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9권 – 14화 : 다시 쓰이게 된 사마의의 매운 첫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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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9권 – 14화 : 다시 쓰이게 된 사마의의 매운 첫솜씨


다시 쓰이게 된 사마의의 매운 첫솜씨

장포가 이끄는 촉병은 조진과 곽회가 이끈 위병을 에워싸고 한바 탕 신나게 짓두들겼다. 못난 장수를 만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놀란 혼이 된 위병만도 그 수를 헬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조진과 곽회는 죽기로 길을 열어 달아났으나 뒤따르는 군사는 얼 마 되지 않았다. 패군을 수습해 어찌해본다는 생각을 해볼 틈도 없 이 쫓기니 촉병은 이긴 기세로 그 뒤를 쫓아 위수(渭水)까지 이르 렀다.

거기에는 든든한 위병의 진채가 있고 군사도 약간 남아 있었지만, 본대가 정신 없이 쫓기니 그들만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들 또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채를 촉병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조진과 곽회는 수십 리나 쫓겨가서야 겨우 패군을 수습할 수 있었다. 진채는 적에게 뺏기고 군사는 절반이 꺾여 있었다. 거기다가 아끼던 조준과 주찬마저 잃고 나니 조진의 마음은 괴롭고 슬펐다. 다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만 조정에 그 소식을 알리며 대군 을 보내 구해주기만을 빌었다.

조진이 보낸 사람이 낙양에 이르렀을 즈음 위주 조예는 신하들과 조회를 하고 있었다. 근신 하나가 조예 앞에 나와 아뢰었다.

“대도독 조진은 여러 차례 촉에 패해 두 선봉과 많은 군사를 잃었 다 합니다. 또 폐하의 부름을 받고 나왔던 강병들도 제갈량에게 꺾 이어 수없는 군사만 잃고 물러나 지금 서쪽의 형세는 위태롭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조진이 표문을 올려 구해주기를 빌고 있으니 폐하께 서는 먼저 그 일을 처결해주옵소서.”

그 말에 조예는 깜짝 놀랐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모여 있는 신하 들에게 급히 물었다.

“경들도 방금의 놀라운 말을 들었을 것이오. 이제 어떻게 하면 촉을 물리칠 수 있겠소?”

화흠이 나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폐하께서 몸소 납시어야 할 듯싶습니다. 크게 제후들을 불러 모으고 사람마다 그 힘을 다하게 하여야만 강성한 도 적들을 물리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안 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또 장안이 떨어지면 관중 지방까지 위태롭게 됩니다.”

그러나 태부 종요(鍾繇)는 화흠과 뜻이 달랐다. 그렇게까지 요란 을 떨 것은 없다는 듯 말했다.

“무릇 장수된 자는 남보다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능히 남 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손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 워도 위태롭지 않다 했습니다. 그런데 신이 보기에 이번 촉과의 싸 움에서는 그 장수에 모자람이 있었던 듯싶습니다. 조진이 비록 오래 군사를 부려왔다 하나 제갈량의 맞수로는 어렵습니다. 이제 신이 새 로이 온 집안을 걸고 폐하께 한 장수감을 천거해 올리겠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넉넉히 촉병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폐하의 뜻에 맞을지 안 맞을지 걱정됩니다.”

“경은 조정의 원로 대신이오. 그런 훌륭한 인재가 누구요? 그가 촉 병을 물리칠 수 있다면 어서 그를 불러들여 짐의 근심을 덜어주시오.” 

조예가 반가운 얼굴로 종요를 재촉했다. 종요가 조심스레 그 말을 받았다.

“지난날 제갈량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국경을 침범하러 했을 때 도 이 사람이 두려워 머뭇거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헛소문을 퍼뜨려 폐하로 하여금 이 사람을 의심케 하고, 마침내는 조정에서 내쫓게 한 뒤에야 크게 군사를 몰아 밀고 든 것입니다. 이제 만약 이 사람을 다시 쓴다면 제갈량은 절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게 누구요?”

조예는 대강 짐작이 가면서도 짐짓 물었다.

“표기대장군 사마의 그 사람입니다.”

뜸을 들일 만큼 들인 종요가 그렇게 밝혔다. 조예가 탄식하듯 말했다.

“그 일은 짐도 역시 후회하고 있소. 아무래도 짐이 너무 가볍게 그를 내친 것 같소. 그래 지금 중달(仲)은 어디 있소?”

