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24화 – 말세의 조짐들 3 : 뉴욕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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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1권 24화 – 말세의 조짐들 3 : 뉴욕의 밤


뉴욕의 밤

그 시각, 뉴욕에 위치한 거대한 고층 건물의 지하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종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비 밀리에 열리는 모임이라 그런지 입구는 꼬불꼬불한 미로 같은 지하실 구내를 빙빙 돌아야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곳곳마다 경비 용역 회사에서 나온 듯 명찰을 달고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지키고 있었으며,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방음 장 치가 되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그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여자라는 점이었다. 나이가 많은 여자와 젊은 여자도 있었으며 키가 큰 여자와 작은 여자도,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도 있었지만 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회의석상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것은 수십 명의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뚱뚱하고 늙은 여자였다. 

“이번에 제기된 사항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됩니다. 우 리 마녀 협회가 왜 다른 조직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까? 도대체 우리 협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붉은 머리의 창백한 여자가 날카롭게 말했다.

“우리 협회는 여성들의 능력과 권익을 나타내기 위해 결성된 단체가 아니었던가요? 그 대의명분에 맞는 일이라면 어째서 우 리가 고집을 피워야 하는 거죠?”

“능력과 권익을 나타내기 위해 신비주의를 표방할 필요가 있 다는 것입니까?”

저만치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놀랄 만큼 요염한 생김새의 여자가 우아하게 되받았다.

“신비주의가 없다면 우리 회의 이름이 마녀 협회가 될 필요도 없겠지요.”

뚱뚱한 여자는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

“신비주의라고 해도 모두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마녀 협회의 백마녀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마법에도 백마법과 흑마 법이 있는 것처럼, 어둠의 힘을 숭상하고 힘을 얻기 위한 신비주의와 결탁하는 그러한 일은 결코 찬동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때 검은 머리의 요염한 여자가 냉소를 지으며 한 뭉치의 서 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뚱뚱한 여자 쪽으로 주욱 밀었다. 

“이걸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바이올렛?” 

그 뚱뚱한 여자는 바로 바이올렛이었다. 그녀는 다시 뭐라고 외치려 하다가 그 문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것을 몇 장 넘겨보다가 돌연 얼굴빛이 흐려졌다.

“과거의 비극을 왜 들춰내는 거죠. 바이올렛?”

바이올렛은 떨리는 목소리로 검은 머리의 여자에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 여자의 이름도 자신과 똑같은 바이올렛이었다. 사실 검은 머리의 여자는 희한하기 이를 데 없는 보랏빛의 눈동 자를 가지고 있어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검은 머리 의 바이올렛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과거의 비극? 그러니 잊어도 된다는 건가요? 과거………… 마녀 들이 종교 재판에서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알고 있나요? 그 문서 는 단지 그러한 사례를 조사한 것에 불과합니다만, 적어도 이 모 임의 명칭이 마녀 협회라는 단체라면 그런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마녀 재판의 비극…………. 늙은 바이올렛도 그에 대해서는 잘 알 고 있었다. 중세 이단심판관들의 손길은 그야말로 무자비했다. 그들은 마녀의 혐의가 씌워진 여자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 자신이 마녀임을 거부하면 고문당하다가 전신이 망가져 죽는 수밖에 없었고, 마녀임을 인정하면 고문은 멈춰졌지만 죄의 정화를 위하여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해졌다.

물에 여자를 집어넣어서 뜨면 마녀이고 가라앉으면 결백하다 는 식의 논리를 펼친 이단심판관도 있었다. 물에 뜨면 화형당해 야 했고 가라앉으면 익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손가락이 짓뭉개지고 뼈마디가 부서지고 으깨어졌으 며 산 채로 배가 갈라지고 내장을 긁어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 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뜨겁디뜨거운 불더미에 휩싸여 타들어 갔어요! 나는 믿고 싶습니다. 당시의 마녀들은 결코 억울한 희생 양이거나 오해의 산물이 아니었다고요. 그들 중 상당한 수효는 정말 마녀였기를 나는 바랍니다. 그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 고 믿어요.

