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6화 – 황금의 발 2 : 부흥회장
부흥회장
숲을 빠져나와 길가로 내려선 현암은 건물을 향해 뚜벅뚜벅,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난날 운무진(雲)이 펼쳐 졌던 좁다란 산길은 이제 밤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길로 변해 있었다.
점점 건물이 가까워지면서 현암은 이곳에서 부흥회 비슷한 것 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방에 플래카드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어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백승무라는 목사가 신앙 간증과 안수 치료를 같이 하는 모양이었다. 현암에게는 이 모든 것이 결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신앙 간 증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정 신력으로 병을 치료하는 안수의 힘은 다른 사람들보다 현암 자 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뭔가 수상쩍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무엇인가 정상적이 아닌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 이 강하게 들었다.
해동밀교의 무너진 터 위에 선 건물, 그리고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비록 정신이 나가기 는 했지만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황금의 발’ 이란 말이 나왔을 때의 그 표정은 지어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괴이한 죽음 또한 직접 목 격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들은 이 부흥회장에서 나온 것이 분명 했다. 그들이 죽은 곳은 부흥회장을 제외하면 큰길이나 마을에 서 꼬박 하루를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깊은 곳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등산화도 신지 않았고, 옷차림 또한 산길을 걷는 사람 들의 복장이 아니었다.
어쨌든 백승무 ‘목사’라면 여기는 개신교의 한 종파가 차린 부 흥회장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보통은 장로교나 감리교 등등의 종파 이름이 플래카드에 덧붙여 씌어 있게 마련인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암은 더더욱 석연치 않음을 느끼며 둘러 보았다. 그중 어느 플래카드인가에 기다란 종파 이름이 적혀 있 는 것이 보였다. 종교에 대해 어지간히 알고 있는 현암으로서도 처음 듣는 단체였다.
‘흥, 그러면 그렇지.’
현암은 속으로 분명 교단에서 축출당한 이단 종파가 아니면 마구잡이로 만들어 낸 뜨내기 종파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할렐루야, 아 멘, 찬미 예수 등등의 소리들이 거의 부르짖듯이 들려오는 것이 벌써부터 현암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렇게 소리소리 지르는 교단치고 제대로 된 데가 드물던데.’ 갈수록 현암은 이 백승무 목사가 이끄는 교회에 대해 혐오감 이 짙어졌다. 사실 상당수의 개신교 교회들을 현암은 그리 마음 에 들어 하지 않았다. 박 신부가 가톨릭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 다. 현암은 종교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훌륭하게 신 앙생활을 하며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자신들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르며, 하 나님만을 믿고 따르는 것을 천당 가는 우선권을 확보한 듯 노래 처럼 부르짖는 교회들과 신도들・・・ 그리고 수십, 수백억의 막 대한 돈을 들여 한 동네에 몇 개나 되는 거대한 교회를 지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꾸미는 ‘역사’라고 하는 등등의 교회와 신도 에 대해서는 코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차 한 대 들어올 수 없는 주악산 귀퉁이에 이 정 도 건물을 짓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오로지 사람의 노동력 에만 의지했다면 도심에 교회를 짓는 것 이상으로 힘이 들었을 것이고. 거참, 성전은 사람들의 마음에 짓는 것이지, 돈과 콘크 리트로 짓는 건 아닐 텐데.’
현암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흥회장의 문턱을 넘어섰다. 아 까 죽어 넘어진 다섯 명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너무나 쉽 게, 너무도 어이없이 사람들이 죽었고, 이곳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 지? 현암은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참기 힘든 무엇인가가 올라 오는 것 같았다.
마침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할렐루야 아멘을 외쳐댔 다. 안 그래도 귀가 예민한 현암은 수백 명이 한꺼번에 지르는 소리를 듣자 귀가 다 멍해졌다.
‘그동안 난 참 많이 참아 왔지. 모든 것에 있어서………….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겠어.’
