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7권 – 14화 : 왕자와 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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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7권 – 14화 : 왕자와 술사들


왕자와 술사들

조조가 허창으로 돌아가자 다시 그를 위왕(魏王)으로 받들어야 한 다는 의논이 조정의 벼슬아치들 사이에 일었다. 넓은 한중 땅을 새 로 얻은 데다 싸움은 이기지 못해도 강동 손권에게서 조공까지 받게 되어 그의 위세가 더욱 높아진 까닭에 높고 낮고를 가리지 않고 거 의 모든 벼슬아치가 다 나선 의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대하는 사람은 있었다. 상서 최염이 힘을 다해 그 일이 옳지 않음을 외치고 나섰다. 그를 달래다 안 된 벼슬아치들 이 지난 일을 들어 슬며시 겁을 줘보았다.

“그대는 순문약(文)의 일을 모르시오?”

그러자 최염이 벌컥 성을 내며 소리쳤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대들이 굳이 그 일을 하겠다면 마음대로 하라. 반드시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이다.”

워낙 인품이 곧고 학문이 깊은 그가 그렇게 뻗대니 다른 사람들도 당장은 어쩌는 수가 없었다. 잠시 의논을 멈추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만 살폈다.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 최염과 사이가 나쁜 벼슬아치 하나가 끼 여 있어 그 일을 조조에게 일러바쳤다. 첫 번째는 순욱이 방해하더 니 이번에는 또 최염이 나서서 반대한다는 말을 듣자 조조는 크게 노했다. 곧 영을 내려 최염을 잡아 가두고 그 까닭을 따져보게 했다. 최염은 이미 한나라 충신으로 죽기를 결심한 것 같았다. 호랑이 같은 눈을 부릅뜨고 용틀임같이 구불구불한 수염을 떨며 따져 묻는 정위를 꾸짖었다.

“네놈은 조조가 임금을 속이는 간적임을 몰라서 묻느냐?”

그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더 참지 못했다. 원소를 멸망시키고 기 주에서 처음 그를 얻을 때부터 두텁게 대접해온 사람이라 더욱 그 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을 보내 옥중에서 최염을 때려 죽여버 렸다.

최염까지 그렇게 끔찍한 죽음을 당하자 이제는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건안 이십이년 여름 오월,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들은 천자께 표문 을 올렸다. 위(魏公) 조조는 그 공덕이 옛적의 이윤이나 주공도 따 르지 못할 만큼 크니 마땅히 위왕으로 올려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 었다.

허수아비 천자가 무슨 수로 그걸 마다하겠는가. 곧 글 잘 쓰는 종요(鍾繇)에게 명을 내려 조서를 짓게 하고 조조를 위왕으로 세우도 록 했다. 조조는 짐짓 세 번이나 사양하다가 그 세 번 모두 허락되지 않고 다시 조서가 내리기를 기다려 마침내 위왕의 작위를 받았다. 열두 줄 면류관에 여섯 마리 말이 끄는 황금 수레를 타고 천자가 쓰는 의장)을 그대로 쓰는 조조의 행차는 참으로 볼만했다. 나 가면 모두가 그 화려함에 놀라고 돌아오면 그 위엄에 급히 길을 치 웠다.

조조는 업군에 위왕의 궁궐을 짓고 세자를 세울 일을 의논했다. 조조의 본처 정부인(人)은 자식이 없었고, 첩 유씨(劉氏)에게서 맏아들 앙(昻)을 보아 정부인에게 아들 삼게 하였으나 장수(張繡)와 싸울 때 죽어, 그때 남은 것은 첩 변씨 (氏)가 낳은 아들 넷뿐이었 다. 맏이가 비(조)요, 둘째는 창彰)이며, 셋째는 식(植)이요, 넷째는 웅(熊)이었다.

이에 조조는 자식 없는 정부인을 내쫓고 변씨를 높여 왕비로 세 웠다. 그러나 세자를 세우는 일은 곧 쉽지가 않았다. 조조는 셋째 아 들 식을 매우 사랑하여 그를 세자로 세우고 싶었다. 조식은 자를 자 건(建)이라 하며 매우 총명했고 글을 잘했다. 붓만 들면 바로 문장 이 된다 할 정도로, 뒷날에는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하나로 기림을 받았다.

맏아들 조비는 아우에게 세자 자리를 뺏길까 겁이 났다. 어느 날 가만히 중대부 가후賈)를 찾아가 계책을 물었다. 몇 번이나 주인 을 바꾸어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영달을 누리는 난세의 모사 답게 가후는 이내 조비가 해야 할 일들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가후로 보면 다음 시대의 주인 될 사람에게까지 미리 질긴 줄을 댄 셈이었다.

조비는 가후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조조가 멀리 싸움을 나가게 되 면 여러 아들이 모두 배웅을 했는데, 그때 조식은 언제나 말과 글로 아비의 공덕을 추키고 자식의 정을 드러냈다.

조비도 결코 글에 어두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후를 만난 뒤로부터 말과 글로 조식과 다투는 대신 행동으로 정성과 진정을 나 타내려 애썼다. 조조가 어려운 싸움을 떠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절 하고 배웅하니 보는 이가 다 그 효성이 지극함에 감동할 정도였다. 조조도 마침내는 식이 글재주만 있을 뿐 정성된 마음은 비에 미 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조비는 또 아버지를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들을 몰래 매 수했다. 금은을 아끼지 않고 그들을 구워삶으니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고 그 효과는 어김없었다.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조에게 조비의 깊은 덕을 칭송했다.

그렇게 되자 조조도 차차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아직 도식에게 기울어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도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이에 망설이던 조조는 가후를 불러 조용히 물었다.

