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5권 7화 – 묵시록의 재현 7 : 모세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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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5권 7화 – 묵시록의 재현 7 : 모세의 예언


모세의 예언

백호의 죽음으로 모두가 얼이 빠져 있는데, 문득 누군가가 박 신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박 신부가 내려다보니 중상을 입고 있던 안나스였다. 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할 말이 있 다는 듯한 간절한 눈빛으로 박 신부를 올려다보았다. 박 신부는 잠시 안나스를 바라보다가 백호의 손에 들려 있는 세크메트의 눈을 거두어 자신이 들고, 승희가 갖고 있는 것을 안나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안나스가 먼저 말을 건넸다.

당신들은………… 당신들은 적그리스도가 아니었군요! 그렇지요?

물론 그렇소………….

안나스는 큰 부상 때문에 거의 죽어 가는 상태였으나 마음속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알고는 급히 말했다.

당신들은 왜 악마와 싸우죠? 또 그러면서도 왜 사람들과 적대하는 건가요?

우리는 적대하지 않소.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러는 거요. 하지만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는 거요.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군요. 지금 세상의 위기가 적그리스도를 통해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나요?

짐작은 하고 있소.

그렇다면 그 적그리스도를 없애야만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텐데…….

우리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소.

그리고 박 신부는 자신들의 생각을 자세히 안나스에게 알려 주었다. 평소의 안나스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죽어 가는 안나스에게 사실을 숨길 이유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나스는 박 신부의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이해할 수 없어요. 적그리스도를 파멸시켜야 세상이 구해질 텐데……………… 도대체 어째서 적그리스도를 구해야 세상이 올바로 굴러간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박 신부는 한참 동안이나 설명했는데도 안나스를 설득시키지 못하자 다소 우울해졌다. 사실 유대교는 운명론을 별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신의 의지로 해석하기 때문에, 유대교 사상 에 도취된 안나스로서는 박 신부의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안나스는 박 신부의 설명을 중단시키며 말했다.

좋아요. 어쨌든 간에 당신의 행동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요. 그러 나………… 당신이 적그리스도를 구하려는 짓은 모든 사람들의 오해를 살 거예요.

더 이상 오해 살 것도 남아 있지 않았소.

박신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잠시 안나스는 뭔가 깊이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박 신부에게 말했다.

이 물건은 정말 신기하군요…… 당신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어요. 아주 깊은 곳까지 말이죠. 당신의 말에는 거짓이 없군요…….

그 말에 박 신부는 안나스에게 솔직하게 되받았다.

당신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지만 지금만큼은 진실하고요……

안나스는 그 말에 화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모든 악행과 부정과 죄를 저질렀어요. 나를 미친놈이라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내 스스로가 원한 길이죠. 다만…………….

안나스는 잠시 고민해 보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대화를 청했으니, 내 마음은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어요. 아마 당신은 타보트에 숨겨진 비밀의 내용도 알았겠죠?

그건 아니오. 나로서는 알 수 없소.

그건 의외로군요. 흠,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전달해 주지 않는 것 같군요.

맞소.

좋아요. 결론부터 말하겠어요……………. 나는 타보트에 숨겨진 내용을 당 신에게 말해 주고 싶어요. 나는 이제 곧 죽을 테니 ……………. 그 방법이 가장 좋을 듯하군요.

어째서 비밀을 말해 주는 거요?

그러자 안나스가 웃었다.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될 테니까요.

무슨 말이오?

네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요. 당신이 적그리스도를 구하고 그로 인해 당신 말대로 세상이 온전해지는 경우, 당신이 적그리스도를 구하 고 세상이 멸망하는 경우, 당신이 적그리스도를 못 구하고 세상이 온전 해지는 경우, 당신이 실패하고 세상이 망하는 경우……. 안 그런가요? 그럴 거요.

나는 이제 끝이에요. 나는 세상의 주도권이 우리 민족에게 넘어가기 를 바랐고, 그 때문에 수많은 짓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끝이죠. 가 야바와 율리아도 죽었고 나도 곧 죽을 테니 우리 집단은 무력해질 거예 요……. 어쨌든 나는 세상의 종말을 원하지 않아요. 세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나중에 세상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모험을 하겠어요.

당신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지, 우리가 맞을지는 모르지만, 둘 중 강한 쪽이 이길 테죠. 그것이 신의 뜻일 테고・・・・・・ . 안 그런가요?

박 신부는 안나스의 편파적인 생각이 답답했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안나스도 그것을 눈치챈 듯했다.

