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4화 – 재회 4 : 짧은 마주침

랜덤 이미지

퇴마록 말세편 2권 4화 – 재회 4 : 짧은 마주침


짧은 마주침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톡 건드리는 바람에 아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누구야!”

아라는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의 목소리가 빙빙 메아리치면서 사방으로 울렸다.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사방은 캄캄했다. 너무도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쉿!”

누군가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구야! 여긴 어디야?”

“조용……………. 떠들면 안 돼. 그러면 녀석이 올지도 몰라.”

준호의 목소리였다.

“녀석이 누구야?”

“우릴 잡아 가둔 녀석.”

“씨이! 그러니 도움을 청해야 할 것 아냐!”

“안 돼! 조용! 녀석이 들으면 큰일 나. 조용히 해.”

“빨리 빠져나가야지!”

“안 돼. 우린 모두 꽁꽁 묶여 있어.”

준호의 말을 듣고 보니 몸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에 꽁꽁 묶여 있는 모양이었다. 쓰러져 있는 바닥은 물 같 은 것으로 질퍽거렸다. 고약한 냄새도 났다.

“나 여기 싫어. 나가구 싶어!”

“조용!”

“싫어!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아라가 소리를 지르자 나직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해.”

아라는 흠칫 놀라서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 목소리는 어디선 가들은 것도 같은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러 낮게 깐 음성 같아서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야?”

“조용히 해. 녀석이 들으면 우린 위험해져.”

“녀석이란 게 누구야, 도대체?”

“종말교의 인형이 분명해.”

아라는 의아해졌다.

“종말교 인형이라구?”

“그래. 아까 그 수위. 제길, 수위가 종말교 인형일 줄은 몰랐”어.”

이번에는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줄을 끊을 수가 없어. 난 쇠줄로 묶여 있어.”

“나는 쇠줄은 아니지만…………… 풀 수가 없어.”

아라는 뒤로 묶인 손목을 당겨 보았다. 무슨 천 같은 것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는 듯했다.

“종말교가 뭐야? 아까 수위가 우릴 이렇게 묶었단 말야? 도대체 왜? 무슨 죽을죄라도 졌나?”

“우릴 죽이려 할 거야.”

아라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았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우리를?”

“보면 안 되는 것을 봤거든.”

“그게 뭔데?”

“아까 그 망령, 주석이의 원혼 말야.”

아라는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라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했다. 그냥 냅다 울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었지 만약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원혼?”

나직한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그래. 이제야 알겠어, 제기랄.”

“뭘?”

“주석이는 종말교의 뭔가를 봤어. 그래서 죽음을 당한 거야. 옥상에서 떠밀려 떨어져 버린거지. 그런데 준호 너하고 내가 그 일을 수상하게 여기고 조사하는 것 같으니까 주석이의 무덤을 팠을 거야.”

“넌 누구야?”

아라는 나직한 목소리가 아까 자신의 입을 막았다가 수위에게 맞고 쓰러진 그 사람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 공과 준호는 아라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말하고 있었다.

“주석이의 얼굴이 모두 꿰매졌던 것은 그러면….?”

“그래. 우리에게 영력이 있는 것을 알고 소혼(魂)을 해서 뭔 가를 알아낼까 봐 혼박술(魂術)을 쓴 게 분명해. 그리고 인형 을 들여보내서 감시하다가 걸린 거야. 우리가 너무 쉽게 봤어. 종말교는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집단이군.”

“종말교가 뭔데 그래?”

아라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어두 운 공간 내부를 빙빙 돌며 메아리쳤다. 한참이 지나자 준호가 주 저하듯 말했다.

“사이비 종교야. 아니, 사이비 정도가 아니라 아주 무서운 이단 종교지.”

“인형은 또 뭔데?”

“그들이 조종하는 사람들이야. 제길, 그런 놈들이 아직도 있을 줄은…….”

“잠깐!”

나직한 목소리가 대뜸 긴장하며 말을 막았다. 그러자 갑자기 조르륵거리며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나직한 목소리가 한숨을 쉬며 되받았다.

“큰일 났군.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

“어딘데?”

“옥상의 물탱크가 분명해. 그 인형 녀석이 물을 튼 것 같아. 여 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우린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될 거야.”

이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직한 목소리는 침착했으 나아라는 대번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죽게 될 거라구? 이런 캄캄한 곳에서 싫어! 그건 싫다구!

