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29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7 – 블랙서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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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3권 29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7 – 블랙서클의 비밀


블랙서클의 비밀

“예? 뭐라구요?”

연희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힘없이 죽어 가 는 자가 블랙서클의 총수라니. 이자는 어떠한 힘이나 영력도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지금 연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겠다 고, 마스터를 반드시 죽여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알려 주겠소. 아아…… 마스터를 그냥 놔두어서 는 안 돼. 절대..”

연희는 멍하니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헐떡거리면서 혼신의 기운을 다해 말을 이어갔다.

“나, 나는 KGB(구 소련의 비밀 경찰)의 특수 심령 연구소의 소장이었소. 심령학과 초능력을 군사적인 목적에 활용하려는 연 구를 해 왔고 세계의 유능한 인물들을 포섭하여 그들이 가진 능 력의 비밀을 밝히고 그들을 소비에트 연방 최정예의 전사로 만들려고 했었지.”

블랙서클의 총수, 안드레이 키르모비치는 야망이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인간이 만들어 내는 신비한 세계는 끝이 없었고, 안드레이는 그 세계에 경탄하면서 그러한 힘들을 활용 하면 언젠가는 세상의 판도를 바뀌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처음에는 과학적으로 그것의 정체를 밝히려 했으나 성과 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어느새 서서히 신비주의에 빠져들게 되었고 세계 각지에서 능력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자가 마스터였다.

“마스터는 무서운 능력자…………. 인도의 대요기…………. 그러나 힘, 힘만을 추구하다가 신앙과 믿음을 포기한 자요. 그러나 그 힘만은……………”

연희는 흥분한 안드레이를 진정시키면서 얼굴을 자세히 살폈 다. 얼굴에 죽음의 기색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와해되자 비밀에 싸여 있던 우리 연구소는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게 되었소. 많은 초능력자들과 영능력자 들이 자유를 찾아 연구소를 탈출했으나 마스터는 그중 일곱 명 의 능력자들을 붙잡아 두었던 거요. 나는 이들의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졌소. 아! 난 미쳤었 소・・・・・・ . 나는 막대한 공금을 빼돌려서 미국으로 건너왔고, 마스 터를 통해 그들을 세뇌하여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뭐든 해 보려고 했소. 나를 그렇게 황당한 인간으로 만 든 건 마스터였지만 말이오. 일곱 명의 능력자들은 각각 목적이 달랐다오. 그들의 이름은…………….”

연희는 이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과 거 그 남자의 장난기 어린 듯한, 그러나 우울해 보이는 얼굴을 떠올렸다. 연희가 지금까지 수없이 위기를 넘겨 가며 이곳에 오 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그 남자의 영혼을 달래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안드레이는 이름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 다. 일곱 명의 능력자들 중에는 분명 그 남자의 이름도………….

“마스터를 제외하고 블랙서클을 만든 자들은 히루바바와 성난 큰곰…………. 그들은 자신의 민족을 위해 힘을 얻을 생각으로 마스터를 따랐소. 코제트는 스스로를 증오하여 세상을 멸망시키겠다 는 집념으로 꽉 찬 여자였고………….”

연희는 애타게 안드레이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래, 낯익은 이 름들, 여태껏 자신들과 싸워 왔던 그 이름들. 그러나 연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케인과 카프너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블 랙서클을 따른 자들이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이용했소.” “그리고요? 다른 사람들은?”

“주주, 주주가 있었소. 좀비들을 부리는 기술을 가진 호웅 간・・・・・・ . 그러나 그자는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되자 블랙서클을 떠나 도망쳤소. 그다음 일은 모르오. 나는 그 이전에 마스터의 저주를 받아 이곳에 감금되었고…………..”

“마지막 사람은? 그 남자는 그 남자는 한국인이었죠?”

“맞 맞소. 한국인 2세……………. 유럽으로 입양되어 거리를 헤매던 청년이었지.”

연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아! 그…………… 그 사람의 이름은?”

“그의 이름은………..”

안드레이는 쓸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모르오. 그의 이름은 자신도 몰랐소.”

눈앞에서 세상이 한꺼번에 와르르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았 다. 이름마저도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가 버리다니・・・・ 그는 그 남자는……………. 연희의 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 을 보고 안드레이는 뭔가 사연이 있을 거란 느낌에, 측은한 생각 이 들었는지 한마디 귀띔해 주었다.