어차피 서로 마음을 열어 놓은 상태니 숨기지 않겠어요. 나는 타보트 의 비밀을 나 혼자 안다고 여겼지만, 이단 심판소 사람들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어요. 더구나 그들이 타보트를 가져갔으니, 그들은 조만간 다 른 모든 사람들을 규합하여 적그리스도를 죽이러 갈 테죠. 그런 판에 당 신들은 감히 뛰어들 수 있겠어요?

가야 하오.

정말 갈 건가요?

그렇소.

안나스가 갑자기 힘겹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러니 당신들과 다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부딪 히겠죠. 솔직히 나는 아직도 당신들이 미워요. 당신들이 죽기를 바라 고, 당신들의 생각이 틀렸기를 바라요. 그러나 나는 어찌할 수가 없으 니, 남의 손이라도 빌려야겠어요. 만에 하나 당신들이 틀린 생각을 한다 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테죠. 당신들은 너무도 위험하고 강한 존재니 까요. 당신들이 틀렸다면,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을 거예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당신들이 옳다면 그때는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요……. 우리 민족에게 해를 주지는 말아요……………. 그게 내 부탁이에……

우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을 거요.

안나스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안나스는 감추 고 있던 생각을 열고 봇물처럼 박 신부에게 정보를 흘려 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모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타보트를 신에게서 받은 것은 분명 모세였다. 그는 유대 민족 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 광야를 방황하다가 홀로 산에 올라 기도 를 하면서 십계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없는 사이 유대 민족은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광란에 빠져 있었다. 이에 분노한 모 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내리쳐 깨뜨려 버렸고 그 뒤 모세 는 분노하면서도 번민했다.

자신의 형이자 제사장인 아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 하여 신의 분노를 달래고, 다시 간구하여 새로운 십계명을 받은 다음 깨뜨려 버린 십계명의 석판은 언약궤를 만들어 그 안에 보 관하게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타보트였다.

그런데 자신의 형인 아론을 포함한 수천 명을 처형하면서, 모 세는 깊은 고심을 하게 되었다. 그가 동족 수천 명을 처형한 것 은 신의 분노가 유대 민족 전체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모세는 ‘신의 분노’와 관련된 가장 커다란 비밀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이다.


그게 뭐요?

박신부가 묻자, 안나스는 희미해져 가는 소리로 답했다.

소돔과 고모라가 신의 분노로 멸망할 때, 신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하셨지요?

박 신부는 안나스의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그것은 의인이 열 명만 되어도 성을 멸하지는 않겠다는…………….. 그렇다면……?

그래요……………. 소돔 성에 의인(人)이 열 명만 되어도 그 성을 멸하 지는 않겠다… 세상을 신의 분노에서 지키기 위한 보증 수표와 관련 된 주술이죠. 그렇게 선택된 사람들을 이른바 라미드 우프닉스라고 부 르고 말이죠.

라미드우프닉스의 대주술이 언제, 누구에 의해 행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세는 그 주술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모세는 고 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와 필적할 자가 없을 정도의 대 주술사였으며, 그는 이미 잊힌 이집트의 고대 신비주의의 모든 것과 유대 전승의 모든 주술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는 당시만 해도 아는 자가 거의 남지 않았던 태곳적 주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나스의 추측에 의하면 그것은 아마도 아주 고대에, 전 세계의 주술사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주술 작품이었다. 누 구도 혼자서 그렇게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주술을 걸 능력이 없 기 때문이다.

그 주술이 만들어진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대홍수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후가 아닌가 싶으며, 각 민족들은 신의 분노가 세상을 한순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위 기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을 것 같다고 했다. 안 나스의 짐작으로 주술을 주도한 자는 아브라함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대홍수가 일어난 지 훨씬 후에 태어난 인물 아니오?

박신부가 의문을 제기하자 안나스가 대답했다.

그건 알 수 없어요. 아브라함일지도 모른다는 가설뿐이니까요. 과거 의 사람들은 분명 신이 인간에게 징벌을 내리더라도, 정당한 사람들이 악인과 같이 죄를 뒤집어쓰게 할 만큼 매정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 이 분명해요. 그래서 각지 사방의 대국가의 위대한 주술사들이 모두 모 여서 일종의 국제회의라도 연 거겠죠. 지금은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여 인간의 초능력이 거의 다 감추어진 상태이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주술력을 지니고 있었을 테니까 국제회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내가 희미하게 들은 바로는, 세상의 주술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고도 해요. 지금은 거의 명맥도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죠.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주술의 힘이 금지된 건 아주 오래전이지만, 그 자취가 지금보다는 짙게 남아 있기에 과거로 갈수록 강한 주술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거죠.