“듣자니 요사이 중달은 완성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다 합니다.” 조예가 다시 사마의를 쓸 뜻을 비치자 종요가 얼른 그가 있는 곳을 댔다.

위주 조예는 곧 사마의에게 조서를 내리고 절(節)을 가진 사신에 게 들려보냈다. 사마의에게 벼슬을 되돌려줌과 아울러 평서도독(平 西都督)을 더하고, 남양 여러 고을의 군사를 모두 내어주며 장안으로 가게 한 것이었다.

“짐도 친히 나가 역적을 칠 것이니 사마중달은 오늘로 길을 떠나 그곳에서 짐과 만날 수 있게 하라.”

그 같은 당부까지 받은 사신은 밤길을 달려 사마의가 있는 완성으로 갔다.

한편 공명은 군사를 이끌고 촉을 나온 이래 여러 번 싸워 싸울 때 마다 이기고 나니 마음이 자못 기뻤다. 그 기세로 밀고 나가려고 기 산의 진채에 여러 장수를 불러모아 의논을 시작했다. 그때 홀연 사 람이 들어와 알렸다.

“영안궁)을 지키는 이엄이 그 아들 이풍豊)을 보내 승상을 뵙고자 합니다.”

공명은 동오가 국경을 침범해 온 줄 알고 깜짝 놀라 이풍을 불러들였다.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자기 왔는가?”

공명이 급히 묻자 이풍이 뜻밖에도 밝은 얼굴로 대꾸했다.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특히 달려왔습니다.”

“기쁜 소식이라니 무슨 기쁜 소식인가?”

공명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그러자 이풍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난날 맹달이 위에 항복한 것은 형편이 어쩔 수 없이 그 리 된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관공의 죽음에 진노해 계시고, 또 유봉 은 제 발뺌을 하려고 군사를 들어 핍박하니 실로 위밖에는 갈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조비는 맹달의 재주를 사랑하여, 좋은 말과 금은 보석을 내렸으며 같은 가마를 타고 나들이를 할 정도로 대접이 융숭했습니다. 벼슬은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영領) 신성 태수를 내 렸고, 땅은 상용과 금성을 지키게 내어주어 위의 서남쪽을 온통 그 에게 맡겼지요.

그런데 조비가 죽고 조예가 그 뒤를 잇고 나서부터는 대접이 달 라졌습니다. 위의 조정에 맹달을 시기하고 헐뜯는 무리가 많은 까닭 이었습니다. 이에 맹달은 밤낮 불안에 차서 믿는 장수들을 모아놓고 ‘나는 원래 촉의 사람이다. 그때 형편이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았다’라 고 말하곤 했다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 심복을 시켜 저희 아버님께 글을 보내왔습니다. 자신을 대신해서 승상께 되돌아갈 뜻을 말씀드 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맹달은 말하기를 전에 승상께서 다섯 갈래 인마를 이끄시고 서천으로 내려가셨을 때도 이런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신 성에 있으면서 이제 승상께서 위를 치러 오셨다는 말을 듣자 더욱 뜻을 굳혔다는 것입니다. 금성, 신성, 상용 세 곳의 인마를 일으켜 지 름길로 낙양을 뺏을 것이니 승상께서는 어서 장안을 빼앗으라 했습 니다. 그리되면 두 서울을 울러 빼 크게 기세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온 것은 이 말씀을 드림과 아울러 맹달이 여러 차례 보낸글들을 승상께 바치기 위함입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몹시 기뻐했다. 맹달이 돌아선 게 마치 이풍 의 공인 양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으란 법은 없는지 위에 풀어놓았던 세작 하 나가 급하게 달려와 알렸다.

“위주 조예는 스스로 장안으로 가는 한편, 사마의를 복직시켜 평 서도독을 더하고 거느린 군사와 함께 장안으로 달려오라 일렀습니 다. 사마의와 함께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나와 우리에게 맞설 작전 인 듯싶습니다.”

공명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잠시 넋을 놓 고 있는데 참군 마속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조예 따위야 말할 나위나 있습니까? 만약 장안으로 온다면 사로 잡기가 수월해질 뿐입니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어인 까닭으로 그토 록 놀라십니까?”