“나도 이제 뒤를 이을 사람을 정해야 되겠는데 누구를 세웠으면좋겠나?”

그러나 능구렁이 같은 가후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혼자 급해진 조조가 다그쳤다.

“그대는 왜 대답을 않는가?”

“방금 무얼 좀 생각하느라 미처 대답을 못했습니다.”

가후가 이제 막 정신이 들었다는 듯이 능청스레 대답했다.

“무슨 생각을 그토록 골똘히 했는가?”

조조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가후는 여전히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했다.

“아, 그저 원소와 유표가 제 자리를 이을 자식을 고르던 일을 잠 깐 생각해봤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조비에게는 자신을 세자로 세우라는 천 마디 권유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원소나 유표가 그토록 어이없이 무너 진 것은 바로 후사로 맏아들을 세우지 않아 생긴 골육간의 싸움 때 문이 아니었던가.

“그대도 어지간하구나. 다음부터는 말을 바로 하라.”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은 뒤 마침내 맏아들 비를 왕세자로 세웠다.

그해 시월이 되자 조조가 살 왕궁이 다 세워졌다. 조조는 사람을 뽑아 여기저기로 보내 진기한 꽃과 낯선 과일나무들을 구해오게 했 다. 궁성 뒤뜰에 심기 위함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동오로 간 사람도 있었다. 손권을 찾아보고 위왕 조조의 뜻을 전하고, 다시 온주로 가서 조조가 즐기는 그곳의 귤을 가져가려 했다.

이때 손권은 조조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조조가 보낸 사람이 온주의 귤을 가져가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 에 영을 내려 큰 귤만 마흔 짐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일꾼을 시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군으로 져 나르도록 했다.

그런데 그 도중 지친 일꾼들이 어떤 산자락에 짐을 벗어놓고 쉬 고 있을 때였다. 애꾸눈에 한 다리를 저는 어떤 늙은이가 등나무를 찢어 만든 흰 관에 푸른 옷을 입고 나타나 말했다.

“보아하니 그대들은 모두 짐 지기가 힘드는 모양이구나. 이 시원 찮은 도인(人)이 모두 대신 져줄까 하는데 그대들 생각은 어떤가?” 

그러자 일꾼들은 모두 기뻐하며 짐을 벗어주었다. 그 늙은이는 한 사람마다 오리씩 짐을 대신해 져주었다. 그렇게도 무겁던 짐이 늙 은이에게는 가볍기 그지없어 보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빈도는 위왕의 고향 친구로 이름은 좌자(慈)에 자는 원방(元) 이요 도호는 오각선생(烏角先生)이라 하오. 업군에 이르거든 위왕에 게 좌자를 만났더란 얘기를 해주시오.”

떠날 무렵 하여 그 늙은이는 일꾼들을 거느리고 벼슬아치에게 그 렇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는 소매를 떨치며 가버렸다.

그 벼슬아치는 그런 좌자의 갑작스런 나타남과 사라짐이 까닭없 이 마음에 걸렸지만 달리 이렇다 할 변고가 없어 고개만 기웃하며 좌자를 보냈다.

그럭저럭 업군에 이른 일꾼들은 지고 온 귤을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그게 멀리 강남에서 손권이 구해 바친 것이라는 데 더욱 흡 족해 몸소 상자를 열고 귤을 집어 껍질을 벗겼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귤은 껍질뿐이고 속살이 하나도 없었다. 조조는 급히 다 른 귤을 벗겨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란 조조는 귤을 가져온 벼슬아치를 불러 까닭을 물어보았다.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던 그 벼슬아치가 이윽고 머뭇머뭇 대답했다.

“달리 이상한 일은 없고 다만 도중에 만난 좌자라는 늙은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좌자의 일을 모두 얘기했다. 그 좌자가 무슨 재간을 부린 것 같다는 얘기였지만 조조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벼슬 아치가 급한 김에 둘러대는 말이 아닌가 싶어 이것저것 캐묻고 있는 데 갑자기 사람이 와서 알렸다.

“좌자선생이라는 사람이 대왕(大王)을 뵙기를 청합니다.”

마침 그의 얘기를 하던 중이라 조조는 얼른 좌자를 불러들이게했다. 좌자가 들어오는 걸 보고 그 벼슬아치가 말했다.

“바로 저 사람이 도중에 본 그 늙은이입니다.”

그 말에 조조가 언짢은 얼굴로 좌자를 꾸짖었다.

“너는 어떤 요망스런 술수를 부렸기에 이 좋은 과일에 속이 하나도 없어졌느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한번 보지요.”

좌자가 빙긋 웃으며 귤 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겼다. 안에는 탐스 런 속살이 들어차 있는데 보기만 해도 달고 시원했다. 놀란 조조가 다시 손수 귤을 집어서 까보았다. 그러나 역시 빈 껍질뿐이었다. 몇 개를 번갈아가며 귤 껍질을 벗겼으나 좌자의 귤에는 먹음직한 과육 이 들어 있어도 조조가 깐 것은 빈 껍질뿐이었다.

그제서야 조조는 좌자가 예사 인물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좌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찾아온 까닭을 물었다. 그러나 좌자는 거기에는 대답을 않고 술과 고기만 청했다.

“술과 고기를 내오너라.”

조조는 그 방자한 태도가 별로 달갑지 않으면서도 마지못해 그렇게 영을 내렸다.

좌자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고 마시는데 잠깐 사이에 술 닷 말 과 양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조조가 다시 놀 라 물었다.

“그대는 어떤 술법을 배웠기에 이토록 놀라운 재간을 부리게 되었는가?”

그제서야 좌자가 입을 열었다.

