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7권 – 1화 : 쫓겨가는 젊은 범
쫓겨가는 젊은 범
승세를 탄 마초는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조조를 사로잡겠다는 듯 급하게 뒤쫓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초의 지나친 욕심이었을 뿐이었 다. 마초가 한창 신이 나 조조를 몰아치고 있는데 문득 뜻밖의 전갈 이 왔다.
“조조가 보낸 군사 한 갈래가 물 서쪽에다 벌써 영채를 세웠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적병이 자신의 등 뒤에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크게 놀란 마초는 더 이상 조조를 뒤쫓을 마음이 없었다. 곧 군사를 거두 어 자기편 진채로 돌아간 뒤 한수와 더불어 의논했다.
“조조의 군사들이 우리의 빈 틈을 타 물 건너 하서(河西)에다 이 미 영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제 앞뒤로 적을 맞게 되었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부장 이감(李)이 한수를 대신해 말했다.
“차라리 땅을 베어주고 화평을 청해 양쪽이 모두 군사를 거두도 록 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이 오거 든 달리 계책을 짜내어보는 게 어떨는지요?”
“이감의 말이 옳은 것 같네. 따라보는 게 어떻겠나?”
한수가 대뜸 그렇게 찬동하고 나섰다. 그러나 마초는 그때까지 거 듭 이겨온 싸움을 그렇게 마무리짓고 싶지 않았다. 얼른 마음을 정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수의 장수인 양주(楊秋)와 후선(侯選)까지도 모두 이감을 편들고 나섰다.
“그렇다면 한번 사람을 보내 조조의 뜻이나 알아보세.”
한수가 머뭇거리는 마초를 보고 다시 그렇게 권했다. 마초도 그것 까지는 마다할 수 없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니 한수는 양추를 사신 으로 삼아 조조에게 글을 보냈다. 그때까지 차지한 땅 중에 약간을 되돌려줄 것이니 이만 싸움을 그치는 게 어떤가 하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어본 조조가 이렇다 할 내색 없이 양에게 말했다.
“그대는 잠시 그대들의 진채로 돌아가 있으라. 내일 사람을 시켜 답을 보내리라.”
이에 양추는 조금도 조조의 속셈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편 진채로 돌아갔다.
마초 쪽에서 화평을 청하는 사람을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모사가후(賈)가 들어와 조조에게 물었다.
“승상께서는 어떻게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공의 뜻은 어떠시오?”
조조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 가후가 기다린 듯 대답했다.
“싸움은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 법입니다. 거짓으로 화평을 받아들 인 뒤에 저들을 서로 이간시키는 계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만약 한수와 마초가 서로 믿지 않고 다투게만 할 수 있다면 북소리 한번으로 저들을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조조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말했다.
“높은 살핌은 끼리끼리 통하는 데가 있는 모양이오. 공의 뜻이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던바요.”
그러고는 곧 사람을 보내 마초에게 글을 전하게 했다.
‘내가 천천히 군사를 물리고 난 다음에 그대에게 하서의 땅을 돌 려주겠노라.’
대강 그런 내용으로 마초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글뿐만이 아니었다. 조조는 실제로 물에 부교를 놓게 하여 군사를 거두는 체했다.
한편 조조의 그 같은 글을 받은 마초는 한수와 가만히 의논했다.
“조조가 비록 화평을 허락했으나 간사하고 꾀가 많아 앞일이 어 찌 될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단단히 채비를 하지 않았다가는 거꾸 로 그자에게 당하는 수가 있으니 숙부님과 저는 번갈아 조조의 군사 를 살펴보고 방심함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숙부께서 조조 쪽을 살피십시오. 저는 하서에 가 있는 서황을 돌아보고 오겠습니 다. 또 내일은 제가 조조 쪽을 살필 테니 숙부님께서는 서황을 맡도 록 하십시오. 그렇게 양쪽으로 나뉘어 채비를 하고 있으면 조조에게 속임수가 있다 해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가 너무 선선히 화평을 허락하는 게 적이 수상쩍던 한수도 두말없이 그대로 따랐다.
마초와 한수가 번갈아 조조의 본진 쪽과 하서에 있는 서황의 진 채를 살피고 있다는 소식은 곧 조조의 귀에도 들어갔다. 조조는 마침 곁에 있던 가후를 돌아보며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내 일이 뜻대로 풀리는 모양이로군!”
