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7화 – 재회 7 : 종말재림부흥교
종말재림부흥교
준후는 다시 서둘러 택시를 타고 달려가면서 종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꼼꼼하게 정리해 보았다. 준후와 준호는 종말 교라고 줄여서 부르지만 그곳은 실상 ‘종말재림부흥교’라는 간 판이 붙은 겉으로 보기에는 개신교 교회와 닮은 곳이었다. 그곳 의 의식이나 다른 것들도 개신교의 것들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곳에는 목사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을 형제님이나 자매님으로 불렀 다. 일반 신도나 맨 위의 사제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 은 다가올 말세에 재림할 구세주를 영접하고 크게 자신들의 교 를 부흥시킨다는, 그야말로 이름과 똑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진작 한 꺼풀 더 파고들었으면 좋으련만, 지금으로서는 매주 열 리는 일반 집회 외의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종말교가 정말 무엇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미리 알아보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시간이 없었다.
하다못해 종말교의 사제가 누구인지, 종말교에서 제일 높은 자 는 누구인지조차 준후는 알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종말교에 혐의 를 두고 알아보기도 전에 일이 너무도 빨리 터졌으니 말이다. 하 지만 일단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끄지 않을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까?’
박 신부는 며칠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나갔으니 없을 것 이고 현암과 승희에게는 지금 연락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준후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자잘한 일에 그들까지 끼어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라나 준호가 정말 필 요한 사람들인지, 『해동감결에 나온 그 아이들인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현암 등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준후는 종말교의 건물 앞에 다다랐다. 건 물은 예상외로 평온해 보였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분 명아라가 조요경의 힘을 써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을 것으로 알았는데 주변은 너무도 조용하고 고요했다.
더더욱 기이한 것은 주변에 장사하는 노점상들이나 행인들이 한가하게 지나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아라가 준호의 말 그대로 동물들이라도 몰고 들이닥쳤다면 사람들 모두가 기겁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전혀 무슨 일이 있었던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준후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조용히 쪽문을 통해 종말교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뚜벅뚜벅 걸어서 종말교의 정문에 다다를 때까 지 누구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준후 는 더 긴장이 되었다.
나무로 된 정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았지만 환하게 불이 켜진 예배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준후는 발길을 돌려 지하실로 향 하는 계단으로 내려섰다. 또박또박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 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준후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일까? 이렇게 아무도 없다니. 혹시 아라 나 준호가 여기로 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준석이 묘지에서 보여 준 징조나 준호의 다급한 전화 내용 등 을 준후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하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온 준후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조심하자는 의미에서 리매 한 마리를 불러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고 리매를 지하실로 먼저 내려보냈다. 그러나 리매가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으며 리매의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인가?’
준후는 이상하게 여기고 리매를 사라지게 했다. 그런데 리매 에게서 반응이 없었다. 준후가 깜짝 놀라 주의를 기울여 보니 리 매는 자신이 사라지게 하기 전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준후는 바짝 긴장했다.
‘뭔지 몰라도 정말 무섭구나. 나조차 모르게 리매를 사라지게 만들다니! 가볍게 보면 안 되겠다!’
준후는 바짝 긴장하여 양손에 각각 멸겁화와 뇌전의 기운을 잔뜩 모은 다음 계단을 내려섰다. 어둠 속에서 꽉 닫힌 육중한 철문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준후가 문을 발로 슬쩍 밀자 문 이 끼이익 하면서 준후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열렸다. 준후는 주저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둠 속을 한 번 훑어 본 다음 그 안으로 들어섰다.
준후가 안으로 들어선 순간, 갑자기 문이 쾅 닫히면서 사방에 서 불이 켜졌다. 그것도 아주 밝아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빛이 한꺼번에 준후를 향해 쏟아진 것이다. 어둠에 눈이 길들어져 있 던 준후는 눈을 뜨지 못하고 기습당할까 봐 반사적으로 몇 걸음 옆으로 물러서면서 양손에 기운을 모았다. 그러나 그 어떤 종류 의 공격도 가해지지 않았다. 대신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만이 울려왔을 뿐이었다.
