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2권 24화 – 아라크노이드 9 : 거미의 최후 (2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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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2권 24화 – 아라크노이드 9 : 거미의 최후 (2권 끝)


거미의 최후

“뭐라고? 아빠 거미?”

현암이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승희가 벌떡 일어났다. “연희 언니, 그 노래, 미셸이 부르던 그 노래 있잖아!”

승희의 말을 듣고 연희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 미셸이 자신들을 공격하면서 계속 흥얼거렸던 그 노래 엄마 거미가 아빠 거미를 잡아먹었지만 아빠 거미는 껍질만 남아서 계속 엄마 거 미를 쳐다보고 나중에 큰 소리로 웃는다는 그 노래.

‘그렇다면 미셸이 흥얼거리던 노래가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단 말인가? 만약 그것이 미셸이 엄마 거미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다 른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암시한 노래였다면…………. 그 렇다면 엄마 거미가 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모니터링 루 틴이란 게 바로 아빠 거미!’

연희의 몸에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알렉이 부르는 소리에 혜영이 다시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와서 노트북을 미친 듯 만져 보더니 소리를 쳤다.

“아니? 이럴 수가!”

“뭐예요?”

현암이 혜영을 보고 묻자 혜영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모니터링 루틴 자체에 바이러스가……………. 이건 엄마 거미도 아 니고…………. 이것도 거미 바이러스 일종은 틀림없는데………… 이건,  이건……”

혜영이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빠 거미인 것 같아요! 엄마 거미가 완전히 죽을 것을 대비 해서 만들어 놓은 아빠 거미…………. 아, 이럴 수가! 이 모니터링 프로그램 자체가 일종의 함정이었어요. 미셸은 엄마 거미를 잡 으려면 이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또 다른 변종 거미 바이러스를 넣어 둔 거예요. 이건…”

혜영의 말을 듣고 연희는 미셸이 읊조렸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Rira bien qui rira le dernier(최후에 웃는 자가 정말로 웃는 자다.

알렉은 제라르와 함께 서브 컴퓨터로 가서 시스템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알렉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지금 메인 컴퓨터 쪽에서 이 서브시스템으로 미친 듯 접속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혜영이 소리쳤다. 혜영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신음 소리를 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큰일이야. 내가 만든 백신은 엄마 거미밖에 대항할 수 없는데…………. 이 아빠 거미,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요. 아! 도대체 이걸 만든 놈은……..”

혜영은 메인 컴퓨터의 키보드를 마구 두들겨 보았으나 그새 아빠 거미에게 장악되었는지 아무 동작도 하지 않은 채 멍청하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에 장착된 모든 작은 전구들이 깜박거리는 것으로 보아 메인 컴퓨터 내에서 아빠 거미가 뭔가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조롱하듯이 보여 주고 있었다. 현암이 소리쳤다.

“도대체 어떤 일이에요?”

“지금 저 서브시스템은 알렉이 걸어 놓은 패스워드로 보호되 고 있어요. 그런데 패스워드는 여섯 자예요. 알파벳 여섯 개면 삼억 개의 조합이 가능한데, 지금 이 메인 컴퓨터에 들어간 아빠 거미 바이러스가 그것을 풀려고 하고 있어요.”

“삼억 개요? 그 삼억 개의 조합을 풀려면 시간이……….”

“아니에요. 얼마 되지 않아요. 아, 도대체 어떻게 하나! 이 메 인 컴퓨터에 부착되어 있는 여덟 개의 패럴렐(병렬) 포트는 일 초에 일 메가바이트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요. 일 초에 일백만 바이트씩 여덟 개의 포트가 모두 지금 저 서브시스템으로 연결 되고 있어요. 삼억 개의 조합이 있다고 해도, 일 초에 일만 개씩 여든아홉 개의 포트에 분산해서 보낸다면 삼분, 이 분밖에 안 걸릴지도. 이럴 수가. 도대체 시간이…………….”