그리고 소식을 가져온 군사에게 물었다.
“그래 내일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보는 게 누구라더냐?”
“한수라고 합니다.”
조조의 물음에 그 군사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조조는 그 말에 더 욱 기쁜 빛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이었다. 조조는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영채를 나섰다. 그 리고 그들을 좌우로 벌려 세운 뒤 자신은 말을 타고 가운데 우뚝 서 서 한수의 군사들 쪽을 바라보았다.
한수의 군사들 중에는 조조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장수 하나가 뭇 장수들에게 에워싸인 채 진문 밖에 나와 서 있는 걸 구경거리 삼아 쳐다보았다.
조조가 그런 한수의 군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대들은 조공(曹公)을 보고 싶은가? 바로 내가 그 조공이다. 그 대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일 뿐, 눈 넷에 입이 둘인 괴물은 아니 다. 다만 그대들과 다른 게 있다면 지모가 좀더 낫다는 것뿐이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한수의 군사들은 모두 겁먹은 빛을 감추지 못했다. 조조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시켜 한수의 진 쪽에다 대고 외게 했다.
“승상께서 한장군을 보고자 하신다. 나누실 말씀이 있으니 한장군은 어서 나오라!”
그 말에 한수가 곧 자기편 진머리에 나타났다. 조조가 싸움이라도 걸러 나온 줄 알고 투구에 갑주를 두른 채 말을 달려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갑옷도 걸치지 않고 무기도 손에 없었다. 이에 한수 도 갑옷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다시 나왔다.
두 필의 말이 이마를 맞댈 만큼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고삐를 당 겨 말을 세웠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조조였다.
“나와 장군의 춘부장은 함께 효렴(孝廉)에 뽑혔으나 나는 항상 그 분을 아저씨뻘로 모셔왔소. 또 장군과는 함께 벼슬길에 올라 지금껏 지내왔으면서도 나는 아직 장군의 나이를 모르고 있소. 그래 올해 나이가 몇이시오?”
어제까지 창칼을 맞대고 싸우던 사람답지 않게 은근한 목소리였 다. 조조의 속셈을 알지 못해 우물쭈물하던 한수가 무뚝뚝하게 대답 했다.
“올해 마흔이외다.”
“지난날 경사(師)에서 만났을 때는 한창때인 젊은이였는데 어느 새 중년이 다 됐구려. 언제 천하가 평안해져 더불어 즐거움을 누릴 날이 오겠소!”
조조가 더욱 은근한 정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러고는 이어 전에 장안에서 있었던 자질구레한 일들을 늘어놓는 품이 남 보기에는 오랜만에 옛 벗이라도 만난 듯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군사나 싸움에 관한 것은 입 밖에도 내지 않는데다 자질구레한 옛날 얘기에는 말끝마다 큰 웃음소리를 덧붙이니 두 사람 사이는 더욱 가까워 보였다.
한수가 차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해 몇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진(辰, 두 시간 가량)이 지나갔다. 그제서야 조조는 또 한번 큰 웃음소리로 얘기를 맺은 뒤에 말 머리를 돌려 자 기 편 진채로 돌아갔다. 조조의 말재주에 홀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문득 정신이 든 한수도 왠지 개운찮은 기분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한수의 까닭 모르게 개운찮던 기분은 곧 좋지 못한 조짐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조와 한수가 얘기를 나누는 광경을 수상쩍게 본 마초의 졸개 하나가 얼른 달려가 마초에게 그 일을 알렸다.
조조와 한수가 오랫동안 정답게 얘기를 나누었다는 말을 전해 들 은 마초는 더럭 의심이 났다. 모든 걸 제쳐놓고 한수에게 달려간 마 초가 캐물었다.
“오늘 조조가 진 앞에서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옛날 경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을 뿐이네.”
한수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러나 마초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한수가 속이는 것 같아 따지듯 물었다.
“어째서 군사와 싸움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까?”
“낸들 어찌 아나? 조조가 꺼내지 않는 말을 나 혼자 한단 말인가?”
마초의 의심에 찬 눈초리에 한수가 불쾌한 듯 대꾸했다. 마초는 마음속으로 몹시 의심이 들었으나 한수가 그렇게 나오자 더는 따지지 못하고 말없이 물러났다.
한편 자기 영채로 돌아간 조조는 가후를 보고 빙긋 웃으며 물었다.
