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2권 1화 – 생명의 나무 1 : 초혼

랜덤 이미지

퇴마록 국내편 2권 1화 – 생명의 나무 1 : 초혼


초혼

“이걸 어떻게 하지? 대사제라는 자,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쳐주지 않고 죽어버리다니…………….”

박신부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아직 멍한 얼굴이었다.

“의식 장소가 혹시 사교의 총단이 아닐까요?”

승희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데 현암이 부정했다.

“아니, 총단은 도심에 있고 사람들도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아닐 거야.”

“하지만 꽤 큰 건물이던데? 지하실이나 밀실이 있을 수도 있잖아.”

박신부가 둘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시간이 없네. 지금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브리트라가 소생하는 걸 막을 길이 없어. 바로 내일인데……………”

“유서를 제게 주세요. 투시해 볼게요.”

준후가 나섰다. 준후가 눈을 감은 채 종이를 손에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투시를 행하자 셋은 마른 침을 삼키며 준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준후가 한숨을 쉬며 종이를 내려놓았다. 승희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때? 뭐가 보여?”

“아뇨.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만 보이고…………….”

박신부가 빠른 걸음으로 서재를 향해 가더니 책을 뒤지기 시 작했다. 바빌론이나 주변의 종교 습관을 조사해 보는 모양이었 다. 현암은 자리에 누워 유서를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고, 승희는 나름대로 생각을 하느라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준후의 뇌리에 얼핏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현암 형?”

“왜?”

“대사제의 혼을 불러 보면 어떨까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초혼을 해 보자고?”

“예. 그렇게 해서 물어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것 같아요.”

박신부가 얼굴을 찌푸렸다.

“꼭 그래야 할까? 그런 걸 자꾸 하면 준후 네게…………”

“괜찮을 거예요. 부르기만 하는 건데요, 뭐.”


열심히 준비하여 신필(神)을 매달고 초혼에 들어갔으나 이 상하게도 잘되지 않았다. 신필은 부르르 떨다가도 글자를 쓰지 못하고 다시 눕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고 있었다. 현암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해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인데, 술법에 능한 준후가 왜 이리 힘들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준후야, 왜 그러지”

준후가 땀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분명히 불러내기는 했는데, 아무 응답을 하지 않아요.”

승희가 답답한 듯 말했다.

“왜 응답을 안 하지? 자기가 꼭 이 일을 막아 달라고 해 놓고서는………….”

“무엇인가에 금제를 당하는지도 몰라요. 승희 누나, 금줄을 쳐 줘요!”

승희가 서둘러 준후의 금줄을 풀어서 주변에 쳤다. 박 신부도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기도를 읊으며 준후를 도 우려고 했다. 현암도 몸을 일으키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상하군. 왜 아무 말이 없지?”

천장에 달아 놓은 신필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그 러나 그것은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을 그리는 것이 아닌 그냥 떠는 것에 불과했다. 넷은 긴장하며 붓 끝을 주시했다. 신필이 우지직 하며 갈라졌다. 하마터면 붓 조각에 맞을 뻔한 박 신부가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승희가 멍하니 말했다.

“분노………….”

현암이 미간을 찡그리며 승희를 쳐다보았다. 승희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승희의 얼굴은 놀라운 것을 갑자기 보았을 때처럼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노….. 알아낸 사실에 대한 큰 분노, 그리고 복수…….”

“뭐? 무슨 소리야, 승희?”

“복수…… 그는 지금 몸을 원해요…………. 피를 보기 위해서 요…………. 슬픔 같기도 하고 복수심 같기도 해요.”

승희의 눈동자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입에서 는 멍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어조는 심각했다. 현암 이 몸을 일으켜 승희에게 다가가려는 것을 박 신부가 제지하고 조심스럽게 승희의 옆으로 다가갔다.

“자기의 손으로 결말을・・・・・・ 아니, 이건!”

승희가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으로 박 신부의 등 뒤를 가리켰

다. 놀란 박 신부와 현암이 그쪽을 쳐다보았다. 준후가 땀을 흠뻑 흘리면서 고통스러운 듯 몸을 숙이고 있었다. 안색이 파리했 다. 준후의 얼굴 위에 무언가 아롱거리더니 다른 얼굴이 겹쳐 희 미해졌다가 또렷해지기를 반복했다. 분노로 일그러진 대사제의 얼굴이었다.

“준후야!”

승희가 공포로 고함을 질렀고, 현암이 몸을 번쩍 일으켜서 월 향을 불러 손에 쥐었다. 박 신부도 십자가를 꺼내드는데 분노로 안광이 형형했다.

“시, 신부님・・・・・・ 혀, 현암 형!”

“나는 참을 수 없다. 몸, 몸을……………”

준후의 입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음성이 섞여서 나오고 있었다. 준후의 얼굴에 대사제의 얼굴이 번득거리는 속도가 점 점 빨라졌다.

“대사제, 이 망할 녀석! 무슨 짓이냐!”

현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혀, 형! 이자는 내, 내 몸을 통해…….”

“그렇다! 엔키두, 그는 이미………… 이미 지독한・・・・・・ 용서할 수….”

박신부가 기도력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느님………….”

“으아!”

준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대사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빌려줘! 하루…… 하루만! 내 손으로 직접!”

