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5권 – 4화 : 와룡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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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5권 – 4화 : 와룡선생


와룡선생

멀리 익주에서 시작한 물이 육수(水)와 합쳐 면수(沔水)를 이루 며 남으로 꺾이는 곳에 양양성이 있고, 그 양양성 밖 이십 리쯤 되는 곳에 융중(中)이란 고을이 있었다. 와룡강은 그 융중 남쪽에 있는 작은 언덕이었다. 그 언덕의 모습이 마치 누워 있는 용과 같다 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저물어오는 그 언덕에 기대어 지은 초당에서 갈 건야복(野服, 갈포로 지은 두건에 숨어 사는 이의 옷)의 한 젊은이가 거문고를 타며 무언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제나라 성문을 걸어나와 步出齊城門

멀리 탕음리를 바라보네. 遙望蕩陰里

동리에 무덤 셋이 있는데 里中有三墓

서로 겹쳐 정히 비슷하구나. 纍纍正相似 

이것이 누구 무덤이냐 물으니 問是誰家塚

전강과 고야의 것이라 하네.  田疆古冶氏

힘은 남산을 밀어낼 만하고 力能排南山

글은 땅을 뒤엎을 만했으되 文能絶地紀

하루아침에 이간질을 당하니 一朝被譏言

복숭아 두 개가 세 용사를 죽였네. 二逃殺三士

누가 그런 꾀를 냈는가 誰能為此謀

제나라 승상 안자일세. 國相齊晏子

「양보음(梁吟)」으로 알려진 노래였다. 옛적 제나라의 이름난 재 상인 안평중(平仲)이 복숭아 두 개로 훌륭한 세 용사를 죽인 것을 비꼰 것인데 그 내막은 이랬다.

제나라 경공(景公) 때 공손(公孫接), 전개강(田開彊), 고야자(冶 子)란 세 용사가 있었다. 공손접은 큰 멧돼지와 호랑이를 한꺼번에 때려잡을 힘이 있었고, 전개강은 싸움터에서 복병을 내어 두번씩이 나 적군을 무찌른 적이 있었으며, 고야자는 경공을 모시고 황하를 건너다가 경공의 말을 물고 가는 큰 거북을 물에 뛰어들어가 죽이고 말을 구해 나온 적이 있었다. 모두가 여느 사람은 흉내도 못 낼 힘과 용기를 지닌 데다 서로간에 의리조차 두터워 당시의 국상(國相) 안 평중은 은근히 그들을 두려워했다. 셋이 힘을 합쳐 나서면 자신의 권좌가 위태로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어느 날 그들 셋이 자기가 왔는데도 일어나 예를 하지 않자 안평중은 드디어 그들을 죽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먼저 경공을 설득하여 그들 셋에게서 정을 거두게 하는 데 성공한 안평중은 이어 경공으로 하여금 그들 세용 사에게 복숭아 두 개를 내리게 하였다.

“그대들 중 힘세고 용기 있는 이가 먹도록 하라.”

그런 아리송한 단서와 함께였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공손접과 전개강은 별 생각 없이 자기들이 지난날에 보여준 힘과 용기만 믿고 그 복숭아를 하나씩 먹어버렸다. 그러자 뒤에 온 고야자가 따졌다. 

“나는 그때(경공을 따라 황하를 건널 때) 헤엄을 칠 줄도 모르면서 오 직 주군을 위해 물로 뛰어들어 사람들이 하백(河伯, 물의 신)이라고까 지 부르며 겁내던 그 큰 거북과 싸웠다. 어찌 그대들에게 힘이나 용 기가 뒤진다 하겠는가?”

그 말을 듣고서야 공손과 전개강은 자신들이 오히려 고야자에 미치지 못함을 알았다. 따라서 자기들이 그 복숭아를 먹은 것은 탐 욕이라 단정 짓고, 그 탐욕을 부끄러이 여겨 자결하고 말았다. 고야 자는 또 고야자대로 남을 부끄럽게 하고서 자신의 이름을 높인 것은 불의요, 두 친구가 죽었는데 홀로 살아 있는 것은 불인이라 하여 자 결하고 말았다. 안자가 노린 대로 된 셈이었다.