“공은 내가 진 앞에서 한수와 이야기를 한 속뜻을 알겠소?”
가후가 한술 더 떠 대답했다.
“승상의 뜻이 오묘하나 아직 마초와 한수를 갈라놓기에는 넉넉하 지 못합니다.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써보시겠습니까? 이대로 따라주신다면 마초와 한수는 틀림없이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 죽이 려 들게 될 것입니다.”
“그게 어떤 계책이오?”
조조가 은근히 감탄하는 얼굴로 물었다. 가후가 자신의 속셈을 훤 히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보다 나은 계책까지 세워두고 있 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가후의 대답은 이러했다.
“마초는 한낱 용맹뿐인 사내라 깊이 감춰진 계책은 알아보지 못 합니다. 승상께서 몸소 붓을 들어 한수에게 글을 써 보내시되, 중간 에 일부러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게 흘려 쓰시고 긴요한 곳은 먹을 덧칠해 글자를 고쳐놓으십시오. 그런 다음 봉해서 한수에게 보냄과 아울러 마초의 귀에도 그 일이 들어가게 하시면 마초는 틀림없이 한 수에게 그 글을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긴요한 곳은 글자 가 모두 지워져 있거나 고쳐져 있으니 마초는 그게 한수가 한 짓으 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다시 말해 승상과 몰래 내통한 것이 마초 에게 들킬까 두려워 한수가 지우거나 고친 걸로 단정하겠지요.
그렇잖아도 승상과 한수가 단 둘이서 오랫동안 얘기한 일을 수상쩍게 생각해오던 마초이니 이 일로 더욱 한수를 의심하게 될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마초가 한수를 의심하게 되면 둘 사이에는 오래잖아 반드시 변란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제가 나서서 한수 밑에 있는 장수들을 꼬드겨 둘 사이를 더욱 벌어지게 만들어놓는다 면 마초를 사로잡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잔꾀에는 어지간한 조조도 혀를 내두를 만한 이간책이었다.
“그것 참 묘한 계책이오!”
조조는 그렇게 가후를 추켜준 뒤 곧 그 계책을 따라 글 한 통을 썼다. 대수롭지 않은 얘기는 뚜렷이 읽을 수 있게 해놓았으나 정작 요긴한 대목은 모두 지워버리거나 고쳐 쓴 글이었다. 그리고 그걸 사자에게 주고 일부러 여러 사람을 딸려 떠들썩하게 한수의 진중으 로 보냈다.
조조가 노린 대로 그 소식은 오래잖아 마초의 귀에 들어갔다. 그 전 일로 떨떠름하던 마초는 부쩍 의심이 일어 뛰듯이 한수를 찾아 갔다.
“조조가 숙부님께 글을 보냈다는데 제가 한번 볼 수 없겠습니까?”
마초가 달려와 그렇게 말하자 그러잖아도 조조가 보낸 야릇한 글 을 읽고 어리둥절해 있던 한수가 별 생각 없이 그 글을 내주었다. 마초가 얼른 읽어보니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저 한가로운 안부 뿐이고, 정작 무엇이 있지 싶은 곳은 죄다 지워졌거나 고쳐져 있었 다. 더욱 의심이 난 마초가 한수를 살피며 물었다.
“글의 중요한 대목이 왜 모두 고쳐져 있거나 지워져 있습니까?”
“나도 모르겠네. 원래 그런 글이 왔을 뿐이네.”
한수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러나 마초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려면 조조가 초벌 글[稿]을 그대로 보냈을 리야 있겠습니까? 혹시 숙부님께서 내가 자세한 걸 알게 될까 봐 미리 지워버리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다그치듯 물었다. 한수는 은근히 불쾌했으나 어쨌든 마초의 의심을 풀어보려고 애썼다.
“조조가 초벌 글을 잘못 알고 봉해서 보냈을 수도 있겠지.”
“그건 더욱 믿지 못하겠습니다. 조조가 모든 일에 꼼꼼한 사람인 데 어찌 그런 잘못을 저지를 리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숙부님께서 무얼 속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힘을 합쳐 역적을 죽이기 로 하셔놓고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딴마음을 품으시게 되었습니까?”
마초는 한수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고 자신의 지레짐작으로만 그 렇게 윽박질렀다. 한수는 화가 나기에 앞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참을 씨근거리다가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말했다.
