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5권 – 1화 :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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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5권 – 1화 :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랴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랴

조조가 하북을 평정하고 허도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멀리 형주에 있는 유비의 귀에도 들어왔다. 하루는 대낮부터 벌겋게 술이 오른 장비가 유비를 보러 들어와 투덜거렸다.

“형님, 도대체 언제까지나 이 코딱지만 한 시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계실 작정이오?”

코딱지만 한 시골이란 유비가 그 전해부터 유표에게서 얻어 다스 리고 있는 신야현(新野縣)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달 래며 돗자리를 치고 있던 유비가 손길을 멈추고 조용히 그런 장비를 건너다 보았다. 그곳으로 옮긴 뒤부터 새로이 치기 시작한 돗자리였 다. 이제는 젊은 날의 어느 때처럼 저잣거리에 내다 팔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나 돗자리 치기는 유비에게 여러 가지 뜻이 있었다.

군사들이 베어 온 골풀을 다듬어 한 줄기 한 줄기 돗자리 틀에 넣 으면서 이런저런 시름을 잊는 것 외에도, 그렇게 짜인 돗자리를 보 면서 참고 기다리며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한다는 자세를 스스로 가 다듬었다. 거기다가 남들이 모두 천하게 여기는 그 일에 정신이 팔 려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은연중에 자신의 소탈하고 야심 없음 을 강조해두는 것도 그 무렵 들어서는 아주 중요했다.

“조조 놈이 원가(袁家)를 깡그리 때려잡고 허도로 돌아왔단 말요.” 

유비가 아무 말이 없자 장비가 한 번 더 충동하듯 말했다. 그제서 야 유비가 나직이 물었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이젠 다 틀렸소. 조조 놈을 잡기는 이제 영 글렀단 말이오. 중원 이 통째 그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사실은 천하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 없소. 이젠 정말로 돗자리나 치며 남은 세월을 보내셔야겠소.” 

“실은 나도 여러 번 유경승에게 조조가 비워둔 허도를 치자고 말 했다. 그러나 듣지 않으니 난들 어찌하겠느냐?”

유비가 그렇게 말하자 장비는 더욱 부아가 나는 모양이었다. 돌연 목소리를 높이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유표 그 쓸모없는 늙은 것은 이제 무덤 쓸 땅도 남지 않게 될 것 이오. 젊은 계집의 치마폭에 휩싸여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유비가 문득 엄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그러나 장비는 이미 내친김 이라는 듯 조금도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형님도 그렇소. 우격다짐을 써서라도 일이 되도록 했어야 될 것 아니오? 진작 허도로 밀고 갔더라면 지금쯤은 조조 놈 갈 곳이 없었을 게요.”

“세상 일이 그리 네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다 때가 있으니 서둘지 말아라.”

유표의 마음이 여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 게 애석하기는 자 신도 마찬가지였으나 유비는 짐짓 속마음을 숨기며 장비를 달랬다. 그래도 장비는 한동안을 더 불퉁거리다가 사냥이라도 하겠다며 말 을 달려 나갔다.

“형주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장비가 나간 뒤 유비가 한층 울적한 심경으로 돗자리를 치고 있 는데 손건이 들어와 알렸다. 만나보니 유표 곁에서 일하는 주리(州 吏)였다.

“우리 사군께서 장군을 부르십니다.”

그 같은 전갈을 들은 유비는 곧 의관을 갈아입고 말에 올랐다. 까 닭은 알 수 없었으나 신야로 옮긴 이래 유표가 사람을 보내 부르는 일이 그리 잦지는 않았다.

바깥에 나오니 날이 흐리고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 따뜻한 남쪽으로 치우친 지방이라고는 하나 겨울은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벌써 이곳 형주로 내몰린 지도 너덧 해가 되는구나. 내 나이 이미 마흔일곱, 아직도 남의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아아, 장차 남은 날이 어찌되려는가………….’

찬바람을 맞으며 말등에 올라 길을 재촉하던 유비는 문득 속으로 그렇게 탄식했다. 이 십여 년, 홍안의 청년으로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난 지 이십여 년, 아직도 그는 무릎 댈 땅조차 없는 떠돌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자신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은 유비로 하여금 절로 지난 세월 을 되돌아보게 했다. 특히 형주로 옮겨 앉은 뒤의 너덧 해는 이제는 거의 후회와 같은 느낌으로 그를 괴롭혔다.


유비는 조조에게 쫓긴 나머지 어쩔 수 없어 의지해 갔으나 유표 는 그를 맞아 몹시 두터이 대접했다. 한낱 갈데없는 객장(客將)으로 서가 아니라, 피붙이의 정과 귀한 손님을 모시는 예로서였다.

그 덕분에 유비의 가솔들과 측근은 오랜만에 평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생각하면 그 무렵의 몇 년은 거의 칼의 숲을 헤치고 피의 내를 건너며 지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에 남의 밑에 있다가 항복하여 유표의 장 수가 된 장무(張武)와 진(陳)이 강하의 백성을 약탈하며 모반을 꾀한다는 급한 전갈이 들어왔다. 때마침 유비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 다가 그 같은 전갈을 들은 유표가 놀라고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 두 도적이 다시 모반을 한다면 화가 결코 작지 아니하겠구나!”

그때 유비가 나서서 말했다.

“형님께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저를 보내 그 두 도적을 잡도록 해주십시오.”

그 말에 어둡던 유표의 얼굴이 일시에 밝아졌다. 청하기라도 해야 할 판에 스스로 가겠다고 나서니 유표는 그 자리에서 허락하고 삼만 군사를 유비에게 내주었다.

“아우는 먼저 가서 도적들의 기를 꺾어놓게. 내 곧 뒤따라감세.”

그 같은 명을 받은 유비는 그날로 행군을 시작하여 하루 만에 강하에 이르렀다.

유비가 왔다는 말을 듣자 장무와 진손도 군사를 이끌고 나와 맞 섰다. 유비는 관, 장두 아우와 조운을 데리고 문기 아래로 나와 그 런 장무와 진손의 세력을 살폈다.