그때의 주술사들 중에는 분명 고대에 가장 번창한 문명을 지닌 국가 중 하나였던 이집트의 주술사가 끼어 있었을 테고요. 그리고 그의 전승 에 의해 이집트의 비전을 모조리 물려받은 모세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 던 거죠.

사실 그 주술이 행해지던 당시에는 유대 민족의 주술사가, 아니 어쩌 면 노아나 그 아들이 모든 것을 주관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미 모세 의 대에 이르러서는 유대 민족은 쇠약해지고 이집트의 노예 민족이 되 어 전승이 끊어지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은 잊혀 갔죠. 그러 나 이집트의 왕자로서 교육을 받고 모든 지식과 비밀에 접근할 수 있었 던 모세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거예요.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에 박 신부는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안 나스가 계속 말했다.

모세는 그때 동족의 배신에 깊이 절망했고, 인간들에 대해 염려한 나 머지, 어떤 차원을 넘어선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들었으며, 그때 본 내 용, 즉 미래에 대한 예언을 언약궤에 같이 넣어 보관하게 했죠. 그때 모 세가 그 내용을 어떻게 보관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내 스승께서 는 그가 분명 깨어진 타보트 조각의 뒷면에 그 내용을 새겼다고 여겼어 요.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왜 그런 일을 한 거요?

모세는 오늘에 이르러 세상이 위기에 빠질 것을 짐작했어요. 라미드우프닉스의 주술은 실은 불완전한 것이란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런 약삭 빠른 방법으로 신에게 보증 수표를 내세운다 해도 그걸 신께서 과연 꿰 뚫어 보지 못하실까요?

그것은 과거 박 신부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 박 신부만이 아니라 몇몇 현명한 사람들도 라미드 우프 닉스의 주술은 불완전한 것이며, 실은 그것이 오히려 인간을 파 국으로 몰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바 있었다. 안나스도 과연 대단한 자라, 그런 내용을 정확히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안나스의 말은, 그럼에도 박 신부가 놀랄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모세는 그 엉터리 주술이 인간계의 보이지 않는 질서에 영향을 끼쳐 서, 그에 대한 심판이 내려질 것을 예지할 수 있었어요. 더불어 그것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도 대략. 그래서 그는 그 내용을 예언하여 타보 트의 뒷면에 새긴 거예요. 그것은 바로, 인간에 의한 멸망의 가능성이 었지요.

그렇다면 그가 새긴 것이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암시한 거란 말이오? 그래요.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여 세상을 흔들고 지배할 기회로 삼으려 했지만…….

박신부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그런 내용들을 당신은 어떻게 알았소? 당신은 타보트를 보지도 않았었는데………….

그리고 이단 심판소 사람들은 또 그 내용을 어떻게 안거요?

그 말에 안나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비르케나우를 아시나요? 나는 젊었을 때 그곳에 있었죠. 거기서 나 는, 한 나이 많고 현명한 랍비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는 정말로 존경스 러운 랍비였고, 위대한 지혜를 지닌 태곳적 지식의 계승자였지만, 단지 나이가 많아 노동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날아가게 되었지요.

날아가다뇨?

소각로의 굴뚝을 통해,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 는 먼 위의 제사장, 그러니까 모세를 모시던 여호수아의 직계 후예였어 요. 그가 죽을 때까지도 놓지 않으려던 기록을 나는 정말 우연하게 보게 되었죠. 그 수용소 안까지도 감추어서 들여와야만 했던 엄청난 내용의 기록을 말이죠.

모세는 죽으면서 자신의 모든 일을 여호수아에게 일러 그를 지도자 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런 내용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죠. 불행히도 여호수아는 선지자나 주술사라기보다는 단순한 전사에 가까 웠기 때문에 그 내용이 후대를 이어 오면서 많이 흐려지고 사라져서 알 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지만, 그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충직하게 수천 년 동안 후손을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지게 했던 거예요. 이제는 그 후손이 끊겨 내게 전해졌지만.

그렇다면 이단 심판소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는 짐작도 할 수 없군요.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곳이 있어요. 과거에 모세의 무덤이 발견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교황청에서 관할했죠. 아마도……………. 그들은 거기서 알아냈을 겁니다. 모세가 죽음에 임해서 여호수아에게 전한 것 이외에 또 다른 기록을 남겼을 수도 있으니……. 거기서 알아 낸 것이 분명해요. 그것 말고는 전혀 짐작 가는 곳이 없어요.

