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6권 – 13화 : 서량에서 이는 회오리

랜덤 이미지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6권 – 13화 : 서량에서 이는 회오리


서량에서 이는 회오리

유비가 새로 방통을 얻어 제갈량과 더불어 군사를 기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은 오래잖아 조조의 귀에도 들어갔다. 군사를 모으고 말 을 사들이며 말먹이 풀과 군량을 쌓을 뿐만 아니라 동오와 힘을 합 쳐 북으로 쳐올라 오려 한다는 좀 과장된 소문이었다.

조조는 그런 소리를 듣자 곧 여러 모사들을 불러놓고 오히려 남 으로 쳐내려 갈 의논을 시작했다. 먼저 순유가 나서서 말했다. “주유가 이미 죽었으니, 먼저 손권을 쳐 없애고 다음으로 유비를 공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어두운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내가 멀리 싸우러 간 뒤에 마등(馬騰)이 허도로 쳐들어올까 두렵 네. 지난날 적벽 싸움 때도 서량의 군사들이 쳐들어왔다는 헛소문이 떠돌아 우리 군사들이 적지 않이 흔들리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그런 일을 미리 막아두지 않을 수가 없네.”

“제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마등에게 남정장군을 내리신 뒤에 손권 을 친다는 핑계로 불러들여 먼저 그자부터 없애버리는 게 좋겠습니 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남쪽으로 원정을 가도 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가 들어보니 그 꾀가 그럴듯했다. 기꺼이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곧 사람을 뽑아 서량으로 마등을 부르러 보냈다.

마등은 자를 수성(壽)이라 쓰며 한(漢)복파장군 마원(馬)의 후예였다. 그 아비 숙)은 자를 자석(碩)이라 썼는데 환제(桓) 때 난간현(縣)의 현위를 지냈으나 뒤에 영락하여 농서에서 강인 (人)들과 섞여 살았다.

마등은 그 아비 숙이 강녀)를 얻어 낳은 아들로, 키가 여덟 자에 생김새가 씩씩한 데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 일찍부터 많 은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았다. 그 뒤 영제(帝) 때 강인들이 모 반하자 마등은 백성들을 모아 그들을 쳐부수었고 다시 초평(平) 중년에는 도적을 쳐 없앤 공이 있어 정서장군에 제수되었다. 진서장 군인 한수(韓)란 이와 몹시 친했는데 나중에는 형제의 의를 맺고 지냈다.

그날 마등은 갑작스레 허도에서 칙사가 와서 천자의 부름을 전하 자 맏아들 마초(馬超)를 불러놓고 의논했다.

“나는 지난날 동승(承)과 함께 천자로부터 띠 속에 감춰진 조서 를 받고 유비와 더불어 역적을 치기로 맹세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승은 그 일이 새어나가 조조에게 이미 죽임을 당했고 유비 는 거듭 싸움에 져서 멀리 쫓겨가 있다. 내가 외진 서량에 있어 그동 안 유비를 돕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들으니 유비는 새로 형주를 얻었 다고 한다. 이제 다시 그와 힘을 합쳐 지난날 못다 이룬 뜻을 펴보려 하는데 오히려 조조가 천자의 이름을 빌려 나를 부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마초가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조조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아버님을 부르고 있으니 만약 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아버님께 천자의 명을 거스른 죄를 뒤집어씌울 것 입니다. 마땅히 그 부름을 따라 허도로 가되, 그곳에서 틈을 보아 일 을 벌인다면 지난날 못 이룬 뜻을 펼쳐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함께 있던 마등의 조카 마대(馬岱)가 말렸다.

“조조의 속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숙부께서 가셨다가 해를 입으실까 두렵습니다.”

“저는 서량의 군사들을 모두 데리고 아버님을 따라 허창으로 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는 천하를 위해 해로운 물건을 없이하고자 함 이니 안 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마초가 기세 좋게 종형의 말을 맞받았다. 듣고 있던 마등이 조용 히 그런 아들을 달랬다.

“너는 강병(羌)들을 거느리고 서량을 지키고 있거라. 나는 네 아 우 휴(休)와 철(鐵), 그리고 조카 대(岱)만 데리고 가겠다. 아무리 조 조라도 네가 군사를 데리고 서량에 있고 또 한수가 서로 돕고 있음 을 보면 감히 나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님께서 가시더라도 결코 가볍게 허도로 들어가셔서는 아니되십니다. 그때그때 형편을 보아 대응하시기로 하고 먼저 조조의 움 직임부터 살피도록 하십시오.”

부친의 엄명이라 마지못해 따르면서도 마초는 그렇게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마등은 그런 아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빙긋 웃으며 말 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마등은 곧 서량병(西兵) 오천을 뽑아 길을 떠났다. 아들 마휴(馬)와 마철(馬)을 앞서게 하고 조카 마대에게는 뒤를 맡긴 뒤 스스로 중군을 맡아 허창으로 나아갔다.

오래잖아 허창에 이른 마등은 성문 밖 이십 리쯤 되는 곳에 군마 를 멈추었다. 아들 마초의 말대로 그곳에서 잠시 조조의 움직임을 살핀 뒤에 성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한편 조조는 마등이 성 밖에 이르렀단 말을 듣자 문하시랑 황규 (黃奎)를 불러 말했다.

