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6권 – 7화 : 한바탕 힘든 싸움 누구를 위함이었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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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6권 – 7화 : 한바탕 힘든 싸움 누구를 위함이었던고


한바탕 힘든 싸움 누구를 위함이었던고

한편 주유는 이때 물과 뭍으로 나누어 보냈던 장수들을 불러들여 각기 세운 바 공을 살폈다. 한판의 멋진 승리였다. 주유는 기쁨에 차 공에 따라 상을 내린 뒤 오후 손권에게도 사람을 보내 싸움에 이긴 소식을 전하게 했다.

대강을 건너 본채로 돌아가는 오군의 배들은 저마다 사로잡은 조 조의 군사들과 그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가득했다. 주유는 본채 로 돌아가자 술과 고기를 내어 삼군을 크게 위로한 뒤 다시 군사를 내어 남군을 빼앗으려 했다. 오병(吳兵)의 앞선 부대는 곧 물가에다 진채를 내리고 앞뒤 다섯 영채로 나누어 주유 자신도 거기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여럿과 더불어 군사를 낼 의논을 하고 있는데 홀연 사람이 와서 알렸다.

“유현덕이 손건을 보내 도독께 경하를 드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들라 이르라.”

주유가 그렇게 말하자 곧 손건이 들어왔다. 예를 끝낸 손건이 유비의 뜻을 전했다.

“주공께서는 특히 저를 보내 도독의 크신 덕에 감사의 뜻을 표하 라 하셨습니다. 적으나마 정성으로 보낸 예물도 아울러 거두어주시 기 바랍니다.”

“현덕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주유가 무슨 생각을 했던지 답례의 말도 잊고 불쑥 손건에게 물었다.

“주공께서는 지금 유강구로 군사를 옮기시어 머물고 계십니다.” 

그러자 주유의 얼굴에는 문득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거의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잇달아 손건에게 물었다.

“공명도 또한 유강구에 있소?”

“그렇습니다. 공명께서도 주공과 더불어 유강구에 계십니다.”

손건은 주유의 속도 모르고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그 말에 주유 는 얼굴이 굳어지며 서둘러 손건을 돌려보냈다.

“그대는 먼저 돌아가시오. 오늘 현덕께서 베푸신 예물은 내 몸소가서 감사드리겠소이다.”

예물을 바친 손건이 돌아가고 난 뒤 노숙이 이상한 듯 물었다.

“조금 전 도독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리 놀란 기색을 드러내셨습 니까?”

“유비가 지금 유강구에 군사를 머물러 있는 것은 반드시 남군을 손에 넣을 뜻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우리는 많은 인마를 상하고 또 많은 돈과 곡식을 써서 이 싸움에 이겼소. 이제 남군은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유비의 무리가 컴컴한 속셈으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소? 그렇지만 이 주유가 살아 있는 한 결코 그리는 아니 될 것이오!”

주유가 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노숙도 그 말을 듣고 보니 걱정이 되었다. 유비와의 화친을 앞장서서 주선한 게 바로 그 자신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계책으로 물리치실 작정이십니까?”

“내가 가서 우선 저들을 말로 달래보겠소. 곱게 들어준다면 우리 도 좋지만, 만약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유비가 남군을 손에 넣기 전 에 내가 먼저 그를 결딴내버리겠소!”

주유는 이를 갈듯 그렇게 말해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 자리에서 곧장 유비에게로 달려갈 기세였다. 노숙도 따라서 몸을 일으키며 물 었다.

“저도 함께 갔으면 어떻겠습니까?”

“좋소이다.”

주유는 그렇게 승낙하고 곧 가볍게 차린 기마대 삼천을 뽑아 유강구로 달렸다.

한편 유비는 손건이 돌아와 주유가 스스로 찾아오겠다고 하더란 말을 전하자 얼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마침 곁에 있던 공명에게 물 었다.

“주유가 몸소 이리로 오는 뜻이 무엇이오?”

“우리가 보낸 하찮은 예물에 고마움을 표하러 여기까지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틀림없이 남군 때문이겠지요.”

공명이 빙긋이 웃으며 까닭을 알려주었다. 유비가 문득 걱정스런 얼굴이 되어 다시 물었다.

“주유가 만약 군사를 이끌고 오면 어떻게 맞이해야 되겠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렇게 하십시오.”

공명은 이어 주유가 오면 유비가 해야 할 언동을 상세히 일러주 었다. 유비는 곧 공명에게 들은 대로 싸움배는 강 위에 벌여 띄우고 강 언덕에는 군사들과 말을 줄지어 세워놓은 뒤 주유를 기다렸다. 오래잖아 사람이 와서 알렸다.

“주유가 노숙과 더불어 군사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조운에게 몇 기를 딸려 내보내 그들을 맞아 들이게 했다. 주유가 유비의 진채로 들어서면서 보니 군세가 자못 커 보였다. 자기들에게 빌붙어 겨우 잔명이나 보존하려는 것쯤으로 여겨온 주유로서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영문에 이르니 유비와 공명이 그곳까지 나와 주유와 노숙을 장막 안으로 맞아들였다. 서로 예를 마치자 유비는 잔치를 벌여 그들을 대접했다. 잔을 들어 주유가 조조의 대군을 떼죽음시키고 큰 승리를 거둔 일을 경하하며 허허거리는 품이 주유가 온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몇 순배 술이 돈 뒤에 주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예주(州)께서 군사를 이곳으로 옮기신 것은 혹시 남군을 쳐서 뺏으려는 뜻에서가 아니십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소이다. 도독께서 남군을 치려 하신다는 말을 듣고 서로 도우러 왔을 뿐이오. 하지만 도독께서 그곳을 쳐서 빼앗 지 못한다면 그때는 이 비가 반드시 쳐서 뺏으리다.”

유비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주유가 짐짓 껄껄거리며 말했다.

“우리 동오는 한강 일대를 우리 땅으로 삼으려 뜻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남군은 손안에 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찌하여 빼 앗지 못하겠습니까?”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은 미리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외다. 조 조는 허창으로 돌아갈 때 조인에게 남군을 비롯한 몇 곳을 지키도록 하였소. 반드시 그곳을 지킬 수 있는 묘한 계책을 일러주고 갔을 뿐 만 아니라 조인 또한 용맹이 당할 자가 없는 장수외다. 도독께서 마 침내 뺏지 못할까 두렵구려.”

주유의 호기를 단숨에 짓뭉개버리는 유비의 말이었다. 주유가 불 끈하여 그 말을 받았다.

“내가 만약 남군을 빼앗지 못한다면 그때는 공께서 차지하시더라 도 아무 말 않겠소!”

