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8권 – 8화 : 아아, 관공이여, 관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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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8권 – 8화 : 아아, 관공이여, 관공이여


아아, 관공이여, 관공이여

관공은 이미 형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양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물러나 뒷날을 보기로 하고 공안으로 군사를 몰 았다. 그러나 오래잖아 다시 기막힌 소식이 왔다.

“공안의 부사인은 이미 동오에 항복해버렸습니다.”

뿐만 아니었다. 잠시 뒤에는 또 전에 군량을 재촉하러 남군으로 보냈던 군사가 찾아와 울며 말했다.

“공안의 부사인이 남군으로 가서 군후께서 보내신 사자를 죽이고 미방까지 동오에 항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부사인이 배신한 것만도 이가 갈릴 판인데, 오랫동안 함께 고생한 미방까지 동오로 넘어가버렸다는 소리까지 듣자 관공은 더 견디지 못했다. 온몸이 터질듯 치솟는 노기에 화타가 꿰매준 상처가 다시 갈라져 땅바닥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여러 장수들이 그런 관공을 떠메고 급히 친 장막 안으로 들였다. 잠시 후에 정신이 든 관공은 왕보를 돌아보며 탄식했다.

“내 일찍이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 이 지경에 떨어졌구나!”

그러고는 아무래도 그게 궁금한지 좌우를 향해 물었다.

“강변 아래위로 세워두었던 봉화대는 어찌 되었다더냐? 무슨 까 닭으로 불을 피워 알리지도 못했더란 말이냐?”

“여몽이 배 위의 군사들에게 흰옷을 입혀 장사치로 꾸미게 하고, 배 안에는 날랜 병사를 감추어 강물을 건넜다고 합니다. 그리고속 아 넘어간 봉화대의 군사들이 마음 놓고 있는 틈을 타서 갑작스레 배 안에 숨었던 자기편 군사를 내보낸 것입니다. 그 바람에 봉화대 의 군사들이 모조리 사로잡혀버렸다 하니 누가 불을 피울 수 있었겠 습니까?”

내막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제서야 관공은 여몽과 육 손에게 속은 걸 알았다. 발을 구르며 소리내 한탄했다.

“내가 간사한 도적들의 잔꾀에 빠졌구나! 이제 무슨 낯으로 형님을 뵙는단 말이냐?”

관량도독 조루가 그런 관공을 깨우쳐주듯 말했다.

“지금 일이 매우 위급합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성도로 보내 구원 을 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서 가서 형주를 되찾으셔야 합니다.” 

관공도 얼른 정신을 수습해 그 말을 따랐다. 마량과 이적에게 글 을 주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도로 달려가게 하는 한편 자신은 남은 군마를 정돈해 형주로 밀고 갔다. 스스로 앞장을 서고 관평과 요화에게 뒤를 맡겨 빼앗긴 그 성을 되찾아볼 작정이었다.

한편 관공이 물러나고 번성이 에움에서 풀려나자 조인은 조조를 찾아가 울며 잘못을 빌었다.

“제가 밝지 못해 대왕께 이 같은 번거로움을 끼쳐드렸으니 실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바라건대 제게 엄한 벌을 내리시어 군령의 무 서움을 보이십시오.”

“이 모든 게 하늘이 정한 운수다. 너희들의 죄가 아니니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말라.”

조조는 그렇게 조인을 위로하고 삼군에게 두루 상을 내려 기운을 돋워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두렵게 여기던 관공을 꺾은 서황 의 싸움터를 돌아보다가 사에 있던 요화의 진채에 이르러 감탄의 소리를 냈다.

“형주 군사들이 이토록 참호를 깊이 파고 또 여러 겹 녹각을 둘러 두었는데도 서공명은 그 속으로 깊숙이 짓쳐들어 마침내 큰 공을 세 웠구나! 나도 군사를 부린 지 삼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껏 이처럼 적 진 깊숙이 뛰어들어본 적은 없었다. 공명은 참으로 담력과 식견을 아울러 갖춘 뛰어난 무장이다!”

조조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모두 서황의 놀라운 전공에 감탄 해 마지않았다.

서황이 조조와 만난 것은 조조가 군사를 마피摩陂)로 되돌린 뒤 였다. 군사들이 가까이 이르렀단 말을 듣자 조조는 몸소 진채 밖까 지나가 서황을 맞아들였다. 서황의 군사들이 대오를 지어 다가오는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시 한번 서황에게 감탄한 조조가 말했다.

“서장군은 참으로 주아부(周亞)의 풍도가 있구나!”

그리고 싸안듯 서황을 맞아들인 다음 그를 평남장군에 봉했다. 조조는 다시 하후상에게 양양을 맡겨 관공의 군사를 막게 하고, 자신은 그대로 마피에 진채를 얽었다. 아직 형주의 일이 어찌 되었 는지 몰라 그 소식을 안 뒤에 움직일 작정이었다.

한편 관공은 형주로 가고는 있어도 속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 대로 밀고 나가려 해도 거느린 군사만으로는 이미 성을 차지하고 앉 은 여몽을 이기기 어려웠고 뒤로 물러나려 해도 조조의 대군이 뒤따 르는 판이라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지간한 관공도 일이 그쯤 되자 생각조차 막히는지 조루를 잡고물었다.

“지금 앞에는 오병이 있고 뒤에는 위군이 있어 나는 그 가운데 갇 힌 꼴이다. 거기다가 구원병까지 오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조루가 한참을 생각하다 궁한 계책을 짜냈다.

“지난날 여몽이 육구에 있을 때 늘상 군후께 글을 보내 말하기를 양쪽이 서로 힘을 합쳐 함께 역적 조조를 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조를 도와 우리의 등 뒤를 들이친 것은 그 맹세를 저버린 일 이 됩니다. 군후께서는 잠시 여기서 군사를 멈추고 먼저 여몽에게 글을 보내 그걸 꾸짖도록 하십시오. 여몽이 어떻게 대답하는가를 보 아가며 움직이는 게 낫겠습니다.”

서로 창칼을 맞대고 있는 마당에 지난날의 글 한 조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관공은 우선 그대로 따라보기로 했다. 곧 여몽을 나무라는 글 한 통을 써서 사자에게 주고 형주로 보냈다.