아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라가 울음을 터뜨리든 말 든 물소리는 점점 거세지더니 급기야는 폭포처럼 울려왔다. 바 닥의 물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라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꿈틀거려서 일어나려 했으나 허리를 일으키는 것이 고작일 뿐, 손발이 묶여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라는 나은 것 같았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볼 때 준호와 다른 한 명은 꽁 꽁 묶였는지 아예 허리조차 펴지 못했다. 그때 준호가 소리쳤다. 

“아이구! 어떻게 해!”

나직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졌다.

“사부! 물이 점점 차 와! 이러다간 익사한다구! 어떻게 해봐야지!”

아닌 게 아니라 물은 물탱크 안을 채우고 올라와 앉아 있는 아 라의 허리께까지 차올랐다. 그러고도 수위(水位)는 계속 기분 나 쁘게 몸을 간질이며 위로 올라만 오는 중이었다.

“사부, 수형도로는 쇠줄을 끊을 수가 없어. 손을 못 풀면 인을 맺을 수 없잖아.”

“그래도 어떻게든 해 봐! 여기서 명을 마감할 수는 없잖아!”

준호와 준후가 목소리를 높이며 외치자 아라도 덩달아 외쳤다.

“사부라니? 그건 또 뭐야?”

그 말에 준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준후는 내 사부란 말야. 아무튼 그만좀 떠들어. 지금 그런 것을 논할 계제가 아니잖아.”

“너야말로 뭔 소리? 논할 제가 어쩌고 어쩐다구? 너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좀 하지 말아줄래?”

아라가 지지 않고 준호에게 투덜거리자준후가 나섰다.

“아라야, 너를 묶은 줄은 쇠줄이 아니라면서?”

“그런데?”

“너 조요경은 가지고 있니?”

아까 엉겁결에 움켜쥔 조요경이 아직도 손에 있는 것을 아라는 느낄 수 있었다. 

“응.”

“네 조요경으로 어떻게 줄을 끊어 볼 수 없겠니?”

“내 조요경으로 뭘 어쩐다구? 이건 아무 힘도 없어. 다른 동물들을 부르는 정도밖에는……………. 으악! 엄마야!”

갑자기 아라가 비명을 지르자 준후가 놀라서 물었다.

“뭐야? 응?”

“엄마, 난 몰라. 어떻게 해. 앙앙…….”

아라가 울음을 터뜨리자 이번에는 준호가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이 일촉즉발인데 울고 짜다니, 원…….”

“야, 인마! 쥐가 지나갔단 말야! 아앙. 그것도 얼굴로. 징그러! 더러워!”

아라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준후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 안에 쥐가 있다구? 잘됐다!”

“잘되긴 뭐가 잘돼! 날 놀리다니! 너 준후 오빠 맞아?”

“아라야, 조요경으로 쥐를 시켜서 줄을 쏠게 해. 네 손을 묶은줄 말야. 그러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준후의 제안에 아라는 기겁을 했다.

“으악! 쥐를?”

아라가 경악하자 준호도 준후의 말을 거들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야! 절체절명에서 생로(生路)를 찾은 거라구!”

그러나 아라는 어두워서 볼 사람도 없었지만 죽어라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싫어! 쥐는 더럽고 징그러워서 싫어! 차라리 죽을래!”

아라는 조요경으로 모든 동물과 약간의 식물까지도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쥐만은 딱 질색이었다. 차라리 바퀴벌레라면 견 딜 만했다. 실제로 급했을 때 부려 본 일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동물들을 부린 경험이 있었다. 개, 고양이, 비둘기, 까마 귀, 하루살이, 모기, 파리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시커멓고 지저분 하고 번들거리는 앞니에 교활한 눈과 징글맞은 수염이 돋아난 쥐 만은 한 번도 부려 본 일도, 부릴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때 준호가 화를 내면서 뭐라 소리치려는 것 같았지만 준후 의 차분한 목소리가 준호의 목소리를 누르고 흘러나왔다. 물은 앉아 있는 아라의 가슴까지 차오르고 있었고 쓰러져 있는 준 호는 거의 입 아래까지 잠길 판이었다.

“아라야, 방법이 없어. 지금 여긴 꽉 막힌 공간이라 큰 술수를 쓰면 우리가 더 위험해. 더구나 수인을 맺을 수 없으니 방법은 네가 줄을 풀고 우리를 풀어 주는 것뿐이야.”

“하지만…………… 하지만 쥐는…………… 쥐……. 으윽.”

“아라야…………….”

준후가 다시 한번 간곡한 목소리로 말하자 아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아라의 손에 쥔 조요경에서 한 줄기 빛이 흘 러나와 컴컴한 물탱크 안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아라는 얼굴이 새파랗게 사색이 된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찍찍 소리를 내며 쥐 두어 마리가 아라의 손목 쪽으로 다가오자 아라는 손을 부들 부들 떨었다.

