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16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2 : 거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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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1권 16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2 : 거인 기사


거인 기사

“어?”

한참 동안이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더글러스는 의아해 졌다. 칼이 찔러 들어오지도 않았고, 총알이 날아들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한 침묵.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떠 보자 믿지 못할 일이 벌어져 있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흉기를 든 그 세 명이 멍하니 서 있다가 코앞에 서 빗물이 질펀한 땅에 철벅철벅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어… 이… 이게 도대체……”

더글러스의 놀라움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글러스 의 뇌리를 스친 것은 누군가가 소음기가 달린 저격 총 같은 것 으로 세 사람을 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글러스 가 허리를 굽혀 녀석들을 자세히 보니, 놈들은 죽은 것도 아니었 고 외상조차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놈들은 완전히 기절한데다 가 얼굴까지 창백하게 질려 있어서 순식간에 반쯤 죽은 사람처 럼 변해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는 했으나 몸의 어느 곳에 도 상처는 없었다. 총상은커녕 뭔가에 맞은 듯한 타박상의 흔적 도 없었고 찰과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역시 이건 보통 싸움이 아냐!”

더글러스는 멍하니 있다가 또다시 들려온 총성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기관총 소리였다. 그리고 여러 명이 왁자지껄하게 외치 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글러스는 방금 죽다 살아난 탓에 아직 다 리가 후들거렸지만 호기심이 두려움보다 앞섰다. 그는 세 녀석 이 떨어뜨린 무기 하나를 주워 들고 총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 다. 골목길 어귀를 벗어나는 순간, 더글러스는 믿어지지 않는 광 경에 그만 걸음을 멈추면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저・・・・・・ 저런 인간이 있었나?”

그곳에는 정말로 작게 잡아도 키가 삼미터는 될 법한 거인 하 나가 성큼성큼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키가 이 미터만 넘어 도 거대하게 느껴질 지경인데 그자의 키는 이층 창문에 닿을 만 한 크기였으며, 보통 거인들이 팔다리만 길어서 홀쭉한 모양새 임에 비해 그자는 근육질로 똘똘 뭉친 거대하고도 우람한 체구 를 지니고 있었다. 정말 보는 사람이 한눈에 위압되어 질려 버릴 정도였다.

그자의 뒤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총질을 해대 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거인은 총질에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맞은편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총을 맞으면서……….”

더글러스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아는 한 가장 강한 현암도 총알은 두려워 피했었다. 거인은 맞은편 건물로 들 어가려 했으나 문이 비좁아 들어갈 수 없자 통나무 같은 팔뚝으로 문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콘크리트로 된 벽이 마치 스티로폼 덩어리처럼 떨어져 나가면서 우르르 무너졌다. 그 기세에 벽에 걸려 있던 등롱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그것을 보고 더글러스는 아까 녀석들이 이야기하던 사당이 그곳임을 알았다. 벽을 뜯어 낸 다음 거인은 사당 안으로 슥 몸을 굽혀 들어가 버렸다.

순간 더글러스는 거인이 몸에 검은빛이 감도는 무엇인가를 입 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방탄조끼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방 어용 철갑인 것 같았다. 그래서 총알이 소용없었던 것이다. 좌우 간 거인의 무지무지한 힘과 체구에 질린데다가 총알이 빗발치는 바람에 그는 골목길 어귀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또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저쪽에서 총을 쏘아 대던 녀석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사당 앞으로 뛰어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것이었 다. 아까 세 녀석들의 경우와 똑같았다. 이번에는 네 명이나 되 었는데 네 녀석 모두가 아무 힘없이 쓰러져 버리는 것이었다. 녀 석들은 빗물이 고인 길가에 나뒹굴었다. 한 놈은 기관총까지 가 지고 있었는데 기관총도 철컥거리면서 물에 빠져 버렸다. 눈앞 에 펼쳐지는 장면을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다 여겼지만 놀라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자기가 살아온 것 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제기랄! 역시 이렇군. 하느님.”

