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5화 – 재회 5 : 준호와 아라
준호와 아라
“근데 준후 오빤 어딜 간 거야? 어디 간건지 알아? 오늘 일하 고 관련 있는 거야?”
대충 젖은 옷을 추스른 뒤에 누가 볼세라 학교 뒷문을 나서면서 아라가 물었고, 준호는 좀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일하고 관련이 있지. 아마도 사부는 종말교 일에 대한 걸 캐러 갔을 거야. 더 지체할 수가 없으니까 말야. 그런데 가급 적한 가지씩만 물어봐.”
“종말교가 뭐야? 그리고 인형이란 건 뭐구? 거기다 아까 보였던 애 유령은 또 뭐지?”
아라가 총알같이 물어 대자 준호는 인상을 약간 쓰더니 대꾸했다.
“그런데 ・・・・・・ 너 사부랑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 맞아? 믿어도 되겠지?”
“당연히! 난 말야, 준호 오빠랑 정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겪 었던 사이란 말야.”
“사부의 능력이나 이름이 밝혀지면 좋지 않거든. 비밀 지킬 수 있는거지?”
“당연히 지키지!”
“내가 어떻게 믿지?”
“너 죽을래?”
곧 덤벼들 듯이 아라가 으르렁거리자 준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사부가 너한테 말 잘해 두라고 했으니 나도 아는 한도 내에서는 대답해 줄게. 좋아, 뭘 알고 싶어?”
“그러니까 종말교가 뭔지, 인형은 또 뭐고 아까 그 끔찍한 유 령은 어떻게 된 거며 그리고…………….”
“한 가지씩 물으랬지!”
준호가 정색을 하자 아라는 조금 비위가 뒤틀려서 목소리를 높였다.
“야! 준후 오빠가 너한테 사부님이면 난 장차 사모님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깟 거 하나 못 외워? 너 돌대가리야?”
“사아모오니임?”
준호가 놀리는 듯한 표정을 짓자 아라는 금세 얼굴이 빨갛게 되어 얼버무리듯이 대꾸했다.
“알았어, 알았어. 종말교가 뭐야?”
준호가 킥킥 웃다가 말했다.
“종말교란 말세를 대비한다는 종파야. 원래 이름이 종말교인 건 아니지. 우리가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고, 간판에는 ‘종말재 림부흥교’라고 씌어 있어. 너 휴거라는 말 들어 봤지?”
“응? 응. 그런데?”
“몸을 가지고도 죽지 않는다는 게 휴거지. 종말교는 이미 말 세에 들어섰으므로 휴거가 될 몸을 지니게 해 준다는 사이비 종 파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실제로는 사악한 주술을 사용하는 거 지. 좀비만큼 지독한 술수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해. 인형이란 건 그 종말교의 주술에 걸려서 멍한 상태가 된 사람이야. 아까 그 수위처럼.”
종말교는 말세론을 주장하는 일종의 이단 종파였다. 처음에 준후는 그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근래 들어 이 일대 에서 수상쩍은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사소한 일들이었으나 영감이 발달한 준후로서는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준후는 주석을 주목하게 되었다. 주석이 종말교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호와 준후가 주석에게 접근하자 주석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 다. 그 후 준호와 준후는 여러 번 주석의 죽음에 대해 알아내려 고 시도해 보았다.
보통 자살자가 생겼던 자리에는 강한 영적 흔적이 남게 마련 인데 이상하게도 주석이 죽은 자리는 아무런 느낌 없이 깨끗했 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 것처럼.
준후는 이상하게 여겨 준호와 함께 강신술을 행해 보았지만 그마저도 실패였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자살을 했든 아니 든 간에 주석의 죽음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면이 있음이 분명했 다. 하물며 죽은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영혼이 강신술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 의심이 더욱 짙어질 수밖에.
준호가 사람들의 눈에 띈 것은 그런 과정에서였다. 준후는 은 신술 같은 고도의 수법을 이제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 않았고, 그 결과 준호만 왕따가 되어 버렸지만.
“그러면 준후 오빠하고 너는 계속 종말교를 추적해 온 거야?”
“아냐, 그건 순전히 우연이야. 사부가 이 근처로 이사하게 되 어서 이 학교에 편입하려는 계획에 따라 나도 함께 움직인 거지. 난 사부의 그림자니까.”