그때 끼이익 하는 금속성의 마찰음이 길게 들려왔다. 아라는 순간 놀라 조요경에서 힘을 풀었다. 조요경의 빛이 사라졌는데 도 물탱크 안에는 여전히 어디선가 희미한 빛이 흘러들고 있었 다. 아라는 그 짧은 순간에도 준후의 얼굴을 보려고 눈을 돌렸으 나준후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렸어!”

거의 물에 빠진 상태였던 준호가 외쳤다. 아라는 눈을 뜨고 빛 이 흘러 들어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물탱크의 열린 구멍으로 아 까 그 수위가 쓰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으악!”

아라는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발작적으로 조요경을 꽉 움켜쥐 었다. 그러자 갑자기 쥐들이 튀어 오르면서 아라의 손목에 매달 렸다.

수위가 서서히 물탱크 안으로 몸을 들이밀고 내려왔고 그의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그자는 안에서 들려오 는 소리를 밖에서 엿듣다가 물을 붓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이 녀석들 장난질은 이제 끝이다.”

수위가 몽둥이를 쳐드는 순간 아라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서 몸을 용수철처럼 솟구쳐 올려 수위를 들이받았다.

수위의 몸은 바윗덩어리 같아서 아라가 부딪치는 정도로는 끄 떡도 없었으나, 좁은 물탱크 안에서 발이 미끄러져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넘어진 수위가 별안간 으아아 하며 비명을 지 르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그 순간 아라는 자신의 손을 묶었던 줄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맙지만…… 제발 좀 떨어졋!”

아라는 손목에 매달린 쥐들을 매정하게 떨쳐 버리고는 축 늘 어져 있는 준후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사람은 준 후가 아니라 아까 정신을 잃었던 원석이었다.

아라는 원석을 물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는 주위를 살폈 다. 수위의 밑에 또 한 사람이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라는 그 사람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일으켜 세웠다. 준후였다.

“고맙다, 아라야.”

아라는 어둠 속에서 준후의 실루엣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조 요경의 희미한 빛밖에 없는 물탱크 안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 았지만, 몇 년 지난 사이에 준후는 정말 몰라볼 정도로 변한 것 같았다. 오목조목하던 얼굴 윤곽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지만, 동글동글하던 얼굴은 늘씬한 청소년의 얼굴이 되어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키였다. 여전히 체구는 가는 편이었 으나 조그마하던 키가 어느새 웬만한 어른보다도 헌칠할 정도로 커 있었다. 그리고 준후의 눈은 조요경의 불빛이 비친 때문인지 어둠 속에서 번쩍이며 빛났다. 좀 가늘던 눈이 날카롭게 변한 듯 했다. 그러나 분명 준후였다. 아라는 잠시 준후를 망연히 바라보 다가 갑자기 준후의 뺨을 찰싹 때렸다.

“나쁜 오빠! 왜 죽었다고 속이고 나를………… 날……”

울먹이던 아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준후는 일단 뒤로 묶인 손 을 풀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머쓱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 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라는 더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울다가 말했다.

“도대체 그동안 어디서…… 아앗!”

말을 잇지 못하고 아라가 돌연 휙 뒤로 넘어졌다. 준후는 깜짝 놀랐다. 방금 수위의 몸이 자신을 덮치는 것 같아 준후는 급한 김에 영력으로 그 몸에 충격을 가했다. 한두 시간은 정신을 잃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수위가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다.

수위는 아라를 구석에 내던지고는 몽둥이를 들어 내려치려 했 다. 준후는 몸으로 수위를 밀어 보려 했지만 이번에는 수위도 아까처럼 간단히 미끄러지지 않고 되레 준후의 머리를 몽둥이 자 루로 갈겼다. 준후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풀 썩 쓰러졌다. 손이 뒤로 묶였을 뿐만 아니라 발도 묶여 있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준후는 포기하지 않고 물속에서 다 시 몸을 굴려서 아라의 앞을 막아섰다.

수위가 몽둥이를 내리치자 아라는 비명을 질렀으나 준후는 눈 을 질끈 감고 어깨로 몽둥이를 받아 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준후가 아라와 같이 넘어졌다. 그 순간 준후는 뒤로 묶인 손으로 아라의 손을 잡았다.

“아라야…………. 내 손을…………. 그리고 쇠줄………… 쇠줄을…………. “

“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준후의 얼굴이 물에 잠겨 버렸다. 아라는 준후의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수위는 잔인하게 준후의 등을 밟아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고 몽둥이를 내리치려 했다. 