평소에 교회나 성당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더글러스도 이때만은 하느님을 찾았다. 그때 누군가가 더글러스의 뒷덜미를 툭 쳤 다. 더글러스는 너무도 놀라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허나 그 사람은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녕? 오랜만이네요.”

밝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영어가 능숙했지만 억양으로 보아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 누구더라? 그 건・・・・・・ 그건…… 맞다!

“어……………. 미스…………… 미스 승희?”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얼굴로 웃었다. 발꿈치까지 늘 어지는 하얀 비옷을 입고 그 옷에 달린 모자를 쓴 승희의 표정이 몹시도 밝아서 더글러스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꿈같던 정황마저 도 한순간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 당황하고 놀랐던 참이라 승희의 얼굴과 이름은 어찌어찌 기억해 냈지만 승희가 어떤 여 자인지는 순간적으로 뇌리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여・・・・・・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아니, 온다는 것은 알았지 만 어떻게 이렇게 딱 마주칠 수가…………….”

승희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살짝 나서면서 말했다. 

“들어가요.”

“여긴 위험해요! 웬 거인이…………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 갔…….”

“알아요.”

승희는 주변을 한 번 휙 둘러보고는 빗물에 젖은 기관총을 주 워 들고 물을 두어 번 털어 낸 다음 쓰윽 살펴보며 말했다.

“MP-40*이라니. 아직도 이런 총을 쓰나? 제길. 그러니 구조 를 알 수가 없지.”

더글러스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승희가 그 기관총을 더글러스에게 휙 던져 주었다.

“뭐 해요? 어서 들어가자니까요.”

“그때 그 청년 안 왔소?”

“현암 군요?”

“음. 그래. 현암.”

“다른 데 갔어요.”

“그렇다면 무리요. 당신도 뭔가 한 수 하겠지만 저런 거인에다가 난폭한 녀석들이 득시글대는데…………….”

그러자 승희는 씩 웃었다.

“괜찮아요.”

“이봐. 내 말 좀 들으라구, 아니, 그리고 이 총…………… 나는 쓸 줄 몰라. 권총 아니면…………….”


* 2차 세계 대전중 독일군에서 사용하던 제식 기관단총이다. 낡은 총이지만 성 능이 우수하여 아직까지도 간혹 사용되곤 한다.


“어서 들어가자구요.”

도대체 자신이 왜 총을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이 신비한 한국 여자가 왜 딱 잡아 여기 나타난 것인지 의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더글러스는 그런 말을 할 틈도 없이 승희에게 끌려 부서진 사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안 으로 들어서는 순간 부서진 벽에서 돌 부스러기 몇 개가 후드득 먼지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미스 승희?”

“조용히 있어요.”

승희는 불안해하는 더글러스를 문가에 세워 놓고 혼자 안으로 들어섰다. 사당 안은 어두운데다가 이상한 무늬를 넣은 대나무 주렴이 사방에 쳐져 있어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다. 향냄새와 더불어 곰팡내가 났다. 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글러스 는 두려움을 누르면서 억지로 말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아시오?”

더글러스가 묻자 승희는 대나무 주렴을 힐끗 턱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태극무늬가 안보이나요? 여긴 도관(道)이에요.”

“도관? 태극? 그게 뭡니까?”

승희가 피식 웃었다.

“아실 리가 없지. 그냥 잠자코 있어요.”

“그러나・・・・・・ 그 거인은……………..”

아까 그 거인이 손가락 하나만 놀리면 저런 조그만 여자는 납 작해져 버릴 것이었다. 덤으로 자신까지도. 그러나 승희는 태연 하게 안을 보고 소리까지 지르는 것이었다.

“누구 없나요? 없어요? 『우사경을 빌리러 왔는데요?”

더글러스는 승희가 한국어 발음으로 말한 ‘우사경’이라는 것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손에 총이 들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 짝 놀랐다. 이런 구식 기관단총은 만져 본 적이 없는데…………..