“그림자?”
“그래, 그림자.”
준호는 자신과 준후와의 과거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원래 준호는 갱정유도(更定儒道)*라는 민족 종교를 믿는 집에 서 태어났다. 그 때문에 한복을 고집하고 한문 등에 능했다. 그 러다 이상한 일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죽을 위험에 빠졌는데, 우 연히 산중으로 수련하러 갔던 준후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때 준후에게 경탄한 준호는 준후를 사부라 부르면서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사부라고 불렀구나. 그런데 준후 오빠가 널 순순히 따 라다니게 했어?”
“처음엔 안 된다고 막무가내였지. 그래서 나를 안 받아 주면 죽어버리겠다고 했어.”
“정말?”
“으음……………. 난 진심이었어. 사부랑 같이 있거나 사부의 재주를 배우지 않으면 난 죽는 수밖에 없거든. 빠르든 늦든 말야.” “그건 또 왜?”
아라가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준호는 그 물음에 어두운 미소만지어 보이고는 슬쩍 말머리를 돌려 대답을 피했다.
“좌우간 난 아무래도 사부가 안 받아주려고 해서 죽을 각오로 절벽에서 뛰어내렸어. 나도 진짜 죽는 줄 알았지.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사부 옆에 누워 있었어. 사부가 한숨을 쉬더니 정말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지. 난 어떤 일이라도 맞설 각오가 되 어 있다고 했어. 안 그러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까 말야…………. 그 것도 가장 끔찍하고 무섭게…………..”
아라는 도대체 왜 준호가 준후와 같이 있지 않으면 죽는 것인 지가 궁금했지만, 준호의 얼굴빛이 너무도 침울한 것을 보고는 목에까지 올라온 질문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 누구나 어둡고 남 에게 밝히기 싫은 과거가 있는 법이니까. 아라도 준후에게 밝히 지 않은 앞으로도 밝히기 싫은 일이 있으니까 말이다.
준호는 다시 말꼬리를 돌려 그림자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준호는 자기가 준후와 이름이 비슷하고 준후가 어렸을 때와 용 모가 비슷한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준후가 정체를 숨 기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림자 역할을 자청했다.
“그러니까 난 항상 밖으로 튀는 존재가 되는 거야. 이 학교에 서처럼 너처럼 사부를 찾는 사람들은 다 내가 사부인 줄 알고 찾아올 거잖아. 그랬다가 나를 보면 사부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 에 알게 되겠지. 그러면 그들은 잘못 찾았다고 여기고 포기할 게 아니겠어? 가까이에 있는 사부는 안전한 거지, 안 그래? 허허실실(虛虛實實), 등하불명(燈下不明)이지.”
준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상당히 안전한 방 법 같기는 했다. 그러나………………
“하지만 네가 위험해질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나도 널 보고 혼내주려고 했는데.”
“아, 사부는 항상 내 근처에 있으니 염려 없어. 사부의 능력을 넌 모르니?”
“나도 알아. 인간도 아니지, 뭐.”
아라는 준후가 차라리 아무 힘도 없어서 그렇게 골치 아픈 일 들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와 단둘이 만나면서 즐겁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싶었다.
“어쨌든 종말교는 그냥 두어선 안 될 것 같다고 사부가 말했 어. 나쁜 집단이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뭐야?”
“그들은 사부의 얼굴을 봤잖아.”
“그 수위밖엔 못 봤잖아. 그러게 수위를 그냥 두고 가자니깐.”
“그게 문제가 아냐. 아까 수위 아저씨는 인형처럼 조종당하고 있었을 뿐이고, 실제로 문제는 조종한 녀석이 수위 아저씨의 눈 을 통해 준후 사부를 봤다는 데 있어. 준후 사부는 큰일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 쓰게 하면 안돼.”
*1945년 강대성(大)이 창시한 신종교.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 합일대도대명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明多 慶大吉道更定敎化)이며, 줄여서 일심교(敎)라고도 한다. 갱정유도의 교리는 유·불·선에 근거하고 동 · 서학을 합일하되 그를 다시 유도)로 구 세한다는 기본 골격을 갖는다. 경전으로는 『부응경符經)이 있는데 이는 강 대성이 영서 토설(說)을 모은 것이다. 와
“자잘한 것? 네 반 친구가 죽었고 사람을 그렇게 조종하는 일 이 자잘한 것이야?”
