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18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4 : 승희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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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1권 18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4 : 승희의 능력


승희의 능력

마스터와의 마지막 싸움이 끝나고 애염명왕이 승희의 몸에서 빠져나가 화신(avatara)에서 보통 사람이 된 후, 승희는 자신의몸에 변화가 왔음을 깨달았다. 모든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 다. 그러나 증폭력은 희미해졌고 투시력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도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범위가 약간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 대신 정확하게 누군가를 짚어 내는 능력은 더욱 발달해서, 가령 근처에 수십 명이 숨어 있다 해도 원하는 한 명의 마음을 정확하게 잡아 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염력이 생긴 것이었다. 비록 그 힘이 미약하기는 했지만.

애염명왕이 남기고 간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 현웅 화백에게 서 물려받은 유전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힘은 고작해 야이 킬로그램 정도의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뿐이었다. 처음 그런 염력을 가진 것을 알았을 때는 가벼운 물건을 마음 대로 띄워 올리고 던지고 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러 나 재미있을 뿐, 실제로는 아무 쓸모가 없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가지고 뭘 하란 말야? 칫, 만화에선 염력으로 빌딩도 허 물고 커다란 돌덩이도 던지고 하던데…………. 그래야 좀 할 맛이 나지. 차라리 없는 게 낫겠어.”

그러나 승희의 힘을 옆에서 차분히 지켜보던 박 신부는 곧 그 힘이 결코 미약한 것만은 아님을 알아내었다. 약하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 힘을 발휘할 때의 반응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즉, 한참이나 인상을 쓰고 정신 집중을 해야 염력이 발휘되는 것 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즉각적으로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게다가 파급 범위도 넓어서 승희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물 론, 대략 사오백 미터 범위까지 힘이 그대로 발휘되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정밀하고 정확하게. 그러니까 작은 힘이라도 신경을 써서 집중을 하면 바늘 끝처럼 작은 점에 집중할 수 있었고, 밀 고 당기고 꼬고 비트는 등 사물에 자유롭게 힘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승희는 박 신부가 이끄는 일련의 실험에 군말 없이 따르긴 했 지만 그런 일이 며칠이나 계속되자 싫증을 냈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가지고 뭘 어쩐단 거예요? 조금만 크고 무거우면 움직일 수가 없는걸. 이런 걸 뭐에 쓴다고 이러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박 신부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승희야, 조금만 더 고생해 주렴……….”

며칠 후, 승희는 놀라운 제안을 들었다. 박 신부와 현암, 준후 세 사람이 앞으로 승희를 가르치겠다는 것이었다. 박 신부는 전 력을 살려 의학을, 현암은 혈도에 대한 지식을, 그리고 준후는 자신이 만든 부적에 대한 지식과 기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술법을 알려 주기로 한 것이다.


* 염력(力)이라 하며, 정신력을 물리력으로 전환하여 마음의 힘으로 물체를 움 직일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왜 이런 걸 다 배워야 한다는 거죠?”

승희가 의아해하자 박 신부가 대답해 주었다.

“승희야, 네 염력은 비록 작은 힘이지만 가장 무서운 힘도 될 수 있는 것이란다. 염력이 너의 투시력과 결합되면 더없이 무서 운 힘이 될 수도 있어. 물론 인간들에게나 통하는 것이고 영적인 싸움에서는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현암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그동안 골치를 썩은 건 영적인 존재보다는 우리를 방 해하는 ‘인간’인 경우가 많았지. 그 경우 네가 우리에게 힘이 되 어줄 수 있다는 거야.”

“이 조그만 힘으로? 어떻게?”

“간단해. 너는 그 힘을 아주 정밀하게 집중시킬 수 있고, 수백 미터 밖에까지 발휘할 수 있지? 그 힘으로 혈도를 찌른다고 생각 해 보렴.”

그 말을 듣자 승희는 뭔가가 머리를 한 대 탁 치는 것 같은 기 분이 들었다. 현암은 기공을 연마한 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혈도 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아 왔다. 아직 현암의 힘은 너무 강하 고 날카로워서 사람의 혈도를 자유로이 찌르고 푸는 경지에 이 르지 못했는데, 승희는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박 신부 도 덧붙여 말했다.

“꼭 혈을 찌르지 않더라도 방법은 또 있단다. 인간의 몸에는 많은 신경과 핏줄 등의 섬세한 조직이 있지. 그에 대한 지식을 잘 쌓기만 해도 혈도를 찌르는 것 못지않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이 킬로그램은 작은 힘이지만 인간의 몸 내부의 신경 조직 등 을 건드리거나 거머쥐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즉, 승희는 특유 의 투시력과 장거리에 뻗치는 염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는 것이었다.