바로 제갈공명이 기다린 바였다. 주유는 제 성을 못 이겨 스스로 유비에게 남군을 얻을 구실을 한 가닥 마련해준 셈이었다. 유비가 때를 놓치지 않고 그런 주유의 말에 쐐기를 박았다.

“실로 호기로운 말씀이오. 공명과 자경(敬)이 여기 있어 증인이 돼줄 것이니 도독께서는 뒷날 후회나 마시오.”

그러고는 노숙을 보며 다짐하듯 물었다.

“자경께서는 이 일의 증인이 되어주시겠지요?”

가만히 앉았다가 말려들게 된 노숙은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에 망설이며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는 공명 이 왠지 수상쩍은 까닭이었다. 노숙이 자기를 믿지 못해 그런 줄 알 고 더욱 격해진 주유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대장부의 한마디가 이미 뱉어졌는데 어찌 후회가 있을 리 있겠습니까!”

그제야 공명이 나섰다.

“도독의 말씀은 그만 하면 우리 모두의 공론이라 보아 안 될 것 없겠습니다. 먼저 동오로 하여금 남군을 쳐 빼앗게 하고, 만약 그리 하지 못할 때에는 우리 주공께서 나서도록 하지요.”

주유가 격해서 한 말을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손권과 유비 양가의 약조로 굳혀버린 것이었다.

유비를 달래보기는커녕 오히려 남군을 취할 수 있는 한 가닥 구 실만 내준 것으로 주유와 유비의 만남은 끝났다. 주유와 노숙은 오 래잖아 유비와 공명에게 작별하고 말에 올랐다. 그들이 떠나는 뒷모 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비가 문득 공명을 돌아보며 못 미더운 듯 말했다.

“선생께서 이 비에게 가르치신 대로 대답해 한때의 입막음은 했 지만 이리저리 돌려가며 곰곰 생각해보니 아직도 잘 알 수 없는 게 있소이다. 나는 지금 외로운 몸뚱어리 하나뿐 발 디딜 땅 한 조각 없 는 사람이라 남군이라도 얻어 잠시 몸을 담으려 한 것이오. 그런데 주유더러 먼저 남군을 빼앗아보라 했으니 만약 그렇게 되는 날이면 땅과 성은 이미 동오의 것이 되어 내가 차지하려 한들 어떻게 차지 할 수 있겠소?”

그 말을 들은 공명이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초에 제가 주공께 형주를 차지하라고 권했을 때 주공께서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형주 같은 큰 고을도 마다한 사람이 이제 와서 남군 같은 성 하나 를 가지고 무얼 그리 아까워하느냐는 식의 빈정거림이 섞인 말이었 다. 유비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때 형주는 유경승의 땅이라 내가 차마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이 오. 하지만 이제는 조조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내가 빼앗아도 이치에 어긋날 게 없소이다.”

그러자 공명도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어쨌든 주공께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주유를 먼저 가게 한 것은 힘을 다해 남군을 들이쳐 양쪽을 모두 지치게 하려는 뜻에서입 니다. 오래잖아 주공께서 남군성 위에 높이 앉아 계시도록 할 것이 니 이 양만 믿으십시오.”

“무슨 계책으로 그리 하시겠소?”

공명을 믿으면서도 얼른 짚이는 게 없어 유비가 다시 물었다. “주공께서는 다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공명이 빙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고 이어 나직한 목소리로 유비 가 해야 할 일들을 세밀히 일러주었다. 듣기를 마친 유비는 몹시 기 뻐했다. 그리고 공명이 일러준 대로 강어귀에 군사를 묶어둔 채 조 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 주유와 함께 자기들의 진채로 돌아간 노숙은 아무래도 그날 일이 꺼림칙해 주유에게 물었다.

“도독께서는 어째서 유비에게도 남군을 차지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주셨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한번 퉁겨도 남군을 얻을 자신이 있소. 현덕이 차지할 남군이 어디 또 남겠소? 그래서 한번 생색이나 내본 거요.” 

주유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렇게 대답하고 곧 여러 장수들을 자 신의 장막으로 모이게 했다.

“이제는 남군을 치러 가려 하오. 누가 먼저 남군을 빼앗아보겠소?” 

모든 장수들이 다 모이자 주유가 물었다.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 쳤다.

“그 일은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주유가 보니 그 장수는 장흠이었다. 주유가 흡족한 얼굴로 장흠의 청을 들어주었다.

“좋다. 그대는 선봉이 되고 서성과 정봉은 부장이 되어 날랜 군사 오천과 더불어 먼저 강을 건너라. 나는 뒤따라 대군을 이끌고 접응 하리라.”

이에 장흠은 가려뽑은 군사 오천 명과 서성, 정봉 두 부장을 데리 고 그날로 강을 건넜다.

그 무렵 조인은 아직 남군에 머물면서 조홍을 이릉에 보내 서로 돕고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긴 기세를 타고 몰 려올 손권과 유비의 군사들을 경계하여 잔뜩 장졸들을 다잡고 있는 데 홀연 사람이 와서 알렸다.

“오병이 이미 한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 군세나 이끄는 장수가 밝혀지지 않아 조인이 말했다.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낫겠다.”

그때 효기(騎)인 우금이 분연히 나서며 소리쳤다.

“적군이 이미 성벽 아래 이르렀는데 나가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 은 바로 겁을 먹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더군다나 우리 군사는 방금 싸움에 진 뒤라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들어 있으니, 이때야말로 힘껏 나가 싸워 지난날의 날카로운 기세를 다시 떨쳐 보여줘야 합니다. 바라건대 제게 날랜 군사 오백만 빌려주십시오. 한번 죽기로 싸워보 겠습니다.”

조인이 들어보니 그도 그럴듯한 말이었다. 우금에게 날랜 군사 오 백을 뽑아주며 나가 싸워보게 했다.

우금을 맞은 동오의 장수는 정봉이었다. 말을 달려 나와 우금과 맞붙던 정봉은 네댓 번 창칼을 부딪기도 전에 거짓으로 패한 체달 아났다. 우금은 신이 났다. 정봉을 바짝 뒤쫓는다는 게 자신도 모르 게 오병의 진 안까지 뛰어들고 말았다. 달아나던 정봉이 문득 돌아 서서 슬쩍 손짓을 하자 오병들은 새까맣게 우금을 에워싸버렸다. 적 진 속에서 포위되고 보니 우금이 아무리 좌로 찌르고 우로 부딪치며 날뛰어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성벽 위 높은 곳에서 싸움의 형세를 살피던 조인도 그 광경을 보 았다. 차마 우금을 그대로 죽게 할 수 없어 곧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오른 뒤 수백 기를 거느리고 성을 나갔다.

