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5권 2화 – 묵시록의 재현 2 : 묵시록의 악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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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5권 2화 – 묵시록의 재현 2 : 묵시록의 악마들


묵시록의 악마들

프란체스코 주교의 명이 떨어지자 여섯 명의 가디언들은 즉시 흩어져서 모든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녜스 수녀는 혼자 서 바람을 타고 나는 듯 허공을 건너뛰어 용화교의 세 노승 앞을 막아섰다. 사실 그녀는 예전에 박 신부에게 감복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의 동료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시므온 수사와 바오로 수사는 가야바와 율리아 앞에 섰고 루 카 수사와 가브리엘 수사, 그리고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이반 교 수 등의 앞으로 달려왔다.

대뜸 바이올렛이 겁먹은 듯 소리를 질렀다.

“쏴요! 어서 쏴요!”

그러나 이반 교수는 입술만 깨물 뿐, 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의 앞으로 달려온 자가 하필 가브리엘 수사였던 탓이다. 가브리엘 수사가 이반 교수 앞으로 간 이유는 무화 능력자여서 총에 맞아도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반 교수는 아예 총을 쏘지 않았다. 그는 가브리엘 수 사가 달려와 자신을 쓰러뜨리는데도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단 한마디만을 했을 뿐이다.

“왜 하필… 자네가……………..”

가브리엘 수사는 가슴이 뜨끔해지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이내 이반 교수를 쓰러뜨리고 재빨리 성난큰곰과 맞섰다.

한편, 루카 수사는 소리만 질러 대는 바이올렛을 간단히 제압 했다. 루카 수사는 감각이 예민할 뿐, 다른 가디언처럼 대단한 능력은 없었지만 바이올렛은 그보다도 더 능력이 없었다.

그다음 루카 수사는 아우구스티노 수사와 함께 윌리엄스 신부 를 상대하러 달려갔다. 윌리엄스 신부와 성난큰곰은 이반 교수 와 바이올렛이 쓰러져 기절하자 화가 나서 각자 힘을 끌어 올렸 다. 강신술을 쓰는 성난큰곰의 몸은 무섭게 늘어났고, 윌리엄스 신부는 다시 흡혈귀의 힘을 발휘했다.

사실 프란체스코 주교는 일이 이상하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 고 미리 여섯 명의 가디언들에게 모두를 상대할 수 있도록 대비 하라 말한 바 있었다. 그 때문에 여섯 명은 가장 적절한 상대를 공격한 것이다. 여섯 사람의 행동은 무척 신속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한편, 시므온 수사와 바오로 수사가 앞을 막아서자 안나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 자신 있나요?”

시므온 수사가 간단히 대꾸했다.

“랍비 가야바, 세상에서 가장 극악한 저주술사. 그의 온몸은 저주로 가득 차 있어 손끝만 대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겠지? 아니, 손을 대지 않고 상대가 자신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심지어는 무 기로 찌르는 순간에도 그는 저주를 걸어 상대를 죽일 수 있다고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무모하게 덤비려는 건가요?”

안나스가 묻자 시므온 수사가 되물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아는가?”

“당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세븐 가디언의 최강자는 아닐 테죠. 최강자는 아녜스 수녀니까.”

“하지만 나는 가야바를 상대할 수 있다. 주여, 저의 이 죄를 용 서하소서…………….”

시므온 수사는 품에서 기이하게 생긴 단검을 꺼내어 손에 쥐 더니 잠시 눈을 감고 속죄의 기도를 올린 뒤, 자신의 팔과 다리 를 마구 찔러 댔다. 피가 사방에 튀며 시므온 수사는 금방 만신창이가 되었다. 참혹하고도 기이한 광경에 가야바와 율리아는 선뜻 덤비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 순간, 시므온 수사의 앞에 무엇인가가 일렁이며 검은 형 체를 드러냈다. 그것을 보고 가야바는 대경실색하며 뒤로 물러 섰고, 안나스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저건…………! 너는 악마 조종자구나!”