안나스는 이제 생각하는 것조차 힘든 듯 잠시 헐떡이다가 생 각을 전해왔다.

하여간…………… 당신들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당신들은 가야 해요. 그자・・・・・・ 라미드 우프닉스의 주술을 쓴 영향으로 쌓이고 쌓인 부조화 를 폭발시키는 자는 이제 곧 태어나요…………….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서둘러야 할 거예요. 그곳은・・・・・・ 그곳은ᆞᆞᆞᆞᆞᆞ

안나스는 타보트의 내용을 돌이켜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그때 박 신부가 물었다.

그 장소를 아시오? 그 장소는 암호화된 문자로 씌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요. 이단 심판소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을 거고 요…………. 아…………. 이제 정신이 희미해지는군. 그자를 잉태한 여자………….

그자는・・・・・・ 동방 민족의 후예죠. 그리고・・・・・・ 그리고 그 여자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안나스는 현기증이 일어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는 듯했다. 의식을 잃으려는 것 같았다. 박 신부는 기도력을 넣어 보았지만 효 과가 없자 그는 급히 현암을 불렀다.

“현암군! 도와주게!”

현암은 백호의 죽음을 본데다가 월향검까지 금이 가 검을 들 고 멍하니 서 있다가 박 신부의 말을 듣고 힘겹게 정신을 차렸 다. 현암이 다가와 미미한 공력이나마 힘껏 주입하자 안나스는 다시 조금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뜨자 현암을 보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은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박 신부의 마음속으로만 전달되었을 뿐이지만. 

당신・・・・・・ 당신・・・・・・ 그렇군요. 그 칼…… 그 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지요?

안나스는 이제 반쯤은 의식이 없는 상태여서 횡설수설하고 있 었다. 박 신부는 징벌자에 대한 것을 알고 싶어 마음이 급했지만 안나스가 월향검에 대해 묻자 방해하지 않았다.

안나스가 말을 전해 왔다.

그 칼…하하·····. 누구도 그 칼에 든 영혼은 뺄 수 없죠. 오직 당신밖에…………. 당신이 나가라고 하지 않으면 ・・・・・・ 그리고 그 영혼이 나 가려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칼에 저주가 걸린 것으로만 알지 만・・・・・・ 그런 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으니…… 없는 저주를 놓 고 풀 길을 찾으니 영원히 길을 찾지 못하는 거예요, 영원히……. 세상 모든 것이 그런 것・・・・・・ 모든 이치가………….. 하하…….

안나스는 말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뭔가 깨우 침 비슷한 것을 얻었는지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신부는 상당히 놀랐다. 지금껏 그 어떤 방법을 써 보았어도 월향검에서 월향의 영혼을 빼낼 수 없었다. 그런데 만 약 안나스의 말이 맞다면………………

박신부는 잠시 막막해하다가 안나스에게 물었다.

랍비 안나스. 어서 말해 주시오. 징벌자의 탄생 장소와・・・・・・ 징벌자 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그것을 어서…………….

아, 그렇군요, 그것을 말하지 않았군. 나도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러나 그 장소는・・・・・・ 필경……….

안나스가 막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박 신부의 눈앞이 번쩍하면 서 안나스와의 교감이 끊어져 버렸다. 박 신부는 교감을 원활하 게 하려고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안나스의 뒤편에 어느 사이에 다가온 자의 모습이 보였다. 카 르나였다. 그의 손은 이미 안나스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현 암이 놀라서 공력을 모아 저항하려 했지만 카르나는 현암을 마 치 검불처럼 털어 내 버렸다.

현암이 데굴데굴 굴러가자 이번에는 박 신부가 오라를 발하려 했다. 그러나 카르나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안나스의 머리를 내 리쳤다.

“안돼!”

기이한 폭발음과 함께 박 신부의 부르짖음이 사방에 메아리쳤 다. 안나스는 이미 전신이 으스러져서 죽어 있었고, 널브러진 시 체에서 뿜어 나온 피를 뒤집어쓴 카르나가 시체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 기이한 폭발은 불길이나 소리가 큰 것도 아니었지만 그 힘 이 엄청나서 근처에 있던 박 신부와 현암은 그 힘에 밀려 저만치 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승희와 이반 교수 등도 서 있을 수 가 없어서 모두 넘어지고 말았다. 중심을 잡고 버틴 것은 준후와 윌리엄스 신부뿐이었다.

현암과 박 신부는 외상보다도 몸속에서부터 엄청난 고통이 번 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가까이서 그 폭발의 기운을 쐬었기 때문 이 분명한데, 그것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심한 고 통을 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카…르나…………?”