“지금 마등이 남쪽의 유비와 손권을 칠 군사를 이끌고 온 모양이 다. 그대를 행군참모로 그에게 보낼 것이니 가서 이르라. 서량은 길 이 멀어 군량을 옮겨오기 어려우므로 많은 인마를 데리고 올 수 없 었을 것인즉 내가 마땅히 대병을 내어 함께 힘을 합쳐 나갈 것이라 고. 또 내일은 성안으로 들어와 천자를 뵙도록 이르고 아울러 내가 그때 군량과 말먹이 풀을 주리란 말도 전하라.”

이에 황규는 조조의 명을 받들어 마등에게로 갔다. 마등은 술을 내어 황규를 대접했다. 그런데 술이 반쯤 올랐을 때였다. 황규가 문득 뜻밖의 소리를 했다.

“저희 아버지 황완(琬)은 이각과 곽사의 난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언제나 그 일을 마음 아프게 여겨오고 있는데 이제는 내가 또 임금을 속이는 역적 놈을 만났습니다…………”

“누가 그런 역적이란 말이오?”

마등이 속으로 놀라며 물었다. 황규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홀리는 역적 놈은 바로 조조입니다. 공 은 그걸 몰라 제게 물으십니까?”

딴에는 고른다고 골라 보낸 황규였으나 조조는 사람을 잘못 고른 셈이었다. 그러나 마등은 조조가 자신을 떠보려고 황규를 보냈을지 모른다 싶어 얼른 황규를 말렸다.

“가까이에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있소이다. 함부로 어지러운 말씀을 하지 마시오.”

그러자 황규가 마등을 쏘아보며 꾸짖듯 소리쳤다.

“공은 벌써 천자께서 의대에 감춰 내리셨던 옛날의 그 조서를 잊으셨소?”

마등이 보니 아무래도 진심에서 우러난 소리 같았다. 이에 마등은 목청을 낮추어 황규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황규가 놀라운 내막을 일러주었다.

“조조는 공에게 성으로 들어와 천자를 뵙도록 하라 하였으나 그 것은 틀림없이 좋은 뜻에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함부로 성안으로 들어가지 마시고 먼저 성 밖에서 조조로 하여금 공이 이끌고 온 군마를 점고케 하십시오. 그리하여 조조가 공의 군마를 점고하고 있을 때 틈을 타서 그를 베어버리신다면 큰일은 이 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등이 들어보니 좋은 계책 같았다. 이에 그 말대로 따르기로 하 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마등과 헤어진 황규는 곧 집으로 돌아왔으나 술기운으로 복받친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황규의 안색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보 고 그 아내가 까닭을 물었다. 황규는 아녀자에게 터놓고 얘기할 일 이 아닌지라 대답 대신 퉁만 주어 입을 막아버렸다.

그런데 황규의 첩에 이춘향春香)이란 계집이 있었다. 이 계집 이 뜻밖에도 황규의 처남 묘택(苗)이란 자와 배가 맞아 남몰래 놀 아나고 있었다. 그날 황규가 뭔가 분해하고 한스러워하는 기색을 보 이자 이춘향은 몰래 묘택을 만나 말했다.

“오늘 황시랑(侍郞)이 마등과 함께 군사에 관한 걸 의논하고 돌 아왔는데 왠지 얼굴에 분함과 한스러움이 내비치고 있는데 무엇 때 문에 그럴까?”

이때 묘택은 한창 춘향에게 빠져 있었다. 밤낮으로 춘향을 얻을 궁리를 짜내 보았으나 매부의 첩이라 어찌해볼 방도가 없던 차에 그 말을 들으니 먼저 못된 피부터 떠올랐다.

“뭐라고? 그럼 이따가 슬쩍 말로 그자의 속셈을 한번 거들어보는 게 어때? 이렇게 한번 물어보란 말이야. ‘사람들이 모두 유비는 어질 고 덕이 있으며, 조조는 간웅(奸)이라 하는데, 정말입니까?’라고. 그리고는 그자가 털어놓는 얘기를 잘 들어둬.”

묘택이 그렇게 말하자 계집이 알 듯 말 듯한 눈길로 물었다.

“건 뭣하시게?”

“평소 그자의 행동거지로 미루어 짚이는 게 있어 그렇단 말이야.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해.”

묘택이 그렇게 말하자 계집도 알겠다는 양 고개를 까닥이고는 돌아갔다.

그날 밤이었다. 황규가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려고 춘향의 방으로 찾아드니 초저녁부터 온갖 단장을 다하고 기다리던 춘향이 교태 섞 어 그를 맞아들였다. 작은 주안상에는 어느새 술과 안주까지 조촐하 게 차려져 있었다. 한창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춘향이 살그머 니 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유현덕을 어질다 하고 조조를 간웅이라 하 는데 정말입니까?”

그게 바로 자신의 속을 떠보기 위한 수작이란 것도 모르고 첩의 밝은 소견만 대견하게 여긴 황규가 술김에 속을 털어놓고 말았다. 