“장준후 형제?”
준후는 깜짝 놀랐다. 만약 엄청난 주술과 불길이 쏟아졌다고 해도 이보다 놀라지는 않았을 터였다. 눈이 몹시 부신 참이라 준 후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아 하는 절망 감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준후의 눈앞에는 검은 후드를 쓴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나이는 서른 남 짓 되어 보였는데 꽤 미인형인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준후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 의 등 뒤에는 커다란 제단이 차려져 있었으며 그 뒤에는 거대하 고 검은 십자가가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천장 에서부터 늘어뜨려진 줄에 세 사람이 묶인 채 매달려 있었던 것 이다.
한 사람은 아라, 한 사람은 준호,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놀 랍게도 외국인이었고 준후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준후는 어이 가 없는 듯 그 사람을 바라보며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혼 자 중얼거렸다.
“이반 교수님?”
여자는 전혀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담담히 준후에게 말했다.
“준후 형제,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들었던 것보다 훨씬 큰 분이군요. 그사이 키가 많이 크고 아주 멋져졌나 보네요. 여기 세형제자매는 잘 아는 분들이죠?”
준후는 도대체 저 여자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어 그저 타는 듯한 눈으로 여자 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건넸다. “오랜만의 재회겠군요. 저기 있는 나이 든 형제분하고는. 그리 고 우리 주인님과도 저 어린 자매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좀 놀랐 어요. 동물들을 떼로 몰고 오기에.”
준후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이 여자가 혼자서 아라를 막아냈 나 하는 놀라움에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눈 을 찡긋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동물들은 저 자매를 주인으로 알고 모시죠. 그러나 제 주인님 은 진정으로 두려워하거든요. 동물들은 주인님이 여기 계신 것 을 알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어요. 불쌍한 어린 자매. 상당히 억울할 거예요. 안 그랬으면 이렇듯 간단하게 잡히지는 않았을 텐데.”
“당신 주인이 누구죠?”
준후가 거칠게 물었다. 여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이지 않나요? 우리 주인님은 준후 형제를 참으로 많이 기다리셨는데.”
“당신 누구죠? 그리고 왜 이런 짓을 하는 건가요?”
“하나씩 답할게요. 내 이름은 이은경이라고 해요. 부흥교의 수석 자매지요. 그리고…………… 마녀 협회의 회원이기도 해요. 한국 지부장이라고나 할까요?”
마녀라는 말을 듣고 준후는 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 준후 형제도 우리 마녀 협회에 대해 아시나요? 설마 형제 같은 분이 일반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평가하지는 않겠죠?”
그러자 준후는 차갑게 내뱉었다.
“물론,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나쁘다고 여기죠.”
“오, 저런.”
은경이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는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형제는 뭔가 남다른 면이 있을 줄 알았는데 유감이군요. 준후 형제도 여느 남자들처럼 그 흔한 소영웅주의에 빠진 건가요?”
준후는 말싸움을 하기 싫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잔소리 말고 세 사람 모두 내놓아요. 안 그러면 ・・・・・・ 성치 못 할 줄 아시오.”
“아아, 저런 실망! 실망! 주인님은 왜 이런 형제를 원하시는 걸까?”
그러다가 은경은 준후를 똑바로 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이었다.
“당신은 악마를 어떻게 생각하죠? 그리고 마녀는요?”
“입씨름하기 싫어요.”