그때 장무는 한 마리 말 위에 높이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는 데 유비가 보니 그 말이 예사말이 아니었다.

“저 말은 반드시 천리마일 것이다.”

장무는 제쳐놓고 한참이나 그 말만 바라보던 유비가 탐나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곁에 있던 조운이 미처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말을 박차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제가 저 도적을 죽이고 말을 가져다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조운이 창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뛰어들자 그쪽에서도 장무가 겁 없이 말을 몰며 마주쳐왔다. 조운은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두 말이 엇갈리기 세 번도 되기 전에 장무를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고, 놀란 그 말의 고삐를 잡았다. 그 말을 탐내는 유비에게 바치고자 함이었다. 진손은 조운이 자기 동료를 찔러 죽이고 그 말을 뺏어 돌아가는 걸 보자 두려운 중에도 분기를 참을 길이 없었다. 긴 칼을 휘둘러 뒤 쫓으며 동료의 말을 되찾으려 했다.

“저놈은 내가 맡겠소.”

그걸 본 장비가 장팔사모를 꼬나들고 말 배를 차며 소리쳤다. 조 운이 적의 우두머리 둘을 모두 죽여버릴까 봐 걱정된다는 듯한 서두름이었다.

장무가 조운의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처럼 진손도 장비의 적수로는 아무래도 모자랐다. 장비의 한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지니 그 걸 본 졸개들은 그대로 풍비박산 흩어져버렸다.

유비는 나머지 무리들을 달래 항복받고 강하의 여러 현을 다시 평온케 만든 뒤 형주로 돌아갔다. 유표는 친히 성 밖까지 나와 이기 고 온 유비를 성안으로 맞아들이고 크게 잔치를 열어 그 공을 치하 했다.

술이 반쯤 올랐을 무렵이었다. 유표가 문득 술잔을 멈추고 말했다.

“아우가 이토록 웅재(雄)를 갖추고 있으니 우리 형주로서는 실 로 의지하는 바 크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남월(南越)의 오랑캐가 느닷없이 몰려오는 것과 장로, 손권이 움직이는 것이네. 그들만 아 니라면 두 다리를 편히 뻗고 지낼 수 있으련만…………..?”

그러자 유비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일이라면 형님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이 아우에게 세 장수가 있는데 모두 쓸 만한 인물들입니다. 장비로 하여금 남월 과의 경계를 돌며 보살피게 하고 관우는 고자성에서 장로를 막게 하 며 조운은 삼강(三江)으로 보내 손권을 당하게 하신다면 무엇을 달 리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유표가 들으니 가슴속의 걱정이 한꺼번에 스러지는 말이었다. 기 꺼이 그 말을 따라 장비와 관우와 조운을 각기 유비가 정한 곳으로 보내 지키게 했다.

유표의 장수요, 처남인 채모(瑁)는 그 소식을 듣자 곧 누이인 채 부인을 찾아보고 말했다.

“유비는 수하 장수 셋을 외지로 내보내고 자신만 이 성안에 남아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 형주의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니 누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형주에서 유비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게 마땅치 않아서 하는 말이었다. 이때 채부인은 전처가 낳은 장남을 제치고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형주를 넘겨주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유표를 졸라대는 중 이었다. 아우의 말이 진실이라면 형주는 제 아들이 물려받기 전에 유비에게 먼저 넘어갈 것 같아 안달이 났다. 그날 밤이 되자 유표의 베갯머리에서 속살거렸다.

“제가 들으니 형주 사람들이 모두 유현덕을 우러러 그와 오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미리 방비를 해야지요. 특 히 지금 유현덕을 성안에 있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로울 게 없으 니 바깥으로 내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우선 유비를 유표에게서 떼어놓고 일을 꾸미려는 속셈이었다. 그 러나 그사이 유비의 인품에 흠뻑 반해버린 유표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유현덕은 어진 사람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마시오.”

유표가 그렇게 나오자 채부인도 당장은 어쩌는 수가 없었다. 더는 조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마디 쐐기를 박아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 같 지 않을까 봐 걱정입니다.”

유표는 그 말까지 타박을 주지는 않았으나 찌푸린 얼굴로 입을 다무는 걸 보아 마음이 움직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은 뜻밖의 방향에서 채부인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다음 날이었다. 유표가 보니 유비가 매우 좋은 말을 타고 있는데 전에 보 지 못했던 말이었다.

“말이 아주 훌륭하군. 어디서 얻었는가?”

유표가 이리저리 말을 살피다가 물었다. 무장은 아니지만 전란의 시대를 살다 보니 좋은 말을 탐내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유비 가 겸연쩍은 듯 대답했다.

“지난번 싸움에서 얻었습니다. 바로 장무가 타던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여포의 적토마인들 이보다 더하겠는가?”

유비의 대답을 듣고도 유표는 그렇게 찬탄하기를 마지않았다. 유 비는 유표가 그 말을 탐내는 걸 보자 기꺼이 유표에게 바쳤다. 

“마음에 드신다니 받아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표는 건성으로 몇 번 사양하다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말을 갈아 타고 성안으로 돌아가니 모사 괴월(越) 이 그 말을 살피다가 물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말을 타셨습니다.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유현덕이 준 것일세.”

유표는 기쁜 얼굴로 말을 얻은 경위를 밝혔다. 그러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전에 선형(兄) 괴량(良)이 말의 상을 잘 보았는데 저 역시 조금은 볼 줄을 압니다. 지금 이 말은 눈 아래 눈물받이[淚槽]가 있고 머리에도 흰 점이 있는 걸로 보아 적로(盧)란 이름의 말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은 반드시 그 주인을 해친다고 하니 주공께서는 타지 않도록 하십시오. 전 주인인 장무가 죽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괴월의 말을 듣자 유표는 공연히 가슴이 섬뜩했다. 그리고 그 말을 자기에게 준 유비까지 문득 의심스러워졌다.