“뭔가 방법을 생각해 봐요.”

“그럴 수가 없어요. 메인 컴퓨터는 제가 작동시킨다 해도 지금 은 완전히 고물 깡통이에요.”

알렉은 온몸에 땀이 젖은 채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브시스템 쪽의 키보드를 미친 듯 두드리고 있었다. 아마 패스워드의 숫 자를 늘려서 방어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삼 분 안에 프로 그램을 고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혜영이 앉은 채 발을 동동거리며 높고 빠른 말투로 소리쳤다.

“엄마 거미라면 주로 모뎀 선과 시리얼 통신으로 연결되기 때 문에 너무 시간이 걸려서 패스워드를 풀어낼 수 없을 거예요. 그 러나 이놈은 아예 패럴렐 포트를 집중해서…………. 아, 이걸 어떻게 해. 얼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오 분도 최대한 그렇다는 거지. 일반적으로 따지면 삼분도 채 ! 이젠 일이 분밖에 안 남았 는데.”

알렉은 계속 소리를 질러 댔고 제라르가 다시 헐레벌떡 뛰어왔 다. 제라르는 얼굴이 벌겋게 된 채 몹시 당황한 듯 계속 고함을 질렀다. 연희가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현암에게 말했다.

“제라르 씨도 사정이 급한 걸 알고 있어요. 어떤 대가를 치르 더라도 데이터들을 지켜야만 한답니다. 지금 사태가 몹시 위급 해요. 저 데이터가 손상되면 환자들의 목숨은……………. 어떻게 하든 지 저 컴퓨터를 지켜야………….”

“전기를 끊으라고 해요!”

“전원도 통제가 안 돼요! 주 전원실까지 가야 하는데 그럴 시 간이 없어요.”

거의 비명에 가까운 혜영의 소리를 듣고 현암은 입을 꾹 다물었다. 현암은 도통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컴퓨터에 대 해선 거의 깡통이니까.

제라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바닥의 한 부분을 가리켰 다. 연희가 재빨리 현암에게 제라르가 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선로를 끊어야 한대요. 그쪽으로 패럴렐 포트 선 하나가 지나가는 모양이에요.”

사람들이 그쪽으로 달려들어서 땅바닥에 철판으로 막혀 있는 부분을 떼기 위해서 힘을 썼지만 나사를 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현암이 월향검을 빼 들고 그곳에 뛰어들었다. 현암은 사람들을 밀어낸 다음 월향검에 공력을 집중했다. 검기가 칼끝 에서 쭉 뻗어 나오자 월향검을 땅에 그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 께 철판이 갈라지며 불똥이 튀고 땅에 깊은 칼자국이 생겼다. 그 러나 저쪽에서 혜영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더 깊이 있어요. 선로가 차단되지 않았어요.”

현암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칼을 그었다. 저쪽에서 혜영이 소리치는 게 들렸다.

“하나는 끊어졌어요. 하지만 아직 일곱 군데나 남아 있어요!” 

제라르는 어떻게 현암이 조그만 칼로 콘크리트 깊이 묻혀 있 는 선로를 끊어 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탄을 하며 다른 선로 가 어느 쪽으로 개설되어 있는지 찾고 있었다. 현암은 두리번거 리는 제라르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혜영에게 물었다.

“혜영 씨, 이쪽으로 선로가 다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요?”

“아닌 거 같아요. 여덟 개 모두가 분산되어 있어서………….”

시간이 없었다. 여덟 개 선로를 모두 차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제라르가 그 선로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지도 문제 였다. 제라르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기억이 나지 않는지 하늘에 대고 비탄하는 소리를 울부짖듯이 내뱉었다.

“저 데이터들은 수백 명의 목숨이 달린 거라 무슨 수를 써서라 도 지켜야 한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인가요?”

현암은 중얼거리며 월향검을 집어넣었다. 그순간 현암의 머릿 속에 하나 짚이는 것이 있었다.

