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3권 6화 – 두 사람의 기적 1 : 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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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3권 6화 – 두 사람의 기적 1 : 성흔


성흔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 피는 중앙에 앉은 남자의 손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주변의 누구도 그 모 습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두렵다거나 어떤 조치를 취해야겠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이것은……”

주변에 둘러선 사람들 중 나이 많고 몹시 뚱뚱한 체구의 남자 가 떨리는 목소리로 옆 사람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기쁨과 경악이 반반씩 뒤섞인 듯했다. 놀라도 기뻐하기는 다른 사람들 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에 앉은 남자는 손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고, 어떤 행 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 조용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돌연 피가 솟구쳐 흘러내린 것이다. 그것은 단 한 가지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성, 성흔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임종 때 입었던 것과 똑같은 부위의 상처, 그 것을 성흔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기적을 나타내는 징표 중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으며, 선택받은 복자(福)를 나타내는 상징 이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대는 동안에도 중앙에 앉은 남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기도만 계속 올리고 있었다. 그러 는 사이 그의 이마에도 돌연 붉은 자국이 생겨나면서 손만큼은 아니었지만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내렸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해 보였으며, 전혀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마에도……………. 주님께선 가시 면류관을…………. 그러니 틀림 없습니다.”

젊은 축에 속하는 다른 한 명의 남자가 다시 수군댔다. 그는 화사한 금발의 남자였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칙칙하고 어두운 빛깔의 후드를 눌러썼어도 얼굴이 더더욱 빛나 보일 정도로 미 남이었다.

“아멘. 정말로…………… 정말로 기적이군요………….”

그 말을 듣던 인자한 얼굴의 노인은 손을 들어 성호를 그으려 했으나 그의 오른팔은 석고로 단단하게 깁스가 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노인은 겸연쩍은 듯 왼손으로 조금 어색하게 성호 를 그었다. 그 사람은 세븐 가디언 중의 한 명인 아우구스티노 수사였다.

그의 주위에 있는 세 사람도 세븐 가디언의 일원이었다. 세븐 가디언의 우두머리인 베드로 수사도 있었으며 뚱뚱한 노인은 루 카수사라 했고, 젊은 남자는 가브리엘 수사였다. 그리고 중앙에 서 성흔의 기적을 보이는 사람은 바로 프란체스코 주교였다.

프란체스코 주교는 무아지경으로 기도에만 몰입해 있어서 자 신의 몸에 그러한 징표가 나타나는 것도, 그의 주변에 네 명의 가디언이 서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븐 가디언 정도 되는 능력자들에게 성흔 같은 기적을 보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성흔의 기적은 그들의 우두머리인 프란체스코 주교에게 일어났다는 점 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들은 급한 일이 있어서 프란체스코 주교를 만나러 온 것이 었다. 하지만 주교가 깊은 기도에 빠져 있고, 성흔까지 나타나는 기적을 보이자 감히 주교의 기도를 방해하면서까지 용건을 꺼내 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윽고 프란체스코 주교는 어깨를 움찔하면서 서서히 기도를 마쳤다. 그가 최후의 마무리로 성호를 긋자 손에서 흐르던 선혈이 조금 튀었다. 주교는 조금 놀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피가 흐르는 두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그때서야 베드로 수사가 입을 열었다.

“주교님.”

“아. 베드로 형제,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이건…………? 이건 어떻게 된 일이죠?”

“주교님, 그건 성흔입니다. 기적이란 말입니다.”

“성흔? 오오, 설마…………….”

주교는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두 손바닥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다가 이마께가 근지러운지 슬쩍 손가락을 대보았다. 그의 이 마에도 가시에 긁힌 것 같은 상처가 나서 가늘게 피가 흘러내리 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주교의 얼굴에 비로소 놀란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 으나 주교는 곧이어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 무슨 일 때문에 다들 이렇게 모인 거죠?”

“지금.”

베드로 수사는 잠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면서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해 본 뒤에 말을 이었다.

“주변에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와 있는 듯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이라고요?”

“심상치 않은 사람들 같습니다. 몇몇은 이교도인 것 같고.’