“악마……………. 그건 세속의 교회가 제멋대로 갖다 붙인 이름에 불과해요. 자신들과 길이 다르면 무조건 악이고 마라고 하죠. 그 덕분에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을 위한 지주가 되어 왔고 인간을 위 해 애써 왔던 많은 존재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악의 탈을 뒤 집어쓰게 되었어요. 마르둑(Marduk)*, 바알(Baal)**, 베누스 (Venus)***, 마몬(Mamon)****, 보탄(Wotan) *****, 수천년동안 인류 정신의 대들보였던 존재들이 하루아침에 지옥 구석의 괴 물로 변해 버렸어요. 아, 그들이 주장하는 악마의 범주에는 아마 형제도 믿는 몇몇 신들도 들어갈 거예요. 안그런가요?”
“나를 놓고 교리를 강의하려고 세 명이나 인질로 잡았나요? 참 대단하군요.”
준후가 쏘아붙이는데도 은경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했다.
*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으로 도시 바빌론 또는 바빌로니아의 수호신 아시리아 와 페르시아에서도 숭배를 받았다.
* 고대 근동, 특히 가나안 지방의 사람들이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던 신. 이집트가나안, 페니키아 등지에서 숭배를 받았다.
*** 로마 신화의 사랑의 여신, 그리스 신화에서의 명칭은 아프로디테 고대 시리아에서 숭배하던 유혹의 신 혹은 재물의 신 고대 북구 신화의 주신(主神). 외눈에 계약의 창을 들고 다리가 여섯 개 달린 말을 타고 나는 군신(軍神)이기도 하다.
“악마니 마녀니 하는 말은 모조리 인간이 붙인 거예요. 많은 인간이 믿으면 무조건 성인이고, 믿는 사람이 적거나 다수의 이 익에 배치되면 무조건 악으로 몰아붙이고 말살시키려 들죠. 아 직도 그런 잣대를 지니고 그런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하다니. 준 후 형제는 깨인 분으로 봤는데 적잖이 실망이네요.”
“자꾸 형제, 형제 하지 마세요. 난 짐승과 형제 맺은 일이 없어 요. 아, 이거 짐승들에게 미안하군.”
준후가 모욕을 주는데도 은경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당신은 악마와 마녀가 파괴와 죽음과 멸망을 바라며 피에 굶 주린 존재라고 믿나요?”
준후는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준후는 더 이상 참지 못하 고 아예 반말로 대답했다.
“비슷하다고 믿지.”
“저런 피에 굶주린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준후 형 제는 잘못 알고 있어요. 우리는 피가 필요하면 피를 내지만 피에 굶주려 있지는 않아요. 다만 피를 흘리게 하면서도 마치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며 자기 책임이 아닌 척하고, 피를 쏟는 자를 동정하 는 척하는 위선을 부리지 않을 뿐이죠,”
우리도 세상의 평화를 바라고 이대로 세상이 존속하여 오래 가기를 빌어요. 오히려 세상을 뒤엎은 건 당신이 말하는 신이 아니던가요? 기독교의 신은 이미 홍수로 세상을 한 번 쓸어버렸고 소돔과 고모라를 단번에 멸망시키지 않았던가요? 악마라고 말로 는 그렇게 떠들지만, 악마가 과연 그런 짓을 한 걸 당신은 본 적 있나요? 들은 적은요?”
준후는 괜스레 입씨름으로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은경의 말에 는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하실의 각 벽에는 부정하다고 알려져 있는 온갖 기호와 문장이 그득히 새겨져 있었다. 아까 리매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없어진 것도 무 리는 아닐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어서 지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악령이나 악귀가 도사리고 있는 느낌도 없었다. 자매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은경이라는 여 자 한 명 외에는 이 안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준후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느꼈다.
‘내가 올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 아무 대비도 안 한 이유는 뭘까? 이 여자가 혼자서 나를 상대할 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데………….?’