“너는 한낱 아녀자이면서도 바른 것과 그릇된 것을 분별할 줄 아 는데 하물며 대장부인 나이겠느냐? 나는 지금 조조를 죽여 가슴속 의 오랜 한을 풀고자 한다.”

“장한 일이십니다. 그렇지만 조조 같은 간웅을 죽이기는 쉽지 않 을 것입니다. 어떻게 손을 쓰실 작정이십니까?”

첩이 제법 걱정까지 하는 표정으로 황규에게 다시 물었다. 깜박 속은 황규는 해서 안 될 말까지 모두 해버렸다.

“다 방법이 있지. 나는 이미 마등 장군과 약조를 맺어두었다. 내일 조조가 성 밖에서 서량군을 점고할 때 죽여버릴 작정이다.”

거기까지 들은 춘향은 황규가 잠들기를 기다려 묘택에게 그대로 전했다. 치정에 눈이 어두워지면 사람이 짐승만도 못해지는가. 묘택 은 그게 바로 누이의 집안을 결딴내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곧바로 조조에게 달려가 황규가 한 말을 모조리 일러바쳤다.

그 놀라운 귀띔을 들은 조조는 곧 조홍과 허저를 불러 무어라고 영을 내린 뒤 다시 하후연과 서황을 불러 새로운 영을 내렸다. 그리 고 한편으로는 황규의 집안 노소부터 먼저 잡아들이게 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등은 황규와 약조한 대로 서량의 병마를 이끌고 성 밖에 이르렀다. 성 가까이 이르니 앞에 붉 은기한 떼와 더불어 승상의 기호(號)가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마등은 조조가 스스로 군사를 점고하러 나온 줄 알고 말을 박차 앞 으로 나갔다.

그때 홀연 한소리 포향과 함께 붉은 기가 좌우로 갈라지며 화살 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등이 놀라 보니 앞선 장수는 조조 가 아니라 조홍이었다. 그제서야 황규와 더불어 꾸민 일이 드러난 걸 안 마등은 급히 말 머리를 돌렸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갑자 기 양쪽에서 함성이 일며 왼쪽에서는 허저가 짓쳐들어오고 오른쪽 에서는 하후연이 짓쳐들어왔다. 뿐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다시 서황이 짓쳐들며 서량군의 길을 끊으니 마등 부자 세 사람은 조조의 대군 한가운데 갇히고 말았다.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마등은 고개조차 바로 들지 못하고 힘을 다해 싸웠다. 이리 부딪고 저리 찌르며 결사적으로 에움을 벗어나려 했으나 겹겹이 둘러싼 조조의 대군을 뚫고 나갈 수는 없었다.

마침내 마철이 먼저 어지럽게 나는 화살에 맞아 죽고, 마휴도 그 아비를 따라 힘을 다해 싸웠지만 끝내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마등과 마휴 부자는 여기저기 무거운 상처를 입은 데다 타고 있던 말이 화 살에 맞아 쓰러지자 조조의 군사들에게 함께 사로잡히고 말았다. 조조는 잡혀온 마등 부자와 황규를 한꺼번에 끌어냈다. 그때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던 황규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승상, 이게 무슨 짓이오? 나는 아무 죄도 없소이다!”

“묘택을 불러내도록 하라!”

조조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좌우를 보고 일렀다. 그제서야 황규 는 일이 어디서 어그러졌는가를 알았다. 끝까지 부인해보려 했지만 묘택이 나와 몇 마디도 하기 전에 말이 막히고 말았다. 곁에서 보고 있던 마등이 황규를 소리쳐 꾸짖었다.

“저 더벅머리 선비 놈이 내 큰일을 그르치고 말았구나. 나라를 위 해 역적을 죽이려 했는데. 아아,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그리고 다시 조조를 향해 꾸짖기 시작했다.

조조는 모든 일이 밝혀지자 마등 부자 및 황규를 모두 죽였다. 마 등은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조조를 욕하여 마지않았다. 뒷사람 이 시를 지어 그를 높이 추켰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꽃답고 매웁구나.  父子齊芳烈

충성과 정절로 뚜렷한 집안일세. 忠貞著一門

삶을 바쳐 나라의 어려움을 풀려 하고 捐生圖國難

죽음을 맹세코 임금의 은혜에 보답했네. 誓死答君恩

피를 머금어 맹세한 말 嚼血盟言在

간사한 역적 죽이리란 의장(儀)에 남아 있네. 誅奸義狀存

서량의 대대로 녹을 받은 집안 西涼椎世胄

복파장군 후예로 부끄럽지 않아라. 不愧伏波

한편 매부를 밀고하여 죽인 묘택은 부끄러움도 없이 조조에게 청했다.

“저는 아무런 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춘향을 아내로 삼게만

해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측은한 데마저 있는 치정이었다. 그러나 조조의 대답

은 뜻밖이었다.

“너는 한낱 계집에 미쳐 매부의 집안을 도륙나게 한 놈이다. 너같 이 의롭지 못한 놈은 살려두어 어디다 쓰겠느냐?”

