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25화 – 말세의 조짐들 4 : 인도의 밤
인도의 밤
마을 전체를 뒤덮은 불이 반쯤 꺼져 가고 있었다. 이제 그 마 을에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곳곳의 건물들 태반이 무너져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불에 탄 목조 건물의 재가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은 불에 타들어 가거나 혹은 재에 파묻혀 갔다.
마을 외곽에서부터 접근해 오던 경찰과 군인, 그리고 사건 조 사대는 코를 찌르는 연기 냄새와 시체 타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하군요.”
“생존자가 과연 있을까?”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몹시 굽은 매부리코의 늙은 학자풍 남자 가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얼굴과 온몸에 문신을 하고 천을 몸에 감은 젊은 남자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매부리코의 남자가문신한 남자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시타 박사, 지진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소?”
문신한 남자는 마치 야만인 같아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박사 학위를 지닌 인텔리였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지진이 아닙니다. 케샤브 교수님. 저도 지진계의 기록을 보았 습니다만, 지진과는 충격 양상이 다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요. 제 생각에는 일종의 폭발 같습니다.”
“이 마을은 이렇게 높은 화산 중턱에 있지 않소? 용암의 부분 적 분출 때문에 일어난 재앙이 분명하오. 마을 전체가 지진 직후 불타오른 것도 그렇고……………”
매부리코의 노교수 케샤브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시타를 바라보았다. 시타는 그 눈길을 의식한 듯 말끝 을 흐렸다.
“글쎄요…………….”
그러나 시타의 눈동자엔 이 일이 지진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 다는 확신의 빛이 강하게 감돌고 있었다. 케샤브 교수는 그런 시 타의 눈빛을 피하듯 뒤로 돌아가서 짐에서 간단한 장비 하나를 꺼냈다.
“보시오. 여긴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고 해발 삼천 미터 가 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삼십이 도가 넘소. 아무리 화 재가 마을 전체에 걸쳐 일어났다고 해도 이렇게 떨어진 곳의 기 온을 바꿀 정도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건 분명 용암의 분출이오.”
이 마을에 강렬한 충격이 일어난 것이 지진 관측기에 포착되 고 마을 전체가 박살 나 버린 지도 벌써 일곱 시간이 지나고 있 었다. 이곳은 해발 고도 삼천 미터가 넘는 길도 거의 없는 험한 산중에 자리 잡은 마을이었기에 구조대의 파견도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근에 헬기를 내릴 만한 곳도 없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헬기가 계속 부근을 돌며 살폈지만 최소한 항공 탐색 결과로는 생존자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일단 군과 경찰의 인원이 파견되었고, 케샤브 교수와 시타 박사는 원인 분석을 위한 조사 팀의 선발대 격으로 산을 오르게 된 것이었다.
시타 박사는 이름도 듣지 못한 신기한 토속 종교를 믿는 사람 이어서 차림새는 기이했지만 인도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의사인 케샤브 교수는 그런 시타 박사가 별로 마음에 들 지 않았다.
“하여간 조사를 서둘러야 합니다.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 고・・・・・・ 그리고…….”
“흠….. 이미 일곱 시간이나 지났는데…………. 그리고 또 뭐요?”
비록 노골적으로 시타 박사의 말을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케샤 브 교수의 얼굴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자가 있을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시타 박사는 마을 밖으로 뛰쳐나오다가 죽은 것으로 보이는 시체 한 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시체는 불에 검게 타 있었다.
“이 사람은 왜 여기까지 나와서 죽은 것일까요? 불이 한참이 라 해도 열기가 여기까지 뻗치지는 않았을 텐데.
“용암 때문일 거요.”
“그럴까요? 글쎄요.”
“화상을 입어 죽은 것이니만치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소?”
“아뇨. 이 일은 정말로 신의 …………….”
중얼거리듯 말하던 시타 박사가 말을 끊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소리요?”
케샤브 교수가 의아한 듯 물었지만 시타 박사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불길이 반쯤 꺼졌는데도 마을 안의 열기 는 엄청났다. 구조대와 조사 팀은 보호 장비를 입은 후에야 간신 히 마을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마을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것이 불에 타고 재에 뒤덮여 참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시신들은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 어 내열 피막이 덮인 보호 장갑을 끼고 있어도 열기가 뜨겁게 전 해질 정도였다. 일단 구조대는 시체를 치우는 것보다 혹시라도 생존자가 있는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저기를 들춰 보아도 온통 타고 남은 숯과 재뿐, 도저히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때였다. 연기를 뚫고 한쪽 골목으로 들어갔던 군인 하나가 놀란 듯한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연기 를 헤치면서 그리로 달려가 보았다. 그러고는 그들도 모두 그 자 리에 우뚝 선 채 놀라서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사방은 지독한 열기가 연기와 함께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 꼼짝도 하지 않고 요가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이 시커멓게 그을리고 타 버렸는데도 그녀는 머리카락 하나 그리지 않고 생생했다. 그녀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으 며 얼굴은 아주 편안한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기・・・・・・ 기적이다. 저…………… 저 여자는 구루다!”