“미스 승희. 다 좋은데 이 총은…….”

“알아요. 알아. 누가 들어오려고 하면 쏴버리라고요.”

“함부로 총을 쏘라구? 더구나 이런 총은 처음 만져 본다구! 조 준도 잘 할 줄 몰라. 난 권총 말고는……”

“그러니까 쏘라는 거예요. 정말 맞혀서 죽이면 큰일이게요? 당신이 쏘면 하나도 안 맞을 거 같아서 준 거예요. 위협이나 하 라고요.”

내가 쏘면 하나도 안 맞을 것 같아서라고? 그 말이 맞는 말이 긴 했지만 더글러스로서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 다. 급기야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외쳤다.

“이봐요, 아가씨. 아까부터 말했지만, 난 이런 기관단총은 몰라. 장총이라면 모를까…………….”

그 말에 승희는 조금 놀라면서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당신, 군대도 안 갔어요?”

“군대에 왜 지원을 하겠소? 난 그런 적 없어요. 이런 종류 총 은 구경이나 했지, 만져 본 적도 없단 말이오! 난 자동화기 클래 스 면허가 없다니까!”

“아참, 당신은 한국 사람이 아니지. 음, 그래도 미국 사람이라면 총은 쏠 줄 아는 거 아니에요? 권총은 잘 쏘잖아요.” “난 탐정이니까. 더구나 경찰 출신이고…………….”

갱 영화에서 보면 기관총도 숱하게 나오던데…………….

“제길. 비록 탐정이지만 난 민간인이오. 갱단도 아니고 군인 도 아닌데, 왜 내가 자동화기를 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요? 제기 랄! 미국인들이 전부 총질을 잘한다는 건 어디서 들은 빌어먹을 헛소리요?”

“정말 못쏴요?”

그러자 더글러스는 씨근대며 총을 좀 살피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대강 알긴 알겠군. 이게 안전장치고……………”

“그럼 됐잖아요. 왜 자꾸 물러서려고 해요?”

“난 물러서지 않소! 알았어! 알았다구! 이 빌어먹을 고물이 뒤 로 터져 나가지만 않는다면, 저 문으로 빌어먹을 애새끼가 오든 경찰이 오든 마구 갈겨 드리지! 내가 학살범으로 잡혀가 전기의자에 앉을 때 눈물이라도 흘려 줄 거요?”

“선량한 사람들이 여기 올 리가 없거든요?”


순간 사당 문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더니 총소리가 났다. 더글러스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승희가 그런 그 를 가볍게 밀면서 채근했다.

“좀 쏴 봐요. 아무 데나요. 적어도 그럼 누구도 당장 들어올 생 각은 안 할 거 아녜요!”

“이건…….”

더글러스는 총을 쏠 생각이 없었는데도 갑자기 총이 타타탕 소리를 내며 발사되었다.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있긴 했지만 조금도 힘을 준 적이 없는데 총알이 발사된 것이다. 그는 놀라며 하마터면 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총알은 담벼락에 먼지만 튀겼 을 뿐 문밖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에 놀랐는지 바깥 에서 들리던 인기척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승희가 더글러 스에게 총을 고쳐 쥐어 주며 웃었다.

“잘만 쏘네요. 탄창 열어 봐요. 총알이 있는지.”

“탄창이라면 ・・・・・

“이거 말이에요.”

승희는 총 앞부분의 기다란 부분을 빼어 안을 보고 난 다음 찰칵 소리가 나게 재빠르게 다시 끼웠다. 그러고 나서 더글러스를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거꾸로 끼우면 총알이 뒤로 나가서 당신이 죽으니까 잘 끼워야 해요.”

더글러스는 싸늘하게 웃었다.

“미국인들은 다 총 잘 쏜다고 했으면서, 그런 썰렁한 농담에 내가 속으리라 보는 거요?”

“그러니 당신, 총 잘 쏘는 거잖아요. 자꾸 못 쏜다니까 그러죠. 그런데 정말 그런 줄 아는 미국인도 많던데.”

