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2권 23화 – 아라크노이드 8 : 거미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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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2권 23화 – 아라크노이드 8 : 거미와의 싸움


거미와의 싸움

서두른다고 했는데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 국립 암 센터에 도착했다. 암 센터로 가는 길의 교통이 혼잡해서 길이 많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전철과 지하철 등 교통국의 컴퓨터로 작동되는 교통수단은 모조리 가동이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의외의 사태 에 당황하여 사방으로 몰려 나왔다.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이 자 동차밖에 없자 거리는 온통 자동차로 넘쳐난데다 나중에는 전자 제어로 통제를 받는 신호등이 꺼지는 바람에 길거리는 완전 아 수라장이었다.

사방에서 접촉 사고가 일어나 교통 체증을 더욱 심화시켰고, 차 속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마주 달리던 테제베(TGV) 두 대가 콘트롤을 잃고 충돌해 바스티유 가극장의 임원진들을 포함 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암과 박 신부는 열심히 다른 차들을 비집고 나갔지만, 그래도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 거리를 내다보며 연희는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준후도 밖의 풍경이 몹시 안쓰러운 듯 한마디 했다. 

“전자 장치로 통제하니 평상시엔 편하긴 한데 이럴 때는 문제 가 되는군요. 이건 도대체………….”

거의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려서 국립 암 센터에 도착한 일행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암 센터의 커다란 정문에는 외부 차량을 통제할 수 있도록 자동문이 설치되어 있 었는데, 한쪽만 열려 있고 한쪽은 닫힌 채 그 앞에서 경비원들이 일부는 문을 움직이려 힘을 쓰고 있었고, 일부는 뭔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격렬하게 떠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부의 주 컴퓨터 가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아 고장 나자 전자 장치로 작동하는 문이 동작을 멈춰 버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현암이 말했다.

“이런, 이미 늦은거 아냐?”

박신부가 차를 세우고 급하게 차 문을 열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모르지. 일단은 가 보세.”

일행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문을 통과하려 했다. 그러나 문 앞 에 서 있던 경비원들이 막았다. 지금 센터 안에 문제가 생겨서 외 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일행과 경비원들 간에 들어가야하느니 안 되느니 하며 언쟁이 오갔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끌고 와서 경비원에게 줄을 건넸다. 경비원 이 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연희가 가리키며 물었다.

“외부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더니 저 개는 어떻게 들어가는 거죠?”

“저 개는 우리 원장님이 기르시는 개입니다.”

“아니, 그러면 개는 비상사태라도 센터에 들어갈 수 있는데 사람은 못 들어간다는 말인가요?”

연희는 화가 난 듯 경비원을 마구 몰아세웠고 그러는 사이 나 머지 다섯 사람은 만류하는 경비원들을 제치고 재빨리 건물 안 으로 들어섰다. 경비원들은 뭐라 떠들어 댈 뿐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들 입장에서는 문의 작동이 더 중요한 모양 이었다. 원래 환자가 많이 있는 곳인 만큼 암 센터의 출입은 일 반 병원처럼 자유로워야 하지만 지금 비상이라고 하니까 경비원 들이 일단 통제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한 연희의 태 도와 유창한 불어 실력에 기가 눌린 것 같았다. 경비원들이 따라 오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양쪽으로 나뉜 커다란 건물 두 동 을 보며 망설였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환자를 먼저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일단은 전산실로 가야죠.”

혜영이 안내판을 보고는 본관이 왼쪽에 있다고 일러 주었다. 경비원과 입씨름을 끝낸 연희가 재빨리 와서 합류했고 일행은 본관 건물로 향했다. 본관은 원래 신분증을 제출하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으나, 지금 매우 혼란한 상황이어서인지 경비원은 제 자리에 없었다. 대신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뛰어다니고 서로 를 소리쳐 부르면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심상 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보고 혜영이 중얼거렸다.

“센터 전체가 난리군요. 하긴 이렇게 큰 센터의 컴퓨터가 작동을 멈춰 버렸다면 그도 그렇죠.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요.” 

“어쨌든 일단 가야 할 곳은 전산실입니다. 전산실이 어딘지 물 어봐주게, 연희 양.”