조인이 힘을 다해 칼을 휘두르며 오병의 진채로 뛰어들자 이번에 는 서성이 나서서 맞섰다. 하지만 서성은 원래 조인의 상대가 못 됐 다. 오래 싸워보지도 못하고 쫓겨 달아나니 조인은 그 기세를 타고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우금을 구해냈다.

그러나 부근에는 아직도 우금이 이끌고 나간 군사 수십 기가 적 진에 갇힌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본 조인과 우금은 다 시 말을 돌려 그쪽으로 뛰어들었다. 조인과 우금이 겹겹으로 포위된 그들 수십 기를 겨우 구해 나오는데 이번에는 동오의 장수 장흠이 길을 막았다. 두 사람은 다시 힘을 다해 싸워 장흠의 군사를 흩어버 렸다.

이때 성안에서는 조인의 아우 조순이 다시 남은 군사를 긁어모아 형을 도우러 나왔다. 거기에 힘을 얻은 조인과 우금의 군사들이 돌 아서자 싸움은 커졌다. 한바탕 서로 죽이고 죽는 마구잡이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대세는 오래잖아 한쪽으로 기울어져 오병은 달아 나기 시작했다. 조인은 그런 적을 멀리까지 쫓아가며 죽인 뒤에 승 리를 기뻐하며 성으로 돌아갔다.

장흠이 싸움에 지고 돌아가자 주유는 크게 노했다. 큰소리 치고 나가 선봉의 날카로운 기세만 꺾이고 돌아왔으니 그럴 법도 한 일이 었다. 주유는 곧 장흠을 끌어내어 목 베려 하였으나 여럿이 나서 말 리는 바람에 장흠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안 되겠다. 모든 군사를 점고하여 싸울 채비를 하라. 내가 직접 나가 조인과 결판을 내리라!”

분을 이기지 못한 주유가 그렇게 영을 내렸다. 감녕이 나서 그런 주유의 서두름을 말렸다.

“도독께서는 아직 나서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조인은 조홍에게 이릉을 지키게 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제게 날랜 군사 삼천만 내려주십시오. 지름길로 달려가 먼 저 이름을 뺏어버리겠습니다. 도독께서는 제가 먼저 이름을 뺏은 뒤 에 남군을 치도록 하십시오.”

성미가 좀 급하기는 해도 그만한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주유였 다. 곧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먼저 감녕에게 군사 삼천을 쪼개 주어 이릉부터 치게 했다.

이를 전해 들은 세작이 나는 듯 조인에게 달려가 알렸다. 놀란 조 인이 모사 진교(陳矯)를 불러 의논했다.

“주유가 감녕을 시켜 이름을 먼저 치려 한다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이름을 잃게 되면 이곳 남군 또한 지키기 어렵습니다. 급히 이릉 을 구하는 게 마땅합니다.”

진교가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그렇게 권했다. 조인도 달리 방 책이 없어 진교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조순과 우금에게 군사를 나눠 주며 샛길로 몰래 가서 이릉을 구하게 했다. 조순은 먼저 조홍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우리가 구원을 갈 것이니 장군은 성을 나와 적을 유인하도록 하 시오.”

이에 조홍은 감녕이 이릉에 이르기도 전에 성을 나가 그를 맞았 다. 감녕이 앞서 말을 몰며 싸움을 돋우자 조홍이 달려 나가 그와 어울렸다. 그러나 스무 합쯤 되었을 때 조홍은 못 당하겠다는 듯 달아나버렸다. 대장이 달아나니 졸개들이 버텨줄 리 없었다. 모두 조홍 을 따라 달아나버려 감녕은 손쉽게 이릉성을 차지했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질 무렵하여 조순과 우금의 군사가 이르자 조홍도 되돌아와 그들과 더불어 이릉성을 에워싸버 렸다. 오히려 감녕이 많지 않은 군사와 더불어 성안에 갇혀버린 꼴 이 되고 만 것이었다.

형세를 살피던 군사 하나가 나는 듯 말을 달려 그 소식을 주유에게 전했다.

“감녕이 이릉성 안에 갇힌 채 적의 대군에 에워싸여 형세가 매우 위태롭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유는 깜짝 놀랐다. 잠시 어찌해야 될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정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군사를 나눠 보내 감녕을 구해야겠소.”

그러나 주유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말에 따 르는 대신 어두운 얼굴로 여럿을 보며 의논조로 물었다.

“이릉이 매우 중요한 땅이기는 하나 만약 군사를 나누어 구하러 간 사이에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짓쳐들면 그건 또 어찌하 겠소?”

“감녕은 강동의 큰 장수인데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여몽이 정보를 편들어 말했다. 그러자 주유도 하는 수 없 는지 감녕을 구하러 가기로 뜻을 정하고 다시 여럿을 보고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가서 구하겠소이다. 다만 누가 여기 남아 내가 할 일을 대신 맡아주시겠소?”

“능통을 남기면 될 것입니다. 제가 앞장을 서서 적을 치고 도독께서 뒤를 끊어주신다면 열흘도 못 가 개가를 올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몽이 일어나 그렇게 대답했다. 주유가 능통을 보고 물었다.

“능공속은 잠시 내 일을 대신 맡아주겠는가?”

“한 열흘 정도라면 어찌 감당해보겠습니다만 그 이상 날짜가 걸 린다면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능통이 그렇게 대답하자 주유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다. 나는 열흘이면 될 것이다. 그대에게는 군사 만 명을 남겨줄것이니 나를 대신해 이곳을 지키고 있으라!”

그리고 그날로 대군을 일으켜 이릉으로 달려갔다.

길을 나서면서 여몽이 주유에게 한 가지 새로운 의견을 냈다. 

“이릉 남쪽에 좁은 길이 하나 있는데 남군으로 가기에는 매우 가 깝고 쉽습니다. 군사 오백을 뽑아 그곳으로 보내시고 나무를 베어 그 길을 막아버리도록 하십시오. 싸움에 지면 적군은 반드시 그리로 달아날 터인데 길이 막혀 있으면 말을 버리고 갈 수밖에 없을 것입 니다. 우리는 그 말만 잡아들여도 적지 않은 군마를 새로 얻게 됩니 다. 어떻습니까?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군사 약간을 빼돌려 적의 말을 많이 뺏을 수 있다는데 주유가 마 다할 리 없었다. 곧 군사 오백을 빼내 여몽이 말한 대로 시켜 보내고 자신은 남은 군사를 재촉해 이름으로 달렸다.

주유의 대군이 이릉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주유가 여러 장수를 둘러보며 물었다.

“누가 에워싼 적을 뚫고 들어가 감녕을 구하겠느냐.”

“제가 가보겠습니다.”