더글러스는 화를 냈다.

“잘 알면서 왜 미국인을 전부 갱 취급하냐구!”

“에이. 좀 더 분발해 달라고 그런 거예요. 화났어요?”

“나 참. 지금 장난칠 때요?”

더글러스는 화도 나고 당황하기도 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지 금 밖에는 차이나 마피아들이, 그것도 무장한 자들이 득실거리 는 것 같은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승희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참, 그거 가지고 되게 뭐라 그러시네. 남자답지 않게시리. 그런데 당신은 왜 안 와도 되는데 직접 오셨어요? 우사경에 관 심 있어요?”

“우사경?”

“당신이 알려 준 책 말이에요.”

더글러스의 눈이 커졌다.

“그 책이 ‘우사경’이라는 이름이었소?”

“어라? 당신이 여기 있을 거라 해 놓고 제목도 몰랐어요?”

“몰랐소. 그게 뭐요?”

“음. 하긴 이름은 몰랐을 수도 있죠. 풍백, 운사, 우사를 한국 에서는 삼사라고 부르지요. 『우사경은 그 우사의 가르침을 실은 것인데………… 음……………. 설명은 관둡시다. 복잡하니까. 그런데 당 신은 왜 온 거에요?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그・・・・・・ 그냥 궁금해서………… 이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소.” 

그러자 승희가 씩 웃어 보였다.

“에이. 위험한 거 다 알면서도 자신감을 되찾으려 오셔 놓고 왜 그래요? 우리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이번만은 물러서지 않고 뭔가 하겠다고 오셨으면서…………….”

“무・・・・・・ 무슨 소리요.”

“그래도 고마워요. 저도 사실 급하니 기꺼이 도움받을게요. 어 차피 위험은 각오하신 걸 테니까 자꾸 딴전 피우지 말고 제대로 좀 쏴요. 부끄러워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대체 남의 속마음을 어떻게 맘대로 짐작………….”

“짐작 아닌데요? 확신인데요.”

“아…………….”

더글러스는 그제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렇구나! 미스 승희는 초능력자였다.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래서 수 1년 전 캐나다 윈디고 사건 때…………. 그 일이 떠오르자 더글러스 는 새삼 승희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자 승희가 피식 웃으며 말 했다.

“사이코메트리까지 하시는 분이면서 내가 뭐 그리 신기하다고 보나요?”

승희는 여전했다. 수년 전에 비해 달라진 점도 없는 것 같았 다. 여전히 화난 듯한 예쁜 얼굴에 조금 짙은 화장을 했고 자그 마하고 날씬한 몸매였다. 자신은 그새 늙은 것 같은데 승희는 나 이를 더 먹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강한 자신감이랄까, 묘한 카리스마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군. 당신이라면 다 알고 있어도 신기할 것 없군그래.” 

그러면서 더글러스는 그때 승희와 같이 있었던 다른 세 명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보다 확실히 떠올랐다. 괴력의 현암, 체구 가 큰 박 신부, 그리고 작은 남자아이 준후…………. 그때의 일을 서 서히 잊어 가고 있었는데…. 그런데 여기서 불쑥 승희와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아까는 혼자 왔다고 했지만 그래도 미련을 가 지고 더글러스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같이 왔다 면 제아무리 마피아나 거인이 설친다 해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서였다.

“당신 동료들은 정말 같이 안 왔습니까?”

“아, 정말 혼자 왔다니까요.”

“흠…….”

더글러스는 암담해지는 느낌이었다. 승희는 투시력이 있을 뿐 별다른 힘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기 관총이 하나 있다고 안심하는 것일까? 그렇게 무모한 여자는 아 닐 텐데…………. 그는 도무지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무슨 계획이라도 있소?”

“여기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었는데 계획은 뭘요. 그냥 빌려 가 면 되지 않나요?”

“어떻게 빌린다는 거요? 그리고 그게 여기 있는지 당신이 어 떻게 확신하나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아뇨, 확실해요.”

