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19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1 : 원하지 않는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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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권 – 19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1 : 원하지 않는 초대


원하지 않는 초대

“뭐라고요?”

월향검을 닭 피에 담가 놓고 있던 현암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 다. 지난번 흡혈마와 싸운 뒤로 월향검이 예전 같지가 않아, 귀 기를 돋우기 위해 닭의 피를 먹이는 중이었다.

“참혹한 시체가 발견되었네, 미술관에서.”

“예? 미술관요?”

새로 산 게임기로 열심히 오락을 하고 있던 준후가 되물었다. 그사이 화면의 주인공은 ” 하고 주인공답지 않은 소리를 내며 죽어 버렸다.

“으악! 최고점 내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좀 조용히 못하니, 준후야? 저 게임기 괜히 샀어. 시끄러워서 원.”

“그러는 현암 형도 밤에 가끔 하잖아!”

“나야TV가 이상이 없는지를 살피러………..”

“그만 그만 여기 기사를 보게.”

박신부가 신문을 펼쳤다.


현웅 화백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모 갤러리 내에서 신 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발견될 당시 사체는 벽에 있는 그림에 짓뭉개져서 상체가 거의 없어진 상태………….


“웩! 세상에.”

준후가 비위가 뒤틀린다는 듯 눈을 돌렸다.


사건 당일 밤, 경비원의 진술에 의하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 자가 흉기를 들고 갤러리에 침입, 이를 제지하려던 경비원을 폭 행하여 실신시켰다고 한다. 경찰은 갤러리 내에 도난당한 그림이 없고, 그 이후 안쪽의 잠금 장치가 작동하여 실내가 차단된 점으 로 미루어 발견된 시체가 갤러리에 침입했던 남자일 것으로 단정 하고 수사를 진행・・・・・・


“음, 미친놈이구먼. 죽으려고 찾아 들어간 모양이야.”

현암이 중얼거리자 박 신부가 말을 받았다.

“그 이유를 알아내야지.”


경찰은 살해 방법이 지나치게 잔인하고 시체를 그런 상태로 만 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20톤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 등에서 수사에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맙소사! 이십 톤이라고! 웬만한 기중기보다 더 큰 힘일세.”

“더 볼 것도 없네.”

박신부가 중얼거렸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짓이 아냐”

준후가 겁먹은 눈초리로 말했다.

“이십 톤이면 얼마나 되는데요?”

현암이 말했다.

“내 몸무게의 삼백삼십 배야. 나 같은 사람 삼백삼십 명을 집어 올릴 수 있는 힘이지. 더구나 이렇게 벽에 박치기시키려면…….”

현암이 잠시 말을 끊었다.

“집어 올리는 게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던질 정도의 힘이라야.”

“이게 귀신이라면 물리력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그래, 거의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는 거지.”

겁먹은 준후를 보는 박 신부의 눈동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일행은 서둘러 미술관으로 달려갔으나 개인전은 취소된 후였 고, 장내도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준후가 영사를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지박령의 짓은 아니군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죽은 자의 영도 나타나지 않니?”

“전혀요. 마치 깨끗이 먹혀 버린 것 같아요.”

일행은 사건을 목격한 경비원을 만나 보려 했으나 폭행당한 후유증으로 중태에 빠져 면회조차 되지 않았다.

개인전을 주재했던 현웅 화백은 사람을 만나기 싫다면서 굳게 잠긴 문을 열어 주지 않아 일행은 거기서도 발을 돌릴 수밖에 없 었다. 경찰에게는 가 보았자 미친 사람들이라든가 사기꾼 소리 를 들을 게 뻔하니 가 보나 마나일 테고……………..

“이런! 물리적으로 깨끗하고 영적으로도 깨끗하니, 도대체 단서가 없잖아!”

박신부가 푸념을 했다. 그 말을 무심히 듣고 있던 현암의 머리에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약간의 정보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암은 친구이자 사건 담당 기자인 안재민을 통해 문제의 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을 입수했다.

“야! 너 악취미구나. 이런 사진을 뭣에 쓰려고? 나 이거 찍고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 제기랄.”

안 기자는 사진이 마치 흉물이나 되는 것처럼 봉투를 집어 던졌다.