그 길은 정말로 험하고 힘들기만 했다. 승희는 의대생 못지않 게 필사적으로 의학을 공부해야 했으며, 구역질을 해 가면서 모 대학 실습실에 숨어 들어가 해부까지 해내야 했다. 더구나 박 신 부는 승희의 힘이 조금만 잘못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 는 것이니만큼 혹독하리만치 엄격하게 승희를 수련시켰고, 머리 칼만한 실수가 있어도 눈물이 날 만큼 따끔하게 혼을 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승희는 현암이 일러 주는 혈도의 지식을 한의사를 능가할 정도로 외워야 했으며 준후가 만들어 준 부적 들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익혀야 했다. 그러나 승희는 준 후의 부적만은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잘 사용할 수 없었다. 체 내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승희의 힘과 외부의 다른 기운을 빌리 는 부적의 힘이 잘 맞지 않는다는 준후의 설명이었다. 그러자 현 암이 다른 궁리를 해냈다.

현암은 승희가 천신만고 끝에 혈도를 다 외우자 새로운 것을 시키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한 개의 표적만 노려서는 곤란할 경우가 있지. 그러니 순식간에 여러 개의 표적을 찌르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 

현암은 승희의 대답이나 동의를 구할 생각도 않고 승희를 다 그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을 시켰다. 승희는 나중에는 지 쳐서 울고불고했으며 몇 번이나 도망치려고까지 했지만, 결국 현암과 박 신부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거의 일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승희는 오백 미터 내에 있는 최대 일곱 개의 목표를 염력으로 찌를 수 있게 되었다. 일 단 그렇게 되고 나자 승희는 이때까지 힘들었던 과정을 잊어버 린 듯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퇴마사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총이라 할 수 있었 다. 악령이나 귀신과 싸우는 것은 이제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가령 현암은 천정개혈대법을 육 단계까지 올려서 맞 싸우면 당해 낼 사람이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멀리서 쏘는 총에는 그들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승희는 총기를 연구했다. 총기 역시 인체처럼 구조만 잘 알고 있다면 자신의 염력을 총기의 내부에 투사하여 총알이 나갈 수 없게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총의 구조는 인간처럼 공통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승희는 상당한 수효의 총을 찾아다니며 연구했고, 마침내 대부분의 총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까지 도합 이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간의 고생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키건의 몸은 거대했지만 혈도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 다. 그러나 키건의 덩치가 워낙 커서 승희는 혹시라도 이자가 남 들과 다른 신체 구조를 가진 자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면서 시간을 끌고 그 틈을 이용해 키건의 몸을 투시한 다음 비로소 키건의 팔을 움직이는 신경과 혈도를 염력으로 잡아 버린 것이다. 시간을 끌기 위해 말 을 계속하면서 성당 기사단에 대한 것을 알아내기도 했고……………. 승희는 자신이 가진 단 이 킬로그램의 힘만으로 저 거대한 키건 을 무력화시키자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승희는 『우사』을 들여 다본다음 키건에게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럼 이만 갈게.”

승희가 말을 끝내며 힘을 풀자 키건의 몸이 휘청하고 움직였 다. 팔이 다시 움직이게 된 키건이 한순간 검을 쳐들려고 했으나 승희가 날카롭게 말했다.

“팔 하나로 부족하다고 여겨? 그럼 다리는 어때? 아니, 심장을 멈추게 하면 어떨까? 꼭 내가 그래야겠어?”

그러자 키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면서 검을 든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지금까지의 광경에 더글러스는 이제 거의 혼이 나가서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한 기분이었다. 그런 그를 툭 치며 승희가 말했다.

“갑시다. 탐정님.”

“그・・・・・・ 그러나 밖에는…”

“염려 마요.”

승희는 『우사』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고 뚜벅뚜벅 서슴없 이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더글러스는 완전하게 마음을 놓을 수 는 없었지만, 홀린 듯 승희의 뒤를 따라 걸어 나갔다. 그래도 저 여자는 저 무서운 거인 기사를 무력화시키지 않았던가?

승희의 뒤를 따라 나온 더글러스는 의외의 광경을 보았다. 사 당 밖을 둘러싼 차이나 마피아들이 사당 앞에 차로 바리케이드 를 쳐 놓은 것이다. 차 뒤에 숨어서 총질을 해 댈 심산인 것 같았 다. 더글러스는 마치 금방이라도 총알이 날아올 것 같아서 목을 움츠렸지만 이상하게도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가만있는 걸까?”

더글러스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승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처럼 흥겹게 말했다.

“넷은 이미 갔고…… 저 건물 위에 하나 숨어 있고…………….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저편 건물의 이층에서 으악 소리를 내 며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그 사람이 들고 있던 총과 함께. 쿵 소리가 들리자 승희는 쯧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상하다. 중추 신경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왜 실족을 하 지? 흠, 그래도 이층에서 떨어졌으니 죽지 않겠지.”

