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17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3 : 성당 기사단

랜덤 이미지

퇴마록 말세편 1권 17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3 : 성당 기사단


성당 기사단

“잠깐.”

기관총을 움켜쥐는 더글러스를 승희가 손짓으로 제지했다.

“왜 그러시오?”

더글러스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승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잠시만요.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아…….”

그는 갑자기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주 렴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두려워진 더글 러스는 벽 쪽으로 주춤거리고 물러섰다. 허나 승희는 물러서지 않고 조심스레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성난큰곰! 당신 벌써 왔나요?”

그러자 주렴 건너편의 그림자가 우뚝 멈춰 섰다. 그때 먹을 따 는 듯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국어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 라 승희나 더글러스 모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와 함께 누군가가 비틀거리면서 거의 몸을 튕기듯 하며 안 쪽에서 달려 나오는 모습이 역시 주렴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보 였다. 그 사람은 거인에게 매달리기라도 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거인은 손바닥을 펴 휙 휘둘렀고, 뛰쳐나온 사람은 그 손에 맞자 크악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주렴을 헤치고 밖으로 튕겨 나와 넘어졌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자기 옆에 처박히는 것을 보고 더글러스는 기겁을 했지만 승희는 담담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뜨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성난큰곰이 아닌가?”

“그럼 쏴도 되는 거요?”

더글러스는 거인이 승희가 아는 사람이 아닌 듯하자 다급해져 입안이 말랐다. 그는 기관총을 들려 했지만 하도 손이 떨려서 총 구가 두세 개로 보일 지경이었다. 승희가 그것을 보고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쏘지 말아요. 좁은 데서 그렇게 총을 갈겨 대면 총알이 튀어 모두 다 죽게 돼요.”

그 말에 더글러스는 입을 떡 벌렸다.

“저・・・・・・ 정말이오?”

“내 뒤로 물러서요.’

“그건・・・・・・ 아무리 그래도 난 남자요. 난…………….”

더글러스가 우물쭈물하자 승희가 인상을 쓰며 매섭게 소리쳤다.

“빨리 물러서라니까!”

다음 순간,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부웅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눈앞에 날아들어 승희의 코앞에서 딱 멈췄다. 승희는 꼼짝도 하 지 않고 서 있었지만 더글러스는 그 기세에 눌려서 뒤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것은 서양풍의 거대한 양손 검이었는데 정말 거인의 크기에 걸맞을 만큼 무시무시한 크기였다.

게다가 검은 보통의 것과는 달리 전체가 시커먼 색을 띠고 있 었다. 그 물건이 주렴을 뚫고 불쑥 내밀어진 것이다. 그랬는데도 주렴은 꼭 검날이 나온 만큼만 뚫리고 더 이상은 벌어지지 않아 아직도 거인은 그림자만 보였다.

“나는 너를 모른다. 살고 싶으면 비켜라.”

커다란 종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주렴 저편에서 울려왔다. 승희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했다. 더글러스는 저 여자 가 무엇을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싶었다. 남은 무섭게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인데.

“성난큰곰이 아니었군. 하지만 너도 그만큼 크구나. 근데 넌 누구야?”

그 질문에 거인이 의아한 듯 승희에게 반문했다. 

“너는 누구냐? 너의 느낌은……………. 그것은…………….’ 승희는 대꾸도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은 왜 왔지? 『우사경』을 빼앗으러 왔어?”

그러자 거인은 검을 들지 않은 손을 조용히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두루마리 같은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 레인 마스터(Rain Master)의 스크롤을 말하는거냐?”

그것은 책이 아니라 오래된 대나무 조각을 이어 글자를 쓴 죽간 형태의 두루마리였다. 그러니 스크롤이라 부를 만도 했고, 우 사를 영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레인 마스터’라고 할 수도 있겠으니 『우사경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눈으로 보자 승희가 약간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나에게 줄 순 없을까?”

그 순간, 문밖에서 으아 하는 소리와 함께 차이나 마피아의 단 원으로 보이는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우당탕 뛰어들어 왔다. 놀 란 더글러스는 급히 승희를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뛰어든 자들 중 하나가 총을 겨누려 했으나 앞으로 내밀어졌던 거대한 검이 무서운 속도로 방향을 바꾸어서 그자의 총을 후려갈겼다. 총이 박살 나고 총을 들고 있던 자마저도 그 힘에 밀려 건너편 벽에 걸레처럼 처박혔다가 다시 앞으로 엎어져 버렸다.