박 신부는 입술을 깨물며 계속 기도력을 발출하고 현암은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엔키두 그자는…………… 빌어먹을! 으으…….”

“말해! 괜히 아이를 괴롭히지 마라! 우리에게 맡겨!”

“으, 안돼!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가 뭘 어쨌다는 거야?”

“주술사의 간………… 그걸 얻기 위해………… 으아!”

현암이 준후의, 아니 대사제의 멱살을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똑똑히 들어! 무슨 수작을 꾸미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이 아이의 몸에서 떠나라!”

승희가 정신을 차리고 뒤에서 소리쳤다.

“대사제는 지금 제정신이 아녜요! 분노로 정신이 없어요!”

현암이 다시 소리를 쳤다.

“정신 차리고 우리에게 말해, 어서! 무슨 일이야?”

“에, 엔키두가 소미, 소미를…………… 으…….”

현암은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엔키두는 미처 주술사의 간을 구하지 못하고 상처만 입고 달아났다. 주술사의 간이 없으면 의식을 치를 수 없다. 그렇다면 대사제가 말했던 소미라는 여자는? 엔키두는 결국 주술사의 간을 얻기 위해 자기편인 소미를 희생 시키려 하는 것이다.

“엔키두가 소미를 죽였나. 엉?”

“소미・・・・・・ 그녀는 이제 사람이 아니라…………… 이미 바, 반은 브 리트라의 화신….”

준후의 몸은 박 신부의 기도력으로 파르르 떨면서 힘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박 신부의 강한 기도력에도 불구하고 준후의 몸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지독한 집념이었다.

“신부님, 잠시 기도력을 멈춰주세요!”

“안 돼! 준후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제 말을 들으세요. 어서요!”

박신부가 마지못해 기도력을 멈추었다. 현암이 대사제에게 물었다.

“이제 차근차근 말해 보라. 하지만 그런 뒤에는 이 아이의 몸 에서 물러나야 해. 알았나?”

“내 손으로………… 내 손으로 막아야…..”

현암은 짐작할 수 있었다. 대사제는 죽은 뒤에 엔키두가 의식을 강행하기 위해 소미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 은 것이 분명했다. 자신도 당할 뻔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놈은 벌써 소미를 반쯤…………… 고통 속에 죽게 하기 위해………… 그놈의 힘이 소미의 힘을 빼앗아………….”

“고통? 소미의 힘? 그게 뭐지?”

“소미의 주술은 고통을 받을 때 나타난다. 그 힘을 조금씩 엔키두가 빼앗아…..”

“빨리 말해! 의식을 치르는 장소는? 엔키두가 숨어 있는 곳 말이야! 그곳이 어디지?”

“그전에 약속을….!

“뭐지?”

“내 시체를 그리로………… 중요하다………….. 꼭 그자를 막아 다 오・・・・・・ . 자네 손으로・・・・・・ 그 냉정한 머리로………………”

“왜 시체를 옮기라는 거지?”

“부탁이다……………. 꼭 그리로………… 힘이 없다…………….. 설명할 시간 이 없다…………….. 제발 약속을…………….”

현암은 어리둥절했다. 왜 시체를 옮겨 달라고 하는 걸까? 그러 나 지금은 어쨌든 그에게 비밀의 장소를 알아내는 것이 시급했 다. 현암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후의 얼굴에 겹쳐 있는 대사제의 모습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너를 믿는다……………. 장소는……………”

“어디지?”

“내 별장이 있던 곳・・・・・・・ 기억나겠지? 그곳의 뒷산에 있는 동굴・・・・・・ “

대사제의 영은 준후의 몸을 떠나 사라져 갔다. 둘의 대화를 숨 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박 신부와 승희는 늘어진 준후의 몸을 받 아 주무르기 시작했다. 박 신부가 손을 놀리며 말했다.

“대사제의 별장이라. 전부 타 버렸을 텐데? 경찰들이 조사하느라 분주할 거고.”

승희가 말했다.

“가보면 알겠죠. 어쨌든 엔키두라는 자, 정말 악랄하군요.” 

현암이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박 신부가 황급히 만류했다.

“왜 또 일어나는 건가? 그 몸을 해 가지고!”

“갈 준비를 해야죠.’

“뭐? 자넨 지금 그럴 상태가 아니야! 아무리 기공술이 뛰어나도 철인은 아니라고! 그 몸으로 또 싸우겠다는 건가?”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대사제가 꼭 제 손과 냉정한 머리로 엔키두를 막아달라고 했어요.”

“그건 자네에게만 한 이야기가 아닐 거야!”

“아뇨.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대사제의 시체도 가지고 가야 해요.”

승희가 기겁을 했다.

“뭐? 시체를 가지고 간다고?”

“그가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자의 말을 믿어? 헛소리일지도 몰라!”

“난 믿어.”

“그런 악당의 말을?”

“아무리 악당이어도 사람 자체가 악은 아냐.”

“그러나 자네는 몸이 엉망일세. 싸우게 둘 수는 없어!”

압니다. 직접 나서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몸으론 그럴 수도 없고요. 하지만 최소한 월향을 조종할 순 있을 겁니다.”

준후가 정신이 드는지 한숨을 토하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되었 다. 또 한차례 가겠다. 안 된다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넷이 함께 사교와 마지막 결전을 치르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