유표는 다음 날 일찍 유비를 불러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어제 좋은 말을 주어 참으로 고맙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말은 나 같은 위인이 탈 물건이 못 되는 것 같네. 아우는 언제 싸움에 나 갈지 모르는 사람이라 항상 좋은 말이 필요할 게 아닌가? 내게 준 뜻은 고마우나 돌려보낼 테니 잘 쓰도록 하게.”

이미 그 말이 주인을 해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은 알려주지 않고 말만 돌려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유비를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유비는 고맙게 적로마를 되돌려받았다. 그 로서는 내심 아끼면서도 마지못해 바친 말이었기 때문이다.

유비가 고마워하며 되돌려받는 것으로 미루어 나쁜 뜻으로 그 말 을 자신에게 보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나 한번 시작된 유표의 의심은 스러지지 않았다. 며칠 전 밤에 채부인이 속살거리던 말이 떠오르며 문득 유비를 성안에 데리고 있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 다시 말했다.

“현제가 이 성안에 머문 지 오래되어 자칫하면 군사 다스리는 일 을 잊어버릴까 두렵네. 양양에 딸린 땅으로 신(新野)란 현이 있는 데 그리로 가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리 넓지는 않아도 돈과 곡식은 넉넉한 곳이니 거느린 군마를 이끌고 가서 머물 만은 할 것이네.”

말하자면 점잖은 축객(客)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기꺼이 응낙하 고 다음 날로 형주를 떠나 신야로 향했다. 본래 데리고 있던 군마며 가솔들도 모두 따라나섰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유비가 막 형주를 벗어날 무렵이었다. 한 사람이 말 앞을 막아서며 길게 읍(揖)을 한 채 말했다.

“공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유비가 보니 유표의 막하에서 손[] 노릇을 하고 있는 이적(伊) 이란 사람이었다. 자를 기백(機伯)이라 쓰며 산양(山陽) 땅에서 왔는 데 재주만큼 중하게 쓰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유비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며 물었다.

“공이 타신 말은 탈 만한 짐승이 못 됩니다.”

이적은 그렇게 대답한 뒤 황망히 말에서 내려 까닭을 묻는 유비 에게 가만히 일러주었다.

“어제 들으니 괴월은 유표에게 그 말의 이름은 적로이며 그걸 타 면 반드시 주인을 해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유표가 그 말을 공에게 다시 돌려준 것은 오로지 그 때문인데, 공은 어찌하여 다시 그 짐승 을 타고 계십니까?”

그 말에 유비가 대답했다.

“선생께서 이 유아무개를 이토록 어여삐 보아주시니 무어라 감사 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다 천 명에 달린 것인즉 어찌 한 마리 말에 좌우되겠습니까?”

조금도 꺼림칙해하는 기색이 없는 표정이었다. 이적은 유비의 그같이 초연한 응대에 깊이 감복했다. 그때부터 한층 유비를 우러르며 가깝게 지냈다.

유비가 신야에 이르자 군민이 함께 기뻐하며 맞아들였다.

조조가 언제 원소를 깨뜨리고 그 여세를 몰아 형주로 밀고 내려 올지 모르는 때에 유비 같은 실력자가 자기들을 지켜주러 온 까닭이 었다. 유비도 그런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치를 새롭 게 하여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며 조세를 가볍게 하고 법을 공정하게 시행하니 오래잖아 신야는 인근의 그 어떤 고을보다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그사이 해가 바뀌어 건안) 십이년이 되었다. 유비에게 오랫 동안 기다리던 경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쉰을 바라보는 나이로 첫아들을 보게 된 일이었다. 감부인이 낳은 유선(劉禪)이었다.

유선이 태어나던 날 밤 백학 한 쌍이 현청 지붕 위로 날아와 마흔 번이나 운 뒤에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또 태어날 때는 이상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여 사람들은 모두 귀하게 여겼다.

유비는 태어난 아들의 아이적 이름을 아두阿)라고 지어 불렀 는데, 그것은 감부인이 북두칠성을 삼키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기에 그리한 것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태어난 아들의 범상치 않은 미래 를 짐작게 하는 길조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조조는 원소의 잔당들을 쫓아 한창 북방을 누비고 있었 다. 신야에서의 생활에 안주함도 잠시, 유비의 야심은 다시 꿈틀거 렸다. 유비는 곧 형주로 가 유표를 찾아보고 권했다.

“지금 조조는 모든 군사를 몰아 북방을 평정하고 있으니 허창은 반드시 비어 있을 것입니다. 만약 형주와 양양의 군사를 들어 그 틈 을 엿보고 허창을 친다면 큰일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유표의 대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형주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넉넉하네. 따로 무얼 또 꾀한단 말인가?”

패기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대답이었다. 유비는 더 말해야 소용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굳게 입을 다물고 서 있다가 이내 물러나려 했다.

“우리 뒤채로 가 술이나 드세. 마침 할 말도 있고……”

유표가 문득 돌아가려는 유비의 소매를 끌었다. 그리 즐겁지는 않 았으나 유비는 잠자코 유표를 따라 후당으로 갔다.

하지만 술이 반이나 오르도록 유표는 입을 떼지 않았다.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따금씩 길게 탄식을 내뱉을 뿐이었다. 

“형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토록 길게 탄식하십니까?” 

참다못한 유비가 조용히 술잔을 놓으며 물어보았다. 유표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실은 내게 몹시 마음 쓰이는 일이 있네. 하지만 말하기가 쉽지 않으이.”

“어떤 일이기에 그렇습니까?”

유비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유표가 아직 머뭇거리는데 문득 병 풍 뒤에서 채부인의 기척이 났다. 그러자 유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끝내 대답을 안했다. 채부인이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분위기가 그렇게 되니 술자리는 곧 끝이 났다. 유비는 무엇이 유 표를 괴롭히는지 궁금하면서도 끝내 듣지 못한 채 신야로 돌아갔다. 하지만 채부인이 걸려 있다면 유표의 집안일일 것이라 여겨 그 뒤로 는 형주로 가는 일을 삼갔다. 쓸데없이 남의 집안일에 말려들어 해 를 입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비가 다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돗자리 치기를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배운 도둑질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지.”