‘이젠 죽었구나……. 준후 오빠…………….’

아라는 단념하려다가 준후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준후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쇠줄을 잡았다. 그러자 이상한 기운이 준후 의 손을 잡은 아라의 팔에 밀려들어 와서는 아라의 어깨를 통과 하여 쇠줄을 잡은 손으로 찌르르 흘러갔다. 다음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준후의 손목을 묶었던 쇠줄이 썩은 새끼줄처럼 끊 어졌다.

아라는 놀라서 탄성을 지르려 했으나 막 수위의 몽둥이가 머리로 떨어지려는 판이라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몽둥이는 아 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라는 의아해하며 눈을 떠 보았다. 아래 에서 수위의 몽둥이를 잡고 있는 준후의 팔이 보였다.

수위는 놀란 얼굴이 되어 몽둥이를 빼내려고 애쓰는 것 같았 지만 준후의 가늘고 긴 팔은 마치 쇠로 빚어진 것처럼 꼼짝도 하 지 않았다. 이내 푸른빛의 번갯불 같은 섬광이 번쩍했고 수위는 와당탕 소리와 함께 저편의 물탱크 벽에 호되게 부딪힌 다음 튕 겨 나와 대자(字)로 물에 첨벙 쓰러져 버렸다.

준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끝났어.”

아라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니 준후는 어느새 일어나 물에 흠뻑 젖은 원석과 준호를 한 손에 하나씩 잡고 가볍게 들어 올리 고 있었다. 그리고 아라가 뭐라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휙 물탱 크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아라는 준후가 움직이자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일단 축축한 물탱크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밖으로 나왔을 때 준후의 모 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원석 과 발목에 묶인 줄을 풀고 있는 준호가 보였을 뿐.

“어어. 준후 오빠…… 오빠 어디 갔어?”

아라는 당황하여 중얼거리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이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준후가 있지 않나 살폈다. 순식간에 어디로 꺼져 버렸는지 준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어! 준후 오빠! 어디 간 거야!”

“조용히 해……..”

아라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준호가 아라에게 말했다.

“뭐야? 넌! 준후 오빠 어디 갔어, 응?”

“일단 조용히 해. 떠들다가 사람들이 몰려오면 뭐라고 할 거야?”

“지금 그게 문제야? 야, 너 준후 오빠 어디 갔는지 알지?”

“뭐?”

“준후 오빠 어디로 간 거야! 나 혼자 두고 말야!”

그러나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라가 안달을 하든 말든 간 에 준호는 발에 묶인 줄을 다 풀고 나자 다시 물탱크 안으로 들 어가서 수위를 끌어내어 땅에 눕혔다. 아라는 준후가 없어지자 속이 상해 있던 참에 준호가 수위를 끄집어내는 모습을 보더니 외쳤다.

“그 사람은 왜 꺼내 줘? 가둬 버려!”

“저 안에 물이 쏟아지는데. 그러다가 죽으라구?”

“그렇다고 꺼냈다가 또 우리한테 덤비면 어떻게 해!”

아라가 꽥 소리치자 준호는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저씨,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올 거야. 종말교에 잠시 이용당한 것뿐인데. 사부가 주술을 풀어 줬으니 괜찮을 거야. 너도 재주가 좀 있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아라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가만! 사부라면 준후 오빠 아니야?”

“맞아.”

아라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너, 준후 오빠 제자야?”

“그런 셈이지, 뭐. 아무튼 여기서 어물쩍거리고 있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아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준후 오빠를 찾아야지!”

준호는 울려고 하는 아라를 보다가 별수 없다는 듯 씨익 웃었 다. 아까는 다 큰 아이 같아 보였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 을 보니 아라가 자기보다도 한참이나 어린 것 같아 측은해진 것이다.

“그럼 일단 날 따라와.”

“싫어! 난 준후 오빠를 만나야 돼!”

“지금 사부는 급한 일 때문에 갔단 말야. 어차피 넌 쫓아가지도 못해. 우선 여기서 나가자. 그러면 내가 사부랑 만나게 해 줄게.”

“정말이야? 약속할 수 있어?”

“그래.”

“근데 이 사람하고 얘는 어떡하지?”

“할 수 없지 뭐. 뭐에 홀렸던 것쯤으로 생각하겠지. 그건 나중에 걱정하자구.”

그제야 아라는 준호의 뒤를 따라 으슥한 학교 뒤쪽을 나섰다.

준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 안인데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면 시끄러워지지.’

다행히 물탱크는 아주 후미진 뒤쪽이라 아직은 그들의 말소리 를 들은 사람이 없는 듯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