시므온 수사는 비록 세븐 가디언 중 최강자라고는 할 수 없지 만, 가장 베일에 가려진 자였다. 그는 교회는 가장 극단에 있 다고 할 수 있는, 악마를 불러내어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 었다.

그는 몹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온갖 죄를 저지른 어 두운 과거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었고 무서운 악행을 저질렀다.

이후 프란체스코 주교에게 발견되어 다른 가디언들의 힘으로 악마를 제압하고 난 다음, 참회하여 지금은 가디언이 되어 있었 다. 아마 가디언들의 행동이 한 발만 늦었어도 그는 죽음을 당했 을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소멸되었으리라.

그런데 과거 악마와의 계약은 깨어지지 않아서, 이번에는 거 꾸로 악마가 시므온 수사에게 복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므온 수사는 악마에게 자신이 흘린 피를 주면서 악마를 부릴 수 있었 다. 물론 그 악마는 블랙 엔젤처럼 대단하지는 않았으며, 한 번 제압당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시므온 수사의 단점은 악마를 부리려면 몹시 많은 피를 흘리 고 상처를 입어야 하는 까닭에 한 번 그 힘을 쓰고 나면 최소 몇 주 이상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그동안 내내 병원에 있다가 이번 일에 동행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시므온 수사의 피를 받은 악마는 형체가 자세히 드러나지 않 아 검은 안개 덩어리 같아 보였지만, 시므온 수사의 명에 따라 가야바를 덮쳤다.

예상과는 전혀 달리 악마를 상대하게 되자 가야바는 단박에 수세에 몰렸다. 가야바는 무서운 저주술사여서 현암이나 박신 부도 상대하기 힘들었지만, 악마에게 저주가 통할 리 없으니 아 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가야바는 물러서지 않고 악마 앞에 버티어 서서 계속 저항했다. 안개 덩어리로 보이는 악마는 무서운 기운과 물리력 을 구사하여 가야바의 온몸을 할퀴고 물어뜯었다. 그런데 기이 하게도 가야바는 계속하여 몸에 상처를 입었으나 순식간에 회복 되어 갔다. 가야바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듯했지만, 상처가 계속 회복되는 데에야 악마도 별수 없는 듯했다.

그것을 보고 시므온 수사가 초조한 어조로 외쳤다.

“바오로 수사! 저 여자를!”

시므온 수사는 가야바의 등 뒤에 율리아가 바짝 붙어 서서 가 야바를 계속 치료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율리아는 아직 까지 정체를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심령 치료사였다. 그 것도 놀랍고 엄청난 힘을 지닌 그 덕분에 가야바가 계속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므온 수사의 외침을 듣고 매우 드문 공중 부양 능력자인 바 오로 수사가 달려 나가 가야바와 율리아의 앞에서 훌쩍 허공으 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바오로 수사는 가야바를 건드릴 수 없었 다. 가야바를 건드렸다가는 금세 저주받을 테니 말이다.

바오로 수사는 계속 허공을 날면서 율리아만 공격하려 했지만 가야바가 악마의 공격을 무시하면서 필사적으로 율리아를 보호 하려 해서 줄곧 힘만 허비하고 있었다.

가야바와 율리아도 순식간에 힘이 소모되어 갔지만, 시므온 수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므온 수사가 악마을 부리기 위해서 는 계속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려야 했기 때문이다. 바오로 수사도 공중 부양을 하려면 많은 힘을 써야 했으므로 그리 오래 날아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 이들의 싸움은 누가 더 오래 고통과 피곤함을 참고 버티느냐하는 소모전의 양상이 되고 말았다.

용화교의 세 노승은 최강자인 아녜스 수녀를 맞아 의외로 선 전하고 있었다. 아녜스 수녀는 사대 원소력을 모두 발휘하여 때 로는 냉기로, 때로는 열기로 세 노승을 공격했다. 그러나 세 노 승도 만만치 않았다. 세 노승은 각각 필생의 공력을 모아 다른 기운을 몸에 실었다.

즉, 무색은 초열공(焦熱)*을 써서 냉기에 버틸 수 있게 했고, 무성은 빙한공(功)을 써서 열기를 이길 수 있게 했으며, 무 음은 금종조*** 기운을 써서 몸을 단단하게 굳혔다. 세명은 아녜스 수녀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번갈아 가면서 그 기운 을 받아 냈다.