“빈도는 서천 가릉 아미산(峨嵋山) 속에서 삼십 년이나 도를 닦았 소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바위벽 속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가 들렸소. 놀라 그쪽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 일은 그로부터 며칠이나 거듭되었소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바위를 쪼개자 천서 세 권이 나왔소. 둔갑 천서(遁甲天書)』라는 책으로 상권은 「천둔(天遁)」이라 이름했고, 중 권은 「지둔(地遁)」, 하권은 「인둔(人遁)」이라 했소. 천둔이란 구름을 딛고 바람을 타 태허(虛)로 날아오를 수 있게 하는 술법이요, 지둔 은 산을 뚫고 돌을 쪼개며 거칠 것 없이 몸을 옮기는 술법이며, 인둔 은 세상을 구름처럼 떠돌며 마음대로 몸의 형상을 바꿀 뿐만 아니라 검을 날리며 사람의 목을 주머니의 물건 꺼내듯 잘라올 수 있는 술 법이오. 이제 대왕께서는 사람으로서는 더 높아질 수 없을 만큼 높아졌으니 이만 물러나 나와 함께 아미산으로 드시는 게 어떻겠소? 가서 도를 닦으시겠다면 내 반드시 그 세 권의 천서를 모두 대왕께 전해드리겠소이다.”

말하자면 왕노릇 그만하고 자기 제자나 되라는 뜻이었다. 조조는 고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억지로 참고 좋은 말로 받았다.

“나 역시도 오래전부터 물러날 생각을 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조 정이 아직 나를 대신할 만한 사람을 얻지 못했는데 어떻게 버려두고 떠나겠는가?”

그러자 좌자가 껄껄 웃으며 빈정거렸다.

“익주의 유현덕은 제실의 종친일 뿐 아니라 덕망 높은 이라 들었 소. 왜 그분에게 대왕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빈도가 칼을 날려 그대의 머리를 베어버리고 말겠소.”

어지간히 참아내던 조조도 좌자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가만있지 못했다. 벌떡 몸을 일으키며 성난 소리로 꾸짖었다.

“이제 보니 네놈은 바로 유비가 보낸 세작이로구나!”

그러고는 곁에 있는 무사들을 시켜 좌자를 묶게 했다. 좌자는 껄 껄 웃기만 할 뿐 그대로 무사들에게 몸을 맡겨두었다. 조조는 옥졸 들을 시켜 그런 좌자를 고문하게 했다. 수십 명의 옥졸들이 좌자를 묶어 놓고 모진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창 매질을 하다 보 니 좌자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 모진 매질이 조금도 아프지 않 은 것 같았다.

그걸 본 조조는 더욱 성이 났다. 다른 날 방도를 내어 좌자를 다스 릴 작정으로 목에는 큰 칼을 씌우고 온몸은 쇠사슬로 동여 옥에 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 뒤 조조가 옥에 가서 보니 목에 씌웠던 칼이며 차꼬와 사슬은 모두 풀어져 흩어져 있고 좌자는 땅에 누워 자고 있는데 역시 조금도 상한 곳이 없었다.

이에 조조는 다시 먹을 것을 끊어보았다. 일곱 날이나 가두어놓고 물 한 방울 주지 않았으나 이번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땅바닥 에 단정히 앉아 있는 좌자의 뺨에는 오히려 전보다 더 윤기와 홍조 가 흘렀다.

감옥을 지키던 군사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좌자를 끌 어내 물었다.

“네놈은 무슨 요망한 술법을 부려 먹지 않고도 배겨날 수 있느냐?” “나는 수십 년을 먹지 않아도 견뎌내고, 하루에 천마리 양을 잡 아온다 해도 다 먹을 수 있소.”

좌자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조조도 더는 어찌할 수 없 어 좌자를 그냥 풀어주게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낮이었다. 조조가 왕궁에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여러 벼슬아치들과 술을 마시는데 좌자가 나막신을 끌고 뜰로 들어 섰다. 모든 벼슬아치들은 조조가 청한 것 같지도 않은데 볼품없는 차림으로 찾아든 좌자를 보고 놀라면서도 괴이쩍게 여겼다.

좌자는 그런 벼슬아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조에게 말했다. 

“대왕의 오늘 잔치에는 물과 뭍에서 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구 려. 여러 신하들과 함께 앉은 큰 잔치라 사방에서 구한 진기한 음식 들이 많을 것이나 그래도 빠진 게 있을 것이외다. 그게 무엇인지 말 씀해주시오. 빈도가 비록 재주 없으나 한번 채워보겠소.”

“나는 용의 간으로 국을 끓여 먹고 싶다. 그대가 좀 내놓을 수 있겠는가?”

조조가 이제야 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물었다. 어떻게든 좌자를 골 려주려 한 소리였으나 좌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게 무어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좌자는 그 말과 함께 붓과 먹을 청하더니 회칠한 벽에 용을 그리 기 시작했다. 이내 한 마리 용이 회벽 위에 그려졌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좌자가 그 용을 보고 소매를 한번 떨치자 용의 배가 갈라지는 게 아닌가! 좌자는 그런 용의 배에 손을 넣어 피가 뚝뚝 흐르는 간 한 덩이를 꺼냈다. 조조가 갑자기 그런 좌자를 꾸짖 었다.

“그건 속임수다. 그대는 소매 속에 미리 감춰두었던 걸 꺼내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해본 소리였다. 그러나 좌자는 별로 탄 하는 기색도 없이 조조의 말을 받았다.

“대왕께서 믿지 못하시는 듯하니 달리 길을 내야겠구려. 지금은 매우 추운 겨울이라 풀과 나무가 다 말라버렸소. 그런데 대왕께서는 꽃을 매우 좋아하시니 나는 그 꽃을 보여드릴까 하오. 어떤 꽃을 특 히 보고 싶어 하시는지 일러주시오.”