그러면서 승희는 또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지나 가던 행인처럼 서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풀썩 쓰러졌다. 

“바보 같은 놈들. 그러면 속을 줄 알고?”

갑자기 웬 여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면서 건너편 건물에서 뛰 어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총을 든 남자 하나가 역시 소리를 지 르면서 달려 나왔으나 승희가 눈썹을 조금 찌푸리자 남자는 무 릎을 꺾으며 달려오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데구루 루나뒹굴었다. 여자는 남자가 쓰러진 것도 보지 못한 듯, 계속 비명을 지르며 승희 쪽으로 달려왔다. 그 모습이 너무 안돼 보여 서 더글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승희 가 날카롭게 외쳤다.

“엎드려요!”

더글러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자 그의 양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그 자세 그대로 풀썩 진흙탕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달려오던 여자가 어디에서 감춰 들고 온 것인지 둥글게 휜 만도(刀)를 자기 쪽으로 휘두 르는 것이 보였다. 날카로운 칼날은 그의 머리털을 스치면서 간 신히 비껴 지나갔다. 다음 순간, 여자는 병을 딸 때 김이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털썩 옆으로 쓰러졌다. 더글러스로서는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한 위기를 넘긴 셈이라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이건…….”

“탐정님, 신사도를 아무 데서나 찾는 거 아니에요. 요즘 여자 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거든요.”

그때 저쪽에서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두 대의 차가 달려 왔다. 순간 승희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운전하는 놈을 건드리면 간단하긴 하지만……………. 그러면 사고 가나서 다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데…………….’

승희는 살인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간 나 중에 박 신부나 현암이 펄펄 뛸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차창으로 두 녀석이 몸을 내밀고 총을 쏘려고 했다. 승희는 녀석들이 총을 쏘려고 한다는 것쯤은 이미 투시로 읽고 있었다. 녀석들은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쯤 그 자리에서 실 끊어진 꼭두각시마냥 푹푹 쓰러졌다. 한 녀석은 차 안으로 처박 혔지만 다른 한 녀석은 차창에 덜렁덜렁 걸린 채였다.

그러나 운전하는 놈들은 끝까지 승희를 들이받을 것처럼 달 려들었다. 승희도 그것만은 예상외였다. 아까 총을 쏘려는 놈들 에게 신경을 집중하느라 운전석에 있는 놈의 마음까지 투시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지만, 이건 너무 급작스러운 반응이 아닌가? 승희는 차의 타이어를 터뜨리려 해 보았으나 타이어의 고무가 너무 두꺼워 염력으로는 구멍이 나지 않았다. 승희는 거칠게 내뱉 었다.

“제길!”

그렇다고 몸을 날려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 지 않았다. 도망가느니 승희는 모험하는 셈치고 놈들의 왼팔과 오른팔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두 대의 차는 달려오다가 방 향을 급작스레 꺾더니 서로 부딪혀 멈춰 서고 말았다. 신경계를 건드려서 다른 사람의 팔을 조종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었는데 다행히도 성공한 것이다. 두 대의 차가 멈추어 서자 승희는 녀석들의 뇌신경계에 살짝 자극을 주어 기절하게끔 만들어 버렸다.

빗물이 넘치는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 던 더글러스는 빗물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마술을 부리는 것일 까? 보아하니 아까 자신을 구해 준 것도, 그전에 마피아들을 기 척도 없이 쓰러뜨린 것도 이 여자임이 틀림없었다. 아까 그거인 이 염력 운운하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승희가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쓰러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다 만 승희가 형언할 수 없이 무시무시한 힘을 사용한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지자 더글러스가 승희에게 말했다.

“당・・・・・・ 당신의 힘은 도대체 어느 정도요? 이건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조용히 해요. 아직 안 끝났어요.”

“예?”

더글러스가 멍해 있는데 승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키건! 당신 포기하지 못하겠어?”

길가를 울리던 승희의 목소리가 막 사라져 갈 즈음, 사당의 반 쯤 무너진 벽이 다시 와르르 허물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키건이 거대한 몸을 드러냈다. 그는 번뜩이는 눈으로 승희를 바 라보며 말했다.

“나에겐 임무가 있다. 그대로 갈 수 없다.”

말을 마치고 키건은 다크 헌터를 들어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푹 질렀다. 선혈이 튀자 더글러스는 물론 승희까지도 헛 하는 소 리를 냈다. 키건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다시 오른쪽 허벅지마저 찔렀다. 그리고 검을 치켜들고 갑옷의 연결부인 양쪽 어깨 부분 까지도 검 끝으로 푹푹 찔렀다. 그는 고통에 겨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승희는 키건이 자살하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말했다.