그렇게 되자 지, 수, 화, 풍 4대 원소 중에서 수, 화, 풍의 삼대 원소의 힘이 무력화된 셈이라 아녜스 수녀로서도 그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땅의 힘은 원래 방어를 위한 힘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공격 을 할 수도 없었고, 세 노승 중 한 명이 아녜스 수녀의 공격을 받 아 내면 나머지 두 사람이 공력을 실은 무술로 아녜스 수녀를 공 격해 들어갔기 때문에 그 힘은 방어를 위해 써야만 했다.

이들 싸움 역시 보기에는 현란했지만 별 진전이 없는 소모전 이 되어 버렸다.


* 몸의 내공을 전신 또는 양 손바닥을 통해 열로 발산하는 무공. 상상의 무공으로 본인이 만든 것이나 이와 비슷한 무공의 전설은 많이 있다.

** 몸의 내공을 역으로 운행하여 열을 흡수함으로써 몸 또는 두 손바닥을 극저온 으로 떨어뜨리는 무공. 열을 급속히 흡수하거나 열에 대한 저항력을 가질 수도 있다. 역시 본인이 상상으로 만든 것이나 비슷한 전설은 많이 전해진다.

소림사에서 전해진다는 전설이 있는 일종의 보호용 무공. 이것을 익히면 내공 을 사용하여 온몸을 쇠로 만든 것처럼 굳게 할 수 있어서 무기나 타격에도 몸을 상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몸이 가격당할 때마다 마치 쇠종이 울리는 것 같은 소 리가 난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데, 이 무공은 전신을 굳히는 대신, 연문 이라 하여 몸의 한 부분만은 몹시 약해져서 그 부분을 맞으면 무공을 상실한다고 한다. 물론 실재하는 무공이라 보기는 힘들다.


가브리엘 수사는 성난큰곰을 맞아 싸우기보다는 오로지 시간 만 끌고 있는 중이었다. 가브리엘 수사의 무화 능력으로는 성난 큰곰 같은 거인을 절대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성난큰곰도 가브리엘 수사의 무화 능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 었다.

더구나 성난큰곰은 육중한 타보트 상자를 메고 있어서 행동이 불편했고, 이상하게도 인디언의 특기인 정령 주술을 쓸 수 없었 다. 마치 이곳은 모든 정령들이 숨어 버린 장소 같았다.

그 점이 이상했지만 성난큰곰은 가브리엘 수사가 무화 능력을 발휘하여 타보트 상자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통에 정신이 없었 다. 보이지 않고, 때려도 맞지 않는 자와 싸운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자인 성난큰곰으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윌리엄스 신부도 고전하고 있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흡혈귀의 힘을 이끌어 냈다. 그 힘은 대단했지만 하필 상대가 흡혈귀의 극성이라 할 수 있는 성직자들이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오라를 사용하며 공격과 방어, 둘 다 해 냈고, 윌리엄스 신부가 내쏘는 흡혈귀의 바람이나 물리력은 그 의 오라에 닿으면 사라져 버리곤 했다. 더구나 루카 수사는 기도 문을 계속 외워서 윌리엄스 신부의 기운이 빠지게 만들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죽을힘을 다해 버틸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형 세는 모두가 막상막하였기 때문에 어디라고 한 귀퉁이가 무너진 다면 당장 균형이 깨져서 모두가 패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 이다.

예상외로 상대방이 분전하고 승패가 불분명해지자, 프란체스 코 주교는 애가 탔다. 안나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싸울 능력이 없는지라 싸움에 끼어들지 못해서 더 안타까웠다.

안나스는 원래 가디언들과 퇴마사 일행을 싸우게 하여 어부지 리를 보려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데다가 현재 그의 세력이 최 약체였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프란체스코 주교는 만약 무 너진 지하실의 출구가 뚫려 퇴마사들이 나와도 문제고, 아하스 페르츠가 나와도 문제라 더더욱 초조했다.