그러자 공명이 어두운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내가 어찌 조예를 두려워 이러겠느냐? 걱정하는 것은 다만 사마 의 한 사람이다. 이제 맹달이 모처럼 큰일을 하려 하나 사마의를 만 나면 반드시 낭패를 보고 말 것이다. 맹달은 사마의의 적수가 못 되 니 틀림없이 사로잡힐 것이고, 그래서 맹달이 죽으면 중원을 뺏기는 쉽지가 않다.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그거야 맹달에게 어서 글을 보내 사마의를 막게 하면 되지 않습 니까.”

마속은 그래도 걱정할 게 없다는 듯 공명에게 말했다. 공명도우

선은 그 수밖에 없어 마속의 말을 따랐다. 급히 글 한 통을 써서 그 날 밤으로 맹달에게 띄웠다.

그때 맹달은 신성에서 자신이 촉에 보낸 심복이 돌아오기만을 눈 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공명에게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이엄을 통해 말을 띄울 때부터 결과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얼마 안 돼 돌아온 심복은 바로 공명의 편지를 내밀었다. 맹달이 열 어 보니 그 사연은 대략 이러했다.


‘공의 글을 읽어보니 공의 충의로운 마음을 알겠소. 옛벗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겠다니 더욱 기쁘다. 만약 이번의 큰일이 제대로 풀린다면 공은 한조(朝)를 다시 일으키는 데 으뜸가는 공신이 될 것이오. 그러나 일은 매우 삼가고 남 모르게 해나갈 것이며 가볍게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아니 될 것 같소. 부디 신중하게 움직이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시오.

요사이 듣자니 조예는 다시 사마의를 불러들여 낙양과 완성의 군 사를 모두 맡겼다 하오. 만약 공이 일을 일으키려 함을 알게 되면 반 드시 그리로 먼저 달려갈 것이오. 모든 일에 어긋남이 없게 채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며 결코 사마의를 등한히 보지 않도록 하시오.’


실로 중요하고도 급한 충고였으나 받아들이는 맹달은 그렇지가 못했다. 글을 다 읽자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공명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더니 정말로 그렇구나. 이제 이 글을 읽어보니 그게 거짓이 아님을 알겠다.”

그러고는 얼른 답장을 써서 공명에게 보냈다. 맹달이 심복을 보내 글을 보내왔다는 말을 듣자 공명은 그를 장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가 바친 맹달의 글은 대략 이랬다.


‘승상의 가르침을 받고서 어찌 조금이라도 게을리함이 있을 수 있 겠습니까만 말씀하신 사마의의 일은 별로 걱정할 게 없을 듯싶습니 다. 완성은 낙양에서 팔백 리나 떨어져 있고, 이곳 신성까지는 천이 백 리나 됩니다. 설령 사마의가 제 일을 안다 쳐도 반드시 위주에게 표문을 올려야 할 것이니 그 왕복에만도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맹달의 성은 높고 든든하며 거느린 장수와 군사들은 모두 이 땅의 지리에 밝습니다. 사마의가 바로 달려온다 해도 두려 워할 게 무엇 있겠습니까? 승상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제가 이겼 다는 소식이나 기다려주십시오’


실로 자신만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읽기를 마친 공명은 편지를 땅에 내던지고 발을 구르며 탄식했다.

“맹달은 반드시 사마의의 손에 죽고 말겠구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곁에 있던 마속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공명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까닭을 밝혔다.

“병법에 이르기를 그 방비 없는 곳을 치고, 뜻하지 않는 곳으로 나아간다[備 出其不意]라 했다. 어찌 한 달이란 기간이 있을 것이라 믿는가? 조예는 이미 사마의에게 적을 만나면 즉시 쳐 없애란 명을 내렸거늘, 새삼 사마의가 묻고 자시고 할 게 무엇 있겠는가? 만약 사마의가 맹달이 모반하려 함을 안다면 결코 열흘을 넘기지 않 고 먼저 그에게로 들이닥칠 것이다. 한 달을 믿고 마음 놓고 있는 맹 달에게 어찌 손쓸 틈이나 있겠는가!”

그 말을 듣자 마속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다시 맹달에게 일러주어야겠다.”

공명은 그렇게 말하고 급히 맹달이 보낸 사람에게 글을 주어 되 돌려보냈다.

‘공은 사마의를 너무도 작게 보는 것 같소. 만약 아직 일을 시작하 지 않았거든 모든 걸 깊이 마음속에 감추어두시오. 함께 일할 사람 이라도 결코 이 일을 알게 해서는 아니 되오. 누구든 공 이외의 사람 이 알게 되면 공은 틀림없이 낭패를 보고야 말 것이오!’