유비를 얕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렸으나 딴 뜻이 있는지라 유비는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양 인근에 있는 젊은 선비 여럿이 유비 를 보러 왔다. 각기 학문을 닦아 이제는 세상에 나가 쓰일 길을 찾고 있는 이들로 은근히 유비의 세력과 사람됨을 살피러 온 듯했다.

당시에는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그럴 때 유비는 잠자코 그들에 게 있는 대로를 보여주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원래도 겉꾸밈을 싫어하거니와 쓸데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여 유표를 자극하 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날도 유비는 그들을 맞아 전처럼 있는 대로 보여주었다. 그 얼 마 전에 누가 쇠꼬리 털을 많이 가져다주었는데 유비는 그걸 손으로 꼬면서 가만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유비의 세력이 보 잘것없는 것에 실망하고 그토록 어지러운 시기에 기껏 돗자리의 골풀 대신 쓰려고 쇠꼬리 털이나 꼬고 앉아 있는 유비가 한심스러워 한동안 건성으로 떠들던 선비들은 이윽고 하나둘 일어나 가버렸다. 그런데 유독 한 젊은이만이 모두들 다 가고 난 뒤에도 남아 유비 가하는 양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앞서 나간 사람들과 마찬가지 로 시골 구석에서 글줄이나 읽고 시덥잖은 야심에 들떠 있는 선비쯤 으로 여겨졌다. 거기다가 나이도 어려 보여 유비는 그를 아는 체 않 고 쇠꼬리털만 말없이 꼬아나갔다.

한동안 유비가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젊은이가 문득 목소 리를 가다듬어 물었다.

“장군께서는 마땅히 크고 깊은 뜻을 되살리시어 천하를 위해 일 하셔야 하거늘 어찌 하찮은 장인들처럼 쇠털이나 꼬고 앉아 계십 니까?”

제법 준엄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물음이었다. 그제서야 유비는 가 만히 그 젊은이를 건너다보았다. 형형한 눈빛이며 단아한 용모가 조 금 전에 떠들다 간 무리와는 다름을 이내 알아볼 수 있었다. 더불어 이야기할 만하다 여긴 유비는 꼬고 있던 쇠꼬리 털을 내던지며 한숨 섞어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어찌 천하의 일을 잊고 있을 리 있겠소? 다만 답답하여 이 일로 잠시 걱정을 잊고자 하였을 따름이오.” 

그러자 그 젊은이가 다시 물었다.

“장군께서 헤아리시기에는 유표가 조조를 당해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층 대담한 물음이었다. 유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 미치지 못하겠지요.”

“장군 스스로는 조조에 비해 어떻다 보십니까?”

“역시 알 수가 없소.”

유비가 다시 음울하게 대답했다. 그 젊은이는 어이없어하는 눈길 로 유비를 살피다 결연히 말했다.

“유표도 장군도 모두 조조에게 미치지 못하심을 아시면서도 불과 수천의 무리로 강한 적을 앉아서 기다리고만 계신단 말입니까? 좋 은 계책이 못 됩니다. 이대로 계셔서는 아니 됩니다.”

“실은 나도 그걸 걱정하고 있소. 그래,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유비가 진지하게 물었다. 아직 새파란 젊은이에게 쉰 고개를 바라 보는 천하의 유비가 가르침을 청하는 자세로 물은 것이었다. 젊은이 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형주는 결코 사람이 적은 고을이 아닙니다. 다만 호적에 오른 수 가 적을 뿐입니다. 따라서 지금 호적에 있는 대로만 사람을 끌어내 쓰려 하면 민심이 기꺼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유표에게 말씀을 드려 호적에서 빠진 백성들을 모두 올리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많은 백성들을 끌어낼 수 있고 조조와의 싸움도 해볼 만해질 것입 니다.”

실로 놀랍고도 고마운 깨우침이 아닐 수 없었다.

유비가 가장 겁내는 것은 하북을 아우른 뒤에 조조가 거느리게 될 백성들의 머릿수였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몇 마디로 그 걱정을 덜어주었다.

“고맙소. 실로 이 유비의 속이 확 트이는 듯하오. 선생의 높으신 이름은 어떻게 되시며 지금 어디에 사시오?”

유비가 문득 옷깃을 여미며 물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제 할 말 을 다 했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더벅머리 서생에게 이름이 있은들 뭐 그리 대단할 것이며, 사는 곳이 어디인들 남 앞에 자랑으로 내놓겠습니까? 우연히 세상 구경 을 나왔다가 몇 마디 되잖은 말로 장군의 귀를 어지럽혀드렸을 뿐입 니다. 뒷날 인연이 닿으면 다시 뵙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 습니다.”

그러고는 유비의 만류도 소용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위략(魏略)』 이나 구주춘추(九州春秋)』에는 그 일이 유비가 번성(城)에 있을 때라고 하나 아무래도 신야에서의 일로 봄이 옳으리라.

어쨌든 그 젊은이가 돌아간 뒤 유비는 곧 유표에게 글을 보내 들 은 말을 그대로 적어 보냈다. 유표도 두말없이 따라 몇 달 안 돼 형 주의 호적은 실제와 비슷하게 되었고, 유표는 그만큼 넉넉히 백성의 머릿수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일로 새삼 그 젊은이가 범상 하지 않음을 깨달은 유비가 다시 그를 만나보려 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 뒤 웬일인지 유표는 유비를 잊은 듯 내왕 없이 지냈다. 그러 다가 거의 반년 만에야 문득 사람을 보내 유비를 불렀다.

유비가 형주에 이르니 유표는 전에 없이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리 고 서로 예를 끝내기 바쁘게 후당으로 끌어들이더니 곧바로 술자리 를 벌였다.

“요사이 들으니 조조는 원소의 잔당을 뿌리 뽑고 허도로 돌아왔다 하네. 그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니 다음으로는 반드시 우리 형주와 양양을 삼키려 들 것이네.”