“나는 마녀예요. 그리고 그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적어도 나 는, 세상의 성직자들이나 가증스러운 위선자들처럼 거짓말을 하 지는 않으니까요. 솔직한 힘. 상대보다 강하면 그 위에 서는 것 이고 아니면 밑에 서는 거예요. 위선과 가증으로 뭉친 종교와 윤리의 교리들은 자연적인 것을 내던지고, 자연 본연의 단순 명료 한 가치 기준을 혼란에 빠뜨렸어요. 그래서 세상은 점점 더 어지 러워지고 점점 더 살아남기 힘들게 되어 가죠.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건 생명과 영혼이죠. 희생이나 구원과 같은 어리석 고도 나약한 생각은 절대 안 해요.
준후 형제, 인간은 원래가 그런 존재예요. 겉으로는 오래된 관 습 때문에 위선을 떨지만 점점 인간들 마음속의 생각은 우리에 게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피에 굶주리고 살육과 파괴를 즐기는 그런 추한 존재라는 속임 수 때문일 뿐.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 이제.”
“제발 그만 좀 닥칠 수 없어?”
준후는 싸늘한 어조로 은경을 쏘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은경이 그래도 입을 다물려고 하지 않자 준후는 은경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사실 은경의 내력이 어떤지 몰라 준후는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었지만 그녀의 몸에서는 체중 이 외에는 조금의 저항도 느낄 수 없었다.
준후는 스스로 깨달은 이후로 그동안 못 자란 것까지 무섭게 자라서 비록 비쩍 마른 체구였지만 키만은 현암을 앞지를 정도 였다. 은경도 여자치고는 작은 키가 아니었으나 멱살을 잡힌 채 그대로 번쩍 허공에 들어 올려져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그 녀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졌지만 그럼에도 표정은 태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숨이 막히는지 더 이상 입은 놀리지 못했다.
“이제 좀 낫군.”
준후는 은경이 잠잠해지자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그녀를 든 채 뚜벅뚜벅 제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추호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준후는 제단으로 올라설 수 없었다. 무엇 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제단을 둘러싸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 었던 것이다. 준후는 깜짝 놀라 한쪽 주먹으로 그 보이지 않는 막을 후려쳐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데도 손이 펑 소리를 내며 도로 튕겨 나왔다.
준후는 놀라서 저쪽으로 은경을 집어 던지고 이번에는 양손으 로 수인을 맺어 보이지 않는 막을 부수려고 했다. 그러자 구석에 넘어진 은경이 태연하게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한마디 했다.
“그러면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다 죽어요.”
준후는 막 거대한 뇌전을 쏘아 대려는 참에 그 말을 듣고는 흠 칫했다. 그러나 양손에 맺어진 뇌전의 기운을 지울 수가 없어서 급히 손을 위로 치켜 올렸다. 순간 뇌전이 천장 쪽으로 쏘아져 나가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천장에 사람 두 명이 드나들 만한 구멍 을 뚫고 다시 그 위의 천장도 뚫고 날아가고 말았다. 먼지와 돌 부스러기가 우르르 떨어지는데도 은경은 여전히 놀라지 않은 얼 굴로 먼지를 톡톡 털어 내며 말했다.
“굉장하군요. 준후 형제. 사람 맞나요?”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야? 어서 말해!”
준후가 금방이라도 칠 듯이 윽박지르자 은경이 가볍게 되받았다.
“말 안 하면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요? 형제는 사람에게 주술 을 안 쓴다던데요?”
그러자 준후는 지체 없이 수인을 맺은 왼손을 은경에게 향하 며 외쳤다. 손가락 끝에서 아까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푸른 불 꽃을 튕기는 뇌전이 바지직거리며 맺혔다.
“사람에겐 안 써. 그러니 인간도 아닌 너에겐 쓸 수 있지. 어서 말해!”
그 말에 은경은 마치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무하네요. 준후 형제. 그렇다고 정말 날 죽일 수 있겠어요?”
“죽이지 않아도 방법은 많지. 코부터 없애 줄까, 아니면 입술 부터 없애 줄까? 해골처럼 콧구멍하고 이빨만 가지고 웃으면 꽤 이쁘겠군.”