현암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보려고 사람들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줄을 서서 늘어선 사람들에게 한 남자가 안수를 주고 있었다.
백승무 목사인 듯싶었다. 먼저 다리가 다쳤다거나 눈이 잘 뜨이 지 않는 등의 사람들이 그 앞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 면서 ‘믿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이어서 목사가 더 크게 죄를 뉘 우치라고 외치자 병자들이 그 말에 따랐다. 목사가 큰 소리로 기 도를 하면서 병자들을 만졌다. 그리고 말했다. 다리가 불편한 자 에게는 걸으라고, 눈을 감은 자에게는 뜨라고…………….
순간 군중들 모두가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면서 환호를 올 렸다. 곧이어 다리가 불편한 자들이 마구 일어섰다 앉았다 하고,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은 보인다고 소리쳤다. 환호성이 사방을 가 득 메우고, 사람들은 거의 가무러칠 것 같은 광란의 도가니 속에 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현암은 눈을 감았다.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아냐………. 아냐………. 이건 결코 제대로 된 것이 아니야…………. 현암은 아직까지 영력을 직접적으로는 느낄 수 없었고, 초자 연적인 존재를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느낌은 있었다. 눈을 감았을 때에만 느껴지는 흐릿한 느낌. 그 느낌이 마음속에 서 소리치고 있었다. 저건 아니라고. 성스러운 기운이 아니라 죽 은 남자의 몸에서 빠져나갔던 것과 같은 어둡고 검고 음습한 기 운일 뿐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 사람의 죽은 얼굴이 정신 잃은 여자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현암은 눈을 뜨 고는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현암을 말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안수를 받기 위 해 계속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모두들 현암도 다른 이 들처럼 어딘가 불편한 곳을 안수받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암은 단상에 올라가자마자 분노로 번뜩이는 눈빛으로 기도성과 아우성이 들끓는 주변을 둘러보았 다. 그리고 공력을 단전에 집중하여 사자후(獅子吼)의 수법으로 무섭게 일갈했다.
“갈(喝)!”
현암의 사자후는 무시무시한 소리로 사방을 가득 채웠다. 사 람들의 아우성도, 마이크에서 울려 나오는 사회자의 음성도, 기 도성도, 환호성도 사라져 버렸다. 주변의 유리창 몇 장이 와르르 깨져 나가고, 근처에 있던 전구들이 모조리 터져 단상은 삽시간 에 어두워졌다. 너무나도 엄청난 소리에 사람들은 놀라서 주저 앉기도 했고, 까무러친 여인네들도 몇 명이나 되었다. 수백 명이 나 되는 사람들의 소란이 일순에 가라앉고 정적이 흐르자, 현암 은 백 목사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백승무 목사요?”
백 목사는 너무도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현암을 바라보았 다. 현암은 단상 주변을 쓰윽 훑어보았다. 사자후로 전등이 모두 꺼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좌우간 몹시 다행이라 여겨 졌다. 얼굴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자기 얼굴을 확인할 정도로 단상 위가 밝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뒤 현암은 말했다.
“당신, 정말로 사람들을 고쳐 주고 있는 거요? 정말로?”
현암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조금 충격에서 벗어난 젊은 청년 들이 ‘저거 뭐냐?’ ‘끌어내!’ 등의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단상 위 로 뛰어올라 오려고 했다. 그러나 백 목사는 당혹한 표정을 지으 면서도 그들을 제지하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단상 밑 에 있던 한 남자가 덩달아 손을 흔들었고, 곧이어 청년들이 주춤 하면서 멈춰 섰다. 대신 여전히 현암을 에워싼 상태였다. 현암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백 목사를 쏘아보았다. 백 목사가 느닷없 이 소리를 쳤다.
“여기! 믿지 않는 형제가 있습니다!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현암이 나직하게 되받았다.
“크게 이야기할 것 없소. 나에게 한 번만 보여 주면 됩니다.”