“너, 신용을 지킨다는 거 아니까 주지만, 절대 유포시키면 안 된다. 어휴, 아무튼 군대에서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도 봤지만, 이렇게 끔찍한 몰골은 처음이다. 웩!”

“흠…… 정말 끔찍하군. 시체가 무서운 힘으로 그림에 눌린 것 같아. 머리도 완전히 없어지고 상체도 아예 으깨졌군그래.” 의사 출신인 박 신부는 끔찍한 사진을 보고서도 담담했다. 

“잘린 다음에 눌린 건 아닐까요?”

“아니, 여기 아래를 보게나. 이건 분명 얼굴의 일부고, 여기 반 쯤 부서진 뼈는 어깨의 일부가 분명해. 바닥에 오른팔도 반쯤은 남아 떨어져 있고, 분명 어떤 엄청난 힘이 벽에 대고 눌러 댄 것 이 분명해.”

준후는 아예 저만치 떨어져 귀를 막고 있었다. 말소리를 듣지않기 위함인지 혼자서 왁왁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준후야, 이 사진으로 투시를 해 보지 않으련?”

“으악, 싫어요!”

“준후야, 이깟 사진을 징그럽다 여기면 되겠니? 불쌍하다고 생각해야지.”

준후가 머뭇거리다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사진에 손을 댔다.

“으윽!”

현암과 박신부가 준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웩!”

그날 결국 영사가 성공하기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준후의 배 속에 든 것이 다 없어져야 했으니까. 그러나 사진에서는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칠성은 불안한 마음으로 허리춤과 구두 뒷굽에 감춘 칼을 어루만졌다. 무슨 일인지, 어젯밤 전화를 받고 나간 동료 대철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에게도 전화가 걸려 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쓸데없는 생각! 어떤 놈이 장난친 게 분명해!”

칠성은 스스로를 위안하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나 아무래도 찜찜한 마음이 영 가시질 않았다.

‘어떻게 그 여자의 목소리가……………. 벌써 죽은 년인데….. 그 목소리는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밤에 (시간도 이야기 하지 않고 그냥 밤이라고만 했다) 강변으로 나오라고…………….

나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치부하고 칼잡이 대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밤에…………… 강변으로 나와…………….

정말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미 내려놓은 수화기 에서…………. 칠성은 전화선을 뽑아 던져 버렸다. 그때 그의 눈에 벽에 걸린 그림이 들어왔다. 그림에 있는 사람의 눈초리가 이상 했다. 자기를 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칠성은 항시 품고 다니 는 칼을 뽑아 그림을 박박 찢어 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수화기에 서 흘러나왔던 예의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밤에…………… 밤에…………… 강변으로……………..

창문이다! 칠성은 마시고 있던 술병을 창문으로 내던졌다. 유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밤에…………… 강변으로…….

“그만해! 그만!”

칠성은 미친 듯 달려 나갔다.

칠성은 강변으로 와 있었다. 그의 손에는 예전부터 써 오던 시퍼렇게 날이 선 칼 두 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만나면 발기발기 찢어 버릴 테다. 나 용산의 빠가사리 서칠성 을 우롱하는 놈은 사람이든 귀신이든 누구든.’

벌써 기다린 지 두 시간이 넘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만 고요히 들려올 뿐이었다. 개구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다.

“구엑…..구엑…..구엑…..”

“시끄러! 이 망할놈의 개구리 새끼야!”

칠성은 신경질적으로 돌을 주워 소리 나는 쪽으로 던졌다. 그래도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구엑・・・・・・ 구엑…… 구엑…… 너・・・・・・ 너・・・・・・ 그때…………”

“응?”

개구리 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아니, 착각이다. 그저 개구리 소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개구리 울음 사이사이에, 묘한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려왔다.

“구엑… 구엑………… 피………… 피・・・・・・ 구엑・・・・・・ 그…………… 구 엑………… 붉…………은…….”

“뭐, 뭐야! 으악! 그, 그만!”

칠성은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달리기 시작했다. 

“구엑………… 구엑⋯⋯⋯ 너………… 기억・・・・・・ 구엑・・・・・・ 그때………… 구엑・・・・・・ 그…………….”

무작정 달렸다. 어디로 얼마를 달렸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망 할 개구리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칠성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아파트 앞이었다. 술이 필요했 다. 칠성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적막했다. 아까 깨뜨린 창 문과 술병이 어질러져 있었다.