두 사람은 잠시 평소의 자제력을 잃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처럼 날뛰었다. 그들은 부근에 떨어진 총이 없나 하고 살펴보았 지만 쓸 만한 무기는 하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문득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치자 서로 언성을 높였다.

“이 유대인! 너도 랍비냐? 사람에게 저주나 걸 줄 아는 자야! 네놈의 흉계가 뭐냐? 왜 우리에게 맞서는 거냐?”

“사기꾼 같은 주교야! 악마까지 이용하는 너 같은 자가 어떻 게 종교인이냐? 네놈이야말로 신성한 모세의 유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지?”

그들은 곧 말싸움을 벌였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두 사람은 무 심결에 몇 가지의 비밀을 입에 올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안나스 는 곧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입씨름을 멈추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 중 한 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까 분명 그를 따라나왔던 카르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가야바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서 비틀거리 다가 넘어졌다. 율리아의 치료 능력에 한계가 온 것이다. 가야바 가 넘어진 것을 보고 곧이어 시므온 수사도 그대로 앞으로 쓰러 졌고 그가 불러냈던 악마도 사라져 버렸다. 긴장이 풀린 즉시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바오로 수사는 아직 건재했다. 그는 율리아를 낚아채려고 공 중에서 급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가야바가 손을 뻗어 바 오로 수사의 옷자락을 잡았다. 갑자기 바오로 수사의 안색이 시 퍼렇게 변하면서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일순 방심했다가 가야 바의 저주에 당한 것이다.

그 옆에서 싸우고 있던 아녜스 수녀가 급히 그쪽을 향해 냉기를 내쏘자 그 냉기는 율리아에게 명중했다. 율리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얼어붙어 석상처럼 털썩 넘어졌다.

아녜스 수녀가 한눈을 파는 사이, 용화교의 세 노승은 그 기회 를 놓치지 않고 무섭게 아녜스 수녀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아녜 스 수녀는 서둘러 반격해서 무음과 무성에게 일격을 가했지만, 무색의 발길질을 미처 막지 못해 데굴데굴 땅에 구르고 말았 다. 그녀는 구르면서도 매서운 바람을 내쏘았다. 무색은 그 바 람에 휘말려서 날아가다가 벽에 머리를 호되게 부딪혀 기절하고 말았다.


윌리엄스 신부는 피가 부족해져 이제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쓰러지면 안 된다는 각오로 최후의 기지를 발휘하여 일부러 비틀거리면서 아우구스티노 수사를 유인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윌리엄스 신부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달 려들자 윌리엄스 신부는 남은 기운을 모조리 짜내어 그를 꽉 끌 어안고 놓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놀라서 윌리엄스 신부를 정신없이 후려 갈기며 발악했고, 이윽고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마구 굴러 가다가 벼랑 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루카 수사가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놓지 않은 채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그곳은 혐난한 낭떠러지가 아니라서 둘 다 죽지는 않고 기절한 것 같았다. 프란체스코 주교가 루카 수사를 불렀다.

“루카 형제! 어서 가브리엘 형제를 도우시오!”

싸울 수 있는 사람들 중 아직도 서 있는 사람은 가브리엘 수사 와 루카 수사, 그리고 성난큰곰뿐이었다. 프란체스코 주교는 쓰 러진 부상자들을 돌보기보다 먼저 성난큰곰을 쓰러뜨리라는 것 이었다. 루카 수사는 성난큰곰을 향해 달려갔다.

방금 전 땅에 구르던 아녜스 수녀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것 이 성난큰곰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용화교의 세 노승은 모두 쓰 러진 후였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성난큰곰은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저 여자를 당할 수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난큰곰은 모험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혼자 아녜스 수 녀 등을 당할 수 없다면, 최후의 선택은 전멸하는 길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느닷없이 성난큰곰이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렀다. 가브리엘 수 사가 흠칫하여 뒤로 약간 물러서는 순간, 성난큰곰은 지체 없이 그를 향해 타보트 상자를 내던졌다.