“나는 모란꽃을 보고 싶다.”

조조가 이번에는 은근히 호기심이 일어 그렇게 대답했다.

“그야 쉽지요.”

좌자는 그 말과 함께 큰 화분 하나를 뜰로 가져오게 했다. 좌자는 물 한 모금을 청해 그 화분 위에 뿜었다. 그러자 문득 화분 속에서 모란 한 줄기가 돋더니 커다란 꽃 두 송이를 피웠다.

조금 전용의 간을 꺼낼 때만 해도 조조처럼 한 가닥 의심을 품었 던 벼슬아치들이었으나 그걸 보자 더는 좌자를 의심할 수 없었다. 한결같이 그 신통한 술법에 놀라 좌자를 술자리로 모셔 앉혔다. 조 조도 마지못해 좌자가 함께 자리하는 걸 눈감아주었다.

얼마 뒤에 요리사가 회를 내왔다. 좌자가 회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회라면 송강(松江)의 농어회가 으뜸이지요. 지금이 한창 맛날 때 외다.”

“아무리 맛난들 여기서 천리나 떨어진 송강의 농어를 무슨 수로 먹어보겠나?”

조조가 그렇게 받자 좌자가 다시 재주를 보였다.

“까짓게 무어 어렵겠소이까? 낚싯대나 하나 빌려주시면 당장 맛 보게 해드리겠소.”

그렇게 말하고 낚싯대 하나를 빌려 뜰 아래 있는 연못에 드리웠 다. 얼마 안 돼 커다란 농어들이 물리기 시작해 좌자는 잠깐 동안 에 수십 마리를 낚아 올렸다. 조조가 그 농어들을 보고 또 억지를 부 렸다.

“이 농어들은 원래부터 새에 있던 것들이다. 송강의 것이 아니다!” 그러자 좌자가 빈정거렸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시오? 천하의 다른 농어는 모 두 아가미가 둘뿐이지만 송강의 농어만은 아가미가 넷이외다. 한번 살펴보시지요.”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좌자가 잡아올린 농어를 살펴보니 정말로 아가미가 넷이었다. 그러나 좌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송강의 농어를 요리해 먹자면 반드시 촉에서 난 생강[紫牙薑]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자 조조가 다시 그를 떠보았다.

“그대는 그 생강도 가져올 작정인가?”

“어려울 것도 없지요.”

좌자는 선선히 대답하고 이번에는 쇠로 만든 화분 하나를 가져오 게 했다. 좌자가 옷을 벗어 그 화분에 덮고 무어라 중얼거리자 금세 화분 가득 그 생강이 피어났다.

좌자는 그 생강을 화분째 조조에게 갖다 바쳤다. 조조가 두 손으 로 받아 보니 그 화분 안에 책 한 권이 들어 있는데 겉장에 ‘맹덕신 서(德書)’라 씌어 있었다. 조조는 그 책을 넘겨보았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게 틀림없이 자기가 쓴 『맹덕신서였다. 그 책이 왜 화 분 안에 들어가 있는지 몹시 이상해서 물으려 하는데 좌자가 문득 술상 위의 옥잔에다 술을 가득 부어 올리며 말했다.

“한잔 드시지요. 대왕께서 이 술을 마시면 천 년을 사실 것이외다.” 하지만 가뜩이나 좌자를 밉게 보고 있는 조조에게 선뜻 받아마실 마음이 날 리 없었다. 좌자의 솜씨라면 남 몰래 술에 독을 풀 수도 있다고 본 것이었다.

“그대부터 먼저 마시도록 하라.”

조조가 자신의 의심을 감추지 않고 그런 말로 좌자의 잔을 물리 쳤다. 조조의 마음속을 읽었는지 좌자가 껄껄 웃으며 관에 꽂혔던 옥비녀를 뽑았다. 그리고 그걸로 잔 가운데를 한번 주욱 긋자 신기하게도 잔은 술이 담긴 채 두 쪽으로 갈라졌다.

“자, 이렇게 나눠 마시면 대왕께서도 안심하고 잔을 비우실 수 있

을 것이오.”

술잔의 반쪽을 자신이 마신 좌자가 남은 반쪽을 조조에게 내밀며 껄껄거렸다. 조조도 마침내 노하고 말았다.

“이놈, 네가 너무 무례하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조조가 그렇게 소리 높여 꾸짖었다. 그러자 좌자는 그 잔을 공중 으로 던졌다. 잔은 이내 흰 비둘기가 되어 궁궐 처마를 빙빙 돌며 놀 았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좌자의 그 놀라운 술법에 넋을 잃고 이리 저리 나는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좌자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조조가 놀라 좌자를 찾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와서 알렸다.

“좌자가 궁문을 나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차갑게 내뱉었다.

“저런 요사스런 인간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 살려두면 뒷날 틀림없이 세상을 해칠 것이다!”

그러고는 허저를 불러 영을 내렸다.

“장군은 철갑(甲)삼백기를 이끌고 좌자를 뒤쫓으라. 반드시 사 로잡아 와야 한다!”

허저는 급히 군사들과 말에 올라 성문을 나섰다. 얼마 안 가 좌자 가 나막신을 신고 절름거리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게 저만치 보였 다. 허저는 얼른 그를 사로잡아 가려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말에 박차를 가하고 채찍질을 더해도 나막신을 신고 절름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좌자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쫓고 쫓기다가 어느 산모퉁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좌자 앞 길에 어떤 양치기 소년이 양 떼를 몰고 나타났다. 그러자 좌자가 갑 자기 양 떼 속으로 뛰어들어 숨어버렸다. 허저가 활을 들어 쏘려 했 으나 어떻게 숨었는지 보이는 것은 양 떼뿐 좌자는 간 곳이 없었다. 