이때 형주의 여몽은 그곳 사람들의 인심을 거두어들이는 일에 한 창이었다. 형주 여러 고을에 영을 내려 비록 관공을 따라 싸우러 나 간 군사들의 집일지라도 오병들이 함부로 뛰어들어 분탕질을 치지 못하게 함은 물론 달마다 나가는 양식도 그대로 대어주게 했다. 또 그들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의원을 보내 치료까지 해주니 관공 을 따라나간 군사들의 가솔들은 하나같이 그 은혜에 감사했다. 여몽 의 군사들이 해코지할까 봐 벌벌 떨 판인데 오히려 따뜻하게 돌봐준 까닭이었다.

관공의 사자가 형주로 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여몽은 그 말 을 듣자 성 밖까지 나가 사자를 맞아들였다. 예를 마친 사자가 관공 이 써준 글을 꺼내 바쳤다. 읽고 난 여몽이 매우 안됐다는 표정으로 사자에게 말했다.

“이 여몽이 지난날 관장군(關將軍)과 화호를 맺으려 했던 것은 내 사사로운 소견에서 비롯된 것이었소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있 는 일은 위에서 명한 것이라 멋대로 할 수가 없소. 번거롭지만 사자 께서는 관장군께로 돌아가시어 이 같은 내 뜻을 좋은 말로 들려드리시오.”

그러고는 잔치를 열어 잘 대접한 뒤 역관으로 가서 쉬게 했다. 어 찌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실은 거기에 여몽의 속 깊은 계책이 숨어 있었다. 이미 싸움을 하고 있는 판에 적군의 사자를 융숭히 대접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한나절이면 돌아갈 수 있는 사자를 굳이 역관에 하룻밤 묵어가게 한 것들이 바로 그랬다.

관공의 사자가 여관에 묵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관공을 따라간 군사들의 가족은 줄지어 역관으로 찾아들었다. 형제나 자식 또는 아 비가 잘 있는지 알아봄과 아울러 자기편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함이 었다. 그런데 여몽이 노린 것은 바로 거기서 관공의 군사들에게 전 해질 그 가솔들의 소식이었다. 가솔들은 멀리 가 있는 이들의 걱정 을 덜어주려고 여몽이 잘 돌봐주어 일 없이 지낸다는 것을 한결같이 과장되게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자는 하룻밤을 역관에서 지낸 뒤 이튿날 여몽 과 작별했다. 여몽은 또 성 밖까지 나와 사자를 배웅했다. 관공에게 로 돌아간 사자는 여몽의 뜻을 전함과 아울러 군사들의 가족에게서 들은 성안의 소식까지 말해주었다. 관공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군사 들의 가족들까지 여몽이 잘 돌보아주어 아무 탈 없고, 먹을 것 입을 것도 모자람이 없더란 내용이었다.

가만히 사자의 말을 듣고 있던 관공이 문득 성난 소리를 내질렀다. 

“닥쳐라! 그것은 여몽 그 간사한 도적놈의 꾀다. 내가 살아서 그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죽은 뒤에라도 반드시 그놈을 죽여 이 한을 씻으리라!”

그러고는 사자를 꾸짖어 물리쳤다. 사자가 관공의 장막을 나오자 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한 장수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성안의 소식을 물었다.

사자는 들은 대로 소식을 전해주고 더러는 그 가족들에게 받은 편지까지 내주었다. 그를 통해 가족들이 모두 다 잘 있다는 걸 알게된 장수들은 한결같이 여몽과 싸울 뜻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관공은 형주로 군사를 몰고 나갔으나 여몽의 계책은 벌써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많은 장수와 군사들이 가만히 대오를 빠져나 가 가족들이 있는 형주로 도망쳐버렸다. 만약 여몽이 그 가족들을 죽였거나 괴롭혔다면 죽기로 싸웠을 사람들이었다.

관공은 더욱 화가 났다. 그 바람에 앞뒤도 살피지 않고 군사를 몰 아대고 있는데 갑자기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떼의 군마가 길을 가로 막았다. 앞선 장수를 보니 동오의 장흠이었다.

“운장은 어찌하여 빨리 항복하지 않는가?”

장흠이 창을 쥐고 말 위에 앉아 그렇게 소리쳤다. 관공이 성난 외침으로 맞받았다.

“나는 한의 장수다. 어찌 역적 놈에게 항복하겠느냐?”

그러고는 말을 박차 그대로 장흠을 덮쳤다. 겨우 삼합이나 버텼 을까, 장흠은 곧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 장흠을 쫓 아 관공은 이십여 리를 달렸다. 갑자기 함성이 크게 일며 왼편 산골 짜기에서는 한당이, 오른편 골짜기에서는 주태가 군사를 이끌고 쏟 아져 나왔다. 달아나던 장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되돌아서서 덤비니 관공은 금세 삼면으로 적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

원래가 싸움에 지고 쫓겨온 터라 머릿수가 넉넉하지 못한 데다 여몽의 꾀로 사기까지 떨어진 군사들이라 관공이 혼자서 아무리 뛰 고 날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금세 군사들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걸 본 관공도 하는 수 없이 그들을 물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리 가기도 전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남쪽 산언덕에 연기가 오르고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 머리 위에는 큰 깃발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형주 토박이들은 보라.’

관공의 군사들은 거의가 형주 토박이들이라 절로 걸음이 멈추어 졌다. 그러자 언덕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기 아들이나 형 제의 이름을 불러대며 어서 항복하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역시 여 몽의 꾀였다.

관공은 군사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걸 느끼자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대로 언덕 위로 올라가 모조리 죽여버리려 하는데 다시 어디선가 두 갈래 군마가 쏟아져나왔다.

왼쪽은 정봉이요, 오른쪽은 서성이었다. 거기다가 장흠과 한당, 주 태의 세 갈래 군마마저 뒤쫓아 이르니 관공은 어느새 적진 한가운데 갇히고 말았다.