그들이 모두 억울한 희생양이었고, 이웃의 사악한 음모와 음 산한 종교 제일주의자들의 피해자일 뿐이라구요? 웃기는 소리! 그것은 그녀들을 그 꼴로 만든 자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해 주는 방편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나는 주장합니다. 그들은 정 말 마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사탄과 동침하고 마술가루 를 뿌려 날아다녔으며, 죽고 난 다음에도 그 악랄한 이단심판관 들과 가톨릭 신부들의 뒷덜미를 음산한 눈길로 노려보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검은 머리 바이올렛의 말에 늙은 바이올렛 역시 기세를 돋우어 격렬하게 맞섰다.

“그들 대부분은 아무런 힘도 없는 무고한 아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모욕하지 말아요!”

“모욕? 그들을 모욕한다고요?”

검은 머리의 바이올렛은 믿지 못할 정도의 싸늘한 눈길로 늙 은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늙은 바이올렛은 깜 짝 놀라 허둥거리다가 그만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만 큼 그 검은 머리 여자의 눈길은 매섭기 이를 데 없었다. 지옥의 불꽃이 그 여자의 눈동자 가운데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당신이야말로 그들을 모욕하지 말아요. 어째서 그들의 행위 를 기만하는 거죠? 그들은・・・・・・ 그들은 그런 권능이 있었어야 했어요! 좋아요. 대다수의 여자들은 물론 당신이 말한 것처럼 아 무런 힘이 없는 아녀자들이었어요. 그러나 종교라는 이름의 허 울은 그런 그녀들을 잡아다가 처절한 고통을 주었죠. 그렇게 처 절하게 고통을 당하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의 죽음은 확실했어요.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어요. 그렇 다면 그들에게 남은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아무 죄도 없 이 당한 그 고통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속죄? 하느님의 자 비 영혼의 구원? 웃기지 말아요! 그들은 그들의 죄를 시인함으 로써, 그들이 정말 마녀이며 그 끔찍한 이단심판관들이 부들부들 떨며 놀라는 얼굴을 하도록, 그들이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밤마다 어두운 몽환에 시달리며 평안한 잠을 이룰 수 없도록 증 언한 거예요! 바로 이것입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당시의 종교 재판을 받던 마녀라도 되는 양처절함과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사탄의 신부다! 이 거짓 사제들아! 인간을 위한답시고 영혼을 파괴하는 자들아!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이 말하는 그 사 악한 힘의 추종자가 되었노라! 병을 퍼뜨렸고! 검은 짐승을 잡아 피를 뿌렸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고! 발푸르기스 산에 날아 가축제를 지냈노라! 바로 이 순간! 지금 이 순간부터!”

그녀는 그 시대의 악령에 홀린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은 그녀의 그 홀린 듯한 동작 하나하나와 말 한마디 한마 디를 똑똑히 새겨듣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보고 미친 듯 소리 쳐 웃다가 책상을 내리쳤다.

“수백 년이 지났어도………… 진실은 잊히지 않아. 그 수만 명의 여자들을 마녀로 만든 것은, 죽는 순간에 사탄에 몸을 바치기로 서약하게 만든 것은 종교인들이었어! 그리고…………… 그리고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간다면 차라리 남자들을 능가하는 힘과 권능을 지닌 마녀가 되는 게 나아! 다시는 누구에게도 짓밟히지 않고! 다시는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는! 그런 힘과 그런 권능을……!”

그 장소에 있던 수십 명의 여자들은 몸을 떨면서 검은 머리의 여자가 울부짖듯 내뱉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 중세 독일의 전설로 온갖 악마와 마녀가 모여 연회를 벌인다는 산. 브로켄 산 등의 다른 산의 이름도 있지만 발푸르기스 산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언급된 이 래 마녀 및 악마의 집합처로 가장 유명해졌다.


“힘・・・・・・ 권능을! 힘과 권능을!”

“안 돼! 안 돼! 들어서는 안 돼!”

늙은 바이올렛이 결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아무도 그 녀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검은 머리의 바이올렛이 그 녀를 보면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 수백 년 동안 불꽃에 타 들어가며 방황하다가 다시 태어났어! 나는 사백오십 년 전에 독일에서 불타 죽었던 엘리자베스의 환생이야. 그리고 ・・・・・・ 그 리고 마녀 협회의 회원들은 모두 그녀들의 환생일 뿐이다. 이 것은…. 이것은 역사의 인과응보야.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복수할 차례다. 나는 그 힘을 알아. 그 힘을 가진 자를 알아. 모 두………… 모두 그 길로 가야 해. 당신들은………… 당신들은 이 세상 이 좋은가? 이 세상에 원한이 없어, 응?”