몇 순배 술이 돈 뒤 유표가 그렇게 허두를 뗐다. 그에게도 역시 조 조의 북방 평정은 흘려 듣고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뜻으로 그 런 말을 꺼내는지 몰라 유비는 가만히 술잔을 멈추고 유표를 살폈 다. 유표는 그 눈길을 피하며 겸연쩍은 얼굴로 새삼 지난 일을 후회 했다.

“지난날 아우가 권하는 말을 듣지 않은 게 한스럽기 짝이 없네. 조조가 하북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 등 뒤를 쳐야 했는데………… 이 제는 그 좋은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네그려!”

유표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호기를 놓친 것은 못내 애석 했으나 스스로 그렇게 후회하고 나오자 유비는 그 일로 더 유표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말로 유표를 위로했다.

“지금 천하는 여러 토막으로 나뉘어 매일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 습니다. 어찌 기회가 다시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앞서고 형님께서 뒤를 밀어주신다면 구태여 그 일을 한스럽게 여기 실 까닭도 없을 것입니다.”

“아우가 그렇게 말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네그려. 자네 말이 옳으이.”

유표가 다소간 기운을 찾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권했다. 둘은 다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나눴다. 어느 때쯤 되었을까, 유표의 말수가 점차 줄어드는가 싶더니 문득 눈물을 주르 르 흘렸다.

“형님께서는 무슨 말 못할 걱정거리라도 있으신지요?”

유비가 놀라 물었다. 유표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울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네. 전에도 한번 아우에게 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틈을 얻지 못했지.”

“어떤 일이길래 형님께서 그토록 결정을 어려워하십니까? 만약 제가 쓰일 데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유비가 진심 어린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유표도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가슴속의 근심을 털어놓았다.

“실은 후사 문제일세. 전처 진씨에게서 맏아들기(琦)를 얻었는데 사람됨은 어지나 너무 부드럽고 물러 큰일을 맡기기에는 부족하네. 또 후처 채씨에게서는 둘째 종琮)을 얻었는데 비록 총명하나 맏아 들 대신 세우려고 보니 예법에 어긋나는 것 같아 두렵네. 그렇다고 다시 맏아들 기를 세운다 해도 일은 곧 쉽지 않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형주의 군무(軍務)는 모두 채씨 집안 사람들 손에 있지 않은 가? 기를 세운다면 뒷날 반드시 변란이 있을 것이니 이를 어쩌면 좋 겠는가? 그래서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밤낮없이 걱정만 하고 있다네.”

“예부터 맏이를 제치고 그 아래로 후사를 삼는 일은 나라를 어지 럽히는 지름길이 되어왔습니다. 만약 채씨 집안 사람들의 권세가 무 겁다면 조금씩 줄여나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잔정에 빠져 어린 아 들을 후사로 세우셔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유비는 옳다고 믿는 바대로 대답했다. 그러나 유표는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겉으로는 근심하는 체 해도 유표의 마음은 이미 후처가 낳은 종에게 기울어져 있었던 듯했 다. 그것도 헤아리지 못하고 맏이를 세우라고 했으니 유비로 보면 실수를 한 셈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더욱 유표가 함부로 말하지 못한 것은 채부인이 병풍 뒤에서 둘의 얘기를 엿듣고 있으리란 짐작 때문이었다. 평소부터 유 비를 의심해오던 채부인은 실제로 그날도 유표와 유비의 얘기를 병 풍 뒤에서 엿듣고 있다가 유비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유비도 유표가 어두운 얼굴로 말이 없는 데다 병풍 뒤에서 희미 한 인기척이 나자 자신이 잘못 말했음을 깨달았다. 얼른 몸을 일으 켜 측간에 가는 양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했다.

하지만 측간에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하니 새삼 자신의 신세가 처 량하게 느껴졌다. 나이 쉰이 가깝도록 아직도 자신의 기업을 마련 못하고 남에게 빌붙어 지내는 것도 그러하려니와 이제는 남의 여자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지경이 되어버린 게 그랬다. 거기다가 벗은 허벅지께에 다시 두둑하게 붙은 살을 보자 유비는 자신도 모르게 눈 물이 솟았다.

한참 뒤에 유비는 눈물 흔적을 지운다고 지우고 방 안으로 돌아 갔으나 워낙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져 흘린 눈물이라 눈가에 흔적 이 남았던 듯하다. 기다리던 유표가 괴이쩍게 여기는 눈길로 물었다. 

“자네 눈가에 눈물 자국이 있네. 어찌 된 일인가?”

그 물음에 유비는 자신도 모르게 긴 탄식을 쏟으며 말했다.

“이 비의 몸은 언제나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남 아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지 여러 해, 싸움 없이 보내 말을 타지 않았더니 넓적다리에 살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세월은 자 꾸 지나가고 늙음은 다가오는데 아직도 이룬 공업(功業)은 아무것도 없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듣기로 아우는 허창에 있을 때 조조와 더불어 푸른 매실을 안주로 술을 마시며 천하의 영웅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더군. 그때 아우는 천하의 명사들을 모두 꼽아 보였지만 조조는 하나도 인 정하지 않고 아우와 자기만이 영웅이라 할 만하다고 말했음을 들었 네. 조조의 권세와 힘으로도 오히려 아우를 먼저 영웅으로 손꼽았는 데, 공업을 이루지 못한 게 무슨 걱정이 되겠는가?”

유표가 좋은 말로 유비를 위로했다. 이때 유비는 괴로운 마음으로 마구 들이켠 술 때문에 다시 취기가 올라 있었다.

불쑥 치솟는 호기로 평소의 조심성도 잊고 감추었던 마음을 드러냈다.

“형님의 말씀은 퍽 위로가 됩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만약 이 유비에게 의지할 바탕만 있다면 천하의 하찮은 무리들이야 걱정 할 게 무엇이겠소!”

그러자 문득 유표의 얼굴이 굳어지며 말이 없었다. 언제나 유비를 야심 없는 호인(好人)으로만 알아왔던 그로서는 유비의 감춰진 면모 를 본 것 같아 새삼 경계심이 일었다.