싸늘한 웃음과 함께 그렇게 대답한 조조는 묘택과 이춘향도 황규 의 가솔들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목 베게 했다.

조조의 그 같은 처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이미 곳곳에서 보여온 조조의 의에 대한 태도이다. 그가 입은 혹독 한 왜곡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인물이면 손해를 입어가면서까지 관 대함을 베풀고 불의한 인물은 아무리 이익을 주어도 용서하지 않았 던 조조의 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의 대표적인 예가 관운장에 대한 조조의 후대였다면 뒤의 예로 대표적인 것은 묘택의 일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제 조조의 치세가 완전히 안정되었다는 점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형세가 불안정할 때는 남의 불의를 부추기는 한이 있 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즉 적에게는 얼마든지 배반을 권장하고 또 그렇게 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자는 상 으로 격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안정되면 더욱 필요한 것은 법과 윤리가 된다. 조조가 묘택을 죽인 것은 더 이상 백성들의 불의 를 권장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안 정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황규의 가솔과 묘택까지 죽인 조조는 다음으로 서량병들을 달랬다.

“마등과 그 자식들은 모반을 했기에 죽였다. 그러나 그 나머지 군 사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한편으로는 각곳의 관과 요긴한 길목을 엄히 지키게 하여 마대가 달아나는 것을 막도록 했다.

원래 마등 부자가 사로잡히던 그날 마대는 군사 일천을 거느리고 뒤에 남아 있었다. 마등이 떠난 지 얼마 안 돼 성 밖에서 도망쳐 온 군사들이 마대에게 일이 탄로나 마등 부자가 사로잡혔음을 알렸다. 크게 놀란 마대는 겨우 일천의 군사로는 마등을 구하러 갈 엄두 가 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듣기 바쁘게 군사들을 버리고 자신은 장 사치로 꾸며 밤낮없이 서량으로 달아났다.

한편 조조는 등 뒤의 걱정거리이던 마등을 없애자 마음 놓고 남쪽을 정벌하러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남쪽에 풀어놓았던 간세들이 뜻밖의 전갈을 보내왔다.

“유비가 군마를 조련하고 기구들을 갖추어 서천을 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소식에 놀란 조조가 돌아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유비가 서천을 얻게 되면 이는 범에게 날개를 더해준 꼴이 된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유비와 손권이 서로 돌볼 수 없 게 하여 서천과 강남을 아울러 승상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조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계하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쳤다. 조조가 보니 시어사로 있는 진군(陳群)이었다.

“진장문, 진군의 자)은 어떤 좋은 계책이 있는가?”

조조가 반가운 얼굴로 그렇게 묻자 진군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손권과 유비는 입술과 이 같은 사이로 맺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비가 서천을 탐내고 있다니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승상께서 는 곧 뛰어난 장수를 뽑아 군사를 이끌고 합비로 가게 하십시오. 그 곳에서 다시 합비의 군사들과 합친 뒤 강남으로 쳐내려 가게 하시면 손권은 반드시 유비에게 구해주기를 빌 것입니다. 그러나 유비의 욕 심은 서천에 있는 까닭에 손권을 구해줄 마음이 없을 것이고, 손권 은 유비의 구함을 받지 못하면 군사가 적어 큰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강동은 승상께서 얻으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또 강동이 우리 손에 떨어지면 형주는 북소리 한번에 평정할 수 있습니다. 서천을 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유비 제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가졌다 해도 서천만 가지고는 우리에게 맞설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천하의 형세는 절로 정해지고 말 것입니다.”

별로 이렇다 할 계책이랄 것은 없었으나 말인즉은 그럴듯했다. 

“장문의 말이 바로 내 뜻과 같다. 그대로 따르리라.”

조조는 그렇게 대답하고 곧 삼십만 대병을 일으켜 강남으로 내려 갔다. 아울러 합비에 있는 장요에게는 미리 곡식과 말먹이 풀을 마 련하여 대병의 뒤를 댈 수 있게 하라는 영을 내렸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내려온다는 소식은 오래잖아 손권의 귀에 도 들어갔다. 손권은 여럿을 불러 모아놓고 조조 막을 일을 의논했 다. 먼저 장소가 나와 말했다.

“사람을 뽑아 노자경에게 보내시어 급히 형주에 글을 띄우게 하 십시오. 유비에게 힘을 합쳐 함께 조조를 막고자 하면 유비는 자경 에게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이라 반드시 그 말을 따를 것입니다. 기다가 유비는 또 우리 동오의 사위가 된 사람이니 친척간의 의리로 서도 마다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만약 유비가 우리를 도우러 오게 되면 강남은 별로 걱정할 일이 없겠습니다.”

손권이 생각해도 그 길밖에는 달리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에 손 권은 장소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곧 노숙에게 사람을 보내 유비에게 도움을 청하라 했다. 노숙은 손권의 명을 받기 바쁘게 유비에게 도 움을 청하는 글을 써 보냈다.

유비는 노숙의 글을 읽었으나 달리 뜻하는 바가 있는지라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사자를 객사에 머물게 해놓고 사람을 보내 남군에 있는 공명을 불러오게 했다.