“네가 정히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냐? 내일 내가 진 앞에서 조조를 청해 얘기를 나누거든 네가 가까운 곳에 숨 어 있다가 달려 나와 한 창에 조조를 죽여버려라.”
아무래도 말로는 마초의 의심을 풀어줄 수 없을 것 같아 한수가 짜낸 궁리였다. 마초도 한수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한풀 수그러든 기 세로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숙부님의 참마음을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한수는 다음 날 일찍 후선(侯選), 이감(李堪), 양흥(梁興), 마완(馬), 양추楊秋)다섯 장수를 거느리고 진을 나섰다. 언제든 한달음에 뛰쳐나와 조조를 죽일 수 있을 만한 곳에 마초를 숨겨둔 채였다.
그렇지만 조조가 그만 꾀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한장군께서 승상께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승상께서는 잠시만 나와주십시오.”
한수의 군사들이 조조의 영채 앞으로 와서 그렇게 소리치자 조조 는 문득 조홍을 불러 무어라고 귀엣말을 한 뒤 자기 대신 내보냈다. 조홍은 겨우 열몇 기만 거느리고 진채를 나와 한수를 보러 나왔 다. 틀림없이 조조가 나올 줄 알았던 한수는 뜻밖에도 조홍이 나오 자 당황했다. 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온 조홍이 말 위에서 허리를 굽히며 은근한 목소 리로 말했다.
“어젯밤 승상께서 장군께 전하신 말씀을 잊으시지는 않았겠지요? 결코 그릇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로 한수에게는 밑도 끝도 없는 엉뚱한 소리였다. 한수가 하도 어이없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조홍은 그 말만 하고는 이내 말 머리를 돌려 자기 진채로 돌아가버렸다. 한수가 그게 아니라고 잡아뗄 겨를마저 없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숨어서 조홍의 말소리를 들은 마초에게는 모 든 게 한 끈에 꿰어진 구슬처럼 뚜렷해 보였다. 한수는 전날 낮뿐만 아니라 간밤에도 조조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 만큼 깊이 내통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이놈! 이래도 나를 속일 테냐?”
분노로 눈이 뒤집힌 마초가 창을 끼고 말을 달려 나오더니 벼락 같이 소리치며 한수를 찔러 갔다. 한수가 황급히 몸을 피하고 다섯 장수가 힘을 다해 마초를 말려 간신히 피를 보는 일은 피했으나 거 기서 이미 마초와 한수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갈라지고 말았다.
“조카는 나를 의심하지 말게. 정말로 나는 딴 뜻이 없네.”
진채로 돌아온 한수가 거듭 마초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밝혔으나 마초는 조금도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한동안 성난 눈길로 한수를 쏘아보다가 말없이 자기 진채로 돌아가버렸다.
마초가 끝내 의심을 풀지 않고 떠나버리자 한수도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거느리고 있는 다섯 장수들을 모두 불러놓고 어두 운 얼굴로 물었다.
“마초가 원한을 품고 돌아갔으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겠는가?”
그러자 양추가 나서서 말했다.
“마초는 자신의 용맹과 무예에 기대 주공을 얕보는 마음이 있습 니다. 설령 우리가 그와 힘을 합쳐 조조에게 이긴다 한들 그런 그가 우리 몫으로 무엇을 주겠습니까? 제 어리석은 소견에는 차라리 조 공께 몰래 항복함만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뒷날 제후의 자리나 마 잃지 않는 게 마초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한수는 아무래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나와 그 아비 마등은 의로 맺은 형제다. 어찌 차마 저버릴 수 있겠느냐?”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 고 마초의 칼을 목을 늘이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양추가 한층 격한 말로 한수를 부추겼다. 조조의 모사 가후의 은 밀한 솜씨가 드디어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었다. 한수도 차차 조조 보다는 마초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조조에게 가서 항복의 뜻을 전하겠는가?”
“제가가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양추가 다시 나섰다. 이에 한수는 양추에게 밀서 한 통을 써주고 조조에게 보내 항복의 뜻을 전하게 했다. 젊은 범 마초의 발톱은 그렇게 어이없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한수로부터 항복의 뜻을 전해 받은 조조는 크게 기뻤다. 곧 한수 를 서량후(西凉侯)로, 양추는 서량 태수로 삼고 나머지 장수들에게 도 모두 큼직한 벼슬자리를 내렸다. 그리고 불을 놓는 걸 군호로 삼 아 한수와 함께 마초를 치기로 양추와 약조를 맺었다.