그렇다면 준후는 자신도 자잘한 것으로 여기고 멀리 떼어 놓 으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아라는 생각했다. 그러자 은근히 심통이 났다.
하지만 준호는 무딘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자 기 이야기만 계속했다.
“사부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거겠지, 뭐. 어쨌거나 놈들이 흉악한 짓을 했다고 우리가 복수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사부 는 말했어. 우리가 나서는 건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쁜 놈 들에게 조종당하는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는 거라고 말야. 우리 사부 참 멋있지 않냐? 히히.”
아라는 심통이 난 차에 준호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준후를 떠받들자 약간 비꼬듯 되받았다.
“뭐가 그렇게 멋있다는거야?”
“생각하는 게 아주 옳고 확실해서 하는 말이야.”
“난 말야, 너보다 훨씬 전에 준후 오빨 알았어. 그리고 오늘보 다 더 무시무시한 일도 많이 겪었다구. 내가 왜 준후 오빠를 잊 지 못하는데?”
아라는 준호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떠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준호가 슬쩍 말했다.
“근데 넌 너무 우악스럽고 거칠어서 불안해. 여자애가 말야.”
“뭐야, 인마?”
아라는 금방이라도 칠 듯이 손을 올렸으나 자칫하다간 나중에 준호가 준후에게 아라가 우악스럽다고 말할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고 손을 내렸다.
“너 여자를 무시해? 넌 아직도 케케묵은 옛날 사고방식을 가 지고 있구나? 여자라고 만날 ‘예, 예’ 하고 얌전한 척 내숭만 떨 어야 된다는 거야, 뭐야?”
“그런 건 아냐. 내가 거칠다고 한 건 다른 의미야 스스로 잘 판단하여 능력이 되는 한에서 움직여야지, 너처럼 무모하게 계 획도 없이 마구 사람을 치거나 덤비는 건 잘못된 거야. 너, 아까 원석이에게 뭔 수작을 부렸지?”
아라는 이내 할 말을 잃었다. 원석을 이용한 건 분명한 사실이 었다. 그러나 아라가 의도적으로 원석을 조종하려 한 건 아니었 다. 다만 조요경이 동물과 식물에게도 신통하게 들으니 사람에 게도 혹시 듣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석 이 동식물처럼 아라의 말을 무조건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애를 쓴 것을 보면 조요경의 힘이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조요경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했지만, 준호 앞에서 아라는 자신이 우연히 그런 것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준호가 모르는 신기한 재주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여 준 호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뭐 걔가 별 탈이라도 났니? 너도 한번 당해 볼 테야?” 그러자 준호가 늙은이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너는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아까 뭐라고 했어? 사모님?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마. 네가 자꾸 따라다니 면 사부가 귀찮아질 테니까.”
“뭐? 아, 이게? 야, 인마. 네가 뭔데 상관이야? 죽을래, 응?”
아라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독이 바짝 올라 대 들자 준호는 어이쿠 하며 저만치 물러났다.
“아녀자랑 이런 일로 손을 써서 다툴 수야 없지. 좌우간 내 말 명심해. 사랑 아는 사이니 만나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게 속 보이는 수작은 하지 말란 말야. 알았어?”
“야! 땅꼬마! 너 거기서! 뭉개 버릴 테다!”
아라가 정말로 칠 듯이 대들자 준호가 냉큼 한마디 덧붙였다.
“너, 사부 만나고 싶지 않아?”
“뭐?”
“사부는 나한테 일을 전담시켰다구. 즉, 나를 통하지 않고선 앞으로 사부를 만날 수 없을걸?”
“웃기는 소리! 학교 앞에서 기다리면 그만이야!”
“사부가 학교 안 나오면? 아니, 설혹 나온다 쳐도 사부가 모른척하면 네가 어쩔 거야, 응?”
“뭐? 모른 척? 그럼 사생결단이닷!”
아라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준호는 아라를 타이르듯 말했다.