공명이 형주에 오자 유비는 노숙이 보낸 글을 내놓고 공명에게 어떻게 할까를 물었다. 먼저 노숙의 글을 살핀 공명이 대수롭지 않 다는 투로 말했다.

“강남의 군사를 움직일 필요도 없고 형주의 군사도 움직일 필요 가 없습니다. 조조로 하여금 감히 동남쪽을 엿볼 수 없게 할 수 있는 계책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곧 노숙에게 답장을 썼다.

‘베개를 높이 하고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오. 만약 북쪽의 군사들 이 침범한다 해도 우리 황숙께서는 그들을 물리칠 계책이 서 있습 니다.

그러나 유비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노숙에게서 온 사 자가 돌아가기 바쁘게 공명에게 물었다.

“지금 조조는 삼십만 대군을 일으킨 데다 합비의 군사들까지 합 쳐 밀려오고 있소. 선생에게는 어떤 계책이 있기에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단 말이오?”

공명이 조용히 계책을 유비에게 일러주었다.

“조조가 평생 두려워해온 것은 서량의 군사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조조가 마등을 죽였으니 서량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그 아들 마 초는 틀림없이 조조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글을 보내 마초와 동맹을 맺고, 마초로 하여금 관(關)을 넘어 중원으로 쳐 나오게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조조는 강남을 엿볼 겨를이 없을 것 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유비는 얼굴 가득 기쁜 빛을 띠었다.

한편 아버지를 대신해 서량을 지키고 있던 마초는 어느 날 이상 한 꿈을 꾸었다. 허옇게 눈이 덮인 벌판에 서 있는데 호랑이 떼가 몰 려와 자신을 물어뜯는 꿈이었다. 놀랍고 두려워 눈을 뜬 마초는 여 럿을 불러놓고 그 꿈 얘기를 했다. 듣고 있던 사람 중에 하나가 길흉 을 묻는 마초에게 소리쳐 대답했다.

“그 꿈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올시다.”

여럿이 그 사람을 보니 마초가 가까이서 부리는 교위 방덕(德) 이란 사람이었다. 마초가 걱정스런 눈길로 그에게 물었다. 

“영명(明, 방덕의 자)은 어째서 그렇게 보시오?”

“눈 덮인 벌판에서 호랑이를 만났다니 꿈치고는 아주 좋지 못한 꿈입니다. 혹시 노(老)장군님이 계신 허창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미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뛰어 들어 땅에 엎드려 울며 말했다.

“숙부님과 아우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마초가 놀라 그 사람을 보니 다름 아닌 사촌 아우 마대였다. 그를 알아본 마초가 급히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숙부님과 시랑 황규가 함께 조조를 죽이려 꾀했으나 불행히도 일이 사전에 탄로나 모두 저잣거리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두 아 우도 함께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오직 저만 장사치로 꾸며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밤을 틈타고 호젓한 길을 골라 간신히 이곳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마대가 눈물 반 넋두리 반 섞어 그렇게 마등의 죽음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마초는 통곡과 함께 땅에 쓰러졌다. 모든 장수들이 붙들 어 일으키자 마초는 이를 갈며 조조를 저주했다.

“조조, 이 역적 놈. 내 반드시 네놈의 고기를 씹어 이 원수를 갚으 리라…….”

그때 홀연 형주에서 유현덕이 사람을 시켜 글을 보내왔다는 전갈 이 들어왔다. 유현덕은 죽은 부친의 벗이요, 함께 조조를 없애기로 맹세했던 동지라 마초는 조조에 대한 분노와 부친을 잃은 슬픔 가운 데서도 지체없이 유현덕이 보낸 글을 펴 보았다. 거기에는 대략 이 렇게 씌어 있었다.


‘엎드려 생각건대 한실이 불행하여 조조 같은 역적이 권세를 오로 지하고 위로 임금을 속이며 아래로 백성들을 못살게 굴고 있소이다. 유비는 일찍이 장군의 돌아가신 부친과 더불어 천자께로부터 밀조 받고 이 역적을 죽여 없애기로 맹세한 바 있소. 이제 선친께서 조 조에게 해를 당하셨으니 조조는 장군에게 하늘과 땅을 함께하고 해 와 달을 더불어 우러를 수 없는 원수일 뿐만 아니라 내게도 용서 못 할 원수라 할 수 있을 것이외다. 만일 장군이 서량의 군사를 이끌고 조조의 오른쪽을 쳐부순다면 나는 형주의 군사를 일으켜 조조의 앞 을 막아보겠소. 그리하면 조조를 사로잡고 그를 둘러싼 간사한 무리 를 모두 없애, 장군의 원수를 갚음은 물론 한실을 다시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오. 할 말은 태산 같으나 글이 짧아 이 마음속을 다 펼쳐보이지 못하는 게 한이오. 다만 장군의 반가운 회신이 있기를 서서 기다릴 뿐이다.’


마초가 그 글을 읽고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 섞 어 답서를 써 보내고 곧 서량의 군마를 일으켰다.