돌연 그중 조그마한 갈색 머리의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남자들에게 속고…………… 아이를 둘이나 죽게 만들었어요!”

그러자 검은 머리 바이올렛은 저승의 사자 같은 목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그 남자의 죄가 그 남자에게 떨어지리라!”

“나는…………… 나는남편에게 매일 얻어맞아서・・・・・・ 더 이상은………….’

다른 금발 머리의 여자가 울부짖자 검은 바이올렛은 다시 소 리쳤다.

“이제는 네가 채찍을 들 때이다!”

그에 덩달아 모든 여자들이 그녀에게 매달려 눈물로 호소할 때마다 그녀는 각각의 여자들에게 외치면서 여자들의 이마를 짚 었다. 그때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외쳐댔다.

“기억난다! 기억이 난다! 나야말로 그때의 ………….”

“아아! 뜨거워! 뜨거워!”

“아파! 아파! 고통은 그만! 이제 더 이상은………….. 아악!”

늙은 바이올렛은 멍하니 그들의 광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의 뻔히 뜬 눈에도 눈물이 고여 갔다. 수십 명의 여자들은 모 두 자신들의 전생을 깨달은 듯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날뛰고 있었다.

그때 검은 머리 바이올렛이 서서히 다가와 거역하기 힘든 위엄으로 늙은 바이올렛에게 말했다.

“너도………… 너도 내게 와라…………….”

순간, 늙은 바이올렛은 크게 외치면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그러자 한 줄기 회오리바람 같은 힘이 그녀의 몸에서부터 퍼져 나와 검은 머리 바이올렛을 덮쳤다. 검은 머리 바이올렛의 몸이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너는……………!”

검은 머리 바이올렛의 보라색 눈이 분노로 번쩍하고 빛나자 늙은 바이올렛의 몸은 뒤로 붕 떠서 십여 미터를 날아가 벽에 호 되게 부딪혔다. 그녀의 동공이 충격을 받아 풀리고 입과 코에서 는 피가 솟구쳤다. 그녀는 앞으로 서서히 쓰러졌으나 그래도 힘 겹게 몸을 꿈틀거렸다. 늙은 바이올렛은 피에 젖은 얼굴을 간신 히 쳐들면서 말했다.

“너는…………… 너는 틀렸어……………. 안 돼…………… 안돼…………. 너 는…………….”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되레 모두가 손에 잡 히는 대로 아무거나 들고 무서운 얼굴로 그녀를 향해 서서히 다 가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 바이올렛은 무섭도록 창백한 얼굴에 보랏빛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죽어라!”

검은 머리 바이올렛이 눈이 다시 한번 무시무시하게 번쩍 빛 나는 순간, 굳게 닫혀 있던 한쪽 문이 와장창 부서지면서 시커먼 것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문밖을 지키던 두 명의 경비원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문 안쪽으로 털썩 쓰러져 버렸다.

그 시커먼 물체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한 번 팔을 휘두르자 검 은 머리 바이올렛이 쏘아 낸 무형의 기운은 그의 팔에 맞아 펑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렸다. 그때 검은 머리 바이올렛은 그의 얼 굴을 얼핏 볼 수 있었다. 그는 백발의 남자로 얼굴빛은 사람 같 지 않게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으며 입가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검은 머리 바이올렛이 깜짝 놀라면서 외쳤다.

“뱀파이어!”

다음 순간, 검은 머리 바이올렛은 그 남자의 옷을 보았다. 그 남자의 옷은 사제들이 입는 검은 사제복이었다.

검은 머리 바이올렛이 크게 놀라며 외쳤다.

“어둠의 왕자인 당신이 어째서……………!”

그는 대답하지 않고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늙은 바이올렛의 커다란 몸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어깨에 메었다. 검은 머리 바 이올렛은 뭔가 알았다는 듯 서서히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저놈은……………! 저놈은 결코 어둠의 왕자가 아니야! 저놈은 가 톨릭의 사제다!”

뱀파이어의 얼굴을 한 사제가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그는 윌리엄스 신부였다.

“틀렸다. 나는 성공회의 사제다.”

“다 죽엿!”

여자들은 검은 머리 바이올렛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그의 주위를 에워쌌다.

“비키지 않으면 다치오.”

