려운 싸움을 겪고도 오히려 군사를 몇 배 나 불려 돌아간 셈이었다.

허도로 돌아간 조조는 공 있는 이들에게 골고루 벼슬과 상을 내 렸다. 그리고 따로 천자에게 표문을 올려 죽은 곽가를 정후(貞侯)로 올려 세우는 한편 그 아들 혁)은 자신의 부중으로 데려다 길렀다. 대강 그렇게 논공행상이 마무리되자 조조는 다시 모사들을 불러 모아 남쪽의 유표를 칠 의논을 시작했다. 순욱이 그런 조조를 말렸다. 

“대군이 이제 막 북정(北征)에서 돌아왔으니 다시 급하게 움직여 서는 아니 됩니다. 반년만 기다리며 그 힘과 날카로움을 쌓은 뒤에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때는 북소리 한 번으로 유표와 손권을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조조도 스스로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곧 순욱의 말을 따라 군사들을 나누어 둔전(田)케 하고 뒷날을 기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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