그 같은 공명의 글을 받은 맹달의 심복은 그날로 되돌아서서 신 성으로 달려갔다.

한편 공명의 계략으로 벼슬길에서 쫓겨난 사마의는 완성에서 마 음에도 없이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잖아 촉병 이 국경을 넘어 쳐들어오고, 이어 위가 잇따라 촉에게 패했다는 소 문이 들렸다. 모두가 한결같이 분하고도 안타까운 소식이었으나 벼슬길에서 쫓겨난 몸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길게 탄식만 쏟을 뿐이었다.

그런 사마의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다. 맏이는 사마사(司馬師)라 하 며 자는 자원(元)이었고, 둘째는 사마소(司馬昭)라 하며 자는 자상 (子尙)이었다. 두 사람 모두 뜻이 크고 병서에 밝았다. 하루는 아비 곁에 시립해 섰다가 아비가 길게 탄식하는 걸 듣고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어인 까닭으로 그토록 탄식하십니까?”

“너희들이 어찌 천하의 큰일을 알겠느냐?”

사마의가 둘을 떠보듯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큰아들 사마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위주가 아버님을 써주지 않는 걸 탄식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둘째 사마소는 달랐다. 빙긋 웃으며 사마의를 대신해 형의 말을 받았다.

“그거라면 걱정할 게 없을 듯싶습니다. 오래잖아 아버님께 천자의 부르심이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 미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사람이 달려와 천자의 절을 지닌 사신이 이르렀음을 알렸다.

사마의는 구르듯 달려 나가 사신을 맞아들였다. 사신은 위주의 조 서를 읽고 그 당부를 전했다. 듣고 난 사마의는 곧 완성에 있는 모든 군마를 긁어모았다. 그때 다시 급한 전갈이 들어왔다.

“금성 태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중요한 기밀을 알리겠다며 뵙기를 청합니다.”

사마의는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얼른 그를 불러들이게 했다. 

“그래 기밀이란 무엇이냐?”

사마의가 그렇게 묻자 그 사람은 맹달이 모반하려 한다는 걸 자 세히 일러바쳤다. 뿐만이 아니었다. 맹달의 심복인 이보(李輔)와 생 질인 등현(賢)도 맹달의 죄상을 알리는 글을 보내왔다.

듣기를 마친 사마의는 손으로 이마를 치며 기뻐했다.

“이것은 우리 황상(皇上)의 큰 복이시다. 제갈량의 군사가 기산에 이르러 안팎의 모든 사람이 모두 겁을 먹고 있고 천자께서는 하는 수 없이 몸소 장안으로 납시었다. 만약 오늘 나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찌 될 뻔하였느냐? 맹달이 한번 움직이면 장안과 낙양이 모두 결 딴날 뻔했다. 이 역적 놈은 틀림없이 제갈량과 연결되어 이 일을 꾸 몄을 것이다. 나는 이 역적 놈을 먼저 때려잡아 제갈량의 간담을 서 늘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리되면 절로 군사를 물리고 말 것이다.” 

곁에 있던 맏이 사마사가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어서 빨리 천자께 표문을 올려 이 일을 알리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사마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폐하께 알려 성지(聖旨)를 받들자면 글이 오가는 데만도 한달은 걸릴 것이다. 그럴 틈이 없다.”

그러고는 그날로 인마를 출발시켰다.

“걸음을 빨리 하여 이틀 갈 길을 하루에 갈 수 있도록 하라. 뒤처지는 자는 목을 베리라!”

그런 추상같은 호령과 함께였다.

사마의의 매서운 솜씨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질풍같이 대군을 몰아대는 한편 맹달을 속여 마음 놓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일 을 맡기 위해 뽑힌 것은 참군 양기(梁)였다.

“너는 밤낮을 가리지 말고 신성으로 달려가 맹달에게 나와 함께 싸우러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라고 일러라. 그래야만 그는 의심 않 고 있을 것이다.”

사마의는 그렇게 이른 다음 양기를 먼저 보냈다.

양기를 뒤따르듯 사마의가 대군을 휘몰아 산성으로 달려가기 시 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한군데 산굽이를 도는데 한 떼의 인 마가 달려 나왔다. 우장군 서황이 이끄는 군사였다.