“우리는 그를 그냥 리라고 불렀소.”

“리? 리라고 했나요? 그 사람의 성이………………”

“그렇겠죠. 그렇다고 믿습니다.”

안드레이는 연희를 위로하려는 듯이 보기 흉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연희는 한 음절의 말만 듣고도 가슴이 꽉 막혀 오는 것 같아서 끅끅 하는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리! 리였군요. 바로……………’

눈물을 흘리는 연희의 손에 낡고 닳은 구리 십자가가 꼭 쥐어져 있었다. 안드레이는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성난큰곰 말고는 모두 죽음을 당했다고 들었소. 리도 그렇소?”

안드레이는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고 후회하는 표정이었으나 연희는 그것이 슬픈 일이 아니라는 듯, 계속 눈물을 펑펑 흘리면 서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드레이도 눈물이 글썽했다. “

리의 것이군요. 그 친구에게 가장 소중했던 물건이었소.” 

“예. 흐흑……. 그랬어요…………. 예…….”

안드레이도 연희가 우는 모습을 보자 숙연한 얼굴이 되었다. 안드레이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헉!”

현암은 낭패라고 생각했다. 성난큰곰은 현암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칠성(七)의 기공력을 담고 있던 주먹을 그대로 가슴 으로 받으면서 성난큰곰은 거대한 팔을 벌려서 현암을 끌어안아 버린 것이다. 그의 엄청난 덩치가 몸을 에워싸자 현암은 마치 땅 속에 파묻힌 것처럼, 아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반탄력을 극한 까지 끌어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 끝을 낼 때가 되었네.

“으윽!”

현암은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매우 뜻밖이었다.

자네들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하네.

현암은 뭐라 대꾸하려 했으나 성난큰곰의 코끼리 다리만큼이 나 굵어진 팔이 조여 오는 바람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나를 죽여 주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자네를 죽일 걸세. 제발 공평한 방법으로 나를, 나를 조상님들이 기다리는 낙원으로 보내 주게.

“둘 다 죽지 않으면 되지 않나! 왜 죽어야 한단 말인가!” 

현암은 간신히 들릴락 말락 하게 소리를 쳤다. 그러나 성난큰 곰은 애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현암을 더욱 끌어안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수족의 전사들은 용맹하게 싸우다 죽지 않으면 낙원에 들지 못 하네. 그리고 나는 지금 가야만 하네. 사람은 언젠가 죽는 법이니…………. 죽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일세………….

현암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명예 관습이니 자존심이니 하 는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또 실제로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현암은 분노가 앞섰 다. 왜? 왜 죽고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같은 인간끼리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인간은 자연계의 어떤 동물도 행하지 않는 이유 없는 동족 살상을 하는 것인가? 어쩌면 모 든 살해와 실상의 근원은 바로 ‘힘’에 있을지 몰랐다. 남보다 강 한남을 제압할 수 있는・・・・・・ 그 증거를 남에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에 힘을 얻으려고 하고, 힘을 얻으면 쓰고 싶기 때문에 일을 벌이고 또 거기에 끼어들고…………….

아더왕과 대화할 때 현암은 분명히 대답했다. 힘은 약한 자를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명예나 영광보다는 생명이 더욱 중요하 다고. 아더 왕은 그러한 대답을 듣고 현암은 기사(Knight)가 아 니라고 했지만 현암의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죽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허위다…..

현암은 기공력을 모아서 몸을 꿈틀대기 시작했다. 성난큰곰의 초인적인 힘으로 몸이 금세라도 찌그러들 듯이 압축되자 몸 안 에 풀어 놓았던 기공력이 막혔던 혈도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격 심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현암은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서 성난큰곰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고 싶었다. 오로지 그 일 념으로 혼신의 힘을 집중했다. 갑자기 눈앞이 윙윙거리고 몸의 근육이 미친 듯 멋대로 움직였다. 현암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반 교수님!”

승희와 윌리엄스 신부는 지하 일층으로 내려서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하 일층은 격심한 싸움이 있었던 듯.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부스러진 좀비들의 참혹한 시체들, 아 니 그 조각들과 재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복도 저편은 천장이 무너져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이반 교수는 탈진한 듯 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온몸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으아! 이반 교수님. 괜찮습니까?”