현암이 간신히 중얼거리자 박 신부가 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물론 겉으로는 두 사람 중 더 심한 고통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 었지만, 박 신부보다는 현암의 상처와 고통이 훨씬 심했다.

“너 ・・・………!”

몸은 분명 카르나였지만 그를 조종하는 것은 악마 아스타로트 였다. 조금 전에 아스타로트가 카르나의 몸을 조종했던 것을 현암이나 박 신부 등은 목격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백호의 죽음과 안나스의 이야기 등에 정신이 팔려 미처 경계하지 못한 것이다. 박 신부와 현암은 이제 몇 번씩이나 부상을 입은데다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쓰러져서 일어서지 못했다. 승희가 현암을, 이반 교수가 박 신부를 뒤로 끌어내자 준후와 윌리엄스 신부가 앞으 로 나섰다. 준후는 힘이 거의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준후의 살기 찬 눈매를 보고 싸우려 하 지 않고 박살이 난 안나스의 시체를 보고 간단히 말했다. 

“아, 미안하군. 부탁받은 것도 있어서 죽이지는 않으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무슨 소리를……………!”

준후가 외치자 아스타로트가 조용히 되받았다.

“우리들은 약속을 제법 잘 지켜. 신의 없는 인간들보다는 낫 지. 아, 귀찮기 짝이 없지만! 블랙 엔젤에게서 너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가르쳐 주라는 부탁을 받았거든.”

준후와 다른 사람들은 이 악마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아스타로트는 계속 우스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 할 일은 했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너희는…………….”

그러다가 아스타로트는 돌연 사방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무서운 고함을 질렀다.

“・・・・・・ 도움이 안 돼! 귀찮아! 역겨워! 보기 싫어!”

그러다가 아스타로트는 순식간에 음산하고도 나지막한 어조 로 목소리를 바꾸었다.

“아, 내가 방금 우린 약속을 어느 정도 잘 지킨다 했던가? 할 수 없군. 귀찮고, 역겹고, 짜증나더라도 할수 없지. 한 가지만 더 일러 주겠다. 너희가 그토록 목매어 찾는 것은 바로, 세상을 멸 망시킬 자지?”

준후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뭔가 의아해서 눈을 부릅떴다. 그 래도 아스타로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 며칠 있으면 물론 태어나겠지 만 말야. 블랙 엔젤은 바보라서 너희에게 그 장소를 알려 주려 했고 나도 그럴까 했지만…………….”

아스타로트는 다시 엄청나게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싫어!”

외치고 나서 아스타로트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기이한 목소리 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박 신부는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블랙 엔젤이 그 장소를 알려 주려고 했다고? 그렇다면 안나스 가 내게 해준 말은 블랙 엔젤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나? 그 악마 는 죽지 않았단 말인가?’

박 신부 혼자 생각한 것이었는데도 아스타로트는 박 신부를 힐끗 보면서 비웃듯 말했다. 아마도 이 악마는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것이리라.

“아.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너희는 말이지. 모두 우리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것뿐이야.”

그 말에 박 신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지 탱하고 있던 정신력마저 고갈되어 의식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 며 아스타로트가 킥킥거리다가 말했다.

“그 바보는 너희가 끝까지 징벌자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고 있 었어.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아! 너희는 아직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거든?”

그 누구도 아스타로트에게 묻지 않았는데 그는 다시 낄낄 웃 다가 외쳤다.

“내가 수수께끼를 하나 내지. 너희가 잘 아는 자들 중에 아직 까지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자가 있어. 정말 의외지. 왜 등장하 지 않을까? 그리고 왜 등장할 수 없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아?” 그 순간 바이올렛이 외쳤다. 그녀의 째지는 목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으나, 그녀가 왜 비명을 지르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 다.

“설마…………! 설마 그렇다면 ……………!”

그러자 아스타로트가 마구 웃었다.

“맞아! 킬킬…………. 너희가 그것을 안다면……………. 너희는 방해가 될 뿐이야! 무엇보다도 위험한 방해물이 될 뿐이지! 너희는 죽어 줘야겠어. 지금 여기서……………”

그러고는 다시 미친 듯이 웃었다.

“악마가 직접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고? 아하! 정답이야. 그래 그래! 하지만 말야,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블랙 엔젤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지. 내겐 많은 부하들이 있거든?”

조금 더 길게 웃다가 아스타로트는 다시 목소리를 바꾸어서, 마치 심연의 나락에서 불어오는 바람같이 음산하고도 위협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니 모두 없애 주마. 이 걸레 같은 장난도 이제 끝이니까!”