주태가 남에게 뒤질세라 말을 내달으며 말했다. 주유가 허락하자 주태는 칼을 휘두르며 똑바로 조홍과 우금의 군사들 속으로 뛰어들 어 곧 이릉성 아래에 이르렀다. 성안에 갇혀 있던 감녕은 주태가 이 른 것을 보자 성문을 열고 나가 주태를 맞아들였다.

“도독께서 몸소 대군을 이끌고 이곳에 이르셨소이다.”

감녕을 만난 주태가 그렇게 성 밖 소식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감 녕은 곧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갑옷이며 창칼을 잘 손질하여 밖에 있는 자기편 군사들과 안에서 호응할 수 있게 채비하도록 했다.

한편 조홍과 조순, 우금은 주유의 군사가 이르렀단 말을 듣고 사 람을 남군에 보내 조인에게 알리는 한편 군사를 나눠 적과 맞서려 했다.

이윽고 주유가 이끈 오병이 이르자 조홍을 비롯한 세 사람이 이 끈 조조의 군사들도 힘을 다해 맞섰다. 그러나 양군이 한창 어우러 져 싸우는데 다시 성안에서 감녕과 주태가 길을 나누어쳐 나오니 조조 편의 군사들은 크게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주유가 이끌고 온 군사가 워낙 많은 데다 등 뒤에서 다시 감녕과 주태가 덮쳐 사방이 오병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조홍과 조순, 우금은 이미 싸움이 글렀다 싶었다. 곧 군사를 물려 달아나는데 그들이 잡은 길은 과연 여몽이 말한 남쪽의 샛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이미 오병들에 의해 통나무와 나뭇가지로 말이 지나갈 수 없게 막혀버린 뒤였다.

어지럽게 쫓겨온 데다 길까지 막히니 조조의 장졸들은 더욱 당황했다. 모두 말을 버리고 몸만 겨우 빠져나갔다. 오병들이 그 말을 거 두어보니 오백 필이 넘었다.

주유는 그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내쳐 군사를 몰아 적을 뒤쫓았 다. 밤새 달려 남군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 주유는 마침 이릉을 구하 러 오던 조인의 대군과 마주쳤다.

조인이 온 데 힘을 얻은 조홍과 조순, 우금이 다시 돌아서 덤비니 싸움은 이제 양군의 세력이 엇비슷한 가운데 한판 크게 어우러졌다. 굳이 어느 편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한바탕의 혼전이었다. 그러기 를 한나절, 날이 저물기 시작해서야 양편은 모두 군사를 거두어 물 러났다.

남군성 안으로 돌아온 조인은 여럿을 모아놓고 앞일을 의논했다. 조홍이 일어나 깨우쳐주듯 말했다.

“지금 이릉까지 잃었으니 형세는 이미 위급하다 할 수 있습니다.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승상께서 남겨주신 비단 주머니를 끌러 그 계 책을 따르지 않으십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지금의 이 위급함을 풀 수 있는 계책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인도 진작부터 그걸 생각해온 듯 말했다.

“네 말이 바로 내 뜻과 같다. 이제야말로 승상의 계책에 따를 때다.” 

그러고는 조조가 남긴 글을 꺼내 읽어보았다. 거기에 무엇이 씌어 있었던지 읽기를 마친 조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장수들에 게 이것저것 일러 조조가 남긴 계책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이었다. 오경 무렵 밥을 지어먹은 조조의 군사들은 날이 밝기 무섭게 성을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벽 위에는 정기를 어지럽게 꽂아 거짓으로 군사가 머물러 있는 듯 꾸며놓고 성 을 나서는 것도 한꺼번에 세 성문으로 길을 갈라 짓쳐나왔다. 겉보 기에는 마치 싸움을 돋우러 나오는 것 같았다.

남군성 밖에 진을 치고 있던 주유도 조조의 군사들이 한꺼번에 세 성문을 활짝 열고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마땅히 성안에 눌 러앉아 굳게 지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날이 밝기 무섭게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게 이상해 가만히 장대에 올라가 살폈다.

성벽 위 얕은 담[女垣]에는 기치를 가득 꽂아두었으나 지키는 군 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거기다가 성을 나온 군사들은 모두 허 리에 무언가가 든 자루를 하나씩 차고 있는 게 이상했다.

‘조인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려고 하는구나. 지금 나온 것도 싸우 기 위해서가 아니라 달아날 길을 열려는 것이다.’

한참을 살핀 뒤에 주유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장대 에서 내려와 군령을 내렸다.

“군사를 둘로 나누어 좌우의 날개로 삼고 나아가되 전군이 싸워 이기거든 그대로 적을 뒤쫓고 징소리가 울리면 물러나도록 하라!” 그런 다음 정보에게 후군을 독려하게 하고 자신은 스스로 전군을 몰아 성을 뺏으러 나아갔다.

북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가운데 조조군 편에서는 조홍이 말을 달

려나와 싸움을 돋우웠다. 주유는 스스로 문기 아래 나아간 뒤 한당 을 내보내 조홍과 싸우게 했다.

조홍과 한당의 말이 어울렸다 떨어지기 서른 번이 넘자 마침내 조홍이 견뎌내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조조군 쪽에서 는 조인이 직접 말을 달려 싸우러 나왔다. 오병 쪽에서 주태가 달려 나가 그런 조인을 맞았다.

조인과 주태가 어울린 지 여남은 합에 조인 또한 주태를 당해내 지 못하고 달아났다. 두 장수가 잇달아 패해 달아나니 조군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주유가 때를 놓치지 않고 좌우 양날개로 벌여 서 있던 군사를 휘 몰아 적을 덮쳤다. 그렇지 않아도 어지럽던 조군은 그 기세를 당해 내지 못하고 크게 패해 달아났다. 주유는 그런 적군을 쫓아 남군성 아래에 이르렀다. 주유의 예상대로 적군은 하나도 성안으로는 들어 가지 않고 한결같이 서북쪽을 향해 달아나기 바빴다.

한당과 주태는 오병의 전부를 이끌고 힘을 다해 적을 뒤쫓았다. 주유도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으나 성문이 활짝 열리고 성벽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남군성을 빼앗는 일이지 적군을 뒤쫓아 죽이는 게 아닌 까닭이었다.

이에 주유는 성부터 먼저 차지하기로 하고 뒤따르는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모두 나를 따르라! 적을 뒤쫓는 일은 성을 차지한 뒤라도 늦지 않다.”

그리고 겨우 수십 기만 이끈 채 스스로 앞장서 성안으로 뛰어들었다.