현암은 벌벌 떨면서 주저앉아 있는 한 사람을 일으켰다. 언뜻 보기에도 닳고 닳은 것 같은 얼굴의 중년 남자였다. 그 남자는 현 암을 보고 뭐라 말하려는 것 같았으나 현암과 눈빛이 마주치자 입을 꾹 다물었다. 현암은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시오?”
“팔…. 팔이…..”
“팔을 쓰지 못합니까? 왼쪽?”
그 남자는 두려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암은 훗 하며 웃고는 그 남자를 일으키면서 왼팔에 일성)도 못 되는 약한 공력을 넣었다. 반사적으로 힘이 들
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나 사기로군.’
현암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 남자의 왼팔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삼성(三)의 공력을 남자의 왼팔에 흘려 넣으면서 말 했다.
“팔을 못쓰니 감각도 없으시겠군요.”
그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왼팔에 기이한 통증이 오 는 것을 느꼈다. 현암은 천정개혈대법을 연마하면서 혈도에 대 한상당한 지식을 얻게 되었고, 막강한 공력 또한 운행할 수 있 었기 때문에 힘을 좀 들이면 혈도를 마비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혈도를 찾아 마비시키는 능 력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손으로 잡고 잠시 동안 공력을 밀 어 넣어 혈도를 마비시킬 수는 있었다.
그 남자는 고통스러운데도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땀만 뻘뻘 흘렸다. 현암은 남자의 혈도가 완전히 마비된 것을 확인하고 다 시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백 목사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팔을 움직이게 해 보시오. 그러면 믿겠소.”
사람들이 와하고 분노의 소리를 질렀다. 목사님을 시험하려는 악마라는 사람도 있었고, 수치스러우니 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단상으로 몰려들어 금방이라도 현암을 끌어 내릴 기세였다. 하지만 백 목사가 무거운 얼굴로 손을 들어 보이자 금세 잠잠해졌다. 현암은 미동도 하지 않고 백 목사에게 말을 건넸다.
“다시 한번 말하겠소. 이 사람을 고쳐 보시오.”
그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훌쩍 뛰어나와 단상 위로 올라왔 다. 청년 몇 명이 그 사람을 저지하려 했지만, 그 사람은 놀랍게 도 청년의 머리 위를 빙글 돌며 뛰어넘어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단상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 현암은 깜짝 놀랐다. 바로 와불 사건 때 만난 적 있는 우도방(右道)의 도인 (人) 정선생이었다.
현암은 흠칫 놀라 쥐 같은 정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그런 기색을 눈치챈 듯 정선 생이 현암에게 말했다.
“죽은 걸로 알았는데 살아 있었구먼. 반갑네.”
현암은 까닥 목례만 했다. 그의 말투가 아무래도 자기편같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정 선생이 말을 이었다.
“아무 말 말고 내려가세. 공연히 남의 잔치에 훼방 놓지 말고.”
현암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 죽은 다섯 명 때문에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거부하는 현암을 보고 정 선생 역시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여기 백 목사님은 허튼 일을 하실 분이 아니네.”
그 말을 듣자 현암은 분통이 터졌다.
“참견 마시지요.”
그러자 정 선생이 호통을 쳤다.
“어허! 젊은 사람이 왜 이리 막무가내인가? 어서 비키게나!”
정 선생은 호통을 치면서도 계속 현암을 향해 눈을 끔벅였다. 하지만 현암은 화가 났던 참이라 그런 눈치를 본 척도 않고 되받 았다.
“허튼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이 사람을 정말 고치는지 아 닌지 보면 알게 되겠지요!”