군인들 중 독실한 힌두교 신앙을 가진 자가 소리를 쳤다. 그 러자 시타 박사와 케샤브 교수 등도 달려와서 이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조용히 앉아 있던 여자가 조 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눈을 번쩍 떴다. 구조대원들이 “와!” 탄성을 지르면서 그 여자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여자가 째 지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면 안 돼! 그러면 모두 죽어!”
처절한 소리에 구조대원들은 멈칫하고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 었다. 그러나 여자가 주변의 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다시 여자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자가 놀란 표정 을 지으며 소리를 쳤다.
“오지 마! 오면 안 돼! 아악!”
구조대원들은 여자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줄 알고 걱정할 것 없다는 몸짓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음 순간 구조대원들 의 뒤쪽에서도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 인도나 티베트 등지에서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 붙이는 존칭. 스승과 비슷한 의미이다.
“안돼!”
시타 박사였다. 시타 박사가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여자 앞에 거대한 그림자 같은 형체가 일렁였다. 거의 삼층 건물만 한 키를 가진 거대한 그림자였는데, 그 형상은 사람과 비슷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자신 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사방에 자욱하게 퍼진 연기를 헤치고 서서히 사람들 쪽으로 다가들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이기는 했으나 공포 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은 거대한 해골의 형상 그대로였던 것이다.
“칸카라!*”
시타 박사의 고함 소리에 구조대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 두가 뒤로 돌아 달아났다. 그때 거대한 그림자의 손이 한 번 획 지나가자 허공에서 붉은색의 안개덩이 같은 것들과 불덩어리들 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휩싸고 돌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안개가 지나갈 때마다 구조대원들의 방열복이 찢어 져 나갔고, 불덩어리가 스칠 때마다 사람들의 몸에 불이 붙었다.
*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해골, 거대한 해골 형상을 한 죽음의 신으로, 겉모습 은 흉악하나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절규하고 비명을 지르며 스무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온몸이 찢어지고 불길에 휩싸인 채 그 자리에 쓰러져 갔다.
그들이 쓰러지고 난 다음에도 붉은 안개가 지나갈 때마다 그 들의 몸은 바싹바싹 말라 들었고, 그들의 몸에 붙은 불이 계속 타올라 온몸을 새카맣게 태워 버렸다.
시타 박사와 함께 맨 후미에 있던 케샤브 교수가 도망치려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시타 박사는 케샤브 교수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면서 미라처럼 순식간에 말라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와 동시에 케샤브 교수의 몸은 방열복 안에서 불길을 일으키며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아악!”
시타 박사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앉 아 있던 여자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에게로 달려 왔다. 아니, 달려왔다기보다는 날아온 것 같았다. 그녀는 시타 박사의 몸을 눌러 땅에 쓰러뜨린 다음 그의 앞을 막아서 대뜸 그 앞에 앉으며 외쳤다.
“따라해!”
그녀는 아까와 흡사한 요가의 자세를 취했다. 다리를 꼬고 앉 아 양팔을 앞으로 쭉 뻗고서 고개를 든 채 손으로 기이한 무드라* 를 맺어 보였다.
후미에는 시타 박사와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중 두 사람은 재빨리 몸을 낮추지 못해 또다시 붉은 안개와 불 길에 휩싸여 찌그러져 갔다. 시타 박사는 놀라움에 거의 혼이 나 간 상태였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시타 박사는 자이나교의 한 밀종을 믿고 있어 요가 의 자세를 하거나 무드라를 맺어 본 적이 많아 금방 그녀의 자세 를 따라 할 수 있었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다른 대원들은 그 자세가 되지 못해 결국 일이 분 만에 한 명도 남지 않고 숯덩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시타 박사와 정체 모를 여자는 요가 자세를 취한 뒤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 리에 앉아 있었다.