‘옳지, 이 늙은이가 요술을 잘 부리니 틀림없이 양으로 둔갑을 했 을 것이다. 하지만 애꾸눈과 절름발이야 어쩌겠는가. 애꾸눈에 뒷다 리 하나를 저는 양을 찾아 죽이면 될 것이다.’

허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양 떼를 살펴보았다. 그런 데 이게 어찌 된 셈인가. 수백 마리의 양이 한결같이 애꾸눈에 뒷다 리 하나를 절고 있었다. 이에 허저는 하는 수 없이 양 떼를 모조리 죽여버리고 돌아갔다.

졸지에 기르던 양을 모두 잃게 된 소년은 목을 놓아 울었다.

“얘야, 얘야.”

갑자기 죽어 자빠진 양 틈에서 사람의 소리가 울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소년이 그쪽을 보니 땅에 떨어진 양의 머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얘야, 잘린 양의 머리를 모두 몸통에 붙여라. 그러면 양이 되살아 날 것이다.”

그 목소리는 이어 그렇게 일러주었으나 어린 양치기는 겁부터 먼저 났다. 놀라 얼굴을 싸매고 달아나기가 바빴다. 얼마쯤 갔을까, 다시 등 뒤에서 문득 사람의 소리가 났다.

“얘야, 놀라 달아날 것 없다. 여기 네 양을 돌려주마. 모두 살아 있으니 몰고 가거라.”

소년이 돌아보니 좌자가 어느새 모든 양들을 되살려 몰고 뒤따라 오는 중이었다. 소년은 반가우면서도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좌자에 게 달려갔다. 그리고 급히 궁금한 걸 물으려는데 좌자는 어느새 소 매를 떨치며 저만치 가고 있었다. 그 빠르기가 걷는다기보다는 나는 것 같았다. 그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금세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간 소년은 주인에게 그 놀라운 일을 알렸다. 그때는 이미 좌자의 소문이 성안에 퍼진 뒤였다. 주인은 그 일을 숨겨둘 수 없다 여겨 조조에게 알렸다.

허저의 말을 듣고 좌자가 죽었으려니 믿고 있던 조조는 그 말을 듣자 몹시 노했다. 곧 좌자의 생김을 그리도록 해서 사방에 나눠주 며 좌자를 잡아들이라 명했다.

사흘도 안 돼 성 안팎에서 좌자로 지목되어 잡혀 온 사람이 삼사 백 명이나 됐다. 한결같이 애꾸눈에 절름발이요 흰 등나무 관에 푸 른 옷을 입고 나막신을 꿴 게 틀림없는 좌자였다.

“저것들에게 돼지와 양의 피를 뿌려라!”

조조는 그렇게 명을 내려 붙들려 온 좌자들이 더는 요사스런 술 법을 부리지 못하게 한 뒤, 그들을 모두 군사들을 조련하는 마당으 로 끌어내게 했다. 그리고 몸소 갑병(甲兵)오백을 끌고 가서 그들을 남김없이 목 베었다.

수백의 좌자는 목이 잘릴 때마다 목구멍에서 맑은 기운을 한가닥씩 내뿜었다. 그 기운들은 흩어지지 않고 공중을 떠돌다가 하나로 뭉치더니 곧 한 사람의 좌자로 변했다. 그 좌자가 하늘을 보고 손짓 을 하자 어디서 왔는지 커다란 백학 한 쌍이 날아와 그를 태웠다. 

“흙쥐[]가 쇠범[金虎]을 따라가니 간웅)이 하루아침에 죽 는구나!”

학을 탄 좌자가 사라지기 전에 손뼉을 치고 껄껄거리며 조조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러했다. 흙쥐니 쇠범이니 하는 말이 아리송 한 대로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차린 조조가 머 리칼과 수염을 곤두세우고 소리쳤다.

“모두 활을 쏘아라! 저 요망한 놈을 쏘아 죽여라!”

이에 홀린 듯 좌자가 사라져가는 하늘만 올려보고 있던 장수들이 활과 화살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미친 듯한 바람 이 일며 돌을 굴리고 모래를 날렸다. 그러자 목이 잘려 죽어 자빠진 좌자의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 각기 자기 목을 찾아들고 조조에게로 몰려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마음 약한 문신들은 물론 간 큰 무장들까지도 놀라 나자빠졌다.

어지간한 조조도 마침내는 견뎌내지 못했다. 자기 목을 주워든 목 없는 시체들이 떼를 지어 에워싸자 그 또한 놀라 쓰러지고 말았다. 좌자의 시체들은 한참 뒤 바람이 가라앉고 나서야 없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쓰러진 조조를 들쳐업고 궁궐로 돌아갔다. 그 러나 그날 조조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깨어나서도 그로 인해 병을 얻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정사가 말하는 좌자 이다. 좌자는 『후한서(後漢書)』 「방술열전(方術列傳」과 삼국지 위지 (魏志)』「무제기(記)」 화타전(傳)’ 등에 나오는 실제 인물이 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의 놀라운 신통력도 몇 가지 는 기록되어 있다. 곧 그가 조조의 궁궐에 앉아서 송강의 농어를 잡 은 것과 촉에서 나는 생강을 때맞춰 내놓은 것, 양으로 변해 양떼 사이에 숨은 것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가 조조의 노여움을 산 것은 정사와 『연의』가 너무 다르 다. 『후한서』에 따르면 좌자가 조조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은 방술에 곁들여 쓴 것으로 보이는 속임수가 탄로 난 까닭이며, 또 조조도 구 태여 그를 잡아 죽이려고 애쓴 흔적은 없다. 다시 말해 좌자는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 숨었을 뿐이다. 그가 조조에게 유비를 추켜 올렸 다거나 조조가 그를 죽인 뒤에 놀라 병을 얻었다는 것은 순전히 『연 의』를 지은 이가 꾸며낸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좌자는 처음부터 조 조 주위에 있었던 일종의 식객이었고 끝까지 유비와는 무관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연의로 돌아가면 좌자 때문에 병을 얻은 조 조는 아무리 약을 써도 듣지 않았다. 그때 마침 태사승 허지(芝)란 사람이 조조를 보러 왔다. 허지는 점을 잘 친다고 알려진 사람이라 조조는 그에게 점을 쳐달라고 청했다. 허지가 사양하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관로(管輅)를 모르십니까? 점에는 귀신 같다는 사람 인 바 저 같은 것은 견주지도 못합니다. 그를 불러 물어보십시오.”