술기운에 무심코 말했으나 유표의 굳어진 얼굴을 보자 유비는 자 신이 다시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한층 취한 체하며 몇 마디 흰소리를 한 뒤 역관으로 돌아가 곯아떨어지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유표는 유비의 그 같은 말을 듣고 보니 결코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꺼림칙한 기분으로 안채에 들자 채부인이 다시 유표의 속을 긁어댔다.

“조금 전 제가 병풍 뒤에서 유비가 하는 말을 들으니 사람을 매우 가볍게 보는 데가 있었습니다. 넉넉히 형주를 삼키려 들 사람입니 다. 지금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뒷날 큰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유표의 마음이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다. 발벗고 나서 유비를 변명해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개만은 무겁게 가로저 었다.

비록 고개는 가로저어도 채부인은 유표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 을 눈치챘다. 가만히 아우 채모를 불러 그 일을 의논했다. 채모는 누 이로부터 그간의 얘기를 듣자 거침없이 말했다.

“먼저 역관을 들이쳐 유비를 죽인 뒤에 주공께 알리도록 해야겠 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공께서도 못 이긴 체 인정하실 것입니다.” 

채부인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이에 허락하니 채모는 그 밤으로 군사를 점고하여 유비가 묵고 있는 역관을 들이치려 했다.

그때 유비는 역관에서 촛불을 밝혀둔 채 앉아 있었다. 곯아떨어진 체하는 것도 잠시, 낮의 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몰라 마음을 가다 듬고 주위를 살피는 중이었다.

그런데 삼경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는 별일 없겠지 하며 막 자리에 누우려는데 누군가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 유비가 맞아들 여 보니 이적이었다. 이적이 나지막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몸을 일으키시어 피하십시오. 머지않아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올 것입니다.”

“유경승에게 인사도 않고 어떻게 떠나란 말인가?”

이적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아직 그 일이 믿기지 않는지 그런 한가로운 소리를 했다. 이적이 답답한 듯 깨우쳐 주었다. 

“만약 공께서 작별하러 갔다가는 반드시 채모에게 해를 입으실 것입니다. 얼른 피하기나 하십시오.”

그러자 유비도 비로소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급히 함께 데리고 온 군사들을 깨워 일제히 말에 오르게 한 뒤 날이 밝기를 기 다리지도 않고 어둠 속을 헤쳐 신야로 돌아갔다.

채모가 군사들을 끌고 역관에 이른 것은 이미 유비가 떠난 지 오 랜 뒤였다. 가도 멀리 가서 뒤쫓아봐야 소용없음을 알자 채모는 꾀 를 썼다. 역관의 벽에다 유비가 써두고 간 것처럼 시 한 수를 써 붙 이고 급히 유표를 찾아 자못 분해하며 일러바쳤다.

“유비가 주공께 반할 뜻을 드러내 불측한 시 한 편을 역관 벽에 써 붙여놓고 간단 말도 없이 달아났습니다.”

유표는 처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낮에 보여준 유비의 언행이 좀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토록 빨리 속마음을 드러내리라고는 생각하 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 바람에 몸소 역관으로 가서 유비가 써 남겼 다는 시를 읽어보았다.

여러 해 하릴없이 괴로움만 겪다 數年徒守困

헛되이 옛 산천을 바라보누나. 空對舊山川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라 龍豈池中物

우레 타고 하늘로 오르려 하네. 乘雷欲上天

그 같은 시를 읽자 유표도 드디어 노했다. 워낙 유비가 낮에 한 말 과 짝이 맞는 글귀라, 막연히 의심하던 일에서 뚜렷한 증거를 잡아 낸 기분까지 들어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내 맹세코 이 의리 없는 놈을 죽이리라!”

그러나 앞뒤 없는 노기도 잠시 몇 발 옮기지 않아 문득 생각하니 이상한 게 있었다. 유비와 함께 있었던 때가 수없이 많았으나 한번 도 그가 시를 짓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봐도 유비가 시문을 즐긴다는 말은커녕 제대로 지을 줄 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는 반드시 나와 유비를 이간시키기 위해 꾸민 계책일 것이다…………? 이윽고 유표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역관으로 돌 아가 칼끝으로 그 시를 긁어내버렸다.

불같이 노했던 유표가 다시 표정을 풀며 말 위에 오르는 것을 보 자 채모는 다급했다. 유표의 속마음을 살피려고도 하지 않고 재촉 했다.

“이미 군사를 점고해 나왔으니 이대로 신야로 몰아가 유비를 사로잡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유표는 허락하지 않았다.

“서둘러서는 아니 된다. 천천히 도모하도록 하자.”

자신이 뱉어놓은 말이 있어 그렇게 얼버무리긴 해도 이미 유표에겐 유비를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다.

한편 채모는 유표가 마음속에 의혹을 품고 일을 얼른 결단하지 못하는 걸 보자 생각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유표에게 미리 알리고는 유비를 죽이기 어렵겠다 싶어 채부인과 의논 끝에 계책을 바꾸기로 한 것이었다.

이튿날이었다. 채모는 모든 관원들을 양양으로 모이게 해놓고 유 표를 찾아가 말했다.

“근년에 거듭 풍년이 들었기로 주(州)의 여러 관원들을 양양에 불 러모아 그들이 애쓴 공을 위로했으면 합니다. 바라건대 주공께서도 함께 가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듣기에는 그럴듯한 청이었지만 실은 거기에 이미 음흉한 속셈이 깔려 있었다. 유표의 건강으로는 그게 불가능함을 채모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유표는 난색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요즘 몸에 병이 일어 양양까지 갈 수가 없다. 내 두 아들로 하여금 나를 대신해 손님을 접대케 하라.”

“두 분 공자님께서 아직 나이 어려 혹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어렵더라도 주공께서 몸소 가심이 좋겠습니다.”

채모는 뻔히 알면서도 능청을 떨었다. 역시 속셈이 따로 있어서 였다.

