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5화 어머니의 자장가 3 :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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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권 – 5화 어머니의 자장가 3 : 부활

부활

윤영은 얼굴을 감싸 쥔 채 계속 흐느꼈다. 현암은 윤영이 울도 록 놔둔 채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냥 들어 보세요. 윤영 씨의 꿈은 중요한 일을 암시하고 있 습니다. 아마도 태어나던 때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태어날 때의 상황이요?”

“예. 어둡고 붉은 동굴은 어머님의 태(胎)를 의미합니다. 줄다 리는 탯줄의 기억이 바뀌어 보이는 것이고요. 윤영 씨가 꿈속에 있을 때, 급히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고 하셨죠?”

“예, 맞아요.”

“그건 탄생의 순간을 나타내는 겁니다. 뒤에서 해일같이 밀려오던 것은 양수일 테고, 줄다리가 끊어지는 건 탯줄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밝은 빛이 보였을 때 고통을 느낀 건, 바깥세상으로 나온 신생아가 외부 기압 때문에 느끼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그런 꿈을 꿀까요? 전혀 기억에도 없는 일을요?”

“의식적으로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사람의 잠재의식은 거의 모 든 것을 기억하고 있죠. 꿈에서 잠재의식이 자연히 표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요? 다른 일 은 꿈을 꾼 기억이 없어요.”

“아니요, 많은 꿈을 꾸셨을 겁니다. 잠재의식 속의 활동은 일 상의 활동에 비해 너무 자유롭기 때문에, 잠을 깨는 순간 이성이 라는 존재가 기억을 못하게 방해하지요. 그런 꿈이 기억나는 것 은 꿈의 내용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을 만큼 강렬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겁니다.”

“그러면 제 꿈이 중요한 건가요?”

현암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 갔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심각합니다. 그건 윤영 씨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어요.’

“뭐라고요?”

윤영은 겁에 질려 자지러질 듯했다.

“놀라진 마세요. 제 말을 일단 들어 보세요. 진정하시고…..”

윤영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나 그 순간 윤영의 눈가에 이 상한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현암은 알지 못했다.

“할머님, 윤영 씨는 혹시 쌍둥이로 태어났던 게 아닙니까?”

이번엔 윤영의 할머니가 깜짝 놀랐다.

“뭐요? 아니요. 전 그런 말들은 적 없수. 그때 애를 가졌다고 얘기만 들었지 가 본 적은 없다우. 난 걔네들이 결혼하는 것을 애 초부터 반대했으니까. 거의 의절하다시피 살았다우. 나중에 얘 애비가 죽은 후에는 가엾고 불쌍해서 같이 지내긴 했지만…………….”

“정말 아니었나요? 혹시 윤영 씨의 쌍둥이가 태어나자마자 숨 을 거두거나 해서 모르시는 건 아닌가요?”

“그거야 알 수 없지만………… 그럴 리가 있겠어요?”

“아니, 전 윤영 씨 꿈속에서 또 다른 윤영 씨를 보았습니다. 보 통 꿈속에서 몸이 둘이 되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지요. 즉, 꿈에 서는 꿈꾸는 사람의 생각만 가시화되지 그 이상은 있을 수 없어 요. 그런데 저는 꿈속에서 다른 윤영 씨의 모습을, 그것도 지금 여기의 윤영 씨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모습을 봤습니다. 그건 지 금 여기 있는 윤영 씨의 꿈이 아니었어요.”

윤영은 고개를 파묻고 엎드렸다. 할머니는 겁에 질려 눈동자 가 멍해졌다. 현암은 이야기를 그만둘까 망설였으나, 당장은 충 격이 오더라도 할 말은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래도 윤영 씨에겐 쌍둥이 형제가 있었을 겁니다. 무슨 이 유에선지 형제는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었지만 영은 그걸 인 식하지 못하고 윤영 씨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어느 주기가 되면 그때의 악몽, 그때 윤영 씨 형제는 목숨을 잃었을 테니까 그 기억은 악몽이 될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되살아난 악 몽에 윤영씨도 말려들게 되는 겁니다.”

“말려든다면……….”

현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제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니 오해는 하지 말고 들으세요. 다른 윤영 씨는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런 상태에 서 꿈을 꿀 만한 기억이 뭐 있겠습니까?”