그러면서 카르나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귀 부근을 무서운 힘 으로 후려갈겼다. 준후나 윌리엄스 신부 등이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카르나의 머리는 깨어진 수박처럼 터져 버렸다. 카르나의 몸이 쓰러진 뒤에도 아스타로트의 음산한 웃음소리는 계속 사방 을 메아리치며 떠돌았다.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박 신부가 의식을 잃고 현암도 중 태여서 헛소리를 했다. 아스타로트가 최후로 준 타격이 은연중 에도 엄청났던 것이리라. 이제 현암과 박 신부마저 쓰러진 상황 에서 아스타로트가 정면 대결을 선포하는 것을 듣고는 모든 사 람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지금 현암과 박 신부는 중상으로 의식을 잃었고, 로파무드는 알 수 없는 저주 때문에 아직도 꼼짝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난큰곰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윌리엄스 신부 또한 정신 은 있었지만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반 교수와 준후, 승희, 그리고 아 이들뿐이었다. 바이올렛이나 황달지 교수 등은 있어도 악마와의 싸움에 큰 도움은 되지 않으리라.

준후는 여기까지 궁리하다가 착잡한 마음에 생각을 접었다. 과연 아스타로트의 부하들이란 무엇일까? 대악마인 아스타로트 가 직접 말한 것이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일 것이다. 그때 승희가 외쳤다.

“어떻게든 여기서 일단 빠져나가요! 여긴 지긋지긋해!”

승희의 목소리는 앙칼졌다. 승희의 눈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 지만 그녀의 표정은 단호한 결심에 차 있었다. 승희와 준후가 합 세하여 어찌어찌해서 현암을 일으켜 들쳐 업었고, 황달지 교수 와 바이올렛이 박 신부를 일으켜 양팔을 끼워 둘러메었으며 세 명의 아이들은 로파무드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반 교수가 윌리 엄스 신부를 부축해 일으켰으나 성난큰곰의 거대한 덩치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를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자 준후가 급히 리매술을 썼다. 리매를 불러내어 성난큰곰을 운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준후가 몇 번이나 주문을 외웠는데도 리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의아해하던 준후의 얼굴이 돌연 굳었다. 준후는 급히 소매 속 에서 세 장의 부적을 꺼내 허공에 날렸다. 세 장의 부적들은 펑 펑 불이 붙어 새처럼 사방으로 날아가다가 별안간 총에 맞은 비 둘기처럼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불도 꺼져 버렸다. 그것을 본 준 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왜 그래?”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승희가 묻자 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술이 안 먹혀요!”

“응? 왜?”

“뭔가가…………… 있어요! 무시무시한 것이………………”

느닷없이 이반 교수의 등에 멘 배낭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놀랍게도 교회의 종소리였는데, 마치 커다란 종 루의 거대한 종과 같은 소리가 났다.

모두들 놀랐지만 이반 교수는 더욱더 놀라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놀란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 는 스웨덴 말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승희는 그의 말 중에 ‘노스페라투 (Nosferatu)”라는 단어 외에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반 교수는 미친 사람처럼 가진 무기를 정리하고 등에 걸머 진 배낭을 내렸다. 그 와중에서도 종소리는 배낭 안에서 계속 들 려오고 있었다.

“노스페라투!”

이반 교수가 다시 한번 외치면서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 것은 한 줄로 이어진 기다란 탄띠였는데 많은 총알들이 줄줄이 끼워져 있었다. 놀랍게도 종소리는 그 탄띠에서 울려 퍼지고 있 었다.

“그게 뭐죠?”

승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묻는데도 이반 교수는 여전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외쳤다.

“노스페라투! 오늘에서야……………!”

바이올렛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탄띠와 이반 교수를 번갈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건 ・・・・・・ 트란실바니아 고성당의 은십자가인가요?”


* 1922년, 독일 감독 무르나우의 유명한 흑백 무성 영화의 제목. 흡혈귀 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의 효시 격인 작품이다. 본문에서의 노스페라투는 이 영화에서 이 반 교수가 이름을 따다 붙인, 흡혈귀들의 시조가 되는 괴물이며, 이 영화에 나오 는 흡혈귀는 아니다.


그 말에 이반 교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바이올렛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교수님 짓이었군요.”

그제야 이반 교수는 약간 정신을 차린 듯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소. 다른 곳의 십자가들도 내가 모았소.”

“그건・・・・・・ 성스러운 물건이에요!”