조조와 헤어져 한수에게로 돌아간 양추는 그간의 일을 자세히 말 한 뒤 그 약조를 전했다.
“오늘밤 채비가 갖춰지면 불을 놓아 알리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조승상께서도 밖에서 호응해 오시기로 했습니다.”
은근히 걱정하던 한수는 양의 그 같은 전갈을 듣자 몹시 기뻤 다. 곧 영을 내려 중군 장막 뒤에다 마른 풀과 싸릿단을 쌓게 하고 양추, 후선 등 다섯 장수를 불러 의논했다.
“술자리를 벌이고 마초를 불러 해치워버리는 게 어떤가?”
한수가 다섯 장수들을 보며 물었다. 마초가 여느 장수라면 될 법한 계책이었으나 그의 무예와 용맹이 남다른지라 겁먹은 장수들이 얼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한수도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계 책이 망설여져 의논은 절로 길어졌다.
하지만 마초에게도 눈과 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수가 조조와 내통하여 무슨 일을 꾸미는 것 같다는 말을 몰래 풀어둔 군사들에게 서 듣자 금세 칼을 짚고 일어났다.
“나는 우선 대여섯 사람을 데리고 한수의 움직임을 살필 터이니 그대는 곧 장졸들을 수습해 내 뒤를 받치도록 하라!”
방덕을 불러 그렇게 영을 내린 마초는 그 길로 한수를 찾아나섰다. 한수의 군막에 이르니 아직 제 주인이 꾸미는 일을 잘 모르는 군 사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마초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마초는 발 걸음 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한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껏 의논을 정하지 못한 한수는 수하의 다섯 장수들과 함께 마초를 죽일 계책을 짜내느라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무슨 결정이 났는지 양추가 문득 큰 소리로 한수를 재촉했다.
“이 일은 결코 질질 끌어서는 아니 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해치 우도록 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마초는 크게 노했다. 서릿발 같은 칼을 빼들고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놈들, 네놈들이 감히 나를 해치려 들다니!”
그 소리에 한수를 비롯한 다섯 장수들은 깜짝 놀랐다. 정신이 아 뜩하여 멍하니 마초를 올려보고 있는데 마초가 칼을 쳐들어 한수의 얼굴을 후려쳤다. 한수가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칼을 막으니 왼팔이 토막나 떨어졌다.
그제서야 번쩍 정신이 든 한수의 다섯 장수들이 일제히 칼을 빼 들고 마초에게 덤볐다. 좁은 군막 안에서 다섯을 상대로 싸우는 게 이롭지 않다 여긴 마초는 군막 밖으로 몸을 빼냈다.
다섯 장수가 놓칠세라 뒤쫓아와 마초를 에워싸고 칼을 휘둘러댔 다. 마초는 홀로 그들을 맞고 있었으나 조금도 두려운 빛이 없었다. 한 자루 보도(寶刀)에 의지해 싸우는데 칼빛이 스쳐가는 곳에는 어 김없이 적의 선혈이 튀었다.
다섯 가운데 먼저 마초의 칼을 맞고 쓰러진 것은 마완이었다. 마 초가 이어 다시 양흥을 베어넘기자 나머지 세 장수도 더는 마초와 싸울 마음이 나지 않았다. 졸개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잊고 각기 머 리를 싸쥐고 달아났다.
혼자서 다섯 장수를 물리친 마초는 다시 군막 안으로 뛰어들어가 한수를 찾았다. 그러나 그때 이미 한수는 졸개들의 구함을 받아 어 디론가 피하고 없었다.
마초가 한수의 군막에서 나오니 누가 질렀는지 벌써 군막 뒤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놀란 한수의 장졸들이 각기 영채를 나와 한 수의 군막 쪽으로 몰려들었다. 아무리 천하의 맹장 마초라지만 새까 맣게 몰려오는 그들까지도 홀로 당해낼 수는 없었다. 급히 말에 올 라 그곳을 빠져나오려는데 방덕과 마대가 거느린 후군이 그곳에 이 르렀다.
뒤이어 어제까지 한편이었던 서량병들 사이에 한바탕 어지러운 싸움이 일었다. 아무래도 젊은 마초가 앞장서서 싸우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 곧 대세가 판가름 나려 할 즈음이었다.