윌리엄스 신부가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 했으나 이반 교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괜찮다는 동작을 했다. 그리고 천장을 가리켜 보이면서 말했다.

“저놈의 글자들에 성수를 부어 줬더니 다짜고짜 글자들이 피 가 되어 나한테 쏟아지더군요. 흠흠!”

이반 교수가 가리킨 천장에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 었고 이상한 글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어져 버렸다.

“피의 힘을 모아서 주술 막을 쳤던 것 같군요. 끔찍한 놈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요?”

승희가 다급하게 말하자 이반 교수는 돌 더미를 가리켰다.

“저 너머에 있어요. 천장이 무너져 내려서…………….”

“아이구, 그러면 어떻게 해요? 현암 군에게 월향검을 전해 주어야하는데…….”

승희가 발을 동동 구르자 윌리엄스 신부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이반 교수와 승희, 그리고 무너져 내린 돌 더미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결심을 한 듯, 위를 보고 소리쳤다.

“주여! 한 번만 눈감아 주소서!”

윌리엄스 신부가 소리를 지르면서 이야아아압 하는 소리를 내 자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리면서 입술을 비집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솟구쳤다. 손가락 끝도 짐승처럼 뾰족하게 변했다. 흡 혈귀와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되자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 못한 승희는 으흑 하는 소리를 냈으나 윌리엄스 신부는 그런 승희와 이반 교수를 본척만척하고 돌더미로 달려들었다.

“주여, 자비를!”

윌리엄스 신부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으로 돌 더미를 헤집어 놓았다. 돌 더미에 손을 찔러 넣고 헤집을 때마다 커다란 돌들이 우르르 옆으로 밀려났다. 승희와 이반 교수는 넋 을 잃고 윌리엄스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용서하소서! 주여!”

윌리엄스 신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돌 더미를 절반 가까이나 흩어 놓더니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눈만은 흡혈귀 같지 않고 정 상적이었는데 그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승희는 피식 나오는 웃 음을 간신히 참았다. 윌리엄스 신부는 또다시 날카로운 기합 소 리와 함께 양손을 돌 더미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바람 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거대한 돌 더미를 무너뜨렸다. 삽시간에 꽉 막혔던 통로가 완전히 열렸고 승희와 이반 교수는 무지막 지한 윌리엄스 신부의 힘에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윌리엄스 신 부는 돌 더미를 치우자마자 아멘 하고 중얼거리면서 땅에 풀썩 쓰러져 버렸다. 승희는 어이가 없어서 소리를 쳤다.

“어어?”

피로 범벅이 된 이반 교수가 윌리엄스 신부에게로 달려가더니 중얼거렸다.

“별것 아닙니다. 정신을 잃은 거예요. 빈혈 때문에…..”

“빈혈요?”

“하하하. 윌리엄스 신부님은 흡혈귀의 힘을 몸에 입었죠? 흡 혈귀의 힘은 피에서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윌리엄스 신부님의 정신은 말짱하니 피를 마실 리는 없죠. 그러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하하하.”

윌리엄스 신부가 지닌 흡혈귀의 기운은 자신의 피를 소모함으 로써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승희가 납득이 되지 않아 고개만갸 웃거리고 있는데 이반 교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힘을 너무 써서 당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테니 그냥 갑시다. 이번 활약은 멋지기는 한데 그래도 너무 희극적이군요. 하하 하. 웃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하하하.””

승희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반 교수와 함께 지하 이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 놀랍군요. 강하시군요. 강해…………. 하하하.”