가브리엘 수사는 계속 타보트 상자를 빼앗으려고 성난큰곰을 공격했지만, 막상 그가 상자를 자신에게 집어 던지자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상자는 엄청나게 무거워 보여서 자칫하다가는 상자에 깔려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안에 든 것은 성물 중의 성물인 타보트인지라, 가 브리엘 수사는 본능적으로 상자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상 자에 손이 닿는 순간, 가브리엘 수사는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자의 무게는 도저히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던 것이다.

그가 막 상자에 짓눌리려는 순간, 루카 수사가 총알같이 달려 들어 가브리엘 수사를 도와 상자를 밀어냈다.

그 틈에 성난큰곰은 비호같이 몸을 돌려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무너진 지하실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조상들이시여! 힘을 주소서!’

돌연 그의 몸은 강신술로 불러낸 힘으로 그득하여 마치 코뿔 소나 탱크 같았다. 성난큰곰이 전력을 다하여 돌무더기에 몸을 부딪치자 마치 폭발과 같은 굉음이 울렸고 돌무더기가 우르르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지하실의 출구가 약간 드러났다.

그 광경을 보고 프란체스코 주교가 소리쳤다.

“저자를 막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녜스 수녀가 무시무시한 냉기를 뿜어내자 성난큰곰은 그 기운에 휩싸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 난큰곰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다시 한번 돌무더기를 들이받았다.

순간 출구를 막았던 돌무더기가 완전히 허물어져서 사람이 드 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지하실 출구의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리자 안에 갇혀 있던 사 람들 중 그나마 정신을 차린 몇몇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들은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고는 상상도 못했고, 출구가 무너진 것 도 누군가가 고의로 한 짓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다. 단지 지 금 밖에서 무너진 것을 치워 출구를 내주려는 것으로만 여기고 기뻐할 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출구 쪽으로 향해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비 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이 안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 었다. 카르나의 목소리였다.

승희가 가장 먼저 카르나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쓰러진 고반 다를 끌어안고 있다가 냉랭한 눈길로 퇴마사 일행을 쏘아보았 다.

“네놈들이……?”

승희 역시 똑같이 놀란 표정으로 카르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어떻게…?”

카르나는 고반다의 오른팔답게 텔레포트를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반다를 배신하고 안나스를 따라 나간 카르나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 승희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카르나가 날카롭게 말했다.

“너희는…………… 정말로 무섭구나..”

카르나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고 쓰러져 있던 준후와 현암이 부스스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박 신부와 아하스 페르 츠도 함께 몸을 일으켰는데 박 신부의 손은 아직도 아하스 페르 츠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카르나는 더더욱 대경실색했다.

“너도………… 이제는 그들 편인가? 놀라워. 너무도 놀라워………….”

아하스 페르츠는 해밀튼의 인격으로 거의 돌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은 충격으로 인해 감정이 많이 흔들린 상태여서 아 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왜? 불만이야?”

되레 승희가 빈정거리며 쏘아붙였다.

카르나는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여 그들을 쏘아보며 속으로 뭔 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고반다를 어깨에 둘러메었는데, 고 반다는 아직 기운을 쓰지 못해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퇴마사 들은 카르나에게 그렇게까지 악감정을 품고 있지 않아 그의 행 동을 굳이 저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박 신부는 그의 변절이 조금 수상쩍어 한마디 했다.

“카르나. 당신은 고반다를 배신했던 게 아니었나? 안나스에게 정보를 준 것은…….”

카르나가 이를 갈면서 대꾸했다.

“모두 계획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가 모든 걸 망쳐 버렸어.” 

현암이 조금 주저하다가 나섰다.

“당신, 고반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 그의 오라는…… “

그러나 카르나는 현암의 말에 관심 없다는 듯이 매서운 눈으 로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박 신부를 뚫어 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고반다 님을 배신한 적 없다. 안나스를 속인 것뿐이 지…………. 그리고・・・・・・ 그리고…….”

카르나는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별안간 커다랗게 웃었다.

“결국・・・・・・ 결국 그 방법을 써야만 하는가……?”

현암은 카르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 도 큰 소리로 외쳤다.

“고반다는 선한 자가 아니었다! 그의 오라는 그를 가두기 위해 바바지 님이 치신 것이다!”