박신부가 말하자 연희는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던 흰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전산실의 위치를 물었다. 그 사람은 힐끗 연희에 게 한쪽 방향을 가리키더니 몇 마디 하고는 황급히 걸음을 옮겨 서 사라졌다.

“삼층에 있다는군요. 삼층 복도 왼쪽 끝방이라는데요.”

“그럼, 어서 가봅시다.”

일행은 바쁜 걸음으로 삼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정문과는 달리 삼층 전산실로 들어가는 복도는 초입부터 내부 경비원들이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경비원들은 일행을 향해 뭐라 하며 밀 어냈다. 마침 연희는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차는지 뒤에 쳐져 있 는 상태여서 박 신부와 승희가 영어로 말하려 했지만 경비원들 은 듣는 둥 마는 둥 불어로만 이야기해 댔다. 반쯤 얼이 빠진 듯 보이던 혜영이 말했다.

“불어로 이야기해야 해요. 프랑스 사람 중에는 불어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아예 아는 척도 안 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 사정이 급한데 그런 것도 따진단 말이야?”

“저 사람들의 자존심이겠죠. 잠깐만요.”

혜영이 앞에 나가서 뭐라 말했으나 경비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외부인 출입 통제라는군요. 지금 전산실 안에 문제가 생겨서 들어갈 수 없답니다.”

혜영이 당황하여 뭐라 대답해야 할지 쩔쩔매자 현암이 화가 나는 듯 앞으로 나섰다.

“혜영 씨.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해요. 어서요!”

혜영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현암은 빠른 속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프로그래머들이고 바이러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지금 이곳에 이상한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번져서 컴퓨터로 통제되는 모든 시스템 기능이 정지되었죠? 그렇죠?”

혜영이 더듬거리면서 현암의 말을 옮겨 주자 수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일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네요.”

가만보니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경비 책임자인 듯 했다. 나이도 좀 들어 보였고, 옷차림도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현암은 이 사람이 내부의 돌아가는 상황을 좀 안다면 분명히 자신의 말이 먹혀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말엔 대답할 것 없어요. 우리는 그 바이러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우리만이 시스템을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세요.” “어떻게 사실을 알았느냐는 것만 반복해서 묻고 있어요.”

“에이, 지금 시간이 없는데. 잔소리 말고 비키라고………. 아니, 좌우간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요. 좀 큰 소리로 말해요, 더듬 거리지 말고.”

현암이 시키는 대로 혜영은 거의 악을 쓰듯이 톤을 높여 말했고, 그 사람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머뭇거렸다. 길을 비켜 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현암은 다른 경비원들이 제지하는 것을 뿌리치면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비원 몇 명이 형식적으 로 제지하려고 현암의 어깨를 잡았지만, 현암이 가볍게 움직여 떨쳐 내자 우르르 넘어졌다. 현암이 전산실 안으로 들어가자 나 머지 사람들도 따라 들어갔고 경비 책임자인 듯한 남자조차 어쩔 수 없다는 듯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규모가 큰 전산실이라 하면 으레 시원하고 조용한 가운데 키 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컴퓨터 팬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연상 되지만 지금 센터의 전산실 내부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비상사태 때문에 비번인 사람들까지 모조리 호출되고 도 움이 될 만한 외부 사람들까지 불려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머리 가 헝클어진 피곤한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 고 있었다.

너무나 혼란스런 상황이어서 전산실 안으로 발을 디딘 일행들 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전산실 내부를 둘러보니 많은 모니터들에 을씨년스러운 거미 그림이 있었다. 프로그래머로 보이는 한 사람이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미친 듯 두드리다가 주먹으로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 구석에 서는 모니터 앞에서 한 프로그래머가 분노에 가득 찬 소리를 지 르며 디스켓 뭉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은 엄청난 바이러스에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런 상 황에서 일행은 어디에 끼어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전산실 내부의 광경을 보고 있던 박 신부가 준후의 옆구리를 찔 렀다.

“준후야, 뭔가 느껴지니? 영기 같은 것은?”

“아주 미약해요. 바이러스 코드 안에 숨어 있는 영이라 그런지 이건 도대체…..”

준후가 부적 한 장을 꺼내더니 거미 그림이 떠 있는 모니터 앞 으로 걸어갔다. 특이한 옷을 입은 동양인 꼬마가 이상한 종이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 앞에 있던 프로그래머의 눈이 휘둥 그레졌다. 프로그래머가 얼빠진 듯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 이에 준하는 종이 부적을 모니터에 대고 손을 얹은 채 가만히 눈 을 감았다.