주유가 달리는 말 엉덩이에 채찍질을 더하며 막 옹성(甕城,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 밖에 쌓은 작은 성)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였다. 조인이 맞은편 성루에 숨겨두었던 진교陳矯)는 주유가 몸소 앞장서 성안으 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승상의 묘한 계책은 실로 귀신 같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들고 있던 대통[竹桶]을 두들겼다. 그러자 성벽 양쪽에 진교와 함께 숨어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주유를 보고 화살을 날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성문 부근에는 함정이라도 파놓았던지 앞서 가던 말들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놀란 주유는 급하게 말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못해 왼쪽 갈빗대에 한 대를 맞고 몸을 뒤집으며 말 에서 떨어졌다. 주유가 말에서 떨어진 걸 보고 역시 성안에 숨어 있 던 조조의 장수 우금이 사로잡으러 달려 나왔다. 마침 동오 쪽에서 서성과 정봉이 그걸 보고 달려와 목숨을 내걸고 주유를 구해 갔다. 하지만 그때를 시작으로 싸움의 형세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성 안에 숨어 있던 조조의 군사들이 뛰쳐나오자 오병들은 큰 혼란에 빠 져 달아나기 바빴다. 저희 편 발길에 밟혀 죽고 함정에 떨어져 다치 거나 사로잡힌 오병만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보가 급히 군사들을 수습해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달아나던 조인과 조홍이 길을 나누어 되돌아오며 들이치니 오병은 그대로 대 패하고 말았다. 다행히 능통이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조조군의 옆 구리를 매섭게 찔러주었기 망정이지 아니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 장났을 뻔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능통 때문에 주유를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싸움은 조군의 큰 승리로 끝난 셈이었다. 조인은 오랜만의 승리다운 승리로 기세가 오른 군사들을 이끌고 성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오군 쪽은 말이 아니었다. 서성과 정봉이 죽기를 무릅써겨 우 그 목숨은 구했으나 주유의 상처는 컸다. 행군의자(行軍醫者)가 와서 쇠 집게로 화살촉을 빼내고 고약을 발라 싸맸지만 아픔이 너무 심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더 기막힌 것은 그 의자가 남긴 말이었다.

“도독께서 맞으신 화살은 그 촉에 독을 발라둔 것이라 쉬이 낫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지나치게 성내거나 격동되시면 아문 것이 터져 상처가 다시 덧날 것이니 아무쪼록 잊지 마십시오.”

적과 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수가 성내거나 격동되지 않기는 동지섣달에 뱀 만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부도독(副都 督)인 정보는 삼군에 영을 내려 각처를 굳게 지키게만 하고 가볍게 나가 싸우는 걸 금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인 쪽에서 가만히 있어주지 않았다. 주유가 다 친지 사흘째 되던 날 조인이 우금을 보내 싸움을 돋우었다. 정보가 군사들을 단속하여 움직이지 않자 우금은 해가 저물도록 욕설을 퍼 붓다가 돌아갔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우금이 다시 와서 싸움을 걸었으나 정보 는 주유를 격동시키는 일이 있을까 봐 알리지도 못하고 우금의 거친 욕설을 고스란히 참아넘겼다.

그 다음 날이 되자 간이 커질 대로 커진 우금은 아예 오병의 채문까지 다가와 소리를 질러댔다.

“주유는 어디 갔느냐?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오지 못할까! 내 너를 사로잡아 승상께 바치고 공을 청하리라.”

그렇게 시작한 욕질은 시간이 갈수록 더 고약해졌다. 정보는 주유 가 그 말을 들을까 봐 애가 탔다. 여럿을 불러모아 의논한 끝에 잠시 군사를 물리기로 결정을 보았다. 돌아가 오후를 만나보고 다시 의논 해본 뒤에 싸움을 계속하든지 말든지 할 작정이었다.

한편 주유는 상처의 아픔이 큰 중에도 마음속으로는 나름대로 생 각이 있었다. 조인이 매일 우금을 보내 소리질러 욕하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와서 일러주지 않아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조인이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와서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싸움을 걸어왔다. 그래도 정보는 못 들 은 체 싸움을 받아주지 않고 있는데 문득 주유가 여러 장수들을 자 신의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어디서 북을 치고 소리를 질러대는가?”

“군중에서 사졸들을 조련시키고 있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약속한 듯 그렇게 둘러대었다. 그러자 주유가 성난 소리를 냈다.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속이려 드는가? 나는 이미 조조의 군 사들이 매일 우리 진채 앞에 와서 욕질을 해대는 걸 알고 있다. 더구 나정(덕모께서는 나와 함께 병권을 나누어 쥐고 계시는 터에 어 찌 조군의 저 같은 짓거리를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계시는가?” 

그러고는 이어 정보까지 자신의 장막으로 불러들여 바로 따졌다. 정보가 하는 수 없이 실토했다.

“내가 보기에도 공근의 상처가 예사 것이 아니고, 의자 또한 공근 의 심기를 건드려 성나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하셨소이다. 그 때문에 조조의 군사들이 싸움을 걸어와도 감히 알려드리지 못했던 것이오.” 그러자 주유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공들께서 싸우지 않겠다면 어쩌시겠단 말씀이오?”

“장수들은 모두 잠시 군사를 거두어 강동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소이다. 도독의 화살 맞은 상처가 나은 뒤에 다시 어떻게 해보자 는 뜻이오.”

정보가 그렇게 대답하자 듣고 난 주유는 분연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대장부가 되어 이미 주군의 봉록을 먹었으면, 싸움터에서 죽어 말 가죽에 시체를 싸서 돌아가게 되는 것보다 더 떳떳하고 값진 일 은 없을 것이오. 그런데 공들은 어찌하여 나 한 사람을 위해 나라의 큰일을 뒤로 제쳐두려 한단 말씀이오?”

그러고는 곧 갑주를 걸친 뒤 말에 올랐다.

주유의 그 같은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장수치고 놀라지 않는 이 는 아무도 없었다. 주유는 그런 장수들을 못 본 체하며 곧 수백 기를 이끌고 영채를 나섰다.

그때 이미 조군은 싸울 진세를 다 펼쳐놓고 있었다. 조인이 스스 로 문기 아래로 말을 몰고 나와 채찍을 들어 동오의 진채를 가리키 며 소리 높이 꾸짖었다.

“주유 어린것아, 내 보기에 너는 반드시 제 명대로 못 살고 일찍 죽을 놈이다. 이제 다시는 나의 군사들을 감히 바로 쳐다볼 수 없으리라!”

어김없이 주유를 성나게 하기 위한 소리였다. 미처 조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유가 문득 수백 기를 이끌고 나타나 소리쳤다.

“조인, 이 하찮은 놈아, 여기 주랑(周郞)이 계신 것이 네 눈깔에는 뵈지 않느냐!”