그 통에 거인의 앞을 가리고 있던 주렴이 검에 베어져 떨어져 내렸고 마침내 거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키가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체구에 시커먼 검을 한 손에 들고 온몸에 시커먼 갑옷을 입었는데 무슨 금속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번들거리는 것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갑옷은 중세풍으로 만들어져서 마치 중세의 기사가 나타난 듯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다른 차이나 마피아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 오자마자 거인의 모습에 질린 듯 승희나 더글러스 정도는 돌아볼 여유도 없이 거인에게 달려들거나 총을 겨누려고 했다. 거인 은 달려들던 한 명을 칼날이 아닌 칼 몸으로 후려갈겼다. 칼날로 쳤으면 반 토막이 났을 터였지만 칼 몸으로 맞았기에 베이지는 않았다. 그자는 마치 조그만 벌레가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벽에 처박혔다.

거인의 힘은 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다른 한 명이 권총을 연 달아 쏘아댔으나 총알은 거인의 갑옷에 튕겨 나올 뿐, 조금의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그 광경에 그들은 기가 질린 듯, 입까지 딱 벌리고 슬슬 뒷걸음질을 했다. 거인이 말했다.

“썩 꺼져라.”

그 우렁찬 목소리에 그들은 다급하게 쓰러진 두 사람을 끌면 서문으로 물러섰다. 거인은 힐끗 그들을 보고는 검을 곧추세우 고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머지 녀석들이 슬슬 눈치를 보 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인은 그들을 해치고 싶지 않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놈들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용 기를 얻었는지 나오기만 하면 벌집을 만들 거라고 소리를 질렀 으나 거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승희는 조용히 서 있을 뿐 이었다. 더글러스는 거인의 위세에 질려 멍하니 있다가 승희에 게 말했다.

“나갑시다.”

승희가 흥하며 코웃음을 치더니 되받았다.

“밖에서 마피아 총알 우박을 맞느니 차라리 저 거인 양반과 있는게 나을걸요?”

그러고는 거인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뭐 하는 거지? 밖으로 나갈 건가?”

거인은 칼을 든 채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승희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칼은 왜 안 거두지?”

마침내 그거인이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저 녀석들 따위보다는 열 배나 더 무섭기 때문이다.”

거인의 말을 듣고 승희가 호호 웃으며 물었다.

“내가 왜?”

“너는 무엇인가 큰 힘을 숨기고 있고 또 이 스크롤을 노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뭐지?”

“너는 여자다. 싸우고 싶지 않다.”

“아쭈? 네가 뭔데?”

거인은 승희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나의 이름은 키건(Keegan), 나이트 템플러 (Knight Templar.성당 기사단)*의 기사다.”

이상한 것을 쫓아다니는 데에 거의 평생을 보낸 만큼, 더글러 스도 성당 기사단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십자군 원정 이래 신비에 싸여 있으며 구구한 이단 신앙의 대표 격으로 언급되었 을 뿐 그 실체는 베일에 가려진 집단들. 그들이 성당 기사단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거인이 실제 성당 기사단의 기사라고? 더 글러스가 더 놀란 것은 총알에도 끄떡없는 저 거대한 기사가 승 희를 보고 차이나 마피아보다 열 배나 무섭다고 하며 긴장을 늦 추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승희도 거인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자, 그제야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승희의 능력을 눈치챘다면 그 역시 힘만 남아도는 범상한 자는 아닐 듯싶었다. 하지만 주눅이 든 눈 치는 전혀 아니었다.

“기사라서 여자랑은 싸우시기 싫다? 그럼 그냥 그걸 내게 줘.”

“그럴 수는 없다.”

“그건 동양의 비전(秘傳)이야. 네가 그걸 가져가서 뭣에 쓴다는거야?”

“구백 년을 내려온 성당 기사단의 존속과 관련이 있다. 아울러 ・・・……….”

거인 아니 키건은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말세와도…………….”

키건이 말세에 대해 말하자 승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문을 모르는 더글러스는 총을 든 채 엉거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거인 기사나 문밖의 마피아들이나, 이 알 수 없는 신 비를 가득 담은 듯한 동양 여자 또한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말세의 예언을 너도 찾고 있는 거야?”

승희가 묻자 키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일개 기사다. 자세히는 모른다.”

“너도 『우사경이 불로장생의 비결을 담은 것이라고 믿고 있어?”

그러자 키건이 움찔했다. 그것을 보고 승희는 고개를 젓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우사경은 서복이 쓴 거라고 잘못 알고 있지. 그는 불로 초를 얻으러 갔다가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 자라서, 그가 남긴 책에 불로장생의 비결이 있을 거라고 믿는 거겠지. 그러나 그건 서복이 쓴 게 아냐. 그가 우리나라에서 얻어 가지고 간 것 은 맞지만.”