마스터는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면서 코제트가 사용하던 증오 의 안개에다가 히루바바가 사용하던 고통의 음파까지 내고 있 었다. 그러면서도 마스터는 아까의 합장한 자세에서 손 하나 까 딱하지 않았고, 고통의 음파마저도 입이 아니라 복화술을 응용 하여 내고 있었다. 박 신부는 베케트의 십자가에서 나오는 힘으 로 방어하면서, 성령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십자가를 휘둘러 검 은 안개들을 사그라지게 만들었다. 준후는 준후대로 만부원진의 술수로 부적들을 몸 주변에 돌리면서 왼손으로 수인을 맺어 음 파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간간이 오른손으로 부동명왕의 인장을 맺고는 겁화의 불덩이를 두어 번 마스터를 향해 내쏘 았으나 그때마다 검은 안개가 일어나 불덩어리를 삼켜 버렸다. 한참을 싸우다가 마스터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애써서 모았더니, 그들이 잘난 척하던 힘이 이 정도 밖에 안 되었던가? 당신들이 강한 게 아니라 그들이 약했던 게로 군!”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준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스터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애써서 모았다니 그건 무슨 말일까? 그리고 마스터는 도 대체 얼마나 오랜 동안 수련을 했기에 블랙서클 사람들의 그 많은 술수를 다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런 와중에 마스터의 등 뒤쪽에서 또다시 붉은 염체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 신부와 준후는 스스로의 눈을 믿을 수 없었 다. 마스터가 제아무리 강한 자라고 한들 역시 인간일 터인데, 어떻게 저렇게 근본이 다른 술수들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경악하는 박 신부와 준후를 향해 염체들이 덮쳐들면서 마스터의 입이 열리고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 간. 박 신부가 헉 하는 소리를 내면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준후가 소리를 쳤다.

“신부님!”

“저, 저자가 내는 건 호웅간의 저주의 만트라!”

전에 박 신부는 호웅간과 싸우면서 저주가 실린 칼에 옆구리 를 찔린 일이 있었다. 그래서 백호와 함께 하마터면 둘 다 큰일 날 뻔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호웅간은 박 요원의 총에 죽었고 박 신부는 회복되어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저주력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 그 저주의 만트라마저도 마스터가 사용 한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다.

“신부님! 신부님!”

준후가 소리를 치는 사이에 박 신부는 옆구리에 손을 대 보았 다. 그 사건 이후 수많은 무리들과 싸우면서 그곳은 한 번도 맞 은 적이 없었는데도 상처가 터져서 피가 샘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연희가 진정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안 드레이 자신도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할 만큼 힘이 소진되어 있 는 것 같은데, 연희의 눈물을 보고 가쁜 숨을 참아 내는 것을 보 면 그리 악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한동안 울고난 연희는 한결 마음이 개운해졌다. 눈물을 닦고 난 연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들 중 젠킨스는 들어 있지 않죠? 삼대 승정 중의 하나잖아요?”

“젠킨스는 나중에 들어온 자요. 그는 비뚤어진 과학자에 가까 웠소. 그자의 능력이 가장 약했을 것이오. 그렇지 않았소?”

연희에게 젠킨스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말 을 꺼내기 위해 물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마스터가 바라는 것은 뭐죠?”

안드레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힘이오. 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힘!”

“그걸 어떻게 얻으려고 한 거죠?”

“아아!”

안드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총수라는 내가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아시오? 마스터의 속셈을 알아챘기 때문이지. 나도 악한 짓을 하긴 했지만 그자는 악마요. 아니, 악마 그 이상이오.”

“무슨 말인가요?”

“그자는 우리 모두를 이용한 것이오. 그자에게는 블랙서클 자체도 힘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소. 모두를 이용해서 그 힘을 차지하려는 수단으로…………..

“그 힘을 차지하다뇨?”

안드레이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소? 블랙서클의 성원들이 하 나씩 당신들의 손에 당해 가는데 왜 최강의 능력을 가진 마스터 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리고 블랙서클의 성원들이 왜 세 명 이상 힘을 모은 적이 없었는지 아시오? 그것에 대해 생각 해본적 없소?”

연희로서는 뜻밖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한두 명의 블랙 서클 사람들과 대적하여 싸우면서도 얼마나 아슬아슬한 순간 들이 많았던가. 그럴 때 마스터나 다른 자들이 나타났다면…………… 그래서 힘을 합쳐서 퇴마사들과 대적했다면 과연 이길 수 있었 을까? 안드레이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져 갔다.

“마스터는 블랙서클 사람들이 모조리 죽기를 바라고 있었소! 그 힘, 그들이 가진 힘을 차지하기 위해서!”

“힘을 차지하다뇨? 그리고 같은 편인 마스터가 어째서 한편을..”