“아무리 성스러운 물건이어도 교회 구석에 처박혀서는 한사 람도 구하지 못하오. 이편이 훨씬 값있는 거요.”

이반 교수는 단언하듯 외치고는 이를 갈며 떨리는 손으로 총 에 총알을 쟀다. 지금까지 이반 교수는 거의 총알을 소모했는데 이 총알만은 쓰지 않고 아껴 두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반 교수가 외쳤다.

“모두 어서 가시오! 여긴 내가 맡아야 하오!”

그 말에 승희가 외쳤다.

“혼자요?”

“그렇소!”

“같이 가요!”

그러자 이반 교수가 씩 웃으며 되받았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소. 나는 노스페라투에게 받을 빚이 있거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 승희가 큰 소리로 물었다.

“그게 뭐죠?”

이반 교수는 번들거리는 광기에 가까운 눈빛으로 사방을 경계 해 둘러보면서 말했다.

“노스페라투는 물론 옛날 영화를 보고 내가 붙인 이름일 뿐이오. 원래 그놈은 이름조차 없지.”

승희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노스페라투는 흡혈귀 영화 아니었나요?”

그러자 이반 교수가 하 하고 웃으며 외쳤다.

“그렇소! 지금 오고 있는 것은 바로 흡혈귀들의 마스터! 모든 흡혈귀들의 조상인 그놈이오! 트란실바니아 고성당의 종이 울렸 소! 그놈이 아니라면 이 소리는 영원히 나지 않았을 거요!”

승희와 다른 사람들이 헉하면서 놀라는 사이 이반 교수가 총 알처럼 외쳤다.

“그놈에게는 어떤 주술도 먹히지 않고, 어떤 초능력이나 물리 력도 소용없소! 오로지 종교적인 힘, 믿음의 힘만이 그놈을 이길 수 있을 거요! 당신들의 능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번만큼은 나밖 에 상대할 수 없을 거요! 나는…………… 나는 사십 년이나 놈을 찾아 헤매며 준비해 왔으니까!”

그 말을 들은 바이올렛이 이반 교수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집안 대대로 흡혈귀 사냥꾼인 것은 알아요! 하지만 왜 하필 지금……!”

그러자 이반 교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흡혈귀 사냥꾼이 된 것은 가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저놈 때문이오! 나는…………… 나는 절대 물러설 수 없소! 저놈은 내가 맡 을 테니 어서 가시오! 당신들은 할 일이 있지 않소!”

그때 비틀거리면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더니 이반 교수 쪽으로 다가갔다. 윌리엄스 신부였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 혼자는 안 돼요……..”

“신부님도 어서 가시오!”

이반 교수는 쌀쌀맞게 말했지만 윌리엄스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처럼 ・・・・・・ 나도…………… 나도 여기 있어야 합니다! 내 몸에 내린 저주 또한・・・・・・ 그놈 때문이니까……………”

그러자 준후가 승희를 힐끗 쳐다보고는 윌리엄스 신부 곁에 급히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언제 일어났는지 성난큰곰이 준 후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너는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준후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다시 달려 나가려 했지만 성난큰곰은 거대한 팔을 활짝 벌려서 준후를 막아 세웠다.

악마가 아무 때나 나타난다고 생각하나? 이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진 것은 우리가 하려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다. 책임을 잊으면 안된다.

‘하지만…………!'”

준후가 뭔가 말하려 하자 성난큰곰이 고개를 저었다.

안다. 그러나 지금 너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노스페라투 말고 어떤 놈이 또 올지 모르고, 그들을 지킬 사람은 너밖에는 없다. 알겠나? 

그 말을 하면서 성난큰곰은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보니 성난큰곰은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있어서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사실 냉정히 분석해 보면 지금의 부상자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일단 성난큰곰은 몹시 큰 체구 때문에 쉽게 옮길 수 없었고, 이반 교수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이 자리를 떠날 것 같지 않았으 며, 윌리엄스 신부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상의 이야 기였고, 이렇게 위험한 자리에 누군가를 남겨 두고 간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고통스런 순간에 준후가 눈물을 흘리려 하자 성난큰곰이 말했다.

울지 마라! 너는 내가, 우리가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가? 우리가 그렇게 무력해 보이는가?

후는 할 말을 잃었다. 성난큰곰이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약속을 하자. 반드시 살아서 다시 만나기로 말이다.

그때 윌리엄스 신부가 다시 소리쳤다.

“작별 인사는 필요 없소! 다시 만나면 그만 아니오? 그리고 아이들과 부상자들을 잘 보호하시오! 주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이반 교수도 냉랭하게 외쳤다.

