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6화 – 재회 6 : 임자 없는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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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2권 6화 – 재회 6 : 임자 없는 묘지


임자 없는 묘지

내친김에 변두리에 있는 공원묘지로 향하기는 했지만 준후의 발길은 무거웠다. 사실 준후로서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라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해동감』을 전부 해석하여 자신 앞 에 놓인 운명을 알게 된 준후로서는 아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 다. 그대로 두면 틀림없이 아라는 자신의 뒤를 예전처럼 졸졸 따 라다니려 할 테니까. 그렇다면,

‘안 돼. 조요경을 가지고 있다 해도 너 정도의 힘으로는 도움 이 안 돼. 위험만 자초할 뿐이야.’

그래서 준후는 준호를 시켜서 아라에게 변명을 둘러대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따돌려 달라고 부탁한 바 있었고, 항상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준호는 선선히 그에 응했다. 그러나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준후는 고민했다. 혹시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이 아 닐까. 아라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해 놓고 준호는 수족처럼 이 일 저일을 시키고 있지 않은가. 다행히 준호가 그런 생각을 하 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말을 하지 않은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나왔으면 준후로서도 아마 할 말이 없었을 터였다.

준후가 아라를 이 일에 말려들지 않게 하려는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으며, 지금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 다. 준후는 심호흡을 하면서 억지로 생각을 바꾸었다.

‘때가 되면 준호도 떼어 내야 해, 다 위험해지니까.

그러면서도 준후는 「해동감결에 뚜렷이 언급된, 네 명의 아이 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구절을 기억해 냈다. 준호를 받아들 일 때부터 준호가 그런 운명으로 자신과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 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아라까지라……………. 준후는 고개 를 저었다.

‘믿을 수 없어.’

과연 아라와 준호를 뺀다면 네 명이나 되는 기이한 아이들과 새로이 만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몇 년을 지내면서 단 두 명을 만났을 뿐인데, 아무리 운명이 그리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짧 은 기간 동안에 네 명이나 되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만 날 수 있게 될까?

‘그렇다면 아라도 그중의 한 명일까? 그러나 조요경의 그런 조 그마한 능력으로는 거기다가…………….’

준후는 마음속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외쳐댔다.

‘앞으로 해야 할 싸움이 능력과 힘으로만 하는 것이냐? 너는 왜 스스로를 속이지? 그 이유는 뭐지?’

준후는 한숨을 쉬면서 답답해져 머리를 마구 긁으며 헝클어뜨렸다.

택시 운전사는 준후를 힐끗 백미러로 보다가 준후와 눈이 마 주치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신부님이나 현암 형과 상의해 볼까? 나 혼자 지금 결정을 내 리는 것은……..’

준후는 준호의 일에 대해 아직 박 신부나 현암에게 말하지 않 은 상태였다. 사실 준후는 학교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일은 자신의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으 며, 가급적 자신이 실제로 걷고 있는 어두운 세계와는 멀리 떼어 놓고 싶었다.

준호도 반은 장난삼아, 반은 『해동감결』의 내용이 마음에 걸 려서 제자로 삼은 것이었다. 그런데 학교 내에서 음산한 일이 터 지고, 급기야는 종말교라는 이상한 세력과 맞부딪히게 되었다. 반 친구였던 주석이 죽고, 아라까지 나타나 이제는 발을 빼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종말교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 만 아라나 준호나 자신과 관련이 있는 친구들이 종말교에 어떤 해를 입을까 봐 서두르는 것이었다.

준후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개인적인 일일 뿐이며, 퇴마사로서의 일과는 다른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학교에 다니며 즐겁게 보냈던 그 시간마저 피로 얼룩진 어두운 과거와 뒤섞여 버릴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 해결할 거야.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개인적인 일. 나도 개인적인 일이 있는 거야. 나도・・・・・・ 나도・・・・・・’

준후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다시 종말교로 사고의 방향을 돌렸 다. 종말교, 정식으로는 종말재림부흥교가 수상쩍다는 것은 이 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정말로 사람을 조종하고 죽이는 그 영 까지도 흉악한 방법으로 처리할 정도 아니던가.

그러나 준후로서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면서도 아 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신도들의 숫자도 꽤 될 텐데 무작정 쳐들어가서 뒤엎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무턱 대고 경찰에 고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일단은 그들의 근본이 무엇이고 무엇을 바라며, 어떤 술수를 사용하는가를 파 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려면 주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가 장 빨랐다. 귀찮은 탐문 조사 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당사 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니까. 경찰은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없지만 준후는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주석은 혼박술을 당해 영마저 거의 봉인되어 있었 다. 아까 잠시 모습을 보인 것도 주석의 영으로서는 최선을 다 한 안간힘이었을 터였다. 입과 눈이 모두 꿰매어진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주석의 영혼이 강한 금제(制)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그렇다면 당연히 그것부터 먼저 해결해야 했다.

