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8화 – 재회 8 :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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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2권 8화 – 재회 8 :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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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후는 아까 주석이 스스로 원해서 죽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 을 때만큼 놀랐다. 이 여자가 지금 제정신인가 싶기까지 했다. 

“당신・・・・・・ 당신 제정신인가요? 그러면 죽는 건 당신이라구 요!”

“나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바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뭐.” “미, 미쳤군! 정말 미쳤어!”

그러나 은경은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우리는 몸을 아깝게 여기지 않아요. 영혼이 중요한 거죠. 주인님의 명이니 어쩔 수 없어요.”

준후는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죽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뿌리겠소.”

“그 정도로 저 막이 없어질 것 같나요? 한 사람의 몸에 든 피를 모조리 짜내야 될까 말까라구요.”

준후는 은경이 태연하게 내뱉자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은경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 미친 명령을 당신은 태연하게……………..”

은경은 준후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경전에 보면, 아브라함이라는 자가 나와 요.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의 목을 따 제물로 바치 라고 하죠. 그건 말이 되는 명령이었나요? 아브라함은 나이 백 살이 되어서 이삭 하나를 간신히 얻었다죠. 그런 친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 바치라고 했어요. 물론 나중에 그만두라고 했다고 는 하지만, 아브라함은 실제로 그 명령을 받들려고 했죠. 내가 보 기엔 우리 주인님의 명령은 그보다는 훨씬 정상적인걸요? 종교 인들은 순교를 하는데 마녀에겐 그런 것이 없는 줄 알았나요?” 준후는 이제 아스타로트의 음모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악마 아스타로트가 준후를 어찌하지 못하는 이유는 준 후의 선한 마음 때문이었다. 허나 반대로 선한 자를 타락시키는 것이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이라면 그 선한 마음은 강점도 되지만 약점도 된다. 또 유독 준후에 눈을 돌린 것은 그나마 준후가 더 어려 의지가 굳지 않기 때문이리라. 독실한 박 신부나 의지의 화 신 같은 현암은 절대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악마들이 정말 무슨 계획을 가지고 준후를 그들의 편으로 만 들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이제 준후는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진 셈이었다. 악마들은 준후를 죽이는 것보다는 같은 편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만약 준후가 도망친다면 준후는 세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려서 괴로워하다가 틈이 생겨 무너 져 버릴 것이었다. 물론 세 사람을 죽이고 막을 깨뜨려도 마찬가 지였다.

그렇다고 은경을 희생시킬 것인가? 은경은 스스로 마녀이고 악마의 하수인이라 했다. 그러나 그녀를 잡아 죽여 그 피를 뿌릴 정도로 준후는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그녀를 죽인다 해도 준후 가 마음에 받는 상처는 세 사람을 희생시켰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경우에는 어떤 술법이나 주술도 소용이 없었다. 준후가 알고 있는 수천 가지의 주술 중 그 어떤 것도 저 막을 깨뜨리지 않고 거둬들이는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악마가 직접 펼친 주술이니까.

“우리 주인님께 항복하세요. 그게 싫으면 날 죽이든가요. 형제 가우리 편이 되면 나로서는 더더욱 좋고, 만약 아니더라도 나는 순교자가 되는 셈이니 그 또한 만족스럽답니다. 어서 결단을 내 리세요. 더 시간을 끌면 우리 모두 죽어요. 형제를 죽이고 싶지 는 않아요.”

“왜 시간이 없다는거지?”

“저 막은 생명력으로 친 거예요. 오래 버틸 수가 없죠. 어떻게든 해야 희생자를 줄이는 거죠.”

은경은 남의 말을 하듯 담담하게 말하면서 조그마한 칼을 한자루 꺼내 들었다. 그러나 뭔가에 홀린 것도 아니었고 조종받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그 여자의 순수한 의지였다.

준후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준후는 매 달려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들의 헐떡거리는 신음 소리는 보이지 않는 막을 뚫 고준후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몹시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반 교수는 조금 멀다 하더라도 준호는 자신을 사부로 모시 며 그림자처럼 지내 왔다. 그리고 아라. 비록 겉으론 냉정하게 대했지만 불원천리 자신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을 보고 준후는 적잖이 마음이 움직인 터였다. 저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결 코. 그렇다고 은경을 잡아 죽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준후는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 미친 듯이 은경이 내놓은 단검을 집 어들고 앞으로 달려갔다.