그 말에 카르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너희는 최강이라 일컬어지던 두 사람 을 모두 쓰러뜨리고 굴복시켰어. 너희야말로 가장 위험한 자들 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방법이…………….”

돌연 카르나가 몸을 움츠렸다. 순간 어깨에 둘러멘 고반다의 몸이 땅바닥에 풀썩 떨어지고 뒤이어 카르나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의 귀에 갑자기 안나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수가…………….”

돌아보니 아까 무너진 출구로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이 보였 다. 프란체스코 주교와 아녜스 수녀, 그리고 안나스였다. 안나스 는 아녜스 수녀에게 팔을 뒤로 틀어잡혀 있었다.

그들의 눈은 의혹과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반다가 쓰러 지고, 아하스 페르츠 또한 박 신부 옆에 서 있었으니 말이다. 

“당신들은…… 당신들…………..”

프란체스코 주교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곧 적의로 번뜩였다.

“너희야말로…………….”

박 신부나 현암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프란체스코 주교가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프란체스코 주교가 천천히 말했다.

“그렇군. 그래,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프란체스코 주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박신부를 가리켰다.

“거짓 선지자……..”

“뭐라고 하셨소?”

박신부가 의아해서 묻자 프란체스코 주교가 현암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스트(짐승).”

“뭐라고요?”

현암이 기분이 상한 듯 말하자 주교는 이번에는 아하스 페르츠를 가리켰다.

“용.”

그러고는 곧바로 승희를 가리켰다.

“바빌론의 탕녀.”

“뭐?”

승희가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때 박 신부는 주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주교는 지금 요한묵시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란체스코 주교! 그건 오해요!”

“이제 적그리스도만 나타나면 …………… 끝이란 말이지?”

“지금 왜 묵시록의 이야기를 하는 거요?”

박신부는 무시무시한 오해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요한 묵시록에는 적그리스도가 나오기 전에 용이 출현하여 그 권세 를 짐승에게 주며, 그들과 거짓 선지자, 바빌론의 탕녀가 함께 적그리스도를 받들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했다.

그러나 퇴마사 일행이 그런 오해를 뒤집어쓰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박 신부는 주교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조차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프란체스코 주교가 외쳤다.

“이제………… 이제 종말인가? 이…………… …………… 악마들!”

“우리는 아니오!”

현암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프란체스코 주교는 더 크게 소리쳤다.

“지상으로 떨어진 용.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삼키려고 하는 자. 그래, 그 용은 아 하스 페르츠, 네가 틀림없다.”

해밀튼은 노기를 띠며 뭔가 대꾸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 았다. 사실 아하스 페르츠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현암을 보며 주교가 말했다.

“마흔두 달 동안 성도들을 싸워 이길 권세를 부여받고, 곰의 발과 사자의 입과 표범의 모습을 지닌 짐승. 너는 아직 누구와 싸 워서도 진 적이 없지? 네가 바로…………… 그 짐승이다. ‘이 짐승처럼 힘센 자가 어디 있는가? 누가 이 짐승을 당해 낼 수 있겠는가?” 

현암은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내가 어떻게 그런 짐승이란 말이오?”

“흥! 그 짐승이 네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진 적이 없다고 모조리 짐승이란 말이오?”

현암의 말에 프란체스코 주교가 목소리를 높여 되받았다. “증거가 있다. 나는 이미 모든 걸 조사해 놓았지만, 이제야 깨 닫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노 형제는 네가 악마와 교통하고 악마 를 부렸다고 말했다. 이 세상의 누가 그런 상급 악마를 부릴 수 있는가?”

“그건 ・・・・・…!”

“증거는 또 있다! 네가 쓰는 수법 중에 사자의 입에 관련된 것 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발뺌할 셈인가?”

현암은 기가 막혔지만 금방 반박할 수 없었다. 현암이 자주 사 용하는 수법 중에는 확실히 사자후가 있었고, 그것은 ‘짐승’의 모양을 묘사한 묵시록의 내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 만 현암은 너무도 억울했다.

“그건 억지요!”