“이거 봐. 너 사부 편이야, 아니면 적 편이야? 사부를 쫓는 사 람은 무척 많단 말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여기서 바람막이 노릇을 하겠어? 그런데 네가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그건 사부를 노리는 사람들한테 사부의 존재를 알리는 거나 다름없어. 오늘 한 번은 모르고 그랬고 다행히 일이 잘 풀렸지만, 사부의 정체를 알고 이상한 놈들이 우르르 쫓아오면 어떻게 할 거야? 오늘 일만 해도 그래. 사부는 너하고 내가 다투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우 릴 구하려다가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하지만 내 덕에 살아난 거잖아!”
“네가 안 왔으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난리가 터지지도 않았어. 아마도 조용히 조사하면서 단서를 잡아냈을 거야. 하지만 아까 수위를 조종하던 놈이 결국 사부를 직접 봤다고 생각해야 해. 사 부뿐만 아니라 나하고 너까지도 말야. 이제는 우리도 발등에 불 이 떨어진 거라구.”
아라는 조금 무서웠지만 억지를 썼다.
“직접 대면도 하지 않고 남의 눈을 통해서 우릴 어떻게 봐? 종 말지 뭔지, 엉터리 사이비 종교 아냐? 그런 재주가 있을 리 없어.”
“사이비라는 건 맞지만 놈들을 무시하면 안 돼. 엉터리 사이비 종교가 혼박술을 펼치고, 산 사람을 인형처럼 조종한단 말야!”
그러고 보니 아라는 아까 수위의 얼굴이 세 개로 겹쳐져 보였 던 것이 생각났다. 조요경을 들고 있던 덕분에 본 것이 분명한데, 그렇게 생각하니 아라나 준호, 준후도 모두 놈들의 눈에 띄었다 는 준호의 말이 맞는 듯했다. 천방지축이고 안하무인이던 아라 도 아까 일을 떠올리니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그런 놈들의 상대 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당장 등골이 으슬으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인제 어떡하지? 준후 오빠도 위험할 거 아냐? 그럼 우 리가 가서 도와줘야지!”
“정신 좀 차려라. 누가 누굴 돕는다는 거야? 사부가 걱정하는 건 오히려 너란 말야. 그래서 네 옆을 내가 지키라는 분부가 떨 어진거야. 제길, 내가 너 같은 왈패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줄 알 아? 사부가 그렇게 시켰으니까 그런 거라구. 사실 사부를 누가 당하겠어? 네가 조심하는 게 사부를 가장 도와주는 거니까 그리 알아”
아라는 준호가 빈정거리듯 말하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준후가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말에 새삼 감격스럽기도 했다.
“준후 오빤 그럼 어디 간 거야?”
“사부는 아마 바쁠 거야. 느닷없이 종말교랑 정면 대결하게 된 셈이잖아.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무작정 때려잡을 수도 없으니. 알아볼 게 많을 거야.”
“종말교가 커? 어디야?”
“바로 저 아래에 있는 교회 같은 큰 건물이 본거지야. 하지만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도 없잖아. 거긴 신도도 무진장 많다구.”
“많아봐야 밥통들뿐이겠지. 준후 오빠를 지들이 어쩌겠어.”
“이봐, 그게 문제가 아냐. 물론 종말교에는 광신도들이 많아. 그 사람들은 안 그래도 기도회를 드립네 뭐네, 밤새 난리치고 울 고 소리 지르고 해서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해. 하지만 그런 광 신도들 말고 보통 신도들은 죄도 없으니 함부로 때려눕힐 수도 없어. 그런 사람들에게 술수를 쓰는 걸 보이게 되면 앞으로의 일 을 어떻게 감당하란 말야? 나도 답답하고 사부도 많이 당황스러 울 거야.”
“그럼 경찰에라도………………”
“넌 우리 셋이 나란히 정신 병원 가는 걸 보고 싶냐?”
아라는 몇 번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했다. 솔직히 아라는 걱정 도 되고 자기 때문에 일이 커진 거라는 자책감을 느끼기는 했지 만 준후가 워낙이 천하무적이고 반은 신선 같은 존재이니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도리어 종말교 놈들이 불쌍하게 되었 다는 터무니없는 동정심마저 들었다.
“우리가 도와줄 순 없을까?”