그 같은 내용을 담은 「양보음」이란 노래는 전부터 있어온 것인데, 그 젊은이가 특히 즐겨 읊었다. 세 용사의 개결한 죽음을 추모함보 다는 안자의 좁고 얕은 사람됨을 비꼬는 쪽으로 힘이 들어간 그 노 래를 즐겨 부르는 것은 그만큼 그 젊은이의 포부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뭇사람이 우러르는 안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한 자부심 또는, 자신은 최소한 안자와 같이 속좁은 무리가 되지 않으리라는 결의를 거기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제갈량이었다. 와룡강 기슭에 초당을 짓고 아우 제갈균과 더불어 맑은 날은 밭 갈고 비오는 날은 글을 읽으며[晴耕 雨讀]지내고 있었다. 원래는 삼형제가 함께 그곳에 살았으나 맏이 되는 제갈근은 그 몇 해 전부터 강동 손권의 막빈(幕)이 되어 떠나 고 둘만 남게 되었다.

그들 형제가 처음 그곳에 자리 잡은 것은 십년 전인 건안 이년의 일이었다. 일찍 양친을 여읜 그들 형제는 숙부인 제갈현에게 보살핌 을 받았는데 그 제갈현이 유표에 의해 예장(章)태수가 되었을 때 그를 따라 예장으로 갔다. 그러나 제갈현이 조조가 보낸 또 다른 태 수 주호(朱皓)에게 패해 죽자 그들 형제는 다시 양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유표는 자신의 명을 받아 갔다가 죽은 제갈현을 생각하는 마음에 서 그 조카들을 돌봐주었다. 덕분에 그들 삼형제는 운중에다 터를 잡고 그로부터 십 년을 학문에만 전심할 수 있었다. 스스로 밭 갈아 먹는다고는 했으나 그 노동이 학문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 다가 이미 말한 대로 맏이인 제갈근이 먼저 세상으로 나가고 제갈량 과 제갈균만 남게 되었다.

그 무렵 제갈량은 아우 제갈균과 더불어 겉보기에는 지극히 조용 하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뜻이 일생을 초 야에 묻혀 보내는 데 있지 않음은 여러 가지로 뚜렷했다.

먼저 그걸 알 수 있는 것은 넓은 교유였다. 그는 사마휘, 송충忠)같은 인근의 석학을 비롯하여 최주(州), 석도(石), 맹건 (建)이며 방산민(龐山民), 방통 등의 재사들과 두루 사귀었 다. 그들을 통해 식견을 넓히는 것은 물론 천하의 대세를 가늠할 안 목을 기르려 함이었다.

그다음 공명의 만만찮은 야심은 결혼을 통한 지역 명문들과의 결 속을 보아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다. 당시 그곳 사람들의 우스갯 소리에 이런 게 있었다.

공명의 지어미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말라, 莫學孔明擇婦

다만 형편없이 못생긴 아내를 얻었을 뿐이니. 止得阿承醜女

그만큼 그의 아내 되는 황씨는 못생긴 여자였다. 살색은 까맣고 머리칼은 노란데 키마저 볼품없이 작았다. 물론 그녀는 황승언黃承 彦)이란 명사의 딸로 학식과 지혜를 겸비하고 있었으나, 공명이 숱 한 신부감을 마다하고 그녀를 택한 것이 반드시 그 때문만이라고 하 기는 어렵다.

그녀의 어머니는 바로 형주 제일의 명문인 채씨(蔡氏) 집안의 딸 로 자사인 유표의 부인과 형제간이었다. 다시 말해 공명은 그 결혼 을 통해 한꺼번에 형주에서 제일가는 두 가문과 인척이 되었다. 거 기다가 또 공명의 누님은 방산민(龐山民)에게 출가하여 재골(骨) 로 이름난 방씨(龐氏)들과도 혼인으로 맺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명이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뜻을 두고 있었음은 스스로를 관중(管仲), 악의(樂毅)에 비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패자(者)로 만든 제나라의 이름난 재상이요, 악의는 연의 상장군으로 일찍이 다섯 나라의 군사를 모아 제의 칠십여 성을 빼앗은 장수였다.

