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22화 – 말세의 조짐들 1 : 슬픔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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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1권 22화 – 말세의 조짐들 1 : 슬픔의 밤


슬픔의 밤

늦은 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이었다. 새와 산짐승 소리도 숨죽인 한밤중의 깊은 산은 산 자체가 운다. 아주 나직하고 고요 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엄숙하게 우는 것이다. 그 런 깊은 산중 벼랑 한편에 작은 굴이 있었다. 누가 판 것이라기 보다는 오랜 세월 바위틈이 벌어져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그런 동굴이었다.

동굴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보이더라도 그곳으 로 내려가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험준한 벼랑 중턱에 있기 때문에 혹여 누가 그 동굴을 보더라도 산짐승이나 살고 있을 것 으로 여길 터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이 있는 듯, 흐릿한 불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곳은 준후가 『해동감결』을 해독하기 위해 찾아낸 장소였다.

준후는 비지땀을 흘리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이미 해독한 해 동감결」 「불사의 장」의 시 세 편을 종이에 옮겨 적고 있었다. 원 전에 나오는 시는 모두 서른 편이나 되었다. 그중 열 편의 시는 ‘어느 때가 이 예언이 적용되는 때인가’를 나타낸 것들이었다.

풍백 비렴이 인용했던 바와 같이 현대의 다양한 양상이 기록 되어 있어 번역하여 읽어는 보았지만 굳이 옮겨 적을 필요는 없 었다. 사실 여기까지 해독한 것만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해동감결은 너무 파자(破字)와 비유가 많아서 우사경을 읽 어 도움을 받았는데도 해독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일종의 산 법(算法)**에 의해 글자를 찾아 나가야 했는데 처음에는 한 글자 를 찾는데도 우사경』한 권을 다 뒤져야 했다. 그러다가 열 편의 시를 다 읽을 즈음에는 산법이 준후의 머릿속에 암암리에 기억 되어 훨씬 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그 산법이란 것도 기가 막힐 정도가 복잡한 것이라 보통 지능의 사람이었다면 일주일이 걸려도 세 편의 시조차 해석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래서 준후도 모든 정신을 거기에 집중하 고 또 술법을 걸어 일종의 강신 상태에 들어간 다음에야 해석할 수 있었다.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해석해야 하는 까닭에 외부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그 때문에 준후는 조용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는 밀폐된 장소를 고르다가 이 깊은 산속의 동굴에 틀어박혀 해석에 전념하게 되었다.


*고문자나 고문자로 된 기록에서 글자를 나누거나 합쳐 기록한 글자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정감록의 구절에 “선비가관을 비뚜로 쓰고 신인이 옷을 벗 는다”는 것은 선비(士)에 관을 비뚜로 하면 임(壬) 자가 되고, 신인(神人)이 옷 을 벗으면 신(申) 자가 된다는 식이다.

**산법은 수리를 바탕으로 한 법산(法)을 통하여 자신의 심령을 밝히는 정신 수련의 일종으로, 일찍이 우리 민족에게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법산을 통한 정 신수련 방법은 예로부터 ’36산(算)’ 등 많은 종류가 있어 왔으나 이 사시산은 우 리 겨레 고유의 체계를 지닌 독특한 방법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일급 모사 (나 참모치고 이 법을 수련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중요시되어 왔다.


열 사람의 도움이 스스로 따를 것이니

남자가 다섯 여자가 다섯이고

노인이 셋, 젊은이가 셋, 아이가 넷이며

타고난 이가 다섯. 받은 이가 다섯이다.

열 개의 길이 스스로 열리

그리고 열 개의 길이 모두 가로막히리

아홉 명이 아홉 길을 터야 하며

어두운 한 길은 넷과 한 사람이 막아야 하리.

하나라도 모자란다면 이루어지지 못하리.

이 두 편의 시는 준후가 지난번에 일본에서 보았던 도자기 조각의 내용과 연관되는 것이었다. 그 조각에는 네 사람과 열 사람 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는데, 네 사람이란 박 신부와 현암, 승 희 그리고 자신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열 사람은 여기에 언급된 열 사람의 도움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준후는 잠시 동안 어떤 열 사람이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가늠해 보았다. 일단 백호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난번 홍수 사건 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테니 백호를 뺄 수 없겠고, 승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연희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으 니 연희도 당연히 추가해야 했다. 거기에 성난큰곰은 지난번에 승희를 도와주었으니 젊은 사람 셋은 백호, 연희, 성난큰곰의 세 사람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노인은? 일단 준후는 윌리엄스 신부를 떠올렸다. 윌 리엄스 신부나 이반 교수, 월터 보울 정도면 노인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준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넷이나 된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아이들이 이번 일에 퇴마사들을 도 와줄 수 있을까? 한 명 정도라면 준후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 만,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조금은 막막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한 명 정도 덧붙인다면 누구인지 예상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두 명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능력을 타고난 이가 다섯에 능력을 받은 이 가 다섯이라고 했는데, 백호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도 할 수 있 지 않는가?