한편? 같은 편? 마스터에게는 애당초 그런 것은 없었소!”

안드레이는 분노로 인해 금방이라도 발작할 것 같았다. 

“그자는 악마와 계약을 했소! 블랙서클의 성원이 죽고 나면 나타나는 원. 우리의 모임의 이름인 그 원, 블랙서클. 블랙서클 이 어째서 나타나는지 생각해 봤소?”

연희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마스터는 블랙서클 성원 모두를 강제로 악마와의 계약에 들 게 했소! 피로써! 블랙서클의 성원은 싸우다가 죽게 되면 악마에 게 영혼을 빼앗기는 것이오. 그리고 그가 생전에 지녔던 힘은 마 스터에게 넘어가는 것이었소. 마스터는 그 힘들을 끌어모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했고, 우리 모두를 속여서 영혼을 빼앗기게 만들어 버린 것이오! 그자는 우리의 힘을 빼앗 기 위해 악마에게 우리를 팔아먹었소!”

연희는 뭐라고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악마와의 계약이라니. 안 드레이 말이 맞다면 마스터는 살아 있는 악마였다. 리의 영혼도 마스터의 손에 의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그, 그는 대체 뭘 바라고………….”

안드레이는 이를 갈며 외쳤다.

“그는 지옥문을 열려고 하오!”

“그걸 열어서 뭘 어쩐단 말인가요! 세계와 함께 자신도 파멸할 텐데.”

“아아, 그자는 세계의 파멸에 관심 없소. 차라리 세계의 파멸을 목적으로 둔다면 나도 이해는 했을지 모르오! 그러나 그는 그 것조차도 목적이 아니오! 정확히 말해서, 세계 전체를 악마에게 바쳐서 그만큼 강해지기를 바랄 뿐인 거요! 세계의 파멸조차도 그에게는 더 강해지기 위해 던져 버릴 수 있는 제물일 뿐이란 말 이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믿을 수가…………….”

“아직도 이해 못하시오? 그자는 신이, 아니 스스로 악마가 되 려 하는 거요!”

승희는 이반 교수와 함께 지하 이층으로 날듯이 달려 내려가 다 갑자기 멈춰 서서는 비명을 질렀다. 어수선하게 부서진 복도 의 한편에는 원래의 크기로 돌아온 인디언 주술사, 성난큰곰이 서 있었고 그 앞에 현암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아…………. 안돼! 안돼!”


승희는 앞으로 뛰어나가려다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반 교수는 승희를 부축하면서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뒤에 걸머진 배낭에서 산탄총을 꺼냈다.

“아! 현암군! 현암군, 죽지 마! 죽으면………….”

승희는 이반 교수의 부축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털썩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반 교수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인디언 주술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반 교수의 머리 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이 개자식! 네가 현암을!”

이반 교수의 총이 불을 뿜자 산탄에 맞은 인디언 주술사의 배 와 가슴에서 선혈이 퍽 하고 튀었다. 그러나 인디언은 몸을 주춤 하면서도 씨익 하고 미소를 띠었다. 승희의 품 안에서 찢어질 듯 한 귀곡성이 울리면서 월향검이 무서운 기세로 뛰쳐나왔다. 

“잘한다! 죽어 버려!”

이반 교수는 악을 쓰면서 총알을 장전했다. 그러자 월향검은 금방이라도 인디언의 목을 날려 버릴 듯 무서운 기세로 날아가 다가 덜컥 정지하더니 쓰러져 있는 현암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았 다. 인디언 주술사의 힘없는 목소리가 이반 교수에게 들려왔다. 

그는 죽지 않았소. 그는 이제는…… 하하하.

“무슨 소리냐!””

이반 교수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데 쓰러졌던 승희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현암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현암의 얼굴을 짚어 보더니 화기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직 살아 있어요! 현암 군은 아직………… 아직도………….”

승희는 인디언 주술사가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음을 터뜨 리더니 쓰러져 있는 현암의 뺨을 철썩철썩 갈겨 대기 시작했다.

“이 죽은 척하다니! 나쁜 현암군! 바보! 멍청이!”

이반 교수는 계속 총을 겨눈 채 인디언 주술사에게 다가갔다. 인디언은 힘이 빠진 듯, 이반 교수에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백인………. 염려 마라. 현암 군은 죽을 뻔했지만 죽지 않았다. 그리고 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전사다.”