관공은 성난 호랑이처럼 이리 베고 저리 후리며 적진을 누볐다. 그러나 뒤따르는 장수와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오래잖아 관공 곁 에는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럭저럭 하는 중에 어느새 저물녘이 되었다. 관공이 문득 정신을 차려 사방을 돌아보니 산꼭대기마다 형주 토박이들이 올라서서 형 과 아우를 찾고 자식과 아비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마치 엉머구리 들끓듯 했다. 군사들도 모두 마음이 변해 저마다 자기를 부르는 소 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라, 어디로 가려느냐? 달아나는 자는 목을 베겠다!”

관공이 그렇게 소리쳐 말렸으나 소용 없었다. 어느새 형주 토박이들은 다 빠져나가고 오래된 군사 삼백여 명만 겨우 관공 주위에 남 아 있었다. 관공은 그래도 굽히지 않고 에워싼 적병과 싸움을 계속 했다.

밤도 깊어 삼경 무렵이 되었을 때 문득 동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 었다. 관평과 요화가 길을 나누어 두꺼운 적병의 에움을 뚫고 관공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겨우 관공을 구해낸 관평이 관공에게 권했다. 

“지금 군사들의 마음이 매우 어지럽습니다. 마땅한 성을 얻어 잠 시 들어앉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몸담을 만한 성이 어디 있겠느냐?”

관공이 지친 음성으로 물었다. 관평이 미리 살펴둔 듯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맥성(城)이 있습니다. 작지만 잠시 군사를 쉬게 하면서 구원병을 기다리기에는 넉넉합니다.”

그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건 관공은 맥성으로 갔다. 군사를 나누어 네 성문을 굳게 지키게 한 뒤 장수들을 불러놓고 의논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조루가 일어나 말했다.

“이곳은 상용(庸)과 가까운 땅입니다. 유봉과 맹달이 상용을 지 키고 있으니 되도록 빨리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 구원병을 보내달라 하십시오. 많지 않더라도 그 군마를 보탠 뒤에 서천에서 오는 대병 (兵)을 기다린다면 군사들의 마음은 절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관공도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누구를 어떻게 보낼까를 의논하고 있는데 문득 군사 하나가 달려와 말했다.

“오병들이 벌써 와서 성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거기 다급해진 관공이 여럿을 보고 물었다.

“누가 이 에움을 뚫고 상용으로 가서 구원을 청해보겠느냐?”

“제가 가보겠습니다.”

요화가 선뜻 나서며 소리쳤다. 관평도 그 일은 요화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듯 함께 나서며 말했다.

“내가 장군을 도와 적의 두꺼운 에움을 뚫어보겠소.”

그러자 관공도 더 헤아리고 어쩌고 할 틈이 없는지 그 자리에서 곧 글 한 통을 써서 요화에게 주었다. 요화는 그 글을 몸 깊이 감춘 채 마음을 굳게 먹고 말에 올랐다. 관평도 그런 요화를 따라 말에 올 랐다.

요화가 성문을 뛰쳐나오자 동오의 장수 정봉이 바로 길을 막고 나섰다.

그러나 요화를 뒤따라온 관평이 힘을 다해 정봉을 들이치니 정봉 은 마침내 견뎌내지 못하고 쫓겨 달아났다.

요화는 그 틈을 타 상용으로 빠져나가고 관평은 요화가 빠져나가 자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굳게 지킬 뿐 나오지 않았다.

유봉과 맹달이 상용에 있게 된 것은 그들이 거기서 세운 공 때문 이었다. 원래 한중왕 유비의 명을 받들어 상용을 치러 갔던 그들은 그곳 태수 신탐이 무리를 이끌고 스스로 항복해 온 바람에 피 한 방 울 흘리지 않고 그 땅을 얻었다. 그러나 한중왕은 오히려 그걸 더 큰 공으로 여겨 유봉을 부장군으로 올리고 맹달과 더불어 상용을 지키 게 한 것이었다.

유봉과 맹달도 그 무렵은 관공이 싸움에 져서 고달프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될지를 서로 의논하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관공이 요화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두 사람은 얼른 요화를 불러들이고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관공은 싸움에 져서 맥성에 계시는데 지금 형세가 몹시 위태롭 습니다. 그러나 촉 땅은 길이 멀어 하루아침에 원병이 올 수 없기에 특히 저를 이곳으로 보내 구원을 청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라건대 두 분 장군께서는 어서 빨리 상용의 군사를 일으키시어 우리의 위급 을 구해주십시오. 자칫 머뭇거리시다가는 관공께서 목숨을 잃으시 게 됩니다.”

요화가 그렇게 빌다시피 했다. 듣고 난 유봉이 요화에게 말했다. 

“장군은 잠시 돌아가 쉬시오. 어떻게 계책을 한번 내어보겠소.” 

이에 요화는 역관으로 돌아가 쉬며 유봉과 맹달이 빨리 군사를 일으키기만 기다렸다.

한편 요화를 내보낸 유봉은 곧 맹달과 의논했다.

“작은아버님께서 매우 고단한 처지에 빠지셨다는데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어찌 보면 유비와 부자지간의 의를 맺고 있는 유봉이 관공의 위 급을 듣고도 한가롭게 그런 의논을 시작하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 러나 맹달은 한술 더 떴다.

“동오의 군사들은 날래고 장수들은 용맹스러운 데다 형주 아홉 고을은 벌써 적의 것이 되었습니다. 겨우 맥성이 남았다고는 하나 그야말로 새알만 한 땅에 지나지 않지요. 거기다가 또 조조는 몸소 사오십만 대군을 이끌고 마피까지 와 있다고 합니다. 이 조그만 산 성의 군사로 어떻게 그토록 강한 두 편의 적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가볍게 움직여서는 아니 됩니다.”

맹달이 그렇게 반대하고 나섰다. 유봉도 속마음은 그와 비슷했으 나 아무래도 관공과는 걸린 명분이 있어 그대로 있기는 어려웠다. 흉내라도 내보겠다는 듯 다시 군사를 낼 뜻을 비쳤다.

“나도 그건 알고 있소. 하지만 관공은 내 작은아버님이신데 어찌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작은아버님이라구요?”

맹달이 그렇게 빈정거려 놓고 비웃음 섞어 말했다.