‘그러면 도대체 누굴까? 누가 있어서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것 일까?’

더더욱 걱정되는 것은 두 번째 시에 언급되어 있는 열 개의 길 내용이었다. 내용을 보아하니 열 가지의 길이란 열 가지의 사건 또는 열 가지의 다른 힘이 퇴마사들을 위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아홉 개의 힘은 아홉 명의 사람들이 막는다 했고 다른 하나의 어 두운 힘은 네 사람과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나저나 한두 개의 힘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인데 열 개나 되 는 다른 세력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준후는 약간 침울한 기분 이 들었다.


그다음의 시는 말세의 의미를 가리킨 것이었다. 모두 다섯 편 이나 되었지만 대략 보기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 준후는 대강 읽고 넘겨 버렸다.

그 시는 말세가 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말세가 종말로 이어지 는 것은 아니며, 그 종말을 자초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말세를 짚어 내어 천기를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그 행위로 인해 종말이 오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종말의 양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 다. 대단한 능력을 지닌 맥달로서도 채 읽어 낼 수 없었거나 알 릴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몰랐다. 준후는 맥달이 그 양 상을 읽어 내지 못했다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더 좋지 않다고 여기고 적지 않은 것이라 보았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준비할 겨를도 주지 않고 벼락같이 인 간들을 덮칠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예전에 준후는 박 신부 및 현암, 승희와 더불어 말세의 양상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리고 그 양상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자고 결론을 내리기는 했 지만 좌우간 궁금한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다섯 편 이후에 맥달은 다시 중요한 시 세 편을 남겼다. 그 시 들을 해석한 후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한 신음성을 울렸 다. 지금껏 본 시들 중 이 세 편의 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보였 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인간에서 비롯되고 인간으로 돌아가니

수많은 사람들 중 그대와 이어진 자를 찾아야 한다. 

진실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며

그 여자의 배 속에 신의 분노가 자라고 있느니.

준후는 박 신부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박 신부와 ‘피로 이어 진 사람’이라는 계시……. 그것은 박 신부와 같은 민족에서 그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적그리스도이든 혹은 세 상을 구원할 메시아든 간에 말이다.

도혜 선사와 한빈 거사의 말을 현암이 전한 것에 의하면 그는 징벌자 또는 구원자로 일컬어지는데, 그 둘은 원래 다른 두 사람 이 아니며 천기(天)를 인간이 풀어 나감에 따라 징벌자 혹은 구원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준후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예언가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떠올랐다. 그는 백 편 의 난해한 예언시를 썼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여 지난 세기 말에 사람들을 우려하게 만들었던 시는 이것이었다.

1999년 일곱째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앙골모아의 대왕을 부활시키리라.

마르스가 기쁘게 다스리기 전후.

과거 이 시는 인류 멸망을 암시한 시라고 일컬어졌고 많은 연구가들이 해석을 시도했다. 대부분은 공포의 대왕이라는 말에 걸맞은 핵무기나 전쟁에 의한 멸망을 손꼽았다.

특히 마지막 행의 ‘마르스(Mar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이름이므로 전쟁이라는 설이 상당히 유력하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1999년 7월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말 많던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이미지금은 21세기로 접어들지 않았는가. 그러나 연구가들은 과거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단언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 었다. 시기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공포의 대왕이 라는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 무기나 재앙 같은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하찮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설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보다는 테러리스트 같은 개개인의 힘 이 발화점이 되어 인류의 멸망이 시작된다는 설도 있었다. 특히 새 해석을 시도하는 연구가들은 세 번째 행의 ‘앙골모아’를 칭기 즈 칸의 후예라 해석하고 동양인 가운데에서 문제의 인물이 나 온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동양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너무도 꼬여 있어서 과거의 것을 맞 히자면 그럭저럭 끼워 맞추기가 되었지만, 미래의 일을 예측하 기에는 몹시 어려웠고 적중률도 소문만큼 높지 못했다.

준후는 참고할 겸 호기심 삼아 살펴본 이 시의 내용에서 ‘앙골

모아’라는 단어가 가장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동양인. 그것도 박 신부와 피로 연결된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를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찾는단 말인가? 다행히 맥달은 친절하게도 그에 대한 당부를 바로 다음 시에 남겨 놓았다.

세상은 넓다. 세상은 좁다.

운명의 길은 복잡하게도 이어진 것이니

스스로 원하여 구하면 얻지 못하고, 구하지 않으면 저절로 들

어오리라.

세상의 열 개의 점이 한군데서 만나리니

찾으려 애쓰면 더더욱 찾아지지 않으리.

해오던 그대로 있던 그대로

그것이 가장 가까운 길이니.

열 개의 길이 이어지면 그녀가 드러나게 되리.