“그 이름은 자주 들었네만 아직 그 술법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네. 아는 게 있으면 자세히 들려주게나.”

나이 탓일까, 조조가 담박 마음이 끌려 그렇게 명했다. 허지가 들 은 대로 모두 털어놓았다.

“관로는 자를 공명(明)이라 하며 평원 땅 사람인데, 생김이 보잘 것없고 술을 좋아하나 광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찍이 그 아비 가 낭야군의 구장(長)이 되어 거기서 자랐고, 어렸을 적부터 하늘 의 별을 쳐다보기 좋아해 밤에는 잠을 잘 생각을 안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말려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 말하기를 ‘집에 서 기르는 닭이며 들판의 따오기도 때를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웃 아이들과 놀아도 땅바닥에 천문을 펼쳐놓고 해와 달 과 별을 그려넣을 정도였다 합니다. 자라서는 『주역』을 깊이 공부했 으며, 풍각(角, 옛날 점술의 하나로 바람과 소리로 길흉을 안다고 함)을 볼 줄 알고, 수(數)의 이치에도 귀신과 통했다 할 만큼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못지않은 것이 남의 상을 보는 재주였습니다. 낭야 태수 선자춘(單春)이 일찍이 그의 놀라운 이름을 듣고 관 로를 불러들여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자리에는 백여 명의 손님 이 있었는데 모두가 말 잘하는 선비들이었지요. 관로가 그들을 둘러 본 뒤에 선자춘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나이 어려 아직 담력이 굳세 지 못합니다. 먼저 좋은 술 석 되만 내려주시면 그걸 마신 뒤에 얘기 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춘이 그 말을 남다르게 여겨 술 석 되 를 내오게 하자 관로는 그 술을 단숨에 들이켠 뒤 다시 물었다고 합 니다. ‘오늘 저와 마주 말씀 나누려는 분은 여기 계신 모든 선비님들 입니까?’ 그 말에 자춘이 대답하기를 ‘아닐세, 내 자신이 그대와 맞서 겨뤄보려 하네’라고 했습니다. 이에 두 사람이 얼려 『주역』의 이 치를 따져보게 되었는데, 관로는 물 흐르듯 말하는 중에도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정밀하고 심오했습니다. 자춘이 또한 만만치 않아서 이것저것을 따져 물었으나 관로는 조금도 막힘이 없이 받아넘겼습 니다. 새벽부터 저물 때까지 밥 한술 뜨지 않고 얘기하면서도 조금 도 몰리는 기색이 없자 자춘은 물론 거기 모인 손님들도 모두 탄복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합니다. 그 뒤로 관로는 천하에 널리 신동(神 童)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허지의 얘기는 곧 관로의 기막힌 점술로 옮아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관로가 사는 고을에 곽은(郭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형제 셋이 모두 다리를 저는 병에 걸려 관로를 찾 아왔다. 관로가 점을 쳐본 뒤에 말했다.

“점괘에 보니 그대들 집안 묘소에 여자 귀신이 하나 있는데 백모 가 아니면 숙모쯤 되는 것 같네. 여러 해 전 흉년이 들었을 때 몇 되 쌀을 다투다가 그대들이 우물에 밀어 떨어뜨리고 큰 돌로 머리를 부 수었군. 그 혼이 원통함을 이기지 못해 하늘에 호소한 결과 그대들 이 이처럼 끔찍한 병을 얻게 된 것이니 어떻게 면할 도리가 없겠네.”

그러자 그 삼형제는 일제히 관로 앞에 엎드려 울며 그 죄를 털어 놓았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안평 태수 왕기(基)가 관로의 점이 용한 걸 알고 집으로 청했다. 신도 현령의 아내는 바람머리를 앓고 그 아들은 가슴앓이를 해 약을 써도 듣지 않으므로 관로에게 그 까 닭을 알아보려 한 것이었다. 관로가 점을 쳐보더니 말했다.

“그 집 서쪽에 두 사람의 시체가 묻혀 있구려. 한 사람은 창을 들 고 있고 또 한 사람은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데 머리는 벽 안쪽에 있고 다리는 벽 바깥으로 나가 있소이다. 창을 든 자가 머리를 찔러 대니 부인의 머리가 아프고, 활과 화살을 든 자는 가슴을 찔러대니 자제분의 가슴이 아픈 것이오.”

그 말을 들은 현령은 곧 자기집 서쪽 벽 밑을 파보았다. 과연 땅 속 여덟 자 되는 곳에서 관두 개가 나왔는데 한 관에는 창이 들어 있고, 다른 한 관에는 활과 화살이 들어 있었다. 나무로 된 곳 은 썩어 없어졌으나 틀림없이 관로가 말한 대로였다. 그 관 속에 들 어 있는 뼈를 정성들여 맞추어 성밖십리 되는 곳에 묻어주자, 정 말로 현령의 아내가 앓던 바람머리와 아들의 가슴앓이가 씻은 듯이 나았다.