“장군은 관공을 작은아버지로 여기시는지 몰라도 관공이 과연 장 군을 조카로 여기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제가 듣기로 전에 한중왕 께서 장군을 세워 뒤를 잇게 하시려 하자 관공은 기뻐하지 않았다 합니다. 그 뒤 한중왕께서는 왕위에 오르시고 나서도 장군을 세자로 삼으시고자 공명에게 물으신 적이 있지요. 그때 공명이 그건 집안일 이니 관, 장 두 분에게 물으시라고 해서 한중왕께서는 다시 형주로 사람을 보내 관공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관공이 무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장군께서는 양 아들[之, 타성에게서 받아들인 양자] 이니 대위까지 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관공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한중왕께 권하 기를 장군을 멀리 보내 후환을 없이 하라고까지 했다 합니다. 따지고 보면 장군이 이상용 같은 산성에 와 계시게 된 것도 모두 관공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이 같은 일은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데 어찌하여 장군만 모르고 계십니까? 그 대단한 작은아버지를 위 해 뭣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려 하십니까?”

말투로 보아 맹달은 전부터 관공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어왔음 에 틀림없었다. 관공은 젊을 때부터 유비와 함께 지낸 사람이오, 맹 달은 서천을 얻을 때 새로 유비 편에 든 사람이라 어떤 알력이 있을 법도 했다. 그제서야 유봉도 마음이 정해진 것 같았다. 군사를 일으 킬 생각 대신 발뺌할 궁리에 들어갔다.

“그대의 말이 비록 옳다 해도 어떻게 요화의 청을 거절할 수 있 겠소?”

“그야 쉽지요. 이 산성은 이제 겨우 우리 쪽으로 붙어서 백성들의 마음이 아직 온전히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십시오. 그 때문에 군사를 일으킬 겨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이곳을 지키는 것조차 어 렵게 된다고 하시면 넉넉히 구실이 될 것입니다.”

맹달이 또한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그렇게 일러주었다. 유봉도 마 침내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이튿날 요화를 불러들여 말했다. 

“이 산성을 얻은 지가 오래지 않아 아직은 다른 곳을 구해낼 겨를 이 없소. 아무래도 군사를 갈라 맥성으로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소 이다.”

“그리되면 관공께서는 돌아가시고 맙니다! 부디 구해주시오.”

요화가 깜짝 놀라 이마로 땅을 짓찧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맹달이 나서서 유봉을 거들었다.

“우리가 이번에 간다 해도 일은 마찬가지요. 한 잔 물로 어찌 한수레의 장작에 붙은 불을 끌 수 있겠소? 장군은 어서 돌아가서 촉에 서 대군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들은 요화는 크게 울며 그들에게 매달려 구해주기를 청 했다. 몇 마디 더 듣기도 전에 유봉과 맹달은 차갑게 소매를 떨치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제서야 요화는 일이 글러버린 줄 알았다. 한중왕을 찾아가 구해 주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말등에 올랐다. 그러나 아무래도 유봉과 맹달이 괘씸해 한바탕 욕설을 퍼부은 뒤에야 성을 나와 성도로 향해 달렸다.

이때 맥성의 관공은 상용의 군사들이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 리고 있었다. 그러나 요화가 떠난 지 여러 날이 되도록 어리친 개새 끼 한 마리 오지 않았다. 관공이 거느린 군사자 기껏 오륙백 명으 로, 그나마 태반이 다친 몸이었다. 거기다가 성안에는 양식마저 없 어 어려움은 더욱 컸다.

하루를 천년같이 보내고 있는 관공에게 어느 날 문득 군사 하나 가 들어와 알렸다.

“성벽 아래서 한 사람이 활을 쏘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군 후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관공이 그를 불러들여 보니 바로 제갈근이었다. 관공은 썩 마음 내키지 않았으나 제갈공명의 낯을 보아 그를 예로 맞아들이고 차를 대접했다. 찻잔을 비운 제갈근이 조심스레 찾아온 까닭을 밝혔다. 

“나는 오후의 명을 받들어 특히 장군께 권하려고 왔소. 예부터 시무(務)를 아는 이가 참으로 뛰어난 인물이라 했소이다. 이제 장군 이 다스리던 한상의 아홉 고을은 몽땅 남의 손에 넘어가고 남은 것 은 겨우 외로운 이성 하나뿐이오. 거기다가 안으로는 양식이 없고 밖으로는 구원병이 없어 그 위태롭기가 아침저녁을 기약하기 어렵 게 되었소이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오후께 귀순하여 다시 형주를 다스리려 하지 않으시요? 그 길만이 장군도 살고 가솔 들도 보전할 수 있는 길이니 부디 깊이 헤아려 정하시오.”

그러자 관공은 정색을 하고 제갈근을 꾸짖었다.

“나는 한낱 해량(解良) 땅의 무부로서 내 주인으로부터 형제의 대 접을 받으며 군후의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어찌 그 하늘 같 은 의를 저버리고 적국에게 항복하란 말인가? 성이 깨어지면 그대 로 죽을 따름이다. 옥은 부서질지언정 그 흰 빛을 갈려 []하지 않 고 대나무는 불탈지언정 그 곧음을 잃으려 하지 않는다. 내 몸은 비 록 죽더라도 깨끗한 이름은 죽백(竹帛)에 드리워 천년을 살 것이니, 그대는 여러 소리 말고 이만 성을 나가라. 나는 오직 손권과 죽기로 싸울 뿐이다!”

그래도 제갈근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오후께서는 군후와 더불어 옛적 진(秦)과 진(晋)이 그랬듯 화친 을 맺고 함께 조조를 쳐 한실을 되일으키시려 하실 뿐 딴 뜻은 조금 도 없소. 그런데도 군후께서는 어찌 그렇게 어둡고 비뚤어지게만 보 고 계시오?”

그때 관공 곁에 있던 관평이 칼을 빼들고 나와 제갈근을 베려 했 다. 젊은이의 혈기로 더 참지 못하고 그렇게라도 제갈근의 입을 막아버리려는 생각에서였다. 관공이 그런 양아들을 말렸다.

“저 사람의 아우 공명은 촉에서 네 큰아버님을 돕고 있다. 지금 만약 저 사람을 죽이면 그들 형제의 정을 상하는 게 되니 너는 참아라.”

그러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호령했다.