“뭘 어떻게 도와? 아까 인형이 된 수위 하나도 못 이기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잔심부름뿐이야. 사부가 필요 없다면 우린 조용히 있는 거고. 아니, 아니 가만, 그건 내 일인데 그 틈에 네가 어물쩍 끼어들려는 거 아냐?”
그 말에 아라가 화를 벌컥 냈다.
“그렇게 볼일이 많고 바빠 나하고는 이야기도 못하면서 게다 가 잔심부름거리라니? 흥! 장준후! 사람을 그렇게 무시해도 되 는거야?”
“너 입 험한 건 알지만 좀 심하구나. 사부는 널 걱정하고,……”
“근데 언제쯤 준후 오빠랑 만날 수 있는 거야? 내일은 안 돼?”
아라가 직설적으로 나오자 준호는 말을 얼버무렸다.
“글쎄. 종말교 일이 끝나야 어떻게든.”
“일이 안 끝나면?”
“설마. 하지만………… 하지만 단시간에 끝날 건 아니고 또 이대로라면 모두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사부는……………..”
준호가 더듬거리는 순간 아라는 준호의 얼굴을 살폈다. 준호 는 의아하여 아라의 얼굴을 보다가 문득, 아라가 비록 말이 험하 고 행동은 우악스러워도 생긴 것은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스 쳤다.
아라가 준호에게 따지듯 물었다.
“너, 솔직하게 말해. 아까 네가 나보고 딴생각하지 말라고 했 던 이야기. 그거 준후 오빠가 말한 거지? 준후 오빤 날 만나기 싫 어하는 거지? 날 만나면 귀찮아질까 봐 널 시켜서 아예 날 떼어 놓으려는 거 아냐?”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냐. 사부는 할 일이 많고 또…….”
“누군 할 일이 없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줄 알아? 내가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삼 년이나 걸렸어, 삼 년! 떼쓰고 핑계 대서 전학만 몇 번 했는지 알아? 그리고 매일 밤늦게까지 미친년처럼 거리를 헤매면서 남학교 앞에서 얼마나 죽치고 기다렸는지…………… 그런데 ・・・・・・ 그런데 위험하다 뭐다 핑계 대고 도망가다니………… “
“사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러는 거야, 그건……….”
“네가 뭘 알아? 장준후, 이 나쁜 자식! 사람들을 위해 그런다 구? 미친 자식! 지가 그렇게 잘났어? 다른 사람만 중요하고 난 안중에도 없다. 이거야? 나・・・・・・ 날 보살펴 주고 보호해 준다고 그래 놓고………… 분명히 그래 놓고………….”
아라는 마구 욕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준호는 워낙이 고지식한 성격이라 아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난감한 표정으로 멀뚱거리다가 물었다.
“사부가 그랬어? 언제?”
아라는 대답하지 않고 급기야 마구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나쁜 놈! 난 자기만 믿고 그렇게 기다렸는데……………. 나타나지도 않고…………… 죽었다고 거짓말이나 하고……………. 찾아왔는데
도 뭐가 어째?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세상에 믿을 사람도 없는 데…………. 내가 미친년이야. 그런 이상한 자식을 믿다니……………. 난 인제 귀찮은 존재라 이거지?”
준호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뜨거운 불판 위의 개미처럼 안 절부절못하다가 아라를 위로한답시고 말을 꺼냈다.
“사부는 사부는 그런 생각이 아냐, 아닐 거야. 그…………… 그래, 그 러니까 사부는 네가 위험한 일에 말려드는 게 싫어서 조금…………… 조금만 기다리라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게 이거야? 지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얼굴조차 안 보이고 도망을 가? 그럼 난 뭐야? 쓸개 빠진 미친년 이야? 야아!!! 장준후! 이 나쁜 놈아아!!”
아라가 화를 이기지 못해 울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준 호는 얼굴까지 벌겋게 되어서 안절부절못했다. 여자의 울음소리 와 고함 소리가 나자 근처의 집들 창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소 리를 쳤다.
“이 녀석들아! 이 밤중에 뭐 하는 거야!”
준호가 다급해져 발을 구르는데 아라는 오히려 큰 소리로 외쳐댔다.
“아저씨가 뭔데 끼어들어! 썩 창문 닫아!”