그러자 백 목사가 침울한 얼굴로 조용히 걸어왔다. 희한하게 도 백 목사는 화도 내지 않았고, 흥분하지도 않은 듯했다.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능력을 뽐내려는 것은 아니오. 모든 것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 니…………. 당신도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백 목사는 현암에게 잡혔던 사람의 왼팔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 선생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펄쩍 뛰어 군중 속에 파묻혀 버렸다. 현암은 정 선생이 사라진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백 목사가 애쓰는 광경을 보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왼팔의 혈도를 짚인 남자는 처음에는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차츰 놀라움과 안도감으로 가득한 얼굴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현 암은 그 모습에 조금씩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이게…… 이게 뭐지? 그렇다면 백 목사가 정말 능력이 있단 말인가?’
잠시 후, 백 목사가 아멘 하며 기도를 끝마치고 손을 떼자 왼 팔을 못 쓰게 되었다는 남자가 펄쩍펄쩍 뛰며 외쳤다.
“나았다! 나는 다 나았다!”
남자는 왼팔을 휘둘러 보이며 외쳤다. 현암은 그만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면서 아멘 할렐 루야를 부르짖었고 현암을 욕하면서 단상 위로 올라오려고 난리 를 쳤다. 백 목사가 그들 앞을 막아서면서 소리쳤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하지만 저 녀석은……………”
뛰어올라 오려던 청년 하나가 거칠게 말하자 백 목사가 고개를 저었다.
“저 청년은 믿음이 부족할 뿐이지,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자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저 청년을 치려거든 차라 리나를 치시오.”
현암은 얼굴까지 붉어져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단상 위의 전구들이 깨어지지 않고, 그래서 뭇 사람들 앞에 얼굴이 보였더라면 창피해서 월향검으로 자살이라도 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백 목사가 현암 에게 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당신・・・・・・ 사탄을 믿습니까?”
현암은 기가 막혔다. 사탄과 가장 대립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자신일 테고, 실제로 자신은 아스타로트나 블랙엔젤 같은 지옥 의 악마들과 대면하지 않았던가?
현암이 고개만 젓자 백 목사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당신 몸에는 사탄의 힘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당신을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사탄의 힘을 끊어 버리십시오.”
그쯤 되자 현암도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탄의 힘 같은 것은 없소.”
“그러면 당신이 아까 보인 그 힘은 무엇입니까? 주의 권능입니까?”
현암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현암의 힘은 인간, 즉 도혜 선사 의 공력을 받은 것이니 주의 권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니라고 한다면 사탄의 힘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주의 권능 이라고 말한다면 자신의 근본을 속이는 셈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건 아니지만……………”
백 목사가 고개를 저었다.
“끊어야 합니다………….. 유혹을 이기기 어렵겠지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백 목사는 단상 아래의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현 암은 정말 암담해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현암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잡힐 현암은 아니었지만, 지금 자 신이 힘을 썼다가는 사탄의 힘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닌가? 잠 깐 머뭇하는 사이, 일군의 청년들이 현암을 에워쌌다. 백 목사가 말했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안수를 마치고 기도 를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현암은 그냥 잡혀 줄까 도 싶었만, 자신이 잡히면 월향검이 사람들에게 발견될 것이 분 명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월향을 그냥 놓아둘까? 백 목사는 분명 영이 봉인된 월향을 보면 사탄의 힘이라고 말할 것 아니겠는가? 자신은 괜찮지만, 월향검이 그런 취급을 당하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월향검을 건드리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에 생각이 미치자 현암은 휙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나는 갈 길을 가겠소!”
청년들이 달려들었으나 현암은 오른팔에 공력을 가하면서 획휘둘렀다. 현암의 공력은 대단하여 그 팔에 맞은 청년들이 한 번에 대여섯 명이나 와르르 넘어져 버렸다. 단상을 지켜보던 다른사람들이 더 왁자지껄하게 외쳐댔다.
“정말 귀신 들린 사람이다!”
“사탄이다!”
“잡아라! 신성한 모임을 더럽힌 놈!”
“잡아야 한다!”