“저 사람을 끌어내 성 밖으로 내쫓아라!”

일이 그쯤 되자 제갈근도 더 말해봐야 소용없음을 알았다. 얼굴 가득 부끄러운 빛을 띠며 말에 올라 성을 나가버렸다.

손권에게로 돌아간 제갈근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공의 마음이 쇠나 돌처럼 굳어 아무래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손권은 성을 내기에 앞서 감탄부터 했다.

“참으로 충신이로구나! 그가 그러하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겠는가?” 

“제가 그 운수를 한번 점쳐보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여범이 문득 그렇게 말하며 점괘를 뽑기 시작했 다. 나온 괘는 지수사(地師, 주역의 한 괘)에 현무(玄武)가 응하고, 으 뜸 되는 적은 멀리 달아난다는 글귀였다.

“으뜸 되는 적은 멀리 달아난다는데 장군은 어떻게 관우를 사로 잡겠소?”

점괘와 풀이를 본 손권이 새삼 걱정이 되는지 여몽을 보고 물었 다. 여몽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멀리 달아난다 해도 아주 우리 손을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인즉, 그렇다면 바로 내가 꾸미고 있는 바와 꼭 맞습니다. 관우가 비록 날 개가 돋아 하늘로 솟는다 해도 내가 쳐둔 그물을 끝내 벗어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게 어떤 계책이오?”

손권이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얼굴로 여몽에게 물었다. 

“제가 보기에 관우는 군사가 적으니 달아난다 해도 반드시 큰길 로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맥성 북쪽에 한 갈래 험한 샛길이 나 있는 데 관우는 틀림없이 그 북쪽 길을 고르겠지요. 먼저 주연에게 날랜 군사 오천을 주어 맥성 북쪽 이십 리에 매복해 있게 하십시오.”

“주연이 과연 관우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손권이 다시 여몽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물었다. 

“아닙니다. 주연은 구태여 관우와 맞서 싸울 것조차 없습니다. 관 우가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뒤만 후려쳐 주면 됩니다. 그러면 적 은 싸울 마음이 없어 틀림없이 임저 쪽으로 달아날 것입니다. 관우 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 임저에서의 일이 될 것입니다. 반장에게 골라 뽑은 군사 오백을 주어 임저 산기슭 샛길에 매복시켜두면 관우 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여몽은 단숨에 그렇게 대답한 뒤 한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지금부터 장수와 군사를 보내 맥성을 공격하되 북문 쪽은 남겨두도록 하십시오. 관우가 그리로 달아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손권이 들어보니 실로 빈틈없는 계책이라 여범에게 다시 그 일의 성패를 점쳐 보게 했다. 여범이 한 번 더 점괘를 뽑아본 뒤 말했다. 

“이번에는 적의 우두머리가 서북쪽으로 달아나기는 해도 오늘 밤 해시(時)에는 반드시 사로잡히리란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손권도 기뻐해 마지않았다. 곧 주연과 반장에게 각기 한 갈래의 군사를 나누어주며 군령에 따라 알맞은 곳에 숨어 있게 했다. 한편 맥성의 관공은 제갈근을 내쫓은 뒤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군마(馬)를 점고해보았다. 모두 합쳐 삼백 명 남짓인데 그나마 군 량이 떨어져 더 버티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성 밖의 오병은 그날 밤 도 큰 소리로 성안의 관공을 따르고 있는 군사들의 이름을 불러대 성벽을 넘어 달아나는 군사가 또한 여럿 되었다. 일은 그 지경인데 기다리는 구원병은 오지 않으니 아무리 관공이라도 뾰족한 수가 없 었다. 왕보를 쳐다보며 탄식 섞어 물었다.

“지난날 공의 말을 듣지 않은 게 진심으로 후회스럽소. 오늘 이같 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으니 앞으로 어찌했으면 좋겠소?”

왕보가 울며 대답했다.

“그저 막막할 뿐입니다. 오늘의 일은 비록 자아(牙, 강태공)가 되살아난다 해도 어찌해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조루가 결연히 말했다.

“상용의 군사가 오지 않는 것은 유봉과 맹달이 군사를 묶어두고 움직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군후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 외로운 성에 머물러 계십니까? 어서 맥성을 버리고 서천으로 달아 나십시오. 그곳에서 군사를 정비해 다시 이 땅을 찾도록 꾀해보십 시오.”

그 말에 관공도 다시 힘이 솟는 듯했다.

“내가 보기에도 이제는 그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게 해보세.”

그 말과 함께 성벽 위로 올라가 사방을 돌아보았다. 네 성문 밖이 모두 동오의 군사들로 덮였는데 그중에 북문 쪽이 다른 데 비해 좀 덜한 듯했다.

“저기 북쪽으로 가면 지세가 어떠냐?”

관공이 맥성 토박이 하나를 찾아오게 해 물었다. 그 토박이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모두가 산기슭의 좁은 길인데 서천으로 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꼭 알맞은 지세였다. 관공이 별 의심 없이 마음을 정했다.

“오늘밤 저 북문으로 나가야겠구나.”

그러자 생각 깊은 왕보가 가만히 말렸다.

“산속 좁은 길에는 적의 매복이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큰길로 나가십시오.”

조금만 헤아려보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말이었으나 거기서 다 시 관공의 자부심이 일을 그르쳤다.

“매복? 설령 쥐새끼 같은 무리가 좀 숨어 있다 한들 두려울 게 무엇인가!”

그렇게 말하고는 데리고 갈 군사들에게 떠날 채비를 시켰다. 이미 관공의 마음을 돌려놓을 길이 없음을 안 왕보가 눈물로 당부했다. 

“가시더라도 부디 마음을 차분히 가지시어 무리하지 마시고 옥체 를 보증하십시오. 저는 군사 백여 명과 남아 죽기로 이 성을 지켜보 겠습니다. 설령 성이 깨뜨려지더라도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니 바 라건대 군후께서는 빨리 돌아와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그 말에 무쇠 같은 관공도 솟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작별을 눈물로 나눈 뒤 관공은 떠날 채비에 들 어갔다. 허수아비에 무기와 옷을 걸쳐 성벽 여기저기 세워두고 사이사이에 몇 안 남은 군사를 배치해 많은 군사가 성을 지키고 있는 것 처럼 위장했다.