해석을 하면서 준후는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찾아지게 된다니, 그럴 수도 있단 말인가? 원참……..’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맥달의 예언이었다. 사천칠백 년 후 에 자신이 보존하고자 한 문서가 전전하여 다른 나라 어느 장소 에 흘러가게 되고, 어떤 사람이 그것을 찾아 처음으로 해석하게 되는지, 그 시점에서 어떠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까지를 정확 히 예언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남길 정도인 예언가가 바로 맥달 이었다.

그런 인물의 글이니 결코 경솔하게 볼 수 없었다. 다만 열 개 의 길이라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준후를 더더욱 기 겁하게 만든 것은 그다음, 스물한 번째부터의 시였다.

여기 이후의 내용은 아무에게도 언급하지 않도록 하라.

그래야만 열 개의 길이 자연히 이어지리라.

헛수고, 공연한 생각, 억울한 눈물, 두려움과 괴로움.

그 모든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종내 모두 하나로 이루어지리

이것을 읽고 해독하는 자, 그대만의 짐이며

그대와 가장 가까운 자에게도 말해서는 아니 되느니.

그렇지 않으면 운명은 비틀어져서 모든 것이 끝나 버릴 것이니

괴롭고 답답하여도 반드시 지켜야 하느니.

준후는 충격을 받았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니, 그렇다면 현암이나 박 신부, 승희에게도 비밀로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야만 운명이 스스로 이어진다고?

준후는 그다음의 내용을 보며 더욱더 놀라워했다. 이어지는 시들은 제법 길었지만 준후는 산법에 익숙해진 터라 단숨에 읽 어 내려갔다. 그 내용들은 정말로 준후의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 시들을 하나하나 해석하며 준후는 울고 또 울어서 몇 번이 나 다시 이를 악물고 정신을 가다듬고서야 해석을 계속할 수 있 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말세의 양상과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은 처음 에 예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그리고 자신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토록 박정하고 무자비한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니!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손으로 해 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준후는 스물아홉 번째의 시를 해석한 다음 눈앞이 캄캄해져 오는 아찔함을 이기지 못해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니,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준후는 짐승처럼 흐트러진 몰골로 부스스 눈을 떴다. 조그마하게 밝 혀 두었던 등도 꺼져 사방이 온통 캄캄했다. 그나마 한 줄기 달 빛이 동굴 입구에서 스며들고 있어 어둠에 곧 익숙해졌다. 눈앞 에 「해동감결』 및 『우사경』, 그리고 잡다한 종이 등등이 보였다. 준후는 순간 머리칼을 곤두세우면서 「해동감결과 우사경을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비명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 기도 한 괴이한 소리를 지르면서 그것들을 마구 잡아 뜯으며 우 악스럽게 찢었다.

“난 못해! 난 그럴 수 없어! 못해!”

낡고 오래되어 형태만 간신히 유지해 오던 『해동감결』과 『우 사경』의 두루마리는 준후의 손이 닿을 때마다 바스라져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준후는 이까짓 것 하면서 없애 버릴 심산이었다. 모조리 태워 버리고 없애 버려야 했다.

이건 세상을 구하는 예언이 아니었다. 악마의 유혹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 유혹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보지 않은 것으로 하 면 그만이라고 준후는 애써 생각했다. 그러나…………….

준후는 문득 손을 멈추었다. 해독하지 않은 『해동감결』의 마지 막 한 편의 시. 마지막 서른 번째의 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준 후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내용을 해석하고 말았다.

슬프리라. 통탄스러우리라. 그대에게 내 달리 할 말이 없노라.

그대 못지않게 나 또한 가슴이 아프고 슬프지만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여기에 적은 것은 오래된 글자가 아니라 나의 슬픈 마음이니 울어라.

슬프면 마음껏 울지어다. 그러나 잊지는 말라.

준후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 같은 그 내용을 보 는 순간, 책을 찢던 손을 멈추고 땅에 엎드려서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새삼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맥달은 항상 옆에서 보고 있었던 양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맥달은 준후의 괴로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준후가 최후에 는 자신의 말대로 행동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정해진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모든 것이 정해져 있 다면 왜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자신이 그런 행동 을 하는 것도 이미 정해진 일이 아닌가?

맥달은 지금 자신이 이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아 괴로워한다 는 사실까지도 꿰뚫어 보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마지막 서 른 번째 시를 남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맥달의 말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에는 그녀의 예언대로 모든 것을 행하게 될 것이 아닌가?

준후는 맥달이라는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 놀라고 감탄도 했지만, 결국은 그녀의 족쇄에 단단히 걸린 것이나 다름없어 울면 서 고개를 마구 저었다. 맥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후에 세상은 구해질지언정 준후로서는 너무나도 아픔이 컸다.

준후의 눈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다만 제발 그대로 되지 않기를……………. 제발.⋯⋯⋯⋯ 제발…………!’ 

달빛은 그런 준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희끄무 레한 빛을 뿜어내며 동굴 안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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