주교는 이번에는 박 신부를 향해 말했다.

“다른 짐승 하나가 땅에서 올라오니 그 짐승은 어린 양처럼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했다. 그 짐승은 여러 가지 큰 기적을 행 하며 땅 위의 사람들을 현혹하리라. 어린 양을 가장한 자! 가증 스럽게도 성직자의 행동을 흉내 내는 네가 그 짐승, 거짓 선지자 임이 분명하다!”

박 신부 또한 금세 반박할 수 없었다. 설령 반박한다 해도 주교는 듣지 않을 터였다. 어린 양은 주의 상징이었고, 성직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었으므로.

“나는 진작 너희에 대해 조사했다. 나조차 너희들이 악하지 않다고 속았었으니 너희야말로 대단한 자들이야.”

어이가 없어 잠자코 있던 승희가 크게 외쳤다.

“하지만 내가 왜 탕녀라는 거지? 말도 안 돼!” 

이내 주교가 승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진홍색 짐승을 타고 있는 바빌론의 탕녀. 일곱 머리에 열 개 의 뿔을 지닌 짐승을 타고 있는 너! 네가 지금껏 종횡하며 남몰 래 세력을 키운 나라가 몇인가?”

“무슨 소리야?”

“나는 네 여권 기록을 보았다. 네가 지금껏 돌아다니며 기이한 능력을 부렸던 나라가 몇인가?”

승희는 어안이 벙벙해서 몇 나라나 돌아다녔나 되짚어 보았다.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말리, 루마니아, 캐나다, 미국, 중 국, 인도······. 어, 열 개인가?’

다른 퇴마사들은 티베트나 수단 등에도 갔지만 승희는 같이 가 지 않았으므로 승희가 갔던 나라는 한국을 빼고 모두 열 개였다. 승희가 벌컥 화를 내며 되쏘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가 본 나라가 열 개라는 것도 죄인가?”

“곳곳에 심복을 심어 놓지 않았을까?”

“헛소리 마라!”

주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너와 같이 다니는 자들을 세어 보아라. 모두 일곱 명의 능력자가 있더군?”

승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지금 퇴마사 일행과 함께 다니는 사람은 모두 열 명, 열 개의 세력을 막기 위해 동반해야 한다고 「해동감결에 명시되어 있는 그대로였다. 그중에서 별반 영능력 이 없는 사람은 백호와 연희, 바이올렛 세 명이었다. 그 셋을 빼 면 일곱 명이 되는 셈이었다.

“어디 그런 억지를!”

승희가 버럭 소리치자 프란체스코 주교 역시 큰 소리로 되받았다.

“하나하나만 본다면 우연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왜 이 모 든 우연이 동시에 일어났을까? 그것도 하필 적그리스도의 탄생 을 눈앞에 둔 이 시점,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타보트가 있 는 이 장소에서 말이다!”

주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생각에 도취되어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박 신부와 현암이 말을 걸었지만 그는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계속했다.

“이단의 힘을 태연히 사용하고, 악마와 결탁하여 그를 부리 고, 저주받은 아하스 페르츠마저 자기편으로 만드는 자가 그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묵시록에 나온 자란 말인가? 하물며 지금………… 말세의 때, 적그리스도의 탄생이 눈앞에 있는데……………”

“너는 틀렸어! 너야말로 글귀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현암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그러면서 현암은 준 후를 가리켰다. 준후는 몸을 와들와들 떨며 창백한 얼굴로 서 있 었으나 그의 표정에 깃든 어두운 그림자를 현암은 미처 보지 못 했다.

“네가 셈한 모든 것이 성경에 나온 대로 들어맞는다고 치자! 그럼 이 아이는 누구냐? 우리에 대한 조사를 다 했으니 이 아이 가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다는 걸 알 텐데? 이 아이는 대체 누구라고 할 거냐?”

그 말에는 주교도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눈살을 찌푸렸다.

준후는 뭔가 결심한 듯 안색을 굳히더니 서툰 영어로 천만 뜻밖의 말을 입 밖에 내뱉었다.

“내가 바로…………… 말세에 임할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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