따라서 문신으로는 관중처럼 되고, 무신으로는 악의처럼 되고 싶 다는 말은 그 뜻이 학문이나 수신에 있지 않고 세상에 나가 일하는 데 있음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학문하는 태도도 학자로서보다는 경세(經世)를 겨냥한 것이 었다. 다른 학우들이 유학의 장구(章句)에 매달려 한 자 한 자 세밀 히 읽어갈 때 그는 대강만을 훑었다. 대신 법가나 병가의 글은 나중 에 후주(後)에게 손수 베껴 보낼 만큼 철저히 익혀 실사(實事)에 연결되도록 했다.

그런데도 공명이 아직 세상에 나가지 않은 것은 선뜻 주인을 정 하기에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섬길 만한 사 람으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표였다. 유표는 저 당고(黨錮) 사건의 생존자로서 학식도 깊고 덕망도 두터웠다. 형), 양(襄) 두 주 여덟 군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물자도 넉넉하고 군대도 수십만은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 세대 전의 사람이었으며, 이제는 몸마저 늙 어 천하를 다투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는 데만 마음을 쓰고 있었 다. 공명이 큰 뜻을 펼쳐 보이기에는 의지할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조조였다. 조조가 스물일곱 때 태 어난 제갈공명은 조조와 한 세대의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제갈공명 이 세상에 뜻을 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조조가 이미 천하의 제일인자로서 마지막으로 원소의 잔당들을 토벌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말해 조조는 벌써 천하 제패의 기반을 거의 닦아놓았을 뿐 아니라 기라성 같은 재사)와 무장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젊은 제갈공명이 그를 찾아가 본댔자 마음대로 뜻을 펼치기에는 늦 은 셈이었다.

거기다가 조조는 아직도 여전히 속마음을 숨긴 채 천자를 앞세우 고 있었으나 공명의 날카로운 눈길은 그의 원대한 야심을 꿰뚫어보 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실을 폐하고 들어앉을 사람- 그런 조조는 대의명분과 한실 부흥의 이상에 몰두해 있는 제갈공명이 찾아갈 사 람은 못 되었다.

손권도 제갈공명이 선뜻 찾아 나설 사람은 못 되었다. 기업이 오 래되기로는 조조에 못지않았고, 다른 뜻을 품을 때 찬역(纂逆)이 되 기로도 조조와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작고 천자를 끼고 있지 않다는 것뿐 대의명분이나 한실 부흥의 이상을 위해서는 조조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손권이었다.

그밖에 또 공명의 마음이 강동으로 쏠림을 막는 것은 형 제갈근이 이미 그곳에 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형과 재주를 겨 루거나 공을 다투고 싶지 않은 게 공명의 솔직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공명이 그 무렵 들어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신야로 온 유비였다. 그는 한실의 종친으로서 한실 부흥의 이상을 걸어보기에 는 누구보다 알맞았다. 때로 의심쩍을 때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의 어질고 의로움은 무슨 신화처럼 백성들 사이에 번지고 있었으며, 한 때 세상을 주름 잡았던 영웅들이 차례로 멸망해가는 동안에도 오히려 세력과 경륜을 길러가며 살아남은 그의 유연한 처세도 어떤 기대로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더군다나 그는 충실한 손발은 가지고 있어도 쓸 만한 머리를 갖 지 못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의 머리가 되어 새로운 기업을 일으킨 다면 그것은 자신의 뜻을 펴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마당이 될 것 같 았다.

아직 그의 세력이 보잘것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명이 유비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인 것은 그런저런 헤아림에서였다.

그는 유비의 군막을 찾는 한 무리의 재사들 틈에 끼어 슬그머니 유비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한 번으로 그뿐, 두 번 다시 유비를 찾지 않고 융중으로 돌아와 전과 다름없는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형님, 서원직(元)이 찾아왔습니다.”