“이럴 때에는 이교도라는 말을 쓰지 마세요. 우리는 다른 종교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는 프란체스코 주교가 조용히 덧붙였다.

“이상한 사람이 몇몇 왔다고 가디언이 넷이나 모일 필요가 있나요?”

네 사람의 가디언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울한 눈빛을 교환했다. 베드로 수사가 다시 말했다.

“일곱이 다 모여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아녜스 수녀 는 지금 부를 수 없는 상황이고, 다른 둘은 아직 병원에 있습니 다. 교황청 경비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떨까요?”

프란체스코 주교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명의 가디언이 모여 도 부족한 정도라니. 그러나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교황청 경비대에게 우리나 그들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나요?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해 봅시다.” 네 사람의 가디언은 조금 불안한 듯했으나 흔쾌히 고개를 끄 덕였다. 어찌되었거나 프란체스코 주교의 판단이 가장 옳을 테 니 말이다. 주교가 성호를 긋고 다시 말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네 명의 가디언도 엄숙히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아멘”

주교가 베드로 수사에게 물었다.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나요?”

그 말을 듣고 뚱뚱한 루카 수사가 말했다. 루카 수사는 날 때 부터 보통 사람보다 오감이 스무 배 이상 예민한데다 후에 기도력으로 일종의 투시력까지 갖게 된 인물이었다.

“……마녀들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마녀 협회…………? 그들이 성소인 바티칸에…………?”

“그들 말고도 있는 듯합니다.”

“그들 말고라면요?”

“회교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녀 협회와 회교도라…………. 그렇다면 그들 역시 이것을 찾는 걸까요?”

주교는 조용히, 지금도 서두름 없이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책상을 열었다. 성흔에서 샘솟는 피가 열쇠와 옷, 책상에까 지 묻었으나 주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주교는 서랍을 열고 베드로 수사에게 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가방 쪽을 향해 눈짓을 했다. 그러자 베드로 수사가 그 가방을 조심스레 들고 안에 든 것을 꺼냈다. 붉은 천에 감싸여 있는 세 개의 돌.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조각이었다.

“베드로 수사, 루카 수사, 가브리엘 수사가 하나씩 간직하세 요. 최소한 모두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세 명의 수사는 점토판을 각각 옷 속에 잘 갈무리했다. 아마도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부상을 입은 몸이라 점토판 조각을 넘겨주 지 않은 것 같았다.

“세 분 다 지금 나가세요. 곧!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다른 방향 으로 흩어지십시오. 최소한 내일 이후에 연락을 취하고 돌아오 세요.”

가브리엘 수사가 말했다.

“주교님・・・・・・!”

“긴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가세요. 설마 가디언의 능력으 로 그들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그때 베드로 수사가 흥분된 어조로 나섰다.

“주교님!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이것을 지 켜 내겠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은 어쩌시려고……………!”

“아닙니다. 나는 문제없어요. 내게 물건이 없는데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세 명의 수사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지 금 다가오는 어둠의 힘이 정말로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통의 경비원들이나 경비 장치 같은 것으로는 조 금도 막을 수 없는 자들인 것이다. 세븐 가디언이 있는 것은 그 런 자들을 막기 위해서이지만 지금 밖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능력은 세븐 가디언의 힘을 능가하는 듯했다.

그런데 능력도 한 점 없는 프란체스코 주교가 그들에게 어떻 게 맞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주교는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 하는 것 같지 않았고, 도리어 옅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주교님.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같이 계시겠지만 이분은 부상 을 입었고…………… 차라리 그럴 바에야 넷이 한데 모여 대적하는 편이………….”

베드로 수사가 말하자 가브리엘 수사도 급히 거들었다.

“교황청 경비대에 연락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게 할 수 는 없어요. 더구나 경비대를 두려워할 정도의 자들이라면 애당 초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여러분,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세요.”

그때까지 별말이 없던 루카 수사가 다급하게 나섰다.

“점점 다가옵니다. 기이한 자들이에요. 동방에서 온 자도 뒤섞 여 있는 듯합니다. 어이쿠, 엄청난 것 같습니다!”

“주교님!”

베드로 수사가 황급하게 부르자 프란체스코 주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을 따르세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계시가 있었어요.”