서둘러 군사를 일으킨 마초가 막 허도로 짓쳐들어가려 할 때였다. 선친 마등의 의형제인 서량 태수 한수가 사람을 보내 마초를 불렀 다. 마초가 한수를 찾아가니 한수는 아무 말 없이 조조가 자신에게 보낸 글 한 통을 내보였다.

‘만일 그대가 마초를 사로잡아 허도로 온다면 그대를 바로 서량후 (西凉侯)에 봉하리다.’

대략 그런 내용의 한수를 달래는 글이었다. 그 글을 다 읽은 마초 는 땅에 엎드려 절하며 한수에게 말했다.

“바라건대 숙부께서는 우리 형제 두 사람을 묶어 허창으로 보내 시어 조조와 싸워야 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그 말이 어찌 진심일까만, 한수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들어놓고자 짐짓 해본 소리였다. 한수가 그런 마초를 일으켜 세우면서 결연히 말했다.

“나와 네 아버지는 형제를 맺었으니 너는 내 조카다. 어찌 차마 너를 해치겠느냐? 만약 네가 군사를 일으킨다면 나는 마땅히 너를 도우리라.”

그리고 조조의 사자를 끌어내 목 벰으로써 자신의 뜻이 확고함을 보였다.

이때 한수는 휘하에 여덟 부(部)의 군마를 거느리고 있었다. 곧 후 선(選), 정은(銀), 이감(李), 장횡(張橫), 양흥(梁興), 성의(成宜), 마완(馬), 양주(楊秋) 여덟 장수가 이끄는 군사로 그들이 한수를 따라 마초의 장수 방덕 및 마대가 이끄는 군사들과 합치니 서량군은 모두 이십만의 대군이 되었다.

서량군이 성난 파도처럼 장안으로 몰려들자 장안 태수 종요(鍾繇) 는 급히 그 일을 조조에게 알리는 한편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와 들 판에 진을 쳤다. 서량군의 선봉은 마대였다. 마대는 일만 오천의 군 사를 이끌고 산과 들을 뒤덮듯 하며 기세좋게 밀고 들어왔다.

종요가 말을 타고 나가 몇 마디 수작을 건네보았으나 일은 이미 말이 소용없는 상태였다. 마대가 한 자루 보검을 휘두르며 종요를 덮쳐 곧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종요는 원래 마대의 적 수가 아니었다. 마대와 창칼을 한번 부딪자마자 스스로 힘이 모자람 을 깨닫고 곧 말을 돌려 달아나기 바빴다.

마대는 칼을 휘두르며 달아나는 종요를 뒤쫓았다. 뒤이어 마초, 한수가 이끄는 대군이 모두 이르니 곧 장안성은 서량병에게 몇 겹으 로 에워싸이고 말았다. 종요는 할 수 없이 스스로 성벽 위에 나와 장 졸들을 격려하며 조조의 구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장안은 원래 서한(西漢)이 도읍으로 삼았던 도시라 성벽은 굳고 높았으며 성을 둘러싸고 있는 웅덩이와 물길은 험하고 깊었다. 아무 리 성난 서량의 대군이라도 급히 떨어뜨릴 수 있는 성이 아니었다. 열흘간이나 에워싸고 잇대어 공격을 퍼부었으나 성이 끄떡도 하 지 않자 방덕이 계책을 냈다.

“장안성 안은 땅이 굳고 물이 짜 우물을 파 마시기 어렵습니다. 거 기다가 땔감조차 없는데 이제 우리가 성을 에워싼 지 열흘이나 되었 으니 군사와 백성들이 한가지로 주림과 추위에 지쳤을 것입니다. 이 렇게 한번 해보시지요. 틀림없이 장안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마초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수군거렸다. 듣고 난 마초 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것 참 좋은 계책이다!”

마초는 입으로 그렇게 감탄했을 뿐만 아니라 곧 방덕의 계책을 그 대로 시행했다. 각부에 ‘영(令)’자 깃발을 들려 모두 군사를 물리게 하고 마초 자신은 뒤에 남아 뒤쫓는 적을 막는 일을 맡았다. 마초의 영을 받은 서량병들은 차례로 장안성에서 물러나기 시작해 이튿날 종요가 성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는 이미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종요는 서량병이 물러나고 있음을 알았으나 그것이 자기를 성 밖 으로 끌어내려는 계책 같아 두려웠다. 얼른 서량병을 뒤쫓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먼저 허실을 탐지하게 했다.

“정말로 멀리 가버렸습니다.”

이윽고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돌아와 종요에게 알렸다.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종요는 군사와 백성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오게 했다. 그렇게 하자니 자연 성문은 크게 열리고 사람 들의 나들이는 마음대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량병이 물러간 지 닷새째가 되는 날이었다. 멀리 나가 마초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군사가 헐떡이며 달려와 종요에게 알렸다.

“마초의 군사들이 다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군사와 백성들이 다투어 성안으로 몰려들었다. 종요는 그들이 모두 성안으로 들기를 기다려 굳게 성문을 닫고 적을 맞을 채비를 갖추었다.