공명이 다시 무슨 생각엔가 잠겨 잠시 거문고 줄을 뜯고 있는데 방 밖에서 문득 말굽 소리가 들리더니 아우 제갈균이 그렇게 알려 왔다.

스스로 유비를 찾아가 그의 사람이 되어 일한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몇 달 동안이나 보지 못한 서서였다. 그런 서서가 아무런 기별 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것에 이상한 예감을 느끼며 공명은 천천히 거문고를 밀쳐놓고 나가 맞았다.

“자네가 갑자기 웬일인가?”

서로 인사를 마친 뒤에 공명이 조용히 물었다. 서서는 왠지 죄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유예주를 섬겨 내 품은 뜻을 천하에 펴보 려 했네. 그런데 이제 늙으신 어머님이 조조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글을 보내오셨네그려. 내가 가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태롭다 하시니 자식이 되어 어찌 마다할 수 있겠나? 하는 수 없이 유예주를 떠나 조조에게로 가는 길일세. 그런데 유예주가 나를 보내주면서도 어찌 나 서운해하시는지 보다 못해 자네를 천거해 올렸네. 유예주가 기뻐 하는 모습을 보니 내일이라도 당장 자네를 찾아보러 올 것 같네. 바 라건대 부디 그의 청을 뿌리치지 말고 평생에 닦은 큰 재주를 펼쳐 도와주게나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자네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없 이 큰 다행으로 여기겠네.”

그러자 공명은 문득 낯빛을 바꾸며 꾸짖듯 말했다.

“그대는 나를 향제(享祭)의 희생으로 삼으려는가?”

향제의 희생이란 흔히 벼슬길의 험난함을 일컫는 말이다. 향제를 지내기 전에 잡털이 섞이지 않고 뿔이 곧은 소를 골라 콩을 먹여 기 르는데 이는 그 소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소를 잡아 제례를 치르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벼슬살이가 또한 그와 같아서 높은 녹을 콩으로 얻어먹지 만 결국은 그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데서 그 같은 비유가 생겼다. 서서가 약간 뜻밖이란 얼굴로 되물었다.

“자네가 벼슬길에 별로 다급해하지 않음은 나도 알고 있네. 하지 만 언제까지고 초야에 묻혀 지내기에는 자네의 재주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어쨌든 유현덕을 한번 만나나 보게. 아마도 생각이 달라질 걸세.”

“이미 만나보았네.”

공명이 냉담하게 잘라 말했다. 서서가 놀라 물었다.

“자네가 벌써 유현덕을 만나보았다고?”

“그렇네. 벌써 한 일 년 되나?”

“그렇다면 유현덕이 자네가 섬기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라는 뜻인가?”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나는 별생각이 없네.”

공명의 그 같은 말에 서서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유현덕의 세력이 보잘것없고 생각이 고루한 의리나 인정에 얽매 여 있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러나 지금 천하를 돌아보면 그만 한 인물도 없을 듯싶으이. 말해보게, 특히 유현덕에게 실망스러운 게 무엇이기에 일껏 만나고도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는가?”

“첫째로 그는 성취가 너무 더디네. 지금이 동탁의 시절만 돼도 그 의 세력이 미약한 것이 이토록 한심스럽지는 않을 것이네. 그러나 이십 년이 지난 뒤도 아직 남의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것은 생 각해볼 일일세.”

공명의 그 말에 서서가 맞받았다.

“그래도 그는 원술이나 원소처럼 남의 기업을 빼앗지도 않았고 조조처럼 천자를 끼고 요사를 부리지도 않았네. 그게 고루한 명분론 이나 어리석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진정한 인의일세. 권모가 판을 치는 이런 세상일수록 소중한…….”