“주창은 여기 남아 왕보와 더불어 맥성을 지키도록 하라.”

그날 밤 관공은 그렇게 영을 내리고, 자신은 관평, 조루 및 이백 남짓한 군사들과 더불어 낮에 보아둔 북문으로 치고 나갔다. 청룡도 를 휘둘러 가로막는 적병을 흩고 달리기를 이십 리나 됐을까, 문득 앞산 우묵한 곳에서 북소리 징소리가 울리며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왔다. 앞선 장수는 주연이었다.

“운장은 달아나지 말라! 어서 항복하여 죽음을 면하는 게 어떠냐?”

주연이 창을 낀 채 길을 막으며 소리쳤다. 이름도 모를 졸개로만 보이는 주연이 그렇게 길을 막자 관공은 벌컥 화가 났다. 그대로 말 을 박차며 칼을 휘둘러 주연을 덮쳤다.

관공의 기세에 눌렸는지, 원래 받은 영이 그러한지, 주연은 제대 로 싸워보지도 않고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관공은 이긴 기세를 타고 그대로 주연을 뒤쫓았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문득 한차례 북소리가 나더니 사방에서 복병이 쏟아져 나왔다.

원래 군사가 많지 않던 관공은 새까맣게 쏟아지는 적병을 보자 더 싸울 마음이 없었다. 주연을 버리고 임저로 가는 샛길로 달아나 기 시작했다. 주연이 기다렸다는 듯이나 군사들을 재촉해 그런 관공 을 뒤쫓았다.

밤길을 이리저리 내닫는 중에 관공이 거느린 군사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미처 오리도 가기 전에 다시 앞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며 불길이 일었다. 여몽의 명을 받고 숨어서 기다리던 반장이었다.

반장이 칼을 꼬나들고 기세 좋게 말을 몰아 관공에게 덤볐다. 역 시 이름 모를 장수가 감히 자신에게 덤비는 데 화가 난 관공도 청룡 도를 휘둘러 그를 맞았다.

그러나 반장 또한 삼합을 채우지 않고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속 같아서는 뒤쫓아가 단칼에 쪼개놓고 싶었지만 이미 주연에게 한번 속은 관공이라 반장을 뒤쫓을 마음이 없었다. 길이 열린 것만 도 다행으로 알고 내쳐 산길을 내달았다. 얼마쯤 가다 보니 관평이 뒤따라와 알렸다.

“조루가 난군 중에 죽었습니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관공은 그 소리를 듣자 슬픔을 이길 수 없었 다. 맥성에 남게 된 왕보와 더불어 어려움 중에서도 끝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더 급한 것은 우선 적병이 쳐둔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내가 앞장서서 길을 열겠다. 너는 뒤를 막으라!”

이윽고 가슴속의 슬픔을 억누른 관공이 관평에게 그렇게 소리치 며 말을 박찼다. 어느새 그를 따르는 군사는 겨우 열 명 남짓했다. 한참을 가니 결구라는 곳이었다. 양쪽이 모두 산인데 산기슭에는 억새와 잡목이 빽빽했다. 적이 군사를 숨길 만한 곳이란 생각은 들 었으나 오경이 다 돼 갈 길이 급했다. 날이 밝아 뒤쫓는 적병에게 시 달리는 것보다는 억지로 뚫고 나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관공은 그 대로 말을 몰았다.

달린 지 얼마 안 돼 과연 크게 함성이 일며 양쪽 산기슭에서 복병 이 쏟아져 나왔다. 창칼 대신 갈고리를 매단 긴 장대와 던지는 밧줄 을 들고 있는 것이 관공을 사로잡으려는 뜻 같았다. 관공이 그래도 어떻게든 벗어나보려 했으나 여몽이 쳐둔 그물은 너무도 촘촘했다. 적병들은 먼저 관공이 탄 말을 밧줄로 걸어 넘어뜨리고 뒤이어 말에 서 떨어진 관공에게 덮쳤다.

한스럽게도 관공에게는 멋지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을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말 없이는 자루 긴 청룡도도 아무 쓸모 없었고, 이 미 엉겨붙은 적병들은 칼 뽑을 틈조차 주지 않았다. 개미 떼처럼 달 라붙는 적병들을 맨주먹으로 후리치며 버티다가 끝내는 반장의 부 장마충(忠)이란 자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관평은 관공이 사로잡혔다는 소리를 듣자 급히 달려가 구하려 했 으나 뜻 같지 못했다. 군사들을 이끌고 뒤쫓던 주연과 반장이 어느 새 등 뒤에 이르러 관평을 에워싸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관평은 기 죽지 않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다가 끝내는 또한 사로잡히고 말았다.

날이 훤히 밝았을 때는 관공 부자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이 손권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손권은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문무 관원들을 자 기 장막에 불러 모아놓고 관공이 끌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래잖아 마충이 졸개들과 함께 에워싸듯 관공을 끌고 손권 앞에 나타났다. 지난날 관공으로부터 당한 여러 차례의 수모를 생각하면 그가 밉살스럽지 않을 까닭이 없었으나 손권은 짐짓 목소리를 부드 럽게 하여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장군의 덕을 사모하여 옛적 진(秦)과 진(晋)이 그 러했듯 서로 화친하려 했는데 장군은 무슨 까닭으로 마다하셨소? 장군은 또 지난날 스스로 천하에 맞설 사람이 없다고 여기신다 했는 데 오늘은 어찌하여 이 몸에게 사로잡힌 바 되셨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이 손권에게로 돌아와 일해볼 생각은 없으시오?” 

미움보다는 인물에 대한 욕심을 앞세우는 게 과연 천하의 셋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주군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짓밟힌 자부 심 때문에 속이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는 관공에게는 그게 꼭 야유 처럼 들렸다. 관공이 문득 수염을 부르르 떨며 소리 높이 꾸짖었다. 

“닥쳐라! 이 눈알 푸른 어린 놈, 수염 붉은 쥐새끼야. 나와 유황숙 은 일찍이 복사꽃 핀 동산에서 의를 맺고 한실을 되일으키려 맹세했 다. 어찌 너같이 한을 저버린 역적 놈과 한 패거리가 될 수 있겠느 냐? 나는 이제 잘못하여 네놈들의 간사한 꾀에 빠졌으니 다만 죽음 이 있을 뿐이다. 여러 소리 할 게 무에 있느냐?”