조군이 소리 나는 곳을 보니 과연 주유가 나와 서 있었다. 그가 크 게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알았던 조군은 모두 놀랐다. 조인이 그 런 장졸들에게 넌지시 일러주었다.

“지금이다. 되도록 큰 소리로 욕을 퍼부어 주유를 성나게 하라!” 

그러자 군사들은 소리소리 질러 주유의 노기를 돋우었다. 주유는 마침내 몹시 노해 반장을 불렀다.

“너는 나가 저 건방진 놈을 사로잡아 오너라!”

주유가 채찍을 들어 조인을 가리키며 영을 내렸다. 그러나 달려 나간 반장이 미처 적장과 어울리기도 전에, 마상의 주유가 한소리 큰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 힘을 얻은 조조의 군사들이 한꺼번에 오병의 진 채로 짓쳐들었다. 동오 쪽에서도 여러 장수들이 모두 달려 나가 한 바탕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기세는 비록 조군 쪽이 높 다 해도 워낙 지키는 것을 위주로 펼쳐둔 오병의 진채라 큰 이득을 얻지 못하고 물러나니, 동오의 장수들도 별일 없이 주유를 떠메고 장막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좀 어떠시오?”

주유를 침상에 누인 뒤 정보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방금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이던 주유가 문득 빙그레 웃으며 정보에게 가만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실은 이게 다 나의 계교요.”

“계교라니 어떤 것입니까?”

정보가 놀랍고도 반가워 주유에게 다가들며 물었다. 주유는 더 감추지 않고 털어놓았다.

“원래 내 몸의 아픔은 그리 심한 것이 아니었소. 내가 일부러 피 를 토하며 말에서 떨어진 것은 조조의 군사들에게 내 병이 위급하게 보이도록 하려 함일 뿐이었소.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들을 속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오. 이제 장군께서는 믿을 만한 군사 몇을 성안 으로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게 하고 내가 이미 죽었다고 알리게 하시 오. 그러면 조인은 오늘밤 반드시 우리 진채를 급습하러 올 것이오. 나는 사방에 군사를 숨겨놓고 기다리다가 조인이 뛰어들면 북소리 한번으로 사로잡아버리겠소.”

“그 계교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듣고 난 정보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장막 밖을 나오기 바 쁘게 구슬픈 소리로 곡을 했다. 놀란 장졸들이 그런 정보에게 몰려 들었다. 정보는 눈물을 씻으며 그들에게 일렀다.

“도독께서는 화살에 맞은 상처가 크게 덧나 돌아가셨다. 모든 진 채의 군사들은 빠짐없이 상복을 걸치도록 하라.”

그러자 내막을 모르는 장졸들은 곧 정보가 시킨 대로 온 군중에 전했다.

이때 조인은 성안에서 여럿을 모아놓고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주유는 제 성미를 못 이겨 화를 내다가 고약을 바르고 싸매둔 상처가 터졌음에 분명하다. 입으로 피를 쏟으며 말 아래로 떨어졌으니 이제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조인이 그렇게 말하며 기꺼워하고 있는데 문득 군사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오병의 진채에서 군사 몇십 명이 도망쳐 우리에게 항복해 왔습 니다. 그중에 둘은 원래 우리 군사였다가 적에게 사로잡혔던 자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더욱 궁금한 게 많아진 조인이 곧 그 두 군사를 불러들이게 하고 물었다.

“주유는 어떠하더냐?”

“오늘 진 앞에서 금창 칼이나 창에 찔려 쇠 독이 든 상처)이 터져 진채로 돌아가자마자 죽었습니다. 지금 모든 장수들은 상복을 걸치 고 곡을 하는 중입니다. 저희들은 그 때문에 공연히 심술이 난 정보 에게 욕을 당한 까닭에 이렇게 돌아와 항복함과 아울러 그 일을 급 히 전해 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조인은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었음을 알고 크게 기 뻤다. 곧 여럿을 돌아보며 새로운 의논을 꺼냈다.

“오늘밤 오병의 진채를 한번 급습해보는 게 어떻소? 주유의 시체 를 빼앗아 그 목을 베어 허도로 보내면 승상께서 몹시 기뻐하실 것이오.”

“그 계책이라면 되도록 빨리 써야 합니다. 시간을 끌다가는 일을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모사 진교가 일어나 조인보다 한술 더 뜨며 찬동했다. 다른 사람 들도 워낙 눈앞에서 본 게 있는 까닭에 별로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조인은 우금을 선봉으로 삼고 스스로는 중군이 되어 나서기 로 했다. 뒤를 맡은 것은 조홍과 조순이요, 성을 지킬 사람으로는 다 만 모사 진교를 남겼다. 사졸들도 진교에게 딸려준 약간을 빼고는 대부분이 성을 나가 야습에 참가하도록 했다.

그날 밤 초경에 성을 나선 장졸들은 지름길로 달려 주유의 대채 로 짓쳐들어갔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오병들이었다. 조인이 이 끄는 대군이 자기들 대채의 문앞에 이르러도 한 사람 얼씬 않고 가 득히 꽂아둔 정기만 펄럭였다. 멀리서 보기에 사람이 있는 듯 여겨 진 것은 그 깃발들이 화톳불에 비쳐 일렁거린 까닭이었을 뿐이었다. 

“속았다. 어서 물러서라!”

그제야 적의 계교에 떨어진 걸 깨달은 조인이 황망히 소리쳤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갑자기 사방에 방포 소리가 나더니 오병들이 벌 떼처럼 몰려나왔다. 동쪽에서는 한당과 장흠이 거느린 군사들이 짓쳐들어오고 서쪽에서는 주태와 반장이 이끄는 군사들이 밀고 나왔다.

남쪽에서는 서성과 정봉이 앞장서서 달려들었으며 북쪽에서는 진 무와 여몽이 군사를 휘몰아 덮쳐왔다.

결과는 조인의 대패였다. 처음 세 길로 나누어 성을 나온 조인의 군마는 사방에서 치고 드는 오병에게 얻어맞아 이리저리 흩어져버 리니 머리와 꼬리가 서로 구해줄 수 없었다.

 조인은 겨우 수십 기만 이끌고 간신히 두터운 포위를 뚫고 나오 다가 역시 같은 꼴인 아우 조홍과 만났다. 둘이 이끄는 군사를 합쳐 보아도 이미 싸우기에는 틀린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힘을 다해 길을 앗아 달아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오경 무렵 하여 남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였 다. 갑자기 한 떼의 오병이 길을 막으며 앞선 장수가 소리쳤다. 

“동오의 능통이 여기 있다.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못할까?”