서황이 말에서 내려 사마의에게 예를 표한 다음 물었다.

“천자의 어가가 장안에 이르러 몸소 촉병을 치려 하시는 이때에 도독은 장안으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 맹달이 모반하려 하고 있어 먼저 그를 잡으러 가는 길이오.” 

사마의가 서황에게 나직이 말했다. 서황도 한평생을 싸움터에서 늙은 사람이라 사마의의 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잠깐 일었던 의심을 거두고 맹달을 잡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선봉은 제가 맡겠습니다.”

사마의도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서황에게 전부를 맡 기고 자신은 중군에 자리 잡는 한편 두 아들은 뒤를 맡게 했다. 다시 이틀을 갔을 때였다. 이번에는 앞서 살피러 나갔던 군사들이 수상쩍은 인물 하나를 잡아왔다. 바로 공명에게 심부름을 갔던 맹달 의 심복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수없게 붙들린 것이었다. 군사들이 그의 몸을 뒤지니 공명이 맹달에게 보낸 답장이 나왔다.

군사들이 그를 끌고 오자 사마의가 말했다.

“너를 살려줄 테니 그동안의 일을 아는 대로 말하라.”

이에 맹달의 심복은 공명과 맹달 사이를 오가며 보고 들은 걸 하 나하나 털어놓았다. 그제서야 사마의는 다시 공명이 맹달에게 보낸 편지를 뜯어보았다.

“세상에서 뛰어났다는 사람들이 보는 것은 모두 똑같구나! 내가 선수를 칠 걸 공명이 이미 알아차렸으나, 우리 폐하께서 복이 있어 맹달에게 가야 할 편지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맹달은 아 무 짓도 못할 것이다!”

읽기를 마친 사마의가 한편 놀라면서도 한편 다행이라는 듯 그렇 게 소리쳤다. 그리고 인마를 더욱 재촉하여 밤낮없이 달려갔다.

한편 신성의 맹달은 금성 태수 신의(申儀)와 상용 태수신탐(申) 에게 같은 날 거사하기로 약조하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촉에서 달아날 때 함께 데리고 온 사람들이라 깊이 믿고 있었지만 그것도 잘못이었다. 신의와 신탐은 겉으로만 따르는 체했을 뿐 안으로는 매 일 군마를 조련하며 위의 대군이 이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안에서 호응해 거꾸로 맹달을 때려 잡을 속셈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맹달은 연일 사람을 보내어서 군사를 내자고 재촉했다.

“아직 싸움에 쓸 병기며 군량과 마초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습 니다. 군사를 낼 날짜를 정할 만한 처지가 못 됩니다. 조금만 더 기 다려주십시오.”

신의와 신탐은 그렇게 핑계를 대 날짜를 끌었으나 맹달은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맹달이 금성과 상용 두 곳 군마가 채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참군 양기가 왔습니다. 사마의가 보낸 듯합니다.”

그 말에 맹달은 얼른 양기를 성안으로 맞아들였다. 시치미를 떼고 는 있어도 사마의가 보냈다는 게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양기 는 그런 맹달의 마음을 한마디로 풀어주었다.

“사마도께서는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여러 갈래 군마를 이끌고 촉병을 물리치러 나서시었습니다. 태수께서도 거느리신 군마를 모 두 모으시어 필요할 때는 그리로 보내실 수 있도록 채비해두십시오.” 

양기가 그렇게 말하자 맹달은 공연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환하게 펴진 얼굴로 슬몃 물었다.

“도독께서는 언제 군사를 내신다 하던가?”

“지금쯤은 아마도 완성을 떠나 장안으로 달려가고 계실 것입니다.” 

과연 사마의가 재빠르기는 했으나 장안으로 갔다면 일은 모두 자 신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는 셈이었다. 맹달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제 내 대사는 이루어지겠구나!’

그러고는 풍성한 술자리를 마련해 양기를 대접했다.

양기를 성 밖으로 내보낸 뒤 맹달은 곧 신탐과 신의에게 사람을 보내 전하게 했다.

“내일 거사하도록 합시다. 모두 기치를 대한(漢)으로 바꾸고 길을 나누어 낙양을 치는 것이오.”

그런 전갈을 보낼 때만 해도 맹달은 벌써 낙양을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였다.