“느껴져요. 파괴 그리고 최후의 저주. 오로지 그 일념으로만 가득 차 있어요.”

“그것밖에 안 들리니? 아무리 영의 마음이 분화되었다 해도 그 근본이 어딘가 있을 것 아니냐? 그놈을 일단 잡아야 해.” 박신부가 말하자 준후는 모니터에 붙인 부적에 손을 댄채계 속 정신을 집중하다가 자그마한 탄성을 내질렀다.

“앗, 저・・・・・・ 컴퓨터 안에 원한령의 기운이 온통 모여 있는 것 같아요. 그놈을 어서 잡……………”

준후가 말을 이으려는데 그때까지 멍한 얼굴로 보고 있던 컴 퓨터 프로그래머가 큰 소리로 뭐라고 주절거리더니 준후를 밀쳐 냈다. 준후는 잠시 화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아이고, 이런! 막 잡으려 했는데, 놈이 낌새를 알아차렸나 봐요.”

준후의 말처럼 원한령이 자신을 잡으려는 낌새를 눈치챘는지 갑자기 전산실 내부에서 느껴지던 영기가 희미해졌다. 승희가 고함을 질렀다.

“놈이 뭔가 다급한 모양이에요.”

박 신부와 준후도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현암도 눈을 번쩍 뜨 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고, 혜영은 메인 컴 퓨터가 어느 것인지 눈으로 짚어 나갔다. 갑자기 준후가 또 소리를 쳤다.

“영기가 저쪽으로 몰려가요.”

준후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천장의 형광등이 껌뻑거리 다가 타다닥 소리를 내며 꺼져 버렸다. 마치 사열을 하듯 형광등 이 줄지어 꺼지기 시작했고, 퇴마사들이 있는 바로 위의 형광등 은 붉은색으로 달아오르더니 펑 하는 폭발음을 냈다. 유리 조각 이 사방으로 날리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몸을 가렸고, 준후를 밀쳐내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프로그래머는 짜릿짜릿한 전 기가 오르는지 비명을 지르고는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 컴퓨터에서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나면서 작은 불 똥이 튀기더니 곧 모니터가 펑 하고 터졌다. 주변에 있던 프로그 래머들이 이쪽저쪽 아우성치면서 그 앞으로 몰려들었다. 한 사람이 배전반을 열고 스위치를 조작하려는 것을 본 연희가 소리 쳤다.

“컴퓨터에 고압 전류가 흘러 들어가고 있어요. 이곳 병원의 특 수 장비를 작동시키기 위해 많은 고압선이 설치되어 있는데, 과 부하가 걸려 장비들이 오작동한다고 하는군요.”

“놈은 분명히 이곳에 있어. 그리고 우리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뭔가 수작을 부리는 거야. 이건 단순한 바이러스의 짓이 아니야.”

박 신부는 심각한 표정으로 성수 뿌리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 나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퇴마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자기들끼리 손가락질하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연희가 그들이 하는 말을 통역해 주었다. 

“저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소리치고 있어요.”

몇몇은 경비원을 부르러 갔고, 몇몇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는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준후가 부적을 꺼내 모니터를 만 지려 하자, 덩치가 좋은 프로그래머 한 명이 준후를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었다.

“놔요, 놔요. 어이구! 빨리 놔줘요.”

준후가 바둥거렸다. 연희가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고개를 저으면서 빨리 이곳에서 나가라며 밀어내는 것이었다. 박 신부가 준후를 안고 있는 프로 그래머를 막아서고는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려 급하게 말했다. 

“지금 저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 어떤 방법이 없을까?”