그래도 손권은 그런 관공을 탓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체 제 사람들 쪽을 돌아보며 슬며시 물었다.

“운장은 세상이 다 아는 호걸로 나는 그를 매우 아껴왔소. 이번에 두터운 예로 대접해 그에게 항복을 권해보고 싶은데 그대들의 뜻은 어떠시오?”

그러자 주부 좌함이 일어나 말했다.

“아니 됩니다. 지난날 조조가 저 사람을 얻었을 때 조조는 저사람을 후(侯)에 봉하고 사흘에 작은 잔치, 닷새에는 큰 잔치를 열어 그 마음을 사려 했습니다.

말에 오르면 금을 걸어주고 말에서 내리면 은을 걸어줄 만큼 은 혜를 베풀고 예를 다했으나 끝내는 저 사람을 붙들어둘 수 없었지 오. 오히려 관을 지키는 장수를 여럿 죽이고 떠났을 뿐만 아니라 이 즈음에 이르러서는 도읍을 옮겨서라도 저 사람의 칼끝을 피하려 했 을 만큼 조조를 몰아댔던 것입니다.

주공께서 이왕에 저 사람을 사로잡으셨으니 어서 죽여 뒷날의 걱 정거리나 없애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저 사람 때문에 조조 같은 어려움에 빠지게 되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손권도 갑자기 떨떠름해졌다. 한동안을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다. 운장 부자를 끌어내 목 베어라.”

이에 관공과 관평은 모두 끌려나가 목숨을 잃으니 때는 건안 이 십사년 시월이요, 그때 관공의 나이는 쉰여덟이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그를 노래했다.

한말의 인재들 짝할 시대 없는데 漢末才無敵

그중에서도 운장이 홀로 뛰어났구나 雲長獨出群

신 같은 위엄 무를 떨쳤고 神威能舊武

선비 같은 고아함 글도 알았다 天日心如鏡

하늘의 해 같은 마음 맑기 거울이었고

춘추로 다진 의기 불의의 구름을 걷어냈네 春秋義薄雲

밝구나, 만고에 드리운 그 이름이여 昭然垂萬古

삼분천하 때에만 그치지 않네 不止冠三分

달리는 또 이런 시가 있다.

인걸 좇아 옛 해량 땅에 이르니 人傑惟追古解良

사람들이 다투어 운장에게 절하네. 士民爭拜漢雲長

도원의 하루로 형제 된 이들 桃園一日兄和帝

이제는 천자와 왕으로 천년을 제사받고 있구나 俎豆千秋帝與王

기개는 바람과 우레를 낀 듯 당할 이 없고 氣挾風雷無匹敵

뜻은 해와 달처럼 빛을 뿜네 志垂日月有光芒

모시는 사당 지금도 천하에 널렸건만 至今廟貌盈天下

고목의 겨울 갈가마귀 지는 해에 비끼기 몇몇 해더냐 古木寒鴉幾夕陽

옛사람의 감회가 그러하나 이젯사람으로서의 평(評)도 없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세 번이나 책을 던졌다가 다시 집어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바로 관공이 죽었을 때요, 두 번 째는 유현덕이 죽었을 때이며, 마지막은 제갈공명이 죽었을 때라고 한다. 적어도 『연의에서는 그들의 비중이 그만큼 컸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은연중에 우리 몸에 밴 실증사학(實證史學)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작가의 주관으로 재구성된 『연의』라 할지라도 유비를 중심으로 한 집단의 가치 독점이 지나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알려지기로 유비를 중심한 집단은 그 전성기에조차도 영토, 국부(國 富), 민수(數)에 있어서 대략 위의 사분의 일, 오의 절반 남짓했다 고 한다.

거기다가 유비가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경제(景帝)는 한의 황제 중 에서 아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이 가운데 하나여서 핏줄에서 정통성 을 얻어내려는 야심가들이 끼어들기 좋은 족보에 속했고, 유비가 지 향한 것도 변혁을 요구하는 시대에 부응이 아니라 낡은 세계의 유 지 또는 보강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서 정사를 쓴 진수 같은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연의』나 평화 (評話)를 쓰는 이들까지도 조조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가고 싶은 유혹에 종종 빠져들었다. 특히 그런 현상은 근세에 가까워질수록 심 해져 예컨대 중국의 곽말약郭沫若같은 이는 조조를 민중적인 혁 명아로 내세운 반면, 유비를 보수반동 집단의 우두머리로 깎아내리 기까지 했고, 가깝게는 연전 일본의 작가 진순신(陳舜臣)도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아 『연의』를 구성한 적이 있다.

이 평역삼국지도 처음 구상될 때는 거의 그러했다. 그러나 자료 수집차 대만에 가서 얼마 머무는 동안 그런 첫 번째 구상은 중 대한 수정을 받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까닭이 있으나, 그중에서 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만의 이름난 소장(少) 학자이자 문학평 론가이기도 한 우훙이(吳弘) 교수의 충고였다.

“조조를 어느 정도 복권시키는 데는 반대 않지만 촉한정통론(蜀漢 正統論)과 관공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걸 건드리면 그 작품은 『연의 삼국지』 아닌 다른 어떤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의 충고가 절대적일 수는 없지만 거기에는 흘려들을 수 없는 데가 있었다.

조조의 복권 문제나 촉한정통론은 다음으로 미뤄두고 우선 여기 서는 관공의 얘기만 하기로 하자. 상당히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중 국인도 관공을 말할 때는 우리처럼 관우나 관운장이라고 부르지 않 고 꼭 관공이라고 높여 부르고 있다. 또 관공은 뒷날로 갈수록 높여 져 관왕(關王)에서 관성대제(關聖大帝)로, 그리고 마침내는 신으로까 지 널리 추앙받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 들로부터 우러름을 받게 하였을까.

관공의 출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적어도 그리 대단하지 못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는 해량 땅의 한낱 무부로서 젊어서 사람을 죽이고 탁현으로 피해 와 살았다는 게 남겨진 기록의 전부인데, 어떤 이는 이런 추측을 하기도 한다.