그때 장안성 서문을 맡아 지키는 장수는 종요의 아우 종진(鍾進) 이었다. 그날 밤 삼경 무렵이 되어 성문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문안 쪽에서 불길이 이는 게 눈에 띄었다. 종진은 급히 그쪽으로 달려갔 다. 갑자기 성벽 한쪽에서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말을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이놈 어딜 가느냐? 방덕이 여기 있다!”

성을 나갔던 군사와 백성들 틈에 섞여 몰래 성안으로 숨어든 마 초의 장수 방덕이었다. 놀란 종진이 어떻게 맞서보려 했지만 워낙 뜻밖의 일이라 미처 손쓸 틈이 없었다. 방덕의 한칼에 머리를 잃고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방덕은 종진을 죽인 기세로 뒤이어 몰려든 종요의 군교(軍校)들을 흩어버리고 성문 빗장을 부숴버렸다.

방덕이 크게 성문을 열자 밖에서 기다리던 마초와 한수의 군사들 이 물밀듯이 성안으로 몰려들었다. 잠자다가 일을 당한 종요로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성을 버리고 마초가 일부러 틔워준 동문 으로 빠져 달아났다. 어렵지 않게 장안성을 빼앗은 마초와 한수는 삼군에게 크게 상을 내려 그 공에 답했다.

장안성을 빠져나간 종요는 동관(潼關)으로 물러나 굳게 지키는 한 편 조조에게 그 급한 소식을 전했다. 조조는 장안성이 마초에게 떨어졌다는 말을 듣자 다시는 남쪽을 칠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곧 조홍과 서황을 불러 엄한 얼굴로 영을 내렸다.

“그대들 둘은 우선 군사 일만을 데리고 가서 종요와 바꾸어 동관 을 굳게 지키도록 하라. 열흘 안으로 관(關)을 잃으면 둘 다 목이 잘 릴 것이나 열흘 넘긴 뒤의 일은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내가 곧 대군 을 이끌고 뒤따라갈 것이니 부디 내 말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이에 명을 받은 두 사람은 그날 밤으로 동관을 향해 달려갔다. 조홍이 떠난 뒤 조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조조에게 말했다.

“홍()은 성질이 성급해서 혹시라도 일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나도 걱정이 된다. 어서 군량과 말먹이 풀을 보내고 우리도 뒤따 라가 뒤를 받쳐주도록 하자.”

조인의 말을 들은 조조도 밝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한편 동관에 이른 조홍과 서황은 종요를 대신해 방비를 맡았다. 둘 다 싸움이라면 마다않는 맹장들이었지만 워낙 조조의 명이 엄해 굳게 지킬 뿐 나가 싸우지 않으니 애가 타는 것은 마초였다. 힘으로 깨뜨리기에는 너무 든든한 성곽이요 험한 지세였다.

이에 마초는 생각 끝에 군사를 이끌고 관 아래로 와 조조뿐만 아 니라 그 위아래 삼대 모두를 싸잡아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되니 조조의 사촌인 조홍이 그 욕질에서 무사할 리 없었다. 곧 크게 성이 나서 군사를 이끌고 관 아래로 쳐내려 가려 했다.

“아니 되오이다. 저것은 마초가 장군을 격동시켜 관 밖으로 끌어 내려는 수작이니 결코 나가 싸워서는 아니 되오. 승상께서 대군을 이끌고 오실 때까지만 참고 기다리도록 합시다. 반드시 좋은 계책이 있을 것이오.”

서황이 조홍의 옷깃을 잡으며 말렸다. 조홍도 그날만은 참았다.

하지만 마초의 욕질은 그 한번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군사를 시켜 밤낮으로 관 주위를 빙빙 돌며 조조의 삼대를 욕하게 하니 조홍은 견딜래야 견딜 수가 없었다.

“말을 준비하라! 군사 약간을 이끌고 나가 저놈들의 주둥이를 찢어 놓으리라!”

마침내 조홍은 그 한소리와 함께 군사 삼천을 이끌고 관을 내려 갔다. 일이 되느라 그런지 그때는 서황도 곁에 없었다.

바란 대로 조홍을 관 밖으로 끌어냈으나 마초는 서둘지 않았다. 어떤 명을 받았는지 서량병들은 조홍의 군사를 보자마자 말과 창칼 을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수상쩍은 일이었지 만 분김에 달려 나온 조홍은 이끌리듯 그런 서량병을 뒤쫓았다. 그때 서황은 마침 관 안에서 군량과 말먹이 풀을 점고하고 있었

다. 군사 하나가 달려와 급하게 알렸다.

“조홍 장군이 군사 삼천을 이끌고 성을 나가셨습니다.”

서황이 놀라 급히 군사를 이끌고 조홍의 뒤를 따라나가며 크게 소리쳤다.

“자렴)은 어서 돌아오시오!”

그러나 미처 조홍이 돌아서기도 전에 등 뒤에서 크게 함성이 일 며 마대가 군사를 이끌고 짓쳐왔다. 그제서야 속은 줄 알고 군사를 멈춘 조홍은 뒤따라온 서황과 더불어 급히 말 머리를 돌렸다. 그때 한차례 북소리가 나며 산 뒤에서 두 갈래의 군마가 쏟아져 나와 길을 끊었다. 왼쪽이 마초요 오른쪽은 방덕이었다.