“여기 있는 건 중국 시황제 때 책인데 당신네 나라 책이 아니잖소.”

“아뇨. 같아요.”

“같은 책이라고?”

“네. 같은 책이에요. 당신,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콕 집어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나・・・・・・ 난 그저 여기 암흑가에 이상한 책이 굴러다닌다는 소 문을 듣고 짐작만으로…………….”

“아, 추리가 대단했어요. 암흑가 갱들이 돈도 안 되는 고서를 왜 찾겠어요? 아주 정확하게 짚으신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더글러스는 말했다.

“자꾸 마음대로 남의 마음 속 들여다보지 마시오. 무섭소.” 

“어머, 미안해요. 당신 마음 읽으려는 게 아니라…………… 좀 넓게 보고있어서 할 수 없이 본 거예요. 안 보도록 노력할게요.” 

“넓게 본다니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그냥 뭐 레이더라고 할까. 이 일대 있는 것들 거의 다 봐야죠. 그래야 안전하지 않겠어요?”

더글러스는 몹시 놀랐다.

“이 일대 사람들 마음을 동시에 다 본다고? 그게 가능하오?”

“아, 전부 보이는 건 아니에요. 마음이 아주 굳고 강한 자들은 보려고 애를 써도 안 보여요. 그러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조무래 기들은 문제없다구요.”

그러면서 승희는 더글러스가 들고 있는 총을 손가락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니 애꿎은 사람 다치는 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쏘라면 마 구쏴요. 아셨어요?”

“휴. 정말 모든 상식이 무너지는군. 정신이 하나도 없소. 허나 정말 믿어 되오? 어떻게 투시만으로 그렇게 확신을………….”

“난 해요. 왜 그러세요. 당신도 사이코메트리만 발동되면 그런 것쯤 할 수 있잖아요.”

“사이코메트리는 물건을 직접 손에 대지 않으면 안 되잖소. 그나마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헌데 당신이 아무리 사람 마음을 읽는다 해도 어떻게 동시에 여럿을…………….”

그러자 승희는 다시 씩 웃었다.

“제가 그동안 훈련 좀 했거든요.”

“훈련?”

“범위가 좀 많이 넓어졌다니까요. 그러니 내가 쏘라면 쏘세요. 내가 못 느낄 강자라면 그런 거 아무리 쏴도 죽지도 않을 거고. 선량한 자들이라면 내가 쏘라고 안 해요. 나, 아무리 그래도 사 람 죽는 건 싫거든요?”

“알았소. 믿어 보겠소.”

“고마워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를 찾아왔소? 난 대략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같다고만 전했는데……..”

“뭐. 제가 별수 있겠어요. 당신 따라온 거죠.”

“계속 내 뒤를 쫓았단 말이오?”

“맞아요.”

“내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아, 미안해요. 그러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드릴 테니 화내지 마세요. 별것도 없던데 왜 그리 부끄러움을…………….”

“당신 지금・・・・・・ “

더글러스가 화를 내려는데 승희는 여전히 태연했다.

“화내지 말라고요. 잘못한 것도 없는 아주 바른 분이시던데 굳 이 그러실 거 없잖아요. 혹시 내가 못 읽은 죄 지은 거 있어요?”

“아, 미치겠군. 당신들을 만난 건 정말 재앙 같소.”

“미안해요.”

그때 더글러스에게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자신 을 해치려던 차이나 마피아 세 명을 보이지 않게 쓰러뜨린 사람 이 혹시 승희가 아닐까? 그러나 이 아가씨는 투시력 말고는 아무 힘도 없는 여자일 뿐인데? 더글러스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혹 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투시력만 가지고도 너무나 기 이한 능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때 승희가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더니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거인이라고 하더니, 저 사람이었나요?”

그 말과 동시에 시커멓고 거대한 그림자가 주렴 너머로 어른 거리는 것이 보이자, 더글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기관총을 쥔 손 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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