행동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더구나 지금은 한번 실 패를 겪은 종말교에서 재차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시점이었다. 선수를 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준후는 마침내 혼자 주석의 무덤을 파보기로 결심을 굳혔다. 지난번 반 아이들 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기에 무덤의 위치는 잘 알고 있었다.

결혼 전의 아이들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묘에 묻지 않고 화 장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이기는 하지만 주석의 부모님은 아들 을 차마 화장하지 못하고 공원묘지에 묻었다. 공원묘지에는 관 리인이 있겠지만 준후 정도 되는 능력이라면 들킬 염려는 없었 다.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야 한다는 일반적인 불쾌감도 느끼지 않았다.

준후는 여느 사람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이미 죽은 주석에게 가해진 많은 일들, 그리고 이미 죽은 영혼에게조차 불유쾌한 짓 을 서슴없이 하는 자에 대한 분노와 짧으나마 학교생활을 같이 했던 주석에 대한 연민이 준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 다. 비록 주석과 그렇게까지 친했던 것도 아니었고 학교생활을 그리 오래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안됐어, 정말로.’

택시 기사는 늦은 밤에 묘지로 가는 것이 아무래도 영 찜찜한 모양이었다. 갔다가 처녀 귀신이라도 탈까 봐 그러는 것일까.

택시 기사의 뒷모습을 보며 준후는 무심코 다른 쪽으로 생각 을 돌렸다. 죽은 사람은 불쾌하고 공포스럽고 무서운 대상이 아 니라 가엾고 안쓰러운 존재일 뿐이다. 정작 사람들이 무서워하 는 것은 죽음 그 자체일 뿐인데,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같은 동 료였던 사람을 단지 죽었다는 이야기만으로 은근히 공포의 대상 으로 여기기도 한다.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 때문일 까? 알고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 때문일까? 만약 모든 것이 눈에 보이고 죽음에 관한 것을 사람들이 전부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것은…….

“다 왔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운전기사가 말하는 통에 준후는 퍼뜩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러고는 꼬불쳐 두었던 비상금을 꺼내 차 비를 치르고 차에서 내렸다. 이렇게 늦은 밤중에 묘지를 찾아가 는 아이를 기사는 의아한 눈으로 보았지만 곧이어 택시는 휑하 니 떠나 버렸다.

준후는 뚜벅뚜벅 걸어 묘지 주변의 담 밑으로 가서 간단히 담 을 훌쩍 뛰어넘어 들어갔다.


“잠, 잠깐만! 뭐 하겠다는 거야! 아이고!”

준호는 새카맣게 주위를 에워싼 벌레들 속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외쳤다. 벌레들이 준호를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수천, 수만 마리가 넘게 구름같이 모여든 벌레들 속에 있는 기분은 끔찍 했다. 벌레들이 붕붕거리는 소리 사이로 아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난 지금부터 종말지 뭔지 하는 거기로 갈 거야. 내가 다 때 려 부술 거야. 그러면 바빠지고 자시고도 없겠지? 그러니 장준후 그 자식한테는 알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미쳤냐? 너 혼자 어떻게…………. 아이구! 이것들좀 어떻게 해봐!”

준호는 아라가 미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동물과 벌레를 다루 는 재주가 좀 있다고 한들, 자기 혼자 종말교 안으로 쳐들어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더구나 아라는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 지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위험해! 아무리 그래도 너 혼자 가면 그건!”

“죽든 살든 내 맘이야! 방해하지 마!”

아라는 야멸차게 소리치고는 개 떼와 고양이 떼, 새 떼를 몰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만류하고 싶었지만 벌레들 속에 갇혀 버린 준호는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그 안에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벌레들이 마구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 고는 허우적거리기를 멈추고 조용히 서 있어 보였다. 그러자 벌 레들은 마치 준호를 가두어 두려는 듯이 주위를 맴돌 뿐 덤벼들 지 않았다.

‘저 애, 완전히 미쳤어. 돌았어. 지가 뭐라고.’

잠시 곰곰 생각해 보니 준호는 아라가 무엇을 바라고 그러는 지 알 것도 같았다. 준후한테 알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소 리는 알리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준호가 조 금 무딘 편이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그렇다면 아라는 준후 를 끌어내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돌았어. 미친 애야, 정말.’