“그러면서도 한사코 남의 밑에는 들지 않으려는 건 또 무언가? 아 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네. 그리고 다음은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서도 일의 무겁고 가벼움과 급하고 급하지 않음을 구별하지 못하 는 것일세. 세상은 그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보고 있으나 실은 그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세. 관우, 장비며 조운, 손건, 미축 등이 그를 받들고 있으나 이는 협객들의 의리와 인정이 아니면 인척 의 정일 뿐 엄숙한 주종이나 군신의 도리는 아닐세. 언제나 사사로 운 의리와 인정에 얽매여 일의 큰 줄기를 못 살피는 게 그를 둘러 싼 무리의 특징이지. 그리하여 딴 사람의 유능함도 거기에 밀려나 니 어떻게 인재를 얻을 수 있겠는가? 또 요행 인재를 얻는다 해도 어찌 그가 그 와중에서 자신의 슬기와 재주를 마음껏 펼쳐볼 수 있 겠는가?”

“자네는 특히 관우와 장비를 두고 말하는 것 같군.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바깥에서 보기와는 달랐어. 관우의 자부심이나 장비의 난 폭함이 마음에 걸릴 테지만 한번 유현덕의 명이 떨어지면 신기하리 만큼 자신의 뜻을 굽혀주는 게 또한 그들이네.”

“거기다가 유현덕은 아직 자신이 무엇 때문에 수고는 많아도 얻 는 게 없는지를 모르고 있네. 다시 말해 아직도 자신을 위해 무예와 용맹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못지않게 머리를 써줄 사람이 필요하 다는 걸 깨닫지 못하더란 말일세. 언제나 있는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추어 의논해보고 거기 따라서 그때그때 일해 나가다가 되면 되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식이지. 지난번에 유현덕을 만났을 때 나는 한 꺼번에 형주의 힘을 두 배로 키울 수 있는 방책을 일러주었으나 그 는 내 이름조차 묻지 않았네. 아마도 자네가 이렇게 온 걸 보니 그는 지금도 내가 그때 그 사람이었음을 모르고 있을 것이네.”

“그때는 무슨 다른 일에 골몰해 자네를 소홀히 대접했나 보이. 하 지만 지금은 다르네.”

서서는 그렇게 말해 놓고 유비가 그에게 보인 정성을 남김없이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공명의 안색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미 처 서서의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어쨌든 나는 향제에 바치는 소는 되지 않겠네. 인편이 있거든 유 예주에게도 그렇게 전해 서로 간에 쓸데없이 번거로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게!”

그리고 일어나서 집안으로 들어가버리는 품이 다시는 서로 안 볼 사람 같았다. 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한숨과 함께 말에 올랐다. 그에게는 시각을 다투며 기다리는 어머님이 있어 매달 려봐도 소용없는 일로 더는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서서의 말발굽 소리가 저물어가는 언덕 아래로 사라진 뒤에야 공 명은 천천히 초당 문을 열고 그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실은 나도 어쩔 줄 모르겠네. 가만히 기다려보세나. 유 현덕이 진실로 그만한 사람이고 또 인연이 닿는다면 그를 위해 일하 게 되는 수도 있겠지.’

그러다가 문득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차, 내가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여 벗의 곤궁을 살피지 않았구 나! 이제 그의 늙은 어머니는 살아 있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아우 제갈균으로 하여금 급히 마필을 내어 서서의 뒤를 쫓게 했으나 하룻밤을 뒤쫓아도 서서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한편 서서는 밤낮을 쉬지 않고 말을 달려 허창에 이르렀다. 조조 는 서서가 왔다는 말을 듣자 순욱과 정욱을 비롯한 모사들을 모두 보내어 맞아들이게 했다. 서서가 그들의 인도로 안으로 들어가 조조 를 보자 조조는 짐짓 그간의 내막을 모르는 체 묻는다.

“공은 고명(明)한 선비인데 어찌하여 유비 같은 사람에게 몸을 굽혀 섬겼소?”

“저는 젊었을 적에 어떤 일을 저질러 강호를 흘러다니게 되었사 온데 우연히 신야에 이르렀다가 유현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를 대하는 유현덕의 정이 얇지 않아 깊이 사귀게 되었으나 이제 노모가 이곳에서 승상의 돌보심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실로 부끄러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서서가 격한 감정을 숨기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조조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좋은 말만 했다.

“이왕 여기 오셨으니 아침저녁으로 어머님을 잘 받들어 모시도록 하시오. 아울러 나도 공에게 가르침을 받겠소.”