“성 밖에서 티끌이 자옥이 일며 적잖은 인마가 몰려오고 있습니 다. 그러나 어디서 온 군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그런 급한 전갈이 맹달을 놀라게 했다. 날짜를 내일로 잡 아두었으니 신의와 신탐의 군사일 리는 없었다.

맹달은 불안한 마음으로 성벽 위에 올라가 다가오는 군사들을 살 펴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이 앞세우고 있는 큰 깃발에는 ‘우장군 서 황’이란 글씨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걸 본 맹달은 깜짝 놀랐다. 얼른 적교를 올리게 하고 서황이 하 는 양을 살폈다. 서황은 말에 탄 채 성 밖 참호 곁에 이르러 성벽을 올려보며 크게 소리쳤다.

“역적 맹달은 어서 빨리 항복하라!”

그제서야 맹달은 일이 크게 그릇된 걸 알았다. 일찍이 공명이 일 러준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걸 후회하며 싸움을 서둘렀다. 

“뭣들 하는가? 활을 쏘아라!”

맹달이 그렇게 소리치자 성벽 위의 군사들이 일제히 서황에게 화 살을 쏘아 붙였다. 공교롭게도 화살 하나가 그대로 서황의 이마에 꽂히었다. 곁에 있던 다른 장수들이 놀라며 서황을 구해 갔다.

거기 기세가 오른 맹달의 군사들이 더욱 어지럽게 화살을 퍼붓자 위병들도 마침내는 견디지 못했는지 성벽 근처에서 물러났다.

맹달도 싸움의 흐름은 아는 사람이었다. 그 기세를 타려고 급히 성문을 열고 물러나는 위병을 뒤쫓으려 했다. 그러나 성을 몇 발짝 나서기도 전에 사방이 깃발로 뒤덮이며 위의 대군이 들이닥쳤다. 바 로 사마의가 이끄는 본대였다. 벌써 사마의의 본대까지 이른 걸 보 자 맹달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길게 탄식 했다.

“정말로 공명이 미리 헤아린 대로구나! 이제는 굳게 성문을 닫고 물러나 지키는 도리밖에 없겠다.”

한편 맹달의 군사가 쏜 화살에 이마 한가운데를 맞은 서황은 곧 자기편 군사들의 구함을 받아 진채로 옮겨졌다. 군사들은 그 이마에 서 화살을 뽑고 의자를 찾아 치료하게 했으나 서황이 이미 늙어 효 과가 없었다. 마침내 회복하지 못하고 그 밤으로 죽으니, 그때 서황 의 나이 쉰아홉이었다. 조조를 만난 지 삼십여 년, 크고 작은 싸움터 를 누비면서도 패배를 모르던 맹장이었지만, 끝내는 싸움터에서 숨 져간 것이었다.

사마의는 사람을 시켜 서황의 영구를 낙양으로 보냈다. 함께 싸운 적은 많지 않았으나 조위(曹魏)를 위해 목숨을 다한 그 공을 기려 그 곳에서 후히 장례 지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조처 를 취하는 동안도 사마의는 신성의 포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맹달은 잠시 무슨 좋은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았나 싶어 성벽 위로 올라가 적진을 살폈다. 전날과 다름이 없었 다. 위병들만 철통같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본 맹달은 가슴이 섬뜩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앉으나 서나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가득한 건 놀람과 두려움뿐, 당장은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릴없이 속만 끓이며 성안을 서성대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달려와 알렸다.

“성 밖에서 두 갈래 군마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맹달이 뛰듯이 성벽 위로 올라가 보니, 과연 티끌 을 자옥이 일으키며 두 갈래 군마가 다가왔다. 앞세운 큰 깃발 하나 는 신탐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의의 것이었다. 그들 형제가 이 미 마음이 변한 걸 알지 못하는 맹달은 그 깃발을 알아보자 기쁘기 그지없었다. 자기를 구해주러 달려온 것인 줄만 알고 거기 호응한다 는 게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고 말았다.

맹달이 거느린 군사를 모두 휘몰아 성문을 크게 열고 달려 나가 자신탐과 신의가 문득 소리를 합쳐 꾸짖었다.

“역적 맹달은 달아나지 말라. 어서 길게 목을 빼고 죽음을 받아라!” 

그제서야 맹달은 다시 일이 잘못된 걸 알았다. 얼른 말 머리를 돌 려 성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뜻 같지가 못했다. 갑자기 성벽 위에서 화살이 어지럽게 쏟아지며 이보와 등현이 나타나 큰 소리로 맹달을 꾸짖 었다.