준호는 너무도 놀라 발만 동동 굴렀다.
이거 우악스런 정도가 아니라 완전 깡패잖아?’
남자도 화가 치민 듯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아니, 이 조그만 계집애가!”
순간 어느새 아라가 조요경을 썼는지 사방에서 벌레들이 까맣 게 날아와 그 집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준호가 깜짝 놀라 아라를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창문이 열린 집에서는 비명 소리가 쏟아 져 나왔다.
“아이고, 이게 뭐야! 여보, 파리 약가져와, 파리 약! 으아악!”
그 집에 벌레가 수천 마리 몰려 들어간 듯 난리가 벌어졌는데 도아라는 울음기가 잔뜩 실린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좋은 말로 할 때 창문 닫고 귀 막아! 남의 일엔 신경 꺼!”
준호는 너무 놀라기도 하고 아라가 심하다는 생각에 아라의 조요경을 빼앗아서라도 그만두게 하려 했다. 막상 그렇게 하려 다 보니 아라가 어느새 또 섧게 울고 있었다. 준호는 차마 빼앗 지도 못하고 좌불안석으로 허둥거리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 틈에 그렇게 몰려왔는지 준호와 아라 주변 에는 수만 마리도 넘어 보이는 시커먼 벌레 떼가 미친 듯이 맴돌 고 있었다. 몇몇 열린 창들에서 수없이 몰려드는 벌레들에 기겁 하는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창문이 모조리 닫혔다.
아라와 준호 주변으로 수많은 벌레들이 에워싸고 벽을 치다시피 하여 두 사람의 모습이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준호는 아라가 심하게 사고를 치는 것 같아서 아라의 어깨를 마구 흔 들며 소리쳤다.
“그만해. 그만! 이건 너무하잖아!”
그러나 준호의 말은 애당초 듣지 않으려는 듯 아라는 계속 서 럽게 울기만 했다. 점점 조요경의 술수가 심해지는지 사방에서 동물들이 몰려왔다. 한쪽에는 이백 마리가 넘는 도둑고양이들이 떼를 지어 마치 군대처럼 정렬하여 앉았고, 그 반대쪽에는 오십 마리나 되는 개들이 몰려왔다. 아주 조그맣고 털이 고우며 리본 까지 단 애완견과 쇠줄을 끊고 온 듯한 무섭고 커다란 도사견도 한 마리 있었다.
머리 위에는 비둘기며 까치 같은 새들이 빙빙 맴돌고 날아들 어 어두운 밤하늘을 뒤덮을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벌레 떼에 이 르러서는 거의 안개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도시 한복판에 이렇듯 많은 동물들이 있으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더구나 그 동물들은 혼란스럽게 떠들고 다니지도 않 고 마치 아라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모조리 한곳에 정렬하 여 부리를 다듬고 이빨과 발톱을 다듬는 것이, 마치 금방이라도 출전하려는 군대 같아 보였다. 준호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두려 워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라의 어깨를 인정사정없이 흔들어 대며 마구 고함을 쳤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게 뭐야, 대체?”
아라는 울다가 그제야 눈이 퉁퉁 부은 채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다 화들짝 놀랐다.
“이게 다 뭐야?”
준호는 어이가 없어서 아직도 아라의 목에서 빛을 내뿜고 있는 조요경을 가리켰다.
“네가 한 짓 아냐?”
아라는 마치 남의 일을 보는 것처럼 조요경을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인데.”
별안간 아라는 표정을 싹 바꾸어 싸늘한 눈매로 뭔가를 생각하다가 흥하며 코웃음을 쳤다.
“좋아! 까짓것 안 되면 죽기밖에 더 하겠어!”
“너・・・・・・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서 이것들을 다 흩어지게해.”
그러나 아라는 준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허공을 날카 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종말교인지 뭔지, 그놈의 거 핑계를 댄다. 이거지? 좋아, 장준 후 네 맘대로 해. 나도 내 맘대로 할 거야. 내 맘대로 할 거라구.”
준호는 아라의 말을 듣고 너무 끔찍하여 아라에게서 조요경 빼앗으려고 했지만 준호가 채 움직이기도 전에 벌레 떼들이 준호에게 새카맣게 달려들어 주위를 겹겹이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