준후는 평소에는 감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끔찍한 소리를 해댔다. 사실 자기가 말하면서도 등에 써늘한 것이 훑고 지나가 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은경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할 뿐이 었다.
“준후 형제야말로 형제가 생각하는 악마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요?”
“사람들을 잡아 인질로 삼는 짓보다야 낫지. 한번 맞아 보겠다는 거냐?”
은경이 담담하게 웃으며 되받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못할 것 같아?”
“아니, 아니, 화내지 말아요. 준후 형제. 내 말은 형제가 못한 다는 게 아니죠. 그래 봐야 과연 나를 다치게 할 수 있을까요? 종교를 믿는 자들은 말하죠? 항상 신은 그들과 함께한다고. 나 의 주인님도 항상 나와 함께 있어요. 형제는 나를 때릴 수도 있 고 할 수도 있고 옷을 다 찢어 버릴 수도, 죽일 수도 있겠죠. 그 러나 내 영혼에 상처를 줄 수는 없어요. 그건 주인님이 용납하지 않을 거거든요.”
너무도 당당한 은경의 말에 준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완전 수녀잖아. 다만 악마를 섬기는 게 정반대일 뿐이다.’
그때 은경이 깔깔 웃었다.
“주인님은 저들의 생명으로 저 막을 치신 거예요. 그러니 준후 형제가 힘이 엄청나도 저걸 깨뜨리고 저들을 구하려는 생각일랑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저 막을 깨는 것은 형제 스스로 저들을 죽 이는 거거든요. 그렇게까지 해서 구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요. 호호.”
그 말에 준후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막으로 다가가 그것을 이루는 무형의 기운을 느껴 보려고 애썼다. 그러자 은은하게 아라 의 느낌이 준호의 느낌이 이반 교수의 느낌이 전해져 왔다. 순 간 준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차라리 고문을 하거나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았다면 더 나을 터였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준후의 손으로는 절대 그들을 구하 지 못하게 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사악한 장난을 쳐 놓았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던 준후는 화가 치밀어서 은경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면서 외쳤다.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네 주인은 어떤 악마지, 응?”
“내가 설명할 땐 안 듣더니 이제 와서 궁금해진 것 같군요. 준 후 형제는 너무 성질이 급해요. 아직 청소년기라서 그런 건가요?”
준후는 정말 이 여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불꽃을 튀기면서 싸우는 맞수라면 자기보다 열 배 강한 적이라도 두렵 지 않았다. 그러나 세 사람이 인질로 잡힌 다급한 상황에서 두 눈 멀거니 뜨고 아무 힘도 없이 입만 나불거리는 이 여자를 상대 하려니 머리가 다 깨지는 것 같았다.
은경은 준후가 멱살을 풀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요? 우리 주인님은 준후 형제와 구면이에요. 그러니 이번에 만나게 되면 재회하는 셈이라고요.”
“당신 주인은 악마?”
그 말을 듣고 준후는 기가 막혀 소리쳤다.
“미쳤군!”
“미치지 않았어요. 우리 교의 이름이 왜 종말재림부흥교인데 요? 이제 인간들이 믿는 그 썩은 신의 세상은 가고 잊힌 존재들 이 신이 되는 세상이 올 텐데. 그게 바로 신의 관점에서는 종말 이고 잊힌 존재들로서는 재림이며 인간으로서는 부흥이 되는 거 랍니다. 그래서….”
준후는 조용히 슬픈 눈으로 은경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협박 에도 꿈쩍하지 않던 은경이 준후의 눈빛을 보고 움찔거렸다.
“미안해요. 형제. 내 주인의 이름은 아스타로트.”
“아아.”
그 이름을 듣자 준후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음을 토해 냈다. 지옥의 악마 아스타로트,
어째서 이런 것들과 나는 자꾸 마주치게 되는 걸까.
속으로 한탄하면서 준후는 은경에게 물었다.
“그러면 나에게 뭘 바라는 거지?”