윤영이 무서운 듯 몸을 움츠리며 방구석으로 갔다. 현암은 신 경쓰지 않고 자기의 추리를 완성시키는 데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또 다른 윤영 씨는 주기적으로 강렬한 죽음의 공포를 그리고 있는 겁니다. 점차 거기에 접근해 가는 거죠. 아마도 그 시간에 도달하게 되면 여기 있는 윤영 씨마저 위험해질지 모릅니다. 윤 영 씨의 탄생 시각을 알고 계십니까, 할머님?”

“음, 그러니까 그게 축시 말, 세시라고 어미에게 들은 기억 아………….”

공포에 질려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입을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예? 축시요? 새벽 세시라면 이미 ….”

갑자기 뒤에서 윤영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잘했어. 아저씨! 고마워!”

현암의 뒤통수에 무언가 부딪히면서 와장창 깨져 나갔다. 놀 라 뒤로 넘어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현암은 의식을 잃었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윤영의 얼굴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맴돌 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암은 늘어져 내리는 눈꺼풀을 간 신히 치켜들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기공을 돌려 보았지만 무 엇에 묶인 탓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가 이렇게 질긴가 싶어 내려다보니 바로 자기가 가져온 금줄이었다. 암담했다. 이 금줄 은 준후가 공들여 주문을 불어넣어 만든 것으로, 모든 영적인 힘 을 소실시키는 능력이 들어 있었다. 현암의 기공은 정통파였지 만, 그것마저도 금줄은 흡수하고 있었다.

뒤통수와 뒷덜미가 축축했다. 머리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할 머니는 세상모르고 누워 있었다. 코까지 고는 걸로 봐서 기절이 곧장 잠으로 연결되었는지도 몰랐다. 어이가 없었다. 현암은 월 향이 걱정되었다. 월향도 귀물(鬼物)이라 금줄에 닿으면 무사할 리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다행히도 월향은 저만치 떨어져 놓여 있었다. 그리로 기어가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윤영의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랄한 것! 넌 누구냐?”

윤영의 얼굴이 씩 미소를 지었다. 요기롭거나 사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장난기를 띤 얼굴이었다.

“나? 응. 난 주영이라고 해.”

“주영?”

“응. 윤영이 계집애를 찾는가 본데, 윤영이는 자고 있어. 푹 자게 놔둘 거야.”

현암의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윤영 씨를, 아니 윤영 씨의 혼령을 어떻게 했지?”

“자고 있다니깐. 내가 자고 있던 것처럼 말야. 후후후……. 아 무튼 고마워. 사실을 깨닫게 해 줘서. 내가 다시 몸을 가질 수 있 게 도와줘서.”

현암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도왔다고? 내가 뭘 했기에?”

주영은 기분이 좋은 듯 계속 웃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아이 처럼 순진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역시 아이처럼 잔인 한 면이 숨어 있었다. 잠자리의 날개를 조금씩 뜯어내고, 다리를 하나씩 뽑고, 배를 조금씩, 금방 죽지 않을 정도로 갉아내며 즐 거워하는 아이의 잔인함이 보였다.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 그냥 잠만 잤어. 이상하게 난 윤영이 안에 그대로 있을 수 있었어. 거기서 잤어. 그냥 자기 만 했지. 윤영이 뭘 하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냥 보기만 했어. 내 이름도 기억이 났지. 누가 내게 말하는 듯했어. 그래서 이름 도 알게 되었는데………….”

주영의 눈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가 내 꿈까지 가르쳐 줬어. 난 네가 얘기를 할 때 윤 영이 등 뒤에 숨어 있었거든. 네가 쳐다보는 바람에 깰 수 있었 던 거야.”

현암은 꿈속에서 의식을 날려 주영의 모습을 봤던 일을 후회 했다. 숨어 있던 주영의 영은 그때 인기척을 느끼고 오랜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우리가 쌍둥이였다는 걸 네가 기억나게 해 주었지. 그래, 윤 영이의 몸은 내 것도 되는 거야.”

“어떻게 알았지?”

“윤영이는 세상 사람들 속에 살면서 잊어버렸을 테지만, 나는 잠만 자고 있었어. 귀신인 채로. 그래서 그런 건 배우지 않아도 다 알아. 태어나면서 우는 법을 알고 숨 쉬는 법을 알듯이…………….”

현암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생명이라도 생존 방법은 본능 적으로 아는 법이다. 하물며 영과 같은 순수한 지성체가 모를 리

없었다. 인간도 알고는 있다. 저 깊숙한 의식 뒤에서는………….