그러는 사이에도 저쪽에 있던 모니터가 폭발을 했고 배전반을 손보던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 배전반은 흔히 볼 수 있는 수동 배전반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블 콘트롤러가 부 착된 자동 배전반이었다. 그것들도 컴퓨터와 연결이 되어 있어 서 멋대로 오작동을 하고 있었다. 몇 개의 모니터에 거미 그림이 떠오르자 그 앞에 앉아 있던 프로그래머들이 비명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센터 내부는 거의 모든 전등이 나가 버렸으나 메인 컴퓨터 쪽에만은 아직 전원 공급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이 든 남자 하나와 젊은 프로그래머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 소리를 치 자, 나머지 사람들은 단말기 주변에 달라붙어서 부지런히 뭔가 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열심히 두들기던 키보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는 나이 든 사람과 함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차분한 얼 굴이었다. 나이 든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저는 이곳 시스템 담당자인 제라르 라고 합니다. 당신네들은 도대체 어떻게 여기 들어왔으며, 지 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뒤에 서 있던 연희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당신들을 도우려는 거예요. 이곳에 지금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난리가 났죠?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그 바이러스는 보통의 방법으로 치료될 수 없다는 것까지도요.”

혜영의 연희의 말을 덧붙였다.

“이 바이러스는 횡적 연결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유전자 배 열과 같은 기본 코드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들을 잡지 않으면 이 거미 바이러스는 절대 퇴치할 수 없어요.”

갑자기 뒤에 있던 젊은 프로그래머가 믿어지지 않는 듯 앞으로 나섰다.

“저는 이 네트워크의 담당자인 알렉입니다. 네트워크도 이거미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거미 바이러스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요?”

알렉이 말을 하는 도중에 제라르가 끼어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당신들 문제는 아닙니 다. 다짜고짜 들어와서 이상한 행동만 하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도록 이야기를 해 봐요. 지금 우리는 이 일만으로도 골 치가 아프단 말입니다. 데이터들을 지키는 것만도 힘들다고요.” 

혜영이 소리쳤다.

“데이터! 맞아요! 당신들은 이곳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지요? 그 바이러스는 데이터를 파괴하 기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원한…….”

연희가 재빨리 혜영에게 눈짓을 해 원한령이라 말하려는 것을 제지하고 대신 말을 이었다.

“그 바이러스는 바로 이곳 암 환자들의 데이터를 파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알렉이 놀랐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암 환자들의 데이터라고요?”

연희가 승희에게서 그림을 받아들고 그것을 앞에 서 있는 제라르에게 보여 줬다.

“혹시 이 사람을 아시나요? 여기에 근무한 적이 있나요?” 

제라르는 연희가 내민 그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친구는….”

“이 사람을 아시나요?”

“네, 여기 근무했던 사람이에요. 상당히 유능했는데, 일년전 쯤에 자살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관계가…………….”

“틀림없군요.”

연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알렉은 혜영과 말이 통할 것이라고 느꼈는지혜영이 노트북을 끼고 있어 프로그래머로 보인 것 같다혜영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데이터들을 보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그 러나 테이프 백업 장치가 제일 먼저 마비되었고, 그다음에 메인 하드 디스크도 나갔죠. 다행히 아직 메인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번지기 전에, 백업용으로 운용하고 있는 서브시스템의 하드 디스크로 그 기능을 옮기고 임시로 패스워드를 걸어서 보호했죠. 아마 그것은 풀지 못할 거예요.”

“글쎄요. 그럴까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그 데이터는…………….” 

“물론 이곳의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네트워크 시스템 가동을 정지하고 제일 먼저 이곳으로 달 려온 겁니다.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연결점이 여기였으니까요. 일 단계 조치는 이미 취해 놓았습니다. 이제 우 리가 하려는 일은 메인 시스템을 보수하는 것입니다. 그 데이터들이 백업되어 있는 하드 디스크와 서브시스템이 대신 작동하고 있어요. 간신히 서브시스템에 방어막을 쳐 놓았으니 아무리 거 미 바이러스라 해도 뚫을 수 없을 겁니다.”

“서브시스템이 살아난 건 다행이지만, 거미 바이러스는 너무 무서워요. 그러니 메인 컴퓨터의 바이러스를 완전히 잡을 때까 지 서브시스템을 외부와 격리시키는 게 어때요?”

혜영의 말에 알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어요. 이곳은 병원들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에요. 여기서 시스템을 그냥 차단시키면 현재 의료 행위를 행하고 있 는 사람들이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수술중인 사람들 이 볼 참고 자료도 갑자기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의료 기구들의 제어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또 의사들이 기록을 찾아볼 수도 없어요. 이건 사람들의 목숨과 직결된 데이터라고요. 절대 그럴 수 는 없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곳만은 지켜야 해요.”