윌리엄스 신부가 한 번 옷자락을 휘젓자 무서운 바람이 서너 명의 여자를 삽시간에 저만치로 날려 버렸다. 그때 한 여자가 소 리를 지르면서 뭔가를 꺼냈다.

“은총알! 이거라면!”

마녀 협회의 회원들이라 미신을 믿는 여자들이 많아서인지 이 여자들은 별것을 다 지니고 다녔다. 그녀는 조그만 총도 아닌 45 구경의 커다란 권총을 꺼내 든 것이다. 윌리엄스 신부는 음산한 흡혈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무리 흡혈귀의 힘을 끌어냈어도 총에 맞는다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펑 하는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권총을 든 여자가 우당탕 넘어져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굴렀다. 저만치에 서 거센 북구 악센트의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총알은 늑대 인간에게 쓰는 것일세. 흡혈귀가 아니야.”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총소리가 들리고, 다른 여자 하나가 넘 어져 대여섯 바퀴나 구르다가 쓰러졌다. 놀란 여자들은 윌리엄 스 신부 주변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그것을 보고 흡혈귀의 얼굴을 한 윌리엄스 신부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프로페서(교수)!”

회색 머리카락의 바싹 마른 노신사가 막 윌리엄스 신부가 부 수고 들어온 문 앞에 고색창연한 벨기에제 장총을 들고 서 있었 다. 이반 교수였다. 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철컥 총을 장 전하면서 담담히 말했다.

“48구경 데모 진압용 담담탄이오. 맞아도 죽진 않지만 며칠 동안 고생하게 되지. 그나저나 어서 나오시오.”

검은 머리 바이올렛은 눈을 허옇게 빛내며 이반 교수에게 달 려들었지만 윌리엄스 신부가 기합을 확 뿜어내자 그녀의 발 앞 에 불덩어리가 퍽 하면서 솟아올랐다. 불을 보자 모든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흩어졌다. 불에 타 죽은 마녀로서의 전생을 기 억해 내던 참이라 불에 대한 공포심이 솟구친 것이다. 그 틈을 타 서 윌리엄스 신부는 늙은 바이올렛을 메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실례했소이다. 숙녀 여러분.”

이반 교수도 정확하면서도 재빠른 동작으로 총을 어깨에 메며 점잖게 실례했다는 포즈를 취한 뒤에 한마디 말만 남기고 그 장 소를 떠났다.

검은 머리 바이올렛이 이를 갈면서 발을 구르자 윌리엄스 신 부가 뿜어냈던 불이 사방으로 흩어져 꺼졌다. 그녀는 잠시 그들이 사라졌던 부서진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캬아악 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부서졌던 문이 폭발하듯 완전히 박살이 나 면서 작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반 교수는 회색의 거대한 리무진에 윌리엄스 신부와 늙은 바 이올렛을 실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피가 모자라는지 즉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정신을 잃었다. 이반 교수가 거대한 리무 진을 몰고 가는데 뒤에서 바이올렛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어서….. 어서………….”

“십삼분에서 십사 분 정도만 달리면 병원에 도착할 것이오. 아마도 십삼분 사십 초를 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 절대 안정하시오.”

이반 교수는 여전히 조금도 감정의 변화가 없는 목소리로 말했 으나 바이올렛은 피에 젖은 손으로 차 시트를 움켜쥐며 말했다.

“그들에게 알려야 해요, 그들에게…………. 막을 수 있는 사람들 은 그들밖에 ………….”

“그들?”

“그들…………. 한국의 ………….”

이반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모두 죽었소.”

“아니………… 아니……. 그들은 아직…………. 그들은……………”

무표정한 이반 교수의 얼굴에 아주 희미하기는 했지만 동요의 기색이 휙 스쳐갔다.

“그들이 살아 있단 말이오? 거 반가운 소식이군. 그런데 왜 그들을?”

“마녀 …………… 바이올렛은 지금…………… 엄청난 일을…………….”

“무슨 일 말이오?”

“그 여자는………… 검은 편지………… 검은 편지 집단과… 함께 엄・・・・・・ 엄청난 짓을…………….”

그 말만 남기고 바이올렛은 시트를 긁으며 피투성이로 만들고 는 풀썩 실신했다. 이반 교수는 검은 편지라는 말을 듣고는 눈을 부릅뜨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더욱 힘차게 밟았다. 차는 전혀 흔 들리지 않았지만 속도는 이미 백팔십 킬로미터를 넘어서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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