불덩어리와 붉은 안개는 마치 두 사람을 찾는 듯 사방을 윙윙 거리며 날아다녔다. 주변의 열기는 몸이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 를 것처럼 뜨거웠다. 거기에다가 공포심 때문에 심장이 거의 목 구멍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시타 박사는 그 무엇보다도 강한 죽음의 공포 덕에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고 참아 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무언가가 어깨를 툭 치는 바 람에 시타 박사는 눈을 떴다. 그 여자였다.
* 밀교에서 이용되는 인장법, 수인(手印)이라고도 하며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주로 부처의 손 모양을 본뜬 것으로, 손만으로 하는 것과 전신을 이용하는 것이 있다.
“어서 내려가자!”
여자는 서둘러 시타 박사를 잡아끌고 달렸다. 주변에는 불덩 어리나 안개가 어디로 갔는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시타 박사 는 공포에 눌려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었다. 여자가 급히 끄는 대 로 따라가느라 몇 번이나 뒹굴고 넘어진 사이 어느새 마을 밖으 로 빠져나왔다.
마을 밖으로 나오고 열기도 조금 가시고 공포에 질려 굳은 몸 도 어느 정도 풀어져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시타 박사는 정신이 들자 자신을 마구 잡아끄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당신은 누구요! 이게………… 이게 대체 뭐요?”
시타 박사는 너덜너덜해져서 몸에 달라붙는 방열복을 떼어 내 어 땅에 뿌리치면서 외쳤다. 시타 박사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그런 그를 여자는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 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왜 오다니! 이 마을에 사고가 나서 구조하러………….”
그 말에 여자는 싱긋 웃어 보였다. 방금 그 목불인견의 참상을 본 사람의 표정 같지가 않아 시타 박사는 등골이 써늘해졌다.
“사고가 아냐.”
“사고가…………… 사고가 아니면……?”
별안간 시타 박사는 아까 나타났던 거대한 해골의 그림자가 생각나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태연하게 지켜보던 그 여자가 시타 박사에게 말했다.
“칸카라를 알아보던데…………… 어떻게 알지?”
“그・・・・・・ 그냥 그런 것 같았소. 그런데 …………….”
“아까 날아다닌 게 뭔지는 알아? 그건 다키니*야.”
“다키니? 그럼 ・・・・・・ 흡혈신이란 말이오?”
“응.”
여자는 상당히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커다란 눈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눈빛이 아주 특이했다. 시타 박사는 자신이 꿈을 꾸 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뺨을 꼬집어 보았다. 정녕 꿈은 아니 었다. 도리어 화상을 입었는지 뺨은 보통 때 꼬집었을 때보다 몇 배나 더 아팠다.
“어…… 어떻게………….
“당연하잖아. 해골존 칸카라는 지옥의 왕이야. 그러니까 다키 니 정도는 당연히 수백 마리씩 거느리고 있을 거 아냐.”
시타 박사는 다리가 풀려서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털썩 힘없이 주저앉은 그는 얼이 빠진 듯 눈물 젖은 눈으로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옷자락 하나 불에 그슬리지 않았고 얼굴이나 몸 역시 재한점 묻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시타 박사는 그 여자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몸을 떨었다.
*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일종의 흡혈귀, 흡혈귀지만 서양의 흡혈귀와는 같지 않 으며, 보통 공포의 상징인 두르가 여신이나 흉악한 형상의 차문다 여신과 함께 나 타난다. 두르가 여신은 종종 머리를 잘라 들고 있는 무두(無) 여신상으로 나오 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목에서 솟구치는 피를 마시는 그녀의 종자가 다키니이다.
“그・・・・・・ 그런 게 어떻게…….”
“때가 되었거든……”
그러면서 그녀는 불타는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저자들이 날 잡아놓고 해치려 했어. 그래서 불러낸 거야…………….”
“불・・・・・・ 불러내요? 당신이?”
“그래. 안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그・・・・・・ 그럼…… 당신이 ……………. 저 마을을 전부?”
여자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저자들은 칼키파야. 그리고 나를 해치려 했어……………. 당신 친 구들이 저렇게 된 건 미안해. 하지만 할 수 없었어. 아무도 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가만! 당신・・・・・・ 당신 지금 제정신이오? 당신이 해골을 불 러내고……………. 그래서 저 마을을 초토화시킨 거란 말이오? 수백명을 죽이고 말이오?”
“죽여? 누가 누굴?”
“저 마을 사람들 말이오!”