‘차라리 내 피를 뿌리자! 그러면 된다!’

준후는 이를 악물고 단검을 높이 들어 올리며 허공에 대고 외쳤다.

“아스타로트! 잘 봐라! 네 뜻대로는 안돼!”

그때 은경이 마치 준후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준후의 등에 대고 조용히 외쳤다.

“당신의 피는 안 돼요.”

준후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결이라도 할 각오였으나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뒤를 휙 돌아보며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뭐라구?”

“당신은 남자죠. 남자의 피는 안 돼요. 준후 형제. 주인님은 모 든 것을 내다보고 있어요. 당신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요.” 

준후는 무릎이 휘청하고 꺾이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샘솟듯 흘렀다. 차라리 악마 놈이 모습을 나타낸다면 모두의 목숨을 걸 고 죽기 살기로 한판 붙기라도 할 텐데 교활한 아스타로트는 모 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준후가 단검을 목에 들이대려는데 은경이 또박또박 말했다. 

“형제, 자살은 대죄라고 어느 종교에서는 말하죠? 지금 이 자 리에서 자살하는 것은 우리 주인님께 항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예 요. 차라리 그러려면 몸을 지닌 채 항복하세요. 왜 젊은 나이에 죽으려는 거죠? 우리는 나쁜 일을 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준후 형제를 통해 세상의 종말을 막고 미친 신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건 준후 형제의 뜻과도 같은 것 아닌가요? 왜 선 입관을 갖고 그토록 거부하는 거죠?”

준후는 단검을 떨어뜨리고 몸을 떨면서도 날카롭게 대답했다.

“인질을 잡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는 족속이 되고 싶지 않 아!”

“이건 큰일이에요. 큰일이라서 할 수 없었던 겁니다.”

“큰일 핑계 대는 놈들 치고 옳은 놈 못 봤다구.”

별안간 준후가 미친 듯이 깔깔깔 웃었다. 나무토막처럼 침착 한은경조차도 조금 의아한 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준후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아스타로트! 네가 이겼다! 우리 모두의 목숨을 주마! 하지만 항복은 못한다!”

그러면서 준후는 앞에 매달린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정말 미안해. 준호, 아라….”

준후는 단호하게 다시 단검을 집어 들었다. 바로 그때, 천만뜻 밖에도 묶여 있던 아라가 몸을 꿈틀하더니 뭔가를 칵 내뱉었다. 피! 새빨간 피였다! 아라가 내뱉은 피는 허공중에 둘러쳐진 보이 지 않는 막에 철썩 부딪쳐 흘러내렸고 막과 함께 치지직 소리를 내며 연기와 더불어 타들어 갔다.

준후는 깜짝 놀라 아라를 보고 소리쳤으나 아라는 대답하지 않고 또다시 있는 힘껏 피를 내뱉었다. 혀를 깨문 것이 분명했 다. 그러고 보니 아라 등의 숨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묶여 있 던 세 사람 모두 이쪽에서 은경과 준후가 한 대화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리고 있던 아라가 여자의 피여야 한다는 소리에 혀를 깨문 것이 틀림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침착했던 은경이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자매! 미친 짓 하지 마! 그렇게 해서 막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온몸의 피를 다 빼낼 수 있다고 생각해? 응?”

준후는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어서 눈을 가렸다. 아니, 눈을 마구 쥐어뜯다시피 했다. 아라는 피가 잘 나오지 않자 안간힘을 쓰면서 두 번, 세 번 혀를 깨물어 가며 피를 뿜었다. 고통에 가득 찬 신음 소리를 내면서 아라는 그 미친 짓을 계속했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준후가 발악하듯 소리치면서 막을 두들겼지만 막은 꿈쩍도 하 지 않았다. 아라가 안간힘을 다해 피를 뿜어서 막이 상당히 얇아 지기는 했어도 아직 구멍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라의 얼굴과 옷은 온통 피로 물들었고 얼굴빛은 삽시간에 해쓱해져서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몰골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라는 끝없이 고개를 버둥거리면서 용을 쓰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만해. 제발….!!”