“난 이제 살아났어. 지금까진 정말 지긋지긋했지. 윤영이더러 대신 자라고 해. 깨어나지 못하게 할 거야. 난 계속 살 거야. 그 런데 네가 윤영이를 깨울지도 몰라! 그건 안 돼! 다시 잠들긴 싫어!”

주영은 갑자기 악을 써 댔다. 그러고는 서랍에서 과도를 꺼냈다.

“이봐! 뭘 하려는 거야?”

“너도 이걸로 자르면 죽겠지? 나도 이런 걸로 죽었으니까. 너 도 죽어 봐!”

현암은 다급해졌다. 상대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금줄에 묶여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주문을 웅얼거려 봤자 사람 이 되어 버린 주영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주영이 다가왔다. 이런 판국에도 주영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주영은 칼을 슬며시 현암의 목덜미에 갖다 댔다.

“이봐, 그만둬! 아프단 말야!”

현암은 어린아이 같은 말을 지껄였다. 상대의 수준은 어린이 아니 갓난아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효과가 있었다.

“뭐? 정말?”

주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칼로 자신의, 아니 윤영의 하얀 팔을 그었다.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주영아! 그만둬! 뭐 하는 짓이야!”

주영이 놀란 표정으로 현암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팔에서 떨어지는 피를 내려다보았다. 주영은 고통을 느끼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탄식하는 소리를 냈다.

“아파.”

갑자기 주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아파! 맞아! 이제 난 아플 수 있는 거야! 몸을 찾았어!” 

주영의 이런 모습에 현암은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무섭지만 순진해 보이는 주영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주영은 기뻐 날뛰더니 다시 침울해졌다. 얼굴에 공포의 기운 이 번져 갔다. 잊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 죽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주영의 목 안에서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빠른 속도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갔다.

“나는 계속 자고 있었어, 한없이 말야. 꿈에서 날 본 게 너였 지? 난 늘 무서운 꿈만 꾸고 있었어. 그리고 뭔가를 갖고 싶었지. 그래, 나와 같은 애가 있었어. 몸은 내 거였어. 내 거・・・・・・ 근데 그 애가 가져갔어. 모두 다. 맞아, 네가 말해 줘서, 네가 말해서 기억났어. 아악! 싫어. 허리, 허리가! 아아악!”

주영은 공포에 질려 몸부림쳤다. 발광을 했다. 현암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와 다를 게 없었다. 주영은 아기들이 춥거나 무서울 때 그러는 것처럼 현암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현암의 눈에도 한 방울의 눈물이 긴 꼬리를 그으며 흘러내렸다. 현암은 윤영의 꿈속에서 들었던 멜로디를 나직이 휘파람으로 불었다. 주영이 울먹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현암의 눈도 봇물이 터진 것처럼 눈물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틀림없었다. 그건 옛날에 윤영과 주영이 함께 어머니의 배 속에 서 들었던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였다. 주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있었다.

잘 자라….. 잘 자라……………

눈물을 흘리며 휘파람을 부는 현암의 눈앞이 밝아지면서, 어 떤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현암은 눈을 돌리지 않고서도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윤영과 주영의 어머니였다.

자애로운 얼굴에는 주영을 향한 애틋한 심정이 넘치고 있었다. 은은한 둘의 대화가 똑똑히 현암의 마음속에 들려왔다.

주영아…………….

응, 엄마.

미안하다, 주영아. 하지만 엄마는 그때……………

괜찮아요, 엄마. 이제 알아요. 흑…….

이리온. 너를 참 오래 찾았단다. 나와 같이 가자.

응, 엄마.

따사로운 빛 속에서 주영의 영은 다시 작은 아이가 되어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감사합니다………….

현암의 마음속으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주영이를 가련하게 생각한 당신의 마음이 저를 이곳으로 불렀답니다. 저는 주영이를 데리고 갑니다. 부탁이니 윤영이를 안심시켜 주세요.

어느덧 윤영이 일어나 고개를 들고 있었다. 윤영도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듯했다. 윤영의 눈에도 눈물이 샘솟듯 흐 르고 있었다.

날이 새려는 듯, 창밖이 부옇게 밝아졌다. 현암과 윤영의 하염 없이 흐르는 눈물의 전송을 받으며, 주영과 어머니의 영은 조용 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현암은 눈을 감으며 염했다.

‘평안하시기를……………. 내내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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