준호는 몹시 난감해졌다. 아라라는 아이는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응석도 정도가 있지, 만약 준후가 늦어지면 어쩌려고 저 런단 말인가? 준후는 준호에게 친구이며 은인이자 하늘 같은 사 부였다. 아라가 나타나서 갑자기 준후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 준호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가서 혼쭐 좀 나게 가만있어 버려? 아이구 이거 원참.’ 

하지만 종말교는 무서운 단체였다. 주석을 죽이고 혼까지 얽 어맬 정도로 지독한 면이 있는 곳이다. 아라가 약간 재주가 있다 고는 하지만 아까 겨루어 본 결과 동물이나 벌레의 힘을 빼고는 자신만도 못하지 않았던가? 그 정도 힘으로는 혼자 쳐들어가서 종말교를 뒤엎어 버릴 수 있다고는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렇다면 아라는 어쩌면 혼쭐나는 것을 넘어 주석의 꼴이 될 수도 있다.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냥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잖아? 제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와야겠구나.’

그러고 보니 준후에게 알려야 할까 말까 고민이 생겼다. 사실 준호와 준후는 둘 다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어 아무 때나 서로 연락이 가능했다. 하지만 일단 준호는 혼자 힘으로 아라를 저지 해 보고, 그게 안 되면 준후를 부르기로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준호는 시건방지고 제멋대로인 아라를 속으로 마구 욕하면서 준후에게 배운 수법대로 수인을 맺었다. 원래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놈의 벌레 떼들을 헤치고 가려면 그 주술을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한편, 준후는 무거운 마음으로 묘지 사이를 걸어 주석의 묘를 찾아가고 있었다. 전에 한 번 와본 적은 있었지만 불빛조차 없 는 넓은 묘지 가운데를 헤매는가 하면, 간간이 돌아다니는 관리 인들의 눈을 피하느라 시간은 꽤 많이 지나 있었다.

지나가는 도중에 묘들에 서린 갖가지 사자(死)의 기운을 느 끼면서 준후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평안하게 잠든 사람도 많 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이승에 대한 집착이나 상념이 뭐 그리 많은지 그 느낌이 아직까지도 전해졌다. 더구나 묘지가 빽빽하 게 들어차 수가 많다 보니 그 기운도 합쳐져 상당히 강렬했고 준 후도 조금은 으슬으슬한 기분이 되었다.

주석의 묘를 찾자마자 준후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했기에 일단 묘의 형태부터 살펴보았다. 공원 묘지의 묘들은 화강암으로 기반을 세우고 그 위에 봉분을 올린 형태였다.

“이거면 쉽지.”

구태여 힘쓸 필요도 없다 싶어 준후는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워 리매를 불러냈다. 리매는 힘이 무척 세기 때문에 봉분 정도는 가 볍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파헤친다면 시간도 걸리거니와 봉분에 낀 잔디가 망가져 흔적이 남을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준후는 리매를 시켜 봉분을 들어 올리게 해 보았는데, 흙더미와 돌로 된 봉분은 생각보다 무거워 결국 세 마리의 리매 를 불러내야만 했다. 깊은 밤중, 묘지들 사이에서 희끄무레하고 거대한 괴물 세 마리가 무덤을 들추는 광경을 누가 보았다면 기 절하고도 남았으리라.

리매들이 그르렁거리면서 봉분을 들어 올렸을 때, 준후는 어 딘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무리 리매들이 봉분을 들어 올렸어 도 어느 정도의 흙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기이하 게도 봉분은 미리 잘려 있던 것처럼 번쩍 들어 올려졌다. 마치 누군가가 이전에 이미 한 번 무덤을 같은 방법으로 들춘 것처럼 말이다.

준후는 눈을 빛내면서 무덤 안을 살폈다. 봉분을 들어내고 약 간 흙을 파내자 관이 보였다. 그런데 관도 똑바로 놓여 있지 않고 어딘가 미세하게 비뚤어져 있는 듯했다.

‘이상하다. 아무래도……………?’

준후는 관 뚜껑의 흙을 치우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스산 한 바람과 안개 같은 것이 감도는 것 말고는 아무도 보는 사람 이 없었다. 아무리 험한 일을 많이 겪고 못 볼 것을 많이 본 준후 라 해도 스산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준후는 한 번 숨 을 몰아쉬고는 관 뚜껑을 서서히 열었다. 삐걱거리면서 관 뚜껑 이 열리는 순간, 관 안에서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튀어나와서 준 후에게로 달려들었다.