준후가 마구 흐느껴 울면서 막에 기댄 채 미끄러져 내리자 아 라는 몇 번 고개를 들썩이면서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혀를 십여 차례나 깨문 입에서는 괴이한 신음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 다. 그 처절한 광경을 보고 목석같던 은경조차 눈물이 글썽거렸 다.

은경이 준후에게 외쳤다.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해요! 준후 형제! 어서………! 어서 그만두라고……………. 어서 항복해요! 네? 제발!”

준후는 울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이제 그만 항복이라 고 외치려는 순간, 아라가 갑자기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 바 람에 아라의 얼굴에서 피가 튀어서 사방에 점점이 뿌려졌다. 그 순간, 준후는 뺨에 뭔가 화끈한 것이 철썩 떨어지는 것을 느꼈 다. 무심코 손을 들어 문질러 보니 그것은 한 방울의 피였다. 아 라의 피가 분명했다.

“막이 뚫렸다!”

준후는 외치면서 연기를 뿜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막을 더듬었 다. 막은 아라가 뱉어 낸 피로 덮여 마치 허공에 피가 떠 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그 중간 부분에서 준후는 작은 구멍을 찾아냈다. 준후는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스타로트! 막이 뚫렸다! 네가 졌어!”

은경이 몸을 떨다가 외쳤다.

“주인님! 약속은 약속입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거두 어 주세요. 주인님이 지셨습니다!!”

하지만 허공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 무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쪽에서는 아라가 풀썩 고개를 떨 구며 땅에 주르륵 검은 피를 쏟았다. 의식을 잃었거나 더는 버텨 낼 힘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준후는 머리털을 솟구쳐 올리면서 온 지하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아스타로트!!”

그런데도 준후의 귀에는 아무런 응답도 들리지 않았다. 은경 도 놀란 얼굴로 허공을 보고 중얼거렸다.

“주인님! 주인님! 어디 가셨나요. 주인님? 왜 약속을 지키시 지 않는 건가요? 주인님…………! 주인님!”

은경의 중얼거림이 처량하게 지하실에 퍼져 나가는 것을 듣고 준후는 비록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지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악마는 악마다. 아무리 좋은 말과 이론으로 가리려 해도 악마는 악마구나.’

그러다가 준후는 아라가 마침내 완전히 힘을 잃고 고개가 뒤 로 꺾이는 것을 보았다. 준후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막에 뚫린 구멍을 잡고 벌리려 했지만 구멍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준후의 뒤쪽에서부터 다시 붉은 액체가 촥 소리를 내며 막 에 끼얹어졌다. 깜짝 놀란 준후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은 경이 한쪽 팔을 걷고 팔뚝에 기다란 상처를 내어 선혈을 뿜어내 고 있었다. 은경은 아픔 때문인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준후에 게 말했다.

“주인님의 약속을 대신 지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은경은 다시 팔을 칼로 그어서 막에 피를 뿌렸다. 준 후가 은경을 말리려는 듯 손을 내밀었으나 은경은 짧게 말했다. 

“죽을 정도로는 안 뿌려요. 저 자매가 절반, 내가 절반. 그러면되니까요.”

아라가 뱉은 피가 안쪽에서 뿌려지고 은경이 뿌린 피가 밖에 서 더해지자 막에는 잠시 후 연기와 함께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일단 사람이 드나들 만큼의 구멍이 생기자 막 전체가 돌연 사라 졌다. 준후는 미친 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아라를 묶었던 두꺼 운 끈을 수형도의 수법으로 잘라 버렸다.

“아라야! 아라야! 정신차려! 나야! 준후!”

다행히도 아라는 으음음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아직 숨이 끊 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준후는 아라를 안은 채 준호와 이반 교수 를 묶은 끈을 연달아 끊었다. 준호와 이반 교수도 정신을 차리 는 듯했다. 준호는 그간의 일을 알지 못해 피투성이가 된 아라 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반 교수는 역시 나잇값 을 했다.