주교는 조용한 동작으로 팔을 들어 성흔이 생생한 양손을 벌려 보였다. 그것을 보고 수사들은 엄숙히 고개를 숙이고 성호를 그은 다음 등을 돌렸다.

못내 불안한지 가브리엘 수사가 말했다.

“그렇더라도 경비 장치는 발동하고 가겠습니다. 주의 가호가있기를…………….”

가브리엘 수사의 말이 끝나자 베드로 수사는 그림자처럼 순식 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루카 수사는 문으로 천천히 걸 어 나갔으며 가브리엘 수사는 벽 쪽으로 달려가다가 그대로 벽 을 뚫고 사라졌다.

세 명의 수사가 사라지자 주교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좌불안석이 었다. 주교에게 나타난 성흔으로 미뤄 볼 때 계시가 있었다는 말 은 틀림없었다. 아니, 설령 기적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주교가 거 짓말을 할 리 없으니,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계시였을까? 주교는 자신이 혼자 마녀 협회의 일 당을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주교를 지키 기 위해 순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조용히 눈을 감고 부러지지 않은 한 손으로 합장하는 형태를 취하며 기도를 올렸다.

돌연 기도하던 주교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수사님?”

“예, 주교님.”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됩니다.”

“예? 아, 예.”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합시다. 주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아멘………………”

주교와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함께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 러나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도무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 기 때문에 기도에만 전념하여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갑자기 창밖에서 와르릉 하는 기운이 밀 려들었다. 실제의 소리나 열, 폭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 서우리만큼 강한 영력의 폭발 같은 것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일까? 베드로 수사는 세븐 가디언의 우두머 리지만 이만큼 강한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밖에서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일까? 온 것이 마녀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순간, 이번에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사악한 기운이 창밖에 서 느껴졌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가려는 듯 몸을 움찔했으나 주교의 손이 차분하게 수사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성흔이 남아 있었으나 피는 더 이상 솟구치지 않았다.

수사는 다시 침착을 되찾았지만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건 마녀들이나 낼 법한 사악한 기운이다. 그러나 아까의 기 운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밖에서 싸움 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아니, 바티칸 내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 지는데 도대체 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며, 왜 아무도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정말 기이하기 이를 데 없구나.’

창밖에서는 둔한 총소리 같은 것이 조금 들리기는 했지만 그 것 말고는 어떤 특별한 소리도, 아무런 물리적인 울림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력이 발달한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자 신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강력한 영력들이 소용돌이치면서 치 열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십여 개의 기운들이 한데 엉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사악한 자들이기에 이런 엄청난 기운을 뿜어 내는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밖에 누가 있기에 이렇게 엄청난 싸 움을 한단 말인가? 마치 악마가 나타난 것 같구나.’


한편, 아래층으로 내려간 루카 수사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 었다. 그의 뚱뚱한 어깨가 조금씩 떨려 왔고, 이마에서는 끊임없 이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잠시 중얼중얼 기도문을 읊조리다가 문득 허공을 보고 말했다.

“베드로 형제, 가브리엘 형제, 여기 계신가요?”

가브리엘 수사가 먼저 맞은편 벽을 뚫고 서서히 모습을 나타 냈다. 가브리엘 수사는 몸을 무화(無化)할 수 있는 특이 능력의 소유자였다. 간혹 어떤 사람은 몸을 원자화하는 능력이라고 하 는 편이 정확하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일종의 텔레포트 능력 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의 능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아 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 곧 루카 수사에게 말을 건넸다.

“루카 형제께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신 것 같군요.’

루카 수사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소. 그래………..”

그러다가 루카 수사는 다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베드로 형제여 …. 안 돼요, 안 돼. 우리 먼저 상의해 보고 행동을 결정합시다.”

베드로 수사는 순식간에 루카 수사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베 드로 수사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능력 중 대부분은 초능력이었다. 그는 단거리로 텔레포트를 하여 몸 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가디언들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베드로 수사는 백발이 듬성듬성 섞인 검은 머리와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장대한 체구의 남자였다. 그는 강력한 능력을 지니 고 있어서 가디언들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었지만 성질이 불같고 물러설 줄 모르는, 지나칠 정도로 꼿꼿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 문에 루카 수사는 항상 그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루카 수사는 싸움보다 그의 예민한 감각으로 정보를 얻는 데 능했으며, 둔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머리 회전이 대단히 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븐 가디언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었 다. 또한 성질이 급한 베드로 수사에게 조언을 해 그를 제어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한시가 급한데요.”