성난큰곰이 몸에 힘을 주자 이반 교수가 쏘았던 은 총알들이 피와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와 땅에 떨어졌다. 이반 교수가 놀라 자 성난큰곰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으로는 열 번, 백 번을 맞아도 나 성난큰곰은 지지 않 는다. 그러나 나는 이 친구의 용기에 졌다. 나는 이 친구와 친구 가 되기로 맹세했다.”

승희가 계속해서 뺨을 갈겨 대자 현암은 음 하는 신음을 냈다. 정신이 든 현암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승희는 울면서도 미친 듯이 웃음 을 터뜨렸다. 현암은 왼손에 꽂혀서 나직하게 울고 있는 월향검 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승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보다 그 칼이 더 걱정되냐? 하하하. 그래, 괜찮아. 그 러니 이제 일어나! 이 바보야!”

이반 교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성난큰곰에게 물었다.

“네가 현암을 쓰러뜨린 것이 아니었나?”

성난큰곰은 고개를 저었다.

“먼저 쓰러진 것은 나였다. 이 친구는………”

승희도 성난큰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성난큰곰의 품에 묻혀서 기공력을 발하던 현암은 무의식중에 부동심결을 발한 모 양이었다. 그로 인해 무리한 강신술을 쓰던 성난큰곰은 힘을 잃 고 쓰러져 버렸다. 정신을 차려 가는 현암도 기억이 조금씩 되살 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 부동심결을 코앞에서 받은 성난큰곰의 몸에서 시커먼 원 하나가 소용돌이를 치면서 빠져나갔다. 아무 의식이 없던 현암은 그 원을 보고 거의 본능적 으로 분노를 느끼며 기공탄을 날렸고, 작은 블랙서클은 기공술 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기공탄과 부딪혀서 산산이 깨어져 버 렸다. 현암은 극심한 허탈감을 느끼면서 쓰러져 버렸고, 그 광경 을 쓰러진 채 보고 있던 성난큰곰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아차린 것이다.

“그건 내가 과거에 했던 영혼의 계약, 마스터에게 속아서 악마 와 맺었던 저주받은 계약이 무효화된 것이다. 나는 이제 죽어도 몸을 블랙서클에 흡수당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영혼을 구원해 준 것은 내 친구이고 은인인 현암이다.”

현암으로서도 얼떨떨할 뿐이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니 성난큰곰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성난큰곰은 자신이 맺은 악마 와의 계약 때문에 영혼이 전사의 낙원으로 가지 못하다는 것을 슬프게 여겼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현암의 손에 죽음으로써 행여나 낙원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부동심결에 의해 혼돈에 빠져 있었던 정신이 맑아지면서 몸 안에서 자라던 작은 블랙서클마저도 현암의 손에 의해 파괴 되어 버리자, 그는 현암을 자신의 은인으로 여기고 기공력이 몸 안에서 들끓고 있는 현암을 치료해 준 것이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현암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수많은 블랙 서클 요원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반 교수는 총을 쏜 것에 대해 사과했으나 성난큰곰은 씩 웃으면서 웃었다.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내 성난큰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직 마스터는 건재하다. 더구나 그는 엄청나게 강하다. 어서 아래층으로 가라. 어서.”

현암은 몸을 일으켰다. 기공력은 많이 고갈되었으나 다른 곳 에 이상은 없었다. 승희가 성난큰곰에게 함께 가자는 눈짓을 했으나 그는 쓸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전에 마스터에 의해 구원받은 목숨, 그가 아무리 악하다 해도 그와 싸울 수 없다. 미안하다…….”

현암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현암은 그런 성난 큰곰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기분은 이해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백인에 대한 증오 같은 것을 가지지 말기 바란다. 그들도 따지고 보면 가엾은 족속이니까.”

성난큰곰은 별 대답을 하지 않고 다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 리고 아래층 쪽의 계단을 향해 손짓을 했다.

“어서 가라. 모두 힘을 합해도 마스터를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 다. 그러나………… 꼭 이겨라.”

그러더니 조용히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 현암은 고개를 끄 덕해 보이고는 승희와 이반 교수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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