‘급할수록 냉정해라.’

현암은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는 사람들과,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기계를 살펴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울음보를 터뜨리기 일보 직전인 혜영에게 현암은 급히 물었다.

“혜영 씨, 빨리 대답해 줘요!”

“어서 대답해 줘요. 급합니다! 지금 이 메인 컴퓨터는 아빠 거미에게 완전 장악되어 있는 겁니까?”

“예.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저 중요한 데이터가 백업되어서 보관되어 있다는 그 서브시스템은 메인과는 별개로 작동이 가능한 거죠?”

“네. 두 개는 거의 완전히 독립된 시스템이죠. 그러나 거기 연 결돼 있는 포트들은 제거할 수 없어요. 이 땅속 깊숙이 선로가 개설되어 있고 그 수가 여덟 개나 됩니다. 그걸 한꺼번에 제거한 다는 것은…….”

저쪽에서 알렉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벌떡 일으 켰다. 혜영도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아악! 서브시스템의 패스워드가 풀린 것 같아요!”

현암은 졸지에 먹통이 된 메인 컴퓨터의 옆에 있는 본체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아빠 거미가 잡고 있는 메인 컴퓨터입니까?”

“맞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고작 오초!” “에에잇!”

현암이 갑자기 허공에 대고 고함을 쳤다. 혜영의 말에만 귀기 울이고 있던 박 신부와 승희, 준후는 현암의 함성을 듣고 시선이 현암에게로 향했다. 프로그래머들도 자포자기한 듯한 얼굴로 현 암을 쳐다보았다. 현암의 몸에서 솟구치는 공력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피부를 통해 느껴질 정도로 강했고, 이내 현암의 오른 손으로 모였다. 뒤에서 연희가 놀라서 말했다.

“현암 씨!”

대답 대신 현암은 공력이 가득한 오른손 주먹으로 메인 컴퓨 터를 있는 힘을 다해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불똥이 튀었다. 그보다도 사람들은 현암의 난데없는 행동에 더 욱 놀란 모양이었고 알렉은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혜영은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다가 옆에서 현암이 메인 컴퓨터를 단 한 주먹에 박살 내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메인 컴퓨터는 현암의 혼신의 공력을 다한 주먹에 거의 두 동 강이 나 여기저기서 피식피식 하는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고물로 변했다. 주먹 한 방이 거의 사람 크기만 한 메인 컴퓨터를 납작 하게 눌러 버린 것을 보고 모두 말을 잇지 못하고 넋 나간 듯 한 참 멍하니 서 있었다. 시스템의 담당자 제라르가 한순간에 십 년 은 늙어버린 듯한 얼굴로 비척거리면서 현암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말도 안, 안…….”

현암은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조용히 혜영에게 물었다.

“이러면 메인 컴퓨터에 있는 아빠 거미도 사라졌겠지요?” 혜영은 멍한 듯 초점 없는 눈으로 현암을 한동안 올려보았다. 뒤로 나자빠진 알렉이 쓰러져 있는 모니터 쪽을 쳐다보았다. 그 쪽의 컴퓨터는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다.

“네. 서브시스템은 무사, 무사한데・・・・・・ 그런데 이건 아……………컴퓨터는……………”

현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연희가 활짝 웃음 띤 얼굴 로 대신 대답했다.

“그렇다면 됐어요. 데이터는 지켰고 암 환자들도 계속……” 

현암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연희도 이야기를 멈추고 현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의 담당자 제라르는 어지러운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고, 알렉은 조각상 처럼 서서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주변에 몰려서 그들의 행동을 보던 프로그래머들도 반은 씰룩거리고 있 었고, 반은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이미 완전히 찌그러져 버린 메인 컴퓨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 신부가 다가와 현암 의 어깨를 살짝 치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저만치에서는 준후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 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현암은 아무 표 정 없는 바위 같은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른 사람의 따가 운 시선을 받으며 찌그러진 메인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 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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