“역적 놈이 어디로 들어오려는가? 우리는 이미 성을 사마도독께 바쳤다!”

맹달은 너무 기가 막혀 성낼 틈도 없었다. 얼른 길을 앗아 달아나 기 바빴다. 그런 맹달을 신탐이 뒤쫓아왔다.

오래잖아 맹달은 사람과 말이 함께 지쳤다. 마침내 신탐에게 따라 잡힌 바 되자 맹달은 돌아서서 맞서려 했다. 그러나 쫓기는 마음이라 손발이 제대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신탐이 그런 맹달을 한창에 꿰어 말 아래로 떨어뜨리고 그 목을 베었다. 생각하면 반복무쌍한 맹달의 일생이었다. 처음에는 유장(劉 璋)을 섬기다가 유비에게로 돌아서고, 유비를 섬기다가 또 조씨(조 비)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조씨에게서 다시 유씨에게로 돌아가려 다가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었다.

맹달이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창칼을 던지고 항복했다. 이보와 등현은 크게 성문을 열어 사마의를 맞아들였다.

사마의는 놀란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준 뒤 위주 조예에게 맹달을 잡은 일을 알렸다. 조예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보내 온 맹달의 목은 저잣거리에 높이 매달아 여럿에게 역적질한 끝이 어떤가를 보이게 하라. 신의와 신탐에게는 그 공에 알맞은 벼 슬을 더하게 하고, 사마중달은 어서 촉과의 싸움으로 나아감이 좋으 리라. 신성과 상용은 이보와 등현에게 맡겨 지키게 하면 될 것이다.”

이에 사마의는 그대로 따라 장안으로 군사를 이끌고 달려갔다. 거 기서 힘을 몰아 한꺼번에 제갈량을 밀어부칠 작정이었다.

장안 성 밖에 진채를 내린 사마의는 홀로 성안으로 들어가 위주 조예를 뵈었다. 조예가 기쁜 얼굴로 사마의를 맞으며 지난 일을 뉘 우쳤다.

“짐이 잠시 눈이 어두웠던 모양이오. 적의 이간질에 넘어가 경을 멀리 했으니, 실로 뉘우쳐도 이를 길 없구려. 이번에 맹달이 모반을 일으켰을 때 경이 나서서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장안과 낙양이 한꺼 번에 결딴날 뻔했소.”

그러나 사마의는 오히려 잘못을 빌듯 말했다.

“신은 신의가 모반의 낌새를 가만히 일러주는 말을 듣고 먼저 폐 하께 그 일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글이 오가는 데 시간이 걸려 그사이 일이 그르쳐질까 봐 폐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밤 길을 달려 맹달을 잡으러 갔던 것입니다. 만약 폐하의 가르치심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제갈량의 계책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품 안에서 제갈량이 맹달의 밀서에 보낸 답장을 꺼내올렸다. 그 글을 읽어본 조예는 더욱 감탄했다.

“경의 배움과 앎은 실로 손자, 오자보다 낫구려!”

그리고 금으로 만든 도끼를 내리며 덧붙였다.

“앞으로도 일이 무겁고 남모르게 재빨리 처리해야 될 것이면 내 게 알려 답을 구할 것 없이 경의 뜻대로 처리하도록 하시오.” 

사마의에 대한 믿음을 그대로 나타낸 말이었다.

하지만 맹달을 잡아 죽였어도 아직 위가 촉을 물리친 것은 아니 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중원을 노려보고 있는 제갈량을 두고 작은 성공만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마의는 곧 위주 조예의 명을 받들어 밀고 들어오는 촉군을 막 고자 관을 나서게 되었다. 떠날 무렵 해서 사마의가 조예에게 아뢰 었다.

“신이 한 대장을 천거하겠으니 써주십시오. 선봉으로 삼을까 합니다.”

“그게 누구요?”

조예가 물었다. 사마의가 얼른 대답했다.

“우장군 장합이면 그 일을 맡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라면 나도 한번 써보고 싶었소이다.”

조예는 그렇게 말하며 장합에게 선봉이 되어 사마의와 함께 촉을 치러 갈 것을 명했다. 그리고 따로이 신비와 손례(孫禮)에게도

오만 정병을 내주며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는 조진을 돕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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