이에 서서는 절하여 고마움을 나타내고 조조 앞을 물러나왔다. 그런데 서서가 급히 그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였다. 당(堂) 아래 엎드려 울며 절하는 서서를 보고 그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길 왔느냐?”

“근래 신야에서 유예주를 섬기고 있다가 어머님의 글월을 받잡고 밤을 낮같이 달려오는 길입니다.”

서서가 어리둥절하여 대답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돌연 성난 얼굴로 서안(書案)을 치며 꾸짖었다.

“욕된 자식이 강호를 떠돌아다닌 지 몇 년이 되었길래 나는 네 학 문이 좀 나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처음보다 더 못해졌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너는 이미 책을 읽어 충(忠)과 효(孝)는 둘 다 한꺼번에 지키지 못함을 알 것이다. 어찌하여 조조가 임금을 속이고 뭇사람을 놀리는 역적임을 모른단 말이냐? 유현덕은 인의를 널리 세상에 펼친 데다 한실의 피를 이었으니 네가 그분을 섬겼다면 그것 은 바로 옳은 주인을 얻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거짓 편 지 한 통에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밝음에서 오히려 어둠으로 뛰어들 어 스스로 더러운 이름을 얻으니 실로 어리석구나! 더구나 이 일은 이 어미가 빌미가 되어 일어난 일이니 내 무슨 낯으로 너를 보랴. 너 는 쓸데없이 이 세상에 나서 조상을 욕되게 하는구나!”

그 같은 꾸지람을 듣자 비로소 서서도 스스로 가볍게 움직였음을 깨달았다. 땅에 엎드린 채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는데 그 어머니는 문득 병풍 뒤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을 수습한 서서가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려는데 문득 안에서 사람이 나와 알렸다.

“노부인께서 대들보에 목을 매셨습니다.”

전갈에 서서가 놀라 뛰어들어 구해보려 하였으나 그 어머니는 이 미 숨진 뒤였다. 남양의 제갈량이 서서를 보내자마자 떠올린 걱정이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었다.

서서는 어머니가 이미 숨진 걸 알자 그대로 혼절하여 쓰러졌다가 오랜 뒤에야 깨어났다. 조조는 서서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듣자 괴로웠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람을 보내 예를 다해 조문하고 또 스스로 빈소를 찾아보고 제례를 올렸다.

서서는 어머니를 허창 남쪽 들에 장사지내고 묘를 지키며 상(喪) 을 치렀다. 조조는 그를 달래려고 갖가지 물건을 내렸으나 서서는 하나도 받지 않았다. 결국 힘들여 서서를 데리고는 왔지만 쓸 수는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서서를 데려옴으로써 남정征)의 첫 장애물인 유비의 이 와 발톱은 뺀 셈이었다. 거기서 힘을 얻은 조조는 다시 남쪽으로 치 고 내려갈 의논을 시작했다. 순욱이 그런 조조를 말렸다.

“날씨가 차 군사를 움직이기에 좋지 못합니다. 봄이 되어 날이 따 뜻해질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그때는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밀 고 내려가실 수 있습니다.”

조조가 생각해보니 그 말이 옳았다. 이에 곧 군사를 일으키는 대 신장하의 물을 끌어들여 현무지(玄武池)란 못을 만든 뒤 그곳 에서 수군(軍)을 교련시켰다. 뒷날 장강(長江)을 넘을 때까지를 내 다보고 하는 준비였다.

한편 유비는 그 무렵 예물을 갖추는 등 한창 융중의 제갈량을 찾 아볼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제법 채비가 되었다 싶어 막 떠나려는 데 사람이 와서 알렸다.

“문 밖에 한 분 선생님이 와 계시는데 아관박대(冠博帶, 사대부 또 는 사대부의 차림)로 용모가 범상치 아니합니다. 특히 뵈옵기를 청하 고 있습니다.”

그 말에 유비가 문득 생각했다.

‘그 사람이 혹 공명이 아닐까?’

외곬으로 제갈공명만을 생각하다 보니 용모가 범상치 않다는 말 한마디에도 그런 추측이 일었다.