*본래 성당 기사단은 십자군 원정 때 성지 탈환을 위해 나섰던 기사들이다. 그리고 본래의 신앙은 당연히 기독교였다. 그러나 그들은 진군하면서 주둔지에서 이 슬람과 토속신앙 등의 영향을 받았고, 그것들을 기독교 신앙에 동화시켰다. 결 국 그들은 다른 파를 형성하여 십자군에서도 벗어나 주둔지만을 굳게 지켰고, 급 기야 마술적인 힘을 숭상하는 ‘이단’으로 몰려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의 비밀 신 앙과 전례 등은 그들이 모조리 멸망함에 따라 하나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으 며, 성당 기사단의 이름은 장미 십자회와 함께 서양의 대표적인 전설의 신비주의 집단으로 알려져 왔다.


“서복이 누구지?”

“아, 미안. 본토발음으로 슈뿌우라고 부를걸? 하여튼 그는 우 리나라 남쪽의 큰 섬인 제주도에 들르게 되었지. 거기는 과거 중 국인들이 불로초라 믿었던 영지버섯의 특산지라 서복은 좋은 영 지버섯을 얻으러 제주도를 샅샅이 뒤지다가 우연히 이 『우사 을 얻게 되었던 거야.”

“너는 어떻게 알지?”

거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승희는 웃었다.

“흥, 그 일은 제주도에선 전설로 내려오고 있어. 당시 제주도 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섬이었는데, 서복은 버섯과 책을 얻어 가면서 섬의 이름까지 지어 주었지. 전 설로는 서복이 버섯을 얻어 간 것만 전하고 책을 얻어 간 건전 하지 않지만………….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서복이 『우사경을 제주 도에서 얻어서 그때 가지고 나간 것은 분명해.”

“어째서?”

“우사경』은 우리나라의 한웅조선 때, 음, 그러니까 기원전 2700년경에 치우천왕을 받들던 삼사 중의 하나인 여자 우사 맥 달이 쓴 책이야. 그 여자는 신통력이 대단해서 노스트라다무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예언가였어. 그는 당신이 지금 들 고 있는 우사』 말고 정말 중요한 예언서를 남겼어. 그게 바로 『해동감결이라는 예언서지!”

만약 키건이 해동밀교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아마 놀라 까무러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고, 더글러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눈만 굴리고 있 었다.

“우사경은 그 예언서의 숨겨진 고리를 푸는 열쇠이며 말세 에 대한 예언을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야! 불로장생 따위와는 관 련 없는, 일종의 암호 해석서라구! 그러니 네가 그걸 가지고 가 도 아무 소용이 없어! 너희는 『해동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혹시 그걸 가지고 있다 해도 그건 잊힌 고대 조선의 글자로 되어 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다구! 그 글자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이 읽을 수 있는 글자니까 어차피 너희 성당 기사단이나 불로장 생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니 나에게 넘겨주는 편이 좋을 걸?”

승희의 이야기가 끝나자 키건이 천천히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그건 비밀이 아닌가?”

승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비밀도 그게 비밀이란 걸 아는 사람들에게나 비밀이지. 너는 아마 우리나라에 제주도란 섬이 있는지도 몰랐을걸? 여기 이 탐 정님도 마찬가지이고.”

“나에게서 이걸 빼앗아 갈 자신은 없나 보군?”

그러자 승희가 웃었다.

“자신은 있어. 하지만………… 걱정이 되어서.”

“무엇이?”

“넌 생각보다 센 것 같거든. 힘만 많은 자라면 무서울 게 없지만…………. 너도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아서 말야.”

거기까지 말하다가 승희가 퍼뜩 소리를 쳤다.

“성당 기사단의 보스는 괴물인가? 어떻게 팔백 살이 되어서도 살아 있을 수 있지? 어라? 더 오래 묵었을 수도 있잖아! 그러고 도 더 살기를 바라다니, 참.”

그 말에 키건은 거대한 몸을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태산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키건 얼굴에 경악의 표정 이 드러나 있었다.

“너・・・・・・ 너는 그걸・・・・・・ 어떻게………….”

“말세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안 걸 보면 너희 보스도 용하기는 하구나. 그러나 그만큼 살고도 생명에 애착을 더 가지면 추하지 요, 추해. 자, 우사경』은 장생불사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이제 그 만 내게 달라구.”

“그럴 수는 없다.”

키건의 얼굴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자 승희의 얼굴 도 굳어졌다. 잠시 후 그녀는 푸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보스가 날 없애라고 했나? 당신들은 모두 텔레파시로 교감을 하는군그래.”