조인과 조홍은 놀랐으나 이제는 돌아서 달아날 길도 없었다. 주유 의 대군이 뒤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싸 워 길을 뚫기는 했지만 거기서 그나마 따르던 군사가 다시 적잖이 꺾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 번에는 동오의 장수 감녕을 만났다. 또 한바탕 죽기를 무릅쓴 싸움 으로 길은 열었으나 이미 조인을 따르는 군사는 얼마 남아 있지 않 았다.

남군으로 돌아가려다 두 번이나 적의 복병을 만나 크게 당하고 보니 조인도 더는 남군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졌다. 잠시 하후돈에 게 의지하기로 하고 그가 지키는 양양으로 길을 잡아 내달았다. 뒤 쫓던 적병도 조인이 양양으로 가는 큰길을 골라잡자 그리 오래는 따 라오지 않았다.

한편 싸움 한번에 조인을 여지없이 두들겨 부순 주유와 정보는 곧 군사를 수습해 남군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성 아래 이르러 보니 비어 있는 거나 다름없으리라 여겼던 성벽 위 에는 깃발이 가득 꽂혀 있고 망루에는 호랑이 같은 장수 하나가 티고 서 있다가 주유를 향해 우렁차게 말했다.

“도독께서는 이 몸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군사의 명을 받들어 이미 오래전에 이 성을 빼앗았소이다. 나는 상산 땅의 조자룡이오.” 

실로 주유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만 셈이었다. 주유는 그 뜻밖의 상황에 분이 꼭뒤까지 올랐다. 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장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성을 쳐라!”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오병들이 성벽 가까이 이르자 성벽 위 에서는 비 오듯 활과 쇠뇌를 쏘아 붙였다. 방금 새로 성을 점령한 기 세라 아무리 주유라 해도 당해낼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물린 주유는 의논 끝에 감녕과 능통을 불러 영을 내렸다.

“감(甘)홍패는 군마 몇천을 이끌고 지름길로 달려가 형주를 빼앗 고 능(凌)공속은 양양을 우려빼도록 하라. 남군을 치는 것은 그 두 성을 차지한 뒤라도 늦지 않으리라!”

그리고 막 군사를 갈라 보내려 하는데 정탐을 보냈던 군사가 나 는 듯 말을 달려와 알렸다.

“제갈량은 남군을 차지한 뒤, 조인의 병부(兵符)를 써서 형주를 지 키던 군마들을 남군을 구하라는 구실로 불러내고, 장비를 보내 빈 형주성을 차지해버렸습니다.”

이어 또 다른 군사 하나가 말을 달려와 알렸다.

“제갈량이 조인의 병부를 써서 하후돈을 속이고 양양성을 차지해 버렸다고 합니다. 사람을 보내 거짓으로 조인이 구원을 청하는 양 말하고 하후돈의 군마를 성 밖으로 끌어낸 뒤 관운장을 보내 뺏어버 린 것입니다.”

잇단 그들의 전갈에 주유는 머리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남군 말고도 두 곳의 큰 성을 유비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손에 넣어버 린 것이었다.

“그런데・・・・・・ 제갈량이 어떻게 조인의 병부를 얻었을까?”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주유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정 보가 곁에 있다가 대답했다.

“그야 남군을 빼앗았을 때 조인의 모사 진교를 사로잡았으니, 병 부는 절로 제갈량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겠소?”

그 말을 듣자 주유는 갑자기 괴로운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 러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금창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가슴이 터질 듯한 분기를 끝내 삭여내지 못한 탓이었다.

주유는 반나절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다시 깨어났다. 여러 장수들 이 갖가지 좋은 말로 그의 마음을 풀어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오 히려 이를 갈며 맹세하듯 말했다.

“제갈량 그 촌놈을 죽이지 못하고 어찌 이 마음속의 원한이 풀리 겠는가? 정덕모께서는 나를 도와 남군을 빼앗는 데 힘을 다해주시 오. 그 성은 우리 동오에게 꼭 필요한 것이외다.”

그리고 다시 남군을 칠 의논을 하고 있는데 마침 노숙이 왔다. 노 숙을 보자 주유는 전에 없이 결연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 군사를 일으켜 유비, 제갈량의 무리와 결판을 내려 하오. 자경은 부디 나를 도와주시오.”

노숙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됩니다. 지금 우리는 조조와 맞붙어 아직 이기고 짐이 결말 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주공께서는 합비를 들이치신 지 오래되었 으나 여태껏 성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계신 터에 우리끼리 서로 싸우 면 어찌 되겠습니까? 만약 조조가 그 틈을 타고 다시 대군을 몰아온 다면 두 집안의 형세가 모두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거기다가 유비는 일찍이 조조와 서로 두터운 교분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공격으로 일이 위급하게 되면 틀림없이 차지 하고 있는 성들을 조조에게 바치고, 조조와 함께 우리 동오를 치려 들 것입니다. 무리하게 유비를 치다가 일이 그렇게 되면 우리 동오 홀로 어찌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역시 신중하고 온건한 사람다운 말이었다. 그래도 주유는 분을 이 기지 못해 씨근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갖은 계책을 다 짜내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군사와 말을 잃고 또한 많은 곡식과 돈을 들여 싸웠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 했소. 그런데 저들은 우리 덕에 가만히 앉아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어찌 분하지 않겠소? 자경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차 마 이대로 참을 수만은 없구려!”

“도독께서는 잠시만 더 참으십시오. 제가 현덕을 찾아보고 이치로 그를 달래보겠습니다. 그래도 그가 정히 듣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군사를 내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숙이 다시 주유를 달랬다.

“자경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게 해보시지요.”

곁에 있던 장수들도 한결같이 노숙을 편들어 주유를 달랬다. 그러자주유도 마지못해 노숙의 말을 받아들였다. 겨우 주유를 달래놓고

진채를 나온 노숙은 그 길로 시중꾼 하나만 딸리고 남군으로 달려갔다.

“동오의 노숙이다. 문을 열어라!”

성 아래 이른 노숙이 그렇게 소리치자 조운이 나와 물었다.

“자경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나는 유황숙을 만나뵙고 드릴 말씀이 있소.”

노숙이 그렇게 대답하자 조운이 안됐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오시었소. 우리 주공께서는 지금 군사(軍師) 와 더불어 형주성에 계십니다.”

이에 노숙은 남군성으로 들지 않고 바로 형주로 달려갔다. 형주에 이르러 보니 성벽 위에는 정기가 가득히 벌려 세워져 있는데 그 사 이로 오락가락하는 장졸들도 한결같이 씩씩하고 날래 보였다. 겨우 몇 달 전 자신이 강하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군세였다. 

“공명은 실로 범상한 인물이 아니로구나!”