유표가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수가 있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신야로 가 유비를 불러 손님들을 대접게 함이 어떻겠는가? 그 사람은 나이도 지긋하고 세상 일에 경험도 많으니 잘 해낼것이다.”

바로 채모가 바라던 대로였다. 채모는 일이 자기가 꾸민 대로 돼 가자 남몰래 기뻐하며 사람을 뽑아 신야로 보냈다. 자신을 대신해 양양으로 가서 손님 접대를 좀 해달라는 유표의 청을 유비에게 전할 사자였다.

한편 한밤중에 신야로 도망쳐 간 유비는 모든 화근이 자신의 실 언에 있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누구에게도 형주에서 있었던 일을 말 하지 않은 채 속으로만 앓고 있는데 문득 형주에서 사람이 왔다. 

“장군께서는 양양으로 가시어 저희 주공 대신으로 손을 좀 치러 주십시오. 주공께서 편찮으셔서 몸소 납시지 못하시기에 특히 장군 께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유비로서는 얼른 그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청이었다. 가야 할지 어떨지를 얼른 분간 못해 망설이고 있는데 손건이 나서서 말했다. 

“어제 보니 주공께서는 몹시 서둘러 되돌아오셨는데 마음 또한 그리 즐겁지는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틀림없 이 형주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이제 갑 자기 모임에 나오라 하니 주공께서는 결코 가볍게 응하셔서는 아니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유비는 비로소 형주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듣 고 난 관우가 말했다.

“형님께서는 스스로 실언했다고 하시나 유표에게 꾸짖을 뜻이 있 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표가 아무 말 않는 한 다른 사람의 말은 가볍게 믿을 게 못 됩니다. 더구나 양양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 가보도록 하십시오. 만약 형님께서 가지 않으신다면 오히려 유표에게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유비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옳은 듯 여겨졌다. 가려고 나서는데 장비가 내달으며 말렸다.

“잔치 치고 좋은 잔치 없고 모임 치고 좋은 모임 드무외다. 형님 가지 마시오.”

그때 조운이 관우를 편들어 말했다.

“제가 마보군 삼백을 데리고 주공과 함께 양양에 다녀오는 게 어 떻겠습니까? 아무 일 없도록 지켜드리겠습니다.”

“그것 참 좋겠네그려.”

유표의 의심도 사지 않고 위태로움도 피할 수 있는 방도라 누구 말을 더 들을 것도 없이 유비는 대뜸 그렇게 결정했다. 그리고 그날 로 조운과 함께 양양으로 갔다.

유비가 이르자 채모는 성 밖까지 나와 맞아들이는데 그 몸가짐이 매우 공손했다. 또 그 뒤로는 유기(劉琦)와 유종(琮) 두 공자가 문 무의 여러 관원을 거느리고 나와 역시 공손하게 맞아들였다.

유비는 두 공자가 모두 나와 있어 가슴속의 의심을 풀고 우선 역 관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조운이 삼백 군사와 더불어 유비를 보 호하며 갑옷에 칼을 찬 채 유비가 걷든 앉든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병환이 나셔서 몸을 움직이실 수 없으므로 특히 숙 부께 청하여 손님을 대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손님은 모두 형주와 양양 각처를 다스리고 지키는 관원들이니 숙부님께서 위로하고 치하해주십시오.”

잠시 뒤에 유기와 유종이 찾아와 다시 한번 유표의 뜻을 전했다.

유비는 흔연히 대답했다.

“나는 원래 그같이 큰일을 감당할 위인이 못 되나 형님의 명이 그 러하시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가 없구나. 내 힘써 형님의 말씀을 지 키려니와 너희들도 곁에서 나를 도와다오.”

그렇게 별일 없이 그날 밤이 가고 이튿날이 밝았다. 형주, 양양의 아홉 군 마흔두 고을의 관원들이 빠짐없이 이르고 있다는 전갈이 연 이어 날아왔다.

채모는 일을 벌이기에 앞서 괴월을 불러놓고 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의논했다.

“유비는 세상이 다 아는 효웅梟雄)이니 오래 이 땅에 머물러 있 게 하면 뒷날 반드시 해를 끼칠 것이오. 오늘 이 잔치를 틈타 죽여야 겠소.”

“그렇지만 그 일로 백성들의 신망을 잃을까 두렵소이다.”

갑작스레 듣는 말이라 괴월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명색 모 사라 유비에 대한 채씨 집안 사람들의 감정을 잘 아는 그로서는 우 선 그 일이 유표의 허락을 받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 눈치를 챈 채모가 거짓으로 둘러댔다.

“나는 이미 우리 사군(使君)으로부터 몰래 받은 명이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거요. 주공의 뜻이니 공은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오.”

“이미 일이 그렇게 된 거라면 미리 준비를 해야지요.”

유표가 승낙했다는 말을 듣자 괴월도 마음을 놓고 의견을 내놓았다. 채모가 자신이 해놓은 군사 배치를 털어놓았다.

“동문 쪽 현산(峴山)으로 가는 큰길은 이미 내 아우 채화(和)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지키게 해놓았소. 남문 밖 또한 채중(中)이 지키고 있으며 북문 밖에도 채훈(蔡勳)이 있소. 다만 서문 쪽에만 지 키는 군사를 보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소. 그쪽은 단계(檀溪)의 깊고 험한 물길이 가로막혀 비록 몇 만의 군사 를 거느렸다 해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오.”

“그래도 조운이 도통 유현덕 곁을 떠나지 않고 있으니 손을 쓰기 어렵겠소.”

괴월이 또 다른 걱정을 했다. 채모가 다시 그런 괴월을 안심시켰다. 

“그것도 준비가 되어 있소. 나는 이미 오백 군사를 성안에 감추어 두었소.”

그제서야 괴월은 마음 먹고 모사다운 꾀를 빌려주었다.