유비는 곧 옷매무새를 고치고 찾아온 사람을 맞으러 나갔다. 나가 보니 온 사람은 뜻밖에도 수경선생 사마휘였다. 제갈공명은 아니었 지만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비는 반갑게 사마휘를 맞아들여 후 당 높은 자리에 앉힌 뒤 절하며 말했다.

“이 비는 신선 같은 존안을 뵙고 떠난 이래 곧 다시 찾아뵙고자 하였으나 군무(軍務)에 얽매여 늦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영광되게 도 이렇게 찾아주시니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을 크게 달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거북스럽소이다. 나는 서원직이 이곳에 있단 말을 듣고 한번 만나러 왔을 뿐이오.”

사마휘가 그렇게 대답했다. 아직 서서가 조조에게로 간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유비가 쓸쓸한 얼굴로 서서가 떠난 경위를 말했다. 

“근간에 조조가 서원직의 자당을 사로잡고 편지를 내어 아들을 부르게 했습니다. 이에 서원직은 하는 수 없이 허창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사마휘가 놀란 얼굴로 탄식했다.

“아뿔싸! 일을 그르쳐도 크게 그르쳤구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유비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사마휘가 침울하게 까닭을 일러주었다. 

“이 일에는 조조의 꾀가 숨어 있소. 제가 듣기로 서서의 모친은 매우 어지신 이라 설혹 조조에게 사로잡혔다 해도 조조가 시키는 대로 글을 써서 그 아들을 부를 분이 아니다. 그 편지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그분의 필적을 흉내 내어 만든 가짜일 것이오. 원직이 가지 않았다면 그 모친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이지만 이제 갔으니 그 모친 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외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유비가 아직도 사마휘의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서원직의 모친은 의를 높이 여기는 분이니 그 아들을 보기가 부 끄러우실 것이오. 그 때문에 열에 아홉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 이외다.”

대저 어질고 밝은 이의 헤아림이 그와 같았다. 제갈공명이 예측했 던 일을 사마휘 또한 예측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비는 그제서야 서서를 보낸 걸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 였다. 한동안 어두운 낯빛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윽고 물었다. 

“원직이 떠날 무렵 하여 남양의 제갈량을 추천했습니다. 그 인물 됨이 어떠합니까?”

그 말에 사마휘가 씁쓸한 웃음을 띠며 중얼거렸다.

“원직이 떠나려면 저나 얼른 떠나고 말 것이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끌어내 심혈을 쏟게 만드는가?”

“선생님께서는 어인 까닭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공명은 박릉의 최주평, 영천의 석광원(石), 여남(南)의 맹공 위(孟) 및 서원직 네 사람과 아주 가까이 지냈는데, 그 네 사람 이 모두 일하는 데 세밀하고 철저함을 앞세움에 비해 공명은 오직 그 큰 줄기만을 볼 뿐이었소. 일찍이 모두가 다 모인 자리에서 무릎을 껴앉고 무언가를 길게 읊조리던 공명이 그 네 사람을 향해 불쑥 말한 적이 있지요. ‘그대들은 벼슬길에 나아가면 자사(刺史)나 태 쯤은 될 수 있을 것이네.’ 그러자 네 사람은 공명에게 그가 뜻하는 바는 무엇이냐고 물었소. 공명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는 매 양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하고 있소이다. 실로 그 재주를 헤아 릴 길이 없는 사람이오.”

유비가 그 말을 듣고 감탄해 물었다.

“어찌하여 영천 땅에 이토록 어질고 재주 있는 이가 많습니까?” 

“지난날 은(殷)란 이가 있어 천문을 썩 잘 보았소이다. 일찍이 말하기를 뭇별이 영천 어름에 몰려 있으니 반드시 그 땅에 어질고 재주 있는 선비가 많이 나리라 하였소.”

그때 곁에 있던 관우가 못마땅한 얼굴로 사마휘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 관중과 악의는 춘추전국시대의 이름난 사람들로 그 공이 온세상을 덮을 만하다 했습니다. 그런데 공명이 스스로를 그 두 사람에 비하고 있다 하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 두 사람이 공명과 비교되는 게 오히려 맞지 않는 것 같소. 오히려 다른 두 사람과 공명을 비교하고 싶소이다만………….” 