갑작스런 함성과 함께 조조의 대군이 사방에서 마초를 에워쌌다. 앞은 허저요 뒤는 서황이며, 왼쪽은 하후연이요 오른쪽은 조홍이 었다.
마초는 급히 방덕과 마대를 찾았으나 서량병이 서로 뒤얽혀 싸우 는 북새통이라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백여 기만 이끌고 위 교(渭橋)로 올라가 다리목을 막아섰다.
이때 날은 어느새 희끄무레 밝아오고 있었다. 마초의 눈에 한 떼 의 군마를 이끌고 다리 밑을 지나가는 한수의 장수 이감이 들어왔 다. 자신을 몰래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던 다섯 가운데 하나라는 걸 떠올리고 마초는 곧 창을 꼬나 이감을 뒤쫓았다. 마초가 뒤쫓는 걸 안 이감은 창을 늘어뜨린 채 달아나기에만 바빴다.
마침 조조의 장수 우금이 그곳을 지나다가 마초를 알아보고 뒤쫓 으며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등 뒤에서 나는 시위 소리에 놀란 마 초가 재빨리 몸을 틀어 피하자 화살은 그대로 이감의 얼굴에 가 박 혔다.
자신이 쫓던 이감이 구슬픈 외마디 소리와 함께 말에서 떨어져 죽는 걸 본 마초는 곧 말머리를 돌려 뒤쫓는 우금에게 덮쳐갔다. 마 초의 기세에 눌린 우금은 창칼을 몇 번 부딪쳐보지도 않고 말을 박 차 달아나버렸다.
우금을 쫓고 다리 위로 돌아간 마초는 다시 다리목을 지키고 서 서 방덕과 마대를 기다렸다. 호위군을 선두로 벌써 다리 근처에까지 이른 조조의 대군은 마초가 다리목을 지키고 선 걸 보자 감히 밀고 나가지 못하고 어지럽게 활만 쏘아 붙였다. 마초가 창대를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니 화살은 모두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사이에 조조의 대군은 마초가 서 있는 다리를 몇 겹이 나 에워싸고 말았다. 마초가 거느리고 있던 기병을 휘몰아 뚫고 나 가보려 했으나 워낙 조조의 대군이 굳게 에워싼 까닭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초는 한소리 큰 외침과 함께 강 북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러 나 따르던 기병들이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길이 끊긴 바람에 마초 혼자 두꺼운 적진에 갇히고 말았다. 마초는 힘을 다해 뚫고 나가보 려 했지만 곧 위급한 지경에 빠져들었다. 조조의 군사들이 마초가 탄 말에 쇠뇌를 쏘아 말이 쓰러지며 마초가 땅에 굴러떨어졌다.
말에서 떨어진 마초를 향해 조조의 군사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들 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서북쪽에서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와 마초 를 위급에서 구했다. 바로 방덕과 마대가 거느리는 군사였다.
두 사람은 마초를 구해 말 위에 태운 뒤 한 가닥 살 길을 뚫어 서 북쪽으로 달아났다. 마초가 몸을 빼쳐 달아났다는 소리를 들은 조조 는 여러 장수들을 불러 엄히 영을 내렸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힘을 다해 마초를 뒤쫓도록 하라. 그의 목을 얻어오는 자에게는 천금의 상과 만호(萬戶侯)를 내릴 것이요, 사 로잡아 오는 자는 대장군에 봉하리라!”
조조가 얼마나 마초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이었다.
그 영을 받은 장수들은 서로 공을 다투며 힘껏 마초를 뒤쫓았다. 그런 지경에 떨어지니 여포에 버금간다던 마초도 어쩌는 수가 없었 다. 사람과 말이 지쳐도 돌아볼 겨를 없이 그저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뒤따르던 기병들도 차차 줄어 모두 흩어지고 보졸들은 거의가 조조의 군사들에게 사로잡혀버렸다.
가까스로 조조의 추격에서 벗어난 마초가 뒤따르는 장졸을 헤어 보니 방덕과 마대를 빼면 겨우 서른 몇 기뿐이었다. 그걸로는 조조 와 다시 싸워볼 도리가 없다 여긴 마초는 농서 임조 땅을 바라고 달 아나버렸다.