“그렇지만 이 서브시스템마저도 파괴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지 않게 해야죠.”

“저는 이 거미 바이러스에 대해 잘 알아요. 이 바이러스는 아 라크노이드 바이러스로 미셸이란 사람이 만들었고, 레오라는 사설 BBS 운영자가 퍼뜨린 거예요. 그리고 보통의 바이러스가 아니라 어떤 원한이 개입된⋯⋯⋯⋯⋯”

혜영의 입에서 미셸과 레오라는 이름이 나오자 알렉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셸이요? 이 바이러스를 미셸이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 니까? 그리고 또 레오는………….”

“잘 들어 두세요. 미셸은 지금 레오라는 사람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요. 바로 이 거미 바이러스 때문에 미쳐 버린 거예요.”

“미셸이 레오를 죽였다구요? 그리고 정신병원이라구요? 아 니,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모두 이 거미 바이러스 때문이에요. 미셸도 백 퍼센트 자기가 원해서 만든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어떤 원한령의 조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은……. 아이고, 이걸 뭐라 이야기해야 하나.”

“믿을 수 없군요.”

현암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는 중에도 박 신부와 준후, 승희는 데이터를 통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원한령의 자취를 추적하 려 모니터들과 망가진 기계 사이를 누볐다. 상당히 애를 쓰고 있 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암이 혜영의 어깨를 살짝 치면서 말을 건넸다.

“혜영 씨, 알렉에게 우리가 미셸이 직접 만든 모니터링 프로그램과 에디터 루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봐요.”

혜영이 정신이 드는 듯 알렉에게 말했다.

“우리는 미셸이 만든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가지고 왔어요. 이 것을 통하면 엄마 거미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로 시스템에 침투 하려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거미 바이러스의 맨 처음 소스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바이러스 백신도 대충 만들어 놓은 상태고요. 그러니 어서 메인 컴퓨터에 제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는 포트를 알려 주세요. 분명히 도움이 될 거에요.” 

알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구요? 모니터링 프로그램과 에디터 루틴이라구요? 게다 가 이 바이러스의 백신 프로그램까지…………. 왜 진작 말하지 않았 습니까?”

알렉은 흥분한 듯 혜영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알렉이 혜영의 노트북 컴퓨터를 받아들었고, 혜영은 재빨리 알렉 옆에 앉았다. 

“어서 빨리! 이 컴퓨터와 노트북을 연결시켜 주세요.” 

알렉이 컴퓨터 포트에 선을 꼽자 노트북에 떠올라 있던 모니 터링 루틴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준후와 박 신부는 몇 차례 컴퓨터 안에 깃든 영의 자취를 발견하고 지우는 중이었다. 영이 바이러스에 깃들어서 그런지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대단히 특이했다. 한 번 영기를 지워도 또 다른 곳에서 곧 영기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박 신부가 화도 나고 지치기도 한 듯 노한 목소리로 준후에게 말했다.

“준후야, 아무래도 이 상태로 가면 끝이 없을 것 같구나.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은 원한령이 아니라, 원한령이 만들어 낸 염 체일 뿐이야. 이것은 원한령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니 원한 자체를 없애 버려야 될 것 같다.”

준후가 부적 하나를 태우며 박 신부 말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어요. 너무 복잡해요.”

승희 역시 눈을 감은 채 계속 그 원한령의 자취를 쫓고 있었다. 마치 그 원한령의 사념이 집중되어 모여 있기라도 한 듯, 굉장히 많은 메시지와 영상이 두서없이 섞여 있었다.

“아냐,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해.”

박 신부와 준후 그리고 승희가 한쪽에서 애를 쓰고 있는 동안 혜영과 알렉은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서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 프로그램을 메인 컴퓨터에 밀어넣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 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 속에서 연희와 현암은 할 수 있는 일 이 별로 없었다. 다만 연희가 혜영과 알렉이 주고받는 대화를 간간이 작은 목소리로 현암에게 들려줄 뿐이었다.

“혜영 씨가 백신 프로그램을 옮기는 중이에요. 아직 거미 바이 러스가 침투하지 않은 옆의 서브 컴퓨터를 통해서 메인 컴퓨터 에 있는 엄마 거미를 잡는다는군요.”