“뭐………… 뭐 하는 거야・・・・・・ 당신?”

그때 키건이 으으윽 하는 거친 신음 소리 같은 것을 내면서 고 개를 번쩍 들었다. 키건의 얼굴은 좀 전의 사뭇 점잖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된데다 눈에는 핏발이 가득 섰고, 얼굴 전체와 온몸의 혈관과 잔 힘줄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흉악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흑검인 다크헌터의 검은 광택 또한 한층 짙어진 것 같았고.

“각오하셨군.”

이번에는 승희도 바짝 긴장한 것 같았다. 더글러스는 당할 자 가 없던 것처럼 보이던 승희가 긴장하자 덩달아 바짝 촉각을 곤 두세웠다.

“왜 ・・・・・・ 왜 그래요?”

승희는 바짝 긴장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키건의 온몸은 무서울 정도의 경 직 상태로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신경도 굳어 버린 것인지 승희의 염력이 제대로 먹히는 것 같지 않았다. 승희의 염 력은 원래 이 킬로그램 정도의 힘밖에는 가할 수 없었고, 키건의 몸은 그보다 훨씬 큰 압력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승희는 계속하여 키건의 몸 여기저기를 염력으로 찔러 댔지만 그는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지 않았다. 이윽고 키건이 커다란 괴성과 함께 다크 헌터를 무섭게 휘두르며 달려들려 하자 승희는 더글러스의 옷소매를 휙 잡아끌 었다.

“뛰어요!”

“뭐라구요?”

“도망치자고요! 어서!”

그러면서 승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 기 시작했다. 더글러스는 기세등등하던 승희가 갑자기 왜 저러 나 싶었지만 키건의 다크 헌터가 다시 한번 허공에서 붕 소리를 내자 목을 움츠리며 곧바로 승희의 뒤를 따랐고, 그 뒤를 키건이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키건은 덩치도 어마 어마한데다가 걸쳐 입은 나이트 아머라는 것도 몹시 무거운 듯,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저쪽에서 또 여러 대의 차가 달려오 고 있지 않은가. 끈질긴 차이나 마피아들이 다시 부하들을 내보 낸 것 같았다. 더구나 그 수는 승희가 상대할 수 있는 일곱 명 정 도가 아니라 이삼십 명이나 되어 보였다. 그 탓에 승희와 더글러 스는 더 이상 그쪽으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이삼십 명이 동시에 총을 쏘아댄다면 승희도 벌집이 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게다 가 지금 뒤에서는 총보다도 더 무서운 키건의 다크 헌터가 달려 들고 있지 않은가?

“제길!”

다급해진 승희는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며 힘을 썼다. 그러 자 좀 전에 쓰러진 녀석들의 손에서 떨어진 총들이 파닥거리며 총구의 방향을 바꾸더니 키건을 향해 일제히 발사되었다. 그러나 승희의 염력은 무거운 총을 들고 움직이며 쏠 정도의 위력이 없었고, 총알이 나가는 반동을 견디면서 조준을 할 만큼 강하지도 못했다.

총은 발사되면서 마구 튀었고, 총알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 러 자루의 총이 일제히 발사된 터라 그중 몇 발은 키건의 몸에도 맞았다. 그러나 키건의 나이트 아머는 무슨 신통한 힘이 있는지 총알을 계속 튕겨 버리는 것이었다.

승희는 입술을 깨물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승희가 다시 힘 을 모으자 이번에는 권총 한 자루가 허공에 떠올라 키건의 얼굴 을 똑바로 겨누었다. 그 순간 키건은 검을 휘두르며 한 팔을 등 뒤로 돌려서 뭔가 조작하는 듯했다. 그러자 나이트 아머의 목덜 미 부분에서 창창 쇳소리가 나며 삐죽삐죽한 쇠붙이들이 솟아올 라 삽시간에 키건의 얼굴을 둘러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칼날 투 구가 키건의 얼굴까지도 완전히 방어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제길! 망설이지 말고 그냥 쏠걸!”

승희는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으나 키건이 다크 헌터를 휙 휘두르는 순간 허공에 떠 있던 권총이 삽시간에 반으로 쪼개 지고 찌그러지면서 땅에 처박혀 버렸다. 키건은 쿵쿵거리면서 승희 쪽으로 달려들었고, 등 뒤에서는 차이나 마피아들의 차가 무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승희는 옆으로 몸을 피해 아무 건물로나 뛰어들려고 했지만 차이나 마피아들이 해 지기 전부터 기승을 부린데다 소란이 일어난 후로도 한참 시간이 지난 터라 모든 건물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당황한 승희를 향해 키건이 서두르지도 않고 쿵쿵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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