백 목사가 뭐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저지하려 했으나 그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성난 파도처럼 단상으로 덮쳐들었다. 사람들 의 수가 많은 만큼 그 기세는 엄청났다. 현암은 순간 공력을 끌 어 올려 쓸어 버릴까도 생각했으나, 앞장서서 달려오는 사람들 은 어이없게도 힘없는 아녀자들과 할머니들이었다. 그리고 아이 들도 있었다. 현암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쩌다가….?
현암은 체념해 버렸다. 공력을 발휘하면 도망칠 수 있겠지만, 힘을 마구 쓸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나 할머니들을 치라고 도혜 선사가 공력을 넣어 준 것은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맞아 죽는 한 이 있어도 힘을 쓸 수는 없었다.
현암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크고 작은 수 많은 주먹들이 두들기고 수많은 발들이 걷어찼다. 공력을 돌려 몸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온몸을 방어할 수는 없었다. 현암의 귀에 퍽퍽 하는 소리만 들리며 통증조차 느끼지 못할 즈음, 갑자기 날카로운 귀곡성이 소름 끼칠 정도로 처절하게 울리자 사람들이 뒤로 와락 물러섰다.
‘월향…….’
현암은 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공력으로 어느 정도 보호한 몸이었음에도 허리를 펴기조차 힘겨웠 다. 눈물이 핑 돌았다. 월향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뛰쳐나가다니. 공력을 받지도 못한 상태로…………….
월향검은 무서운 기세로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현암의 주 변을 빙빙 맴돌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서고, 어 떤 이들은 주저앉기도 했으나 일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칼이 혼자 날아다닌다!”
“귀신이다!”
“저놈은 정말 사탄이다!”
“죽여라! 죽여!”
사람들이 다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려고 하자 월향검이 공중 에서 파르르 떨며 흰빛을 뿌렸다. 월향검은 비록 공력을 받지 못 해 오래 날 수 없었지만, 현암이 한 번만 공력을 불어 넣는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송장으로 만들어 버릴 기세였다. 월향 에겐 충분히 그럴 만한 힘도 있었다.
현암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면서 마음속으로 월향을 불렀지만 몸이 직접 닿아 있지 않아 자신의 마음이 월향에게 전달되지 않 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왼팔을 뻗었다. 월향은 고민하는 듯이 한 번 가냘프게 울고는 현암의 손목으로 빨려들듯 돌아왔다. 현암 은 눈물을 흘리면서 오른팔로 월향이 꽂혀 있는 왼쪽 손목을 감 싸 쥐었다.
‘월향…… 그래서는 안 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돼……………. 차라리 어디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피 해. 응? 어서…………’
월향은 부르르 떨기만 할 뿐, 현암의 손목에서 빠져나오려 하 지 않았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현암을 끌고 달아나려는 듯 현암 의 팔을 당겼다. 순간, 현암을 에워싼 사람들이 현암을 잡아끌었 다. 현암은 누군가가 왼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고는 반사적 으로 오른손으로 월향검이 있는 왼쪽 팔목을 꽉 쥐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월향검을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는 않 았다.
현암은 공력을 오른손에 집중하여 왼팔을 잡은 자세 그대로 굳혔다. 이러면 아무도 그의 손을 떼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힘을 주어 월향검이 현암의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갔지만 현암은 그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다시 현암의 몸에 매질이 시 작되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선동을 한 것도 아니 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암을 때리는 데 추호의 주저도 없었다.
어떤 여자는 마이크 대를 뽑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몽둥이를 들고 현암을 때렸다. 그들은 사탄을 잡으려는 것뿐, 사람을 친다 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만으로 판단할 뿐, 다른 것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현암을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면서도 한 대 한 대마다 그들은 할렐루야 아멘 등의 기도성을 기꺼이 외쳤다. 그렇게 몰매를 치 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때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었으니까. 이제 그들은 백 목 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그들만의 하나님 과 함께 있을 뿐이었다. 그런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현암의 의식은 점점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