몸소 장졸을 휘몰아 안정까지 뒤쫓았던 조조였으나 마초가 이미 멀리 달아나버렸음을 알자 군사를 장안으로 돌렸다. 그리고 여러 장 수들이 모이기를 기다려 공에 따라 상을 주는데 으뜸은 말할 것도 없이 한수와 양추 및 후선이었다. 왼쪽 팔을 잃은 한수는 서량후로 서 장안에 남아 군사를 쉬게 하고, 양추와 후선은 열후에 봉한 뒤 위 구를 지키게 했다.
그렇게 마초와의 싸움을 매듭지은 조조는 곧 영을 내려 군사를 허도로 되돌렸다.
그때 양주에는 참군 벼슬을 지내는 양부(楊)란 사람이 있었다. 자를 의산(山)이라 하며 남다른 식견이 있었는데 문득 장안으로 달려와 조조에게 만나기를 청했다.
“그대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양부를 불러들인 조조가 물었다. 양부가 헤아림 깊은 얼굴로 말했다.
“마초에게는 지난날의 여포와 같은 용맹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강 인(人)들로부터 마음으로 우러름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승상께서 이긴 기세를 타고 그의 세력을 뿌리 뽑지 않아 마초에게 기력을 기 를 기회를 준다면 농상(隴上)의 땅들은 다시는 나라의 땅으로 되돌 아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군사를 허도로 되돌 리지 마시고 끝까지 마초를 뒤쫓아 뒷날의 걱정거리를 남기지 않도 록 하십시오.”
“나도 본래 군사를 남겨 마초의 일을 아예 끝을 맺고 싶었으나 중 원에 일이 많은 데다 남방도 아직 평정되지 않은 터라 오래 군사를 머물게 할 수가 없었소. 바라건대 그대가 나서서 나를 지켜주시오.”
양부의 말을 기특하게 여긴 조조가 그렇게 청했다. 양부는 조조의 그 같은 청을 받아들임과 아울러 위강)이란 사람을 양주 자사 로 천거했다. 조조는 그에 따른 뒤 양부와 위강 두 사람에게 군사를 나눠주며 기성(城)에 머물러 마초를 막게 했다.
명을 받고 떠남에 즈음하여 양부가 다시 조조에게 청했다.
“반드시 장안에도 많은 군사를 남겨 저희들의 뒤를 든든하게 해주십시오.”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이미 생각해둔 게 있소. 부디 마음 놓고 기성이나 잘 지키시오.”
조조가 잔잔한 어조로 양부를 안심시켰다. 양부가 위강과 더불어 맡은 곳으로 떠나감으로써 마초의 일은 일단락되었다. 그제서야 장 수들은 그때껏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처음 마초가 동관(潼關)을 근거지로 삼았을 때 위북(北)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하동을 따라 풍익(馮翊)쪽으로 나아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동관에만 매 달렸습니까?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날을 보내신 뒤에야 북쪽으로 건너가 영채를 세우고 굳게 지킨 것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그 말을 듣자 조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적이 먼저 동관을 차지하고 있을 때, 내가 만약 동관에 이르자마 자 하동을 빼앗으려 했으면 적은 틀림없이 군사를 나누어 물을 건널 만한 곳은 모두 지켰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우리가 하서 (河 西)로 건너갈 수 있겠느냐? 나는 일부러 적의 군세를 모조리 동관으 로 끌어들이게 하여 남쪽을 지키는 데만 매달리게 함으로써 하서 쪽 이 비도록 한 것이다. 서황과 주령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물을 건너 하서에 진채를 엮을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그 덕분이었다. 그뿐만 아 니다. 그 뒤 나는 군사를 이끌고 강 북쪽으로 건너간 뒤에도 적이 우 리를 얕보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수레와 목책을 잇대어 세움으 로써 용도(涌道)를 만들고 흙으로 성을 쌓은 것은 모두 적이 우리를 약한 줄 알게 하여 그들의 마음이 교만에 차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모든 일에 준비가 없게 마련, 나는 그 틈을 타 교묘한 이간책을 쓰는 한편으로 우리 군사의 힘을 모아두었다가 하 루아침에 적을 쳐부순 것이다. 이는 바로 ‘빠른 우레는 귀를 가릴 틈 도 없다[疾雷不及掩耳]’라는 계책이다. 군사를 부리는 데에 있어서의 변화는 결코 하나뿐이 아님을 그대들도 언제나 잊지 마라.”