곧 해량 땅은 이름난 소금 산지로 그 소금 밀매꾼(소금은 국가의 전 매품이었다)들의 뒤를 봐주다가 죄를 짓게 되어 멀리 탁현으로 달아 났던 것이라고.

종종 관공은 학문의 사람처럼 그려지고, 그것이 무인인 그의 위엄 에 빛을 더해주고 있으나 그 또한 대단한 것은 못 되었다.

당시의 흔한 무장들보다는 좀 나았다는 정도로 『춘추』와 얼마간 의 병가서를 읽었을 뿐이었다. 다만 『춘추』는 깊이 공부해 줄줄 욀 정도였으며 지금도 그의 초상을 보면 대개 책을 잡고 있는데 그 책 은 바로 춘추라고 한다.

그의 절묘한 무예와 전략도 많은 부분은 뒷사람들의 윤색이라고 한다. 안량과 문추를 죽여 그의 무예는 거의 신비한 경지까지 끌어 올려졌으나, 안량과 문추를 죽인 것은 손견이라고 밝히고 있는 기록 도 있고, 또 『연의』 속에서도 여포, 방덕, 서황 등과의 싸움을 종합해 보면 의심이 가는 데가 많다. 또 전략에 있어서도 그가 무성(武聖)으 로 기림받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번성 공략 작전에서 드러내는 무리만으로도 병가로서의 재능을 의심받기에 넉넉하다.

관공의 덕망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알려진 것만큼 대단한 것 같지 는 않다. 미방과 부사인의 배반, 맹달과 유봉의 외면 같은 사건만으 로도 그의 인간관계가 그리 원활하지 못했음은 잘 알 수 있다. 더구 나 그의 최후를 결정적으로 앞당긴 것은 바로 거느리고 있던 장졸들 의 이탈이었다. 모두가 여몽의 교묘한 심리전 탓이라고는 하지만, 심리전이라는 게 원래가 덕장을 중심으로 뭉쳐진 군사들에게는 통 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그렇다면 관공 시대를 뛰어넘어가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결국 그의 삶이 보여준 어떤 이념미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어떤 것인지를 추적하기 위해 진수의 평부터 음미해보자. 진수는 관공의 열전 뒤에 이런 짤막한 평을 덧붙여놓고 있다.

‘관우는 장비와 더불어) 만인을 대적할 만하다고 일컬어졌으며 세 상에서는 범 같은 신하[虎臣]로 알려졌다. 관우는 조공의 은덕에 보 답하여 (의로 엄안을 놓아준 장비와 더불어 국사(國)의 풍도를 보여주 었다. 그러나 관우는 성정이 너무 거세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이 여기는 데가 있었다.’

인간의 훼예포폄(毁譽褒貶)은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진수는 짧은 평 속에서나마 관공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질을 모 두 집어내고 있다. 곧 조조에 대한 보은으로는 그의 일생을 지배한 의기를, 그리고 성격을 통해서는 또한 일생의 짐이 된 자부심을 말 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연의』에서 관공에게 쏟아진 지은이의 노 력과 열정은 거의 모두가 바로 그 두 가지를 하나의 대중적인 이념 미로 형상화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널리 인정되고 있는 대로 관공을 일생 동안 이끈 의기의 원천은 『춘추』였다. 공자의 의 개념이 투영된 그 역사책은 죄를 짓고 숨어 다니는 한 젊은 무부를 매혹시킴으로써 이윽고는 중국 민중의 가슴 속에까지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이념미의 한 원형을 제공한 셈이 었다. 사실 관우의 삶을 살피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오관참장(五關斬 將)처럼 의와 연관을 맺는 부분이다.

때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충성의 형태로, 때에 따라서는 협객 사회 의 의리로, 그리고 더러는 신용 있는 채무 관계나 분명한 은원으로 나 타나는 관공의 의는 본질적으로 소박한 보수주의에 뿌리하고 있다. 더 큰 정의에서 보면 후한의 사회는 부패와 타락으로 이미 충성 의 근거를 상실했지만 전부터 충성해왔으니 충성을 계속 바쳐야 했 다. 그 선악을 불문하고 조조에게서는 받은 게 있으니 갚았고, 유비 는 먼저 주인을 삼았으니 끝까지 주인일 수밖에 없었다.

관공에게는 변혁의 필요성이나 민중의 개념은 거의 고려 밖이었 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변혁을 갈망하고 기대 심리에 빠져 있는 그 민중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민중의 움직임에 민감했고 어느 정도는 혁명 의식에 유사한 정신 과 실천력까지 보인 조조가 갈수록 격하되어, 명대(明代)의 어떤 경 극 배우는 조조 역(役)을 하다가 성난 관중에게 맞아 죽었을 정도가 된 것과 더불어 뒷사람에게 묘한 전도감(顚倒感)을 느끼게 하는 현 상이다.

한 할 일 없는 문사의 터무니없는 추측일는지 모르긴 하되, 혹 그 것은 역사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중국 민중들의 본능 속에 거듭 쌓 여온 변혁에 대한 불신과 경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다 거창하고 본질적인 의를 내세우고, 달콤한 실리로 그들을 앞뒤 없이 꾀어댔던 그 수많은 역사의 새 아침들이 기껏 나라의 이름과 제실의 성씨가 바뀐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때의 실망과 분노가 핏줄을 따라 대대로 전해진 게 아니었을까.

진수는 관공을 폄하는 뜻으로 그걸 집어냈지만 관공의 끝 모르는 자부심도 관공의 삶과 인격에 민중적인 매력을 더해주었음에 분명 하다. 벌거숭이 힘의 지배를 받는 난세일수록 자부심 같은 고급한 정신의 사치는 지켜내기 어렵다. 그때그때 강자를 만날 때마다 허리 를 굽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민중들에게는 관공의 그 터무니없는 자 부심이 차라리 시원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니, 조조와 손권 같 은 인물들에게까지 “쥐새끼 같은 무리들![輩]”이라고 서슴없이 내 뱉는 관공의 그 끝 모를 자부심은 그대로 아름다움이요 신비이기까 지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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