베드로 수사가 긴장된 얼굴로 루카 수사에게 말하자 그는 고 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이며 되받았다.

“좋지 않아요. 지금 나가는 것은 좋지 못할 것 같아요.”

“주교님께서는 우리에게 임무를 부여하셨소. 우리는 무슨 일 이 있어도 그것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무턱대고 뛰쳐나가지는 말자는 것이지요. 형제여.”

루카 수사는 한숨을 한 번 푹 쉰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 밖에 모인 자들을 나는 대강 꿰뚫어 볼 수가 있어요. 그들은 절대 만만하게 볼 자들이 아닙니다.”

“싸우지 않고 빠져나가면 될 것 아니겠소.”

루카 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힘들 것 같아요. 바깥에는 지금 열다섯 명하고도 네 명의 능력자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수사가 흠칫 놀랐다.

“열아홉 명이나 된단 말입니까?

“그래요. 그 외에도 더 있지만 일단 능력자만 따져서 열다섯 명하고 넷입니다. 아니, 열다섯하고 셋하고 하나인 것도 같은데….”

성질 급한 베드로 수사가 불쑥 말했다. 숫자를 항상 우선적으 로 말하는 것이 루카 수사의 말버릇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 도 짜증이 났다.

“열아홉이면 열아홉이지, 열다섯하고 셋하고 하나는 또 뭐 요?”

“그들이 서로 다른 편 같아서 그렇습니다. 열다섯 명이 한 패 거리고, 세 명이 한 패거리,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어요. 아, 물론 열다섯 명도 전부 같은 집단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최소 한 그들의 의도는 모두 같아요. 더구나 그 외에도 수십 명이 더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셋하고 한 명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루카 수사가 땀을 흘리며 덧붙였다.

“좋지 않아요. 좋지 않아. 베드로 형제여, 형제의 힘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요. 그렇지요?”

“당연하지 않소?”

“그렇다면 내 말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결코 노하지는 말아줘요. 그럴 수 있나요?”

“좋소. 좋아, 말이나 해 보시오. 시간이 아깝소.”

“베드로 형제의 힘이라면 아마 우리를 둘러싼 열다섯 명은 그 럭저럭 피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만에 하나 그들이 형제를 추 적한다 해도 말이죠. 그러나 가브리엘 수사는 무사히 나갈 수 있 을지 없을지 점칠 수가 없고 나는 십중팔구 그들을 빠져나가기가 좀 힘들 거예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또 뭐가 문제란 거요?”

“문제는 그들 중에 너무나 …………… 너무나 강한 상대가 있다 는 거예요.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요. 그래 요・・・・・・ . 그런 자가 셋이나 있어요.”

그 말에 베드로 수사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정도는 베드로 수사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정확하게 읽어 내는 루카 수사가 이렇게 장담을 하니 그로서도 마음이 무 거워졌다.

“그렇다고 그들이 겁나지는 않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니……………”

베드로 수사가 말하자 루카 수사가 나섰다.

“오, 물론 목숨이 아깝다거나 두려운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는 주교님께서 주신 임무를 실패해선 안 돼요. 그리고………… 이대로라면 주교님도 필경 난처한 처지에 빠지고 말 거예요. 아 우구스티노 형제가 있다 해도 도움이 못 돼요.”

루카 수사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한데 뭉칠 수만 있다면, 열다섯 명 중 열네 명은 상 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중에 엄청난 자가 한 명 있어 요…………. 그가 합세한다면 우리도 장담할 수 없어요….. 그런 데…………… 또 다른 자들이 ………….”

“아까 말한 세 명과 한 명이라는 자들 말입니까?”

“그래요. 세 명 중 한 명은 엄청난 사람이에요. 그리고 다른 한 명도 어마어마해요. 그들이 만약 우리나 우리가 지닌 이것을 노 리고 한꺼번에 덤벼든다면 우리는 꼼짝도 할 수 없어요.”