“준후 형제, 형제는 나보다 많이 어려요. 그런데 아직까지 말 투를 그리하면 나는 괜찮지만 형제는 스스로 미안함도 안 느끼나요?”
준후는 속으로 몇 가지 안 되지만 알고 있는 욕을 모조리 퍼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당신 주인은 나에게 뭘 바라는 겁니까?”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나에게 마녀 협회의 지령이 내려온 것 도 이미 몇 주 전이었어요.”
“지령?”
“나는 여기서 종말재림부흥교를 차리고 있지만, 마녀 협회의 지부장 격이랍니다. 아까 말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나에게 연락 이 왔어요. 이반이라는 늙은 형제가 한국으로 갔으니 그를 좀 감시하라고요.”
‘이반 교수님이?’
준후도 이반 교수가 여기 와 있는 것이 놀랍고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반 형제는 마녀 협회의 회장을 박살 낸 악당이니 잘 보고 그가 왜 한국에 간 것인지 꼭 알아내라는 명령이었지요. 사실 이반 형제를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죠. 그런데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가 무엇을 찾아다니는지 수소 문해 보았죠. 그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어요. 이미 몇 년 전에 죽 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을 말이죠. 그 사람들의 이름은…………… 준 후 형제도 당연히 알 거고, 물론 준후 형제도 그들 중에 있었죠.”
그 말을 듣고 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전에 준호가 어떤 낯선 외국인이 준후를 찾더라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었는데, 준후는 그 사람이 또 무슨 수사관의 끄나풀인 것 같아 그냥 묵살하라고 말한 바 있었다. 이제 알고 보니 자신을 찾던 사람은 믿어도 좋을 이반 교수였던 것 같았다.
“나도 당신들 모두가 죽은 것으로 알고 그렇게 바이올렛에게 전했어요. 그런데 그녀는 그들은 죽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번 일 은 매우 중요하니 그들을 꼭 찾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주인님 이 직접 가실 것이라고 했죠. 그리고 주인님이 오셨어요. 나는 당연히 영접했죠. 그랬더니 주인님의 말씀은 이랬어요. 다른 자 들은 힘들겠지만 장준후는 꼭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 이죠.”
‘누가 너희 편이 된대?’
준후는 속으로 비웃었으나 일단 그간의 경과가 궁금했기 때문 에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나는 장준후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모든 신도 들・・・・・・ 아, 실수, 모든 열성 신도들을 풀어서 그를 찾도록 했죠. 그리고 결국 찾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장주석 형제에게서 말이죠.”
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주석이 종말교와 관계가 있 는 줄은 알았지만, 준후의 정체를 종말교에 폭로한 것이 바로 주 석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그런데 당신들은 주석이를 왜………… 사고로 가장해서!” 준후가 자신도 모르게 발끈하자 은경이 고개를 갸웃해 보이더니 물었다.
“사고? 사고라뇨?”
“맞아, 사고는 아니죠. 그런데 주석이를 왜 죽였죠?”
“누가 누굴 죽여요? 주석 형제는 자살했어요.”
“거짓말! 분명히 주석이는 살해당한 거야! 걘 자살할 이유가 없어.”
은경이 고개를 저어 보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확하게 다시 말하죠. 주석 형제는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도 있어요. 주석 형제는 당신을 숨어 있는 곳에서 끌어내기 위 해서 자살한 겁니다.”
준후는 갑자기 뒤통수를 뭔가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해졌다. 설마 설마 그랬을 줄이야.
“준후 형제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힘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름까지 바꿨어요. 아마도 현규 형제였죠? 사실 우리 도 깜박 속았었어요. 우리는 저기 있는 준호 형제가 준후 형제인 줄로 알았죠. 그러나 아무리 관찰해도 준호 형제는 패기가 부족 했어요. 힘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존재들과 의연히 대적한 형제 같 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준호 형제가 정말 그 떠들썩했던 퇴마사 장준후 형제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준후 형제의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형제는 정의감도 강하고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힘을 빌려 준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러 니 준호 형제 앞에서 큰일을 벌일 필요가 있었던 거죠.” “주석이는…… 겨우 그런 일로……………. 그리고…….”
