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33화 생명의 나무 4 : 주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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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권 – 33화 생명의 나무 4 : 주술 전쟁


주술 전쟁

“준후야, 조심해라!”

“야앗!”

엄청나게 밀려들어 오던 바람이 박 신부가 띄워 놓은 부적을 밀어내지 못하고, 두 줄기로 갈라져 옆으로 비키면서 근처에 있 던 시트와 탁자를 뒤엎었다. 준후는 갈라진 한 줄기의 바람 속으 로 줄이 달린 작은 호리병을 집어 던지더니 다시 끌어서 마개를 막았다. 박 신부는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물을 시간이 없었 다. 뒤에 있던 승희는 놀라서 입을 다물고는 현암의 손바닥에 희 미하게 남아 있는 글씨들을 읽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역시 소문대로 제법 하는 놈들이군그래.”

대사제가 다른 한 사람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와 함께 들어왔 다. 대사제의 한쪽 손에는 펜타그램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 에는 밀랍으로 만든 인형이 들려 있었다. 인형에는 머리카락이 붙어 있고 군데군데 피가 묻어서 마치 붉은 칠이 벗겨진 것처럼 보였다. 박 신부가 인형을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고약한 것들! 더러운 사술로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그 인형은 현암 군을 해치려 만든 것이렷다?”

대사제는 하늘로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하하하…….”

이번엔 준후가 고함을 쳤다.

“더러운 녀석들! 외국에까지 나가서 못된 것들만 배워 오다니! 내 손에 혼나고 싶지 않으면 당장 흑마술인지 뭔지 집어치워 라! 안그러면!”

준후가 앉은 채로 대사제를 매섭게 째려보면서 한 손을 쳐들 었다. 뇌신 인드라의 번개가 작은 손끝에서 이글거렸다.

“사람에게 주술은 쓰지 않으려 했지만, 너희는 사람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대사제의 옆에 있던 남자가 화가 난 듯 이를 드러내며 준후에 게 다가갔다. 준후가 눈을 딱 감고는 번개를 발했다. 번개는 남 자의 발 앞에 떨어져 바닥을 파면서 불똥을 뿌렸다.

“흐흐흐……. 꼬마가 제법 하는구나. 너도 우리 브리트라 님 께 몸을 바쳐라.”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네? 너희 브리트라를 이긴 인드 라님의 가호가 있다. 더 가까이 오면 정말 구운 개고기로 만들어 주마!”

준후가 독설을 쏘아 대자 남자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네 이놈, 어리다고 봐주려 했더니만 안 되겠구나!”

남자가 입을 찍 벌리더니 허옇고 끈적거리는 덩어리를 쏟아 냈다. 덩어리가 꿈틀거리면서 허공에 떠올라 아메바처럼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엑토플라즘이다! 준후야, 조심해라!”

박 신부가 그쪽으로 향하려 하자 음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제였다.

“영감! 영감은 따로 임자가 있어!”

대사제가 펜타그램을 휘저으며 불의 정령 살라만더의 이름을 부르자 한 가닥의 붉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에 맞서 박 신 부가 기도문의 소리를 높이자 부적이 떠오르며 불길을 도로 튕 겨 냈다. 준후가 손을 올리는 동시에 금줄이 솟아올라서 날아오 는 엑토플라즘을 튕겨 냈다. 그러나 엑토플라즘 덩어리는 금줄 에 의해 둘로 갈라지더니 두 덩어리가 되어 준후에게 달려들었 다. 준후는 바닥을 뒹굴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엑토플라즘 이 닿은 바닥이 흰 연기를 내며 녹아내렸다. 준후가 입술을 깨물 며 반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다 태워 주마, 멸겁화!”

준후의 손에서 불길이 솟아올라 한 덩이의 엑토플라즘에 명중 했으나 엑토플라즘 덩어리는 불이 붙지 않고 잠시 주춤하는 듯 하더니 다시 날아들었다. 박 신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대 사제가 살라만더의 불을 계속 쏘면서 운디네의 안개 기운을 모 아 박 신부의 옆을 쳤기 때문이었다. 박 신부는 오라로 공격을 힘겹게 막았지만 역시 타격을 받기는 했다. 대사제는 기회를 놓 치지 않고 사대력을 모아 날카로운 막대 같은 기운을 형성하여 사방에서 정신없이 박 신부의 오라 막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박 신부의 기도력은 강했지만 사대력을 운용하여 사방에서 어지럽 게 공격하는 대사제의 교란 전술에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준후 가 부적을 꺼내 허공에 뿌리고는 왼쪽 가락으로 날카롭게 한 덩이의 엑토플라즘 덩어리를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을 가슴에 수 직으로 세웠다. 부적들이 마치 새 떼처럼 쏘아져 엑토플라즘 덩 어리에 와르르 달라붙었다. 준후가 오른손의 인장을 고쳐 왼쪽 과 교차시키며 외쳤다.

“멸(滅)!”