관도 현령 제갈원(諸葛原)이 신흥 태수로 가면서 관로를 시험했던 것도 널리 알려진 일 가운데 하나였다. 관로가 점을 잘 쳐 감춰진 물 건을 쉽게 알아낸다는 말을 들은 제갈원은 배웅을 나온 사람들 중에 끼인 관로에게 나무합 세 개를 내놓고 안에 든 것을 맞혀보라 했다. 그 안에는 각기 제비알과 벌집과 거미가 들어 있었다.

점괘를 뽑아 본 관로는 첫 번째 나무합을 보고 말했다. 

“생명의 기운을 머금고 있으니 반드시 모양이 바뀔 것이며[須 變] 집 처마에 의지하고[依於], 암수가 짝을 지어 살고[雌雄以 形, 깃털과 나래가 펼쳐질 것[羽翼舒張]이라 하니, 이는 틀림없이 제 비알입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나무합을 보고 말했다.

“집과 방이 거꾸로 매달렸고[家室倒懸]한 집안에 여럿이 모여 살 며[門戶衆]꽃의 정기를 모으며 독을 길러[藏精育毒] 가을이 되면 변하니[秋] 이는 틀림없이 벌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것을 보고 말했다.

“긴 다리를 두려운 듯 곱송그리고[縠鯨長足]입으로 실을 토해 그 물을 짜며[成羅], 그물을 더듬어 먹이를 찾으나[尋網求食], 날 저 물고 어두워야 이득을 보니[利在夜], 이는 거미임에 틀림없습니다.” 

관로가 그렇게 알아맞히자 제갈원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 있던 사람이 모두 놀라 마지않았다.

관로의 점은 잃은 물건을 찾는 데도 신통했다. 한번은 어떤 늙은 시골 아낙이 소를 잃어버리고 찾아왔다. 관로는 한동안 점괘를 살피 다가 말했다.

“북쪽 계곡 물가에서 일곱 사람이 한창 요리를 하고 있소. 빨리 가서 찾으면 고기와 가죽은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오.”

노파가 그 말대로 찾아가 보니, 어떤 초가 뒤에서 일곱 사람이 한 창 고기를 삶고 있는데, 정말로 가죽과 고기는 아직 하나도 축나지 않은 채였다. 늙은 아낙의 고발로 그 일곱을 잡아들여 벌을 준 태수 유빈이 이상히 여겨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저 소도둑들이 거기 있는 걸 알았는가?”

“관로가 점을 쳐서 알려주었습니다.”

아낙이 그렇게 대답했으나 유빈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곧 관로를 불러들여 태수의 인수印, 인뚱이)와 산닭[山] 깃털을 감 춰둔 나무합을 내놓으며 물었다.

“그대는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겠는가?”

관로가 점을 쳐보고 말했다.

“첫째 상자는 안이 모나고 겉이 둥글며[內外] 다섯 가지 빛깔 로 글이 씌었고[五色成文], 보배로움을 감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믿 음을 지니기도 했으며[含守信], 밖으로 나오면 도장이 되는[生則有 章] 것이 들어 있으니 그것은 틀림없이 태수의 인수일 것입니다. 또 둘째 합은 높은 산 바위 틈에 [岳岩岩] 붉은 몸을 한 새인데[有鳥朱 身], 날개와 깃털은 검고 누르며 [羽翼玄黃], 새벽이면 반드시 우는 것 [鳴不失晨]의 깃털이니 이는 틀림없이 산닭의 깃털일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유빈은 깜짝 놀랐다. 나무합 속을 들여다본 사람처 럼 맞히는 걸 보고 그 재주에 크게 감탄하여 그 뒤로는 관로를 귀한 손님으로 대접했다.

관로의 귀신 같은 점술을 말해주는 것은 그밖에도 더 있었다. 하 루는 관로가 성 밖에 나가 한가로이 거닐다가 밭을 갈고 있는 젊은 이 하나를 만났다. 무심코 그의 상을 본 관로가 무엇 때문인지 길가 에 멈춰 서더니 한동안이나 그 젊은이를 꼼꼼하게 살폈다. “젊은이는 이름이 어떻게 되며 나이는 몇 살인가?”

이윽고 그 젊은이에게 다가간 관로가 그렇게 물었다.

“제 이름은 조안(趙顔)이며 나이는 이제 열아홉이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뉘십니까?”

젊은이가 수긋하게 이름과 나이를 밝힌 뒤 그렇게 되물었다. 관로 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나는 관로라는 사람이다. 내가 보니 자네 미간에 죽음의 기운이 깃들여 있어 반드시 사흘 안으로 죽을 것 같다. 자네 생김은 훤하나 아깝게도 목숨을 길게 타고 나지 못했구나.”

그 젊은이 조안으로서는 엉뚱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다 른 일도 아니고 바로 목숨에 관한 것이라 그냥 들어 넘길 수가 없었 다. 곧 집으로 돌아가 그 아비에게 관로에게서 들은 말을 전했다. 관로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그 아비는 깜짝 놀라 관로를 뒤쫓아 갔다.

“선생님, 부디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이윽고 관로를 따라잡은 그 아비가 땅에 엎드려 울며 그렇게 빌었다. 관로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해둔 명이다. 어찌 피할 길이 있겠소?”

그러나 조안의 아비는 물러서지 않았다. 더욱 슬피 울며 관로에게 매달렸다.

“이 늙은것에게는 자식이라고는 이 아이 하나뿐입니다. 엎드려 빌 건대 부디 은혜를 드리워 이 아이를 구해주십시오!”