준후는 반사적으로 손에 기운을 모으고 그것을 쳐냈다. 그 시 커먼 것은 준후의 손에 맞고 땅에 데구루루 굴렀다. 아무 힘도 없었고 별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땅으로 눈 을 돌린 순간, 준후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꼼짝 하지 않았다. 그것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아라의 잘린 머리였다. 

“아앗!”

준후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그 머리는 옅 은 안개 같은 기운과 함께 다른 형체로 변했다. 놀라서 두근거리 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 조심스레 보니 헝겊을 꿰맨 포대자루 같 은 것이었다.

‘이게 뭐지?’

준후는 약간 마음이 심란해져서 관 속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시체가 없었다. 그 안에는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진 헝겊 인형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벌써 파 갔나? 그렇다면 종말교에서 선수를 쳤나?’ 

그러나 왜 갑자기 인형의 목이 튀어 오르고 그것이 아라의 얼 굴로 보였는지, 어떤 힘이 그렇게 했는지 후는 잠시 갈피를 잡 지 못했다. 그러다가 준후는 곧 짚이는 바가 있어 허공을 보며 생각했다.

주석이 여기 있는걸까?’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준후는 번잡스러운 것을 없애기 위 해리매를 시켜 봉분을 다시 덮도록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까 낸 소리 때문에 관리인이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 리매를 사라지 게 하고 주위를 살핀 뒤 눈을 감고 허공에 말했다.

“주석아…………. 여기 있니?”

마음속에서 뭔가 느껴졌다. 서늘한 느낌. 준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주석의 봉분 위로 뭔가가 가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준후는 신안이 트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영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도 보이지 않으니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주석이니?”

준후가 주머니에서 안명부(眼)를 꺼내 한 번 손가락으로 튕기자 곧 불이 붙어 파르륵 타올랐다. 그러나 안명부를 태웠는 데도 그 형체는 여전히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뭔가가 매우 강하게 방해하고 있구나.’

준후는 기운을 더 모아서 수인까지 맺고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던 사자를 불러내는 진언을 외웠다. 그러자 사방에 찬 기운이 감돌면서 스산한 바람이 묘지 안을 가득 메웠다. 준후의 강한 힘에 영향을 받아 주석이 아니라 묘지 안을 떠돌던 새로 묻힌 자들의 혼령까지도 너울너울 날아다녔고, 다른 곳의 혼령들까 지도 끌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석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럴까?’

분명 아까 주석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러나 지금은 준후가 안간힘을 써도 영혼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 주 단단한 금제에 걸려 있거나, 이미 갈 곳이 결정된 영혼이 아 니고는 이 진언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아까 모습을 드러낸 영혼이 그사이에 지옥이나 천국으로 갔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사이에 어떤 금제가 또다시 가해졌다 는 말인가? 처음에는 분명 주석의 영혼에게서 뭔가 반응이 있었 다. 관뚜껑을 들출 때 아라의 모습을 인형의 얼굴에 비추어 자 신에게 보인 것은 주석의 영혼이 그랬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데 그 직후 강한 주술을 썼는데도 그 자취는 점차 희미해지더니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렇다. 아직 주석이의 영혼은 그 시신을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시신이 여기 없으니 종말교 놈들이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거기다가 종말교 놈들도 내가 주석이의 혼을 불러내 려 한다는 걸 알고 혼박술을 더욱 강하게 건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종말교가 짐작보다도 훨씬 대단한 집단인 것 같았다. 지금 준후의 행동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지 않 다면 이렇듯 신속하게 반응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들은 대체 누구기에 …………? 그리고 주석이는 왜 아라의 얼굴을 나에게 보여 준 것일까? 아라가 위험해졌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 준 것일까? 그러나 아라에게는 준호가 같이 있을 텐데 어째서 준후는 수인을 풀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휴대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 번호는 준호 외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 었다. 준후가 얼른 전화를 받자 준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부! 큰일 났어!”

“뭐지?”

“그 아라라는 애가…………… 혼자 종말로 쳐들어갔어!”

준후는 믿어지지 않아 눈을 부릅뜨며 무심결에 큰 소리로 외쳤다.

“뭐라구?”

“그 애가………… 막무가내로…………. 아이구!”

준호는 말을 잇다가 말고 돌연 비명을 질렀고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과 동물 등등이 마구 비명을 지르고 소리 지르는 것이 뒤섞인 듯 했다. 그때 대뜸 전화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뚝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준후는 암담한 심정으로 휴대 전화를 거칠게 닫으며 외쳤다.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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