그렇다면 주석이 끔찍한 얼굴로 나타난 것도, 묘지에서 아라 의 머리를 보이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알린 것도 실제로는 모두 악마의 술수에 불과했단 말인가? 준후는 너무도 착잡해서 부들 부들 떨기만 할 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겨우라고 하지 말아요. 우리로서는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주 석 형제는 스스로 택했고, 아주 행복하게 그 소임을 다했어요. 주 석 형제는 마녀 협회의 비술에 따라 시신이 처리되었고, 남들의 눈에 띌 만한 모습으로 학교 내를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준후 형제가 힘을 보였는데, 호호호, 그 누가 알았겠어요? 실제 로 끝없는 힘을 간직하고 있었던 준후 형제가 바로 현규 형제였 다는 것을 말이죠. 저기 아라 자매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몰랐을 거랍니다. 호호호.”
준후는 은경을 당장에라도 쳐서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 나 세 사람의 안위를 생각하여 간신히 참고 있었다. 아니, 화가 지나친 나머지 준후는 은경이 차라리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가 화근이었던 것도 모르고 해결한답시고 날뛴 그 꼴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알아낸다고 설치다가 결국 진실에는 한 발 자국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악마와 마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은 또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나마 한때뿐일 보통 사람으로서 의 생활조차 이렇게 철저하게 이용되었다니. 이것을 어떻게 받 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주룩 눈물을 흘렸다. 그런 준후를 쳐다 보며 은경이 말했다.
“슬퍼할 것 없어요. 주인님의 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슬퍼하는 건가요? 난 여한이 없답니다. 준후 형제는 지금 이 곳에 왔으니 우리 주인님의 말을 들어야만 해요. 준후 형제만 말 을 들어준다면 저기 아라 자매나 준호 형제, 이반 형제 등은 다 놓아드리지요.”
준후는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은경을 쏘아보였다.
“정말인가요?”
“주인님은 약속을 지켜요. 나도 약속을 지키고요.”
“난 믿을 수 없어요. 그러나 일단 들어나 봅시다. 내가 무슨 짓을 하면 저들을 놓아주겠어요?”
“우리 편이 되어 줘요. 아니면.”
그때 준후가 은경의 말을 재빨리 끊었다.
“그건 못해요. 다른 선택도 있나요?”
그러자 은경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우리 편은 안 될 줄 알았어요. 다른 선택도 있죠. 아주 간단 해요. 형제는 지금 우리 주인님이 무슨 끔찍한 일을 시킬 것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아요. 준후 형제가 할 일은………… 바 로…………… 저들을 구해 가면 되는 거예요.”
준후는 어이가 없었다. 저들을 인질로 잡아 놓고 저들을 구해 가는 게 악마가 시키는 일이라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 가?
“둘 중의 하나. 우리 주인님의 편이 되거나 저들을 구해 가요. 다른 선택은 없어요.”
“내가 그냥 여기서 도망친다면?”
“저들 모두가 주인님의 노리개가 되는 거죠.”
은경의 말에 준후는 벌컥 성질을 냈다.
“그게 무슨 선택이란 말야! 저들을 꺼내려면 저 막을 부숴야 하고, 그건 저들을 죽이는 거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그게 무슨 선택이냐구!”
은경이 킥 소리를 내며 말했다.
“준후 형제는 역시 성질이 급해요. 끝까지 들어 봐요. 저 막은 저들 주변에만 쳐 있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이 지하실 전체에 쳐져 있지요. 그러니 도망갈 생각도 하지 말아요. 그런데 저 막 을 부수지 않고도 저들을 구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게 뭐지?”
준후가 급히 묻자 은경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를 죽이고 그 피를 막에 뿌리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