노숙은 속으로 새삼 그렇게 감탄하며 성문을 향해 소리쳐 자신이 온 것을 알렸다. 성문을 지키던 군사가 성안으로 달려가 노숙이 왔 다는 걸 알리자 공명이 몸소 나와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맞아들였 다. 조금도 못할 짓을 한 적이 없다는 듯 거리낌없는 태도였다.

서로 예가 끝나고 주인과 손님이 각기 자리를 정해 앉기 바쁘게 노숙이 자기가 온 까닭을 밝혔다.

“저희 주인 오후와 주(周)도독께서 저를 보내시어 황숙께 거듭 간곡히 말씀드리라 하셨습니다. 앞서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 왔을 적에 겉으로 내걸기는 강남을 아우르는 것이었으나 실인즉 황 숙을 쳐 없애려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동오가 나서 조 조의 대군을 무찌르고 황숙을 구해드렸으니 형주 아홉 고을은 마땅 히 동오에게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황숙께서는 속임수로 형주와 양양을 차 지하시어 동오는 헛되이 인마와 돈과 곡식만 쓰게 하고 황숙께서는 편안히 거기서 온 이익을 오로지하셨습니다.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 뿐더러 자칫 황숙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준엄한 데마저 있는 노숙의 추궁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조금도 흔 들림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자경은 고명한 선비로서 어찌 그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그 주인에게 돌아간다 하 였습니다. 형주와 양주의 아홉 고을은 원래 유표의 근거였지 동오의 땅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주공께서는 그 유표의 아우가 되십니 다. 거기다가 유표는 비록 죽었으나 아직 그 아들이 살아 있으니 숙 부로서 조카를 도와 형주를 찾아준 게 어째서 잘못이란 말씀입니까?” 

실로 노숙으로서는 예측도 못한 구실이었다. 잠깐 아연했던 노숙 이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따졌다.

“정말로 공자 유기를 위해서 이 땅을 차지하셨다면 있을 수도 있 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지금 공자께서는 아직 강하에 계시니 선생의 말씀이 반드시 맞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공명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그럼 자경께서 직접 공자를 뵙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여기 계시단 말씀입니까?”

노숙이 놀라 공명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주인 되시는 이가 여기 아니 계셔서 되겠습니까?”

공명이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해놓고 곧 좌우를 돌아보며 명했다. 

“공자를 잠시 뫼시고 나오너라.”

오래잖아 공자 유기가 병풍 뒤에서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노숙에게 말했다.

“몸이 병들어 예를 표하지 못했으니 자경께서는 부디 꾸짖지 마시오.”

노숙은 놀랐다. 그러나 공자 유기가 형주에 있으면서 선친의 기업 을 잇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한 동오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 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노숙이 이윽고 공명을 보고 입을 열 었다.

“만일 공자께서 아니 계신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자 유기에게 병색이 짙은 데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묻는 말이었 다. 공명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하루라도 공자가 계신다면 우리는 공자를 도와 형주를 지킬 것 입니다. 그러나 만약 공자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그때는 따로 이 일 을 의논해서 정해야겠지요.”

“만약 공자께서 아니 계신다면 지금 황숙께서 차지하고 계신 성들은 반드시 우리 동오에게 돌려주셔야 합니다.”

유기가 없을 때의 일까지도 얼버무려 덮어두려는 공명의 말에 노 숙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굳어졌다. 공명도 더는 그 일로 노숙 의 심기를 상하고 싶지 않은지 얼른 그 말에 찬동했다.

“좋습니다. 그건 자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고는 잔치를 벌여 노숙을 대접했다. 별로 내킬 리 없는 술잔 이었으나 노숙은 그나마의 다짐이라도 받아둔 걸 다행으로 여기며 상머리에 앉지 않을 수 없었다.

잔치는 저물 때까지 계속됐다. 잔치가 끝난 뒤 공명과 유비를 작 별하고 성을 나선 노숙은 그 밤으로 말을 달려 주유가 기다리는 동 오의 대채로 돌아갔다.

“어떻게 되었소이까?”

노숙이 돌아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주유가 물었다. 노숙은 형주 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주유에게 들려주었다. 듣고 난 주유가 원 망반 탄식 반으로 말했다.

“유기는 아직 한창인 젊은이인데 어떻게 그가 빨리 죽기를 바랄 수 있겠소? 도대체 형주는 언제 우리에게 돌아온단 말이오?”

그런 주유를 노숙이 좋은 말로 위로했다.

“도독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노숙은 이 한 몸을 걸고 동오가 형주와 양양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자경께서는 무슨 좋은 계책이 있어 그같이 장담하십니까?”

자신에 찬 노숙의 말에 주유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노숙은 자기가 본 것을 더욱 부풀려서 주유가 듣기에 좋도록 말했다.

“제가 보니 유기는 여자와 술을 지나치게 가까이해 병이 이미 뼛 속 깊이 스민 듯했습니다. 얼굴은 마른 데다 파리한 빛까지 돌고, 기 침을 하며 피를 토하는 꼴을 보아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죽는다면 그때 가서 우리가 형주와 양양을 친다 한들 유비가 무슨 핑계로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유는 그 정도로 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억지로 참 느라 숨결까지 거칠어지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와 손권이 보낸 사 자가 이르렀음을 전했다.

주유가 불러들이자 그 사자가 와서 손권의 뜻을 전했다.

“주공께서는 합비를 에워싸고 여러 번 싸웠으나 아직 이기지 못 하셨습니다. 이제 도독께 특히 명을 내리기를 이곳의 대군을 거두어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잠시 모든 군사를 모아 함께 합비를 치시려는 뜻입니다.”

이에 주유는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되돌렸다. 그러나 금창이 터진 게 탈이 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니 자신은 시상(桑)에 이르러 병을 돌보기로 하고 정보만 합비로 보냈다. 모든 싸움배와 장졸들을 이끌고 가 손권을 돕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정사는 『연의』와 많이 다르다. 첫째로 유비 는 남군을 차지한 적이 없으며, 주유가 남군을 뺏은 뒤 그곳의 태수 가 되어 그 남쪽 언덕을 유비에게 갈라주었다는 것만이 정사의 기록 에 있을 뿐이다. 둘째는 형주와 양양인데, 유비는 천자에게 표문을 올려 유기로 하여금 형주 자사가 되게 하였다가 유기가 죽은 뒤 추 대를 받아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고만 정사에 나온다. 그때까지만해도 유비는 아직 형주의 객장將)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적벽의 싸움에서 가장 많이 힘을 쓰고 손실을 입 은 동오가 얻은 것이 유비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거 기서 아마도 뒷사람의 이 같은 시구가 나왔을 것이다.

몇 고을의 성을 얻어도 내 몫은 없구나

한바탕의 힘든 싸움 누구를 위함이었던고.

바로 동오를 위한 구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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