길을 앗고자 하는 조홍, 서황과 서량병 사이에 한바탕 마구잡이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미 기운 싸움이었다. 마침내 조홍은 서 량병을 당해내지 못해 군사 태반을 잃고 겨우 길을 앗아 관 위로 달 아났다. 그러나 워낙 바짝 뒤쫓는 서량병이라 관문을 닫을 틈이 없 었다. 이에 조홍과 서황은 하는 수 없이 동관을 버리고 달아나기 시 작했다.

방덕은 그런 조홍과 서황을 쫓아 동관을 나섰으나 오래잖아 조인 이 나타나 구해 가는 걸 보고 군사를 되돌렸다. 동관에 있던 마초는 되돌아온 방덕을 관 위로 맞아들여 그날의 싸움을 끝냈다.

한편 마초에게 동관을 잃은 조홍은 정신없이 달아나다 조인의 구 원을 받아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성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열흘 기한을 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흐레만 에 동관을 잃었느냐?”

“서량의 군병들이 우리 집안을 두고 갖은 욕질을 다했습니다. 나 는 적군이 우리를 얕보아 경계를 게을리하고 있는 걸 보고 기세로 그들을 쫓다가 뜻밖에도 간사한 계책에 떨어진 것입니다.”

조홍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렇게 우물거렸다. 조조는 그런 조홍 을 제쳐놓고 이번에는 곁에 있는 서황을 보고 따졌다.

“홍(洪)은 나이가 없고 성미가 조포(蹕暴)해 그렇다 치자. 서황 그 대는 어찌하여 일을 이 꼴로 만들었는가?”

“제가 여러 번 말렸으나 작은 장군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도 저는 관 위에서 군량과 말먹이 풀을 점고하고 있다가 작은 장군께서 이미 관을 내려가신 뒤에야 그 일을 알았습니다. 저는 혹여 실수라도 있을까 봐 급히 군사를 이끌고 뒤따랐는데 그만 적의 계책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서황이 억울하다는 듯 발뺌을 했다. 그 말에 조조는 더욱 성이 나조홍을 노려보다 소리쳤다.

“여봐라 저놈을 끌어내 목을 베라!”

사촌 아우를 목 베라는 말이 어찌 진심일까만 군령을 어겼으니 덮 어둘 수가 없었다. 곁에 있던 여러 관원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렸다. 

“고정하십시오. 이기고 짐은 병가에게 매양 있는 일입니다.”

조홍도 그때는 은근히 겁이 났던지 조조에게 빌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그제서야 조조도 마지못한 듯 조홍을 꾸짖어 물리치고 대군을 똑 바로 동관을 향해 몰아나갔다. 조인이 서두는 듯한 조조를 깨우쳤다. 

“먼저 진채와 책(柵)을 세우셔야 합니다. 동관을 치는 것은 그 뒤 라도 늦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조조도 퍼뜩 정신이 나는지 장졸들에게 영을 내렸다. 

“나무를 베어 책을 두르고 진채를 마련하도록 하라. 진채는 세 채 로 나누어 세우되 왼편에는 조인이 들어가고 오른편에는 하후연이 든다. 가운데 채는 내가 쓰리라.”

대강 진채가 마련되자 조조는 다시 세 채의 군사들을 모두 모아 동관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미처 동관에 이르기도 전에 마주쳐오는 서량병을 만났다. 곧 진세를 벌이게 한 조조는 스스로 문기 아래나 가 서량의 군사들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사람마다 모두 용맹스럽고 굳세 보였으며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영웅이라 할 만했다.

그런 중에 문득 마초의 모습이 조조의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분 을 바른 듯 희고 입술은 주사(朱)를 칠한 듯 붉었으며 허리는 가늘 고 아랫도리는 평퍼짐한데 목소리가 힘차고 용맹스럽기 그지없었 다. 아비의 상복을 대신했는지 흰 갑옷에 은투구에다 긴 창을 잡은 채 양쪽에 마대와 방덕을 벌여 세우고 말 위에 덩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같았다.

‘서량의 옥 같은 마초[玉馬超]라더니, 과연 그대로구나!’

조조는 그 같은 마초의 모습에 절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리고 비로소 자신이 어려운 싸움을 앞두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 조조는 마초가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것 이 그저 변방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가벼운 바람이려니 생각했다. 서 량의 군사를 두려워해온 것은 사실이었으나, 마등을 죽이고 나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마초가 남아 있다고는 해도 그 나이로는 아비처럼 서량의 힘을 한군데 끌어모을 수 없다고 보았다. 장안성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혈기로 부딪쳐오는 그를 오랫 동안 싸움을 모르고 지냈던 변방 태수가 당해내지 못한 것이라 여 겼다.

그런데 동관이 떨어지고 조홍, 서황 같은 역전의 맹장들이 쫓겨온 데다 이제 눈앞에 선 마초를 보니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초가 몰고 온 것은 한줄기 가벼운 바람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날려버릴 수 있는 거센 회오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문득 일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