조금도 과장하는 기색 없이 사마휘가 대답했다. 그 말에 관운장이 다시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이라면 누구누구를 이르시는 것입니까?”

“공명은 주나라를 일어나게 한 강자아나 한나라를 왕성케 한 장 자방에 비할 수 있을 것이오.”

엄청난 그 소리에 유비나 관우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사람은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마휘는 그런 사람들에 아랑곳없이 그곳을 떠나려 했다. 어쩌면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여겨 은근히 노여웠던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생님, 잠시라도 쉬셨다가 가십시오.”

유비가 문을 나서는 사마휘를 붙들었다. 그러나 사마휘는 그대로 휘적휘적 걸어가며 하늘을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그러더니 듣는 사 람들로서는 얼른 알아들을 수 없는 탄식 한마디를 남기고 표연히 가 버렸다.

“와룡이 비록 그 주인을 얻었으나 때를 만나지는 못했으니 애석하구나!”

유비는 그 같은 사마휘의 오고 감에 감탄했다.

“실로 숨어 사는 현사(賢)로다!”

그리고 다음 날로 제갈량을 찾아 융중으로 떠났다.

유비가 관, 장두 아우와 몇 사람을 데리고 융중 부근에 이르니 산 비탈에 몇 사람이 호미를 들고 밭을 매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보 였다.

푸른 하늘 둥그런 덮개 같고 蒼天如圓蓋

땅은 바둑판 비슷하구나. 陸地如棋局

사람들은 검은 돌 흰 돌을 갈라 世人分黑白

바쁘게 오가며 영욕을 다투네. 往來爭榮辱

영화로움은 스스로 평안함에 머묾이요 榮者自安安

욕됨도 정히 하찮은 것이로구나. 辱者定碌碌

남양 땅에 숨어서 삶이여 南陽有隱居

드높은 잠 누워서도 오히려 모자라네. 高眠臥不足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그런 노래였다. 유비는 그 격이 낮지 않음을 보고 노래 부르던 농부를 불렀다.

“그 노래는 누가 지은 것인가?”

“와룡선생이 지은 것입니다.”

농부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유비는 반가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와룡선생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 산 남쪽에 높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와룡강입니다. 그 언덕 앞 성긴 나무 사이에 있는 초려(草廬)가 바로 와룡선생께서 높 게 누워 있는 곳입지요.”

농부가 자랑 섞어 그렇게 대답했다. 유비는 그 농부에게 감사하고 말을 채찍질해 앞으로 나아갔다. 몇 리 가기도 전에 저만치 와룡강 이 보이는데, 과연 맑은 경개가 범상치 않았다. 뒷사람은 그곳을 이 렇게 노래했다.

양양 서쪽 이십리에

언덕 하나 흐르는 물 베고 누웠네.

언덕은 높아 굽이굽이 구름자락 두르고

흐르는 물 졸졸 돌이끼를 씻어내네.

산세는 바위 위에 용이 튼 듯하고

모양은 봉이 소나무 그늘에 든 듯하다.

사립문 반쯤 가린 띠집은 닫혔는데

높은 선비 거기 누워 일어날 줄 모르네.

대숲은 푸른 병풍을 두른 듯하고

울타리는 사철 떨어진 들꽃으로 향기롭구나.

평상에 쌓인 책 모두 귀하고

드나드는 이 모두 여느 사람 아니네.

푸른 원숭이 문 두드려 과일 바치고

문 지키는 늙은 학 밤에는 경(經)을 듣누나.

주머니 속 거문고 비단에 싸여 있고

벽에 걸린 보검에는 솔 그림자 비친다. 

띠집 속 와룡선생 홀로 그윽하고 밝구나.

한가하면 손수 밭 갈고 집안 돌보네. 

봄 우레 소리에 놀라 꿈을 깨면

한소리 긴 가락으로 천하가 평안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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