“부상자들까지 보호하며 싸울 순 없단 말이오!”

바이올렛과 승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준후를 잡아끌었다.

결국 준후도 엉엉 울면서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을 보며 성난큰곰은 텔레파시 대신 소리를 내어 커다랗게 외쳤다.

“남쪽으로 가시오! 친구들이여!”


준후와 승희 등이 아이들과 부상자들을 끌고 사라지자 윌리 엄스 신부는 어두운 얼굴로 웃으며 이반 교수와 성난큰곰을 바 라보았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는데 오싹한 귀기가 서려 있었다.

성난큰곰이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흥얼거리다가 문득 말했다.

“오고 있소.”

그 말을 듣고는 윌리엄스 신부는 최후의 기력을 다 짜내어 흡혈 귀의 힘을 끌어 올렸고 이반 교수는 손에 쥔 총을 들어 겨누었다. 다음 순간, 공터가 끝나는 숲 저편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그것 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주지않는, 그림자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사방을 에워싸고 휙휙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이반 교수는 총을 쏘지 않고 침착하게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윌리엄스 신부가 성난큰곰에게 말했다.

“조무래기들이군. 그런데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 것 같소?” 

성난큰곰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없소.”

하지만 이반 교수는 너무도 즐거운 듯 총을 겨누며 외쳤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단 말이오!” 

그 말에 성난큰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원래 마스터가 죽었을 때 죽었어야 할 사람이오. 더구나 친구를 위해서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

맞장구를 치듯이 윌리엄스 신부가 한마디 거들었다.

“물론 나도 그렇소. 더구나 오고 있는 것이 내 몸에 깃들인 저주의 원흉이라면…………. 하지만 당신은 왜…………?”

그 질문에 이반 교수는 대뜸 윌리엄스 신부에게 외쳤다.

“신부님! 나는 성공회 교도가 아니오! 하지만 당신에게 고해성사 비슷한 것을 해야겠소!”

윌리엄스 신부는 미소를 지으며 되받았다.

“당신은 흡혈귀 사냥꾼 아니오? 당신이 흡혈귀에게 고해성사를 하다뇨?”

이반 교수는 윌리엄스 신부의 농담에 웃지도 않고 말했다.

“상관없소.”

“더구나・・・・・・ 종부성사를 하기엔 껄끄럽지 않소? 물론 싫어 도 종부성사가 되긴 하겠지만………….”

윌리엄스 신부의 말에 이반 교수는 껄껄 웃으며 총을 쏘기 시 작했다. 그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종부 성사가 되든 말든, 당신이 고해를 받아 주든 말든 나는 꼭 떠들어야겠소! 나는 고할 죄가 있소! 그것도 아주 큰 죄요!” 

그때 그림자들이 세 사람을 향해 휙휙 날아들어 오기 시작했 다. 흡혈귀의 힘을 끌어 올린 윌리엄스 신부와 성난큰곰은 이반 교수의 좌우를 엄호하여 그림자들을 막아 냈고, 이반 교수는 계 속 총을 쏘며 그것들을 없앴다.

이반 교수의 은총알의 힘은 엄청나서 단 한 방에 그림자들이 폭발하며 사라졌다. 이반 교수는 손에 든 16연발 특수 엽총 외 에도 산탄총과 기관총까지 쉴 새 없이 쏘아 대며 계속 장전했다. 그런 와중에도 세 사람은 계속 악을 쓰듯 대화를 했다. 그것도 웃으면서.

“역사가 오래된 교회와 성당의 십자가들을 훔쳐 내 녹여서 총알을 만든 죄 말이오?”

“아니오.”

“그럼 뭐요?”

“나는 오래전 내 조카를 흡혈귀들에게 잃었소. 물론 내 아버 지도, 할아버지도 흡혈귀들에게 돌아가셨지만…………….”

“그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반 교수는 드르륵 소리를 내며 마지막 남은 엘리컨 포를 쏘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총을 내던지며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어 조로 말했다.

“그 조카는 내 아들이었소! 이해하시기 바라오! 나는 다 고백했소!”

그러자 윌리엄스 신부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띤 어조로 말했다.

“그랬군요… 주여…………… 긍휼히 여기시기를……………. 용서받을 수 있기를 비오.”

이반 교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 바라지 않소. 다만 시원하구려.”

그때 성난큰곰이 큰 소리로 외쳤다.

“놈이 왔소!”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회오리가 세 사람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미친 듯한 괴성과 총소리, 아우성 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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