“그것만으로는 조운과 그 수하 삼백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오. 먼 저 조운과 유현덕을 떼어놓아야 하오. 문빙(文聘)과 왕위(王威) 두 사람을 시켜 바깥마루에 무장들을 대접하는 술자리를 따로 차리게 하고 조운을 그리로 꾀어내도록 하시오. 그다음이라야 유현덕에게 손을 댈 수 있을 것이오.”

이에 채모는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그날로 소와 말을 잡아 크게 잔치를 벌였다.

유비는 적로마를 타고 주의 관아에 이르러 말을 뒤꼍에 매어두게 한 뒤 대청으로 올라섰다. 이어 각처의 여러 관원들도 차례로 그곳 에 이르렀다.

유비는 주인석에 자리 잡고 유기, 유종 두 공자는 그 좌우에 앉았다. 그리고 다른 관원들도 각기 차례를 따져 자리에 앉았으나 유독 조운만은 칼을 찬 채 유비 곁에 서 있었다.

채모의 명을 받은 문빙과 왕위가 그런 조운에게 다가가 따로 자 리를 잡고 함께 마시기를 청했다. 조운은 사양하고 가지 않으려 했 으나, 그사이 마음을 놓은 유비가 불쑥 권했다.

“저렇게 간곡히 청하니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닐세. 가서 함께 마시도록 하게.”

이에 조운은 하는 수 없이 유비 곁을 떠나 따로 마련된 술자리로 갔다.

안팎을 철통같이 준비해둔 채모는 조운이 유비 곁을 뜨는 걸 보 자 됐다 싶었다. 유비가 데리고 온 삼백 군사만 거짓 명을 둘러대어 역관으로 돌려보낸 뒤에 곧바로 손을 쓸 작정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것도 모르고 흥겹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 이 세 순배쯤 돌았을 무렵이었다. 이적이 술잔을 치는 체하고 유비 곁으로 다가오더니 심상찮은 눈짓을 하며 나직이 말했다.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얼큰한 중에도 유비는 이적의 뜻을 알아차렸다. 얼른 몸을 일으켜 측간으로 가는 체 자리를 뜨니 이적 또한 후원으로 달려 나와 귀엣 말로 일러주었다.

“채모가 장군을 해치려고 성 밖 동남북 세 방향에 군사를 숨겨두 었습니다. 다만 서문 쪽이 비어 있으니 장군은 얼른 그리로 피하십 시오.”

그 말에 유비는 크게 놀랐다. 얼른 적로마를 풀어 끌고 후원 문을 나선 뒤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랐다. 데리고 온 종자들조차 돌아볼 틈이 없어 말 한 필로 서문을 바라고 닫는데 문득 문지기가 막아서며 물었다.

“장군은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그러나 유비는 대답 없이 채찍질만 더하여 내달았다. 그 기세를 막지 못한 문지기는 나는 듯 채모에게 그 일을 알렸다. 채모는 곧 군 사 오백을 이끌고 말에 올라 유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서문을 빠져나온 유비는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나 몇 리 가기도 전에 길은 험한 벼랑에서 끝나고 그 아래로는 큰 계곡에 푸른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채모가 그걸 믿고 서문 쪽에는 군사를 풀지 않았던 바로 그 단계 였다. 물은 양강(襄江)으로 이어지는데 너비가 여러 길인 데다 물결 또한 세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물가에 선 유비는 도저히 건널 수 없다 여겨 말머리를 돌리려 했 다. 그러나 성 서편으로 크게 먼지가 일며 뒤쫓는 군사가 몰래 오는 게 보였다.

‘이번에는 죽는구나……………?

유비는 홀로 그렇게 탄식하며 다시 계곡 쪽으로 가 뒤를 돌아보 았다. 어느새 뒤쫓는 군사가 저만큼 다가들고 있었다.

유비는 급한 김에 말을 탄 채 계곡 아래로 내달았다. 몇 발 가지 않아 말의 앞발굽이 꺼지며 온몸이 물에 잠겼다. 유비는 얼결에 말 을 채찍질하며 크게 소리쳤다.

“적로야, 적로야, 오늘 드디어 네가 나를 해치는구나!”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미처 유비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말이 갑자기 물속에서 몸을 솟구치더니 한꺼번에 세 길이나 뛰어 나 는 듯 저편 언덕에 올라섰다. 유비는 마치 구름과 안개를 타고 몸을 솟구친 기분이었다.

뒷날 소식(蘇軾)은 그 일을 고풍(風)의 시 한수로 노래했다. 자 신이 단계를 찾게 된 경위에서 인생사의 허망함을 술회하는 것으로 끝맺는 노래인데,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말발굽은 푸른 유리 같은 물결을 밟아 깨고 馬蹄踏碎靑琉璃

하늘바람 이는 곳에 금채찍이 휘날린다.  天風響處金鞭揮

귓전에는 천 마리 말이 닫는 소리 들리는데 耳畔但聞千騎走

물속에서 홀연 두 마리 용이 치솟아 나는구나. 波中忽見雙龍飛

여기서 두 마리 용이란 한데 어우러진 적로마와 유비를 가리킴이 리라. 그리고 그 물은 단계인 동시에 유표란 못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순간부터 유비는 유표와 얽힌 의리와 인정으로부 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단계의 서쪽 언덕에 이른 유비가 돌아보니 채모가 이미 군사를

이끌고 방금 뛰어내린 저편 언덕에 이르러 있었다.

“장군께서는 무슨 일로 자리를 박차고 이렇게 달아나십니까?”

채모가 유비를 건너다보며 소리쳤다. 유비는 엄한 목소리로 채모를 꾸짖었다.

“나와 그대는 원수진 일이 없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해치고자 하는가?”

“저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남의 말만 듣지 마십시오.”

채모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은 활과 화살을 집어 들고 있었다. 그걸 본 유비는 급히 말을 박차 서쪽으로 달아났다. 그런 유 비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과 발밑을 흘러가는 단계의 깊고 거센 물결 을 번갈아 바라보던 채모는 길게 탄식했다.

“이 무슨 신의 도움인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구나!” 

그리고 군사를 돌려 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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