‘아 참, 아까 술병을 깨 먹었지!’

찢어 버린 그림 조각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전화기는 선이 뽑혀 있고 벽에는 여전히 그림이 걸려 있었다.

‘헉! 그림이 벽에 걸려 있어?’

칠성은 그림을 쳐다보았다. 아까 그 그림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 그림이었다.

저 여자는!

“으아악!”

그림 속의 여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점점 흐느 끼듯 하더니 어느새 여자의 울부짖는 비명 소리와 뒤섞였다. 

“으아악!”

비명이 섞인 노랫소리가 한없이 커져 갔다. 온 세상이 그 소리로 꽉 차 있었다. 칠성은 귀를 막고 몸부림을 쳤다.

“으아아아! 내가… 내가 잘못했어…………… 아아악!”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귀를 막아야 한다. 이 빌어먹을 귀 를……………. 칠성은 두 자루의 칼을 뽑아 자신의 양쪽 귀에 찔러 넣었다.


“이 그림을 봐요!”

현웅 화백의 이번 전람회 안내 책자를 뒤적거리던 준후가 소리쳤다.

“뭔데?”

현암과 박 신부의 눈에 준후가 가리키는 그림이 들어왔다.

기쁨에 차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어느 소녀의 모습………….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는 듯, 소녀는 긴 머리를 뒤로 나부끼고 있고 그 뒤로 별과 무지개가 쏜살같이 멀어져 가는 그림이었다.

“전시 번호 13. <나는 소녀>?”

현암이 중얼거렸다.

박신부가 외쳤다.

“아까 사진에 나온, 시체가 날아가 부딪힌 그림이?”

현암이 튀어 나가 사진을 집어 들었다.

“맞아요, 13번. 그러면 이 남자는 저 그림으로 날아가 머리를 들이박고……………”

박 신부와 준후의 표정이 멍해졌다.

신부와 준후는 열심히 듣고 있었다. 준후는 뭔가 알아내려는 듯 안내 책자 13번 그림 <나는 소녀>를 열심히 주시하면서 손가 락으로 문질러 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도 아닌 인쇄된 그림에서 투시가 될 리 없었다.

“제2기의 주된 테마는 소녀의 동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꿈꾸는 소녀>, <게와 노는 소녀> 는…………….”

“게요? 현암 형? 옆으로 기는 게?”

“그래. 그리고 <나는 소녀>, <노래하는 소녀>, <줄넘기하는 소 녀>, <독서하는 소녀>, <별 헤는 소녀> 등 일곱 점의 ‘소녀’ 연 작은 작가의 개인적인 소장품으로 일체 외부에 알려지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음.”

박 신부가 생각에 잠겼다. 준후는 안내 책자에 나온 그림들을 하나씩 뒤적여 보고 있었다.

“야, 그림들 참 예쁘다.”

“그림들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현암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으나 박 신부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현웅 화백의 2기 이후의 작품들은?”

“이 책자만으론 알 수 없어요. 단지 나오는 얘기는……”

“뭔가?”

“최근에 들어 화풍이 극단적으로 어두워지고 침울한 기운을 띠고 있다는…………….”


전화벨이 울렸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사내는 수화기로 손 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 울리는 벨소리 에 결심을 한 듯 수화기를 들었다. 잔뜩 긴장했던 사내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가는 다음 순간 다시 일그러지며 욕설을 거칠게 내 뱉었다. 잘못 걸린 전화였다. 사내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고 는, 수화기 선을 뽑아 버릴까 말까 고민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 한 사내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창문에 글씨가 씌어 있었 다. 붉은 글씨였다.

해변으로 나와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내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미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방은 아파트 사층이었다.


박 신부와 현암, 준후가 새로 발견된 의문의 변사체 이야기를 안 기자에게 들은 것은 저녁때였다. 셋은 즉시 사건 현장으로 출 동했다. 준후가 뭔가 감을 잡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러 운 것은 시신의 사망 시간이 스물네 시간을 넘지 않았다는(아직 검시관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먼저 도착한 안 기자의 말로는 피 가 완전히 굳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준후는 뜻밖에도 이 번에는 영사를 해 보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달리는 차 안에서 현암이 물었다.