부적들이 순간적으로 붉은빛으로 달아오르다가 굉장한 소리 를 내며 폭발했다. 사방으로 엑토플라즘 조각이 튀는 동시에 다 른 하나의 엑토플라즘 덩어리가 쏘듯이 날아왔다.

“어이쿠!”

준후가 급한 대로 양손에 겁화의 기운을 끌어 올려 밀고 들 어오는 엑토플라즘의 덩어리를 막았다. 그러나 덩어리는 불길을 맞으면서도 계속 밀고 들어왔다. 준후의 발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났다. 승희는 준후가 준 부적을 만지작거리며 손에 땀을 쥐고 넷 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불, 물, 바 람, 번개, 영체 등 온갖 힘들이 동원되어 넓은 응급실 내부를 수 라장으로 만들며 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준후와 박 신부 쪽이 조금씩 불리해지고 있었다. 박 신부는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준후는 엑토플라즘 덩어리를 상대하기에 힘이 부쳤다. 순간 승희는 한 가지 생각을 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둘이 고전하는 것은 상대하는 적과의 부조화 같 았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상대를 바꿔요! 바꿔서 싸우면!”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준후는 이를 악물고 불기운을 뿜 어내고 있었지만, 엑토플라즘 덩어리는 아까 흩어져 버린 잔해까 지 흡수하면서 준후를 결계가 있는 언저리까지 몰아붙였다. 박 신부는 오라를 끌어 올려 방어하기에 바빠 역시 조금씩 뒤로 밀 리고 있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싸움을 잠시나마 말려야 했다. 승희의 눈에 땅에 떨어져 있는 월향검이 들어왔다. 평상시에 는 귀신 붙은 칼이라고 가까이 가지도 않던 승희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절박했다. 승희는 월향을 집어 들고는 눈을 감고 월향에 힘을 집중시켰다.

꺄아아악!

방 안을 진동시키는 귀곡성을 내며 월향이 쏘아져 나갔다. 승 희의 기운을 받아 힘을 얻은 것이다. 월향은 곧장 엑토플라즘 덩 어리를 꿰뚫고는 호선을 그리며 대사제에게 쏘아져갔다.

“윽!”

뜻밖의 기습에 당황한 대사제는 펜타그램을 들어 월향을 막았 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불똥이 사방에 튀며 대사제가 뒤로 몇 발자국을 물러났고 월향도 흔들리며 뒤로 튕겨졌다. 몸통을 꿰뚫린 엑토플라즘도 주춤거렸다.

“준후야, 위치를 바꾸자! 저런 괴물은 내 전문이다!”

박신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뛰어드는 동시에 준후가 일갈 하면서 멸겁화의 불길에 힘을 주어 엑토플라즘을 멀찍이 밀어내 고는 박 신부와 교차하며 몸을 굴렸다. 박 신부의 은 십자가에서 푸른 성령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자 엑토플라즘 덩어리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박 신부는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봐! 사대력인지 뭔지 한번 부려 보시지!”

준후가 오행의 부적을 꺼내 손에 들고 불길을 발하자 부적들 은 현란한 빛을 발하며 타들어 갔다. 준비가 된 것이다. 대사제 는 당돌하게 덤벼드는 꼬마를 가소로운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하하핫! 저 늙은 할아범도 내 상대가 안 되는데, 너는 가서 젖 이나 더 먹고 오려무나.”

“너같이 수입 귀신이나 부리는 놈에겐 나 하나면 족하다! 어 디, 사대력이라는 것의 위력 좀 볼까? 내가 도가 오행술*을 보여주마!”


* 도가의 사상의 근본 중 하나인 오행인 화, 수, 목, 금, 토의 세상을 구성하는 다 섯 가지의 힘에 의하여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하는 주술.


“닥쳐라! 어린놈이 입만 까졌구나!”

“그래, 난 어려서 배운 거 없다. 너는 많이 배운 놈이라 할 일 이 없어서 어디서 잡귀들이나 주워 가지고 다니느냐?”

대사제가 이를 갈면서 펜타그램을 고쳐 쥐었다. 준후도 욕은 퍼부었지만, 아까 엄청난 파괴력을 본 이후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결계까지 운용할 여유가 없었다. 준후는 오대존 명왕의 결계를 해소시키며 힘을 전신에 퍼져 있는 오행의 기운 에 돌렸다. 박 신부가 오라를 발하여 엑토플라즘 덩어리를 허공 에 묶었다. 그 위에는 JNRJ의 부적이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아 까 그렇게 위세당당하게 날뛰던 엑토플라즘이 임자를 만난 듯 거의 꼼작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꿈틀대고 있었다. 박 신부는 성 령의 불이 이글거리는 십자가로 엑토플라즘을 찍어 눌렀다.

한편에서는 대사제가 중얼거리던 주문을 끝내자 펜타그램의 다섯 개의 돌기가 각기 다른 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받아라, 꼬마야! 살라만더의 화염이다!”

“흥! 수극화(水)! 삼매신수!”

펜타그램의 한 뿔에서 불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 준후가 소매를 저었고, 준후의 소매에서 검은 안개가 뻗쳐 나가 두 힘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불줄기가 주춤하여 밀리는 듯했다.