그 말에 키건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는 투시력이 있구나……………. 대단해. 하지만 더 이상은 소용 없을 거다. 이제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을 마치자 키건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그러 자승희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너도 상당하구나. 마음을 비울 줄 알다니. 하긴 팔백여 년 동 안, 어쩌면 천 년도 훨씬 넘게 알려지지 않고 숨어 있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완전 괴물이네, 괴물.”

승희는 웃으며 한마디를 보탰다.

“하지만 이제 늦었어. 난 알 걸 다 알았으니까. 어쨌거나 우사경』은 포기 못해. 어서 줘, 다치기 전에.”

승희의 요구에 키건이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없지만…………… 명령이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너는 정말 대단하구나. 너야말로 정신 능력으로는 세계에서 따를 자가 없겠구나. 여자에다가 나이도 적으면서…………….”

“내가? 호호호……..”

승희는 깔깔 웃더니 키건에게 말했다.

“근데 이를 어쩌나? 나보다 백 배는 강한 동료가 셋이나 있거든.”

그러다가 승희는 키건의 흑검을 가리켰다.

“그건 참 대단한 칼인데? 갑옷도 그렇고. 아까워. 현암 군이 있었으면 참 신기해했을 텐데.”

“이건 성당 기사단 비전의 보물이다. 다크 헌터(Dark Hunter) 와 나이트 아머(Night Armor)지. 그런데 ・・・・・・ 그 효온암이란 자 는 누구지? 당신보다 백 배나 강하다는 자인가?”

“난 너하고 싸우려면 온몸에 힘을 줘야 하지만 현암 군은 말 한마디면 끝이거든? ‘월향! 나가라’ 하면 말야. 호호호…….. “

승희는 장난스럽게 웃어 댔다. 그러나 키건과 더글러스는 승 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글러스는 승희와 키 의 대치 국면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바깥에서 아까부터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가 커지고 차의 엔진 소리가 계 속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차이나 마피아가 점점 불어나는 것 같 았다. 이 거인 기사는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았지만, 차이나 마피아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더글러스가 승희에게 울상을 지으며 뭔가 말하려고 하자 승희가 웃음을 거두고 천천히 미소 를 지으며 키건에게 말했다.

“자, 이제 말장난은 그만하자구. 바깥의 놈들이 화염 방사기를 가져왔어. 그걸 맞으면 파마머리가 될 테니 곤란하잖아. 그 다크 헌터나 한번 휘둘러 보시지그래?”

키건은 천천히 검을 얼굴 앞으로 똑바로 세웠다. 기사들이 하 는 일종의 의례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팔에 힘이 빠진 듯, 하마터면 칼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 모습을 보며 승희가 말투를 바꾸어 차분하게 말했다.

“미스터 키건, 당신도 결국 인간이네. 어서 우사경을 줘. 다 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

키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면서 다시 칼을 들어 올 리려 했으나 팔은 마치 깁스를 해서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건 뭐냐? 너는…………… 너는 무슨 사악한 마술을?” “마술이라니? 난 그런 건 몰라. 근데 말이지, 나보고 능력이 대단하다고 한 게 누구였더라?”

더글러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승희의 정신 능력이란 것이 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던가? 저 거인의 팔 힘은 보통 사람의 스무 배는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키건의 팔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다니!

“그・・・・・・ 그러나 이건…………… 이건 도대체 뭐지? 이건…………… “

키건은 굴복하지 않고 이를 악물면서 팔을 들어 올리려다가 잘되지 않자 왼손으로 검을 옮겨 쥐려고 했다. 그러나 왼팔마저 도 잘 움직이지 않아 억눌린 듯한 신음 소리를 냈다. 키건의 얼 굴에 삽시간에 구슬 같은 땀이 맺혀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내리 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짓장 같던 얼굴도 조금씩 붉어지더니 곧 얼굴 전체가 시뻘겋게 되고 말았다.

“사…………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 그러나… 그러나 얼마나 강한 힘이기에…………….

키건이 안간힘을 쓰며 중얼거리자 승희는 그에게 다가서며 안됐다는 듯 말했다.

“염력이 맞긴 한데, 그 힘은……………. 글쎄, 한 이삼 킬로그램 정도 될까?”

“말・・・・・・ 말도 안 된다! 이건…………… 이건……”

승희는 싱긋 웃으며 키건의 커다란 손에서 사경을 슬쩍 빼 냈다. 거인 키건은 땀만 흘리고 이만 악물고 있을 뿐, 아무런 힘 도 쓰지 못했다.

“말이 돼.”

승희는 유쾌한 듯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지난 수년간 해 왔던 엄청난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