“확실하니? 이번에 발견된 시체가 먼젓번 미술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게?”

“뭐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고통・・・・・・ 고통이 느껴져요.”

“고통? 물론 고통받다가 죽었겠지. 고통받는 느낌은 흔한 거 아냐?”

“아니에요. 이건 뭐랄까, 멀리 퍼지는 고통…… 멀리 멀리 퍼 지는 고통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들을 수 있었어요.”

“멀리 퍼지는 고통?”

현장에 도착한 일행은 그곳에 웅성거리는 형사들에게 제지당 했으나 마침 검시관으로 나온 장 박사 덕에 현암은 조수로, 박 신부는 마지막 기도를 올려 준다는 명목으로, 준후는 박 신부의 옷 속에 숨어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제길…………. 별짓을 다 하는군.”

현암이 나직이 중얼거리자 박 신부가 조용히 하라는 듯 눈을 흘겼고, 준후가 박 신부의 넓은 사제복 속에서 킥킥 웃었다. 현 암은 사제복 자락을 슬쩍 걷어찼다.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다가 되게 걷어차이고는 잠잠해졌다.


사내는 결국 해변으로 나갔다. 석양이 물들어 가는 해변의 경 치는 아름다웠다. 그날도 이렇게 해가 지고 있었다. 그때 석양 녘 아래서…………. 사내는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싸움과 악행으로 점철된 자신의 이십육 년 인생……. 노을빛 아래서 벌였던 그날의 일………….

사내는 정신을 차렸다. 앞에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꼼짝 않고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헉, 저 여자는.’

사내는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서 얼굴까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그때 그 여자의 옷이었다. 피로 물들었던 그 여자의 흰옷……..

정신없이 도망치던 남자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출입 금지 줄이 쳐 있고 구덩이까지 파여 있는 것을 사내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모래에 얼굴을 처박은 남자는 서둘러 고개를 들고 입 안의 모 래를 내뱉었다. 양 발목이 접질린 듯했다. 비로소 통증을 느낀 사내는 욕설을 퍼부으며 눈을 떴다. 사내의 눈앞에 그림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나무에 반쯤 몸을 기댄 채 긴 속눈썹이 떨리는 듯, 가볍게 눈을 감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다.

“아아악! 용서해줘! 제발 용서…………?”

사내가 울부짖으며 일어서려 했으나 다친 발목으로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내는 손가락으로 모래를 비집으며 기어서 달아나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꼬챙이가 날아와 사내의 오른손을 뚫고 모래에 깊숙이 박혔다.

“끄악!”

놀라움과 고통에 얼이 반쯤 나간 사내는 왼손으로 꼬챙이를 뽑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또다시 날아온 꼬챙이가 사내 의 왼손마저 꿰뚫어 버렸다.

사내는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의 의식마저 마비되어 갔다. 마치 유혹하는 듯이, 가물거리는 그의 눈앞에 잠 들어 있는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서서히 밀물이 밀려 들었다.

물이 남실거리며 사내의 코끝을 간질였다. 해가 막 진 저녁 무렵이었다.


“뭐가 느껴지니 준후야?”

영사를 행하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준후에게 현암이 물었다. 박 신부와 장 박사는 사체의 동공이 뒤집히고 경련의 정도가 심 한 것으로 보아 자살 직전(누가 봐도 자살이었다. 귀에 자기 손 으로 두 자루의 칼을 꽂고 죽었으니)에 강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이건…….”

준후가 몸을 떨며 한쪽 벽 귀퉁이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뭐지, 준후야?”

현암이 초조하게 물었다. 준후가 입을 열었다.

“노랫소리・・・・・・ 노랫소리예요. 여기 뭔가 있었어요. 저 벽에요.”

장 박사가 놀라 말을 하려 했으나 박 신부가 손을 저었다.

“들려요…………. 많이 희미해졌지만 전 들을 수 있어요….. 노래예요.”

준후가 서서히 손가락을 들었다.

“강한, 아주 강한 원한과 복수의 노래・・・・・・ 아니, 그림이에요.”

“그림이라고?”

현암이 놀라서 물었다.

“뭔지 알겠어요. 그 그림, <노래하는 소녀>! 바로 저기에 걸려 있었어요!”

준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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