그러자 지금껏 조용히 있던 가브리엘 수사가 흥분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서 달아나지도 못한단 말입니까? 그 정도라고는 믿을 수가…………….”

루카 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가브리엘 수사를 바라보았다.

“형제여, 형제의 무화 능력은 대단해요. 그 능력을 발휘하면 벽을 통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도 조금도 다 치지 않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과 차원이 달라요.”

그 말을 들은 베드로 수사가 버럭 화를 냈다.

“그렇다면 뭡니까? 지금 형제는 시간을 끄는 겁니까?”

어이없게도 루카 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일단은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꾸 떠드는 겁니다.”

베드로 수사는 수염을 곤두세우며 화를 냈다.

“당신・・・・・・・ 아니, 형제는…………….”

가브리엘 수사가 끼어들었다.

“지금이라도 저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말입니까? 경비대가 출동하기를 기다리는 건가요?”

“경비대는 전혀 도움이 안 돼요. 그들을 불러 봐야 모조리 희생될 뿐이에요.”

“그럼 뭡니까?”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요……………. 조금만 더……………. 아…………. 그 래!”

갑자기 루카 수사가 탄성을 지르더니 얼굴이 밝아졌다. 베드 로 수사와 가브리엘 수사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자 그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내 짐작이 맞았어요. 좋아요. 이제는 됐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아…………. 내 예상대로예요. 열다섯 명은 악한 자들이지만, 세 명은 그렇게 악한 것 같지 않았어요. 그 세 명과 열다섯 명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승산이 있어요.”

“그러면 루카 형제께서는 그것을 짐작하시고……………?”

“맞아요. 베드로 형제의 성질이 원래 급해서 이렇게라도 시간 을 끌지 않았으면 벌써 뛰쳐나가 당했을 거예요. 만약 그들 모두 가 우리를 노렸다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나타나면 그들은 전부 합세해서 우리를 공격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아멘일 뿐 이죠. 그러나 자기들끼리 일단 맞붙었으니 이젠 그다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열다섯 중 가장 강한 자가 셋 중에서 가장 강한 자 와 맞붙었으니 이제는 크게 염려할 것 없어요.”

베드로 수사가 볼멘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다행이기는 하나 창피한 일이군!”

가브리엘 수사는 베드로 수사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세븐 가 디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능력자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우두머리인 베드로 수사는 더더욱 그런 마음 이 강했다. 베드로 수사는 신앙심이 깊었지만 성직자가 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권투 선수가 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혈질이었으니까.

그런 베드로 수사로서는 이렇게 남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부지 리를 취하는 것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솔직히 가브리엘 수사도 젊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심각한 것이었으므로 그런 눈치를 보일 수 없었다. 루카 수사가 다시 말했다.

“흠……. 아무래도 우리가 도와야 할 것 같군요.”

“돕다뇨?”

“한 명과 한 명이 싸우고 있으니 열네 명과 두 명이 싸우게 된 셈인데, 그건 좀 벅차 보이는군요. 어차피 우리를 그렇게 적대시 하지는 않을 사람들인 것 같고, 나쁜 의도가 없는 것 같으니 그 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겠지요.”

“그 세 명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란 말이오?”

루카 수사는 살찐 뺨을 실룩거리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신앙인으로 할 짓은 좀 아니라고 보이지만, 가급적 많은 수가 쓰러질수록 우리에게는 유리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두면 열다섯 대 하나가 되고 조금 더 있으면 열다섯 대 우리 셋이 될지도 모 르잖습니까. 만약 셋이 믿지 못할 자들이라 해도 열다섯보다는 셋이 낫겠지요. 안 그래요?”

“나는 그렇게 따지는 것은 질색이오. 좌우간 우리를 도와주니 손님들이라 할 수 있는데,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소?”

베드로 수사가 성큼 팔을 걷어붙이면서 문 쪽으로 다가서자 가브리엘 수사도 눈치를 보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루카 수사가 말했다.

“힘을 아끼세요. 능력을 다 보여 주면 안 됩니다. 힘을 아껴야만 합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

“알겠소이다.”

그리고 세 명의 가디언은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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