“죽이다니? 아냐, 난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
시타 박사는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비록 남들이 이상하다고 수군대는 부류에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골을 불러낸다느니 다키니를 부른다느니 하는 말을 믿을 정도로 맛이 가지는 않았 다. 더구나 방금 그 귀신같은 것들을 자신이 불러냈다고 해놓고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고 하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냔 말이다.
“나는 해골과 다키니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치려 했지 만…………… 피에 굶주린 존재를 불러낸 게 아니었어. 당신들이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당신들이 뛰어들어 서 일을 망쳤어. 이젠 기운도 없고…… 끝이야.”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여자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아무튼 빨리 내려가 위험해.”
“그것들이 또 나온다는 거요?”
“아니. 이제 안 나와. 하지만 칼키파 녀석들은 죽지 않았어.”
“무슨 소리요?”
“칼키파는 말세를 기다리는 자들이야. 그래서 죽지 않아. 위 험해. 해골보다 훨씬 무서워. 어서 내려가서 다시는 아무도 못 올라오게 해. 알았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저 마을엔 죽은 시체들밖에 는 없지 않소? 누군가가 여기를 수습해야만……………. 당신은 제정 신이 아니니……. 으흑. 하지만………… 하지만…………….”
시타 박사는 울컥 울음이 치밀어 올라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여자는 그런 시타 박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체들? 아냐, 저들은 살아 있어. 일어나지 못할 뿐…………. 저 들은 죽지 않을 거야. 칼키 (비슈누의 열 번째 아바타라)가 다시 올 때까지는 절대로・・・・・・ 절대로…………….”
시타 박사는 어이가 없어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순간 여자 는 얼굴빛이 해쓱해지더니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다. 탈진한 것 같아 보였으나 여자는 다시 요가 자세를 취했다. 시타 박사는 여 자가 어찌 되었든 그냥 놓아두고 울고만 있었다. 그때 여자가 기 운 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어서 내려가. 그들이 와.”
시타 박사는 멍한 눈길로 뒤를 돌아보고는 그 자리에서 까무 러칠 뻔했다. 마을 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라 수십, 수백은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도대체 마을 안에 살아남은 것이 무엇이기에? 혹시 이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아니, 온통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시타 박사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서워 서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외치면서.
그러나 다시 마을 쪽을 보았을 때, 움직이는 검은 형체들이 아 까보다 조금 더 접근해 있었다. 아직 연기에 가려 자세히 형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편이 더 공포스러웠다. 시타 박사는 벌떡 일어나 멍한 표정으로 앉은 여자의 옷깃을 잡아끌면서 함께 가자고 외쳤다.
“나, 난………… 안돼…………. 혼자 가…”
여자는 다 죽어 가는 듯한 힘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시타 박 사가 잡아끄는데도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어서 도망칩시다!”
다가오는 형체들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시타 박사는 공포에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이 여자가 미쳤든 무슨 신통력이 있는 구루인지는 몰라 도 어쨌든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던가.
시타 박사는 대뜸 여자를 번쩍 들어 업고 산길을 달려 내려가 기 시작했다. 마을 쪽에서 다가오던 그 검은 형체들이 시타 박사 의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시타 박사는 그 형체들을 자세히 살피려고 돌아볼 생각은 아예 하지 도 못했다.
만약 여자의 말대로 시커멓게 그슬린 시체들이 떼거지로 일어 나 자신을 쫓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을 자기 눈으로 본다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시타 박사는 죽을힘을 다해 여자를 업고 산길을 한 시간이 넘 게 미친 듯이 달렸다.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여긴 다음에야 시타 박사는 여자를 내려놓고 털썩 자리에 쓰러져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헉헉거리며 숨을 돌리고 나서 시타 박사가 말문을 열었다.
“그게………… 그게 뭐였죠?”
그러나 여자는 눈을 멍하니 뜬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타 박사는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눈앞에 이 여자가 앉아 있지 않았다면 허깨비를 보았다거나 자신의 정 신이 이상해졌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분명 무 게가 있는 진짜 사람이었고 허깨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까 본 것들도 전부…….
시타 박사는 생각을 돌리기 위해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로파무드…………….”
“당신 이름이오?”
“응……. 도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그러면서 로파무드는 여전히 부연 안개가 낀 것같이 멍한 눈동자를 시타 박사 쪽으로 돌렸다.
“부탁이라뇨?”
“누구에게 연락을 좀 해 줘…………….”
“누구 말이오? 친척? 친구?”
“아주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알려 줄 것이있어……………. 그들이 없으면 안 돼…”
혼자 중얼거리는 로파무드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그녀의 눈은 먼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