실로 빼어난 병략가(兵略家)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보여주는 조조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장수들은 한결같이 조조의 빈틈없는 헤아림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궁금한 것은 하나 더 있었다.
“승상께서는 언제나 적의 머릿수가 불어났다는 말만 들으면 오히 려 기쁜 낯빛을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또 어찌 된 까닭입니까?”
여러 장수들이 입을 모아 다시 조조에게 물었다. 조조가 더욱 흔 쾌하게 웃으며 그들의 궁금함을 풀어주었다.
“관중과 변두리 땅은 길이 멀어 만약 적들이 각기 험한 지세에 의 지해 버티면 한두 해로는 쓸어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한군데로 모인다고 하니 비록 머릿수는 많아도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해 이간질이 쉬울 뿐 아니라 한꺼번에 깨끗이 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기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자 장수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칭송했다.
“승상의 귀신 같은 헤아림은 실로 저희 무리가 모두 머리를 합쳐 도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그대들의 문무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일이 잘 되었 을 뿐이다.”
조조는 그렇게 모든 공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장졸 들에게 무거운 상을 내렸다. 그리고 항복한 서량병들은 휘하의 여러 부(部)에 나누어 받아들임과 아울러 하후연을 장안에 남겨 양부와 위강의 뒤를 밀어주도록 했다.
하후연이 다시 한 사람을 조조에게 천거했다. 풍익 고릉 땅의 장 기(張)였다. 조조는 그를 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아 하후연과 함께 장안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장졸들과 더불어 허도로 돌아갔다.
조조가 마초를 쳐부수고 돌아온다는 말을 듣자 헌제는 성 밖까지 어가를 내어 조조를 맞아들이고 옛적 한고조가 승상 소하에 베풀었 던 예에 따라 세 가지 특전을 조서로 내렸다. 첫째는 조조가 조정에 서 천자를 뵈올 때 내시들이 그 이름을 외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요, 둘째는 조회에 들 때 몸을 굽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셋째는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전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니 조조의 위엄은 더욱 나라 안팎을 떨쳐 울렸다. 마초 의 거병은 오히려 조조에게 복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더듬어보고 싶은 것은 정사와 『연의 간 의 거리이다.
먼저 살펴보고 싶은 것은 마등이란 인물이다. 조조에게 죽임을 당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의사처럼 그려지고 있어도 정사를 통해 재 구성해낼 수 있는 마등은 그저 후한말(後漢)의 흔한 지방 군벌에 지나지 않았다. 야사나 민담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마등의 충성심이 나 조조를 제거하기 위한 밀계에 가담했다는 것 등은 정사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나이가 들어 아들 마초에게 변방을 맡기고 조정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며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오히려 아들 마초의 거병과 관련된 일로 보인다.
그다음은 조조와의 싸움에서 마초가 초기에 거두었다는 전공(戰 功)의 과장이다. 조조가 위하를 건널 때 마초가 그 뒤를 들이쳐 곤경 에 밀어넣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연의』에서 보이는 그런 참담한 패전이 거듭된 것은 아니었다.
또 위하를 건널 때의 조조를 묘사한 구절도 정사와는 거리가 멀 다. 『연의』는 그를 구해준 허저의 두 다리 사이에 숨어 벌벌 떨고 있 는 조조를 그리고 있으나 기실 조조를 배로 끌어다 태운 것은 장합 이었으며 몇 리나 떠내려간 뒤에도 조조는 오히려 크게 껄껄거리며 마초를 빈정거리고 있다.
마초와 한수의 사이가 벌어진 데 대해서도 『연의』는 많은 부분을 과장하고 있다. 조조의 계책에 말린 그들이 서로 의심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양추가 사자로 조조의 진영을 왔다 갔다 했다는 것과 다섯 장수가 모두 마초를 배반했다는 것은 맞지 않다. 양추만 해도 그 싸 움 뒤 안정에서 조조에게 포위되었다가 항복하는 것으로 정사에 나 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조는 실제 이상 볼품없이 그려지고 마초는 또 지나치게 좋은 방향으로만 과장된 셈인데, 그것은 마초가 뒷날 촉한(蜀漢)의 오호대장(五虎大將) 가운데 한 사람이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미 여러 번 보았듯, 『연의』를 지은 이의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은 그 촉한의 장수 되는 사람에게까지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