아비 곁에 있던 조안 역시 울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런 부자의 모습이 애처로웠던지 한동안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관로가 마 지못한 듯 조안을 보고 말했다.

“자네는 깨끗한 술 한 병과 사슴고기 포 뜬 것 한뭉치를 마련해 내일 아침 일찍 남산(南山)으로 가보게. 가면 큰 소나무 아래 한 사 람은 흰 옷을 입고 남쪽을 향해 앉아 있을 것인데 그 생김이 몹시 험상궂으며, 다른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고 북쪽을 향해 앉아 있을 것인데 그 생김은 매우 잘났지. 자네는 그들이 한창 바둑에 빠져들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만히 다가가 술과 안주를 바치게. 너무 요란스 러워 그 두 사람의 눈길이 먼저 자네에게 쏠리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되네. 그러다가 그들이 술과 안주를 다 받아먹은 뒤에야 그들 앞에 엎드려 울며 목숨을 빌어보게. 반드시 목숨을 더 보태줄 것이네. 하 지만 단 하나, 이 일을 내가 가르쳐주더란 말을 그들에게 해서는 절 대 아니 되네.”

그러나 조안의 아비는 고마움을 이기지 못해 끌다시피 관로를 자 기 집으로 모셔갔다. 크게 잔치를 열어 관로를 대접하는 한편, 사람 을 풀어 깨끗한 술 한 병과 잘 말린 사슴고기 포를 구해오게 했다. 다음 날이었다. 조안은 술과 안주는 물론 잔과 접시까지 싸들고 남산으로 올라갔다. 한 오륙 리나 갔을까. 과연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나오고 그 아래 널찍한 바위 위에는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게 보였다. 조안이 따로 기다릴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이미 바둑에 온통 넋을 잃고 있었다. 조안이 다가가도 전혀 알지 못하고 바둑돌만 놓 아 나갈 뿐이었다.

조안은 살며시 그들 곁에 무릎을 꿇고 술과 안주를 바쳐올렸다. 두 사람은 바둑에 정신이 팔려 누가 주는지도 알아보려 하지 않고 조안이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뜯어 먹었다. 이윽고 술과 안주가 바 닥나자 조안은 드디어 땅에 엎드려 울며 큰 소리로 빌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두 분께서 구해주지 않으면 이틀 안으로 죽 어야 됩니다.”

그제서야 두 사람이 펄쩍 놀라며 조안을 돌아보았다.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다가 겨우 경위를 짐작한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틀림없이 관로가 시킨 일일게요.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이 젊은이한테서 받아먹을 걸 다 받아 먹어버렸으니 어쩌겠소? 불쌍히 여겨 한번 청을 들어줍시다.”

그 말에 흰 옷을 입은 늙은이가 쓴 입맛을 다시며 소매에서 장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한참을 뒤적뒤적하며 찾아보더니 문득 조안 을 보고 말했다.

“네가 이제 열아홉이니 마땅히 죽어야 할 때다마는 네 정성이 애 처로워 목숨을 늘여준다. 십구(九)의 십(+)자 앞에 구(九)자를 더 써 넣어줄 것이니 이제 네 목숨은 아흔아홉을 채워야 다한다. 그러 하되 돌아가거든 꼭 관로에게 전해라.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앞으로 또다시 천기를 누설하면 반드시 천벌이 그 에게 이를 것이니라.”

그런 다음 붓을 꺼내 장부에 원래 적힌 숫자에 아홉 구자를 하나 더 적어넣었다. 조안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그들 앞에 수없이 절을 했다. 갑자기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그들은 두 마 리의 흰 학이 되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조안은 집으로 달려가 아직도 거기 머물고 있는 관로에게 남산에 서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하고 물었다.

“그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붉은 옷을 입은 분은 남두성(南星)이고 흰 옷을 입은 분은 북두성(星)이네.”

관로가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알려주었다. 조안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제가 듣기로 북두성은 아홉 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한분뿐이었습니까?”

“흩어져 있으면 아홉이 되고 합쳐져 있으면 하나가 되네. 북두성 은 죽음을 맡고 남두성은 태어남을 맡았는데 이번에 그 북두성이 목 숨을 더해주었으니 이제 자네는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네.”

그러자 조안과 그 아비는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모두가 선생님의 신통한 가르침 덕분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관로는 그때부터 또다시 천기를 누설하게 될까 두려워 사 람들에게 점을 쳐 주지 않았다.

관로의 점술에 관한 얘기는 정사의 기록만으로도 수십 종이 된다. 「위지(志)」에서 무제, 조조), 문제, 조비)와 몇몇 군웅을 빼 면 가장 기록이 많은 사람이 이 관로가 아닌가 한다.

허지는 그런 관로의 얘기를 마친 뒤에 조조에게 권했다.

“그 사람은 지금 평원에 있습니다. 대왕께서 걱정거리를 없애고자 하신다면 어찌하여 그를 불러 물어보지 않으십니까?”

이에 조조는 귀가 솔깃했다. 곧 사람을 뽑아 평원으로 보내 관로 를 불러오게 했다. 관로가 불려 오자 조조가 물었다.

“얼마 전에 좌자란 늙은이가 요망한 짓을 일삼기로 목을 베어 죽 였더니 내게 병이 생겼소. 어떻게 된 일인지 점을 쳐서 알아보시오.” 

그러자 관로는 점괘도 뽑아보지 않고 조조를 안심시켰다.

“그것은 모두가 사람의 눈을 홀리는 술법입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조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거기서 힘을 얻은 덕분인지 정말로 조조의 병은 그날부터 조금씩 나아져 갔다.

병이 어느 정도 놓이자 다시 조조는 천하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관로를 불러 이번에는 그쪽을 점쳐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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