* 서양의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사대력 중 불을 지배하는 정령. 불길이 이글거리 는 도마뱀의 모습을 취한다고 한다.


“에잇! 땅의 정령 코볼트여!”

대사제가 불줄기를 거두고 발을 구르자 대사제 발밑의 땅이 꿈틀대며 녹더니 흙의 파도가 준후를 향해 뻗었다. 준후도 지지않고 외쳤다.

“땅이면 토(土)의 기운! 목(木)은 토를 이긴다! 낙지생근술( 地生術)!”

준후가 양손으로 다리를 치고 발을 구르자 준후의 발이 땅속 으로 한 자쯤 파고 들어갔고, 밀려오던 흙의 파도가 부딪힌 듯 멈추어 버렸다. 대사제가 충격을 받고 뒤로 휘청거리더니 이를 갈며 이번에는 두 가지 기운을 한꺼번에 불러냈다.

“물의 정령 운디네*! 바람의 정령 아리엘이여!”

준후는 토극수(克水)의 원리로 주문을 외치면서 흙을 집어 흩뿌리자 운디네의 물의 기운은 스러졌으나, 아리엘의 무서운 바람은 그대로 준후를 덮쳤다. 미처 대적할 시간이 없었던 준후 는 호리병을 열고 아까 잡아 둔 바람의 기운을 맞서서 발출했다. 아까 준후가 던졌던 호리병은 주술을 담아 두는 역할을 하는 법 기(器)로서 준후 아버지 장 호법의 유물이었다.

* 물의 정령. 부정형의 액체 또는 물로 이루어진 여자의 모습을 취한다고 알려져 있다.

박신부는 이제 형편없이 짜부라져 버린 엑토플라즘의 덩어리 에서 십자가를 빼냈다. 마침내 처치한 것이다. 엑토플라즘을 토 해낸 남자는 영체가 죽자 온몸이 쭈글쭈글 해져서 신음을 흘리 며 뒹굴었다. 정신이 나간 폐인이 되었으리라. 옆에서 엄청난 돌 풍이 몰아닥쳤다. 돌아보니 준후에게 거대한 바람이 덮쳐들고 준후도 그에 맞서고는 있었지만 역시 가두어 둔 주술의 양이라 는 건 한계가 있어서인지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박 신부는 다시 기도력을 발하면서 손에 쥐었던 JNRJ의 부적을 던졌다. 굉음과 함께 덮쳐 오던 아리엘의 기운이 부적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 면서 대사제의 펜타그램 가지 하나가 바스라졌다.

“으헉! 이, 이런!”

대사제가 당황한 듯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괴성을 지르며 펜 타그램을 내밀었다. 펜타그램의 한쪽 가지에서 흰 기운이 번지 며 눈부신 흰빛을 쏘았다.

“아스트랄이다! 준후야, 눈을 감아!”

대사제가 이를 갈면서 소리를 질렀다.

“지고무상의 힘이다! 모두 죽어 버려라!”

펜타그램에서 흰빛이 폭사되어 준후를 덮쳤다. 준후는 눈을 감으며 오행 중 금(金)의 기운을 불러냈다. 그 기운이 박 신부의 금빛 부적에 가해지며 둥근 형상으로 준후의 주위를 거울처럼 에워쌌다.

“캐애액!”

대사제의 얼굴이 새카맣게 타며 연기를 뿜었다. 준후의 주술 과 박 신부의 부적의 힘이 대사제의 아스트랄을 반사한 것이다. 대사제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최후의 발악을 하는 듯, 현암의 인 형을 쥐고는 목을 비틀려고 했다.

“죽여 버리겠다!”

“앗! 그, 그건 안 돼!”

“결계도 없는데!”

박 신부와 준후가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여자의 기합 소리와 귀곡성이 들려오며 은빛 섬광이 날아들었다. 

“꺄악!”

승희였다. 승희가 힘을 모아 던진 월향이 제비처럼 날아와서는 귀곡성을 울리면서 대사제의 두 손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 버렸다.

“크아아악!”

대사제의 두 손이 따로따로 허공을 날며 선혈이 솟구쳐 올랐 다. 현암의 구멍이 숭숭 뚫린 인형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준후가 엎어지면서 붙잡았다. 대사제는 두 손이 잘린 채 비명을 올리며 도망쳤다.

“으, 다행이다!”

박신부가 털썩 주저앉았다. 밖에서 사교 일당이 대사제를 데

리고 달아나는 소리와, 사이렌과 사람들이 떠들며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교 일당이 몰려 나가자 이번엔 경찰이며 소방 관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아이고 쉴 틈도 없네요. 신부님!”

“그래, 어서 여길 떠나자! 골치 아파진다!”

박신부가 헉헉거리며 현암을 들쳐 업고 뒤뜰 쪽으로 난 창을 뛰어넘었다. 승희가 늘어지려는 준후를 업고 그 뒤를 따랐다. 중 상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현암의 맥은 제대로 뛰고 있었고 호흡도 고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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