그는 아라의 상태를 재빨리 확인하더니 미친 듯 주변을 살폈 다. 그리고 주변의 작은 서랍에서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찾아냈 다. 그 안에는 바느질 재료인 바늘과 가위, 그리고 실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이반 교수는 준후에게 뭐라고 설명을 했으나 외국 어에 문외한인 준후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반 교수는 아라를 곧 안아 들더니 재빨리 바늘에 실을 끼워 서 아라의 마구 잘린 혀를 꺼내 꿰매기 시작했다. 준호는 그 모 습에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고 끔찍한 것을 수없이 보아 온 준후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반 교수는 만신창이가 된 얼굴에 굵은 땀을 흘리면서 묵묵 히 아라의 혀를 꿰매는 외과 시술을 꼼꼼하게 해냈다. 이반 교수 가 침착하게 응급조치를 하자 준후는 조금 안심하고 은경 쪽을 돌아보았다. 비록 적이었지만 그녀는 페어플레이를 한 셈이고, 덕분에 아라가 살아나게 된 셈이니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 어서였다. 준후가 다가가자 아직도 팔에서 피를 흘리며 멍하니 앉아있던 은경은 조용히 말했다.

“저 자매를…………… 저 자매를 봐서 한 거야. 꼭 과거의 날 보는 듯해서….”

“예?”

준후가 묻자 은경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아무튼 고마워요.”

“저 애에게나 잘해줘. 나 같은 여자 하나 더 만들지 말고”

그 말만 남기고 은경은 벌떡 일어나 보이지 않는 막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지하실의 철문을 밀었다.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 은경은 문을 빠져나가 지하실 어둠 속의 어디론가 사라 져 버렸다.

준후는 굳이 은경을 잡으려 하거나 뭐라 묻지 않았다. 이반 교 수는 땀을 씻으면서 준후에게 아라를 가리켜 보였다. 아마 병원으로 옮기자는 말 같았다. 준후는 즉시 달려와 아라를 들쳐 안았다. 준호와 이반 교수가 도와주려 했지만 준후는 고개를 젓고 아 라를 꽉 안은 채 지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가면서 준후는 속 으로 중얼거렸다.

‘아라와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반 교수님과도 다시 만 나게 되었구나. 마녀 협회………… 그리고 아스타로트…………. 아스타 로트, 난 이번 재회를 잊지 않을 테다. 절대로 잊지 않을 테다.’ 

아라를 안은 준후와 준호, 이반 교수가 종말교 밖으로 나갔을 때는 이미 몹시 늦은 밤이라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끊긴 듯했다. 문득 준후는 준호가 어깨를 툭 치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종말교 건물의 어느 닫힌 창문 안쪽에서 은경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은경이 손에서 라 이터 같은 것을 튕겨 불을 댕기자 순식간에 종말교의 건물 안에 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화염이 창문들을 깨고 일제히 솟구쳤고 깨진 유리가 사방으로 튀었으며 폭음으로 땅이 흔들렸다.

준호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도대체 왜?”

준후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서글픈 기분에 잠겼다.

‘아마 그것밖에는 길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할 길은…’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남아 있었다. 은경이 마지막에 아라가 자신과 같다고 했던 말은 무슨 뜻일까? 은경도 과거에 어떤 남자 때문에 마녀 협회 같은 곳으로 빠지게 된 것일까? 혹시 남 자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일까? 그래서 악마를 주인으로 섬기 기 시작한 것일까? 마지막 말을 남긴 의미는, 마지막으로 자폭한 이유는 스스로의 행동을 후회해서일까, 아니면 합리화하기 위해 서였을까?

그에 대해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준후는 다시 한번 마 음속으로 다짐했다.

‘아스타로트! 어쨌거나 이번 일은 결코 잊지 않겠다. 결코.’ 

사람들이 하나둘씩 웅성거리며 폭발이 난 현장으로 달려오는 사이 준후 일행은 혼잡을 뚫고 병원으로 갔다. 일단 다른 것은 둘째치고 아라의 몸에서 가늘게 들리는 심장과 맥박 소리가 준 후로서는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준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나 병원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 점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가끔씩 아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비록 막무가내에다 제멋대로기는 하지만, 준후는 피에 젖고 창백해진 지금의 아라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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