컴퓨터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는 현암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암은 직접 싸우는 것이 본연의 임무인지라, 지금 상황에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했다. 성질이 폭발할 것 같 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뭔가 하고 싶었다.

‘아냐, 정신 차려야지.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거야, 뭔가……………’ 

현암은 그런 생각을 주문처럼 웅얼거리면서 혜영과 알렉의 대 화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혜영은 노트북을 열심히 조작하여 몇 번이고 키를 눌러 보았 으나 생각처럼 작동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혜영의 얼굴에 당 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렉이 소리치자 연희가 그 내용을 현암 에게 일러 주었다.

“이상하게 백신이 들어가지 않는다는군요. 특별히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메인 컴퓨터가 잘 받아들이지 않는대요.” 

“무슨 말이죠?”

“자꾸 에러가 난다는군요. 전혀 이유가 없는데.”

“이유 없이 프로그램이 들어가지 않는다구요?”

현암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쪽에서 승희가 소리를 질렀다.

“영기, 영기가 매우 짙어지고 있어요.”

준후도 소리를 쳤다.

“신부님, 저쪽! 저쪽으로 도망친 것 같아요. 저쪽에서 지금 놈이 뭔가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준후가 가리키는 곳은 메인 컴퓨터의 본체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리로 가는 길에는 오만가지 장비가 널려 있어서 덩치 큰 박 신부가 한 걸음에 내닫기는 어려웠다.

현암의 머릿속에 번뜩 어떤 생각이 지나갔다. 바이러스 코드 의 랜덤 넘버를 조작해서 원한령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 저 백신 프로그램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분명 원 한령의 짓이겠지?”

순간적으로 생각한 현암은 박 신부와 준후를 향해 소리쳤다. “그놈을 잡아요. 어서! 놈이 뭔가 방해하고 있어서 프로그램 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요.”

박신부가 현암의 이야기를 듣고 성수 뿌리개를 꺼냈다. 그리 고 현암에게 소리쳤다.

“놈이 지금 어디에서 방해를 하고 있다는 거지?”

“메인 컴퓨터! 바로 이거예요!”

현암이 손짓으로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는 커다란 컴퓨 터 본체를 가리켰고, 그러자 박 신부는 기도를 외우면서 메인 컴 퓨터를 향해 성수를 뿌렸다. 박 신부가 성수를 뿌리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킥킥거리면서 웃기까지 했지만 박 신부는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그러자 갑자기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준후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맞아요, 틀림없어요! 신부님, 계속하세요. 승희 누나, 누나는 날 좀 도와줘요!”

승희는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더니 눈을 감고 준후에게 힘을 몰아 주었다. 준후가 우보법으로 방위를 밟으면서 양손으로 수 인을 맺고 소리를 쳤다.

“덧없는 원한으로 수많은 사람을 해치려 한 나쁜 자! 어서 나 와!”

준후는 프로그래머들을 의식해서인지 이번에는 뇌전이나 멸 겁화 같은 눈에 보이는 기운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연 기를 잔뜩 컴퓨터 쪽으로 불어 넣었다. 컴퓨터는 상당히 큰 기계 이고 준후는 그 기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 그냥 무지막지하게 힘을 뽑아서 컴퓨터 쪽으로 밀어내면 영이 알아서 뛰쳐나오지 않겠느냐는 생각뿐이었다. 한참 어마어마한 영력을 컴퓨터 안에 밀어 넣자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영이 뛰 쳐나오는 것이 준후의 눈에 보였다.

“이놈!”

준후는 숨가빠 하면서도 붉은 종이로 만들어진 흡령부를 허 공에 던졌다. 부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날다가 메 인 컴퓨터 위의 공중에서 덜컥 멈췄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 지 않았지만 흡령부가 원한령의 보이지 않는 몸에 달라붙었다.

준후의 눈에 흡령부에 정통으로 맞은 원한령이 아우성을 치면서 부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영이 부적으로 빨려 들어 가자 종이는 다시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준후가 그것 을 재빨리 낚아채 소맷자락에 집어넣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와, 하하하! 이제 잡았어요. 다시 해보라고 하세요!”

현암은 준후의 말을 듣고 혜영에게 다시 소리쳤다.

“다시 해 봐요. 백신 프로그램인지 뭔지 작동해 봐요.” 

“잘 안 된단 말이에요!”

혜영이 신경질을 내자 현암이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말했다. 

“지금 영을 잡았어요. 준후가 영을 잡았으니 이번엔 방해받지 않을 겁니다. 어서 다시 해 봐요.”

혜영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손놀림으로 노트북의 키를 빠르게 조작했다. 그러자 모니터링 루틴이 제대로 되어 가는지 커서가 깜박깜박하면서 활발히 작동하는 것이었다. 알렉이 옆에 서 야호 하고 탄성을 질렀고 혜영의 얼굴에도 회심의 미소가 지 어졌다. 그러나 곧 그녀의 얼굴에는 이를 바득바득 가는 것 같은 분노의 표정과 냉소가 동시에 번졌다. 혜영은 초조하게 컴 퓨터 엔터키 부분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마침내 백신 프로그 램이 메인 컴퓨터로 들어가는 것이 성공했는지 커서가 떨어지자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죽어, 엄마 거미!”

혜영이 거의 주먹을 내려치듯 노트북의 엔터키를 쾅 하고 누르자 옆에 있었던 메인 컴퓨터에 떠올라 있던 거미 그림이 휙 하 고 꺼져 버리는 것이었다.

“된 건가?”

현암과 연희는 초조하게 메인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혜 영과 알렉은 해쓱한 얼굴로 노트북에 떠올라 있던 모니터링 프 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만세!”

“어떻게 된 거예요? 성공했나요?”

혜영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함박웃음을 머금은 입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네에 성공했어요! 엄마 거미가 있던 하드 디스크는 지금 새 로 포맷되고 있는 중이에요. 메인 컴퓨터 하드 디스크가 장악되 면 제일 먼저 백신 프로그램부터 주입할 거예요. 그러고 나면 다 시 거미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을 거고요. 하여튼 이제 잘돼 가고 있어요.”

혜영은 말하면서 노트북 컴퓨터의 모니터에 떠올라 있는 여러 줄의 글자 가운데 한 줄을 가리켰다.

“엄마 거미 삭제됨.”

연희가 그 문구를 현암에게 일러 주며 웃고 있었다. 현암도 기분이 좋아서 준후와 박 신부에게 소리를 쳤다.

“신부님, 준후야. 이제 바이러스는 없어졌어. 염려하지 말라구.”

현암의 말을 듣고 박 신부와 준후는 부산하게 돌아다니다가 멈추고 현암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준후가 망설이듯 이야기를 했다.

“어, 이상한데? 원한령을 잡았다면 나머지 바이러스에 있던 영력도 사라졌어야 하는데 뭔가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데.” 현암이 눈을 크게 떴다.

“응? 그럴 리가….”

박신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야기했다.

“혹시 아직 주변 장치에 그 기운이 남아서 그런 건 아닐까?”

준후가 다시 고함쳤다.

“이상해요. 아까 것하고는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아요. 원한 령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 이상하다. 미셸이라는 남자의 기운・・・・・・ 느낌 같은 것이…………… 어? 이게 도대체 뭐지? 누나!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준후의 말을 듣고 현암이 눈을 크게 뜨고는 혜영을 쳐다봤다. 왠지 몸에 소름이 끼쳤다. 혜영도 준후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모니터의 루틴은 분명히 엄마 거미가 죽었다고 나와 있었다.

“이상하군요. 엄마 거미는 분명히 죽었어요.”

혜영은 재빨리 몸을 돌려 메인 컴퓨터의 키보드를 몇 번 두들겼다. 그러자 잠시 후 메인 컴퓨터에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프롬프트가 떴다. 혜영은 심심풀이로 몇 자 쳐서 엔터키를 눌러 보았다. 정상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 같았다.

“분명히 됐어요. 엄마 거미 프로그램은 완전히 지워졌는데.” 

혜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알렉이 무어라 소리치면 서 놀란 듯 노트북 컴퓨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연희의 시선 이 알렉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거기에는 또 다른 글이 익살스 럽게 표시된 채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상한 분위기에 어리둥절 한 현암이 연희에게 물었다. 연희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더듬 거리며 현암에게 말을 했다.

“원, 세상에! 저건……”

“뭔데?”

“아빠 거미, 아빠 거미. 아빠 거미는 껍질만 있어도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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